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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댓은 "한 학생의 별 볼일 없는 일상"에서 이어지는 창댓입니다.
전 창댓을 보고 오지 않으셔도... 무방하지는 않겠네요.
이 창댓에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니, 오리지널 캐릭터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비밀 메시지같은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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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숨결이 내 뺨을 간질였다.
그 따스한 바람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그리고 장난스럽게 자고 있는 아스카와 입술을 맞대었다.
아스카와의 첫 키스처럼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아직 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더 장난쳐도 될까.
나는 한번 더 입술을 맞대었다.
방금 전보다 길게, 혹시라도 아스카가 깨어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머리를 녹이며.
잠자는 연인의 입술을 훔친다는 배덕감이,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만큼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장난을 시작할 때 긴장감에 두근거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단순한 긴장감인지, 아니면 단순히 흥분해서인지 알 수조차 없게 되었다.
위험해.
멈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하지만 장난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그래, 장난이라면 여기서 끝내는게 맞지. 하지만…
…장난이, 아니라면.
나는 다시 아스카에게 키스했다.
조금, 벌려본 입을 통해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들어온다.
그 숨결이 내 혀를 간질인다.
…참을 수 없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혀를, 마음을, 유린하고 싶어.
두 눈을 감은 채 배덕감을 먹고 자라난 욕망에 몸을 맡겨, 혀를 움직인다.
이렇게 조금 움직인 것 만으로도, 그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어.
하지만 더, 더 느끼고 싶어.
쉽게 해소되지 않는 욕망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떠버렸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순진한 얼굴을 한 채 잠들어 감긴 두 눈이 아닌, 두 쌍의 자줏빛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 너머로, 나의 놀란 눈동자가 비친다.
나는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아스카는 재빠르게 나를 끌어안고 옴짝달싹 못하는 나를 유린하듯 탐하기 시작했다.
아스카와 나의 혀가 뒤섞였다.
순식간에 세상이 뒤집어졌다.
아니, 뒤집어진 것은 나였다.
잠시 키스를 멈추고 나를 옆으로 밀치듯 눕혀 그 위에 올라탄 아스카의 눈이 잔혹한 미소를 띈 채 나를 바라보았다.
"공주를 깨우는 방법이 조금 과격한 거 아닌가? 서투른 왕자님."
"아, 아스카…"
"후훗, 무서워하지 마라. 널 애태운 주제에 먼저 잠들어버린 내 잘못도 있으니. 너의 존재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는데, 너의 방에서 너의 옷까지 입고 있으니 나른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방심했군."
아스카는 다 잡은 사냥감을 유린하는 고양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한 손으로 내 옆구리를 간질이듯 쓸어내렸다.
"…물론 이건 변명일 뿐이지. 그러니 괜찮다. 오늘 밤은 너만의 공주님이 되어줄테니. 하지만 조심하도록. 만약 왕자님이 공주보다 먼저 잠들어 버린다면, 공주와 왕자의 역할이 바뀔 테니까."
옆구리를 간질이던 손이 다시 움직여 내 손을 깍지끼듯 붙잡았다.
"그리고 난, 아마 폭군이 될 거다."
아스카와 맞잡은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3 (주사위) …난 오늘 밤을, 그녀 앞에서 왕자님으로 지새울 수 있을까.
1~84 - 실패
85~100 - 성공
"으으응…"
아침… 인가?
그런데 왜 알람이…
아, 맞아. 오늘 주말이었지…
아직 깬지 얼마 되지 않아 비몽사몽한 머리로 처음 생각한 것은,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해야겠다는 것.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집으려고 눈을 뜨자, 바로 눈 앞에 아스카의 자는 얼굴이 보였다.
아, 아스카가 왜 여기…!
…어제 우리 집에서 자고 갔구나.
어렴풋이, 어젯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아?"
…이, 이런 거 기억하고 싶지 않아!
"흐아아아아아아으…"
+3 다, 다른 일, 다른 일에 신경 쓰면 될 거야.
이제 뭘 하지?
그것과 동시에 꽤나 흐트러져있는 자신의 옷을 발견. 어버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신음을 토해내기 위해 벌린 입술 사이에서 느껴진 끈적함이, 밤중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세수라도 해야겠어.
자괴감이 더 커지기 전에, 이 감촉을 잠결과 함께 물에 흘려보내자.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뒤척이는 순간, 눈 앞에서 자고 있는 소녀의 팔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깨를 지나 등을 감싼 아스카의 팔부터 시작해서 그녀와 맞닿은 곳의 신경 하나하나가 모두 깨어나 선명한 자극을 보내오기 시작한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짝 달라붙은 채 잠든 아스카의 심장 박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이불에 덮여진 우리 둘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고, 가깝게.
"아, 아우으아아아아…"
물에 흘려보내려던 수마가 절로 날아가버릴 정도의 상황에, 나는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아스카를 쳐다보았던 눈이 다른 쪽을 향한다.
