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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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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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댓은 "한 학생의 별 볼일 없는 일상"에서 이어지는 창댓입니다.
전 창댓을 보고 오지 않으셔도... 무방하지는 않겠네요.
이 창댓에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니, 오리지널 캐릭터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비밀 메시지같은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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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재앵커라니...
>>+1
>>+1
"그렇네. 카나하라면 둘과 꽤 가까울 테니 뭔가 알고 있을지도."
"하지만 저도 아는 게 없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필연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질문에, 혹시나 표정에 드러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이 거짓말로 슬쩍 빠져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입 안을 적실 무언가가 절실해진다.
"저…"
이야기를 회피하고 잠깐 안심하고 있을 때 근처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자, 우리를 찾아온 키 큰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2 우리를 찾아온 사람은 누구일까.
+3 그리고, 왜 찾아왔을까.
@ 시키가.. 키가 큰가? 161CM에요.
"이, 이치노세?"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니, 보이는 이치노세의 얼굴.
"응? 프레쨩은 안 보이는 거야?"
어째서인지, 이치노세는 프레데리카에게 업혀 있는 상태로 우리들이 앉은 탁자 옆에 서 있었다.
"왜 업혀 있는 겁니까? 시키."
"응? 신경 쓰지 마~ 그냥 간단한 연습 중이니까."
"언제 교대해줄 거야? 프레쨩도 슬슬 힘들다고!"
분명히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것이 일상인 마냥 대화를 나누는 이치노세와 프레데리카를 보니,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어떻게 이 둘은 만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왜 온 거야? 시키. 방금 말하는 걸 보니까 카나하를 찾아온 것 같던데."
"…용건만 빠르게 이야기해줘."
이치노세를 만날 때마다 조금 심하게 괴롭혀진 나로서는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기겁할 정도까진 아니라고 해도 이치노세에게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가 생긴 상태라,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에 다소 떨떠름하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뭐어~ 별 건 아닌데, 카나하네 프로듀서가 카나하를 찾고 있더라고. 우연히 만났는데 찾아달라고 부탁하길래 알았다고 했지."
"프로듀서가…?"
이치노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심심해서라던가 내 냄새를 맡고 싶다던가 하는 이유가 아니라 프로듀서가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를 찾아왔다는, 의외로 진지한 이유였다.
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때로는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모양이네.
>>+3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서는데, 부르러 왔다던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몰라도 어째서인지 아냐와 미나미까지 졸졸 따라온다.
아무튼 어떤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듀서가 나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들은 이상 여기서 한가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을 수는 없어,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해준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며 인사한 뒤 프로듀서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두 분은 왜 저를 따라오고 계시는 건가요?"
"저희, 말입니까?"
"네."
나에게 소식을 전해준 이치노세와 프레데리카는 그렇다 쳐도, 이 두 명까지 나를 따라올 이유는 없을 텐데, 어째서 이 둘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적절한 이유는 내가 주문한 음료의 계산 때문에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거지만 나는 이미 나올 때 계산을 마치고 나왔기에 그녀들이 나를 따라 카페를 나올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봐야 할 텐데.
"뭔가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할까?"
"마찬가지입니다."
다소 어이없는 이유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납득가지 않는 말은 또 아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원래 있던 사람과 함께 없어져버리려고 하면 조금 따라가고 싶어지기는 하니까.
그렇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인데…
+3 이제 어떤 상황이 생기려나.
별 수 없으니 달고 갈 수밖에. 아이돌들이 이렇게 주렁주렁 달리다니 어찌보면 행운인가?
"시키쨩은 여러 명이서 같이 가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프레쨩도 찬성!"
역시 부르지도 않은 사람을, 그것도 이번 일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데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을 두 명씩이나 달고 프로듀서에게 가는 것은 예의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프로듀서가 어떤 심각한 말을 할 지도 몰랐기에 나는 나를 따라오는 네 명을 설득해보려 했으나, 네 명 모두 나를 따라오려는 생각을 버릴 기미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프로듀서도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 것 같은데요…"
"괜찮아. 이야기할 때는 슬쩍 피해줄게. 우리가 방해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네 명씩이나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해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다른 변명 거리를 찾으며 말꼬리를 흐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찾고 있을 때, 문득 주변의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온다.
작게 웅성거리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리.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우리를 보며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의 관심어린 목소리.
"…알겠어요. 가죠."
나는 몰라도 다른 네 명은 나보다 더 오랫동안 활동한 아이돌이니 시선을 끌 것은 당연한 일.
