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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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아이커뮤의 프로듀서님, 모두 안녕하신가요.
Weissmann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마 이미 알고 계셨을테지만,
많은 분들과 여러 의견들이 오가는 트위터에서
어제 갑자기 '콩나물 차(?)'에 대한 열띤 논의가 진행되었군요.
스쳐지나가는 트윗이라기엔 너무 많은 리트윗이 이루어졌고
많은 관심을 받아 이를 통해 차에 관심이 많은 여러분들의 남다른 인식과
이색적인 시각을 볼 수 있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차와 국의 차이...차와 '대용차'의 경계...
'차(茶)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
이런 논쟁은 다산 정약용의 저서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는 생각보다 오래된 주제로
이미 선대 다도인을 통해 질릴 정도로 다루어진 바 있고
어제도 역시나...차의 정체(?)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진 와중에
수 많은 '정통파'들의 반박이 이루어졌습니다.
트위터의 특성상 건설적인 토론보다는 일방적인 주장이 더 많은 느낌이었지만
소소하게 차를 홀짝이며 보기에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네요.
(위 테이블에서는 홍차, 말차를 제외하면 차가 아닙니다.)
이런 재미난 이벤트(?)와 관련해서 저 역시
차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실상 이 소모적인 논쟁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다,
스스로 돌이켜볼 때 차에 대한 식견이 미흡하기에
차에 대한 국제규격, ISO-3103을 대신 제시하며
간략하게 의사를 표명하고자 합니다.
ISO 자체가 '강제성'이 없는 국제 표준 지침이지만
'차는 이런 것'이란 국제적인 공통 인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ISO-3103의 '정의'에서 '차'란 홍차든 녹차든 Camellia sinensis (L.) 라는 종의
새순, 꽃봉오리, 잎사귀를 말려 가공한 것으로 만든 음료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볼 때 Camellia sinensis (L.) 로 만들어지지 않은 음료는
국제적 표준으로 보자면 '차'가 아니군요.
원산지, 제조방법, 작법 등에 따라 미세한 맛이 달라진다고 하나
거시적으로 보면 사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백/황/녹/청/홍/흑'차 는 모두
이 종에서 유래된 것으로 제작 과정상의 발효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저런 해학적인 해프닝으로 기억될 '콩나물차' 논쟁이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불려지는 '차(주로 대용차)'와 외국에서 인식하는 '차'에
거대한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언젠가 지하철 어느 음료 광고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차는 보이차! 일본을 대표하는 차는 녹차!
한국을 대표하는 차는 '옥수수 수염 우린 물'!' 이라
자랑스레 카피를 커다랗게 쓴 것을 보며
정말 미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나네요.
녹차나 홍차에 대한 칭송처럼
약초차, 꽃차, 과일차 등 역시 나름의 효능과 이로움이 있어
편의상 '대용차'라 부르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우려낸 물'이지 '차'라 부를 수 는 없습니다.
기호식품에 관해 일반적으로는 딱딱하게 굴지 않으려는 편이지만
무엇이든 이름을 잘못 부른다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것이고
이는 대상에 대한 '이해'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무엇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한 경계를 사전에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분명 이와 같은 '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콩나물은 콩나물의 자리가 있고...차에는 차의 자리가 있듯이...
개인적으로 손님을 다과회에 초대해서 '콩나물차(?)'를 대접한다면
굉장히 당황스럽지 않을까....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런 재미난 논쟁들을 통해 '차'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더 많아져서 '차'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은 '차'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오간 관계로
저의 '4 번째 담당 아이돌'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짙은 눈섭과 귀여운 입, 다갈색의 머리카락으로
아이돌마스터 캐릭터 중 가장 긴 머리를 가진
'차 애호가 아가씨'
아이돌마스터 시리즈 유일무이의 '홍차 아이돌'
아이하라 유키노입니다!
'국화꽃', '여우', '태양' 그리고 '차나무'.
점점 뭔가 담당 아이돌 유닛이
한 폭의 풍경이 되어가는 느낌이네요.
모쪼록 아이커뮤 프로듀서님들께서도
맛있는 차를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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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반찬과도 간편하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녹차에 말아 먹는 밥'이군요.
밥의 은은한 달콤함과 녹차의 향긋한 향미가
잘 어우러진 멋진 음식이라 생각합니다.
흔히 유명한 교토식 예절로 '오차즈케라도 드시고 가시지요?'라는 말은
'더 이상 보기 싫으니 어서 빨리 꺼져달라.'라는 의미라는데
늘 밥을 먹으로 오는 슈코에게 농담삼아
오챠즈케를 내놓았더니 갑자기 극대노해서
눈에 불을 켠 채 밥상을 뒤엎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가버리고
그 이후로 프로듀서 집에 발을 들이지 않는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물론 그 마저도 '장난'의 큰 그림의 일종이라
뜻밖의 반응에 놀라서 안절부절 못하는 프로듀서에게 사에가
'슈코가 원하는 비싸고 맛있는 것'을
사주도록 바람을 잡으며 구슬리고
슈코는 짐짓 프로듀서의 모습을 보면서
마지못해 화를 푸는 척 하며 재결합 하는 스토리...
결국 '하고로모코마치 2인조'가
프로듀서의 지갑을 갈취하는 결말이겠군요.
물론 그런 슈코라도....저는 OK 입니다. (아무리 봐도 슈코 광인..)
