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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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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5, 2012 12:02에 작성됨.

♬ 오버마스터 - 프로젝트 페어리


오늘도 역시 이 녀석들의 무대는 완벽하다. 스테이지 뒤에서 페어리의 퍼포먼스를 정신없이 감상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노래가 끝나고 그 여운이 식기도 전에 세 사람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프로듀서-! 오늘은 어땠어?”

“언제나처럼 끝내줬어.”

“흐흥. 역시 그렇지? 자, 좀 더 칭찬해, 칭찬해!”

“그러고는 싶지만 바쁘다. 바로 치하야랑 하루카 쪽으로 가봐야 돼. 미안하지만 알아서 돌아가 줘.”

“요즘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바빠진 거야.”

“그렇게 됐지. 다들 바빠진 이상 아무래도 리츠코 혼자 9명은 무리니까. 어쨌든, 미안하지만 난 가볼게.”

“프로듀서님. 여긴 걱정 마시고, 어서 치하야와 하루카를 서포트해주시길.”

“알겠다. 그럼 가볼게!”


♬ 눈이 마주친 순간 - 키사라기 치하야


치하야와 하루카가 있는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이미 치하야의 차례가 시작되고 있었다. 스테이지 옆에서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하루카는 내가 오는 것을 느끼고 문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 프로듀서 씨.”

“최대한 빨리 온다고 왔는데 늦은 것 같군.”

“아니에요. 지금 막 시작한 걸요.”

하루카는 어쩐지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치하야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데?”

“예? 아. 에헤헷… 이렇게 무대에 서게 되니까, 조금 긴장도 되지만 그래도 드디어 우리도 진짜 아이돌이 된 건가, 해서요. 생각만 해도 왠지 즐거워지네요.”

“언제는 가짜였냐.”

“그건 아니지만요. 그 동안은 별로 일거리가 없었으니까…”

“아직 멀었어. 앞으로 분신술을 써도 모자를 정도로 바빠질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네!”

참으로 하루카다운 밝은 미소에 나 역시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럴 때마다 항상 내 자신을 채찍질해서 하루빨리 이 녀석들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느새 치하야의 순서가 끝나고, 하루카는 뭐가 그리 급한지 치하야와 교대해 스테이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러다 넘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차에 생각하기가 무섭게 하루카는 비틀비틀, 나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결국 균형을 잡아 넘어지지 않는데 성공했다. 자신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기쁜 듯,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는 순간 넘어졌다. 아아…

“괜찮냐! 하루카!”

“네에-!”

황급히 스테이지 위로 올라가 다친 곳이 있나 확인했다. 다행히 하루카의 다리에는 긁힌 자국조차 나있지 않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녀석 다리는 무슨 아다만티움으로 되어있는 걸까.

“다친 곳 없으면 바로 들어갑니다-!”

“네, 네!!”

스텝의 외침에 하루카는 벌떡 일어났다. 나 역시 재빨리 스테이지 밖으로 빠져 아까까지 서있던 위치에 섰다. 그리고 이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들고 있었던 물병을 치하야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수고했어. 역시 치하야라고 할지. 굉장한 노래였다구.”

“이 정도로는… 아직 목표하는 곳에 다다르기엔 멀었다고 생각해요.”

“그런가. 뭐. 좋구만. 사람의 발전에 끝은 없다고들 하니까. 아. 하루카 시작한다.”


♬ I Want - 아마미 하루카


“페어리의 서포트를 하고 오신 거지요.”

“응. 그 녀석들은 이제 어엿한 메이저 유닛이니까. 한참 바쁠 때지.”

“역시 그렇겠네요…”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너희 모두 끌어올려줄 테니. 여기보다 몇 배는 더 넓은 곳에서 부르게 해줄게.”

“자신 있으신가요.”

“…윽.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 앞으로도 더 노력할 테니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저도 프로듀서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빚이라. 저번에 치하야의 집에서 저녁 먹었을 때 했던 말. 기억하고 있다니 고맙군.

