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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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쪽으로 글을 쓴 이유는 제가 아이마스라는 ip를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타 사이트에 좋아하고 동경하는 글이 있어서였어요.
그 글의 주인공은 아마미 하루카입니다. 아마미 하루카. 아이마스의 중심은 아마미 하루카죠.
내 내면은 비루하고, 내가 열등감에 똘똘 뭉친 인간이라 해도, 나는 나름대로 나의 글에 자부심이 있고, 그래도 나는 어느정도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우월감이 있었습니다.
내가 똑똑하다는 근거는 그냥 단순합니다. 영어랑 국어에서 모의고사 1등급도 좀 맞아봤고, 우리 아빠도 똑똑했으니까 유전빨이 있겠지 싶은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그 글을 보면서도 그 우월감을 계속 가지고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글을 볼 땐 저도 타 사이트에서 글을 아주 열심히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도저히 그 글처럼 저는 쓸 수가 없는거에요. 나보다 서술이 좋다고 해야하나? 나보다 정교한 표현이 있나? 저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한테 없었고, 내가 글에 지금까지도 넣지 못하고 있던 무언가가 하나 있었습니다.
긍정이에요.
난 좀 역겨울 만큼 오만했지만 나의 글은 실의와 염세에 빠져서 질척거리기만 했고, 그 하루카 글은 매우 꾸준했습니다. 그리고 기저에 깔려있는게 긍정이었어요. 전 아니었거든요. 내 내면에 가득한건 나에 대한 거부와 부정이었어요.
하지만 찐따모쏠아싸라도 꿈은 있고 희망은 있어요. 이미 조각났고 원본도 그리 볼품없을지 몰라도 그런 걸 나름 모아보고 싶었어요.
나름의 희망과 거부감에서 나오는 짙은 헛구역질이 서로 섞인 요상한 글이었죠.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어둡다 그러더라고요. 전 이해가 안됐어요. 왜냐면 그정도면 충분히 희망차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제 글은 그냥 무언가를 동경하는 사람의 이야기지 영웅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전 찐따로 영웅담같은걸 쓸 필력이 없거든요.
그 글은 영웅담이었어요. 네. 어찌보면 전형적인 영웅담일지도 몰랐어요. 누구보다도 커다란 힘을 지닌 주인공이 시련을 겪지만 그걸 스스로 극복해내요.
투쟁해서 이기고 위업을 이루는 거에요. 그리고 그동안 도와주고 기다려준 모든 사람들의 앞에 금의환향하고요.
전 나름대로의 투쟁은 해봤지만 이긴적이 없었습니다. 투쟁의 결과가 정말 역겨울 정도로 내키지가 않았어요. 그 결과로 전 전의를 상실했고요.
나는 내가 이루지 못하고 겪지 못한 일을 상상해서 쓰고는 했지만, 영웅담만큼은 쓸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글에 영웅이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인간, 영웅. 난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거니와, 내가 그런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써봤자 지리멸렬해질거라 믿고 지레 접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 글을 봐줬습니다. 사실 전 아직도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제 글을 봐줬어요.
거기에 심지어는 제가 훈련소에 들어가서 몇 주를 휴재만 하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에요.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제 글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게 있었어요. '제가 글을 싫어하는 정도<글을 좋아하는 정도 및 독자의 유입과 반응으로 인한 만족감' 라는 편익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그게 뒤집히고 말았어요. 글을 쓰면 조회수는 나오고 댓글도 많이 달리지만 어느새 그게 소용이 없어졌던 겁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결국 내 마음에 안 들면 소용이 없어요. 내 마음에 안 들면 소용이 없단 거에요. 마음에 안들면 땡이에요.
그 사실이 너무 새삼스러워진지 오래였지만 문득 갑작스레 데미안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데미안은 영웅인데 싱클레어는 영웅이 되기 위해서 분투하잖아요? 내 글의 서사는 대부분 데미안이 아예 제거된 데미안이었어요. 싱클레어만 덩그러니 있는 데미안 말입니다.
데미안이 없으면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의 괴롭힘과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죠. 모처럼 운이 따라서 김나지움에 갔지만 결국 하는 거라곤 독수공방에 안주도 없이 술 몇병만 덩그러니 나뒹구는 자작뿐이었을 거에요.
1차대전에 징집된 후 폭격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거울을 통해 본 모습은 데미안의 모습이 아닌 싱클레어의 모습이었을 거에요.
아이커뮤에선 위에서 말한 그 장편 글은 아니고 단편 글을 올렸습니다. 뭐 장편 글의 에피소드에서 한 부분을 잘라서 올리기도 했었죠. 반응이 정말로 좋았었어요. 모든 사람들한테요.
하지만, 여전했습니다. 여전했어요. 나의 그 이유 모를 염증은 사라지지도 않고 잘만 남아 있었습니다. 오히려 커졌으면 커졌죠. 그것은 내 안의 동경이 낳은 것이었고 결핍에 대한 갈증이 낳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와서야 알았습니다. 내 글에 영웅이 없고, 난 영웅을 쓸 수 없어서 글을 못 쓴게 아닐까 하고. 내 글에, 내 안에, 영웅이 생길 수만 있다면...
하지만 영웅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제서야 내 글이 싫어진 이유를 깨달았고, 내 안에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 뒤론 별 게 없었어요. 그냥 그게 끝이었어요. 싫어진 글이 다시 좋아지지도 않았고, 관짝 안에서 가나 형님들이랑 춤추러간 필력과 의지가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전 절 아는 사람은 다 좋으니까 누구에게나 뛰쳐나가서 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해야만 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내가 될 수 없었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들어준 분은 그렇게 말했어요.
