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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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39. 그것이 당신의 행복이라 할지라도
"츠무기. 그러므로 간절히 부탁하니..."
"읏... 당신..."
"이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그리고... 부디, 행복하기를."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별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 필연적인 것이기에, 언젠가는 츠무기와 작별을 할 것이라 막연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이별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고 고개를 돌려 출국 수속장으로 걸어가려는 그때,
"잠깐...! 잠깐만요...!"
뒤에서 애타는 부름이 들려오자 힘겹게 옮기려던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이렇게 계속 츠무기의 부름에 정지하게 되면 오늘 안에 출국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그렇지만 애달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는 도저히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이번만 츠무기를 돌아보고, 그 뒤로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뒤를 돌아보자 츠무기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프로듀서...!"
1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프로... 어?"
눈물을 글썽이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츠무기는,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무언가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자신의 손을 몇 번이고 쳐다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영문을 모르는 행동에 보는 사람이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 어째서...? 아까 저 멀리로 떠나버렸는데..."
"응?"
"프로... 듀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건가요...?"
"아, 아니... 이제 떠나려고 하는데... 츠무기, 너 괜찮아?"
이제 슬슬 가야되는데. 츠무기가 보이는 반응이 이상하기도 하고 걱정되어서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백일몽을 꾸다 온 사람처럼 츠무기는 얼이 빠진 채로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러는 것인지 전혀 알려주지는 않았다.
"제게 주어진... 다른 선택지..."
"츠무기, 너 정말로 괜찮은..."
"저의... 친구."
그러다 츠무기는 이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결의에 찬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며,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변변치 못하기 짝이 없군요. 알고는 있습니까?"
"어... 어?"
"당신이 꼴사나운 사람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무책임하게 자신의 책임에서부터 도망가려는 사람이라고는 알지 못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군요."
"아니 잘만 말하고 있잖아..."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마냥, 무슨 바람이 든 건지 츠무기는 특유의 삿대질을 하며 속사포로 매도의 말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당황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을 수밖에. 아까까지 어쩔 줄 몰라하며 울먹이던 어린 소녀는,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당당한 기세로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기세에 눌려서 위축되자, 츠무기는 이어서 질타하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어떻게 포장하든 간에 저 위험한 곳으로 떠나려는 건, 당신이 죽으려고 생각해서. 그저 죄책감 하나로 인해 죽으려고 생각해서이지 않나요?"
"아, 아니... 그건..."
정곡을 찔렸다. 츠무기는 순진하기에, 숨기고 있던 본심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아마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전부터 알고 있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며 넘겨짚기 일쑤였던 그녀와는 달리, 지금 눈 앞에 서있는 츠무기는 본질을 꿰뚫어 보고는 날카롭게 자신의 프로듀서를 질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약속했잖아요. 당신은 이전에 한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리는 그런 형편 없는 사람인가요?"
"약속..."
"하아... 기억나지 않는 건가요, 그 약속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따라 나오세요."
"자, 잠깐만! 그렇게 서두르면 넘어진다고..."
어느새 짜증난 표정을 짓고 있는 츠무기에게 손을 낚아채이고는 공항 밖으로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녀의 손을 뿌리치는 건 일도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성큼성큼 걸어가는 츠무기의 기세에 밀려 얌전히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슬슬 출국 수속을 진행해야 하지만, 어쩌다 보니 츠무기에게 이끌려 공항 외부로 나오게 되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샛노란 노을이 점점 어두워져서 얼마 있지 않으면 해가 완전히 질 거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원래라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으로 인해 마음이 조급해져 갔겠지만, 눈 앞에서 점점 져가는 노을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렇게 얼마간 아무 말 없이 츠무기와 함께 눈 앞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프로듀서."
"응..."
"그때 했던 약속. 잊지... 않았죠?"
"..."
얼마 전, 길거리에서 양아치들과 싸우다 입은 부상으로 병원에서 입원해 있었을 때.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사무소의 여러 사람들이 병실에 면회를 오곤 했었다. 물론 그 중에는,
"프로듀서..."
"아, 츠무기 왔구나. 그때 이후로는 처음 보는... 건 아닌가? 며칠 전에 내가 자고 있을 때 한번 들렸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당신이 자고 있는데, 차마 깨울 수는 없어서 다시 돌아갔었습니다."
"에에... 기껏 와줬는데 그냥 깨우지? 바쁜데 시간까지 내서 들려준 거잖아."
"..."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앉은 츠무기의 표정은 뭔가 예상과는 달랐다. 병문안을 온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게, 츠무기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지은 것이 있나 되새겨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츠무기가 화난 이유에 대해 계속 곱씹고 있자,
"어째서..."
