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겨울이네요.”
어느 날 유키호는 문득 그렇게 말했다. 하얀 눈雪 사이에 가만히 서서 하늘을 쳐다보는, 눈처럼 가녀린 하얀 소녀. 하얀 피부위에 달라붙은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눈과 함께 잠시 바람에 흔들린다.
겨울이 어울리는 하얀 소녀, 하기와라 유키호는 하얀 털코트를 입고 그러모은 손 사이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소녀의 연분홍빛 입술에서 세어 나온 하얀 입김은 금세 투명한 겨울 바람사이로 사라져갔다.
그 옆에는 프로듀서인 P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방금 막 로케를 끝내고 오는 길이었다. 오늘 유키호의 로케는 웨딩드레스의 모델. 소녀는 처음 입어보는 웨딩드레스에 굉장히 부끄러웠지만 자신이 사모하는 상대랑 같이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옆에 그 남자가 있다면…….
“그러고보니,”
유키호는 문득 입을 열었다. 나란히 걷던 P가 그런 유키호를 쳐다보았다.
“예전에 아즈사씨가 웨딩촬영을 한 후에 친구문자를 보고 당황하시던 것이 생각나요.”
그리고 유키호는 푸근한 눈처럼 웃어주었다. 그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같은 미소를 지은 P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지. 벌써 1년 전인가?”
“그 때 당황하신 이유가, 결혼이 아닌 웨딩드레스를 미리 입으면 혼기가 늦어진다고…….”
“하하, 맞아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그 때 아즈사씨가 엄청 당황하시던 것이 생각나네.”
“……아즈사씨, 아직도 연인이 없으시죠?”
“기색을 봐선 그런 것 같아. 마음에 둔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안 해 주시네.”
“그래요……?”
유키호는 어딘가 아련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았다. 그 때 흰 눈송이가 유키호의 이마에 떨어졌다. 그 하나를 시작으로, 곧 함박눈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추운 계절의 차가운 상징이지만,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다 보면 마음 한켠이 따듯해져 오는 것을 유키호는 느꼈다. 아마 그것은 옆에 이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눈이 온다는 이야기는 일기예보로 들었었지만,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어.”
유키호는 손을 뻗어 털장갑 위로 함박눈을 받았다. 갈색과 하얀 줄무늬의 장갑 위에는 녹지 않고 눈들이 얇게 쌓여갔다.
“아까워요.”
유키호의 뜨끔 없는 그 말에 P는 안경 위로 떨어진 눈들을 털어내며 물었다.
“뭐가 아까워?”
“이 눈들이 크리스마스 때 내렸더라면 틀림없이 멋진 화이트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리 말하는 유키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져 있어 말처럼 아쉬워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계속 걷고 있었다. 일도 유키호의 일이 마지막이어서 급할 것도 없었고, 유키호가 그렇게 하기를 요구했다. 예전과 달리 인기아이돌이 된 유키호에게 스캔들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괜한 기우였다.
유키호도 나름 변장을 한데다, 이 하얀 눈들은 유키호를 평소와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하얀 함박눈. 살짝 불어와 적당히 주위를 흔들어주는 바람. 거리의 밝은 조명.
그리고 그 사이에 환하게 웃고 있는 한 가녀린 소녀.
유키호는 겨울이 어울리는 아이였다. 이 겨울을 배경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일을 맡아도 좋을 거란 생각을 하며 P는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말했다.
“유키호는 아름답구나.”
“흐에?”
그 말이 닿자 유키호는 차가운 눈 속에서 뜨거운 김에 데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름답다. 그렇게 느꼈다. 평소에는 예쁘다거나, 귀엽다라는 감상이었지만 이 눈 속에서 보고 있자니 유키호가 굉장히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프, 프로듀서?”
P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 반응에 유키호는 살짝 토라져 말했다.
“우- 비겁해요. 평소에는 귀엽다거나, 예쁘다는 말만 하셨으면서. 이제 그런 말들에 익숙해졌다 싶을 때 말을 바꾸시다니…….”
“하지만 진심인걸.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
유키호의 얼굴은 눈에 띄게 붉어져 있었다. 평소와 다른 칭찬에 버틸 수 없는 듯 했다. 삽을 들고 있었더라면 바닥이라도 파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의 유키호는 더 이상 바닥을 파지 않는다. 너무 부끄럽고, 힘든 일이 있다면 여전히 땅바닥을 파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대책 없이 땅을 파지는 않는다. 이것 또한 그녀의 성장을 알려주는 것일 거다.
