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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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가 절름발이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대충 실연 이야기입니다.
아스카랑 유닛 활동을 하게 되면서 시키는 아스카를 사랑하게 됩니다. 천재적인 두뇌로 원하는 건 다 쟁취해냈고, 도전이라는 걸 못해봤기에 더이상 욕구라고는 말초적 욕구밖에 남지 않은건가 싶었던 시키가 얼마만에 느껴보는 격렬한 감정.
이번엔 진짜야. 내 마음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어. 아스카쨩이 없으면 난 못 살아. 내 마음속에 지금 사랑 말고 다른 무언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기분이야... 시키는 충분한 고려도 없이 다짜고짜 아스카에게 달려들고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빈틈이 없는 거에요. 아스카는 란코를 사랑하고 있었거든요. 억지로 뭐라도 해보려고. 없는 틈을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되려 반감만 사고 말아요. 내게서 멀어지지 말아달라고. 자존심까지 버리고 질척대봐도 란코를 향한 아스카의 사랑은 틈새가 없이 너무나도 견고해요.
거기서 느끼는 거에요. 시키는 논리와 해답엔 익숙해도 사람과 사랑은 문외한이니까. 스스로 무엇이든 할거라고 생각했던 자신과 실제로는 아스카의 기본적인 기분조차 파악하지를 못했던 초라한 자신의 차이를. 화학 수식처럼 사람을 대했다는 사실을. 관계란 것은 답이 없단 걸 몰랐다는 사실을.
시키는 독백합니다. 나는 알고보니 절름발이었구나. 사람은 다리가 두개가 있어야지 걸을 수가 있는데. 내 한 다리가 너무 커진 바람에 다른쪽 다리엔 힘을 안 쓰느라 퇴화가 되어버렸어. 그렇게 된 바람에 평범, 아니. 깡마른 다른 쪽 다리는 절뚝댈수밖에 없구나.
란코는 지식 면에선 시키보단 모자랄지 몰라요. 하지만, 아스카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줬을 거에요.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말을 해 줬을거고,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보단 아스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테고, 아스카가 원할때 멀어지고 다가왔을 거에요.
나. 졌구나. 완전히 넉아웃이구나. 아스카쨩이랑은 이제 손도 못 잡겠구나. 이제 그만할래. 됐어. 안 되는 문제는 안 잡을 거야. 그냥 포기할래. 시키는 아스카에게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만나달라고 합니다.
아스카. 나. 이제 포기할게. 어차피 나보다 란코랑 있을때 행복하지? 아스카는 거기에 부정을 하지 못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뒤틀려가는 속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시키. 고마워. 고마웠고. 이제 나 그만 포기할려고.
난 머저리야. 내 대가리는 신약에 대한 제조법은 알아도 너라는 사람에 답이 없단건 몰랐나봐. 이제, 그 사랑. 내 모자란 사랑. 접을 테니까. 밤에 연락도 안할 테니까... 하아.
한숨을 쉬다가. 한숨을 몰아쉬다가. 한숨이 눈물이 되도록 몰아쉬다가 시키는 말을 잇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직 친구인건 맞지? 곁에 있을 수 있는 건 맞잖아? 응?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거의 다 놓아버렸지만 절대 놓칠순 없던 희망을 담아 시키는 말합니다.
시키. 머리도 좋고. 지식과 학력 수준은 나랑은 비교가 안 될만큼 높고. 가창력도, 비주얼도, 춤 실력과 센스도 뛰어나가지고 아이돌로서도 모자란 점이 없어보였던 시키. 무슨 일이건 다 할 수 있을 듯이 보였던 시키.
그런 시키라도 사랑 앞에선 이렇게나 무기력하다니. 나 때문에 이렇게나 흔들리다니. 하지만 시키를 받아들이기엔 맘속에 이미 란코가 너무 깊이 박혀있어요. 그 친구로 있자는 게 그저 친구로만 있자는게 아니란 걸 알고 있는 아스카.
란코를 놓을 수도 없고, 시키를 절벽에서 밀어버릴 수도 없어서 말도 못하고, 그저 시키를 끌어안을 수밖엔 없는 아스카. 귓속말로 뭐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 알려주지 않고 열린 결말로 끝.
씁쓸한 시키의 첫사랑 이야기가 쓰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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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의 IF에서 출발한 후일담격 이야기에요.)
영화가 시작하기 전 까지 어느새 삼십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두 시간을 성공적으로 날려먹은 시키가 나를 이끌고 향한 곳은, 바로 스티커 사진기계였다. 보나마나 둘이서 찍자는 게 분명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아니, 거부하려고 했다.
"안돼. 싫어."
"아 왜애."
"…나 란코랑 사귀는 거 알잖아. 너도."
"뭐 어때. 친구끼리 찍는 건데. 란코도 알잖아. 우리, 친구인 거-"
아니야? 라고 반문하는 시키의 말에 나는 얌전히 부스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그래, 여기서 더 부정하는 건 시키한테 내가 아직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 밖에 더 되지 않겠는가. 부스 안에서 동전을 넣고는 화면으로 보이는 우리 둘의 모습에 시키가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더 붙어 앉아. 옆에 좀 잘리잖아."
"…어."
조금 더 붙어앉자, 달큰한 향기가 훅 풍겨왔다. 그녀의 샴푸냄새인가, 아니다. 예전의 기억 속에서 항상 책갈피처럼 함께했던 체향이었다. 누가 들으면 변태라 할지 몰라도, 정말로 있었다. 체향이라는 것이.
그녀가 그렇게나 말하던 것이, 왜 지금에서야 다시 떠올랐을까. 란코와 함께할 때도 의식하지 못하던 것이었는데.