그녀들을 설득하면서 시간을 끈다면 그만큼 이 쪽이 받는 시선이 늘어날 뿐이니 네 명을 설득해 돌려보내고 혼자 프로듀서를 만나러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빠르게 프로덕션으로 돌아가는 편이 오히려 덜 불편하겠지.
어쩔 수 없네.
달고 갈 수밖에.
그나저나 남들은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아이돌이 네 명이나 따라붙다니, 어찌 보면 이것도 행운이려나?
…나도 아이돌이긴 하지만.
>>+3 미인 네 명을 달고서 사무실로 향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심심해진 시키가 러브라이카를 놀려먹어서 시끄러웠던걸 빼면.
..이 두 페어, 어쩐지 나랑 아스카 같은 과 같기도..아닌가? 그렇게 흔할 리 없나.
"으흥~? 왜 여기서 미나미의 향기가 이렇게 짙게 날까나?"
"그, 그건…"
"자, 잠깐만, 시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해프닝이라고 할 만한 일을 굳이 꼽아보자면 마냥 걷기만 하자 심심해졌는지 내 뒤에서 이치노세가 러브라이카의 두 명을 한창 놀리고 있어 시끄러운 것밖에 없는, 평화로운 순간.
물론 놀림당하는 당사자인 저 두 명에게야 딱히 평화로운 순간은 아니겠지만,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나에게는 정말로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시, 시키, 그만…"
나를 향한 대화는 아니라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이 내용이었기에, 몰래 엿듣듯 대화의 내용에 귀기울이자, 예전에 이치노세가 나와 아스카를 놀릴 때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렇게 이치노세가 우리를 놀렸던 것과 비슷하게 놀리는 말을 들으니, 두 명이 붙어다니는 모습과 카페에서 보여주었던 다정한 모습이 같이 떠오르더니 내가 가진 아스카의 추억과 겹쳐, 어쩌면 저 두 페어도 나와 아스카 같은 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이, 설마.
우리와 같은… 그런 연인이 흔할 리 없잖아.
>>+3 이제 어떤 일이 생기려나.
프로듀서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던 프로듀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재빠르게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나를 맞이했다.
"우선 너희들은… 어쩌다 따라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나하와 단 둘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으니까 잠깐만 나가주지 않을래?"
물론 그가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나 하나였기에 다른 네 명에게는 자리를 비켜달라는 프로듀서의 부탁으로 드디어 네 명과 떨어져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프로듀서가 나에게 할 말이 꽤나 진지한 말이라는 것을 의미했기에 혼자 남게 되어 편안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불안해진다.
"…카나하."
"네, 프로듀서."
나를 따라온 네 명이 군말없이 사무실에서 나가자 조금 진지한 분위로 내 이름을 부르는 프로듀서의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앞으로 내가 듣게 될 말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3 저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가요, 프로듀서?
그래도 기회가 없는건 아니라서 다음 라이브때 일정 관객수를 넘기면 해체하지 않겠다고한다
다만 왜인지는 몰라도 아스카에겐 다음 라이브가 있다는것 말고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네. 준비됐어요. 들려주세요."
이야기를 꺼내기 직전, 프로듀서는 지금부터 나에게 몹시 심각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박으면서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지 말을 꺼내려는 목소리에서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 나를 점점 더 불안케 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꺼내려 하기에 나에게 진정하라 말하고,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
"위쪽에서 성과가 없는 몇몇 유닛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중에 시나올렛이 포함되어 있어."
"네…?"
나와 아스카 간의 연결고리 하나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같은 말.
다른 사람에게도 아이돌 생활로서의 위기로 여겨질,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아이돌이 되고, 그 사정에 의해 아스카와 함께해야만 하는 나로서는, 그 개인적인 사정에 목숨이 달린 나로서는 그 말을 누구보다도 더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그래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니까."
"기회가… 있는 건가요?"
"응. 앞으로 있을 라이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해체하지 않겠다고 했어. 관객을 많이 끌어모은다던가, 무대 위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던가, 그런 거 말이야."
아무리 기회가 있다고 해도 급작스럽게 이런 짐을 짊어지게 되니, 내가 과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제일 먼저 든다.
나는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 왔는데, 그 결과가 이렇다면 내가 다시 한 번 무대 위에 서서도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내게 되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무대 위에 설 때는 비슷한 위기 속에서도 잘 해냈는데, 이번에도 잘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드라마 출연이나 잡지 촬영으로 네 인지도가 조금씩 올라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위쪽에서 보기에는 영 부족했던 모양이야. …미안, 카나하. 일이 이렇게 된 건 일을 많이 가져오지 못한 내 탓도 있을 거야. 정말 미안해."
