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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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최예근 - sping is not like a spring(춘래불사춘)
아이커뮤의 프로듀서님, 모두 안녕하신가요.
Weissmann입니다.
달력의 첫 페이지를 무심하게 뜯어내고 마주한 2월도
벌써 10퍼센트 남짓 완성되어 버렸군요,
안타깝게도 90퍼센트의 미완으로는
100퍼센트 안심하고 게으름을 피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도래하지 않는 상상 속의 현실들에 대해서만
진짜와도 같이 생생한 망상에 빠져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이지 언제부터 2월의 한 귀퉁이가 상미기한이 지난걸까요,
비단 먹을 것 만이 아닌 모든 것들에 '시효'가 있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인생'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진부함을 가슴에 새기기보단
하루가 다르게 주름이 늘어가는 피부 위에 새기는 요즘 시대엔
'살기엔 너무 늙었고, 죽기에 너무 젊다(Too old to live, Too young to die)' 는
말장난을 떠올려봅니다. 결국 모든 건 삶의 한 가운데에 있으니.
이러한 스쳐지나가는 나날들 속 인생의 무상함은
'수 천' 혹은 '수 백'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읊조리게되는 '코로나의 시대'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무척이나 슬픈 일입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쳐버리는 일상들처럼
떠나간 이들이 더 빠르게 잊혀지지는 않을까하고...
아무리봐도 시간은 인식보다 앞서가는 것(a priori/아프리오리) 같습니다.
마치 채 깨닫기도 전에 떠나가버리는 첫사랑처럼, 지나놓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하곤하죠.
하지만 눈이 모두 녹아내린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지치지 않고
'눈 오리'를 찍어내고 있고, 점점 길어지는 낮의 길이를 체감하면서 줄 지어선,
눈 오리들은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당연한 상식을 부정당한 채
본래 되어야할 '물'이 되지 못하고 죄다 '봄'이 되어야 하는 부조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부조리는 일본의 어느 만화가가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하는데,
잉글랜드의 어느 극작가는 '장미는 어떻게 불러도 장미'라고 했지만
Dihydrogen monoxide는 종종 때와 장소에 따라선
spring이 되어야만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이 이로인해 밝혀졌습니다.
'녹은 얼음'을 '물'이라 부르지 못하고 '봄'이라 불러야하는,
이른바 호부호형(呼父呼兄)이 불가한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이기에
우린 세상에 의해 종종 자신의 이름과 다르게 불리곤 하지요.
세상에, 그것이 자연의 섭리였군요.
그러고보면...
매년 느끼지만, 2월은 28일 밖에 없는지라
1월보다 3일은 더 빠르게 떠나가버릴 것만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너무나 당연한 소리이긴 하지만요.
어제였던 2월 2일은 '절분(節分)'으로 일본에서는
'남남동(南南東)'이 길한 방향(恵方)이었답니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제는 현해탄 건너에선 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대에
문득 '남남동'쪽을 바라보면서 수제 혹은 기성품 '김말이'를 먹거나
요즘 유행하는 '귀살대'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 고작 몇 줌의 콩만으로
'오니'를 쫓아내고자 어설픈 퇴마의식을 행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왠지 모르게 예나지금이나 이상야릇한 인상이 가득한
'특정 방향 응시 김말이 섭취 의식'에 대한 진지한 감상을 해보거나
장난 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무심코 던진 콩알들에 맞아 죽어나간 '오니'들의 명복을 채 빌기도 전에
오늘인 2월 3일은 '입춘(立春)'으로 아직까진 별다른 영압조차 느껴지지 않는
'봄'이 2021년의 무대에 '첫 데뷔'를 하는 날이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뉴 제너레이션즈'의 첫 무대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듯이,
'봄'을 위한 공연은 리허설도 채 끝나지 않은듯 보입니다.
폭설과 혹한이 몇 차례나 오가고도 성에 차지 않아서
'입춘' 당일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눈과 얼음과 추위를 끼얹을 예정이라니,
전성기를 막 지난 겨울은 쉽사리 은퇴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네요.
지금 당장은 살을 벨듯이 매서운 추위가 야속하기만 하지만,
사실 겨울도 한 때는 우리가 사랑하고 염원해 마지 않았던 '계절'이라는 것을...
그 언젠가 꽃들이 피어나고 봄기운이 완연하게 넘쳐나서
조금은 과하게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쬘 무렵에야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냉기를
간절히 그리워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익숙함과 마주하며 알게되겠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생이라지만
인생이 영원히 봄날이길 바란다면,
달리말하면 그건 영원한 여름과 영원한 가을
그리고 영원한 겨울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 되겠군요.
