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12-18, 2012 10:47에 작성됨.
<계속>
리츠코가 그렇게 가여운 표정으로 돌아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 나와 하루카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쇼핑을 할 때도, 하루카를 집으로 데려다 줄 때도 서로 미안한 마음을 숨기려는 듯 한두마디의 짤막한 대화가 오고갈 뿐 그 이상의 행동은 오고가지 않았다.
차는 어느 새 하루카의 집 문앞에 도착했고, 하루카는 차에서 내리면서 무겁게 한 마디를 꺼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프로듀서씨....."
"괜찮아. 안그래도 서로 기분이 안 좋은데다 밤도 깊었는데, 너를 혼자 보내게 된다면 내 마음이 편치 않아."
"프로듀서씨, 죄송해요 제가 너무 나서는 바람에......"
"괜찮아. 이게 다 내 잘못인걸,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하지만 프로듀서씨......"
"그 이야기는 오늘 여기서 끝내도록 하자. 부모님이 걱정하실테니, 얼른 들어가봐"
"네......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프로듀서씨!"
텐션이 완전히 다운되어버린 하루카를 내려주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안하자마자 나는 리츠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를 찾는 동안, 집 안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울고있을 리츠코를 생각하니 내 가슴 어딘가가 심하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 아파왔다.
만약 바로 연결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있었던 오해를 완벽하게 풀어주리라.
"뚜르르르르르륵,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걸어본다.
"뚜르르르르르륵,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
제발 좀 받아! 리츠코!
"뚜르르르르르륵,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
"에이 젠장!"
나는 큰 소리로 짜증을 내며 나의 무선 해드셋을 귀에서 냅다 뽑아 던져버렸다.
리츠코에 대한 불길한 생각때문에 운전에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운 뒤 차 안에 놔두고 잊어버렸던 캔 커피를 찾아 마시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리츠코의 집으로 찾아갈까? 아니야, 지금 가서 문 앞에서 애원해봤자 귀를 막고 외면하겠지'
'오늘은 놔두고 내일 아침 일찍 찾아갈까? 안돼, 내일은 너무 늦어.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리츠코와 대화할 수 없을거야!'
'아아......어떡하지?'
그렇게 고민하면서 다시 차를 운전하다보니 결국 765프로 사무소에 도착했다. 역시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사무소에서 내 책상 위의 스탠드와 라디오를 켠 뒤 바로 옆의 쇼파에 누웠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따라 리츠코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류구코마치와 경쟁을 벌이다 너무 격해져서 서로 다투었다가 극적으로 화해했던 기억, 처음 고백했을 때 보기좋게 차임과 동시에 부끄러운 얼굴로 나에게 설교했던 그녀의 모습, 다시 제대로 준비해서 고백한 뒤 서로를 껴안으며 온기를 느끼고 있다가 갑자기 올라온 후타미 자매에게 걸려서 해명하느라 혼났던 기억......
잠도 안온다. 아니, 자면 안된다. 그런데 지금 리츠코에게 가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어쩌면 좋지?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번호를 보니, 타루키정인가.....?
"여보세요?"
"타루키정이에요, 리츠코씨가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그만...... 좀 데려가 주시면 안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서 옷을 입고 타루키정으로 달려갔다. 예상대로였다. 술에 취해서 쓰러진 리츠코와 그 옆에서 어찌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오가와씨가 있었다.
"리츠코씨 때문에 가게 문도 제때 못 닫으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프로듀서씨. 아, 그리고 이 쇼핑백도 잊지말고 가져가세요!"
"네?, 네......"
"오늘 리츠코씨 혼자서 엄청나게 술을 들이키던데, 무슨 큰 일이라도.....?"
"에?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럴 리가 있나, 이게 다 나 때문인걸.
한 손엔 쇼핑백을, 다른 손은 리츠코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은 뒤 서둘러 타루키정을 벗어났다.
"어쨋든, 밤이 깊었네요! 빨리 마감하고 들어가세요!"
"네네~ 프로듀서씨도 얼른 들어가세요!"
나는 술에 취해서 축 쳐진 리츠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뭔가 변명을 할 상황도 안되고, 그렇다고 집에 데려가려니 시간도 너무 늦은데다 이 상태로 혼자 집에서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사무실에서 같이 밤을 새는 수 밖에.
양 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계단을 오르려니 너무 힘들다. 마치 굉장히 무거운 쌀 포대를 들고 험한 산길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몇 분간의 사투끝에 어쨋든 사무소 정문에 도착하긴 했지만 근육을 한번에 너무많이 써서 그런가 온몸이 욱씬거린다.
리츠코가 정신이 돌아온 듯 갑자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을 발견한 그녀의 눈빛은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비켜요! 나, 나, 프로듀서씨와 말하기 싫어......"