"아뇨…"
오히려 미안해해야 할 쪽은 우리를 위해 노력한 프로듀서가 아니라 프로듀서가 나에게 가져다준 일거리를 모두 '성과 저조'라는 단어 속에 포함되게 만든 사람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일단 아스카에게는 비밀로 해줘. 아스카는 인지도상 문제가 없어서인지 상부에선 합동 라이브 때 있을 카나하 네 단독 무대에서 너의 성과를 확인하려는 것도 있지만 역시…"
"…아무튼 비밀로 해줘. 그럴 수 있지?"
프로듀서가 어째서 아스카에게 이번 일을 비밀로 하려는지 완전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프로듀서가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면서 아스카에게 이 일을 숨기려는 이유는 아마도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아스카가 보일 반응이 걱정되기 때문이겠지.
"…네."
그리고 그건… 나도 걱정되고.
미안, 아스카.
너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겨버렸어.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괴로워해야 하는 날인가 봐.
+3 다음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나, 나를 괴롭게 할까.
"…그렇겠죠?"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커녕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어 불안해하던 나였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신뢰가 있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져, 나는 가까스로 프로듀서에게 웃어보일 수 있었다.
그래. 아스카를 걱정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는 일 없이, 해내야만 해. 그녀가 어째서 말하지 않았냐며 나에게 따지는 일은, 절대로 겪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실패는 있을 수 없어.
"그 건에 대해 이야기중이었나? 그것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러 왔는데 마침 잘 됐군."
"…전무님."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사무실에 들어와 우리들의 곁에 서는 이 회사의 '높은 분'들 중 한 명.
방금 전 내가 듣게 된 상부의 결정에 이 사람도 관여해있는 걸까.
"평소에는 상무라고 부르더니, 이런 때가 되어서야 전무라고 부르는 건가?"
"여긴 왜 오셨습니까."
"자네에게 볼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왕 만난 김에 대화를 좀 나누는 것도 좋겠지."
프로듀서에게 볼일이 없었다니.
우리가 이야기하던 그 주제가 자신의 용건임을 밝히며 우리에게 대화를 걸어왔으면서 프로듀서에게 볼일이 없다면, 그렇다면 미시로 전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나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전무와의 만남을 생각해보니 나에 대한 프로듀스 방침을 용납하지 못해 프로듀서와 대립했던 전무였기에, 내가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나를 찾아올 이유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리고 그녀가 할 말 또한 충분히 많을 것이다.
내가 들어야만 할 말들이, 쌓여왔겠지.
"알다시피 나는 자네의 프로듀스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네. 그 때는 결과가 결과였기에 넘어가주었지만 지금은 그러기 힘들지."
"하지만 착실히 성장해나가고 있습니다.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물론 놀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간 시나올렛라는 유닛으로서 해온 일은 적지 않나? 물론 두 명이 공동으로 출연한 드라마 건은 꽤나 좋은 결과를 얻어내어 지금도 촬영중이지만, 그건 원래 자네가 얻어온 '유닛의 일'도 아니고 '에토 카나하의 일'도 아닌 '니노미야 아스카의 일'. 카나하가 그 일에 끼어들어간 것은 우연의 일치였지."
"결국 시나올렛의 인기가 저조한 것은 일도 제대로 가져다주지 못한 자네의 책임도 있다. 그런데 시간을 운운하다니,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프로듀서의 말이 사라진다.
"물론 시간을 주면 나아지겠지만 알다시피 회사는 그렇게 사정을 봐주면서 한가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부터 내 용건을 말하도록 하지."
프로듀서의 말을 잡아먹으며 나를 향해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말.
+3 그 말은, 무엇일까.
재앵커, +1.
"마지막… 기회…"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곱씹어보자, 내 입가에서 작게 퍼져나간 불안한 울림이 내 마음을 잠식하던 불확실성이 고개를 들고 나를 이 자리에 아이돌로서 서있게 하는 토대를 하나씩 꺾어버리고, 부서뜨린다.
"마지막 기회… 인가요."
오늘 아침의 일로 의지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태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다시 한 번 곱씹는 내가, 애처롭다.
"그렇다. 마지막 기회지. 그러니 네 프로듀서를 믿고 널 맡겼던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에토 카나하'라는 아이돌의 가치를 확실히 증명해주길 바란다. 그 날, 그 무대 위에서 네가 보였던 모습처럼."
