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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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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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다. 오늘도 이치노세 시키는 실종됐다. 비 오는 거리 속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날씨가 너무 좋지 않다. 이런 날에 나가면 감기에 걸릴 텐데. 난감한 일이다.
담당 아이돌의 실종은 프로듀서에게는 중대 문제다. 어디서 이상한 일을 당할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상한 일에 말려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이돌이 사라졌다는 것은 프로듀서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 하나 생긴 셈이다. 열 일 다 제치고 시키를 찾으러 나선다. 남은 일은 사무원 씨에게 사정하다시피 하고 떠맡기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니, 가볍다고 말하면 안 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온 다음이 불편해질 테니까. 살짝 사무원 씨의 눈치를 보고 조금은 둔탁하게 사무실을 나선다. 이제 시키를 찾으러 간다. 단 한 명의 이치노세를 찾으러 간다.
이치노세 시키가 발견되는 곳은 의외로 단순하다. 회색 도시의 다리 밑이나, 회색 도시의 건물 구석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회색 도시의 거리 어딘가에서 자신과 같은 신세의 고양이나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발견하기를 바라듯이 고양이나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발견 당하는 것은 이치노세(一ノ瀬), 발견하는 것은 이름 없는 남자. 방향 없이 흐르는 물길을 어떻게 잡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생각 외로 어떻게든 잡을 수 있다. 오히려 방향이 없기에 잡을 수 있다. 멈춰선 흐름은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치노세는 커녕 손안의 빗물조차도 잡을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이치노세를 찾으러 간다. 그녀는 어디선가에서 멈춰서 회색 고양이처럼 나를 보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나는 어느 다리 밑에서 시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회색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고양이입으로 웃고 있는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익숙한 광경, 익숙한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시키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 주었다. 온 세상의 먼지가 달라붙은 비를 맞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비를 막아 주었다. 시키는 내가 다가온 것도 몰랐는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냐하하, 안녕. 평소처럼 인사하는 시키의 모습에 안심하는 내가 있다. 비를 맞지 않고서도 고양이를 쓰다듬을 수 있는 시키의 모습이 있다. 그 모든 자취가 모여 여울이 된다.
그러나 프로듀서로서 해야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자주 프로덕션을 비워선 곤란하다. 조금만 자제해 달라고 말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집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시키가 속한 고양이과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자유로이 세상을 여행하는 길고양이를 억지로 상자에 넣을 수는 없으니까. 아름답고 편하게 상자를 꾸며주고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실종하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만, 간 곳을 알 수는 있게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시키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잘 지켜주고 있다.
한참 고양이를 쓰다듬던 시키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를 따라 나도 살짝 표정을 풀어본다. 시키가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으로 나의 손을 잡는다. 그래, 오늘도다. 오늘도 우리는 실종을 가장한 일탈을 한다. 행방불명을 가장한 탈선을 한다. 평범한 사이라면 하지 않을 실종. 나와 시키는 비를 맞으며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가지고 왔던 우산은 고양이에게 넘겨준 채다. 비가 아직 내리고 있지만 상관없다. 우리에겐 돌아갈 집이 있으니까. 나에게 이치노세 시키란 집이 있는 것처럼.
시키가 발견된 다리는 우연히도 내가 사는 맨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익숙한 얼굴로 온통 젖어버린 소녀를 욕실로 안내하고 주방에 들러 따뜻한 음료를 만든다. 핫초코, 모카라떼, 모카치노... 만드는 음료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달콤한 성분은 꼭 빼놓지 않고 첨가한다. 시키가 좋아하는 성분이고, 소녀에게 꼭 필요한 성분이니까 꼭 넣는다. 음료를 다 만들어냈을 즈음 욕실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소녀 하나가 달려 나온다. 여자아이고 아이돌이니까 좀 더 신경 써달라고 말했건만. 이치노세 시키라는 불완전성의 화합체는 관찰자의 의도를 비웃는 순수한 결정체처럼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냐는 듯이 나에게로 다가와 팔짱을 낀다. 그 바람에 모양 좋게 부풀어 오른 행복이 가감없이 내게로 존재감을 보인다. 더할 나위없는 지극한 행복.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키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고양이처럼 갸르릉대며 나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시키의 몸에서 물방울들이 흐드러지듯이 튕겨져나온다.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걸으면 백합. 나는 그 모습이 지중해에 물방울처럼 고고하게 떠 있는 섬이 고향인 여신처럼 보였다.
