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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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4, 2013 00:57에 작성됨.

미키와 이오리 이야기입니다. 약간의 백합 성분이 있으니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지금 백스페이스를 눌러 주세요.
글을 보시면서 Maroon 5 - Sunday Morning를 들으면서 읽으면 더 좋습니다 ㅎㅁㅎ..



 아침 일찍부터 사무소가 시끄러울 때는 보통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령 아미와 마미가 스케쥴이 없어서 사무소에 죽치고 앉아 들어오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장난을 치고 있는 경우가 그렇고, 남자 기자가 사무소에 방문했는데 사무소에 유키호가 있을 때도 사무소가 비명으로 가득 메워지곤 했다. 혹은 리츠코가 류구코마치나 프로듀서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할 때도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오늘 아침 사무소가 시끄러운 이유는 조금 달랐다.
 “당장 일어나란 말이야! 스케쥴이 산더미 같은데 사무소에서 잠만 자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마빡이, 시끄러운 거야...”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가장 껄끄러운 상황인, 미키와 이오리가 하루 종일 스케쥴이 겹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기획특집이라나 뭐라나 하는 일로, 하루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잡지 화보 촬영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 둘, 상성이 안 좋은데...”
 “프로듀서, 뭔가 말했어?”
 “아, 아니야. 아무것도.”
 미키를 깨우려고 끙끙대는 이오리를 보고 있자니, 프로듀서는 한숨부터 나왔다. 이 둘을 오늘 하루 동안 어떻게 데리고 다녀야 할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빨리, 일어, 나!!”
 프로듀서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반쯤 소파에 걸터앉아 있던 미키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던 이오리는 힘을 주다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는 바람에, 그녀와 뒤엉켜 소파에 쓰러졌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일어나라고! 프로듀서도 보고만 있지 말고 일으키란 말이야!”
 “마빡이 피부가 보들보들해서 안고 자고 싶은 거야...”
 “무, 무슨 소리야!!”
 이오리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미키의 밑에 깔려 팔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미키를 간신히 차에 태울 수 있었지만, 미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 안에서 또다시 몸을 기댄 채 잠들어버렸고, 이오리는 조수석에 앉아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자는 모습을 힐끗 볼 뿐이었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되네. 왜 미키를 나랑 붙여놓은 거야?!”
 “둘을 동시에 촬영에 내보내는 일이 흔하지 않으니까. 기획이 이득이 될 것 같으면 사정 안 보고 받아들이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믿음이 안 가는 프로듀서 주제에 꽤 정론을 말하네.”
 그렇게 말하고 이오리는 다시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쳐다보았다. 누가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일어나지 않을 듯 아주 평화롭게 누워 잠든 금색의 괴물체를 보며 다시 한숨을 짓는다.
 “정말이지, 이렇게 세상모르고 자도 되는 건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입꼬리가 슬쩍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지 못한 듯하다.