"…네. 그럴게요."
반드시 성공하라고 말하는 전무에게 그러겠다고 답하고는 있었지만, 복잡한 마음 때문에 자신있게 내놓을 확신을 얻지 못하는 나에게서 나온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와도 같은 말일 뿐이었다.
"그럼, 일이 바빠서 이만 가보도록 하지."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전무님."
"안녕히 가세요."
전무가 나가고 나서 조용해진 사무실.
"저도 이만 가볼게요."
"그래. …미안하다."
프로듀서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용건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프로듀서에게 인사를 남기고 그가 인사하며 재차 건넨 사과를 흘려들으며 내가 내뱉은 공허에 사로잡힌 채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천천히.
"흐응? 표정이 안 좋은데?"
"좋지 않은, 소식이었습니까?"
"밋시쨩이 또 엄한 말을 한 거야?"
사무실을 나오자, 나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내 표정을 보며 제각기 한 마디씩 말을 던진다.
그런데 밋시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
…설마 프레데리카가 전무를 부르는 별명인가?
"밋시가 말재주가 없어서 그렇지, 실은 좋은 사람이라고? 안 좋은 말인 것 같아도 사실은 다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거야!"
"그런가요…"
내 얼굴이 어두워진 이유가 미시로 전무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변호하는 프레데리카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전무가 나에게 한 말이 응원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게 응원이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 든다.
"혹시 고민이 있다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건 어때? 그런 사람과 상담하다보면 금방 날아갈 거야."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이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아스카밖에 없는데.
내가 정말로 지금 당장 죽도록 고민하는 그것이 아닌,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감을 어떻게 끌어올려서 좋은 무대를 만들어낼지에 대한 고민조차 지금 아스카와 상담하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인데,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하지만… 지금만큼 아스카와 대화하고 싶었던 적도 없는 것 같아.
+1~3 만나러… 갈까?
1. 만나러 가자. 만나러 가서, 그녀와 대화하자.
2. 역시 아직은, 아직은 안 되겠어. 나중에 만나자…
하지만… 역시 아직은, 아직은 안 되겠어. 아직 아스카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어.
만약 지금 아스카를 만나버린다면 아스카는 내가 무언가를 그녀에게서 숨기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아채버릴 테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아스카에게 프로듀서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날 갉아먹는 이 일을 말해버릴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까, 아직은 아스카를 만날 수 없어.
"역시 나중에 만나는 게 좋겠어요. 잠깐, 시간이 필요해서…"
"그럼 그동안은 우리들이 위로해주면 되겠네?"
"위로… 라니?"
다른 사람의 위로도 지금의 나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나를 위로해주겠다는 사람이 다름아닌 이치노세였다는 것.
…나,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닐까.
+3 이, 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기는 거지…?
..는데 딱히 아무 일도 없다. 차분해질만한 향으로 아무거나 뿌린 거라고.
이상한 사람이지만 정말로 위로해주려고 한 걸까...아니, 프레데리카란 사람이 면박 주는 거 보니까 역시 놀리는 건가?
이치노세가 언제 위로랍시고 이상한 짓을 할지 몰라 그녀를 주시하며 경계하던 나였지만, 이치노세는 내가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담긴 스프레이를 빠르게 꺼내 내 얼굴에 무언가를 분사했다.
수상한 액체가 갑자기 얼굴에 뿌려지자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흡입하지 않기 위해 숨을 멈췄지만, 그 수상한 액체가 섞인 공기는 이미 내 폐 속으로 들어오며 꽤나 좋은 향기를 남겼…
…좋은 향기?
"향수…?"
"응, 응. 차분해질만한 향으로 아무거나 뿌린 거야. 이상한 건 전~혀 안 섞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깊이 들이쉬라구?"
멈췄던 숨을 쉬며 다시 한 번 이치노세가 뿌린 향수를 들이키자 흘러들어오는 좋은 향기가 나쁘지 않게 느껴져, 이치노세에게 속는 셈 치고 심호흡하니 이치노세의 향수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조금 전만 해도 들끓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향수를 뿌려댄 이치노세의 행동에 뭐라고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때? 조금 진정됐어?"
"…아마도."
혹시 이번에는 정말로 날 위로해주려 했던 걸까?
…어쩌면 이렇게 엉뚱한 사람도, 내가 괴로워 하는 모습은 보기 싫었던 걸까?
"치이이, 조금 더 후와후와하고 냐핫~! 한 향수일 줄 알았는데!"
