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진행중
댓글: 4215 / 조회: 17693 / 추천: 32
일반 프로듀서
관련 링크가 없습니다.
글 진행은 반드시 댓글로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창댓은 "한 학생의 별 볼일 없는 일상"에서 이어지는 창댓입니다.
전 창댓을 보고 오지 않으셔도... 무방하지는 않겠네요.
이 창댓에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니, 오리지널 캐릭터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비밀 메시지같은 건 없어요.
총 3,107건의 게시물이 등록 됨.
421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미리 챙겨놓았던 여분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카만 어둠이 나를 반겨주었다.
처음 오는 낯선 지방. 나밖에 없는 방.
그곳에 있던 아무도 없는 어둠과 나를 외면하는 과묵한 정적은, 당연하게도 쓸쓸했다.
나는 한기마저 느껴지는 쓸쓸함을 몰아내기 위해 방의 불을 켰지만, 환한 조명은 어둠을 몰아낼 수는 있어도 내 마음속에 새카맣게 들어찬 감정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조금은 쓸쓸한 게 가실까 싶어 소파에 앉아서 TV를 틀었지만 무엇을 보건 전부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로만 느껴져 집중할 수 없었다.
TV를 끄고 리모컨을 소파 위에 내려놓은 나는 아스카가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문이 열렸다.
내가 느꼈던 쓸쓸함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쓸쓸함에 빠져 죽어가던 나의 세계가 태엽이 감긴 시계처럼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스카를 기다린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이미 내 지각 속에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매우 길게 잡아늘여진 상태였다.
"카나하."
소파에 앉아 침울해하고 있던 나를 보며, 아스카가 내 이름을 작게 불렀다.
"늦었잖아."
나는 그녀를 보고 웃으며 장난스럽게 그녀를 질책했다.
"어서 와."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돌아온 사람에게 으레 하는 말이자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스카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기습적으로 나와 입술을 맞댔다.
첫 키스와 같은 상냥한 입맞춤.
예상치 못한 달콤한 상황에, 나의 사고와 시간이 정지하는 것만 같았다.
"가, 갑자기 뭐야?"
"너야말로 뭔가, 그 표정은? 원하던 것이 아니었나?"
"몰라!"
너의 이런, 이런 행동 때문에 쉽게 질투해버리는 내가 더 싫어지잖아.
+3 아, 아무튼 이제 또 어떤 일이...?
늦어서 죄송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
아스카가 나를 불렀다.
"너의 의식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모양이군. 잠깐 같이 나가서 이곳을 둘러보며 바람이라도 쐬지 않겠나?"
오늘의 나는 너무 나도 지쳐서 아스카의 제안에 승낙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연인의 말이란 큰 힘을 가지고 있어, 나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것으로 그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버렸다.
"나야 좋지."
+2~3 우리 둘의 앞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일단 이번 건 짧게.
행복함과 어색함이 공존하는 풋풋한 분위기가 밤하늘 아래에서 이어진다.
프로듀서의 안부 전화가 오기 전까지.
첫째. 이미 저녁도 해결했고, 주변에 있는 둘러볼 곳은 다 둘러봤기 때문에 별로 할 게 없었다.
둘째. 그런데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아마도 즉흥적인 생각이었기에 이렇게 된 거겠지.
하지만 그런 문제점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우리는 서로 손을 잡은 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생각나는대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거나 포기하고.
서로와 함께하며 즐거워하면서도 할 게 없어지면 서로 어색해하고.
그렇게 행복함과 어색함은 서로 번갈아가며 나타나다가 어느 순간 서로 공존하며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풋풋한 분위기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만끽하며, 밤하늘 아래에서 그저 온종일 있을 것처럼 손을 잡은 채 수다를 떨면서 주변의 경치와 함께 어우러진 추억을 가슴속에 잔뜩 품어냈다.
"모든게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것은 오로지 너 하나뿐이로군."
"그렇네. 낯선 세상에 둘이서 표류해온 것 같아."
분명 현실에 있었지만, 비현실을 경험하는 것 같은 기분.
어쩐지 몽환적인 현실 속의 표류기.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아스카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려퍼지며 둘만의 분위기를 부수고 둘만의 비현실 속으로 파고들어오며 우리들을 다시 현실으로 끌어내렸다.
"여보세요?"
아스카가 자신에게 찾아온 현실을 마주했다.
