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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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주의※】
이 SS는 미성년자의 음주를 장려하지 않습니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첨언합니다.
- 이 작가의 세계관에는 같은 CG 프로덕션에 소속된 트라이어드 프리머스 담당 P, 후지와라 하지메 담당 P, 타카가키 카에데 담당 P가 있습니다. (트라이어드 프리머스는 린, 카렌, 나오의 3인 유닛 입니다)
- 이번 단편은 시부야 린과 트라이어드 프리머스 담당 P의 이야기가 메인 입니다.
- 시부야 린이 데뷔한 지 2년이 지난 시점 입니다. (따라서 작품 안의 시부야 린은 17세)
- 이후 하지메, 카렌, 카에데를 각각 중심으로 한 단편이 이어집니다. (이 쪽도 시간나는대로 번역 하겠습니다)
- お願い! シンデレラ(부탁해! 신데렐라) 는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의 테마곡 입니다.
시부야 린 (15) - 본작 안에서는 17세 입니다.
호죠 카렌 (16)
카미야 나오 (17)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여기 수건. 연락했으면 마중 나갔을텐데."
"편의점까지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좀 뛰면 되니까 괜찮아."
프로듀서가 준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다.
날씨가 맑은걸 확인하고 잠깐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미안해 린. 샤워하는게 낫지 않겠어? 감기 걸린다고."
"그럴게. 아, 나오. 이것 좀 냉장고에 넣어줘."
"알았어."
"카렌은 린이 갈아입을 옷 좀 꺼내줄래? 그리고 린. 총선거 1위 축하해."
"고마워...엣?"
머리를 닦던 손을 멈춘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지만 방금 엄청난 말을 들은 것 같다.
"에, 그, 방금..."
"응? 아, 그러니까..."
"축하해. 3대 신데렐라 걸."
6월 중순, 장마가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왔더니 신데렐라가 되었다.
"에엣~~~~~!!"
나를 사이에 두고 카렌과 나오가 소리를 지른다.
"지, 진짜야 P 씨!? 정말로 린이 1위야?"
"정말이야 정말. 이런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대단해 린! 항상 열심히 노력하니까... 1위도..."
나를 껴안은 카렌이,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본다.
"...? 왜 그래. 카렌."
"린, 그거..."
주륵 주륵
어라... 아직 덜 닦았나. 빗방울이 눈가로 흘러서...
"어..라..."
주륵 주르륵
"그, 아니야. 비에 젖었으니까..."
멈추지 않는다.
안되는데... 프로듀서가 있으니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하는데...
"아, 아~!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까! 얼른 샤워하고 와. 린! 응?"
"...응. 씻고 올게."
나오가 내 등을 민다.
신경써준 거겠지. 이럴 때 울어버리는 나보다 훨씬 리더에 걸맞는게 아닐까.
나오는 어른이다. 나오한테 직접 이런 말을 하면 부끄러워서 딴청을 피우지만.
"아, 갈아입었구나. 일단 여기 앉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나니 침착해졌다.
카렌과 나오가 불러서, 소파에 앉는다.
"다시 한번 축하해 린. 이럴줄 알았으면 하겐다즈 사오라고 할걸"
"응. 고마워... 후후, 지금 가서 사올까?"
슈퍼컵을 건네받는다. 【※역주:슈퍼컵(スーパーカップ) - 다음과 같이 생긴 아이스크림】
말차맛이 입 안에 상냥하게 스며든다. 단순한 맛인데 마음에 든다. 조금 양이 많긴 하지만.
"...저기 나오. 프로듀서도 그렇고 린도 그렇고 너무 담담한 것 같지 않아?"
"맞아... P 씨. 좀 더 그 뭐랄까 무드를 생각하라고. 너무 갑작스럽잖아."
"그치~? 그러니까 아무개 씨한테 둔감하다는 소릴 듣는거야."
"카렌, 좀 조용히 해."
카렌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혀를 내민다.
카렌도 프로듀서를 좋아하는 주제에... 되갚아 줄테니 각오하고 있으라고.
"아니, 물론 제대로 발표회를 열거야. 개표가 끝나기 전에 확정이 났으니까. 린도 결과를 빨리 알고 싶을테고."
"그렇게 표를 많이 받았어?"
"압도적인 차이까진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2위랑 수만표 정도 차이를 벌렸지."
"우와아..."
"그런 고로, 앞으로 린은 촬영이다 뭐다로 굉장히 바쁠거야."