하얀 눈이 어울리는 순박한 아이, 하기와라 유키호. 함박눈은 분위기를 푸근하게 만들어주지만 역시나 추웠다. P는 유키호에게 손짓으로 편의점을 가리켰다.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깐 따듯한 거라도 먹자. ‘아름답다고’한 사과로 내가 살게. 귀엽고 예쁜 유키호.”
“우우- 프로듀서!”
유키호가 살짝 화를 내자 P는 웃으며 먼저 편의점으로 향했고, 그 뒤를 유키호가 곧 웃으며 따라갔다. 화난 척만 한 것이지, 지금의 프로듀서와의 시간을 그녀도 즐기고 있었다.
함박눈이 거리의 불빛에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고, 그와 대조되게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둘은 편의점 유리창에 서서 어묵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테이블에는 따듯한 커피도 있었다.
“이렇게 여유 있는 것도 좋네.”
“프로듀서랑 이렇게 있는 거 오랜만이네요. 헤헤, 오늘은 제가 독점했어요.”
유키호는 두 손으로 커피를 감싸들며 귀엽게 웃었다. 그런 유키호의 머리를 자기도 모르게 P는 쓰다듬고 말았다. 유키호는 그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더욱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둘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거리로 나왔다.
“벌써 저녁 시간이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변한 공기의 온도와 하늘의 명암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얀 눈송이 하나가 유키호의 콧잔등에 앉았다가 곧바로 녹아버렸다. 유키호를 목을 움츠려 얼굴을 두르고 있던 목도리에 파묻다가 살짝 꺼내더니 씨익 웃고서 P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팔에 팔짱을 꼈다.
“추우니깐 잠시 이러고 있을게요.”
안경하나와 모자만으로 완벽히 유키호라는 아이돌을 숨겨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P는 오늘은 괜찮다라는 생각을 했다.
모자와 안경만이 아니라 오늘은 이 하얀 함박눈도 유키호를 도와주고 있었다. 유키호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수 있는 아이라는 것을 그녀의 프로듀서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유키호를 사랑하는 존재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 겨울 또한 유키호를 사랑해주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따듯하네.”
“그렇죠?”
유키호는 대답하고서 더욱 그 팔을 꼬옥 안았다. 안고 있다지만 몸이 P쪽으로 쏠려 거의 P에게 의지해 매달리는 듯한 형태가 되어 있었다, ‘누가 보면 확실히 스캔들이구나.’하고 P는 생각했지만 유키호를 떼어놓지는 않았다.
“아, 맞다 프로듀서.”
“응?”
“사랑해요.”
그리고 베시시 웃었다. 그 갑작스런 고백에 P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번 고백보다 더욱 스트레이트구나.”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고 하잖아요.”
유키호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만 그것이 추워서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유키호는 아이돌로서 강해져 있었다. 거기다 일주일 전 P에게 품은 마음을 본인에게 고백한 후로는 더욱 강해졌다.
그것은 일주일 전의 이야기다. 그 때도 이렇게 유키호의 로케이션이 끝나고 차를 타고 바래다주던 길이었다. 그 날은 유독 그 공간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평소에도 말이 많지 않은 아이였지만, 그날은 더욱 말이 없고 어딘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불편해보였다.
그 때문에 P도 말을 걸지 못하고 조용히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해 내려주고 그냥 떠나려했다.
유키호는 확실히 차에서 내렸었다. 그것을 확인한 후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 할 때, 운전석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놀라서 그 쪽을 보자 순간 자신의 목을 누군가 끌어안았고, 곧 추운 바람과 함께 따듯한 온기가 입술에 닿았다.
온기는 금방 떨어졌다.
대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불안한 얼굴의 유키호가 자신을 보고 떨면서도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계속, 프로듀서를 좋아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프로듀서.”
시뻘개진 얼굴로 그리 말한 유키호는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사과를 했다.
“갑자기 죄송했어요!”
그리고 유키호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날 P는 많은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유키호의 행동, 입술에 남은 온기. 이것만으로 확실하다. 유키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은 프로듀서고, 유키호는 담당아이돌이다.
서로 좋아하나, 싫어하나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사무소로 출근하니 유키호는 레슨을 간 후였다. 그날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유키호의 고백을 거절할지 고민했다.
마음이 여린 아이니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 소극적인 아이가 그렇게 대담하게 고백을 했다는 것은 그 만큼 큰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고민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그 진심을 거절하는 일이다.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무리였다.
“프로듀서.”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유키호는 웃으며 자신의 뒤에 왔다. 일과 고민에 치중해 유키호가 레슨을 끝마치고 온 걸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사무실에는 어째서인지 자신과 유키호 뿐이었다. 그 때 유키호는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프로듀서는 제 마음을 거절할 거라는 걸. 저에 대한 감정이 아닌 현재의 입장과 위치 때문에. 충분히 알고 있어요. 그러니 대답을 해주지 않으셔도 되요.”