그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시키가 이끄는 대로 자세를 수정했다. 어느새 그렇게 움직이다보니 거의 꽉 끌어안고 포옹하는 상태에서 앞으로 고개만 돌린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간신히 버튼을 눌러서 카운트가 세어지고 있을 때였다. 막 화면에서 '1'이 점멸하고 있을 때, 화면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그대로 내 뺨에 입술을 부딪혔다. 그리고 그 동시에 터지는 플래시와 셔터소리.
-치즈~!
익살스러운 소리와 함께 반응할 새도 없이 사진이 찍혀버렸고, 나는 화면을 통해 내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건, 단순 친구라는 이유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을 넘어선 것 아닌가.
"야, 시키."
"… 조용히 해. 이따가. 이따가… 얘기할 테니까."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일단 침묵했다. 이따가라고 말했다. 곧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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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로라도 지내자고. 그렇게 말했었잖아."
"…그랬지."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쉽게 그러자고 했을까? 이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면서. 여기, 내 가슴은 찢어지고 있는데도."
그렇게 말하며 시키는 자신의 왼쪽 가슴 위를 주먹으로 턱턱 두드렸다.
"아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을 거야.
이 감정은 그저, 스스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아낸 환상일 뿐이라고.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너와는 다르게, 그저 가짜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잠깐 이렇게 흔들리고, 도망가도, 언젠가는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을거야. 아니. 생각했었어."
"……"
"너도, 예전이랑 다른 거 없이, 틱틱대기는 해도 해줄 거 다해주고, 신경써주고, 그러는 거 보면서 안심했어. 이젠 다 정리되었구나. 괜찮겠지. 괜찮겠지."
"…음."
"근데, 그런데 말이야…… 누가 있었는지 알아? 난 그저, 그냥 조금 친구로 돌아왔다고만 생각했던 우리 사이에."
"…란코."
"그래, 잘 아네. 란코."
란코였어. 그게.
이제 그녀는 울고 있었다. 물기어린 목소리로 시키는 울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도, 그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랬었잖아. 너 잊어보겠다고. 노력한다고."
"…그랬어."
"근데. 너 가고 지내보니까 알겠어. 나, 너 절대로 못 잊어. 못 잊어버려."
"……"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날 이렇게나 망가트려 버리는 거야……?"
"…미안해."
내가 고르고 골라서, 앙금을 쏟아내는 시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 밖에 없었다. 미안해. 하지만 그녀는 허, 하고 허한 웃음을 짓더니 허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누가, 너한테 방해되니까 헤어지라고 했어......?
아니잖아. 그런거, 절대로 아니잖아...
나, 힘들어도 네가 행복하겠지, 네가 좋아하겠지, 생각하면서 그렇게 견뎠던 건데…"
"……"
"하하. 하. 하아… 하. 흐윽…"
어느새 벤치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선 시키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펑펑 흘러내렸다. 유난히 어깨가, 작고 왜소해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위를 감싸안고, 미안했다,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금, 이 위태로운 저울 위 같은 이 분위기가 펑 터질 것 같았기에.
"흐윽, 나, 너, 절대로 포기 안할거야. 흑.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마음대로… 흡. 끝내려는 거야?"
"……너."
"그래. 이거, 이거… 란코한테 줄 거야. 나 너랑 만나게 되었다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면서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아까 찍은 스티커 사진이었다.
시키가 내 뺨에 입술을 맞추고 있고, 나는 가만히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 교묘하게도, 그 밑에 이어진 사진에서는 내 굳은 표정이 분명히 드러났지만 첫번째 사진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아무리 란코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해도 이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미소짓는 나와 내 뺨에 키스하는 시키.
"……란코, 그런거로 그럴 애 아니야."
"맞아. 란코, 진짜 이상할 정도로 너 좋아하니까. 그런데… 이런거 보면. 계속 믿고 싶을까?"
난 반박하려고 했지만, 나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저런 사진을 들이밀면, 아무리 단단한 사이라고 해도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지며, 끝내는 흔들리게 되겠지.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또 얼마나 힘들었으면 시키같이 순수하고, 모자랄 것 하나 없을 듯 빛나던 애가 이렇게 됐을까, 이렇게 했을까.
"다, 너… 흐으.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 시키가 스티커 사진을 귀한 보물지도라도 되는 양, 지갑에 도로 집어넣고는 누가 뺏어갈새라 품 안에 꼭 넣었다. 나는 착잡한 기분이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어. 나도. 예전에, 그런 기미가 보였을 때 그냥 내가 말할걸. 분명하게 다시 나랑 사귀자고. 괜찮다고. 전혀 방해될 리가 없다고…"
임나연은 이제는 넋두리에 가깝게 횡설수설했다. 더없이 불안정해보였다. 누가 툭 건드리면 깨져버릴, 얇디얇은 설탕유리처럼.
"너 아니면... 너 아니면 안될 거 같단 말이야. 나…… 진짜 어떻게 해야 돼. 나 모르겠어. 어엉…"
그 모습에, 나는 그만 마음속에서 끓어오른 감정 한 줄기를 참지 못하고 시키를 꽉 끌어안았다.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마음 속으로 수없이 되뇌이면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동안 회피하고, 모른척 해 왔던 마음 깊은 곳에서의 감정이 되살아나려는 것 같았다.
'나, 시키를 정말로 친구로만 생각하는 거였나?'
제가 생각하는 결말은 결국 시키가 쓰라린 마음과 함께 첫사랑을 완전히 단념하는 거지만요. 그래도 제 소재가 마음에 드셨다면 이런 스토리로 단편을 하나 써보시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