나를 힘껏 밀치고 사무실 안으로 불안한 자세로 들어가는 리츠코를 보며 나의 아픔조차 잊혀질 정도라 강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행히도 그녀는 별탈 없이 내가 누웠던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렸고 그녀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나는 갈증을 풀어줄 겸 정신을 차리게 할 생각으로 시원한 물 한 컵을 들고 그녀에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뒤돌아 누워버렸다.
"리츠코,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정신차려."
"......"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돌아 누운 리츠코에게선 엄청난 알콜 향기가 났다. 오늘 이렇게까지 그녀가 술을 마신 것은 아마도 나에 대한 실망 때문이리라. 어쨋든 난 그녀에게 무겁게 말 한마디를 건넸다.
"얼마나 마신거야 리츠코, 몸은 괜찮은 거야?"
"프로듀서어...... 프로듀서는 나같은 딱딱한 여자보다 하루카같이 상냥한 여자가 좋지요?"
"아니야 그건......"
"풋, 다 거짓말인거 알아요 프로듀서어...... 고백한 이후로 제게 다가오려 할 때마다 화만 냈잖아요...... 맨날 날카롭게 화 내는 제 모습, 짜증났잖아요, 미웠잖아요. 역시 나란 여자는......"
"그만해, 리츠코!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잖아!"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리츠코에게 나도 모르게 화가 섞인 한 마디를 건넸다. 잠깐동안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갑자기 그녀의 등이 미세하게 움직임과 동시에 흐느끼기 시작한다.
"흑......우리가 이렇게 된건 다 저 때문이에요, 지난번에 프로듀서가 제 어깨를, 손을 만지려고 했을 때 너무 부끄럽기도 했고, 한참 민감한 시기인 765프로 애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그래서 뭐라고 한 것 뿐이었는데...... 프로듀서씨는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제게 가까이 오지도 않았잖아요......흐....흐흑......"
"......"
"흐......흐흑...... 그날 이후로 나, 노력했단 말이에요, 프로듀서랑 가까워지고 싶어서...... 맨날 작업복 비슷한 옷만 입고 다니는 프로듀서씨가 안타까워서 프로듀서에게 맞을 법한 옷도 골라보고,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류구코마치 애들에게 프로듀서씨에게 고백하는 대사도 가르쳐달라 그러구...... 그랬는데...... 그랬는데...... 프로듀서는 이미 하루카에게 마음이 가 있네요...... 흐흑."
라고 말하며 뒤돌아 누운 채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리츠코의 의외의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잃어버린 나는, 갑자기 지난번에 그녀가 류구코마치 애들이 보는 앞에서 뭔가 부끄러운 듯한 동작과 대사를 연습하던 모습이 떠오르며 만약 이 사태가 해결된다면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이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저기, 리츠코?"
"......."
"그래, 리츠코는 지금 내 말을 분명히 듣고싶어하지 않을거라는 거 알아. 그래도, 이 말만은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
"사실, 리츠코가 했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려. 그때 그렇게 화 내고난 뒤에 조금 실망했지. 그렇다고 리츠코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 그래서 내가 내일 리츠코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리츠코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눈물때문에 화장이 드문드문 지워져 엉망이 되어버린 그녀의 얼굴은 지금 그녀가 처한 기분을 보여주는것 같았다.
"마침 다른 나라에서는 11일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포키 같을걸 주는 행사가 있어서 나도 그걸 해보고 싶었는데, 좀 더 완벽하게 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하루카를 불러서 같이 다녔던 건데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못했어. 리츠코가 오해할 상황을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만약 오늘 일 때문에 화가 났다면, 이번 한 번만 용서해줘......"
아무 말 없이 맑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리츠코...... 나를 용서한건가? 확인해보고 싶다.
조용히 리츠코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맞대어 보았다. 그녀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더니, 그녀의 분홍빛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세요."
"응?"
"정말...... 나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 증거를 보여주세요......."
리츠코의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속삭임과 눈빛에 내 가슴속의 모든 리미트 스위치들은 다 끊어져버렸고, 나도 모르게 그만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어 버렸다. 그녀의 따스함과 부드러움은 내 입술과 미각기관에서 엄청난 자극으로 바뀐 뒤 나의 머리와 등줄기를 따라 전달되고 있었다. 진한 알콜 향기가 느껴졌지만 리츠코에게서 전달된 짜릿한 느낌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묻혀버렸다.
서로의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알게되었을 즈음, 우리는 포개었던 입술을 떼어낸 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리츠코의 모습은 평소에 보던 귀신중사도, 딱딱하고 지루한 여자도 아닌 순수한 미소를 가진 천사, 아니 여신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알겠어? 내가 리츠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
"사랑해......"