"아, 프로듀서인가."
프로듀서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다.
+2~3 다음 상황.
하, 한 분 더 늘었어!?
전화를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스카가 나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나한테 볼일이 있었던 건가?
아스카가 건넨 전화기를 받으며 어째서 프로듀서가 나한테 바로 전화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니, 전화기를 호텔 방안에 놓고 왔던 것 같았다.
단순한 안부 전화라면 굳이 나를 바꿔달라는 말은 안 했을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프로듀서가 전화한 이유를 궁금해하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카나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주에 일이 하나 잡혔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런데 전화 안 받더라?]
"핸드폰을 놓고 나와서… 그런데 어떤 일이에요?"
[모델 일.]
모델 일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전에 잡지 모델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맡은 일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무력하고 한심했던 바로 그 때가 떠오르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괜찮은가?"
그 모습을 본 아스카가 나를 걱정해주었다.
"벼, 별 거 아니야. 괜찮아."
나는 재빨리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래, 별 거 아니야. 어차피 지나간 일이잖아.
[…혹시 좀 꺼려지면 안 해도 괜찮아. 어쩔래?]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잠깐 침묵하던 프로듀서가 내 의사를 물어왔다.
프로듀서의 목소리에서는 불안한 기색이 조금 묻어나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뭔가가 생각나서 그랬어요."
순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혹할 뻔 했지만, 프로듀서가 고생해서 따냈을 일을 그렇게 내쳐버릴 수는 없었다.
프로듀서도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 일을 받아냈을 테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전에 망쳤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 더 잘 해내면 돼.
할 수 있어. 예전의 일을 반드시 만회하고, 내 주가를 올려보이겠어!
"그 일, 할게요!"
내가 힘차게 말하자, 프로듀서가 되받았다.
[잘 생각했어. 그럼, 힘내자!]
"네!"
우리는 또다른 계획을 세워, 그 계획의 실천을 위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스카가 고개를 돌리며 뒤쪽을 바라보는 행동을 자꾸 반복하고 있었다.
"왜 그래?"
그 행동이 신경쓰였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스카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아까부터 자꾸 뒤를 돌아보는데, 뭐라도 있어?"
"우리를 미행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형체가 보이곤 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군.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았다고?
"차, 착각 맞겠지…?"
"…나도 착각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괘, 괜히 그러지 마! 무서워지잖아!
…저, 저, 정말로 나쁜 마음을 품고 우리를 미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지?
그런 건 싫어. 또 다시 누군가의 악의에 휘둘리는 건 싫다고!
+1~3 그 그림자는…
1. 다시 보였다.
2. 다시 보이지 않았다.
아스카가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조금씩 흔들리며 움직이는 불빛에 집중하고 있으니,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휴대전화의 불빛인 것 같았다.
"…정말로 저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다는 거야?"
나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아스카에게 헷갈린 것이 아닌지 물어보았지만, 아스카는 재빠르게 확답했다.
"확실하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우릴 따라오는 걸까?"
"그다지 좋은 이유는 아니겠지."
+3 …어쩌지?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격퇴하러 가자
"자, 잠깐만, 아스카!"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스카는 수상한 사람에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 머리는 다른 곳에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냈으나 이미 때는 늦어, 내 몸은 이미 반사적으로 그녀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수상한 인영은 익숙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멀리 떨어진 가로등의 빛에 의지해 그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오…"
"아리사?"
"너였냐!?"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간 떨어질 뻔 했잖아!
아니, 결과적으로는 다행인가?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우리 뒤는 왜… 아니, 이건 뻔하군."
아스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도 분명 나만큼이나 당황스럽겠지.
"비, 비즈니스입니다! 비즈니스요!"
"네가 말하는 비즈니스란 말에는 신뢰가 가질 않는다만. 보나마나 우리 둘의 사진을 몰래 찍으려던 속셈이었겠지."
"몰래 찍는다니,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아리사는 어디까지나 아이돌쨩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뿐이라고요!"
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치단 말이야.
"그리고 두 아이돌의 우정이란…! 사진으로 남긴다면 더 좋지만 눈으로만 봐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리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밝혀지는 시점에서, 아스카는 질린 표정으로 아리사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뻔한 이유였지만.
+2~3 이제 우리는 어떤 대화를 이어나갈까.
앵커를 받고 나서 마츠다 양을 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독자 분들의 예상이…
그, 그래도 굽히지 않습니다!