"냐하핫. 너무 면박주지 말라고? 프레쨩."
…아니면 그냥 놀리려는 거였나?
놀려도 뭐라고 못 하도록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려고.
아무튼 괴상한 방법이긴 했지만, 위로를 받았으니 힘내야겠지.
+3 그럼, 이제 무엇을 할까?
"…카나하?"
한 번, 두 번 노크한 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짧은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길게 그리워했던 얼굴이 나를 맞이하며 정말 듣고 싶었던 목소리를 들려주어, 나를 울고 싶게 만들었다.
"아, 안녕, 아스카."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 카나하. …어땠나? 잠깐의 여행은."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뛰쳐나갔으니 아스카가 나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제아무리 당연하다고 해도 나의 연인의 입에서 나오는, 죄책감어린 걱정의 말은 정말 멋진 말이자 슬픈 말이었고, 또한 나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그럭저럭 좋았어."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어.
너에게 전부 다 털어놓고 싶지만, 너한테는 그럴 수 없다고.
사실은 전혀 좋지 않았지만, 괴로웠지만,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지만 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게 된다면 내가 고통받은만큼 괴로워할 너에겐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절대 말할 수 없단 말이야.
"그랬다니 다행이군. …미안하다, 그런 일을 겪게 만들어서."
미안, 아스카.
난 널 속여야만 해.
"그나저나 처음 맡아보는 향기가 나는데, 향수라도 뿌린 건가?"
"응. 어쩌다보니 뿌리게 됐어. 그건 그렇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괜찮아?"
아직도 내 속에선 여전히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지만, 아직 내 곁을 맴도는 향수의 잔향 덕분인지 나는 그 감정의 물결 속에서 보이지 말아야 할 감정을 가라앉힌 채 아스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울지 않고, 소리치지 않고, 괴로움에 내뱉는 절규도 없이 그저 차분하게.
"충분하다. 설령 시간이 부족하다 해도, 네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자 하고 있으니 없는 시간이라도 내어줘야겠지."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돼."
"아무튼 지금은 괜찮다. 나도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너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만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응."
그렇게 아스카에게서 나의 괴로움을 숨기는 가면을 쓴 채 그녀와 대면하게 되었지만, 만약 내가 무언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아스카는 곧바로 내 가면을 벗겨낼 것이 분명하기에 아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진심을 다해서 내가 내보인 문제에 대해 그녀와 상담하자.
더 심각한 문제에 신경 쓰지 못하게 될 정도의 진심으로, 진실을 덮자.
+3 다시 한 번 들어가게 된 그녀의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스카는 묘한 위화감에 뭔가 신경쓰인다는 표정이지만 숨기는게 있다고까진 눈치 못 챈 것 같다..
아스카의 방에 들어와 그녀를 마주보고 앉으며, 나는 아스카에게 하려는 이야기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운을 띄웠다.
"…역시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건가."
"응. 맞아."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괴로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을 말로서 재차 확인하면서, 우리는 미안함이 담긴 씁쓰레한 눈길을 주고받는 것으로 연인과 재회하며 만들어냈던 좋은 분위기를 점차 무겁게 바꿔나갔다.
"그래… 지금부터 네가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꼭 들어야만 할 이야기. 나의 그릇된 행동이 빚은,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과실이겠지."
거짓말로 모두를 곤란케 했던 너의 죄책감과 지금부터 시작해서 앞으로도 너에게 거짓말해야 하는 나의 죄책감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아니. 이런 비교는 무의미하겠지.
진실을 왜곡했다는 것과 진실을 숨겼다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 너도, 나도 거짓을 보이는 죄를 지니고 말았다는 단 하나의 진실은 계속 남아 변하지 않을 텐데, 죄의 경중을 따져봐서 뭘 하겠어.
덜떨어진 자기합리화밖에 안 될 게 뻔하잖아.
뭘 생각하는 거야, 나는.
"좋아. 들을 준비가 됐어."
내가 무의미하고 좋지 않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있을 때, 아스카가 나에게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왔다.
나 또한 그녀처럼 결심을 굳히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입을 연다.
"…불안해, 아스카."
"오늘 있었던 일로 칸자키와의 사이가 더 나빠진 것 같아서, 나 때문에 모든 게 다 틀어지는 것 같아서, 어제 네가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했던 이야기조차 힘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래서… 불안해."