"알겠어. 린은 우리 거니까 빨리 돌려줘야 돼."
"난 물건이 아니야."
"신데렐라지? 안다니까."
"그래서 프로듀서. 추후 일정은 어떻게 돼?"
"아~ 자세한 스케쥴은 나중에 보내줄게. 지금은 바빠질거라는 것만 알고 있어."
"오늘은 이걸로 끝이야? 그럼 옷이 마를 때까지 시간도 걸릴테니, 축하하러 가자!"
"좋은 생각이야. 아, 우즈키랑 미오도 부를까? 괜찮지 P 씨?"
"아아, 유닛이니까 물론 불러야지. 대신 다른 아이들한텐 아직 말하지 마."
"그 정돈 당연히 알고 있다고~ 어디로 갈지 정하자. 린!"
"후후... 알았어."
미오랑 우즈키인가. 미오는 안아줄 것 같고, 우즈키는 울 것 같다.
...응. 괜찮네.
"그래서 P 씨는?"
"응?"
"훌륭히 신데렐라 걸로 선정된 린한테 상 같은거 없어? 야경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라든가."
"잠깐, 카렌!"
카렌은 또 무슨 소릴 하는거야.
...하지만 확실히... 상은 받고 싶은데.
"그것도 그렇네. 린은 어떻게 생각해?"
"...에? 무, 뭘?"
"그러니까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는걸로 괜찮아? 근사한 가게를 하나 알고 있거든."
"...응. 괜찮아...으응! 좋아. 응."
고마워 카렌. 역시 너는 내 친구야.
"그럼 촬영 있는 날 저녁에 가자고. 예정 비워 둬. 린? 듣고 있어?"
"응. 괜찮아괜찮아... 후후..."
"아~ P 씨. 걱정할 필요 없어. 린은 그냥 내버려 둬."
"?? 어...응."
그 후 만난 우즈키랑 미오한테, "시부린이 히죽히죽 거리다니 웬일이야?" 라는 말을 들었다.
"실례잖아. 히죽거리지 않았는데." 라고 대답하니 카렌이 손거울을 들이밀었다.
...역시 카렌 정말 싫어.
"네! OK! 쉬어도 됩니다~"
"...후우"
신데렐라 걸 기념 촬영이 길어지고 있다.
스태프 분들이 여느 때보다 기합이 들어간게 느껴져서, 나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긴장을 풀고 촬영용의 투명 난간에 기댄다... 이거 조금 무섭네.
"...아."
"수고했어. 정말 열심히 하는데? 나한테까지 열기가 느껴질 정도야."
프로듀서가 다가왔다. 오늘은 카렌과 나오의 수록이 있었을텐데...
안 돼. 안 돼. 오늘 저녁에 있을 일을 의식하니 표정관리가 안 된다. 정신 차리자.
"현장에 따라가긴 했는데 말이지,"우린 괜찮으니까 린한테 가봐." 라고 하더라."
"후후..."
고마워 카렌, 나오. 다음에 하나코를 마음껏 만지게 해주자.
"린을 따라 촬영장에 오는건 오랜만이네. 린은 걱정 안해도 알아서 잘할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믿어줘서 고마워. 그래도 가끔은 같이 와줬으면 하는데."
"알았어."
외로우니까.
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언제나처럼 입 속으로 삼킨다.
"이래서 린은..." 이라며 심술궂게 웃는 카렌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도 이대로는 진전이 없을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말이지...
"구두는 어때? 너무 끼거나 하진 않아? 공주님."
"공주..."
"린? 어~이~"
"...아, 응. 괜찮아. 딱 맞아."
발에는 조명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구두.
빈말로도 신는 감각이 좋다고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날개가 달린 마냥 가볍다.
...동경하고 있었기도 하고. 조금 들뜨는 것도 어쩔 수 없어. 응.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하긴 해야하지만."
"역시 그렇구나."
"음... 원래 좀 무거운 신발이기도 하고. 그래도 이걸 신고 돌아다닐 일은 없다니까 괜찮을거야."
아이리와 란코가 지나쳐 온 길. 이제야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신데렐라 걸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히 신고 있어야지.
"..."
"프로듀서?"
"아름답네. 린."
"에..."
"발렌타인 때도 귀여웠지만, 역시 린은 이런 복장이 어울리는 것 같아."
"...후, 후~응?"
위험해. 너무 기뻐서 무심코 웃어버릴 것 같다.
나한테 꼬리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있었으면 붕붕 휘두르고 난리도 아니었을테니.