"저도...... 사...... 다, 달이 밝.....군요, 프로듀서씨."
"우리, 한번 더 할까?"
"......"
우리는 서로의 부드러움을 한번 더 느껴보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3. D-day
위잉~ 위잉~
"하아암......"
지금 시간은 새벽 5시. 리츠코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맡긴 채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본 나는 내가 목표로 했던 걸 실행할 시간이 가까워져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시작해볼까!"
-------------------------------------------------------------------------------
"하아아아암......"
무언가 웅성거리는듯한 소리를 알람삼아 리츠코는 눈을 떴다. 사무소 벽에 걸린 시계를 본 뒤 웅성거리는 장소가 어딘지 궁금했던 리츠코는 쇼파에서 일어나 한번 더 기지개를 편 뒤 창가쪽을 향해 걸어갔다.
"우와~ 이쁘다! 나도 이런거 받아봤으면 좋겠는거야!"
"드디어 쑥맥오빠가 한 건 했군YO!"
"쑥맥오빠가 만든거 치곤 대단한 솜씨네YO!"
"아아...... 서른 넘기 전에 저런 선물 받을 수 있을까? 흑흑......"
"다들 내 책상 앞에서 뭐하는 거...... 앗!"
책상 위에는 종이접기로 만들어진 장미꽃들과 10개는 넘을 것같은 포키가 보기좋게 채워진 빨간색 망사로 장식된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리츠코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이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릿쨩......"
"리츠코.....씨, 왜 우는거야?"
"쉿! 쉿!"
분위기를 알아차린 코토리가 후타미 자매와 미키의 질문공세를 제시시킨다. 그 사이 리츠코는 뒤돌아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우는거 아니야......그냥......좋아서, 행복해서."
궁금해하는 그녀들에게 리츠코는 말 끝을 흐리면서 대답하고 난 뒤, 눈물자국을 지우기 위해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리츠코가 들어가자마자 프로듀서가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큰 목소리로 아이돌들을 찾기 시작한다.
"좋은 아침! 아미! 마미! 미키! 시간 다됐어! 나갈 준비해야지!"
"우와! 프로듀서, 오늘은 허니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멋지게 입은거야!"
"오늘 쑥맥오빠는 잡지에 나오는 모델 뺨치게 잘생긴거YA!"
"어머, 그 옷은 어디에서 구하신 거에요"
"이거요? 리츠코가..... 자자, 감상평은 이쯤하고 빨리 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시간없다구! 나도 곧 나갈테니까 기다려!"
프로듀서도 그녀들을 따라 허겁지겁 다이어리와 태블릿, 자동차 키를 챙기고 내려가려는데......
"프로듀서씨! 잠깐만요!"
"응?"
쪽!
"에에에에!!"
리츠코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던 프로듀서는 그녀의 기습키스를 받았고, 그 광경을 지켜본 세 명의 어린 아이돌들과 한 명의 사무원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프로듀서, 잘 다녀오세요!"
"으......응!"
프로듀서는 자신을 제일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과 그 옆에서 멍하니 서있는 네 사람을 뒤로 한 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으아아아아! 릿쨩이 달라졌어!"
"프로듀서도 달라졌어 더 이상은 쑥맥이라고 못 부르겠네......"
"프로듀서어.......부러운거야......"
"흐흐흑......도대체 나는 언제"
4. P.S
765프로덕션 건물 옥상.
"하루카!"
"네? 리, 리츠코씨?!"
침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던 하루카가 누군가의 부름에 반응해 그 쪽을 쳐다본다. 리츠코였다. 지난번의 일이 떠올라 갑작스레 두려움을 느끼며 가볍게 경계했지만, 리츠코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주는 따뜻한 캔커피를 받고난 뒤 경계심을 풀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하루카,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어."
"그,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프로듀서씨하고는 어떻게 되셨어요?"
갑자기 리츠코가 하루카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갑작스런 인사에 하루카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에에?! 리츠코씨??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에요?"
"하루카, 정말 고마웠어! 하루카 덕분에 내가 가지고 있던 큰 고민이 풀렸거든. 그리고 지난번 일 때문에 마음 상했다면 이 자리에서 사과할께."
"저, 저는 괜찮아요! 리츠코씨가 문제 없다면 저도 문제가 없는거니까요!"
"사과의 의미로 어젯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루카에게도 해볼까 하는데, 들어볼래?"
하루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리츠코에게 대답한다.
"네! 궁금했어요! 듣고싶어요!"
"그래. 그 때 이후에......"
<Fin>
<Comment>
1개월 하고도 7일만에 단편을 완성했습니다! 기다려주신 여러분 죄송합니다 ㅠㅠ
첫 작품이라서 내용도 어설프고 전개도 이상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