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허……프로듀서!”
이 녀석, 또 사람들 앞에서 허니라고 부르려고 했네.
“어쩐 일인거야? 리츠코는?”
“리츠코 씨.”
“리츠코.”
“……리츠코한테 또 혼난다?”
“아핫! 걱정해주는 거야? 괜찮은거야. 안 들키면 안 혼나는 거야.”
혼 날 일은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그래서 왜 프로듀서가 온 거야? 원래 리츠코가 오기로 한 걸로 미키는 알고 있는거야.”
‘치하야랑 계속 같이 있으면 사고를 칠 것 같아서 리츠코에게 치하야를 맡기고 여기로 왔습니다.’라고말했다가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겠지?
“방송국에서 협의를 할 게 조금 있어서. 겸사겸사 온 거지.”
미키는 볼을 부풀렸다.
“뿌우! 뿌우! 이럴 땐 미키를 보러 온 김에 겸사겸사 협의를 하러 왔다고 하는 거야!”
“하하. 그걸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이야기해.”
나도 미키처럼 이렇게 솔직해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미키를 대할 때처럼 치하야를 대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니, 그래도 무리겠지.
미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자, 이번 일정은 토크쇼지? 대본은 읽어봤고?”
“아핫! 미키인거야. 그 정도는 누워서 주먹밥 먹는 정도로 가뿐한거야.”
“그러다가 탈난다?”
미키와의 실없는 농담과 흠 잡힐 데 없는 가벼운 스킨십.
그러나 이것도 외부의 눈이 없는 곳에서는 좀 더 진하게 변한다.
호칭부터가 ‘프로듀서’에서 ‘허니’로. 단순한 친근감의 표시의 스킨십이 애정행각으로 보이기에 충분한 스킨십으로. 곤란하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긍정. 그러나 싫다고 묻는다면 그 답은 부정. 미키처럼 아름다운 소녀의 호의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만약에……만에 하나지만……내가 미키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지금 안고 있는 마음의 짐은 이보다 훨씬 가벼웠을 거다.
미키와의 관계를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미키가 하는 행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볍기 그지없다. 그러나 내가 보아 온 바로는 미키의 행동은 진지하다. 미키가 나를 향해 하는 행동의 하나하나에 미키의 진심이 담겨있다. 아직은 미키가 어리기에 연상의 이성에 대한 동경을 애정으로 착각하고 하는 행동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미키에게 지금 치하야에게 품는 만큼의 연정을 품게 되었다면 미키에게 고백을 했을 것이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관계나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미 도리를 벗어난 것이겠지만 지금처럼 나의 일방적이고 음습한 사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치하야는 어떤가.
치하야가 나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동료로서, 아이돌이 프로듀서에게 품고 있는 그런 신뢰일 뿐이다. 이 호의를 연애감정이라고 확대해석하기는 힘들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아닐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주위에 마음을 열게 된 치하야지만 그것으로 인해 연애에 대해서도 개방적으로 됐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치하야가 연애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아니, 계속 말하는 거지만 치하야가 연애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연애감정을 품을 확률은 지극히 낮겠지.
“호시이 씨! 녹화시작 15분 전입니다! 준비해주세요!”
“미키 이제 가봐야하는거야.”
“그래, 힘내.”
“아핫! 미키는 언제나 만전의 상태인거야. 그리고 프로듀서.”
미키는 손짓으로 나에게 귀를 내보이라고 했다. 나는 무릎을 굽혀 미키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미키는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고는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렇게 어두운 얼굴로 있으면 미키 걱정하게 되는거야.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허니도 힘내는거야.”
내가 미키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미키는 아핫하고 웃고는 촬영스태프들을 향해 달려갔다.
“…….”
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미키의 말을 이해한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한참이나 어린 소녀에게 위로를 받다니. 정말 글러먹은 어른이다.
“푸핫!”
그래도 미키 덕분에 많이 기분이 나아졌다.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키는 좋은 아이다.
예쁘고, 상냥하면서 밝다.
스스로는 반짝반짝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키는 이미 반짝반짝하고 있다. 그 존재만으로도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절로 응원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아이돌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힘들겠지만 미키가 아이돌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 미키가 아이돌을 그만두거나 혹은 내가 프로듀서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미키의 프로듀서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고, 평생을 미키의 팬으로 남을 것이다.
“하아.”
한참을 웃고 난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힘내자.
아이돌에게 격려 받고도 계속 의기소침해 하는 한심한 프로듀서로 있어선 안 되지. 나의 문제는 나의 것이지 아이돌의 것이 아니잖아.
일하자. 치하야에 대한 것은 떠올리지 못 할 정도로 바쁘게.
일말의 휴식도 없는 지옥 같은 일정을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벌써 9시다.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놀려 간신히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프로듀서 씨.”
사무실에 들어가니 나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코토리 씨가 반겨줬다.
“수고하셨습니다. 오토나시 씨.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억지를 부렸죠?”
“괜찮아요. 어차피 제가 해야 할 일들이었는데요. 덕분에 당분간은 널널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네요.”
“그래도 면목 없네요.”
“후후, 그러시면 다음에 술이나 사주세요.”
동료가 혼자 폭주해서 자신의 일거리를 늘리면 보통은 인상을 찌푸리기 마련이건만 코토리 씨에게는 그런 불편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결혼을 못 한 걸까?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털썩, 쓰러지듯이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푼다.
“후우, 요즘 일을 너무 많이 받았네요. 일이 들어온다고 아이돌들의 상태를 안보고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다니. 프로듀서 실격이네요.”
“잘나가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잖아요. 일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노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그래도 다음 스케쥴을 짤 때에는 좀 더 여유있게 짜야겠네요. 이대로 가다간 분명히 누군가가 과로로 쓰러지고 말죠.”
“제가 보기에는 그 1순위가 프로듀서 씨 같은데요?”
후후, 웃으며 코토리 씨는 급탕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물 끓는 소리,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잠시 후 코토리 씨는 두 개의 머그컵을 들고 급탕실에서 나왔다.
“오늘 종일 수고하신 프로듀서 씨에게 선물입니다.”
코토리 씨가 나에게 머그컵을 건네준다. 향을 맡아보니 코코아다.
“피곤한데에는 역시 단 거죠.”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고 코코아를 홀짝인다. 따뜻한 기운이 위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그 따뜻함이 피곤함과 만나 노곤함으로 변한다.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놓다가는 이대로 잠이 들 것 같다.
코토리 씨는 내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이제 퇴근인가요?”
“저는 리츠코랑 의논할 게 있어서 남아있으려고요.”
“날도 늦었는데 오늘은 이만 퇴근하는 게 낫지 않나요?”
“쇠뿔도 단 김에 빼라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처리할 수 있는 건 전부 처리하려고요.”
“그런가요? 그러면 리츠코 씨가 올 때까지 이야기나 나눌까요? 최근에 바빠서 업무 외의 이야기는 못했잖아요.”
분명 자신도 피곤할 진데, 내가 사무실에 홀로 남는 것을 걱정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코토리 씨.
다시 말하지만 정말 이상하다. 어째서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결혼을 못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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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위에 코토리 씨 같은 사람 어디 없나...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5:01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코토리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