냉정하게. 침착하게.
"그럼 무도회에 데리고 가도 괜찮은데?"
"아하하... 레스토랑으로 참아줘."
"응. 기대할게."
"슬슬 촬영 재개 합니다~!"
"이런... 미안해. 쉬는 시간에 방해해서."
"아니야. 덕분에 기운이 났어."
"그럼 다행이고... 아, 잠깐 인사좀 하고 올게. 촬영 끝나면 대기실로 와."
그렇게 말하고 프로듀서는 스튜디오를 빠져 나갔다.
"...후후, 아름답다고..."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좋아!"
제대로 기합 넣고 촬영에 임해야지!
대기실 문을 여니, 프로듀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수고했어, 린. 촬영은 어땠어?"
"다녀왔습니다. 괜찮게 찍힌 것 같아.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레스토랑에 좀 늦을거라고 연락 해뒀으니 괜찮아. 린, 이걸."
프로듀서가 상자를 건네준다. 상당히 가볍다.
"축하 선물이야. 방금 옷 갈아입었는데 이런 말 하기도 뭐하지만, 지금 갈아 입어 줘. 드레스 코드니까."
"응? 드레스 코드까지 맞춰야 하는 레스토랑이야?"
"그만큼 린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뜻이야. 나도 옷 좀 갈아입고 올게."
차에서 기다린다며 프로듀서가 방을 나간다.
재빨리 상자를 열자마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예쁘다..."
깊은 푸른색을 띤 드레스와 세트로 맞추어진 하이힐.
옷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눈에 봐도 굉장히 좋은 옷감이라는걸 알 수 있다.
... 프로듀서의 지갑이 조금 걱정된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정도가 아니구나. 다행이야."
"잘 어울리네. 역시 신데렐라 걸."
익숙하지 않은 구두 때문에 고생하면서 주차장에 도착했다.
프로듀서도 평소보다 힘이 들어간 복장이다.
"...프로듀서는 뭐랄까 조금 수수하네."
"이래봬도 꽤 자신 있는 옷인데... 린이랑 비교하니 역시 초라해보이네."
곤란한듯이 프로듀서가 웃는다.
아아... 또 이런다. "그 옷 멋있네." 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좋을텐데, 말 할 수 없다.
"자, 너무 늦어도 곤란하니까 신속히 안전운전으로 레스토랑까지 가자."
"어려울 것 같네."
"그게 프로듀서 일의 힘든 점이지."
마차에 타고... 아니 언제나대로의 사무소 차에 탄다.
조금 낡은 차인데, 오늘은 구석구석 윤기가 돈다.
"힘들겠네 프로듀서."
"그래도 재미있어. 아이돌 일도 그렇지?"
"응. 굉장히 즐거워. ...나중에 프로듀서가 돼볼까?"
"내 일자리가 위험해지겠는데 하하"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빌딩은 꼭대기가 너무 높이 있어서, 쳐다보느라 목이 아플 정도다.
"...높고, 비싸보이네." 【※역주:高いし、高そうだね(타카이시, 타카소우다네)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
"카에데 씨같은 말을 하는구나. 확실히 높긴 하지."
엘레베이터에 타고 레스토랑이 있는 층으로 올라간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높은 숫자가 적힌 층까지 올라간다. 우리 사무소를 열 개 쌓아도 안되겠는걸.
"여기 와본적 있어?"
"아니. 오늘 처음이야. 후지와라 씨 담당 P가 알려준 가게거든."
"하지메? 아... 그러고보니."
하지메가 히로인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굉장히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높은 곳이 좋아졌습니다." 라고 말했던가.
"그 사람은 후지와라 씨를 뭐랄까... 과보호 하고 있다고 해야하나..."
"하지메는 정말 좋은 아이니까요... 아니 그보다 카렌을 담당하고 있는 P 씨가 그런 소릴 하는거야?"
"카렌은 몸이 약하니까 여러가지로 걱정 되잖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어."
"하아... 정말이지. 아, 이제 도착 했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점원이 기다리고 있다.
"'시부야'로 예약 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창가 측 자리로 안내받았다.
의자에 앉으니 바깥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인다... 확실히 높네. 여기.
자리에 앉아있자, 점원이 테이블에 세팅을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이건."
이게 칵테일 글래스라고 불리는 물건인가.
연한 붉은 빛으로 채워진 잔 두 개가 프로듀서와 내 앞에 각각 하나씩 놓인다.
"보시는 대로, 린은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 물론, 내건 무알콜이야."
