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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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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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우리 새끼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는 걸 봤습니다. 나무는 정말 행복했는지, 소년이 나빴던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어릴 적부터 소년과 알고 지낸 친구였다면, 걔가 더는 자기가 소중히 여기던 나무한테서 줄기까지 베어 가는 건 말렸을 거라고.
근데 이걸 생각해낸 다음에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장면이라는 게...!
"네가 집을 짓겠다고 어디선가 목재를 잔뜩 구해온 게 몇 년 전이지?"
"보자... 한 2년 전?"
"네가 소중히 여기던 나무가 어느날 갑자기 가지가 전부 잘려 나간 건?"
"...2년 전이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너, 나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너처럼 눈치빠른 놈은 질색이야."
그리고 멱살잡이&죽ㅃ...
아, 거기서 읽은 책 제가 갖고 있는 거랑 완전히 똑같은 거더라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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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무의 무한한 사랑에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이기적인 주인공의 어리석음에 가슴이 아팠답니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과 함께 생각하면서
주인공이 눈 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
일찌감치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조금만 머리를 써서 나무를 번식시켰다면
'아낌없이 주는 숲'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 이야기랍니다.
그러고 보면 생식 세포라는 특수한 세포를 통해
새로운 개체를 발달시킬 수 있는 보통의 동물들과 달리
식물의 거의 모든 기관에 있는 '유조직'은
적절한 조건만 갖춘다면 완전한 식물로
분열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꺾꽂이처럼 줄기, 잎과 같은 기관에서
하나의 완전한 식물을 얻는 재배 방법이
가능한 것도 식물의 놀라운 재생능력 덕분이죠.
(사람으로 치면 손가락, 발가락 하나 자른 것에서
세포가 분열하며 완전한 사람이 또 하나 만들어지는 격)
https://idolma.ster.world/cinde-gekijou-browser/gekijous/679
(식물의 놀라운 재생능력은 신데렐라 걸즈 극장의 오싹한 소재가 되기도 했군요.)
만약 약간의 인내와 기다림으로...
아낌 없이 주는 나무의 자른 가지와 줄기, 잎에서
수천, 수백 그루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탄생했다면
주인공은 그 순진한 나무들을 통해 분명
자자손손 그 무궁한 영광과 발전을 누렸을까요?
더 크고, 더 많은 것, 더 빠른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이라면 당연한 발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늘 성급하고 어리석어서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마주하더라도
같은 실수를 언제나 반복하기 마련이죠.
순간의 이익에 눈이 멀어
생각 없이 나무를 끝없이 베고 또 베어나가며
모든 나무가 사라짐과 동시에
인간마저 사라진 '이스터 섬'의 교훈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자연의 은혜가 무한하다 하더라도
고마움과 만족을 모르는 인간에겐 유한할 것입니다.
'족함'을 아는 것이 곧 분수를 아는 것이라지만
탐욕이 미덕인 속세에선 그 이치를 실천하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루 하루 나무들이말 없이 베어지고
또 죽어가는 매 순간마다
우린 정말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일까요
돌이켜보면 나 자신 조차도,
매년 돌아오는 식목일이 언제부턴가
휴일이 아니라는 사실엔 분개하면서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도 모르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내가 과연 저기 저 산 속의
이름 없는 한 그루의 나무보다
과연 세상에 이로운 존재인가
세상이 차가워지고
사람들이 얼어붙을수록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꺼이 헐벗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론상 영원을 살아갈 수 있는 나무들에게
찰나에도 괴로워하는 인간들의 몸부림은
얼마나 가소롭고 또 우스울까요.
'대인간'이란 말은 어딘가 어색하고 또 유치하지만
'대자연'이란 단어엔 왠지모르게 수긍이 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