고마워. 내 입에선 솔직한 감사가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비어져 나온 말이었다. 그 말에 시키는 몸을 내게서 천천히 떼며 나의 앞으로 돌아 나왔다. 항상 웃고 있던 얼굴에는 놀란 표정만이 가득했다. 내가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한 적이 없던가. 내 앞에서 풍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키를 보면 그런 모양이다. 평소에 더 말해둘걸. 그럼 저 소녀 같은 얼굴을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달빛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달의 여신의 모습으로 빛나는 시키를 보며 다짐한다. 몇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해 주자고, 나에게 돌아갈 장소가 되어주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해주자고.
시키에게 방금 탄 핫초코를 건네주자 골골거리는 소리가 답신으로 들려온다. 그녀만의 모스 부호다.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전신이다. 흐름이 멈춰 잔잔한 호수가 되는 이곳에서, 이치노세 시키는 표류를 가장해 매혹한다. 그렇기에 나의 흐름 또한 시키에게 벗어날 수 없어 멈춘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이 우리를 엿보다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와 함께 시키의 손도 나의 손을 타고 미끄러진다. 이 손이, 이 눈빛이, 이 모든 것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곳이 내가 있을 곳. 이 소녀가 내가 있을 곳이다.
후기) 늘 그렇듯이 시간은 많이 투자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창작글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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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그런 그녀를 찾아나서는 프로듀서.
일본에서 취미로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사실은 이미 해외 대학물을 먹었고
뉴욕에 있는 아버지 연구소에선
연구실 경험도 제법 있는데다가
미국에서 총기도 다뤄보았고,
아이돌이라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종종 아이같은 면도 자주 보이고
여전히 아버지와 관계가 껄끄럽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치노세 시키가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는
프로듀서가 문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답니다.
개인적으로 가출소녀 '슈코'를 담당하고 있어
슈코의 자유로움과 시키의 자유로움의 차이를 생각하게 되네요.
슈코의 자유로움은 '어느정도 예견된 일탈'이라면
시키의 자유로움은 '예상 밖의 일탈'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돌 모두 천방지축인 점은 같지만
슈코가 적어도 돌아온다는 흔적은 남겨두고 놀러가버리는 타입이라면
시키는 알아서 찾아보라고 흔적도 없이 '증발'되어버리는 스타일일까요
슈코의 '가출' 혹은 '떠남'은
비록 지루한 풍경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자의와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쫓겨난 타의가 섞인
복합적인 면이 있지만
결국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일종의 '여행'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고향에 돌아와 부모와 해후하기까지
수 년이 걸렸지만 슈코 역시 고향이나 부모와 연을 완전히
끊어버릴 의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보이저 이벤트를 통해서
'지금은 아이돌이 되어 저 멀리 여행을 떠나 있지만...
결국은 언젠가 '너'에게로 다시 돌아갈거야'를 약속한 점에서
슈코와 프로듀서의 관계가 비교적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키의 경우는 정말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실종이라 여겨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고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닌게 아니라...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인 슈코라도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갑자기 뉴욕으로 친구(프레데리카)와 함께
국외로 실종해 버리는 수준의 우발성은
매우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시작부터 뜬금없이 해외여행 가버려 매우 놀랐던
레이지 레이지 이벤트.)
시키의 실종은 프로듀서가 있든 없든
당장 자신의 기분대로 이루어지기에
더욱 종잡을 수 가 없군요.
그렇기에 슈코가 여우(개과)라면,
시키는 그보다 한층 길들이기 어려운 고양이로
일컫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시키양을 이해하고 또 사랑할 수 있다면
누구보다 자신의 따스한 내면을 엿보여주는 귀여운 고양이를
어루만질 수 있는 훌륭한 '집사'가 될 수 있겠지요.
흔히 사람이 고양이를 길들인다기보다는
사람이 고양이에게 길들여지는 것 처럼 말입니다.
피자에 타바스코 핫소스의 향미를 즐기는
고양이 혀는 아닌 고양이 시키냥.
그런 그녀에게 건네는 따스한 코코아 한 잔으로
오늘도 곁에 머물러 있게 만드는 프로듀서야말로
진정한 '여신의 집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멋진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