음주운전은 안된다면서 프로듀서가 웃는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지 않아?
"나, 미성년인데."
"내년엔 18살이잖아? 예행 연습 같은 느낌으로."
"술은 20살 부터 마실 수 있는데... 게다가 아이돌이 술 마셔도 괜찮아?"
"제대로 비밀을 엄수하는 가게이기도 하고, 린도 자제할줄 아는 아이니까 괜찮아. 대신 오늘 뿐이다? 자, 잔 내밀어."
프로듀서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괜찮으려나.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잔을 들어 올린다.
"신데렐라를 위하여"
"...거, 건배..."
불의의 일격을 맞고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부딫힌 잔을 재빨리 얼굴 앞으로 가져온다.
크랜베리와... 강한 알코올 향이 비강을 자극한다.
"음... 나한테는 너무 쎌지도..."
"아아, 미안해. 무리해서 마실 필요 없어. 내거랑 바꿀래?"
프로듀서가 자신의 잔을 내민다.
...어라. 이건 찬스 아닌가? 어, 어떡하지. 시치미 뚝 떼고 잔을 바꿀까?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하하 그래도 다행이야. 린은 너무 어른스럽기만 해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
단숨에 술잔을 기울인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걸 눌러 삼키고, 놀라서 기가막힌 표정을 짓고 있는 프로듀서를 똑바로 쳐다본다.
"...저기요. 강한 걸로 한 잔 더 주시겠어요?"
"아... 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그래도 술은 그렇게 마시면 안되는거야. 알았지?"
"흥! 어린애라서 잘 모르겠어."
"린..."
점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아까와 같은 칵테일을 내 잔에 따른다.
뭐, 나는 어른이니까 이 정도로 용서해줄게. 여자의 기분도 모르는 바보 프로듀서.
"열일곱인가... 겨우 2년 만에 이 정도로 성공할줄은."
"프로듀서 덕분이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를 이끌어 주었으니까."
"아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이 아이는 톱 아이돌이 될 수 밖에 없어.' 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틀리지 않은 것 같아."
"후후, 프로듀서의 꿈을 이루어줘야 하니까."
"지금 당면한 목표는 아이리와 란코인가. 카렌과 나오도 착실히 실력을 키우고 있으니 자만하고 있으면 안된다고?"
"그렇네..."
프로듀서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아직 나는 진정한 신데렐라가 된 게 아니라는걸.
응. 톱아이돌... 진정한 신데렐라가 되면...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레슨도 열심히 받아야겠지."
"물론. 나도 널 위해 열심히 뛰어다닐거야. 내일부터 말이지. 오늘은 좀 봐 줘."
둘이서 웃고 있자니, 애피타이저가 도착했다.
오늘 정도는 전부 내려놓고 놀아도 벌 받지 않겠지?
나, 더 열심히 노력할테니까. 부탁해, 신데렐라... 랄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미안해."
"아니야. 정말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데려와 줄거지?"
"으음...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려있겠지."
꿈 같았던 시간은, 순식간에 끝을 고한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미안한데, 잠깐 사무소 좀 들렀다 가자. 부모님께는 내가 연락해 둘테니까."
"알았어...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졸리네."
"그래? 그럼 눈 좀 붙이고 있어. 뒷 자석에 상자 있지?"
돌아보니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프로듀서... 상자 정리 좀 해. 그래서 어느 상자야?"
"아아 맨 위에 있는 검은 상자."
"이건가... 앗!"
별 생각 없이 연 상자 안에 있던 것은 분명히 본 기억이 있는 물건이었다.
"유리구두..."
"유리구두는 사무소에서 주는 선물이야."
"내, 내가 받아도 괜찮은거야?"
"린의 발에 맞춰서 만든 물건이야. 아이리랑 란코도 받았던 물건이니 받아 둬."
시상식 때 란코가 끌어안고 하루종일 생글생글 웃고 있었던게 이거였나.
조금 부러웠었는데 내가 같은걸 받게 될 줄은...
"보물로 삼을게. 계속... 앞으로도 계속... 소중히 여길게."
"그렇게 좋아해주니 기쁜걸. 아! 하나 말하는걸 잊었는데..."
"응?"
"사실 그 구두... 유리가 아니라 수지 아크릴로 만든거야. 린의 발에 상처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뭐야, 나한테 딱 맞네..."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자, 사무소까지 얼마 안남았네."
임시 신데렐라한테는 아크릴 구두 정도로 충분하지.
