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어딘가의 공원.
공원 안 언덕 위의 벤치에 앉아, 키사라기 치하야는 달을 바라본다.
찬 바람 때문인지, 혹은 그녀의 심정 때문인지, 별도 뜨지 않은 어두운 겨울 하늘 가운데에 걸린 한밤의 보름달은,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푸르게만 보였다.
한숨을 내쉰다.
허옇게 입김이 올라온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한숨과 함께 그녀의 가슴속에 있는 감정도 같이 흩어져 버렸다면, 차라리 시원했을터다.
그녀는 다시 달을 바라본다.
참고있던 그녀의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한 방울 흐른다.
둑이 터지듯, 한 방울로 시작한 눈물이 두 방울, 세 방울 차츰차츰 늘어가더니 그녀는 차마 달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떨구며 흐느낀다.
하지만 터지듯이 흐르는 눈물로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차가운 기억- 그것은 오늘, 낮의 일이다.
그녀의 절친, 아마미 하루카는, 그녀가 꿈에도 그리던 돔에서 콘서트를, 그것도 단독으로 열게되었다.
톱 아이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녀도, 프로듀서도 연신 바라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다.
"프로듀서씨, 돔이에요! 돔!"
무대에 선 그녀는, 대단했다.
정말로 태양이 질투할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공연장 제일 앞좌석에 앉아서, 다른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그녀를 바라보았고, 이따금 공연하는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기도 하였다.
퍽 자랑스러웠다.
덜렁대고, 실수하고, 그럼에도 연습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지금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며 어쩐지 감개무량한 마음도 들었다.
주위의 다른 관객들이 같이 노래를 부르면, 덩달아 같이 노래를 부른다.
같이 박수치고, 같이 함성하고.
마치 그녀에게 보내는, 축하의 팡파레와도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슬쩍 주위를 둘러본다.
사무소의 모두들, 심지어는 사장마저 와서 구경하고 있는 와중에, 단 한명만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가 애타게 찾고있는 존재는 아무래도 그녀와, 하루카와, 그리고 사무소의 다른 아이돌들을 이 자리까지 올려놓은, 프로듀서일 것이다.
오늘같은 날에도 영업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류구코마치와 프로듀서인 리츠코마저 와서 관람하고 있는데, 하루카를 직접 여기까지 오게 한 주인공이 이 자리에 없을리가 없다.
그리고, 그녀는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무대 뒤에서 조그마하게 보이는, 사실상 그녀가 앉아있는 외곽에서만 볼 수 있는 뒷편에, 언제나의 양복과 안경을 쓰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하루카를 바라보고있는, 프로듀서가 있었다.
대단히 자랑스러우리라. 대단히 벅차리라.
그가 사무소에 왔을 때만 해도 일거리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던, 그런 그녀를 여기까지 올려놓았으니.
하지만, 그의 눈빛은 단순히 벅참과 감동에서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치하야는 그때 그것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프로듀서의 눈빛에는, 어딘가 열망하는 눈빛이, 선망하는 눈빛이,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 같이 존재하고 있었다.
치하야는, 공연 와중에는 그렇게까지 날카롭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음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관객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하루카는, 정말로 톱 아이돌이 되어 일약의 대스타가 된 것이다.
치하야와, 사무소의 모두는 무대 뒤의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선물을 건네주며, 축하의 말을 건네려고 기쁜 마음으로 향했다.
헌데 그곳에는 하루카가 없었다.
프로듀서 역시 없었다.
프로듀서야 무대 상황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체크할 것이 있으니 없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공연이 끝난 아이돌이 대기실에 없다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사무소의 다른 아이돌들과 사무원, 사장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치하야는 잠시 바람을 쐬고 온다는 명분으로 대기실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어딘가 촉이 왔던 모양일까, 그녀는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자재실로 향했다.
꽤 어둑어둑한 곳이고 인적도 드문곳이지만, 그녀 자신도 굳이 이곳으로 향한 이유는 정말이지 몰랐다.
그저 발가는대로, 왔을 뿐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정말 아무도 없거나, 스태프 몇명만이 정리를 위해서 잠시 왔다갔다 할 뿐이겠지만, 그 곳에는 오늘의 주인공, 하루카와 무대 정리를 체크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 분위기 탓이었을까,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치하야는 숨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둘이 나누는 대화는, 아무도 없는 탓이었는지 똑똑히 들렸다.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며, 살짝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하루카는, 조심스레 말했다.
"저, 그러니까, 프로듀서, 저, 이제 톱 아이돌이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러자 프로듀서가 그녀의 말을 가로채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겠어. 그러니까..."
치하야의 심장이 뛴다.
격하게 뛴다.
그녀의 전신을 흔들듯이, 까딱하다간 저 두사람까지 들을 정도로 요동친다.
하지만 치하야의 가슴속은, 점점 서늘하게, 싸하게 식어간다.
그녀 자신도 저 두사람을 자신이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이미 눈치채고 있는 탓인지, 쿵쾅쿵쾅 뛰며 뜨거운 피를 뿜어대는 심장에 비해 그녀의 속은 점점 얼어붙고있다.
숨을 내쉬면 서리라도 생길 듯 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하루카. 그, 여, 연인으로써, 말이야."