…아, 맞다. 이건 정말 여담인데 말이죠, 이 창댓에서 니노미야 양의 말투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그냥 제가 잘 못 해서 그렇-
휴식이다 후후후후후후후후
아스카나하 (손꼭)
아리사 : 우후후, 벌써 그런 관계까지 된건가요~
라면서 사진찍으면서 놀린다.
그리고 그 사진은 아스카에게...
"사정이 좀 있어서…"
나는 얼떨결에 촬영에 참여하게 되어 휴대폰을 볼 틈이 없었고, 나중에는 호텔방에 휴대폰을 놓고 나왔다는 설명으로 아리사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과연 과연, 그랬군요."
"역시 가지고 나왔어야 했나보네. 연락 못 받아서 미안."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언제 그렇게까지 사이가 좋아지신 건가요?"
아리사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무의식적으로 붙잡고 있던 우리들의 손이 있었다.
왜 우리는 아리사 앞에서까지 손을 잡은 걸까.
"아까 전부터 서로 손도 잡고 계셨고,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셨고, 분위기도 묘하던데요? 우후후, 벌써 그런 관계로 발전하신 건가요~?"
"그,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황급히 맞잡은 손을 풀어냈다.
나는 시선을 피했고, 아스카는 더듬거리며 아리사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비유적인 통보를 내렸다.
하지만 아리사는 그에 굴하지 않고 목에 걸고 있었던 자신의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기습적으로 터져나온 플래시.
그것이 뜻하는 것은, 우리 둘이 당황하는 모습이 찍혔다는 것.
아리사에게는 좋은 수집물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리사는 아스카에게 다가가서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스카는 아리사와 눈길을 주고받은 다음 고개를 끄덕였고, 아리사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아스카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아리사?
+3 다음 상황.
어디에도...
갈 수 없다. 특히... '휴식'에 도달할 수는... 결코 없다!
못지
나간다
일하고 싶지 않은 작가님과 앵커들
나처럼 피치 못한 사정으로 학교를 빠지게 된 것도 아닐 텐데.
"아리사도 아리사 나름의 사정이 있답니다? 일단 오늘은 카나하쨩과 아스카쨩을 잠깐 보러 왔던 거니까, 내일 다시 올게요. 아리사도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아리사는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남긴 후,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떠나가면서 좋은 수확이니 뭐니 하는 말이 들렸던 것은 절대로 기분 탓이 안었겠지.
그건 그렇고 아리사 나름의 사정이라.
일이 있다는 걸 보면 우연찮게 근처에 일거리가 잡히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아리사의 행동 때문에 가끔씩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아리사도 엄연한 아이돌, 그것도 나보다 먼저 활동을 시작한 선배 아이돌이니까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래도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니까, 내일 물어봐야지.
"슬슬 졸립네..."
"정말이지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군..."
아리사가 본의 아니게 조성했던 수상한 사람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이 그녀가 떠나가는 것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늦은 시간과 촬영이 불러낸 피로감이 자신을 잊어버리지 말아달라는 것처럼 뒤늦게 우리에게 매달려왔다.
시간에 쫒겨 많은 양을 촬영했던 아스카는 나보다도 더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돌아갈까?"
"그러지. 돌아가서 내일을... 흐암, 기약하자고..."
우리는 지나쳐왔던 길들을 천천히 되짚으며 호텔로 돌아와서 따로따로 씻은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고 잘 준비를 했다.
불이 꺼지고 날 외롭게 했던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내가 외로워할 이유는 더이상 없었기 때문에, 어둠은 나를 고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부드러운 담요가 되어 우리들을 감싸주었다.
"계속 거기 서 있기만 할 생각은 아니겠지?"
먼저 침대에 누워 있던 아스카가 나를 재촉했다.
"아냐. 누워야지."
방에 있는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울 때가 되자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파에서 자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자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스카를 마주보는 것은 어딘지 부끄러워서, 나는 이불을 들추고 아스카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 잘 준비를 했다.
그러자, 기다렸던 것처럼 아스카가 뒤에서 나에게 안겨왔다.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
나는 아스카의 팔에 손을 가져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3 ...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그 후, 자신도 모르게 잠에 든 듯 하다.
아스카는 그런 카나하를 보고 한숨을 쉬면서 카나하를 꽉 안으며 수면.