유키호는 쟁반에 들고 온 찻잔을 P의 앞에 놓아두며 계속 말했다.
“그런데 프로듀서, 혹시 아세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유키호는 잔잔하게 말했다. 유키호가 타온 차의 햐긋한 향이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차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끓여야 맛이 우러난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쟁반을 두 팔로 품에 품고서 자신이 사랑하는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제가 아이돌인 동안은 결코 받아주시지 않는 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저도 차를 끓이듯 프로듀서에게 시간을 들일 거예요.”
마지막으로 말할 때, 유키호는 부끄러운 듯 쟁반으로 살짝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밀었다.
“제가 아이돌을 은퇴할 때, 절 너무나 사랑해 결코 놓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에요.”
“유키호가 그렇게 강해졌을 줄은 몰랐어.”
P는 그 때 일을 회상하고서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느 사이엔가 유키호는 강해져 있었다. 더 이상 소극적이고 무서워 벌벌 떨기만 하던 아이가 아니다. 아이돌로서 성장하는 만큼 다른 부분도 성장한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개와 남자들은 무섭지만요.”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잖아. 떨기는 해도.”
남자를 봐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개를 봐도 도망가지 않는다. 아이돌들 중 가장 많이 성장한 아이 중 하나가 바로 유키호였다.
“정말 많이 성장 했어 유키호는. 프로듀서인 내가 장담할게.”
“……그런가요?”
“응. 삽으로 땅을 파는 일도 줄었고 말이야.”
“우, 그게 기준인가요?”
“하하…….”
“후후…….”
두 사람은 웃으며 공원을 산책했다. 어쩐지 유쾌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내서 유키호와 데이트를 한 것이 얼마만인가하고 생각해보니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행운이라 해야겠지. 유키호와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거 말이야.”
“데, 데이트요?”
의식하지 않았던 일인 듯 유키호의 얼굴이 바로 빨개져 버렸다. 덕분에 이후 유키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프로듀서는 유키호 몰래 얇게 웃었다.
공원을 돌며 산책을 하다가 라면집을 보았다. 그 때 유키호 쪽에서 P를 잡아당겼다.
“저, 프로듀서.”
“응?”
“드시고 가지 않겠어요?”
“라면집? 괜찮겠어? 더 좋은 곳으로 가도 좋은데.”
저녁시간이라 산책을 하며 편의점에서 먹은 오뎅과 커피를 소화시키고 식사를 할 곳을 찾기로 한 것이었다. 유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면이 좋아요. 타카네씨는 아니지만, 이렇게 추운 날 따듯한 라면냄새를 맡으면 누구랑 먹고 싶어진다고요.”
“하하, 맞는 말이네.”
유키호에게 이끌려 들어가면서 이런 부분도 성장했구나하고 다시 생각했다. 자기가 나서서 무언가를 주도하기보다는, 남에게 끌려 다니는 쪽의 아이였다.
“이거 참, 정말 그 말처럼 유키호에게 길들여지는 것 같은데.”
차처럼 오래 시간을 들인다. 그 말대로 자신은 점점 유키호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좋아한다거나, 고백을 한다는 정도는 아니고 단지 이런 아이였구나하는 감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유키호의 말대로 정말 유키호가 아이돌을 그만두는 날 고백할만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키호, 생각보다 무서운 아이였구나.”
“흐에, 무섭다니요?”
주문을 한 후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한 말에 유키호가 놀라 말했다.
“말 그대로야. 처음에는 정말 그리 될까 했는데, 유키호가 말한 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난 점점 유키호에게 빠져드는 것 같아.”
“그, 그 말은?”
“그렇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우, 아직인가요…….”
유키호는 실망한 듯 고개를 움츠리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웃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많고, 그 말대로라면 프로듀서도 제가 더욱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거잖아요? 헤헤, 기대하세요. 절 정말 사랑하게 만들테니깐요.”
‘[프로듀서]인가?’
유키호의 바뀐 호칭에도 그 마음이 느껴졌다. 유키호로서는 나름 자신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기 위해 호칭을 바꾼 것 일거다. 그전에는 프로듀서씨, 지금은 프로듀서.
나중에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걸까?
P씨, 혹은 P.
“부, 부끄러운데.”
상상만으로 부끄러워져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왜, 왜 그러세요?”
갑작스런 그 행동에서 유키호가 묻자 P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 라면 나왔다.”