"응?"
"어째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죠?"
눈썹을 찡그리며 또박또박 말을 내뱉는 츠무기는 어째서인지 화가 나보였지만, 그와 동시에 어딘가 괴로운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야, 나는 츠무기의 프로듀서니까. 츠무기 너를 위해서라면..."
"만약 제가 당신의 담당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그럼 저를 구하지 않았을 건가요?"
"그, 그건..."
"만약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이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럼 그 사람을 구하지 않았을 건가요?"
"..."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 한들. 당신은 누구라도 구하려고 뛰어들었을 거니까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아, 아냐... 물론 다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지는 않았을 거야."
"거짓말."
"진짜라니까?"
"그럼 아까 물어본 대로, 제가 당신의 담당 아이돌이 아니면. 그럼 그 정도의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거란 뜻입니까?"
"으음... 아무래도 츠무기를 도와주려고 하겠지."
"거봐요.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영문을 모르겠지만 대화가 원처럼 빙빙 돌기만 할 뿐이었다. 츠무기가 왜 화가 난지 알 수도 없었고, 왜이리 집요하게 같은 맥락의 질문을 몇 번이고 물어보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선, 말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츠무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만 한다.
"츠무기. 나한테 화나있는 거지?"
"화났지 않습니다."
"거짓말."
"화가 났던 건 아닌데... 아니, 어쩌면 정말로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응... 왜 화가 났던 거니?"
"..."
츠무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뭐라고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까 고민하는 건지. 어쩌면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도 잘 알 수 없는 건지. 아무 말 없이 1분, 2분이고 침묵을 유지하는 츠무기이지만, 그런 그녀의 대답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당신이 저를 구해준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추려낸 두 가지 이유는, 아까 제가 당신에게 물어본 것과 같습니다. 그저 제가 당신의 담당 아이돌이기 때문에. 아니면, 당신은 대상이 누구더라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
"첫 번째. 그 누구라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그런 사람이면, 몇 번이고 그런 위험한 상황에 처하다 어쩌면 저를 홀로 남겨지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담당 프로듀서인 당신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제 곁을 떠나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죠?"
"그, 그건..."
"그리고 두 번째. 제가 당신의 담당 아이돌이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면, 당신이 제 담당 프로듀서 업무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이제 제가 어떤 위험에 빠지더라도 저를 구해주지 않을 거란 뜻이라는 거잖아요. 언젠가 당신도 다른 담당 아이돌이 생겨서 저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래도 츠무기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주러 가야지."
"네.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제가 생각해낸 첫 번째 이유가 맞지 않습니까? 그렇게 타인을 위해 무모하게 목숨을 걸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바보같은 사람."
그렇게 평소처럼 삿대질을 하며 꾸짖는 츠무기의 푸른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서려 있었다. 그런 츠무기의 모습을 보자 괜시리 마음 한켠이 시려와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만 같았다. 츠무기는 바보 프로듀서 한 명의 말만 듣고 아이돌을 하기 위해 도쿄까지 내려왔는데, 그 프로듀서가 잘못 되어버려 자신 혼자 남게 되면 그 기분이 어떠할까? 그리고 그 점을 몰라주는 프로듀서를 보면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물론 츠무기가 내는 화가 정당하니 마니는 다른 문제겠지만, 그런 츠무기의 걱정을 해소시켜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있잖아, 츠무기."
"네..."
"혹시 기억나? 절대 츠무기를 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전에 츠무기가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리고 잠시 내 집에서 지내게 됐을 때. 그러고 보니 여러 번 말해줬었구나... 이 말을."
"..."
"다시 한 번 약속할게. 츠무기가 먼저 나를 떠나가지 않는 한, 절대 츠무기 너를 혼자서 두고 떠나지 않을게."
"말만 그렇게 하고... 입으로만 그런 약속을 하고 나중에 지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그 때에는 어떡하죠?"
"그래... 저게 좋겠다."
"??"
츠무기가 앉아있는 의자 너머로 손을 뻗어 뒤를 가리키자 츠무기도 그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 너머에는,
"저녁 노을?"
병원의 창 밖에는 저 지평선까지 펼쳐진 수많은 도쿄의 마천루들과,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위풍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침 얼마 전에 츠무기와 함께 보고 온 도쿄 타워가 점점 지고 있는 노을로 인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쉽사리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신비로운 광경을 자아내는 저 노을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래. 저 노을이 약속의 증표야. 저기 있는 노을을 볼 때마다 지금 했던 약속을 떠올리는 거야. 그 언제까지고 나는 츠무기 너를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게. 앞으로 다투기도 많이 하고. 수 없이 울고 화내고. 그렇게 갈등하는 일이 앞으로도 반드시 생길거야. 다만..."