그리고 다음날 일어났는데 아스카가 일어나지 않아서 버둥거리는 카나하. 그러다가 포기.
# 아스카를 마주보는 것은 어딘지 부끄러워서, 나는 이불을 들추고 아스카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 잘 준비를 했다.
그러자, 기다렸던 것처럼 아스카가 뒤에서 나에게 안겨왔다.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
아스카를 마주보고 눕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되고 있었다.
나는 잠결에 들려오는 아스카의 한숨 소리를 자장가 삼고 나를 더 꽉 끌어안는 아스카의 상냥한 온기를 느끼며 더욱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눈을 뜨자,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내 눈에서 졸음을 씻어내려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여전히 나를 끌어안고 있던 아스카의 팔은 나를 놔주지 않았다.
"아스카?"
아쉽지만 기분좋은 구속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기에, 나는 아스카를 불러 그녀를 깨워보려고 했다.
"저기, 아스카?"
하지만 그녀는 전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촬영하면서 쌓인 피로가 생각보다 많았나보네.
그런데 이제 어쩌지?
기분 좋게 자고 있는 걸 억지로 깨울 수도 없잖아.
…뭐, 그렇게 시간에 쫒기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조금만 더 자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깨우지 말고 그냥 포기할까.
나는 여전히 아스카에게 안긴 채 자기 전에 머리맡에 놔두었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문자 메시지 세 통이 와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메시지는 세 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아리사가 말했던 자기가 왔다고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뒤쪽에서 따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써 있네.
뭔가 세심해서 좋긴 하지만 이렇게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지 말고 그냥 우리 앞에 나타나지 그랬어, 아리사.
두 번째로 확인한 메시지는 타치바나가 보낸 것이었다.
타치바나와는 최근에 만난 것을 제외하면 평소 접점이 없었기에, 나한테 연락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녀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실로 단순한 것이었다.
[대체 뭔가요? 절 카페에 데려다주기로 하셨잖아요! 설마 잊어버리신 건가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것을 읽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타치바나의 이미지는 어쩐지 평소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어린 아이가 투정부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미안, 타치바나. 그래도 내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
"팔 저려…"
내가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 아스카가 일어났다.
"잘 잤어?"
그제서야 나의 구속을 해제해준 아스카에게 나는 다정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잘 잤다.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인 룰이 나의 팔을 옥죄고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분명 백허그를 해온 쪽은 아스카였는데 왜 내가 미안해지는 걸까.
아스카는 침대에 앉아 기지개를 켠 다음 왼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아아, 란코인가. 나라고 카나하만 데려가고 싶어서 데려간 게 아닌데 말이지…"
"무슨 일이야?"
아스카의 말로 보면 란코한테서 우리 둘만 토호쿠에 갔다고 뭐라고 하는 문자가 온 모양이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지."
그렇게 말하며, 아스카는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여를 버리고 새로운 모험의 장을 써내려가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해석은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예상 적중.
"너도?"
"'너도'… 라니, 무슨 말이지?"
나는 내 말에 의아해하는 아스카에게 타치바나가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내 휴대폰을 받아들고 타치바나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가다 실소를 터트렸다.
"하핫, 그런 건가. 우리 둘 다 피치 못한 사정에 의해 아는 사람에게서 항의를 들은 건가."
"운명에 의해서 같이 왔다가, 운명처럼 같은 상황이 됐네."
나 또한 그녀의 말에 동감하며 즐겁게 웃었다.
+3 다음 상황 혹은 다음 촬영 상황.
정말... 이런 갓창댓을 탄생시킨 그분에게 감사를! 이라고해도 그분은 안 보이시지만요...
그나저나 정말 미즈키였으면... 무슨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까요 이 창댓...
먼저 씻을 준비를 하기 위해 옷을 벗고 있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나하."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스카가 멍하니 내 어깨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내가 묻자, 그녀는 천천히 내 뒤로 다가왔다.
"별 건 아니다."
그녀가 내 바로 뒤까지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왜 그래? 또 같이 들어가고 싶은 거야?"
"그 물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보다 먼저 생각난게 있어서 말이지."
아스카는 그 말을 남기고 내 어깻죽지로 살며시 입술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상냥한 스킨십을 기대하던 나에게…
무서운 기세로 키스마크를 남기기 시작했다.
"아, 아파! 아스카! 아파!"
내가 아프다고 말했지만 아스카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목덜미를 덥석 물더니 그곳에도 키스마크를 남기기 시작했다.