확실히...한국에 처음 커피가 들어왔을 당시 그 생소한 음식을 지칭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커피'를 한자의 음을 따서 가배(珈琲)라 부르거나
'서양에서 마시는 탕'이라는 뜻으로 '양탕(洋湯)'이라 부르기도 했다니,
당시 사람들에겐 서양에서 마시는 차의 일종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커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여겨지는 유길준의 '서유견문'에는
커피가 1890년대 무렵 청나라를 통해 홍차와 함께 조선에 전래되었으며,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사람들은 주스,커피, 홍차를 마신다'라고 쓴 것으로 보아
당대의 커피는 누룽지로 만든 곡물차처럼 '식후에 마시는 입가심용 음료'였던 모양입니다.
실제 조선의 커피 애호가로 유명했던 '고종 황제' 역시 식후 커피를 즐겨마셨으니
당시 가배차는 일종의 서양식 숭늉...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의 '차'라기보단 '대용차'였던 셈이네요.
그러나 '식후 아메리카노'가 보편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에는
커피를 '차'라는 개념의 하위 항목으로 두기엔 너무나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커피=대용차'라고 과거처럼 생각하기엔 힘들어진 것 역시 사실이네요.
(이건 커피 애호가분들의 말도 들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9)
차에 관해 중국 고대 신화와 영국의 아편전쟁과 같은
나름의 전통과 이야기들이 있듯이,
커피도 이슬람교의 음료였다가 교황의 축복을 받고
서양의 근대를 열어젖힌 커피만의 고유의 역사가 있습니다.
커피는 커피의 맛이, 차에는 차의 맛이 있기에
더욱 이채로운 것이겠죠.
Camellia sinensis L. 과 Coffea arabica L.
수 많은 문학인과 철학자들, 예술가들이 사랑한 음료들...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릴 것 없이 훌륭한 전 인류의 기호품이네요.
그 관점에서 볼 때 콩나물국은 차가 아닙니다.
아니 차에다 밥 대충 말아먹는거를 어딜감히 뜨끈한 콩나물국밥에 비빕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대충 맨밥(김치포함)에 차 한잔 말아먹고 왔다는 소릴 들으면,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동정심의 명령에 따라 빈말이나마 콩나물국밥을 추천해줘야죠.
제가 국밥충은 아니지만 콩나물국은 차가 아닙니다. 반박하실 분들은 녹차국, 혹은 녹차잎국의 존재를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문난적 같은 놈들아. 아 녹차나물은 차가 아니라 반찬임 ㅅㄱ
언어적인 면에서 볼 때에도 '차'의 의미는 확고합니다.
프로듀서님의 말씀처럼 사람의 이름과 달리
'사물들의 이름'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언어의 사회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특성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상식적인 것들'을 가능케하기에
사회 속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원만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입니다.
가끔 이런 상식을 뛰어넘는 기발한 발상이 담긴 말들이 회자되며
개중에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고 '뉴 노멀'이 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오랜 세월동안 다져온 기존의 사고의 틀을
뿌리부터 뒤흔들 정도의 놀라운 일들은 웬만해선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고기국'을 '소고기 차'라고 부르거나
'된장국'을 '된장 차' 혹은 '미역국을' 미역차라 부르는 일은
분명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는 비단 한국어만이 아니라 외국어에서도 마찬가지로
상식적으로 '스튜'를 '차'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간혹 세간에는 '어묵국물 티' 혹은 '라면국물 티'라는 것이
혁신적인 잇템으로 불리며 불티나게 팔리는 모양이지만
이는 '티백형 육수 재료'를 편의상 일컫는 것이지
'육수' 그 자체가 '차'라는 말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나저나...반대로 생각해보면 '국'을 '차'라고 부른다면
'국'에 대해서도 실례가 아닐까 싶네요.
'국'에도 '국'만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데...
이것을 알아주지 않고 대충 물에 넣고 끓여 내는 방식이
그냥 비슷해 보이니 죄다 '차'라고 부른다면
그건 정말 '국'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운 일 아닐까 싶습니다.
'국밥집'이 '차밥집'이 되고 '찻집'이 '국집'이 되는 세상.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일상'이 '비일상'이 되는 세상.
찻잔이 국 그릇이 되고, 국 그릇이 찻잔이 되는 세상.
........이쯤되면 어이없음을 넘어 충격과 공포네요.
경천동지의 코로나 시국에나 있을 법한 실로
무시무시한 발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부하다면 진부하지만
차는 찻잔에 담고, 국은 국그릇에 담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점심으로 콩나물국 먹었다고하면 잘 먹었구나하지만 녹차먹었다고하면 미친놈소리듣습니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 하여 함께 일컫어지는
식사와 차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사실 엄연히 각자 고유한 영역과
각각의 행위만의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죠.
굳이 영양 성분표를 가져올 것도 없이
'차'는 '식사'를 대신할 수 없고,
'식사'도 '차'를 대신할 수 없는 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얼핏 듣기엔
모두 '무언가를 함께 먹자'는 의미이지만
"같이 밥이나 한 번 먹지?"가 주는 느낌과
"같이 차나 한 잔 할까?"가 주는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하는 이야기와
같이 차를 마시며 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 무게와 종류가 다를 수 밖에 없겠죠.
육신을 보듬어주는 밥 한 끼,
영혼을 달래어주는 차 한 잔,
그 모든 것이 일생에 있어
삶이란 멋진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한
고귀한 행위입니다.
아이커뮤의 프로듀서님들께서도
매 끼니 잘 챙겨드시고 향기로운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시는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