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캐릭터붕괴가 일어납니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765프로의 미인 프로듀서 아키즈키 리츠코와 역시 미인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는 우연히 출근시간을 맞춰서 함께 출근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같이 오는 것도 즐겁네요 칫짱. 자주 같이 와야겠어요~"
"그러게요. 오늘은 왜인지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 같아요~"
둘은 여전히 고칠 생각 없어보이는 엘레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왔다.
이제 조금은 낡은 문이 열릴 것이고, 평소와 같이 업무 전 간단히 커피.
둘은 그렇게 765프로의 문을 열었다.
"여어~"
765의 또 다른 프로듀서 P가 여느때처럼 둘을 반겼다.
손에 큼직한 레밍턴 샷건을 들고 있는 것만 빼면, 사장실에 계셔야 하는
사장님이 의자에 묶여서 사무소 바닥에 쓰러져 계신 것만 빼면.
"프로듀서! 뭐하는 짓이에요!!"
"사장님!! 사장님!!!
"아키즈키 리츠코, 오토나시 코토리. 이쪽으로."
"..............."
평소의 P가 아니다. 평소의 P는 절대로 성을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여태까지 듣던 기분좋고 편안한 음성이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거기 시체처럼 서 있을 거야? 진짜로 시체로 만들어줘?"
철컥. 샷건의 펌프가 당겨지는 금속제 소리는 둘에게는 공포였다.
결국 거의 기다시피해서 P쪽으로 오자 P는 둘의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그리고 둘을 결박했다. 장난이 아니다.
아까부터 움직임이 없는 사장님은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프....프로듀서. 이런 장난은 좋지 않..."
날선 총구가 무어라고 말하려는 리츠코 대신 코토리에게 겨냥되자 리츠코는
입을 다물었다. 늘 아이돌들에게도, 자신들에게도 한없이 무르던 프로듀서가
갑자기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저기 프로듀서...무슨 일인지 몰라도 진정하세요. 이건 좋은 해결책이..읍!!"
짜증난다는 표정의 프로듀서가 코토리의 입에 강제로 총구를 들이밀었다.
코토리의 표정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냥 조용히 있자고. 아직 주연배우들이 오지 않았잖아."
처음으로 P가 웃었다. 평소와 같은 편안한 웃음이 아닌 날카롭게 비틀린 미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어. 뭐부터 듣겠어?"
여전히 손에 총이 들려있다는 것만 빼면 마치 오늘 도쿄의 날씨는 어떤가라는
식의 편안한 어투였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아.......또 짜증나게 구네?"
"조.....좋은 일이요!!"
"좋은 일은 아마 여기 곧 오게 될 사람들 대부분은 안 죽을 수도 있단거지.
뭐 사장님은 운이 나빴지. 본보기라고 생각하면 편할거야."
"그....그럼 나쁜 일은?"
"한 명은 반드시 죽인다."
"!!!!!!!!!!!"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P의 입장에서.
평소처럼 사무소에 출근한 아이돌들은 모두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P에게 인사를 받고, 겁에 질리고,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고, 결박.
아무도 반항하지 못했다. 총이 가진 힘이었다.
P가 조소를 내뱉었다.
"다들 야요이가 부럽지? 가난뱅이 아이돌이라서 아침부터 영업을 나갔는데,
죽지 않을 수 있다니.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아. 그렇지?"
"허...허니이...."
"지금부터 내 질문에 대답하는 거 이외에 입을 벌리는 사람은 무조건
사장님 곁으로 보내주지. 쫑알대는 애 옆에 붙어있지 마라. 같이 맞는다."
"......................"
두 명의 스태프와 아홉 명의 아이돌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
"좀 낫군. 우리의 주인공은 언제쯤 등장하려나?"
"?????????"
"뭐야 그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들은. 아직 한 명이 오지 않았잖아.
하긴 아침부터 뭔가 처먹기 바쁠테니 늦는 것도 당연하겠지."
(타.......타카네!!!!)
뚜벅뚜벅뚜벅. 느리지만 확실한 발걸음이 계단을 타고 들린다.
도망치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아? 맨날 톱뿌 시크릿또라고 말하는 시대극에서나 나올 법한 은발
왕녀님의 진짜 정체가? 톱뿌 시크릿또라니. 푸흡. 뭐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겠지만."
"!!!!!!!!!!!!!!"
그제서야 리츠코와 코토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까 말한 나쁜 일이 그거였단 말?
철컥. 끼이익.
"타카네 도망쳐!"
"입 다물지 못해!! 시죠 타카네. 도망칠 궁리 하지 마라. 이리 와."
"........................"
은발의 왕녀는 조용히 걸어왔다.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는 평소의 타카네였다.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결국....운명의 달빛은 더 피하지 못하는 거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개소리 말고 달의 목걸이나 내놔."