"..."
"그럼에도 잊지 말아주렴. 저 노을을 볼 때마다. 나는 절대 츠무기 너를 혼자 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걸. 그리고... 서로 상처 입고 상처 입히더라도, 다시 화해하면 된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창 너머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쿄 타워를 비롯한 이 도시가 노을이 지며 저 멀리서부터 점점 어두워지는 모습을 보니 퍽 아쉬운 감상이 들었다. 눈 앞의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내는 노을은 이제 지면에서부터 올라오는 땅거미로 인해 점점 사라져만 가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오늘의 노을은 이렇게 져버리지만, 내일 이 순간엔 다시 이 노을을 볼 수 있으리란 걸. 그리고 츠무기와 언젠가 다투게 되더라도. 츠무기와 서로 상처를 입고 상처를 입히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화해할 수 있으리란 것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얼마간 아무 말 없이 츠무기 옆에 나란히 서서 눈 앞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츠무기. 약속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그게 너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어."
"그래서요? 어떻게 둘러대든 간에 결국 죄책감 때문에 저를 떠나가겠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나는... 나는 너에게 크나큰 잘못을 지었어. 프로듀서 실격이지... 담당 아이돌에게 화를 내고, 모진 말을 내뱉고, 너를 울게 만들고... 난 너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 너가 지금 나를 붙잡으려고 할 정도로 나는 너에게 잘해준 적이 없는데, 어째서 너는..."
2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돌아온 탕아 이야기."
"돌아온 탕아 이야기...?"
"좋아요. 당신이 저에게 들려준 이 이야기. 그대로 당신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아까까지 화난 듯 눈썹을 찡그리고 있던 츠무기는, 이내 결연한 표정을 짓고는 자신이 이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제멋대로인 성격의 아들은, 어느 날 바보같이 아버지를 상처입히고는 도시로 떠나버렸습니다."
츠무기가 들려주는 이 '돌아온 탕아 이야기'는 어째 기존의 이야기와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문맥이 그리 매끄럽진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츠무기는 자신만의 '돌아온 탕아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었다.
"도시의 생활에 지친 아들은 곧 후회하며 아버지에게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을 머뭇거리게 한 것은 그의 죄책감이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소중한 가족인 아버지를 상처입혔단 사실에,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워 망설였습니다."
"그, 그건..."
"하지만 일상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아들은, 결국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돌아가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죄를 많이 지었는데, 과연 아버지께서 나를 받아줄까? 나는 아들이라 할 자격도 없는데...', 라고."
"..."
"저 지평선에서 그토록 그립고 그리웠던 집이 보이자, 동시에 맨발인 채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버지를 아들은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끌어안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아버지. 전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혀주고 송아지를 잡거라! 죽었던 내 아들을, 잃었던 내 아들을 다시 찾았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츠무기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츠무기에게 들려줄 때에는, 다시 츠무기가 이 이야기를 그대로 돌려줄 거라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츠무기가 전달하는 이 이야기의 핵심이, 정곡을 정확히 찔러버려서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기에.
"당신이 들려준 이야기이니 당신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이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줄 때에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한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렴풋이 제 마음 속에서 들리는 이 외침이 맞는 것이라면, 그때의 당신도 저의 잘못을 용서하며 같은 것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지었다 하더라도, 결국 용서하면 된다는 것을."
하지만 츠무기는 간과했다. 그 때의 츠무기가 잘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받은 부당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과오였다. 이 바보같을 정도로 착한 아이는 아마도 자기가 지은 잘못이 자신의 프로듀서가 자신에게 지은 악행들과 동일 선상에 두는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 아니면 자신에게 행해진 가해를 너무나도 얕게 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츠무기... 내가 너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 너에게 입혔던 상처...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그건..."
"지금도 떠오르잖아. 내가 너에게 입혔던 상처들이. 츠무기 네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너의 옆에 있어야 할 건 나 같은 게 아닌 다른 제대로 된 사람이어야 할 거야."
"프로듀서..."
"줄곧 고민했어. 어떻게 하면 츠무기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그렇게 고민하다, 이제서야 깨달은 거야. 네 옆에 있어줄 사람이 나여서는 안돼. 너를 만나기 이전에 내가 지었던 과오들... 그리고 너를 만난 이후에 내가 지었던 죄악들... 속죄하지 못한 나 같은 것 때문에 너를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되겠지."
"..."
츠무기도 어렴풋이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는 듯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서있었다. 분명 츠무기는 이를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상처를 입게 해버렸으니까. 그리고, 츠무기가 이번에 용서해준다 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츠무기에게 상처를 입혀버릴 것이다. 결국... 츠무기를 위해선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모른 척한건지. 정말이지 바보같았다.