자꾸만 그녀의 모습이 이불 속을, 그 아래에 숨겨진 우리들의 모습을 연상시켜 도저히 그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애써 상황을 외면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려보지만 흐트러진 채 머리맡에 던져져 있는 옷들이 그런 사소한 저항 따위 소용 없다는 듯 내 시야에 들어와 나를 놀릴 뿐.
나는 내 방에서조차 도망칠 수 없었다.
+3 이, 이제 이런 부, 부끄러운 상황은 싫어…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해?
14살이랑 무슨..!(이제 와서)
당황해하고 있는 카나하를 보고 살짝 놀릴까 하지만 중급편을 한 뒤에 그런건 조금 심한가 싶어 진정시킨다.
일단 다행히 아직 어머님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는데...
문에 노크소리가 들린다.
물론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부끄럽다고 해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의 뒤에 있는 것은 사랑. 그 시간은 서로의 사랑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상대를 보며 쌓아갔던,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을 쓰러뜨려 이성의 강을 가로질러 두 마음 사이에 다리를 만들고, 그 다리를 건너 사랑을 나누었다.
해소되는 것은 욕망. 쌓이는 것은 귓가에 맺혀가는 달콤한 사랑의 말들.
정신없이 서로를 탐했던 그 때가 과연 싫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단지 이번에도 아스카에게 져버렸다는 사실이,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지배당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하아…"
안겨 있어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같이 끌어안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해소하면 되겠지.
나는 아스카에게 조금 더 바싹 붙으며 그녀에게 팔을 둘렀다.
내 팔이 그녀의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에 닿자, 마치 끌려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부드럽고 따스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무언가에 묻혀들어가는 느낌에 빠져 몽롱하게 녹아버린 내 머릿속에서, 부끄러움도 한데 녹아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으음…"
내 딴에는 약하게 끌어안았지만, 자는 사람에게는 너무 센 자극이었던 걸까.
아스카가 일어났다.
아스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나는 그녀를 감싼 팔을 천천히 풀어주었다.
부스스 일어난 아스카가 몸을 완전히 일으켜 앉자,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내가 뭘 생각하는 거야.
"잘 잤나? '공주님'."
일어나자마자 날 놀리며 웃는 아스카를 보자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
어젯밤의 일을 한 마디로 압축한 그 '공주님'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뜻이 너무 분해서, 그리고 그 말로 나를 놀리는 아스카가 밉고 또 당황스러워서, 거의 울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한쪽 팔로 그녀를 살짝 밀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이 전해지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한 행동과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전해졌던 것인지 아스카는 곧장 나에게 사과해오기 시작했다.
"아, 싫었나? 미안하다. 장난으로 꺼내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말이었겠군."
당황한 웃음과 함께 아스카가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었지만, 한 번 타기 시작한 불꽃은 그런 작은 행동으론 잠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붙어 커져버린 감정의 불꽂이 남긴 자국이 또 다른 내가 되어, 나에게 그녀를 덮치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당해온걸 복수할 겸, 어차피 선도 넘었으니 정말로 덮쳐버릴까.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저지른다고 해도 여긴 우리 집인데, 다른 사람이 알겠냐고.
오직 아스카와 나 뿐인데, 그 누가…
똑, 똑, 똑.
"아직 자니?"
아차.
+3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하는 것이 좋을까.
음… 말해두지만, 전 변태가 아닙니다.
아니, 정말로요.
까짓거 한번 해보죠.
그 사이에 엄마가 들어온다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어젯밤의 일로 과포화되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는 머릿속으로 밀어닥치는 압박.
넘쳐흐른 생각들이 이리저리 뒤섞이며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불협화음, 노이즈, 머릿속의 백색소음이 차근차근 내가 정립한 세계를 지워나간다.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니, 오히려 편안한 기분.
아, 그렇지.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있다면 숨기면 그만이잖아.
"카나하? 잠깐, 뭐 하려는―"
나는 아스카를 반강제로 옷장 앞으로 끌고 가서 옷장의 문을 열고 그녀를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한 뒤, 나도 그녀를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나무 냄새가 가득한 상자 하나로 우리들의 세상이 좁혀졌다.
살갛에 닿인 옷들이 나를 간지럽힌다.
한 점의 빛조차 새어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옷장 속.
그곳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상대방의 숨소리뿐.
"응? 얘가 어딜 갔지? 또 새벽에 산책 나갔나?"
그렇게 우리는 아늑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둘만의 비밀스러운 정적을 만끽했다.
+3 이제 어떻게 할까.
고비를 넘겼음을 알리는 그 소리에 온 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서로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한 채 이런 어두운 밀실로 끌고 오다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에게 속삭이는 아스카.
안심해서 늘어졌던 몸에 새로운 자극이 전해졌다.
마치 온 몸이 고장난 신호를 보내오는 것만 같다.
"어제 그렇게나 열기를 나누고서도 부족했던 건가?"