봄이건만 아직 봄이 아닌 봄을 맞이하며,
짧은 입춘첩에 덧붙여
장광설(長廣舌)을 적어보았습니다.
춥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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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막을 수 없는 것이 계절이니까요.
빼앗긴 일상에도 봄은 오네요.
작년의 봄의 기억들은
거대한 비극과 함께 실종되어버렸지만
올해는 또 어떻게 될 지...
자연은 매년 돌고 돌아도 전과 같지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항상 달라지네요.
COVID-19로 전세계가 떠들썩하게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과
변함 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앙상한 가지에 피어나는 잎새들과
다시 얼굴을 내미는 꽃잎들을 보면
새로운 희망이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간의 불행은 결국 인간의 일일뿐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문득 생각나서
왠지모르게 서글퍼지네요.
옛부터 천지는 불인하여(天地不仁)
인간 세상에 관심이 없다지만
하루 하루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죽어나가더라도
냉혈한처럼 너무나 무덤덤한 자연의 모습이
오히려 속세보다 더 기계적이고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시련의 시대 속에서
우린 또 무엇을 잃어야만 하고
또 무엇을 타협도록 강요받을까요
병든 세상의 봄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처럼
유독 근심스럽게 느껴집니다.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경구조차 이 상황을 예견하진 못했죠.
빛조차 닫지 않는 그늘 한구석에서, 눈덩이가 녹지도 못하고 사라질 때 쯤에야, 봄은 또 그렇게 지나갔다는 것을 알아버릴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봄은 또 찾아올 거고, 언젠간 찾아올 겁니다.
그 전에 우리의 유통기한이 다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그런데 조상님들은 왜 이런 겨울날을 입춘이라고 한 걸까요. 아니 중국에서 유래한 건 아는데 역법 바꾸면서 좀 같이 바꿔주지 참 사람 헷갈리게.
'생화' 대신 우리에게 '눈꽃'을 피워주었습니다.
훗날 따뜻하고 부드러운...
제대로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때까지,
이 수줍음 많은 계절은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몇 번이고...때론 비로, 때론 봄눈으로 말을 걸겠죠.
누군가는 보고 듣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들은 대개 시나브로 일어나는 법이네요.
그동안 사람들은 이미 곁에 다가온 봄날을 아직 깨닫지 못한 채
자신만의 겨울 속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봄'에 대한 인상과 기준은 천차만별이기에
누군가에겐 이미 현재인 봄이, 다른 누군가에겐 아직 먼 미래인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
이렇게보면 계절이란 물리적으로 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절대적이면서도
감상적으로 보자면 한 없이 상대적이라 느껴지는 오묘한 것이네요.
눈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흔히 옛 사람들이 농사의 편의와 일기의 예측을 위해
태양의 움직임을 구분지어 나타낸 것이 '절기'라지만
비단 별의 움직임과 지구의 위치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행동 양식도 그에따라 알게 모르게 바뀌게 되는
이정표의 역할도 하고 있군요.
현대에 들어서는 그 의미가 예전보다는
퇴색된 감이 없지 않지만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한다는 '소만(小滿)'
흰 이슬이 맺히는 시기라는 '백로(白露)'
서리가 내리는 시기라는 '상강(霜降)' 등의
소소하지만 시적인 표현들은 지금봐도 인상적입니다.
절기하면 으레 따라붙는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논란 역시
지금도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일기예보가 여러가지 국지적인 이유나
기후변화와 같은 거시적인 요인들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그러려니 하게되네요.
계절의 경계선에 즈음해선 조금이라도 빨리 변화를 찾아보고자
평소보다 엄격하게 일기 차이점을 구분지어보려하지만
사실 눈에 띄게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려면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인 경우가 많죠.
그렇기에 정작 계절의 한 가운데에는
별다른 느낌이나 감정이 없이
지나가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벌써 어제가 되어버린것처럼...
서늘한 대기를 빈틈없이 채우며
세상에 내려온
침묵의 봄.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새하얀 광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는
각별하네요.
내일 마당 앞에 쌓인 눈을 쓸 때 즈음엔
눈에 담았던 아름다운 풍경도
이내 체험 제설의 현장으로 바뀌겠지만
지금은 그냥 이대로 이 계절을
그저 바라보고 싶습니다.
마치...봄이 오지 않은 것 처럼
슬그머니 찾아온 봄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