말하고도 부끄러웠는지, 프로듀서는 슬쩍 시선을 하루카의 눈에서 돌렸지만, 강하게 끌어안아버린 하루카에게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눈동자가 흔들린다.
하지만 이내 그도 그녀를 끌어안았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프로듀서! 앞으로도, 쭉, 계속이요! 헤헤헤"
그리고는, 둘은 웃는다.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치하야에겐, 무언가 속에서 윽 하고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속에서 끓여진듯이, 뜨거운 눈물도 솟아오르는 듯 했다.
치하야는 그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더 있었다면 그 곳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는 것이 들통났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아마 그녀는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멀쩡히 서있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대기실로 돌아오고나서, 그 두사람도 같이 들어왔다.
손을 잡고서. 그리고 어딘가 쑥쓰럽지만, 또 대단히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
대기실의 모두는 하루카에게 선물과 축하인사와,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고 있었다.
키사라기 치하야도, 그녀에게 가서 선물을 주며, 정말로 기쁘다고 말해주었다.
거짓은 아니었다.
하루카는, 그녀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했는지, 그녀 역시 감동해버려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치하야는, 대단히 기쁘지만서도, 또 어딘가 대단히 허전하기도, 쓰라리기도, 무언가가 찌르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축하 의미의 회식이 있었고, 여러가지로 서로 그날의 기쁨을 즐긴 뒤에, 헤어졌다.
모두가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며 이제 해산할 순간이다.
그리고 치하야는, 하루카와 프로듀서가 손을 잡고, 함께 웃으며 함께 집으로 가는 것을,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그림자마저 행복해 보였다.
그 둘이 보지는 않았지만, 치하야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작별인사.
많은 의미가 그 안에 녹아있겠지만은, 그 흔드는 손길에 싸늘한 푸른색 네온사인이 비추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치하야는 어디론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주 오던 공원에 와서, 인적없는 언덕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 이윽고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생각한다.
프로듀서가, 자신에게는 해주지 않았던 그 말을.
그리고 그의 속마음을.
사실은 이미 예전에 알아차렸지만-
그녀가 깨달았을 때는, 역시 너무나 늦어버렸다.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적막이 깨진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하지만 입김이 허공에 스러지듯, 자기 자신에게로의 물음도 같이 사라졌다.
"왜 이제 와서 눈물이 흐르는 거야?"
또 다시 묻는다.
하지만 역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톡 톡, 물방울만이 부딪혀 물자욱만을 남긴다.
쓰라렸다.
추위때문일지도, 그럼에도 꽤나 얇게 입고있는 그녀의 옷차림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감정이, 그곳에 들어가 더더욱 상처를 벌려놓는 듯 했다.
대단히 긴 시간이 흐른 듯 했지만, 그녀가 이 벤치에 앉은지 아직 채 이십분도 되지 않았고,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그녀는 문득 시간이 미쳐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있었다.
그녀는 다시 하늘을 본다.
먼 하늘을 본다.
저 먼 하늘 아래엔, 하루카와 프로듀서가, 함께 걸어가고 있을 터이다.
그리고는 프로듀서가 항상 보여주곤 했던, 그 상냥함을 생각한다.
그 눈빛과 말을 생각한다.
그녀를 이 상황까지 오게 한, 그 눈빛과 말을.
마치 거미처럼- 그녀를 여기까지 끌어온 그것을.
하지만 프로듀서는 없다.
이곳에, 그녀의 기억속에, 그녀의 가슴속에 상냥함만을 남겨두고서, 그는 없다.
그는 그녀-하루카와 걷고있다.
그가 상냥하다는 것, 그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무엇도 없다.
차라리 너무나 자연스럽다.
상냥하지 않은 그는 도저히 연상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치하야는 프로듀서가 자신의 곁에 있어줬던- 아직은 그녀가 믿고 있었던 그 때를 생각하며, 지금의 상황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허나 그 생각이,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몰아치는 감정은 그녀의 머리속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끌어주었던, 그 때의 기억이 그 때의 감정과 함께 떠오른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우울함.
들어오는 일거리는 없었고, 오디션은 번번히 떨어졌고.
간신히 어느정도 위치에 올라서자 라이벌 프로덕션의 악의적 기사에 슬럼프에 빠져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을 때.
완전히 얼어붙어서 다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한 그녀의 가슴을 나시 녹여준, 그 프로듀서를, 그 때를 치하야는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왔던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견디게 해주었는가.
치하야는 점점 그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참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져간다.
그에 대한 애정 역시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여기에 없다.
그녀와 그녀가 앉아 있는 벤치만이 덩그러이 놓인 언덕 위에, 겨울밤 푸른 달이 그곳에 비춘다.
그리고 그녀는 일어났다.
그리고는 올라왔던 길과는 반대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지나간 길에는, 그녀의 발자국과, 몇개의 물자국들만이 생겼다 사라진다.
그리고 텅 빈 공터에는, 이젠 아무도 없었다.
쓸쓸한 찬 바람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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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들으면서 썼습니다!
아무래도, 첫 가사에 달이 들어가니 치하야가 팟 하고 생각나기에...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8-05 23:16:01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17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치하야가 이럴지언데 다른 아이들은...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맞죠?
노래 좋습니다! 하지만 치하야는 조금 슬퍼보이네요.
그런데 치하야 메인인데 큿얀유우의 치하야 3대요소가 없어!
왠지 어울리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