"그, 그런 소리 할 때야?"
이번에는 아냐.
정말, 정말로 아냐, 아스카.
"…아무튼 지금은 안 돼."
꼬르륵.
서로가 말을 멈추고 숨소리만 들려오던 옷장 속에서 울리는 꼬르륵, 하는 소리.
"…아."
"푸흡."
소리의 진원지는, 방금까지만 해도 나를 실컷 놀려대던 아스카.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작게 터져나왔다.
"우, 웃지 마라."
"알았어, 알았어. 아침이나 먹으러 갈까?"
창문을 넘어서 나가야겠지만.
+3 자, 이 다음에는 어떤 상황이.
옷을 거의 다 입고 나서 슬쩍, 괜히 아스카를 힐끔거린다.
무언가 기대한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한 행동.
어쩌면 부끄러워서 눈에 담지 못했던 아스카의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뒷모습에 가슴이 떨린 것은, 그 증거였을까.
아니면 아스카가 옷장 속에서 했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지.
나, 정말 부족했던 걸지도.
나는 아스카가 옷을 다 입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창문을 열였다.
겨울이 다가와 서늘해진 아침 공기가 방 안으로 흘러들어와 내 안에 머물던 상념을 전부 날려버렸다.
"갈까? 새로운 방식으로, 저 세계를 향해."
나는 장난스레 아스카를 흉내냈다.
다소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아스카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한 행동.
하지만 아스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나서 어서 나가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창문을 타넘었다.
바깥은 생각보다 추웠다.
분명 기온상으로는 어제도 이 정도로 추웠지만, 옷을 대충 집히는대로 입었기 때문인지 더 춥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런 점 때문에 빠르게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우리는 행여나 옆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운 나머지 조심스럽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아스카가 묘하게 조용하다.
마치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아침의 정적에 불안감이 들어 다급히 뒤를 살펴본다.
다행히도 아스카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아스카가 갑자기 사라져버릴 리가 없잖아.
"아까부터 말이 좀 없던데, 괜찮아?"
"…괜찮다."
아스카는 짧게 대답하며 코를 훌쩍였다.
많이 추운 모양이네.
나는 추워서 코까지 훌쩍이는 아스카를 생각해 조금 더 속도를 내어 문 앞에 다다라, 문을 열고 아스카를 먼저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가 문을 닫으며, 들으라는 듯이 조금 큰 목소리로 태연하게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밖에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배려심없는 추위는 그 짦은 틈을 타 허술하게 입은 옷 속으로 매섭게 파고들어 우리를 벌써 반쯤 얼려 놓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집 안에 들어가자, 추위를 털어내려는 것처럼 온 몸이 떨렸다.
지금이 이 정도인데 나중에는 또 얼마나 추워지는 걸까.
아무튼 지금은 지금, 나중은 나중.
나중에 겪을 매서운 한파보다는 지금 이 순간 따뜻한 집 안에서 추위로부터 보호받으며 한 끼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디 갔다 왔어?"
"산책."
예정된 거짓말을 흘린다.
"요즘 날도 추워지는데 뭔 산책이니. 네가 아이돌 일 때문에 체력을 기른다고 하니까 말리지는 않겠지만 따뜻하게 입고 가야지."
엄마는 그 거짓말을 믿고 나를 걱정해주었다.
그 말이 어제 아스카에게서 들은 말과 겹쳐 들렸다.
"그런 것보다아~ 나 배고픈데 오늘 아침은 뭐야?"
나는 원래 느꼈을 것보다 더 심한 죄책감을 받고서, 그것을 웃음과 애교로 애써 가리며 말했다.
+3 자, 엄마. 사랑하는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는 오늘 아침 식사로 뭘 준비했어?
원래는 이 뒷부분도 써야 하지만, 제 사정으로 인해 일단 여기서 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안 넣더니...?
된장국을 보자마자 어제 터트려… 버린 그 된장국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이번 아침에 그나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된장국에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다는 것 정도.
평소에는 안 넣더니, 역시 엄마도 아스카를 의식한 걸까.
"어때? 입에 맞아?"
"…글쎄."
질문을 던지며 아스카를 바라본다.
요란했던 뱃고동과는 정 반대로, 아스카는 기운 없이 밥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식사가 입에 맞지 않나 걱정되어 그녀를 살펴보았다.
아스카의 얼굴이, 묘하게 붉었다.
"오늘은 입맛이 영 없군."
감기, 걸린 걸까?
그러고보니 어제 나랑 프로듀서가 먼저 돌아갔던 일 때문에 우릴 찾아다녔다고 했지.
거기에 우릴 기다릴 때도 밖에서 기다렸다면…
+3 다음 상황.
어 뭐야 앵커네
혹시 감기기운 있냐고 어머니가 물어보는 걸로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보니 몸이 조금 춥긴 하지만…"
나는 황급히 아스카의 이마에 손을 짚어보았다.