“그래. 말 나왔으니 말인데, 집에서 밥 잘 해먹고 있어? 저번에 말했지. 앞으로 바빠질 테니 잘 챙겨먹으라고.”

“네. 그 이후로 곧잘 만들기는 해요.”

“카레도?”

“네. 카레도. 하지만 저번에 프로듀서가 해주셨던 맛은 아직 내지 못하지만요.”

“후후… 그거야 당연히 내 손이 무엇이든 맛있게 만드는 미다스의 손…”

“아. 하루카. 수고했어.”

“어이!! 무시하지 말라고!!”



두 사람의 수록이 끝난 후, 치하야를 사무소에 내려준 다음, 하루카와 함께 곧바로 우리 팀의 연습구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조’의 나머지 세 명. 아즈사 씨와 유키호와 야요이가 운동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스트레칭부터 시작합시다.”

하루카가 숨을 돌릴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준 다음, 네 사람이 나를 보고 일렬로 쭉 서서 내가하는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야요이. 팔을 더 쭉-”

“끄으응---”

인상을 찡그리고 팔을 쭉 펴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유키호. 동작을 더 크게!”

“네엣-”

행사장 풍선같이 펄럭거리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하루카. 깍지 껴야지.”

“어라? 이게… 응…”

뭔가 허우적대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아즈사 씨. 더 높이 뛰세요.”

“네에~”

뭔가 필요 이상으로 출렁거리는 것이 어쩐지 귀엽…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박력마저 느껴졌다. 후타미 쌍둥이들이 항상 아즈사 씨의 흉부를 보고 ‘무기’라고 표현했었는데, 저 정도라면 문자 그대로의 무기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둔기라든가. 가슴 피살사건이라니. 무섭잖아… 라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애초에 저 운동복. 저렇게까지 끼는 것이었던가. 다른 녀석들은 안 그런데. 저렇게 꼭 끼는 것 같이 보이는 것 자체가 가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좀 무섭군요.

“자, 그러면… 일단 이 네 사람을 어느 포지션 후보로 넣을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을 좀 해봅시다.”

오늘 아침에 생각난 거지만, 내야 외야 투수를 다 정해놓고 가장 중요한 포수를 누구로 할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네 사람 중에 포수를 볼만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고… 내야에서 한 명을 끌어다 놓고, 외야에서 그 자리를 채우면, 역시 1루수인 야요이를 제외한 세 명 중의 한 명은 외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야요이는 일단 타격부터 교정하자. 그리고 아즈사 씨, 유키호, 하루카. 이 세 사람은 외야수비 연습부터.”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그때까지 본 것이라고는 막 풋풋해져가는 소녀와, 어른의 문턱을 올라갈 시기의 소녀들과, 몸과 마음이 모두 성숙해져버린 여성의 거친 숨소리와 괴로운 표정과 흐르는 땀이 전부였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가 없었다. 전혀.
그나마 야요이의 타구 비거리가 조금 더 늘어난 정도일까. 아예 타격은 포기하고 번트를 시켜볼까 생각했지만, 몇 번 해보더니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기에 관두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하루카는 여전히 넘어졌고, 유키호는 여전히 떨어지는 공을 무서워했으며, 아즈사 씨는 여전히 낙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 혼자서는 무리다. 사무실에 연락해서 도우미를 불러야지.
나는 곧바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두 사람. 마코토와 히비키는 모두 사무실에 있었기에, 오토나시 씨에게 부탁해 두 사람을 이리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둘은 이들의 연습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따로 할 일이 있으니까.



“저희 왔어요!”

“기다렸지? 우리가 도와주는 이상 실력향상은 식은 죽 먹기라구!”

그리하여 두 사람이 더 달라붙어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역시 코치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나 혼자일 때보다 더 효율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히비키의 조언으로 인해 드디어 하루카에게 맞는 포지션을 찾아낸 것이다.

“먼 거리를 뛰던 중에 넘어진다면, 아예 적게 뛰거나 안 뛰는 포지션을 맡기면 되잖아?”