"목걸이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지만 당신은 달의 힘을 끌어내지 못할 겁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하아~ 무려 2년이나 되먹지 않는 아이돌들 뒷바라지 하느라
얼마나 피곤했는데. 여기서 끝내자고."
"................여기."
그날따라 타카네는 한 번도 걸지 않던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허망하군. 하필 결행하기로 작정한 날 달의 목걸이를 걸고 오다니."
"이것도 운명이겠지요."
"좋아. 이제 순순히 죽어주면 모든 게 끝난다. 달의 일족."
"이 쓰레기!! 그까짓 목걸이가 뭐라고!!"
"입 닥쳐라 호시이 미키. 원래 시골 노인네에게는 죄가 없지만 노인네가
짚고 있는 황금 지팡이에게는 죄가 있는거다."
철컥.
"이런. 잠시 방심했군. 아이돌이 권총이라니. 신문 기사에 날 일이군."
"목걸이는 되돌려 받아야겠습니다."
"푸흡. 내가 쏘는 게 빠를까. 네가 쏘는 게 빠를까? 자신들의 프로듀서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 걸 눈 앞에서 보고도 이 아이들이 재기할 수 있을까."
"나쁜 자식!!!"
"총 내려놔."
"타카네. 안 돼!!!"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외쳤지만 타카네는 결국 권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것도 운명이겠지요."
"푸흡. 뭐 좋아. 시죠 타카네. 재밌는 도박을 해 보지 않겠어?"
"?"
"이 자리에서 내가 잡고 있는 인질은 총 열한명이다. 종이와 펜을 하나씩 주지.
열한명이 돌아가면서 이름을 쓴다. 이름은 시죠 타카네 또는 백지다. 만약 단
한 장이라도 시죠 타카네라고 씌여진 쪽지가 나오면. 시죠 타카네는 죽는다.
만약 열한장 모두 백지가 나오면, 시죠 타카네는 산다. 대신 나머지들이 죽는다.
공평하지? 본인이 살 수 있는 기회를 본인이 마련하는거라고. 약속하지.
내가 내뱉은 말은 달의 목걸이가 보증한다."
"..............악마!!!"
"쫑알대지 말고 한 명씩 급탕실로 들어가."
타카네는 내내 말이 없었다. P의 지시에 따라 한 명씩 결박을 풀어주고 종이와 펜을
들려보냈다. 종이는 타카네가 들고 왔고 다시 결박되었다.
이내 열한장의 접힌 종이가 P의 손에 들어왔다.
"자자~ 과연 결과가 어떨까? 내가 시죠 타카네라면 종이를 바꿔치기 했을텐데."
"그런 추잡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아아. 그렇겠지. 공주님의 프롸이두~가 있는 거니까 말이야."
타카네의 말투를 이죽거리면서 흉내낸 P가 종이를 한 장 한 장 펼쳤다.
P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떨어진 종이에는 [아키즈키 리츠코]를 시작으로
[아마미 하루카], [호시이 미키], [하기와라 유키호].........종이에 쓰인 이름은
단 한 장도 겹치지 않았다. 타카네의 이름이 적힌 종이는 없었다.
조금은 미묘한 표정의 P가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이런 식으로 물을 먹이다니. 리츠코. 어떻게 생각해?"
"...............네?"
"나와 사장님, 타카네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준 것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귀하. 그나저나 그 샤트거언? 진짜 같습니다."
"그렇지? 요즘 장난감도 이 정도 퀄리티는 되어야 한다니까."
"대단하군!! 역시 우리 사무소의 단결력이란!!!"
"사장님?!"
그 동안 쭈욱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엎어져 있던 사장님이 태연히 말을 하고,
P의 냉소짓던 표정이 깨져버리고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타카네와 정담.
그제서야 모두들 잔혹하기 짝이 없는 진실을 깨달아버렸다.
투둑!!!! 투두두둑!!!!
그 전까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풀리지 않던 결박들이 모두 풀리기 시작했다.
아니 풀린다기보다는 끊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열한명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진다.
"흐흐흐흐흐~~~~"
"귀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자 타카네. 이럴 때는 침착해야 한단다. 지금 사장님이 움직이지 못하지?"
"그렇군요."
"그렇지."
"자...잠깐 P군!!! 타카네군!!!!"
"오늘 연기 아주 좋았어. 나중에 상으로 라면이라도 먹으러 가지."
"절대적으로 찬성이옵니다 귀하. 그 전에....."
"살아서 만나자." "살아서 재회하겠사옵니다 귀하."
손을 굳게 맞잡은 둘은 이내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무소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프로듀서어!!!!!!!!!!!!! 죽여버리겠어!!!!!!"
오늘도 765프로는 평화롭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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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5:52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근데 코토리씨는 리츠코한테 리츠코씨 라고 하는걸로 알아요
라며 달릴거같았는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