감기 환자 특유의 미열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이마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가 그 기분 나쁜 열로 가득 차올라 있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추운 곳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다니.
난 정말 뭐하는 거야.
"어제부터 피곤하더라니, 그것도 감기 때문이었나…"
아스카의 말에 어제 있었던 일이 곧바로 떠올랐다.
내 방에 오자마자 나에게 기대어 자던 아스카.
그것마저 감기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하니 알아채지 못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열에 들뜬 분위기에 알아야 할 열기를 지나쳐버리다니.
"미안. 내가 같이 산책나가자고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미안한 마음을 담아, 돌려 말하는 것으로 사과를 건넨다.
"…몰랐잖나. 그리고 나도 내가 좋아서 나갔던 거다."
바로 그게, 몰랐다는 사실이 미안한 거야, 아스카.
…아무래도 난 정말로 좋은 짝은 아닌 것 같아.
+3 이제… 어떻게 하지?
이건 물리적으로 힘들텐데...정신적으로도 이미 먹히는 쪽이 되어버린거야 카나하
엄마가 말했다.
나도 그 의견에 찬성이다.
별 볼일 없는 감기라고 해도 아이돌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게 뻔하다.
또 언제 심해질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빠르게 잡아놓을수록 더 좋겠지.
"여보. 차 준비해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
"밥은, 다 먹고 가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아스카는 지금 당장 병원에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설마 자기 때문에 아침 식사가 방해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런 거라면, 부담감을 느끼게 했다면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한데.
"지금도 입맛 없어서 깨작거리잖아. 우선 다녀오고 나서 마저 먹는 것도 좋지 않겠어?"
"그래. 네가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이 아주머니가 입맛 도는 식사를 차려놓을 테니까. 물론 아스카 네가 원한다면 먹고 나서 다녀와도 된단다."
"응. 그래도 되고. 어떻게 할래, 아스카?"
아스카는 잠시 말이 없었다.
+3 아스카는 어떤 대답을 할까.
라는 발판
아스카의 검진이 끝나고 약을 받아 집에 돌아오자, 무언가가 보글거리며 끓는 소리와 함께 낯익은 냄새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작년까지의 기억에 자취를 남긴 익숙한 냄새.
내가 감기에 걸릴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죽의 냄새였다.
옛날 생각 나네.
"죽 끓이는 중이야?"
내가 감기에 걸릴 때마다 엄마가 매번 끓여주었던 익숙한 음식.
아스카가 그 죽을 먹게 되면 우리끼리 서로 공유할 추억이 하나 더 생기는 걸까.
"그래. 우동도 좋지만, 역시 이 편이 나을 것 같아서. 힘들 텐데 아스카는 카나하 방에 가서 쉬고 있으렴. 카나하는 엄마좀 도와주고."
"응."
내가 가지고 있던 추억들, 이번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만들어줄 차례인가보네.
힘내볼까.
"많이 기다렸어?"
나는 완성된 죽을 작은 상에 받쳐들고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서 침대에 앉아 이불을 두르고 쉬고 있던 아스카 앞에 가져온 상을 내려놓으며 그녀의 곁에 앉았다.
"아니. 적절한 때에 잘 와주었다. 좋은 냄새가 나는군."
"그렇지? 맛도 보장할 수 있어. 나도 감기에 걸리면 엄마가 이 죽을 만들어주곤 했거든."
"그렇다면 더욱 흥미가 가는데."
아스카가 숟가락을 드는 순간, 나는 그녀의 손에서 그것을 채갔다.
"…무슨 짓이지? 환자의 식사를 방해하다니."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아스카.
하지만 이 쪽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고.
"아스카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먹여줄 테니까."
모처럼 간병인이 됐는데 환자를 최대한 편하게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나 혼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만."
"네 입으로 말했잖아? '환자'라고."
"그렇지만 아직 감기가 그렇게 심하지는… 아니, 됐다. 마음대로 해 봐라."
쓸모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스카는 말을 끊고 순순히 항복했다.
어쩐지 내가 또 져버린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게 큰 상관이 있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건 결과라고, 결과.
자, 죽 한 숟가락을 후~ 하고 불어서…
"자, 아~ 해봐."
"아…"
나는 아스카의 입에 죽을 넣어주었다.
다행히도 충분히 식었는지 뜨거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기새처럼 음식을 받아먹고 우물거리는 아스카.
바로 옆에 앉아서 바라본 그 모습은, 심히 귀여웠다.
뭔지 모를 정복감까지…
아냐, 이건 아냐.
정복감이라니, 말도 안 되지.
환자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3 다, 다음은 어떤 행동으로 언니다운 모습을 보여줄까.
…언니다운 모습. 후훗.
우리들은 그 편안한 아침의 분위기에 취해 그릇을 조금씩 비워갔다.
그릇이 바닥을 보이고 나서, 나는 미리 가져온 물과 약을 그녀에게 건넸다.
"맛있었어?"
대답이 없는 아스카.