히비키의 말에 솔깃해져서 하루카에게 내야수비 요령을 가르쳐준 다음 한 번 맡겨봤더니, 땅볼타구도 내야뜬공도 그럭저럭 처리해냈다. 기존의 녀석들보단 못하겠지만, 제대로 다듬어만 놓으면 서브멤버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원래 유격수 자리에 있던 히비키를 포수로 빼고, 그 자리에 타카네를 넣고, 비는 2루수 자리에 치하야나 이오리를 넣은 다음 내야 서브멤버를 하루카로 하자.
생각해보면, 딱히 외야 서브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같은 이유로 아즈사 씨도 다른 포지션의 서브로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둘. 아즈사 씨와 유키호 중 누가 더 외야에 적합하냐 하면 그나마 제대로 타구를 따라잡기라도 하는 유키호겠지. 어차피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은 여자아이들이 하는 야구인데, 외야는 소홀히 해도 돼.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아즈사 씨는…

“아즈사 씨. 거기 앉아보세요. 지금부터 던질 테니까요.”

곧바로 히비키가 가지고 있던 포수용 글러브를 아즈사 씨에게 주었다. 그리고 힘을 조절해가면서 공을 이쪽저쪽에 꽂아 넣어보았다. 아즈사 씨는 처음엔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지만, 곧 내가 던지는 공을 곧잘 잡아냈다.
아까 캐치볼을 하면서 봐뒀던 거다. 네 사람 중에 야요이 다음으로 공을 잘 잡아내는 사람이 아즈사 씨였다. 아직 포수의 쭈그려 앉는 자세가 어색한 것 같아보였지만.

“흠…”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히비키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8강에서부터 결승까지 세 경기. 포수를 교체할 일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런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 경기에서의 포수는 일단 투수가 던지는 공만 잘 받으면 된다. 도루는 필연적으로 내주는 거라고 치고.

“대충 됐어. 이제 남은 건 유키호가 공을 무서워하지 않게 하는 건가.”

“……죄송해요오.”

야요이 역시 내 지시를 받은 마코토가 열심히 전담 지도한 결과, 아까보다 확실히 비거리가 늘었다. 이 정도면 공을 외야로 날려 안타를 만드는 건 조금 힘들지 몰라도, 내야를 빼는 안타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루카는 주루 플레이시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대충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아즈사 씨의 타격은… 내가 가슴이 없어서 모르겠다. 나중에 연습할 때 타카네를 붙여야겠어. 그래도 지금은 히비키를 붙여서 가르치도록 해보자.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유키호인데…
어디 한 번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유키호가 떨어지는 타구에 겁을 먹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때 코치님이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분명 겁을 먹는 녀석들도 있었고, 그때 코치님은…

“마코토. 네가 공 좀 외야로 쳐줘. 할 수 있지?”

“네. 한 번 해볼게요.”

나는 내 글러브를 들고 유키호와 함께 외야로 향했다. 그리고 글러브를 낀 다음, 유키호를 보며 말했다.

“잘 들어. 내가 네 뒤에 있다가 위험하면 대신 잡아줄 테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을 피해 도망가지 마. 알겠어?”

“네. 해볼게요오…”

나는 힘내라는 뜻으로 내 글러브로 녀석의 글러브를 툭 쳐주었다. 그리고 마코토에게 치라는 사인을 보냈다. 마코토는 몇 번이나 땅볼을 날리더니 마침내 외야 중앙 쪽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보내왔다.

“자리 잡아!”

역시나 공을 따라가는 것 하나는 잘 해냈다. 하지만 글러브를 들어 올리려다 말고 움찔하며 자리를 피하려했다.

“도망가지 말고! 공을 똑바로 봐야지!”

유키호는 내 외침에 움찔하며 천천히 글러브를 들어 올렸으나, 그땐 이미 늦었음을 직감한 내가 뒤에서 대신 공을 캐치한 후였다.

“윽!”