곧 김이 모락 나는 라면이 나오자 둘은 천천히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날 공복에 먹는 따듯한 라면이라 그런지 평소보다도 그 맛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오늘은 유독 맛이 좋은 것이옵니다, 귀하.
갑자기 들려오는 듯한 환청에 P는 가게를 한 번 둘러보고서 가게의 입구를 보았다. 유키호가 라면을 먹다가 P의 기이한 행동에 쳐다보자 P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이렇게 라면을 먹고 있자니 꼭 타카네가 올 것 같아서.”
“하하, 정말 그래요. 평소보다 라면도 맛있고 말이죠. 거기다 타카네씨라면 왠지 아무렇지 않게 가게에 들어와서 우리 옆에 앉을 것 같아요.”
-그런 것이옵니다, 하기와라양.
순간 타카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유키호도 가게를 들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착각임을 알고 웃었다.
“후후, 꼭 타카네씨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요.”
“아, 나도 그래. 정말 이거,”
그리고 둘은 서로를 보며 동시에 말했다.
““기이한!””
그리고 서로 작게 웃은 다음에 라면을 마저 먹었다.
라면을 다 먹고서 둘은 가게 밖을 걷고 있었다. 저녁도 먹었으니 이제 유키호를 집으로 돌려보내주어야 했다.
“후후, 즐거웠어요.”
“나도야.”
“이렇게 프로듀서를 독점했단 걸 다른 아이들이 알면, 아마 화를 내겠죠.”
“하하, 설마. 왜 그러겠어?”
“둔한 사람…….”
“응? 뭐라고?”
“헤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신의 말을 못 들은 것 같자 유키호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일부러 다른 아이돌들의 마음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스스로 연적의 마음을 알려줘 그녀들에게 유리할 일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 미안해요.’
속으로 사과하고서 다시 P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P는 유키호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결혼이 아닌 일로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니 저도 혼기가 늦어질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미신이니깐.”
“그렇지만 아즈사씨는 아직도잖아요?”
“우연이야 우연. 거기다 아이돌이니 오히려 운명의 상대를 만나도 연애하기 힘드신거겠지. 그럼 코토리씨는 왜 아직도 결혼을 못했겠어? 웨딩드레스를 미리 입어본 것도 아닌데 말이야.”
-피, 피요!
““응?””
순간 코토리의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아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곧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제가 아이돌을 그만둘 때면 프로듀서가 있으니깐요.”
“자신만만한걸.”
“왜냐하면 프로듀서가 책임져주셔야 하니깐요.”
“응? 뭘 책임져?”
P가 그 뜻을 몰라 말하자 유키호는 후후 웃다가 말했다.
“프로듀서 때문에 제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거잖아요? 프로듀서가 이 일을 가져오지만 않았어도 전 혼기가 늦어질 리가 없었을 텐데.”
“에? 하지만 이 일은 유키호도 좋다고 한거잖아?”
“후후, 그랬었죠. 하지만,”
유키호는 집 앞에 다 오자 P의 팔에서 떨어졌다.
“결국 제게 웨딩드레스를 입힌 건 프로듀서가 되는 거잖아요?”
“그, 오해할 말은 하지……!”
그 순간 P의 식은 뺨에 유키호의 따듯한 입술이 닿았다. 덕분에 P의 말은 끊겼고 유키호는 쑥스럽게 웃으며 집의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니 제가 은퇴하면 진짜 웨딩드레스를 입혀주셔야 해요, P씨!”
그리고 문이 닫히자 P는 잠시 멍하니 닫힌 문 앞에 서 있다가 웃었다. 발을 돌려 차로 걸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웨딩드레스라, 비쌀까?”
지금의 유키호는 너무 강해져서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키호와의 미래, 어쩌면 미리 준비해야할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모르게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키호를 상상해보았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키호. 정말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하얀 입김이 흐트러지던 날, 묘한 열기가 아직도 자신의 입술에 남아있다.
이 겨울이 한 번, 혹은 두 번이 더 지나면 어쩌면 유키호는 아이돌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그 때는 어떤 기분일까? 슬플까, 아님 서운할까, 아님 기뻐서 감동이 벅차오를까?
그것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유키호는 정말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지도 몰랐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함박눈이 내려오고 있었고, 거리의 조명은 그 눈들을 더욱 빛나게 비추어주었다.
뿌드득 하는 발소리가 어느 때보다 기분 좋게 들려온다.
차갑지만 따듯했던, 어느 겨울날 저녁의 이야기였다.
------------------------------------------------------------------------------------------------------------
네잎스러운 글이네요.
1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네잎님이 쓰신거였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한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