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접히지 않는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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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4, 2013 18:12에 작성됨.

가을 낙엽이 물들다가 차가운 가을비에 후두둑 떨어져 버린다.
젖은 낙엽은 어쩐지 척연해보였다. 젖은 단풍색이 거리의 바닥을 가득 채웠다.
그곳을 장화를 신고 우산을 지붕 삼아 천천히 걸어가는 손이 시려웠다.
잘 가린다고 가리고 있었지만 빗물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오늘의 코디는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평소보다 짧게 입어 본 미니스커트는 바람에 살랑거려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고, 들고 있는 가방은 잠시라도 낮게 잡으면 비에 젖을 것 같았다.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짝 내리는 지나가는 이슬비 정도였지만, 그래도 가을에 같이 부는 바람은 자신을 곤란하게 했다.
그나마 머리를 짧게 짜른 것이 바람에 피해를 들 입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즈사는 천천히 거리를 걷는다.

"정말, 히토미 말을 듣고 한 번 입어 본 건데......."

연예인으로서 이정도 길이의 치마에도 익숙해져야 한다며 친구가 거의 반강제로 입힌 미니스커트가 오늘 이렇게 방해가 될 줄은 몰랐다.
그냥 걸어도 부끄러운 치마가 바람까지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태연히 이런 걸 입나 싶었다.
아즈사는 얼굴을 붉히며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정말 곤란하네...... 우산을 안 들 수도 없고."

한숨을 쉬며 그렇게 중얼 거릴 때였다.

"그럼 제가 들어드릴게요."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손을 다정하게 감싸지며 우산의 손잡이를 같이 잡았다.
아즈사는 놀라며 옆을 보니 그곳에는 자신의 담당 프로듀서가 있었다.

"어머, 프로듀서?"
"마침 지나가는 길인데 곤란해 보여서 말이죠."

프로듀서는 사람 좋게 웃으며 아즈사로부터 우산을 건네 받아 비를 가려주었다.

"고마워요. 마침 곤란할 때 잘 와주셨네요."

아즈사는 상대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이며 손을 살짝 내려 불안했던 치마 자락을 살짝 잡았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집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후후, 오프신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즈사씨 같은 미인하고 단 둘이 걷는 건 언제나 치유 되니깐요."
"어머? 후후."

능청스런 프로듀서의 말에 아즈사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해 뒤늦게 입문한 아이돌의 세계. 
많은 나이에 생각만큼 순탄치 않은 일이었지만, 이 사람이 늘 이렇게 옆에서 지탱해주어 자신은 버틸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운명의 상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돌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렇다면, 아이돌을 그만 둘 때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말을 하지 않아도 푸근했고 어딘가 근질 거리는 것이 절로 웃음이 지어지며 기분이 좋았다.
슬쩍 보니 프로듀서의 반대편 어깨가 젖어있었고, 그에 비해 자신은 들 젖고 있었다.
일부러 자신이 비에 젖지 않도록 신경쓰지 않은 것이다.
슬쩍 몸을 빼 그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려 할 때 그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비에 젖어 감기에 걸리시면 프로듀서로서 곤란하니깐요. 그, 아이돌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누구에게 변명을 하듯 그렇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팔이 자신의 어깨를 감싸는 형태가 되어 일순 연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즈사는 그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업무의 일부라면 말이죠."
"그렇죠, 프로듀서의 업무니깐요."

아즈사의 말에 프로듀서는 그렇게 맞장고 쳤고, 곧 둘은 소리를 죽여 쿡쿡 웃었다.
이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다가왔다.
아즈사는 자신의 집에 도착한 것을 보고 아쉬움을 느꼈지만, 이 이상 그와 붙어있을 명분이 없었다.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차를 대접할까?
오프니 직업정신이 투철한 그라도 그 정도 제의는 받아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민할 때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그에게 말할 타이밍을 찾고 있을 때 그는 우산을 접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저렇게 접기 힘든 우산이었나?
그는 얼굴을 가리는 높이에서 우산을 접으려 노력하면서 자신을 불렀다.

"좀 도와주시겠어요? 우산이 잘 접히지 않네요."
"어머? 그럴 리가......."

그러면서 아즈사가 프로듀서의 옆에 붙어 우산을 같이 잡았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둘의 어깨는 맞붙었고, 서로의 얼굴도 가까워졌다
그 순간, 접히지 않던 우산이 활짝 펼쳐졌고, 그 뒤에는 그와 자신의 얼굴이 겹쳐졌다.
우산은 금방 접혔다. 그러면서 우산 뒤에 드러난 그와 자신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상하게 우산이 잘 접히지 않았네요."

그는 헛기침을 하며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접는 우산을 꺼내 그냥 가려했다.

"그럼 저는 이만. 아, 방금 저기, 우산을 접으려다 실수한 거니깐요. 결코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사이를 넘어선 건 아니니, 걱정마세요."

아즈사는 멍하니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는 그런 아즈사는 보다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리며 급히 자신의 우산을 펼치려 했다.
그 때 그의 등 뒤에서 우산이 펼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즈사는 특유의 얼굴을 기울이고 손을 볼에 받치는 자세로 그를 보며 곤란하다는 듯 펼쳐진 우산을 들며 말했다.

"어머~ 이상하네요. 실수해서 우산을 펼쳤는데, 잘 접히지 않네요. 그러니깐,"

아즈사는 살짝 자신의 입술을 자신도 모르게 혀로 적셨다. 
그 모습이 어쩐지 굉장히 매혹적으로 보여 프로듀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다시 한 번, 우산 접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프로듀서는 자신의 우산을 한 번 내려다보고서 그것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러죠. 우산 접는 걸 도와주는 건 프로듀서와 아이돌 사이라도 상관 없으니깐 말이죠."

그리고 아까와 같이 아즈사의 옆에 붙어 펼쳐진 우산을 들었다.
우산의 둘의 얼굴을 가린다.
이번에는 오래도록 우산이 접히지 않는다. 
너무나 뻣뻣한 우산은 그 사이에 녹이라도 쓸었는지 모른다.
가을 비와, 가을 바람에. 
이으고, 네 손으로 잡았던 그와 그녀의 한 손만이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우산의 손잡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서늘한 가을 바람과 가을 비.
그리고 후끈한 우산 뒤의 공기.
손잡이에서 떼어진 두 사람의 손은 어딘가에서 따스한 무언가를 매만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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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접어주는 거 정도는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라도 상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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