“유키호. 나를 믿고 해줘.”

“네에…”

“적어도 손해는 안 본다고. 저번에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네가 그걸 기억하고 있다면 이번에도 날 믿어줘.”

내가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유키호는 약간 마음을 다잡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몇 번, 나는 그녀가 공을 피하지 못하도록 아예 위치를 잡은 다음엔 팔을 잡아 자세를 교정해주면서 공을 잡게 했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다치지 않게 자세를 잡아줄 자신이 있었다.

“어때. 할 수 있겠지?”

“생각했던 것만큼 무섭진 않네요.”

“좋아. 이대로 계속 해보자. 마코토! 미안해! 조금만 더 부탁할게!”

“걱정 마세요! 아직 끄떡없으니까! 유키호! 갈게!”

“으, 응! 부탁해, 마코토쨩!”

그렇게 몇 십 번이나 더 밀착해서 자세를 잡아줬을까. 이제 슬슬 내가 직접 교정해주지 않아도 대충 공을 정확히 캐치하는 타이밍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다음번엔 내가 없어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코토가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의 왼쪽으로 타구를 날려 보내고, 유키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공을 보며 달려갔다. 나 역시 해왔던 것처럼 유키호에게 소리치며 공을 마지막까지 똑바로 볼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코토는 그런 나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유키호는 능숙하게 타구를 끝까지 보고 따라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공을 글러브로 잡아냈다. 해냈다. 라는 듯한 밝은 표정으로 글러브 안에 들어있는 공을 보고 있던 유키호는 뭔가 허전한 것을 깨달았는지 뒤를 돌아보고는,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깜짝 놀라 고개를 휘휘 젓다가 내가 있는 곳을 보게 되었다.

그래. 이번에 나는 처음부터 줄곧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코토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고, 유키호는 완벽하게 혼자 플라이 볼을 처리해낸 것이다.

“됐다. 유키호. 잘했어. 성공할 줄 알았다니까.”

내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걸 깨달았는지, 금세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얼굴에 함박웃음을 매단 마코토가 달려왔다.

“대단해! 유키호! 이렇게 빨리 해내다니!”

“마…마코토쨩!!”

유키호는 거의 날아들 듯이 마코토에게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마코토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집게손가락으로 뺨을 긁적거리며 기쁨 반 난처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런 마코토에게 나는 씩 웃어주었다.

“고마워요. 프로듀서… 고마워. 마코토쨩… 으흑. 저, 이 기억만 가지고도 평생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오…”

“아니. 아직 앞날이 창창한데 그런 표현은 좀…”

나와 마코토가 유키호에게 붙어있는 동안, 히비키 혼자 아즈사 씨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의 타격모션을 봐주고 있었던 것 같다. 프로팀에서 이래서 코치들을 많이 쓰는구나. 라고 세삼 느끼게 되었다. 훨씬 낫네. 진작부터 데려올걸. 하지만, 이제 다들 예전보다 바빠져서 이럴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 이제 유키호 네 타격만 봐주면 대충 되는 거다. 이제 공은 무섭지 않지?”

“네. 저.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내가 봐온 유키호는 워낙 부정적인 성격이 강해서 그렇지, 한 번 ‘할 수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그것을 계기로 파죽지세로 치고 나가는 녀석이니까. 타격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지금까지 가르쳐 준대로. 제대로 자세 잡고. 좋아. 처음은 토스 배팅부터 할 테니까.”

토스 배팅이란, 타자의 옆에서 말 그대로 치기 좋게 토스해주는 공을 타격하는 연습법을 말한다. 유키호의 옆에 공을 한 상자 끌어다 놓고, 바로 하나씩 던져주기로 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타이밍을 못 맞추고 헛방망이를 돌렸다.

“수비 때를 기억해. 공을 끝까지 제대로 봐. 언제 떨어지는지, 저 떨어지는 공을 맞추려면 언제 배트를 휘둘러야 하는지 잘 생각해. 지금부터 조금 더 높이 토스해줄 테니까.”