혹시나 입에 맞지도 않는데 나 때문에 억지로 먹었던게 아닐까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맛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막혔던 것이 해소되는 기분과 함께 잔잔한 기쁨이 느껴졌다.
"물론 그 때도 네가 나에게 먹여주는 거겠지? 카나하."
"어, 어?"
"지금처럼 나를 간병해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평상시의 애정 표현으로써, 먹여주겠지?"
비, 비겁하게 내가 진지하게 물어보고 있을 때 치고 들어오다니.
"…생각해볼게."
"푸흣."
맨날 그렇게 놀려대고.
치사해.
다음에도 정말로 먹여주고 말 테다.
싫다고 해도 억지로 먹일 거야.
소금 팍팍 넣어서.
흥.
"……."
감기 기운 때문일까.
평상시라면 계속 나와 이야기했을 상황임에도 아스카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몸이 아픈 그녀가 걱정되어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는 힘들다기보단 살짝 나른해보였다.
좋아, 그럼.
언니 노릇좀 더 해볼까.
나는 아스카를 눕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그녀가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이불을 토닥거리며 자장가를 불러주자.
원래 감기에 걸렸을 때는 푹 자는게 좋으니까.
"카나하. 난 아직 그렇게 졸립지 않다만."
아직 자고 싶지 않은지, 그녀가 항의를 보내왔다.
하지만 아픈 사람은 칭얼거리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푹 자. 빨리 나아야지."
"…좋아. 하지만 자기 전에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아스카가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뭔데?"
"너 때문에 어젯밤부터 땀을 좀 많이 흘렸는데 아직 샤워도 못 해서 말이지."
한순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오늘 아침과 같은 부끄러움은 없었지만 그 일의 파괴력은 아직 대단했다.
그, 그러고보니 우리 아직 씻지도 못 했구나.
자, 잠깐만. 아스카는 왜 이런 말을 한 거지?
나한테 뭘 요구하려는 거야, 아스카?
"땀, 닦아주지 않겠어? 물론 이 일은 병자를 돌보는 사람이 으레 하는 일. 현실의 통념에 비추어봐도, 네가 자처한 역할에 비추어봐도 난 이걸 요구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어, 어, 응? 어? 다, 닦아달라고?"
"왜 그렇게 말을 더듬거리는지 모르겠군."
그녀가 키득거린다.
+3 …어떻게 할까.
아스카의 몸을보자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서 카나하는 더 붉어지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물을 이렇게 짜서…"
나는 물을 힘껏 짜낸 다음, 젖은 수건으로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날 것만 같은 가녀린 팔을 조심스럽게 닦아주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보아 눈에 익은 매끄러운 피부를 쓸어내리듯 닦아내린다.
정말로, 위험한 감촉이다.
팔 다음은 등.
살짝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그녀의 등을 보자 어젯밤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스카가 등을 보이고 앉아있어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생각같아서는 눈을 감고 싶지만, 그래서는 제대로 닦아줄 수가 없으니 문제네.
"간지러워?"
부끄러움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던진 말 한 마디.
"아니. 꽤 좋다. 다음에 또다시 간병해달라고 부탁해야겠는걸."
"맡겨만 줘."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다시 수건을 짜는 물소리가 나른한 아침을 채워갔다.
+3 이제 어떤 일을 할까. 아니면, 어떤 상황이 생길까.
한번만 더 당기면 뭔가 일어날 것 같다
수건 너머로 전해지는 그 떨림을 만끽하며, 나는 어깻죽지부터 시작해 그녀의 등을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내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눈에 보일 듯한 체취에 갇혀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의 등에 자리잡은 보기 좋은 굴곡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고픈 충동이 들었다.
나는 그 충동을 최대한 억누르며 자세를 고정하기 위해 남은 손을 아스카의 등허리에 가져다댔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으며 열이 올라 뜨거워진 그녀의 몸이 느껴졌다.
"…하읏."
내 손이 차가워서였을까.
아스카가 신음을 흘렸다.
슬쩍, 가까이 닿은 손을 중심으로 머리까지 퍼져가는 충동이 나를 조금 더 앞으로 이끌었다.
급격하게 가까워진 우리 둘.
그 사이에 있던 공기가 압축되며 미묘한 분위기가 더욱 커져간다.
내 숨결이 아스카의 뒷목을 간지럽힐 때마다 그녀의 몸이 눈에 보일 만큼 떨렸다.
불안정하게 떨고 있어 나약하게 느껴지는,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운 나의 연인.
지금껏 당해왔던 사랑을 돌려주고픈 충동이 내 머릿속에 한가득.
저 흰 살갗에, 조그만 자국을…
"콜록… 콜록! 후우… 하…"
갑자기 크게 기침을 내뱉는 아스카.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나는 이성의 끈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아픈 애한테 몹쓸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정말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껴줄 줄도 알아야 하잖아.
나는 다시 뒤로 물러나 그녀의 등을 마저 닦아주었다.
