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의 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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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4, 2013 00:04에 작성됨.

기나긴 복도를 지나면, 그녀의 나라였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 [창1:3]




연못이 볕을 비추었다. 그녀는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일이 없는 까닭은 아니었다. 볕이 따사로워 그녀는 눈을 감았다. 시각 지나지도 않아 누군가 왔다.

미나세. 대답하지 않았다. 그만 돌아가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벤치에 앉아 머리를 숙였다. 어디서 새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나를 어떻게 생각해?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드니 그녀가 보고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는 눈을 그는 응시하지 못하였다.

어떻게냐니. 난 프로듀서고

난 아이돌이야?

그래.

그뿐이야?

그는 다시 땅을 보았다.


난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 아니어야 해.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눈부신 햇살을 그녀가 가리고 있었다.


날 누구라고 생각해?

...누구냐니.

내 이름은 미나세 이오리.

유서깊은 미나세 그룹의 후계자.

그리고, 네가 이전에 말했던 허황된 발언.

톱 아이돌을 만들어내겠다는,

그 헛된 꿈을 이뤄준 사람이야.

그리고 그런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하고 있어.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뭐가 더 부족한거야?

뭐가 더 필요한거야?

필요한 건 다 줄 수 있어.

없는 건 다 만들 수 있어.

어떤 것을 원하는거야?

어떤 것을 바라는거야?

원하는 건 모두 다 주겠어.

바라는건 모두 다 이루겠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줄게.

대신 내가 요구하는건 딱 하나뿐이야.

그는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 어떤?

사랑.

그녀는 고개를 치켜세우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잠시간 둘은 말이 없었다.

미나세. 나는...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를 보았다.

잔말 하지 말아주었으면 해. 내가 원하는건 대답 뿐.

예, 아니오. 두개로만 답해줬으면 좋겠어.










처음의 순간을 기억했다.

기나긴 복도를 지나면, 그녀의 나라였다.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그를 쳐다보던 그녀가 있었다.

뭘 보냐는 듯이 시큰둥하게. 흥미를 숨기고 무표정하게.

어린 감정은 토끼에 담아둔 채로,

두려움은 모두 머리띠에 매어둔 채로,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그를 맞이하던 소녀가 있었다.

누구냐며 묻던 그녀의 얼굴을 기억했다.






그는 넥타이를 바로 매었다. 첫 출근이었다. 사장과 사무원의 얼굴은 보았으나, 담당하는 아이돌의 얼굴은 본 적 없었다. 사무원은 아이돌을 할 인상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어렴풋이 본 것 같은 기억이 났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는 문을 열고 힘차게 인사를 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30분이었다. 9시가 출근 시간이니,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누구야?

뒤늦게 돌아오는 말소리. 인사를 한지 20초는 지났을 무렵. 응접실에서 들려오는 맑은 소리를 들었다. 그는 꺼내던 서류를 내버려두고 응접실의 문을 열었다.

테이블엔 홍차. 옆에는 토끼 인형을 끼고, 느긋하게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녀.

멜로디를 만드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흥얼거리던 중이었을까.

당신, 누구? 그는 멍해졌던 정신을 되돌렸다.

아,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프로듀서인데...

프로듀서?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진짜로?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미덥지 않다는 듯.

하아... 한숨을 내쉬고는, 홍차를 한모금 마시고 내려놓는다. 내 이름은 미나세 이오리. 그녀는 말했다.

미나세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아. 미나세 그룹.

굉장하네. 그는 말했다.


내가 아니면 소용이 없어. 그녀는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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