유키호는 말없이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 피식 웃은 다음, 예고했던 대로 지금까지 토스해줬던 높이보다 더 높게 공을 띄워줬다. 그러자 확실히 슬슬 맞아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잘 맞추는데, 다음엔 한 번 힘을 넣고 때려봐. 풀스윙해도 좋으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냥 갖다 맞추는 스윙보다 풀스윙이 훨씬 더 공을 맞추기 어렵다. 타구에 제대로 힘을 실어 보내는 법은 모두 함께 연습했던 날 입이 닳도록 설명했던 바, 이번에는 유키호에게 구두로 설명함으로써 어제 설명했던 것을 복기시키도록 해주었다.

“자. 유키호의 풀스윙. 기대해보겠어.”

다시 토스 시작.
몇 번이나 시원하게 선풍기를 돌리던 유키호는, 토스 열 번 만에 드디어 풀스윙으로 공을 때려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타구는 말도 안 되는 스피드로 날아가 노 바운드로 펜스를 직격한 다음 그 앞에 떨어졌다.

“하아…?”

“어머어…”

“바, 방금… 유키호가 친 거 맞지…?”

“네…”

“유, 유키호?”

구경하고 있던 다섯 사람은 물론, 토스를 해주던 나도, 공을 쳐낸 유키호 본인도 멍하니 펜스 앞을 굴러가는 타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아까 수비 시켜주려 팔을 잡았을 때도 가녀린 주제에 꽤나 탄탄해서 놀랐었지.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어른도 제대로 해내기 힘든, 삽으로 개인호를 파서 몸을 숨기는 일을 태연하게 해내는 녀석인데 이 정도 파워가 나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지도 모른다.
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차마 야구장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마추어 야구팀의 연습구장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저런 타구를 만들어낸다는 건. 솔직히 내가 마음먹고 쳐도 저런 타구를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홈런은 차라리 뜨기라도 하지, 저런 건 어떻게 보면 홈런보다 더 쳐내기 어려운 타구다.

나는… 아마 터무니없는 녀석을 발굴해 낸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조’의 대약진을 시작으로, 다들 곧잘 연습에 열심히 따라주어 나를 즐겁게 했다. 아직 미키의 의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주니까 괜찮겠지. 아마.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어느새 시합 전날. 나는 이 야구대회에 참여하는 어떤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도 하지 않을 고민을 머리를 싸매고 한 결과. 드디어 내일 8강전에 출전할 엔트리를 짜내는데 성공했다.

1번 포수 가나하 히비키
2번 2루수 키사라기 치하야
3번 유격수 시죠 타카네
4번 투수 키쿠치 마코토
5번 우익수 하기와라 유키호
6번 3루수 호시이 미키
7번 중견수 미나세 이오리
8번 1루수 타카츠키 야요이
9번 좌익수 후타미 아미

서브멤버 미우라 아즈사(포수) 아마미 하루카(2루수) 후타미 마미(중견, 좌익)

흡족하구만. 1번이 포수라는 것부터 아마추어 야구의 향기가 물씬 풍겨서 더 좋다. 투수가 4번이라는 것도 만화에나 나오는 이야기 일 것 같지만, 의외로 고교야구에서는 정말 투수가 4번도 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난 이 엔트리에 만족한다.

“후후…”

“설마 그것 때문에 퇴근도 미루신 건가요?”

마지막 뒷정리를 하던 리츠코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연하지. 애초에 내가 뭐라고 했냐. 우승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척척 해둬야지.”

“…그렇게 안 해도 마코토나 히비키같은 애들이 있으니 잘 할 것 같은데요.”

“NO, NO, NO. 어디까지나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생각해야지.”

“호오. 꽤나 유식한 말을 쓰시잖아요? 프로듀서.”

“허어.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 유비무환은 삼국지의 유비는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 라는 뜻이야.”

“………”

“농담이지만.”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꼭 토끼 명탐정이 변태 곰탱이 보는 눈빛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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