 어찌어찌 화보 촬영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미키는 귀신이라도 들린 듯이 벌떡 일어나 제일 먼저 차에서 내려 뛰쳐나가 버렸다. 일요일이 되어 아무도 없는 조용한 학교에 촬영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시이 양과 미나세 양은 의상을 갈아입어 주세요.”
 “의상은 어떤 걸 받나요?”
 스태프가 프로듀서에게 건내준 옷은 교복이었다. 연한 붉은색에 노란 포인트가 있는 블레이저와, 그 안에 받쳐 입게 될 흰색의 셔츠. 블레이저와 비슷하게 붉은색에 노란 체크무늬가 새겨진 플리츠스커트. 그리고 연두색과 핑크색의 목에 매는 리본이 한 세트였다.
 “연두색이 호시이 양. 핑크색이 미나세 양의 의상입니다.”
 “일단 갈아입히도록 하죠. 어이, 이오리!”
 프로듀서는 차에서 나와 대기실을 찾고 있던 이오리를 불러세워 의상을 보여주었다. 이오리는 탐탁찮다는 표정으로 의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프로듀서, 대기실 저쪽이래.”
 “...내가 들고 가는 거야?”
 “당연하잖아!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이 정도는 하란 말이야!”
 이오리는 그렇게 프로듀서를 보내고, 아까 그렇게 벌떡 일어나 나갔으면서 또 다시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아 잔디에 누워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미키를 향해 뛰어갔다.
 “미키! 얼른 의상 갈아입어!”
 “우웅... 마빡이 하루종일 너무 시끄러운거야...”
 “아직 정오도 안 지났거든! 얼른 일어나!”
 늦잠자는 딸을 챙기는 듯한 이오리의 모습을 몇몇 스태프들은 훈훈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 학교 좋은 거야! 숲 속 궁전 같은 분위기!”
 어느새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미키는, 눈을 반짝이며 학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고딕풍의 성당 같은 외관을 보니 미션스쿨인 모양이었다. 꽤 높게 쌓아올려진 지붕과 그 위에 또 높이 올려진 탑이 웅장함을 뽐냈다. 그리고 건물 가득 빼곡하게 채워진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여러 색으로 반짝였다. 학교 앞뒤로 초목이 푸르게 우거져 있어 회색의 석재 건물과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영국의 왕실 궁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기품 있는 배경이었다.
 “흥, 꽤 잘 꾸며놨네! 그래도 미나세 저택이 더 크고 아름답지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이오리도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그러고 있는 동안, 프로듀서는 촬영감독과 촬영 컨셉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계속 잠만 자더니, 오자마자 신나서 돌아다니고...”
 “마빡이도 그렇게 있지 말고 구경하러 가자, 재미있어 보이는 거야.”
 미키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같이 가자는 듯이 이오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오리는 싫은 듯이 고개를 붕붕 휘저었다.
 “금방 촬영하러 가야 하는데 어딜 가겠다는 거야!”
 미키가 뻗은 손이 무안할 정도로, 삿대질까지 해가며 미키에게 핀잔을 주는 이오리였지만, 미키는 그녀가 뭐라고 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얼굴에서 미소를 지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미키적으로는, 한동안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네 생각이잖아!”
 “마빡이도 구경하고 싶잖아? 오자마자 눈이 반짝거리는 거 다 봤는걸.”
 미키가 웃으며 그녀를 슬쩍 떠본다. 그녀의 말에 이오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키, 키이이잇!! 내가 언제 눈을 반짝였다는 거야!”
 “됐으니까 보러 가는 거야!”
 미키는 당황하여 팔을 휘저어대는 이오리의 손을 강제로 붙들고는, 학교 뒤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마빡아, 여기 좀 봐! 너무 예쁜 거야!”
 “시끄러!!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뭘 보라...는...”
 한참을 달려서 학교 뒤편을 거의 일주하다시피 해서 도착한 곳에는 자그마한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뒤에서 그녀에게 붙들려 달리느라 두 배로 지쳐서 숨을 헐떡이던 이오리도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호수와, 그 주변을 둘러싼 아름드리나무를 보며 잠깐 넋을 잃고 그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호수 가까이 다가가 물에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마치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손이 보였다. 차가운 감각만이 물에 손을 담갔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줄 정도로 맑은 호수였다.
 “예쁘다...”
 “마빡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오리는 방금 전에 일하러 와서 구경할 시간이 있냐고 소리쳤던 것은 까맣게 잊은 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이오리의 옆에 쪼그려 앉은 미키도 호수에 손을 집어넣어 한 줌의 물을 손에 담아보았다. 손바닥이 그대로 비치는 맑은 물이 손에서도 햇빛을 머금고 빛을 내고 있었다. 미키는 모르는 장소에 처음으로 와 본 어린아이처럼, 호수의 물보다도 더 눈을 반짝였다.
 “저쪽 나무에서 좀 앉아서 쉬자!”
 미키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크게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미키를 따라 나무그늘에 앉아 숨을 골랐다. 멍하니 앞의 호수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녀는 기분이 평화로워짐을 느꼈다. 둘은 나란히 앉아 호수가 바람에 일렁이며 다양한 빛의 모양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빡아, 노래 들을래?”
 “...노래?”
 “치하야 씨가 추천해 준 팝송인데, 요즘 자주 듣고 있는 거야. 잠도 잘 오는 것 같고... 아후. 마빡이도 들으면서 같이 자자.”
 “...촬영은?”
 이오리는 화가 누그러진 듯, 아까라면 촬영이 중요하다며 방방 뛰었을 법한 미키의 말에도 별 말 없이 조용하게 물어보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찾으러 올 거야! 미키적으로는 그런 기분이 들었어.”
 “...하여튼, 어쩔 수 없네. 슈퍼 아이돌에게도 휴식은 필요하지 않겠어? 니히힛.”
 미키는 이오리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블레이저 안주머니에서 작은 MP3 플레이어를 꺼내들었다. 오른쪽 이어폰을 이오리의 귀에 끼워주고는, 자신은 반대쪽 이어폰을 끼고 MP3를 조작했다. 곧 이어폰에서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감미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Sunday morning rain is falling
일요일 아침, 비가 내리네요.
Steal some covers share some skin
이불을 덮고 피부를 함께 맞대요.
Clouds are shrouding us in moments unforgettable
구름들은 이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감싸주네요.
You twist to fit the mold that I am in
당신은 나에게 맞춰서 몸을 비틀어요.