+3 …이 다음에는 무엇을, 어떤 일이.
그저 얌전히 몸을 닦고, 아스카가 잘때까지 가만히 옆에 있어주었을 뿐.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힐끔거렸던 것만 제외하면.
얌전히 내게 몸을 맡기는 아스카를 정성스럽게 닦아주고나서 옷을 입힌다.
커다란 인형을 다루는 것 같은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든다.
"…피곤하군."
그렇게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서, 아스카는 자리에 누워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는 편안한 침묵 속에서 그녀가 잠의 세계로 떠나는 것을 배웅했다.
좋은 꿈 꿔, 아스카.
+3 다음 상황.
자고 있을때는 영락없는 14세인데... 살짝 속으로 불평하다가 프로듀서의 안부 전화가 온다.
이렇게 자고 있을 떄는 영락없는 열 네살 여자아이처럼 보이는데, 왜 평소에는 그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정말, 나도 네가 의지되는 만큼 너에게 의지가 되고 싶단 말이야.
그럼, 아스카의 몸 상태에 대해서 전해야 하니까 슬슬 프로듀서한테 연락을…
"응?"
하려던 찰나, 내 휴대폰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혹시나 다른 사람한테서 전화가 걸려올까봐 매너모드로 해 놨는데, 역시 좋은 선택이었네.
누가 전화한거지?
"프로듀서? …뭐, 마침 잘 됐나. 여보세요?"
[어, 카나하. 요즘 날씨가 추워졌는데 잘 지내고 있어?]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아스카는 괜찮아?]
내 말에 섞인 미묘한 암시를 금세 눈치채고 그 말에 대해 물어오는 프로듀서.
이럴 때는 정말 대단한 사람 같지만, 어제같은 실수를 하는 허당이라는 점이 참 미스매치란 말이야.
"그게, 어제 추운 곳에 오래 있었는지 감기에 걸려서요. 지금 제 침대에서 약먹고 자고 있어요."
[그러냐…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네. 빨리 나아야 하는데 말이죠."
감기 때문에 일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니까.
"참, 그건 그렇고 저한테 왔던 그 편지 아직 가지고 계세요?"
[어. 가지고 있는데 왜? 읽어보려고?]
"네."
[알았어. 다음에 줄게. 다른 용건은?]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프로듀서인데 왜 나한테 용건을 묻는 걸까.
"다른 용건이라면…"
+1~3 다른 용건이랄게 있나?
1. 딱히 없다.
2. 하나 있다.
약간 캥기니까 2번으로
[아, 그거? 그거라면 이미 처리했지.]
"네?"
아직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처리했다니.
프로듀서가 빠른 걸까, 아니면 내가 느린 걸까.
어느 쪽이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좀 이상하네.
[넌 모르겠지만 난 네 일 때문에 네 부모님이나 학교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때로는 직접 만나고 있다고.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내가 모를 리가 있겠어? 당연히 오래 전에 직접 처리했지. 그게 언제적 일인데 지금 이야기하는 거야, 카나하.]
"죄송해요…"
그렇지. 역시 지금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말이었지.
[널 혼내려고 한 말이 아니라, 다음부터는 일찍 말해 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한 말이야.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내 주눅든 목소리를 듣자 당황하며 나를 달래는 프로듀서.
"네. 다음부터 그렇게 할게요."
그 상냥함에 울적한 기분은 사라졌지만, 작은 후회가 여전히 남아 내 목소리 속에 잔류하고 있었다.
[학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카나하 네 학교생활은 어때? 힘들지는 않아? 그 때 그 녀석이 널 괴롭히지는 않고?]
그 후회심을 알아차린 것인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끝났기 때문인지 프로듀서는 재빠르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예전이라면 그 걱정 섞인 주제가 엄청나게 불편했겠지만, 그 때 카페에서 츠가를 대면하고 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다른 애들이 저를 구경거리 보듯 쳐다보기는 하지만, 요즘은 그것만 빼면 평범한 여학생처럼 지내고 있어요. 괴롭힘도 없고요."
오히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좋아. 그렇다면 다행이네. 지금 이야기를 꺼내기엔 조금 미묘한 타이밍일지도 모르지만, 아스카네 학교에 퍼졌던 네 이야기도 꽤 수그러진 모양이야. 뭐, 그 일의 당사자인 아스카 본인이 앞장서서 너를 변호해줬으니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아스카… 가요?"
프로듀서가 다시 끄집어낸, 여전히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예전의 일.
하지만 그 때의 안 좋은 기억에 빠질 새도 없이 이어지는 프로듀서의 이야기가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생각하기도 싫어서 피하고 있었던 일.
아스카라면 내가 저지른 그 일과 그렇게 큰 상관은 없었으니까 침묵으로 편히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스카에게도 불쾌한 이야기일 텐데.
그런데도 아스카는 그 일의 진원지 속에서 나를 변호해주었다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눈 앞이 흐려졌다.