설마 그 때 그걸 지금 복수하는 거야?!
+3 다음 상황.
아스카: 흠 과연 이런 기분인가. 버릇이 될 거 같군.
카나하: ////
거울로 연인에게 유린당한 등 뒤를 비춰보자, 아직도 선명하게 남은 키스마크들과 이빨자국이 보였다.
"흠, 과연. 이런 기분인가."
거울을 보는 나의 심정을 뒤흔드는 아스카의 한 마디.
"이거 버릇이 될 지도."
내 생각과 다르게 반응해버리는 내가 정말 미울 때가 있다.
머릿속으로는 아스카를 탓하고 있지만 정작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하면서 내심 기대하고 있는, 지금같은 때.
"목, 어쩌지?"
키스마크와 잇자국을 어떻게 가릴지 고민하면서도 연인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바로 이 때.
이럴 때는 내가 정말 싫어진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스킨십이고, 서로 좋아한다는 증거였기에 그것을 좋아하는 나의 무의식이 얼추 이해는 됐다.
내가 나를 이해한다는 것도 웃기지만 말이지.
+3 다음 상황
둘은언제까지꽁냥거릴까요과연
피부에 닿아오는 물은 차가웠지만 아직도 머릿속은 미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안도구를 집기 위해 돌아서자, 어째서인지 위화감이 들었다.
무언가를 본 것 같았는데?
위화감의 정체를 알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자, 닫혀 있던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분명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는데, 어째서?
잠깐만, 문 밖에…
"아스카."
나는 없었어야 할 틈새의 사이로 보이는 눈의 주인을 불렀다.
"뭐 하는 거야, 정말. 또… 그… 같이 씻고 싶어?"
"으음… 글쎄. 그 유혹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군."
이런 상황에서 아스카의 목소리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되었다.
참으로 적절하지 않은 비유지만 꼭 정중한 스토커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대놓고 문을 열고 봐달라고.
어차피 우리, 연인이잖아.
…동성이기도 하고.
"확실히 같이 씻는다는 것은 시간이 절약되는 행위지만, 그래도… 잠깐."
아스카가 갑자기 말을 끊더니,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조금씩 흔들리는 문이 그녀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스카가 돌아와 말했다.
"실례. 스태프에게서 언제 오냐는 전화가 와서 말이지."
"벌써?"
"스케줄이 조금 조정되었다고 하는군."
"…알았어. 빨리 끝낼게."
+3 다음 상황.
+1
그리고 감독이 카나하에게 이 역할을 계속 맡아줄지 물어본다. 카나하가 거절한다면 그 장면만 다시 찍어 편집할 예정이긴 한데, 카나하의 연기의 느낌이 좋아서 감독은 계속 맡아줬으면 하는 상황.
+1...
30분이라는 시간은 적은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씻는 것만 제외하면 어느 정도 여유롭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준비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같이 호텔 로비로 이동했다.
아직 30분이 되지 않았지만, 로비에는 스태프로 추정되는 사람 몇 명과 감독이 미리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처음 보는 여성 한 명이 감독과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
"우리 쪽도 다시 찍고 편집하고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니까?"
"그런다고 절 빼는 게 말이나 되냐고요! 가뜩이나 스케줄도 많은데 시간 내서 와줬더니 이러기에요?"
"그러니까, 먼저 펑크냈던 건-"
"저희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니까요? 알 만한 분이 왜 그러세요?"
아, 그렇구나.
저 사람이 바로 어제 펑크를 냈던 그 여배우인 모양이네.
자기 역할이 빼앗긴 심정은 이해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쪽의 사정도 고려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대타가 연기를 못 했으면 생각해보겠는데, 장면이 꽤 잘 나왔고 우리가 시간이 부족해서 다시 찍을 수가 없다고."
"참 나."
상황이 전혀 좋지 않았지만 계속 주변에서 서성거릴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싸움의 근원지로 조금씩 다가갔다.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마.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니잖아.
"쟤가 그 대타예요?"
우리를 가장 먼저 눈치챈 그 사람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 왔네. 잠깐만 기다려봐."
감독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우리에게 기다려보라고 말한 뒤 다시 여배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감독님 진짜 제정신이세요? 저딴 얼굴도 안 팔린 초짜가 절 대신한다고요?"