마음속에 가두고 있던 무거운 짐 일부를 그녀 앞에서 내려놓는 나를 보면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는지, 아스카가 뭔가 신경 쓰인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더욱 더 암울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스카는 내 마음속을 캐내려는 말은 하지 않고 잠자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미안. 미안해, 아스카.
하지만 난 정말로 네 도움이 필요해.
…도와줘.
"그렇다면 너의 그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건…"
모르겠다고 답하려는 도중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 하나.
"오늘…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칸자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란코에 대한 이야기?"
"응. 이야기를 들어보니, 칸자키가 최근 마음고생이 엄청 심했던 것 같아."
"그건… 그래. 그럴 만도 했겠지. 아니, 분명 그랬겠지. …하아, 그녀가 마음 속으로 심하게 앓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어버리다니. 나도 참 친구로서 실격점이로군."
"그리고 그 여파가 너와 미레이에게까지 미치게 했으니, 연인으로서도 실격점이겠지. 너에겐 다시 한 번 사과하도록 하마."
"아냐. 나는 괜찮아. …나보다는 란코가 더 문제니까."
그러니까 그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는다'는 표정은 하지 말아줘.
"그래서 말인데, 칸자키도 나 못지않게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칸자키를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녀를 도와주면서 근본부터 하나하나 해결해가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
"근본부터 하나하나 해결한다, 라."
내 말을 들은 아스카는 잠시 내 말에 대해 생각하는지,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렸다.
+3 이제 그녀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아니면, 이제 어떤 상황이 생길까.
이 일도 다른 일도
...아니, 란코의 고민마저 너에게 불안으로 다가올 때까지 방치한 내가 가장 죄질이 나쁘군.
그리고 죄를 속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나로서는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스카는 내가 아니라 남을 먼저 위한다는 나의 해답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짝 나무라는 투로 나의 대답을 꼬집어왔다.
"…아니. 착해빠졌다느니 뭐니,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 란코의 고민이 너에게 다가가, 너의 불안이 될 때까지 방치한 내가 가장 죄질이 나쁘다고 해야 할 테니까."
"하아, 이러한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속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군."
한숨을 내쉬며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아스카의 말이 나에게 들려오며, 자책하는 그녀의 모습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겨 나를 슬픔에 젖어들게 만든다.
"그래. 란코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 둘의 죄를 덜어내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버텨내야 할 죄책감의 무게만큼은 조금쯤 덜어주겠지."
결국 아스카가 나의 해답에 동조해주었지만, 아스카와 함께 빛나는 뜻을 같이하게 되었을 때와는 달리 감당하기 힘든, 죄로 얼룩진 길 위에 아스카를 끌어들인 것만 같아, 이번에는 아스카가 내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것에 순수히 기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칸자키를 위해서라도, 우리 셋 모두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걸어가야만 했다.
"한 번 해 보자고, 카나하."
"…응, 아스카."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던 나의 연인이 그 길 위에 같이 서 준 이상, 그녀의 동행이 기꺼이 여겨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녀와 함께라면 이 어려운 길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지.
+3 그녀와 함께 결심이 선 이 순간의 뒤에 일어날 일은, 과연 무엇일까.
란코도 일단 해주기로했으니 수락한다
"글쎄다, 사과라는 것은 진정성을 담아야 하는 법이니만큼, 우선 란코가 잘 받아들여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예를 들면, 란코의 마음에 들만한 코디라던가."
쌓이고 쌓인 일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아, 그에 대한 도움을 얻기 위해 아스카에게 질문하자, 아스카는 엉뚱하다면 엉뚱한 대답을 내놓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칸자키의 마음에 들 만한 코디? 나, 나는 그런 쪽의 코디는 잘 모르겠는데…"
아스카의 표정을 보면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진지한 것 같고, 사과를 위해서 사과하려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중요할 테니 그렇게 나쁜 답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스카의 비책은 나로선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뭐, 다행히도 이런 쪽은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으니 도와주도록 하지."
물론 아스카 네가 도와준다면 아마도 잘 되겠지만.
"…나한테 칸자키가 좋아할 만한 옷이 잘 어울릴까?"
"그건 해봐야 알지 않겠어? 자, 어서 가자고."
"으, 응."
뭔가 아스카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은데…
+3 그, 그녀가 말하는 칸자키가 좋아할 코디는 무엇일까.
아직 칸자키 양의 일이 끝날 저녁까지는 시간이 있으므로, 약속을 수락하는 전개는 조금 뒤에.
클래식 로리타도 묘하게 어울릴거같고...