옆에 누운 아스카를 바라보던 내 물기 어린 눈에서 나의 마음이 방울져 맺혀 그녀의 곁에 떨어졌다.
정말 나에게는 과분한 연인이다.
[듣고 있어?]
"네. 당연하죠."
[카나하, 너…]
그런 마음을 어떻게 남한테 숨길 수 있을까.
[…아냐. 됐다. 더 할 이야기 없지?]
"…네."
[알았어. 다음에 보자. 주말 잘 보내고.]
"네. 다음에 봐요, 프로듀서."
통화가 끊기고 나서, 아스카의 손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을 깨고 들려오는 벨소리.
내 휴대폰이었다면 진동이 울렸을 텐데?
벨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린 곳에 위치한 물건은 바로 아스카가 벗어둔 상의.
그곳에서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경우에 따라선 전화를 건 사람에게 아스카의 몸상태를 알려주기 위해 아스카의 휴대폰을 꺼내 누구한테서 전화가 왔는지 확인했다.
조금 어려운 말 뒤에 이해자라는 말이 붙어있으니까, 아마도 칸자키한테서 전화가 온 모양이네.
+1~3 어떻게 하지? 받아야 하나?
1. 받아야겠지. 아스카의 친구한테는 아스카의 몸상태를 알려줘야 하잖아.
2. 그래도 조금 꺼림칙한데, 받지 말까?
1번
나보다도 아스카와 오래 지내온 친구인데, 친구가 아프다는 사실을 숨길 이유는 없지.
"여보세요?"
[…뭐지? 이 몸의 공간을 찢어내는 비술이 향해야 할 곳은 나의 동포였을 터. 그런데 어째서 네가 응답하는 거지?]
"그게, 아스카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감기 때문에 쉬고 있거든."
[다시 말해보아라. 뭐라고?]
살짝 격앙된 목소리.
아스카가 걱정된 걸까.
"어제 아스카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지금은 감기 때문에 쉬고 있어. 지금 자는 중이라 전화를 못 받아서 내가 대신 받은 거야."
나는 다시 한 번 칸자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설명해주었다.
"…여보세요?"
이상하게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구나.' 같은 단순한 수긍의 말조차 나오지 않는 침묵.
칸자키는 왜 대답이 없는 걸까.
계속 이러면 불편한데.
+3 칸자키가 침묵 끝에 꺼낼 말
"알았어.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해도 돼. 내가 전해줄 테니까."
[너에게 다른 용건 따위는 없다. 우리 둘 사이의 공명에 끼어들 생각 마라.]
칸자키는 내 말에 틱틱대며 대답했다.
예전부터 나한테 이상할 정도로 틱틱댔단 말이지, 칸자키는.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칸자키는 아직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어째서 그녀가 부정한 성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는 지식이 닿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녀에게 이상이 생긴다면 칠흑의 진노가 네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튼 수작 하지 말라고 들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칸자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할 이유는 없으니까 잘 보살피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는 걸까…?
"응. 빨리 낫도록 최선을 다해서 간병할게."
[…부탁하지.]
석연치 않은 분위기로 흘러가는 대화였지만, 나는 아스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하나만은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 진심이 칸자키에게도 전해진 것인지, 내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날이 서있던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진 것처럼 들렸다.
역시 칸자키도 아스카가 걱정되어서 날카로워졌던 거겠지.
침대 쪽으로 눈을 돌려, 젖은 수건 덕에 열이 내려갔는지 편안하게 자고 있는 소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최선을 다해 간병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고는 했지만.
칸자키와 대화 중이라 그런 것일까.
감기 기운으로 얼굴에 홍조가 올라온 채 자고 있는 아스카의 얼굴이,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귀엽게 느껴졌다.
정말 자랑하고 싶을 정도의 귀여움이다.
아니, 오히려 이 귀여움을 혼자만 독점하는 게 더 나쁜 짓이 아닐까.
갑작스럽게 흥분하기 시작한 내 머리가 입을 멋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저, 저기 칸자키, 아스카가 자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하?]
또 다시 날카로워진 칸자키의 목소리가 내 흥분을 식혔다.
+3 내, 내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그리고 그녀의 대답은...?
"저, 정말?"
다행스럽게도 칸자키는 별 말 없이 아스카의 사진을 요구했다.
서로 친한 친구니까 자는 모습을 보낸다고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잘 됐으면 잘 된거지 뭐.
"알았어. 금방 보내줄게."
[알겠다. 기다리지.]
나는 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고 아스카의 순진한 얼굴을 그곳에 담았다.
셔터음에 아스카가 잠을 깰 것 같아 스피커 부분을 눌러 소리를 최대한 줄였지만, 그래도 셔터음은 날카로웠다.
아스카의 동정을 살피며 칸자키에게 사진을 발송.
미안해, 아스카. 하지만 좋은건 서로 나눠야지.
"좋아. 보냈어. 전화 끊고 나서 확인해봐."