But things just get so crazy living life gets hard to do
하지만 상황은 말도 안 되게 돌아가고, 살아가는건 힘들어져.
And I would gladly hit the road get up and go if I knew
만약 네가 알고 있다면 난 기쁘게 길을 떠났을 텐데.
That someday it would lead me back to you
언젠가 그게 날 당신에게 다시 데려가 줄 거라는 걸.
That someday it would lead me back to you
언젠가 그게 날 당신에게 다시 데려가 줄 거라는 걸.

That may be all I need
그건 아마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일지도 몰라.
In darkness she is all I see
어둠 속에서 그녀만이 보여.
Come and rest your bones with me
이리 와서 나와 한 숨 돌리자.
Driving slow on Sunday morning
일요일 아침에, 천천히 운전하면서.
And I never want to leave
난 정말 여길 떠나고 싶지 않아...

 “자, 잠깐! 손은 왜 잡는데?”
 “싫어?”
 “그, 그게 아니라!”
 “마빡이도 좋으면서.”
 “키이잇!! 몰라! 나도 잘 테니까!”
 “마빡이, 잘 자인 거야.”
 “...너도 잘 자.”

 “...시간을 촉박하게 만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곧 깨워서 촬영 준비를 다시 시키도록...”
 “아뇨, 그건 나중에 하죠. 거기, 카메라 좀 갖다 줘.”
 “...예?”
 “프로듀서 씨. 이건 내 생각인데, 지금까지 이 아이들을 찾느라 보낸 두 시간 동안 촬영해서 나오는 사진보다, 지금 여기서 찍는 이 한 컷이 더 가치가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뒤에서 구경하고 있어요.”
 “아...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달, 그녀들이 촬영한 잡지의 표지로, 아름드리나무에 기대어 이어폰을 나눠 들으며, 손을 포개어 잡은 채 조용히 잠든 두 사람의 사진이 실렸다. 사진이 잘 나와서 역대 최고 수준으로 잡지가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에 기뻐한 프로듀서였지만, 아미와 마미를 대표로 시작된 사무소 동료들의 ‘호시이 부부’ 라는 놀림에, ‘다신 미키랑 촬영 안 할 거야!’ 라고 선언해버린 이오리를 달래야 했던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빨리 쓰기 연습용으로 트위터에 리퀘 받아서 '한시간만에 쓰자!' 하고 쓴 글인데 실제로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네요... 거기다 빨리 쓰고 싶다고 결말은 또 흐지부지... 역시 아직 멀었습니다... 천천히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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