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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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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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차바퀴에 깔린 것인지 그대로 납작해진채로 죽어있었습니다. 옆에 검은색인 무언가가 있었는데 전 그게 내부 장기라고 생각합니다. 피는 다 공기에 닿아서 응고되고 고무타이어에 점막이 마찰되면서 까만색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처엔 평소엔 별로 본 적이 없던 노란색의 파리가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파리들은 차가 올 땐 도망가면서도 쉬 다시 와서 쥐의 시체를 탐닉했습니다. 전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낀 감정이 혐오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환희는 더더욱 아니었고요. 전 그 이름모를 쥐를 애도하고 있던 걸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구제하려 애쓰는 쥐에게 개인적인 감정만으로 연민을 품는 것이 옳은 행위일까요.
그 쥐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다 병에 걸려서 죽고 있는데. 그 쥐가 다 병충해를 옮기고 다녀서 농가에 해를 끼치는데. 그렇게 이로운 점이라곤 없는 쥐가 죽었으면 하나된 인류로써 나는 마땅히 기뻐해야만 하는 것이 도리일텐데. 어쨰서 전 기뻐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나라는 사람은 도덕을 논하지만 사실 도덕이 아닌 사사로운 감정에만 움직이는 사람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무릇 쥐의 씨를 말려버리고 쥐를 다 죽여버리고 쥐가 죽는 꼴을 볼때마다 응당 기뻐해야 하는데. 그것이 쥐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도리인데. 쥐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는데.
그 쥐가 병균을 옮겨서 누군가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는데. 아니면 적어도 해를 입혔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나는 그 쥐의 죽음을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니. 이래서야 완전히 쥐를 추도해주는 것입니다. 나는 쥐를 추도해줄만큼 삶이 넉넉했던지. 아니, 인류가 쥐를 추도해줄만큼 삶이 넉넉했던지.
나 하나 챙기지도 못하면서 사사로운 감성에 도덕성이라는 허울을 들이밀고 자기만족만 했습니다. 오늘 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 행위로 인하여 제 마음이 편해졌으니까요. 전 결국 그런 사람입니다. 천하의 이기적인 사람. 자기 기분이 편하겠다면 어떤 통념에 반하는 짓이건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
제 분수에 걸맞은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최대한 진실로부터 저를 가릴 수 있는철판을 씌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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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연민도 하고 그러는거죠.
사그라든 생명에 대한 연민과 혐오스러운 존재에 대한 갈등...
저 같은 경우는 어린 시절 모기를 잡으면서
종종 느끼곤 했던 묘한 감정의 원인이군요.
생활에 큰 불편을 주기에 어쩔 수 없이 모기를 잡지만,
생명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어린 마음에 항상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구석이 있었군요.
언제부턴가 그런 감각은 무뎌졌지만요...
비단 '쥐'뿐만이 아니라 '모기','파리','바퀴' 등의 여러 해충들을 보면
저도 일순 '저 것들 종 없어졌으면!'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정말로 지구상에 모든 그 종이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지
통쾌함보다는 두려움이 떠오르더군요.
생명에 대한 연민이나 정확한 이해가 없이,
오직 이익과 편의만으로 한 생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행한 '인종 청소'에 대해서는 즉각 반대 의견이 나오지만
인간이 다른 종을 대상으로 행한 '생물 멸종'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 거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그 죽음들로 생겨난 거대한 빈 자리에 무엇이 찾아오는 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농부가 일군 곡식을 먹는 참새나 병을 옮기는 기타 해충들을 멸종시키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던 과거 중국의 '제사해 운동'이 가져온 거대한 참상이나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녹색혁명'의 대스타가 되었던 유명한 '살충제'
DDT그 가져온 '침묵의 봄' 등 각종 생물학적 재앙을 만든 존재가 인류였으니까요.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고찰 없이 혐오와 편의에 기반한 인간의 기계적인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지 깨닫게 됩니다.
이 별은 오직 인간만이 사는 곳이 아니기에,
단순히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해서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린다면
먹이사슬로 이어진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영문도 모른채 큰 피해를 받게 되는군요.
그리고 그 여파 역시 인간에게로 다시 돌아옵니다.
피식자와 포식자가 공존하면서도 서로 간의 균형을 유지할 줄 알고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 종들이 실은 서로 긴밀히 얽혀있는 관계이기도 하고...
생물에게 어떠한 지능이나 감정이 깃들어서
이런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지 알 수 없지만
잡아 먹히는 존재와 잡아 먹는 존재가 같이 있다는 점은 어딘지 모순적이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때에 이르지 않는 다는 점에선 해탈한 현자 같습니다.
어느정도 살생을 하지만 그 정도를 넘지는 않는다.
수라와 보살의 일면이 공존한 모습...그것이 자연일까요.
자연은 인격체가 아니지만,
인간에겐 아직 이른 진리를 알고 있는 존재 같습니다.
단지 인간만이 그 허용 범위와 넘어서는 안되는 정도를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묵인하곤 하기에
필요에 의해 생명을 대량 살상해버리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른 대가로
생태계적으로 파국적인 결말을 종종 맞이 해오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다만 올 여름에도 숱한 모기와 해충들을 스스럼없이 죽이는 살생을 했지만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까닭은 아마 제가 깨달음이 모자란 까닭이겠죠.
인간 역시 (주로) 다른 생물을 잡아 먹고 사는 포식자이기에
살더라도 모든 생명을 단 하나도 죽이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하겠죠.
(때론 야생동물에게 습격받아 피식자가 되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만요...)
필요에 의해 생물을 죽이거나 이용하며 살아온
오랜 습관을 완전히 탈피하기엔 요원하지만
'과연 모기를 얼마나 죽여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수준에서
인간이 질병이나 생활 속 불편을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와 같은 문제에 대해선
과학기술이 보다 발전하여 지금보다 생물과 지구에 대해 더 잘 알기 전까진
아마 그 대답은 한동안 자연만이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프로듀서님의 깊은 고찰...저도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었네요.
거기서 인류는 자연에서 유지되던 수평적 균형을 깼어요. 한쪽이 기울어지기 시작했죠. 하지만 우리가 기울기를 극복하면. 수평을 다시 되찾거나 수직으로 균형을 세운다면 더는 위태롭지 않을 거에요. 그걸 어떻게 이룩할진 인류의 손에 달렸고요.
쥐를 죽이지 않아도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언젠가는 오길 바라지 않고 있었나 하고 전 생각해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쥐가 달고있는 병충해에 피해를 안 입을 만큼 잘 산다면 어떰까 하는.
사실 술취해서 썼던 글인데 진지한 장문의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