"그러니까 츠무기. 이제..."
"맞습니다. 저에게 잘못을 지었죠, 당신은. 당신이 저에게 했던 상처 입히는 말들... 아마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츠무기..."
"당신이 말한 대로, 앞으로도 당신과 수도 없이 다투고. 서로 상처 입고 상처 입히며. 그런 일들이 몇 번이고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 화해하면 된다고 당신이 말해줬기에...!"
어느새 양끝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 츠무기의 푸른 눈에는, 점점 지기 시작해서 이제 얼마 뒤면 곧이어 사라질 노을의 샛노란 빛이 반짝여 빛나고 있었다.
"비록 단순한 제 억지이지만, 당신이 떠나지 않기를 저는 바라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듣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듯 하였다. 어째서 츠무기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에게. 용서해주지 않아도 될 그런 죄인을 이리도 쉽게 용서해주려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녀를 몇 번이고 실망시키기만 하고 상처도 셀 수 없이 많이 입혔다. 츠무기를 위해서라면 그녀를 떠나야만 하는데... 지금 그녀가 용서해준다 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상처를 입힐 게 뻔한데, 어째서...
"그렇지만... 내가 있으면 츠무기 너를... 나 같은 게..."
"나 같은 게, 라고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었다면, 저에게 '저 같은 게' 아닌 '저밖에 할 수 없는 것' 이라 해주었을 거니까요."
"읏..."
"당신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저를 떠나버리는 것이 당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당신의 행복이라 하면 가도 좋습니다."
"나, 나는 결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지만...! 만약 떠나려는 것이 저를 위한다는 것이면. 그 이유 때문이라면 가지 말아줘요. 아니, 설령 당신이 떠나려는 것이 당신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당신의 행복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떠나려는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츠무기..."
"비록 제멋대로지만... 가지 말아주세요. 가지 말아줘... 오늘은."
눈에 머금은 눈물로 인해 예의바르게 정자세로 서있는 츠무기가 잘 보이지 않았다. 뿌예진 시야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점점 져가는 노을을 뒤로 하며 위풍당당히 서있는 츠무기는 이 저녁 풍경의 그 어떤 빛보다도 더욱 빛나보였다.
"츠무... 기... 난 이번에도 너에게... 너에게 구원받았는데... 난 너에게 해준게 없는데도..."
"하아, 정말이지...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잘난 듯이 저를 가르칠 때에는 언제고, 지금에선 자기 자신이 말해주었던 교훈을 잊고 있다니. 바보같은 사람."
미안함과 고마움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보같이 울고만 있자, 츠무기는 한숨을 폭 내쉬고 한 걸음 걸어오고는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그녀의 가슴팍에 안긴 채로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슬픈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 날은 노을이 질 때까지 공항에서 츠무기에게 안긴 채 서 있었다.
"그런데 프로듀서."
"응?"
"언젠가는 당신이 프로듀서를 그만두거나 제가 아이돌을 그만두는 날이 오겠죠?"
"그렇지."
"그럼 그때에도 지금처럼 저를 떠나려고 할 건가요?"
"그야 프로듀서를 그만두게 된다면, 아마 어쩔 수 없지... 아, 아아!! 아프다고 아파!!"
츠무기는 찌릿, 하고 째려보고는 쥐고 있는 손을 꽉 쥐었다. 아까부터 떠나지 못하게 츠무기가 꼭 붙잡으려는 듯 잡고 있는 손이라 차마 놓고 있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고통을 주려는 목적도 겸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바보같은 사람. 그렇다면, 프로듀서와 아이돌 그 이상의 사이가 되면 되는 것이지 않을까요?"
"무, 뭐!? 츠무기 너 지금 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나 있는 거야?"
"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 시점에선 이것이 제일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 그래도 안되는 건 안돼! 나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지만 츠무기 너의 앞날이..."
"친구."
"친구?"
"하아... 당신이 말한 주제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친구 사이여도 꽤나 문제 되는거 아냐? 나이 차이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주변에서 다들 한 소리 할걸? 비밀친구 이런 거로 모두에게 숨기는게 아니라면 말이야."
"역시, 변태 프로듀서 아니랄까봐 그런 이상한 생각을 먼저 하는군요. 나중에 꼭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신고당하는 거 기대하고 있으마, 내 친구 츠무기."
그렇게 츠무기와 처음 친구가 된 날에, 친구인 츠무기와 서로 손을 꼭 맞잡은 채 바보같은 말을 하고는 잔잔하게 웃으며 이미 져버린 노을이 비추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 날은 밤이 더욱 깊어질 때까지 공항에서 츠무기와 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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