하지만 그녀는 감독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에게 삿대질하며 여태껏 휘둘러댄 날카로운 말로 나를 찔러댔다.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불편한 것은 똑같았다.
엑스트라 역할, 괜히 맡았던 걸까.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움츠러들고 있는 거지.
+3 …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네가 대체 카나하의 무엇을 안다고 카나하를 그렇게 비하하는거지? 내가 보기엔 멋대로 스케줄을 펑크 내서 촬영에 지장을 줬던 주제에 이제 와서 자기 역할을 돌려달라고 매달리는게 훨씬 프로로서의 자질이 모자란것 같다고 생각한다만."
잊고 있었던 것 하나.
나에게는 최고의 아군 중 한 명이 바로 곁에 있었다.
잊고 있었던 것 둘.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은 당연했다.
"내가 보기엔 멋대로 스케줄을 펑크내서 촬영에 지장을 줬던 주제에 이제 와서 자기 역할을 돌려달라고 매달리는 게 훨씬 더 프로로서의 자질이 모자란 것 같다만."
"자, 잠깐만, 아스카…!"
나는 아스카를 말렸다.
아스카가 한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니, 맞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해주었다고 해서 속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갈등을 키워버린 것 같아 불안할 따름이었다.
"너는 그런 말을 듣고서도 나에게 멈추라고 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난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룰 따위에 얽매이느라 허례를 보일 생각은 없으니 할 말은 해야겠어."
아스카는 여배우를 흘겨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 쪽도 그런 것 같으니 딱히 상관은 없겠지."
+2~3 다음 대화 내용 혹은 다음 상황.
일단 아스카한테도 주의를 주긴 했지만 묘하게 건성인걸 보면 감독님도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카나하 생각)
아마추어가 맡기엔 조금 힘든 연기지만 그래도 카나하가 맡아줬으면 하는 감독. 카나하는 망설이게 되고. 그 때 다시 촬영장에 여배우가 나타나 "역시 너따위가 맡기엔 무리인 역할"이라며 2차 도발
아스카의 난입으로 다툼이 격화될 조짐이 보이자, 감독이 나서서 둘을 중재했다.
그는 아스카에게도 주의를 주었지만, 그가 아스카에게 한 말은 진심으로 하는 말보다는 '해야 해서' 하는 형식적인 말처럼 느껴졌다.
저 사람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건성건성 주의를 준 걸까, 아니면 빨리 촬영을 하고 싶어서 그냥 넘긴 걸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스카가 사과하자, 감독은 재차 여배우를 달래며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도 정말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일단 촬영부터 시작하고 다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알겠어요. 어차피 촬영을 위해서는 저도 가야 하는 곳이니까 가서 이야기하죠."
다행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제서야 사정을 좀 봐줄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사람은 자신이 해야 했던 역할을 다시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모양이네.
어차피 내 역할을 저 사람에게 다시 넘겨줘야 한다고 해도 아스카가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만 있다면 난 상관없지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드디어 촬영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불안 요소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든 잘 되겠지.
오늘 우리가 촬영하게 될 장면은 내가 연기했던 열성팬이 아스카를 가로막고 그녀를 협박하면서 난동을 부리다가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끌려나가는 장면이었다.
내가 맡은 역할이 이런 역할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나는 천천히 중얼거리며 조금 전에 받은 대본을 읽어내려갔다.
"당신이 나를, 우리를 어떻게 배신할수가 있어요."
아직 제대로 연습을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읽어보는 단계인 것도 있었지만, 금방 받은 대본에 쓰인 말과 행동을 이해하여 내 것으로 어떻게 소화해야 할 지 아직 구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입에서 표현되는 대본 속 인물의 행동은 당연하게도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되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와 같이 있는 사진도 이미 다 찍어놓았으니까, 당장 그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 사진을 뿌릴 거예요. 당신과 그의 사이를 갈라버리고 당신의 연예인 인생을 끝내버릴 거라고요."
파멸 혹은 불안정한 복원.
"어차피 멀어질 거라면 차라리 다 끝내버리자고요."
대본을 읽어내려가며 내가 생각한 것은, 나는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이 자신과 멀어지고 다른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져 망가져버린 사람. 그래서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
돌려놓고 싶은 마음과 그 행동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난 당신에게 공감할 수 없어.
고통을 안겨주며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욕망의 뒤틀린 표출이고 억압일 뿐이잖아.