[알았다. …소중한 순간을 잡아 영원으로 늘이는 일이란 직접 그 자리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만큼, 이번 일에 대해서는 너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군.]
아직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누그러졌네.
…어쩐지 아스카의 사진을 뇌물로 바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찜찜한데.
+3 자, 이제 어떤 일이.
나는 칸자키가 전화를 끊고 아스카의 사진을 확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왔다.
[성소에 침입하는 우를 저지르는 행위는 금단의 죄. 허나 그러한 죄에도 칠흑의 빛일지언정 죄인의 앞길을 비추어주는 빛이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드높은 좌를 차지한 자라고 해도 이렇게 운명의 흐름을 벗어날대로 벗어난 일은 예지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법. 그러니 나에게 고하라. 어떻게 된 일이지?]
솔직히 당황스럽다.
보통 아스카가 내 집에 놀러왔을게 뻔히 보이는 이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고 캐물어올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지.
친구끼리 서로의 집에 놀러가는 일은 자주 있으니까.
"설명할 것도 딱히 없어. 어제 잡지 촬영이 끝나고 나서 아스카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었거든."
[너, 너와 아스카가 한 집에서 같이 잤다고!?]
정말로 당황했는지 평소의 잔뜩 멋부린 말투를 잃어버린 채 터져나온 칸자키의 외침.
[그, 그런 상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어째서?
그,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알린 것도 아니고 단순히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고 했을 뿐이잖아.
친구 사이에 자주 있는 일이잖아? 그런데 왜?
너는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하긴.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칸자키.
내가 아스카에게 접근한 것부터 우리 둘이서 유닛을 짜고 네가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갑자기 친구 사이에 끼어들어와 서로를 떨어뜨린 원인이 나라고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됐는걸."
혹시 그런 생각 때문에 아스카 옆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있지만 내 병 때문에 봐주고 있는 거라면… 정말로 슬플 것 같아.
+2~3 …이제 우리들은 어떤 대화를 할까.
라고 란코가 말하지만 카나하는 갑자기 왜 란코가 텐션이 내려갔는지 눈치 못챈다.
란코: 큭, 그 말은 인정토록 하마, 그렇다면 어디까지 친우로서 접하였다는 말인가?
카나하: (뜨끔)무무무물론이지!
어째서인지, 칸자키의 텐션이 정말 급작스럽게 내려갔다.
아스카가 내 집에 놀러온게 얼마나 아쉬웠으면 이렇게까지 힘빠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
"친구끼리인데 그럴 수도 있지."
[큭. 그 말은 인정토록 하마. 헌데, 그 말은 어디까지나 친우로서 접하였다는 말인가?]
"무, 무, 무, 물론이지!"
카, 칸자키 얘 설마 우리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아니지. 속단은 금물이야. 그냥 한번 찔러 봤을 수도 있어.
"치, 친구가 집에 놀러왔을 뿐인데 다, 당연히 친구로서 대하지!"
[…수상하구나. 진실을 고하라, 게헨나의 존재여!]
"네 질문 때문에 놀라서 그런 거거든?!"
거, 거짓말은 아니니까.
+2 이제 우리들은 또 무엇을…
단순히 넘겨짚은것 뿐인데 카나하는 그 미끼를 덮썩 물어버리고...
아스카가 자는사람 옆에서 뭐하냐면서 일어난다.
"어? 그, 그건 그렇긴 하지만 딱히 흑심은…!"
아차.
급하게 변명하던 중 흘려버린 사소한 말실수.
사귄다거나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으니 치명적인 말실수까진 아닐 것 같지만, 문제는 칸자키가 이 말실수를 어떻게 생각할 거냐는 거지.
"아, 아니, 내 말은 그런게 아니라…!"
"…카나하."
이불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비몽사몽한 목소리.
설상가상으로, 아스카까지 일어나버렸다.
이런. 아스카는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아스카가 일어나버렸다간…
"자는 사람 옆에서 시끄럽게 뭘 하는… 그거, 내 휴대폰 아니던가?"
…그렇지. 역시 이렇게 되겠지.
생각같아서는 비몽사몽한 아스카와 다정하게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지만, 상황이 썩 좋지 않네.
이제 정말로 이 상황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
지금 이 상황에서 아스카와 칸자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대체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아으, 정말. 왜 하필 지금 일어난 거야.
+3 어, 어쩌지? 어째야 할까?
이걸로 1, 2부 합쳐서 4000댓글.
카나하와 칸자키 양의 경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병이나 그런 사항을 미리 말해두었기 때문에 스토리상 앵커 수행이 원활하지 않기도 하고 이 늦은 시간에 재앵커를 걸기는 조금 그래서 내용을 살짝 변경하여 반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4000댓글 축하합니다!
겸사겸사 발판도 놓고 갑니다
금방 상황을 파악한 아스카는 일단 납득갈만한 이유를 대며 란코를 이해시키려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