언젠가 진짜가 되면... 그때에는 어딘가의 마법사 씨한테 유리구두를 부탁해볼까.
"그럼 서류 들고 올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프로듀서가 사무소를 향해 걸어간다.
아무도 없는지 사무소의 불은 전부 꺼져서 깜깜하다. 자정이 넘었으니 당연한가.
"..."
자정이 지났구나.
"...이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무소를 흘끗 보니, 때마침 불이 켜진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어.
"읏차..."
살그머니 승용차 밖으로 나와서 트렁크를 연다.
어지러이 뒤섞인 물건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트렁크의 가장 안쪽에 상자를 놓는다.
"...됐다."
다시 차로 돌아와서, 뒷자석에 쌓인 상자들 중 비슷한걸 찾아서 든다.
...이 정도로 어두우면 들키지 않겠지. 나중에 이 상자도 몰래 돌려놓아야지.
이제 남은건 얌전하게 앉아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프로듀서를 기다릴 뿐.
"이렇게 늦게까지 끌고 다녀서 미안해. 푹 쉬어."
"고마워. 잘 자. 프로듀서."
"잘 자. 린."
"분실물" 을 싣고 차가 달려나간다.
"...후훗"
마차가 아닌, 사무소의 승용차.
유리가 아닌, 아크릴 구두.
진짜가 아닌, 임시 신데렐라.
지금의 나로써는 이 정도가 한계.
"진짜는... 조금 기다릴테니까."
언젠가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엄마~ 나 왔어!"
"어서오렴 린... 어머! 멋진 드레스네. 부러워라~"
"...앗!"
실수다. 드레스를 입은 채로 집에 와버렸다. 그보다 내 옷은 차에 있잖아.
그 후 엄마한테 프로듀서와의 일을 들켜서 계속 놀림받다가, 참지 못하고 하나코를 껴안고서 방에 틀어박혔다.
옷 갈아입는걸 잊어버리다니...
"...의외로 나는 신데렐라랑 닮은게 아닐까. 하나코."
"왕?"
하나코는 졸린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다.
후지와라 하지메 (16) - 도자기 장인 가문 출신 아이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린 씨."
사무소에 도착하니 하지메가 있다. 나오와 카렌은 아직 안 온 모양이다.
"일찍 왔네, 하지메. 오늘은 레슨?"
"네. 오디션이 얼마 안남아서 준비하려고요."
하지메가 읽고 있던 대본을 들어올린다.
... 오디션에서 저걸 전부 읽게 하진 않겠지만, 상당히 힘들어 보인다.
"이번엔 드라마든가? 후후, 요즘 잘 나가네."
"린 씨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부끄럽네요. 그러고보니 저번 일은 어떻게 됐어요?"
"응?"
"레스토랑에 갔다고 들었는데요."
아아... 하지메의 담당 P가 소개해준 가게였던가.
"굉장히 좋은 곳이었어. 야경도 예쁘고."
"다행이네요. 그래서 대답은 어땠어요?"
"대답?"
"좀 신경 쓰여서요... 다른 모두한테는 비밀로 할테니까요."
"...무슨 대답?"
"엣"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잠시 생각하고 있자니, 하지메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다.
"아... 미안해요. 제가 착각한 모양이에요. 잊어주세요."
"후~응? 아, 맞다. 하지메."
"네?"
"... 하지메가 거기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음에 제대로 들을거니까."
"아, 아하하..."
과연... 그렇구나.
"에~! 괜찮잖아! 나도 데려가줘!"
"알았어. 다음 총선거에서 1위 하면."
"크읏... 얕보지 말라고."
"너희들은 정상을 노렸으면 하니까... 아, 안녕 린. 그리고 후지와라 씨."
프로듀서가 카렌과 나오를 데리고 온다.
둘 다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표정인데.
"... 어딜 가고 싶은데?"
"에? 아... 아니..."
"우리도 그 레스토랑에 데려가 달라고 하는 중이야. 정말... 리더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카렌. 나오."
카렌은 휘파람을 불면서 눈을 돌리고, 나오는 그 뒤에 숨는다.
하아... 정말.
"후후... 세명 모두 사이 좋네요."
"후지와라 씨처럼 착실하면 좀 더 좋을텐데... 아 맞다, 린."
프로듀서가 책상에서 봉투를 꺼낸다.
"저번에 찍었던 사진이다. 여기 있으니까 한번 봐 둬."
"아 그 때 촬영했던거? 볼래 볼래!"