이런 사람이 되어 그런 행동들을 소화해내야 한다니…
…어렵네.
"어렵네요."
내가 난색을 표하자, 감독도 마찬가지로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아마추어가 맡기에는 조금 어려운 게 사실이긴 한데… 그래도 네가 맡아줬으면 해서 말이야. 정말로 어렵겠어?"
처음부터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감독은 내가 어려움을 표했던 것이 포기하려는 것인 줄 알았는지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제가 말했잖아요. 저런 애가 맡기에는 어려운 역할이라고."
그 때, 어딘가로 사라졌던 여배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만이 적임자라는 양 거만한 태도로 나를 깎아내렸다.
+3 다음 상황.
이 앵커는… 앞으로의 전개에서 좋은 도전이 되겠네요.
저한테도, 카나하한테도.
아틀라스 게임이라면 아마 이런 선택지 있을 거라 생각해
여배우: 어휴 이래서 어린애들은 안 돼, 다 자기 생각대로 되는 줄 안다니까.
카나하: (울컥)할게요.
수라장은 역시 흥미진진해.....!
아스카는 전처럼 달려드는 대신 나를 격려해주었다.
자기보다 어린 아스카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고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저 사람은 왜 예절이란 게 없는 걸까.
"어휴, 이래서 어린애들은 안 돼. 다 자기 생각대로 되는 줄만 안다니까?"
뭐 이딴 세상에 찌든 사람이 다 있어?
원래부터 이 일을 맡을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내 자존심 때문에라도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차피 거절할 생각은 아니었으니 자존심이 불을 붙였다고 해야 맞겠지.
그리고 나를 믿어준 아스카의 격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의 헛소리로 치부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할게요."
그래. 하겠어. 해내고 말겠다고.
자기 생각대로 되는 줄만 아는 어린아이의 치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서 저 사람의 콧대를 눌러버리고 싶어.
자기 생각대로 될 줄 아는 건 저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어.
감독은 좋게 봐주는 것 같지만, 내 재능은 저 사람을 압도할 만한 재능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리고 난 제대로 된 연기를 해본 경험도 없잖아.
하지만 실패한다고 해도 저런 말에 상처입고 굴복하며 살 수만은 없다고.
설령 상처받은 자존심이 이끌어낸 같잖은 도전정신이라도 내 원동력이 되어준다면 상관 없어.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해 보겠습니다!"
정말로 어린아이가 세상을 얕봤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야.
…제발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기를.
+3 다음 상황.
거의 완벽하게 연기를 끝내고 나온다. 역시 프로만큼은 아니지만 아마추어로서는 정말로 할건 다 했다는 느낌
그나저나 이 댓글로 전작까지 합쳐서 3천 댓글이네요 のヮの
"네!"
나는 대본에서 눈을 떼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나는 이 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팬이 될 정도로 좋아하게 된 사람을 아이돌과 팬이라는 희미한 연결고리로 자신의 삶 속에 고정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던 사람이 자신의 우상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신은 처음부터 바랄 수 없었던 열렬한 애정을 다른 사람이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희미해지게 될 위기에 처한데서 오는 절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질투심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물론 나도 아스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해볼 것은 틀림없다.
비틀어진 관계에 절망할 것이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원망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새로이 형성해가는 행복한 인간관계를 부숴가면서까지 내 행복만을 추구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지, 어느 한쪽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결국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녀를 놓아주는 게 나에게도 덜 불행한 일일 테니까.
물론 내 이성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분노에 못 이기고 심각한 짓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내가 연기해야 할 사람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충분해. 이걸로 괜찮아."
공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 아마추어인 내가 나를 극의 인물에 맞추고 역할에 몰입하려면 말이야.
하지만 이걸로 충분해. 최선을 다해 연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하기만 하면 돼.
"괜찮아…"
"카나하!"
"어, 어?"
멍하니 서있던 나에게 들려온 아스카의 목소리.
나는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촬영이 시작되었는데도 대사를 하지 않은 채 멀뚱히 서 있었다.
"컷!"
누군가는 우스워하고, 누군가는 걱정하고, 누군가는 우려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대본에서 지시된 대로 아스카를 가로막았다.
"뭐죠?"
"당신이 어떻게…"
나는 조금 전같은 일이 없도록 집중하며 대사를 읊었다.
"어떻게 우리를, 나를 배신할 수가 있어요."