로리타 패션쪽을 시도해보자
아스카와 함께 말없이 칸자키를 기다리고 있으니 혹시라도 칸자키가 우리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최악의 상상이 내 머릿속에서 피어올라 몸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 바로 옆에 있는 아스카의 존재조차 망각하게 만들어 나를 고립시켜 내가 괴로운 상상 속에서 혼자서 고통받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상에 묶여 신경이 타들어가는 듯한 길고 긴 시간을 버텨나가고 있을 때 내가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모든 괴로움은 별안간 나를 툭툭 치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금이 가다가, 그 손길을 건넨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자 한순간에 산산히 깨져버렸다.
"저기 오는군. 자, 이제 오늘 아침의 우리들과 결착을 낼 시간이다. 가자, 카나하."
"으응…"
칸자키가 화를 내지는 않을까?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또다시 불길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감을 되찾지 못한 채, 나는 아스카를 따라 주눅든 발걸음을 옮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칸자키의 앞으로 나아갔다.
"프흣."
그런 나를 본 칸자키의 첫 반응은, 바로 가볍게 웃는 것.
그래. 칸자키가 나를 보며 저렇게 실소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겠지.
"거울이 비추는 모습과 그 안에 숨겨진 내면까지, 정말 완벽하게 마왕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로다."
왜냐하면 칸자키가 좋아할 거라며 아스카가 나에게 내밀었던 옷은 칸자키가 평소에 입는 옷과 비슷하지만 칸자키가 즐겨 입는 어두운 색상의 옷과는 달리 하얀색을 기반으로 화사한 색상으로 포인트를 준 부분이 돋보이는, 그런 옷이었으니까.
평소에 보기 불편해하던 내가 이런 옷차림을 하고 나타나다니, 칸자키가 보기에 이만큼 우스운 것도 없겠지.
그래도 첫 반응이 웃음인 걸 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려나.
설마 아스카는 이렇게라도 우리가 칸자키의 앞에 섰을 때 칸자키가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우리와 있을 수 있도록 '칸자키가 잘 받아들여줄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어쩌면 이번 만남은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
+3 이제… 어떤 대화가 이어질까?
이제 란코의 하렘멤버화를...아니 트러블 풀기 데이트를 시작해보자
그녀와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까.
칸자키의 말은 언제나처럼 어려워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말에선 어쩐지 그녀를 매료시켜 나와 그녀가 근본적으로 대립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칸자키에게 보여지는 아스카의 매력을 말하고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스카는 멋지지. 하지만 멋진 이미지를 유지하며 어른처럼 보이길 바라면서도 속은 어린애 같은 점도 꽤 좋아."
칸자키가 나에게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녀의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나 또한 그에 질세라 아스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야기하는 칸자키에 맞서 경쟁하듯 나에게 가장 감명깊게 와닿은 아스카의 매력을 이야기하며 칸자키의 이야기를 되받았다.
"이번만큼은 너의 말을 언약의 서에 새겨넣도록 하지."
"…대체 본인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우리들이 한 말을 듣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익어버린 아스카.
"마, 마음같아서는 란코 너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일단 너희 둘이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 나, 나는 여기서 이만 빠지도록 하지."
간만에 좋은 대화를 나누던 우리들 사이로 치고들어와 작게 투덜거려 우리에게 항의하던 그녀는 이내 배려인지 핑계인지 모를 것이 섞인 말만을 남긴 채 잡을 새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해야 할 이야기… 그래, 있지. 해야 할 이야기가."
그렇게 자리를 비켜주는 아스카를 보며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중얼거리며 각오를 다진다.
"칸자키. 저번에 했던 약속, 아직 유효해?"
"영혼으로 결속된 만물의 고리는 풀어질 일이 없으리니, 그것은 만물을 구속하는 당연한 이치인 법."
"그러니까… 아직 유효하다는 거지?"
확신이 서지 않은 나의 물음에, 칸자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럼 언제가 좋을까? 다음 주 주말?"
내 쪽에서 먼저 약속 날짜를 제시하자, 칸자키는 자신의 스케줄을 생각하는 듯 무언가를 연신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여 내 말에 답해주었다.
칸자키에게는 지금 이렇게 나와 둘이서 있는 것만 해도 꽤나 마음이 불편할 테니 이렇게 나의 말에 답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이렇게 쉽게 약속을 받아들여주기까지 하다니.
…앞으로의 일들도 이렇게 잘 풀어갈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3 자, 그럼 이제 어떤 일이 생기려나?
아니면,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까나?