"왜 카렌이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테이블 위에 널린 사진들을 모두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라?
"...예쁘네."
"와~ 잘 찍혔다."
"...이 사진도 쓰는거야? 촬영은 계단 근처에서 했는데..."
"그 사진 괜찮지? 카메라맨 분도 걸작이 나왔다고 대호평 하셨어."
사진 속에 있는건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는 나.
게다가 표정을 보니, 휴식 시간에 찍힌 사진이다.
"이거 정말 괜찮네... 약간 색기도 느껴지고."
"새, 색기..."
"하하하, 확실히 잘 찍혔지? 난 잠깐 준비하고 올테니까, 모두들 편안히 쉬고 있어."
"네에~"
프로듀서가 방을 나가자, 카렌과 나오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를 본다.
"이야... 정말 좋은 표정인데, 이거."
"응응. 이거야말로 사랑하는 소녀같은 느낌이지? 아무개 씨도 단번에 넘어오겠는걸!"
"린은 대체 누구를 보고 있었을까아~?"
...이, 이 녀석들.
사람이... 아니 소녀가 가만히 있으니 기세가 올라서는!
"하아... 이 사진은 안쓰면 좋겠는데... 발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발? 무슨 이야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혼잣말."
뭐 상관없나. 프로듀서가 보증한 거니까.
"기다렸지. 아, 린."
"응? 프로듀...서..."
...잠깐. 잠깐만 있어봐.
전신에 식은 땀이 흐른다. 신기한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하지메를 의식할 여유조차 없다.
왜...왜... 그 상자를 들고 있는거야? 프로듀서...
"아...아."
"자, 유리구두...가 아니지. 신데렐라 때 썻던 구두. 소중히 여긴다고 했으면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한테 프로듀서가 상자를 건넨다.
"잠깐 실례할게요."
하지메가 상자의 뚜껑을 연다.
...하지메를 막을 여력조차 없는 나는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다.
"와아... 유리구두네. 정말 예뻐요."
"그치? 린이 어제 차 안에 있는 짐들을 정리 하라길래 정리하다보니 나왔어. 잃어버리고 다니지 말고 소중히 간직하라고, 린."
짐 정리를 제안한 그 때의 나를 때려주고 싶다.
"...으음 그렇구나."
"...헤에... 린이 물건을 잃어버렸단 말이지..."
카렌과 나오가 사태를 이해한 것 같다. 이제 얼굴 못 들고 다녀...
안봐도 뻔하다. 여태까지 들은 적이 없을 정도로 즐거운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착실하다고 소문난 린도 물건을 놓고 내릴 때가 있구나아~"
"이런 어린애같은 부분도 린의 매력이야, 나오. 아, 어린애가 아니고 소녀라고 해야하나?"
카렌과 나오가 쿵짝이 맞아서 재잘대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왕복한다.
얼굴을 가린 양손에 전해지는 열기가 점점 강해진다.
"구두를 놓고 오다니, 마치 신데렐라 같네에~"
"어이, 카렌~ 린은 이제 막 신데렐라가 된 참이라고~"
"아~ 그랬지! 어라, 그러고보니 신데렐라는 구두를 어디에 놓고 왔지?"
"으음~ 어디였더라아~ P 씨! 어디였지?"
"갑자기 너희들은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야 당연히 무도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움찔 몸이 떨린다.
최악이야. 하필이면 이 두 명 앞에서...
방심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들킬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아... 린. 그러니까 이건... 그런거지?"
"우리는 먼저 가있을게 P 씨~"
"나중에 차분히 이야길 들을테니까 도망가면 용서 안할거야, 린!"
나를 놀릴만큼 놀리고나서 둘이 도망치듯 사무소를 떠난다.
나중에 꼭 복수할거야 둘 다. 각오해.
"...하, 하지메..."
"슬슬 레슨이라서 먼저 가볼게요. 아, 맞다. 말하는걸 잊어버렸는데, 신데렐라걸이 된 거 축하해요."
최후의 희망이었던 동아줄이 끊어진다.
하지메는 믿고 있었는데... 나중에 하지메 담당 P와의 일, 꼬치꼬치 캐물어 줄테다.
"린, 나는..."
"...프로듀서..."
얼굴을 들고 프로듀서를 바라본다.
얼굴이 빨개진건 알고 있어. 입이 마르고, 몸이 떨린다.
그래도 지금 말해야만 해.
제발 나에게 용기를 줘.
"있잖아. 나는..."
부탁해, 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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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