내 말을 듣는 아스카의 눈썹이 움직였다.
연기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원래 지시된 것과는 같기는커녕 정 반대였으니까.
"다 알고 왔어요. 그 사람과… 헤어져 주세요."
분노해야 할 인물이, 슬퍼하고 있었다.
"매니저와 같이 있는 사진도 이미 다 찍어놓았으니까, 당장 그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 사진을 뿌릴 거예요. 당신과 그의 사이를 갈라버리고 당신의 연예인 인생을 끝내버릴 거라고요."
그녀는 여전히 슬퍼하는 얼굴을 한 채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그녀를 압박해갔다.
그녀가 아스카에게 다가갔다.
위압적이었어야 했을 행동은 헛된 몸부림과도 같은 아련함으로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마음을 조여가고 있었다.
이것은 내 도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이해한 이 캐릭터의 이미지는 분노에 사로잡혔다기 보다는 배신감에 빠져 모두를 파멸시키기 위한 비탄을 울부짖는 쪽에 가까웠다.
그녀는 슬퍼하고 있었다.
"어차피 멀어질 거라면… 차라리 다 끝내버리자고요."
나는 내 독선을 이어나갔다.
우려했던 '컷!'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의 선택에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계신가요."
원래 보여주었어야 할 폭발적인 기세 대신, 내가 이해한 대로 그 팬은 여전히 공감 못할 말들을 늘어놓으며 아스카를 자신의 감정으로 천천히 옥죄어갔다.
눈물 없는 슬픔이 조용하게 난동부리며 상대에게 자신의 요구를 새겨넣어갔다.
"빨리 말해주세요. 포기하실 건가요? 아니면 파멸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저처럼 슬퍼하게 하실 건가요."
자신의 감정을 내세운 압박이 계속되어갈 때, 경찰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왜인지 긴장되었다.
무의식중에 연기를 끝내고 나서 생길 상황을 걱정한 것일까.
별다른 실랑이는 없었다.
상황 설명을 들은 경찰에게 이끌려 나가는 장면을 끝으로, 그녀는 그곳에서 퇴장했다.
연기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 나는 감독에게 불려갔다.
연기 자체는 최선을 다해서 그럭저럭 해낸 것 같지만… 역시 꾸중듣겠지?
"우선 이것부터 말할게."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리를 꼰 채 앉은 감독의 무거운 목소리를 듣자, 예감이 적중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나나 다른 사람하고 상담하지 않고 멋대로 그러는 건 안 돼. 매우 곤란해진다고. 알아 둬."
"죄송합니다."
역시나.
내 행동은 잘못된 게 맞았나보네.
"하, 처음부터 저를 쓰셨다면 이런 시간 낭비는 없었잖아요? 전 대본을 소화해낼 자신도 없어서 제 입맛대로 바꿔서 민폐를 끼치는 저런 애랑은 달라요. 저라면 저 대본을 완벽히 소화해냈을 거라고요."
내가 만들어낸 결과가 지탄받는 상황 속에서,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던 여배우가 나의 무모함을 기회삼아 자신을 어필하며 무거운 분위기에 편승했다.
하지만 감독은 여배우를 잠깐 쳐다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감독이 다시 입을 열였다.
"그래도 꽤 잘 했어. 역시 너한테 맡기길 잘 한 것 같네."
칭찬?
내가 지금 칭찬을 들은 거야?
"가, 감사합니다, 감독님!"
…다행이다.
"그래도 너무 무모했어. 아직 경험이 없었을 테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너무 생각이 없었던 거 아니야? 일단은 마음에 들고 시간도 없으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지만 작가나 그런 사람들이 정해준 스토리가 있는 거야, 스토리가. 그걸 무턱대고 부숴버리면 안 되지."
"네…"
칭찬과 충고.
감독이 나에게 한 충고는 매우 상식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이야기를 난입해서 제멋대로 꼬아낸 내 행동의 비상식성과 대비되는, 내가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이었다.
칭찬을 받은 것은 좋지만, 내 행동에 대해서 돌아보니 그렇게 좋은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후회되지는 않는다.
"무모하긴 했지만, 그래도 네가 연기자로서 조금은 성장했다는 느낌일까."
아스카 또한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치며 돌발 행동을 하고도 촬영을 무사히 끝낸 것을 축하해주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은 아직도 지금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는 것 같았다.
+3 다음 상황.
조금 어색한 전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