당일에 보자는 말을 이번에는 조금 알아듣기 쉽게 남기고 나서 떠나가는 칸자키.
약속은 마쳤으니,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준비뿐이겠지.
그런데 뭘 준비하면 되려나?
"…데이트 코스라도 생각해볼까?"
우선 아스카와 함께 준비해볼 만한 게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았지만, 여러 가지로 도움받을 것이 많다고 생각되기만 할 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던 모호한 단어들 중 하나가 구체화되어 튀어나온 중얼거림.
일단 아리사에게 알리기 전에, 아리사보다는 아스카가 칸자키가 좋아할만한 데이트 코스를 더 잘 알 수 있을 테니, 아스카와 함께 코스를 대강이라도 생각해두면 아리사도 그에 맞출 수 있을 테니 도움이 되겠지?
"프흣. 데이트 코스라니."
무의식적으로 칸자키와의 약속을 데이트 취급했던 것에 피식, 하고 웃으며, 아스카를 찾아 그녀가 사라졌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갔으려나?
일단 아스카의 방으로 가볼까?
+1~3(주사위, 평균 51이상일 경우 방에 있음.) 그런데 방에 있으려나? 아스카.
아스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생각으로 그녀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지만, 문이 열리기는커녕 내가 기다리는 사람의 기척은 간데없고 오로지 적막만이 나를 맞이하며 차디찬 바깥에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문을 두드리는데도 기척조차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방에 없다고 해야 할 텐데, 그녀의 방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면 아스카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고, 지금은 또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떻게 하지…"
찾아 나설 수밖에 없나.
+3 어디에 있으려나, 아스카.
이런 일은 빠르게 할수록 더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보내는 게 좋을 거야.
[어디 있어, 아스카? 방에 없던데.]
짧막한 문장을 송신하고, 그녀의 답장을 기다리며 자리를 떠난다.
[내 방으로 가던 도중 잠깐 다른 사람에게 불려서, 그녀의 방에 와 있었다. 미안하지만 어딘지 알려줄 테니, 이곳으로 와주지 않겠나?]
역시 아스카에게 먼저 연락해두는 것이 정답이었는지, 그녀를 찾으러 나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 휴대폰이 울리며 아스카에게서 온 답장을 화면에 비추었다.
"뭐, 가보는 편이 좋겠지?"
딱히 혼자서 할 것도 없으니까.
"어디 보자…"
+3 내가 갈 곳은 과연 누구의 방일까.
"왔나."
아스카가 알려준 방으로 가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낯익은 방주인과 함께 아스카가 나를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닛타 씨."
무언가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었는지 방 한가운데 아스카와 함께 마주앉아 있는 이 방의 주인이자 아스카를 이곳으로 데려온 장본인은 바로 오늘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인, 닛타 미나미.
그녀가 아스카를 왜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잠깐 궁금증이 들었지만, 오늘 그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자 그 답이 매우 쉽게 드러났다.
자신에게 속내를 조금이나마 털어놓았던 칸자키가 걱정되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나에게 질문하던 그녀였으니, 칸자키와 오랫동안 함께했던 아스카라면 자신의 의문을 해결해 줄 것 같아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 이야기를 나누었겠지.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만약 칸자키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죄책감에 무너져버리거나 칸자키가 그 날의 약속을 파기해버렸다면 아마 나는 여기서 이렇게 태연하게 아스카에게 말을 걸기는커녕 재빨리 도망쳐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칸자키와 이야기가 잘 풀려나가는 중이다. 칸자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좋은 답을 얻어내어 앞으로 칸자키와의 관계에 대해 기대를 걸어볼만한 작은 희망이 생겨나 있었다.
도망치고 싶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정말로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었다.
"뭐, 그냥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이른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우정을 쌓을 기회를 좇는 중이었다."
"그런데 카나하, 그 옷차림은 뭐야? 꽤 잘 어울리는데?"
"네?"
내 옷차림?
내가 입은 옷이 뭐가 어때… 서…
"…아!"
"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카나하."
"아으으으으으으… 이, 이게, 그, 그러니까아…"
아스카가 직접 골라준 옷을 입은 나에게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그녀 덕분에 내 마음은 뛸 듯이 기뻤지만, 하필이면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복장을 입은 채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듣게 되니 그 칭찬에 기뻐하는 내가 어쩐지 창피해져, 얼굴이 달아오르며 혀가 꼬이기 시작한다.
그, 그냥 도망쳐버릴까…?
+3 이렇게 창피한 와중에, 또 무슨 일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