영웅담이란건 스스로를 긍정해야지 쓸 수 있는 글인데 본인을 부정하고 본인의 글도 부정하면서 본인를 긍정해야 쓸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하는건 모순이다. 그러니까 글이 안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글을 쓸 거라면 부정만 하거나 긍정만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
하지만 아예 본인을 부정하기만 하는 사람은 글을 쓰지 않게 된다. 왜냐면 글 쓸 시간이나 노력을 본인을 부정하는 선에서 써버리는 것에 끝날 테니까.
그래요. 내가 날 부정하던 시기에 글을 잘도 쓰던건 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아서였어요. 위에서 말한 대로 나름대로의 우월감이 있었으니까요.
다 정리하고 나열하니 어찌보면 전부 당연한 이야기인 거에요. 영웅은 자기를 긍정하고 스스로를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난 아니었어요. 그렇긴 해도 최근의 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나긴 늪지대에서 어느정도로 숨을 쉬는 건 가능할 만큼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독한 대인기피증과 공포로 인해 대학교를 다니다가 수업도 참석도 못하고 결국 휴학을 했는데 전 이제 비대면이나마 수업에 참석을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긍정적인 변화로 인해서 전 애매한 사람이 된 겁니다. 날 부정하며 글을 썼는데... 그래도 나도 변한게 있는데 이제와서 날 쌩판 부정하긴 좀 그렇잖아요?
찐따가 영웅이면 안되는 걸까요? 아니면 찐따가 영웅이어도 되는 걸까요? 찐따가 영웅이 되는게 가능할까요?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이 찐따인게 가능할까요?
내가 해결책은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나의 문제를 들어주는 건 내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름 정리하고 생각해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답은 안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읽어주신다면야 전 그걸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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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아. 알 것 같네요. 내내 달라붙은 진득한 부정들이 나임을 알면서도 나를 상처입히니 때어네야 할지 받아들어야 할지 몰라서 또 멈추고 또 상처입고 혼자 가라앉는
고작 스물도 안된 애송이입니다만 감히 공감할게요.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부정적인 걸 아무리 내뱉어봤자 좋아질 일은 없다. 나를 관조하고 성찰한다고 착각해봐야 스스로를 상처입힐 뿐이다. 아니면 내가 널 욕해줄까? 싫어?
남이 널 욕하면 싫고 네가 스스로 욕하면 좋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너를 부정해서는 너를 바꿀 수 없어.
왜 안했을까를 넘어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부정과 자책에서 멈추지 말고
또 물러날 곳을 만들려고 변명하지 말고
'난 아직 제대로 하지 않았어.'
언제 제대로 할거야? 죽을 때?
분명 내가 해낸 것도 있어
난 잘했어 이젠 인정해 난 잘했어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아직 안된 게 있어
그것도 하면 돼
잘난듯이 지껄였지만 저도 사실 실천이 힘들더라구요.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그것밖에는 답이 없더라구요.
영웅은 애초에 뭘까요... 흔히 느끼는 이미지적인 영웅이라면 솔직히 전 죽어도 못될고 못쓸것 같지만 그래도 아주 작게나마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설령 타의와 타산과 후회로 점철되었더라도 도움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영웅이 아닐까 하는 음... 아무소리를 나불거려봤습니다.
아니면 이것도 클리셰였나요? 뭐 그렇겠죠? 세상의 영웅이 아니라 누군가만의 영웅. 도움안되는 답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남겨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건 그 부정에 대한 부정이 내면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 질문에 있는건 '왜'가 아니거든요. 누군가가 날 보고 '나는 멍청해' 하면 나는 그 사람에게 '아니에요' 라고 하겠죠. 그 사람이 그 말을 한 이유는 '당신은 수능점수 총합이 50점이고 토익점수가 120점이라서 멍청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니에요' 때문이니까요.
그 부정과 부정에 대한 부정이 만드는 순환의 굴레를 벗어나는 건 결국 나만의 힘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절대 안 돼요. 우공이산은 어떻게 가능했나? 옥황상제께서 옮겨주니 가능했던 겁니다. 내가 요로결석에 걸렸다고 치면 아무리 몸을 바른 자세로 뉘이고 심호흡을 해도 결석이 자기 스스로 부숴지지 않거든요. 일단 병원에 가야 합니다. 왜는 그 뒤에 물어볼 수 있고,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도망치는 것도 필요하고 쉴 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망치면 나중에 두 배로 맞는다? 세 배로 맞아도 도망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이 들 때면 도망치는게 낫습니다. 맞는게 불가피하다면 유예라도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유예가 주어지면 그 동안에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요. 다리에 회초리를 맞을때 하다못해 롱패딩을 입고 맞으면 덜 아플 게 아니에요? 준비가 안됐을 때 그냥 맞는 것보단 맞는 양이 늘어도 한 대 한 대는 덜 아프게 느껴질 테니까요.
물론 그 시간이 유예와 준비의 시간이 아니고 그냥 도망만 친 시간이면 쌩으로 두배를 맞고 말겠지만요. 물론 그렇게 말하는 저도 썡으로 두배를 맞았을 때가 더 많았단 생각은 들지만 그게 후회는 안 됩니다. 내 선택이거든요.
그리고 안 된 걸 바라보면 바라만 보다가 끝나게 되더라고요. 나는 내가 하던 일이 잘 안 된 이유는 내가 죽을만큼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못 한것과 내 결점을 생각했고요. 그런데 끝이 없더라고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급으로 이어집니다.
이게 잘 안 된 것과 마음에 안 드는걸 바라본다고 칩시다. 나의 지식수준이 마음에 안 들면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할거고, 그 대학도 마음에 안 들면 서울대를 가고 싶어할거고, 서울대도 마음에 안 들면 교수가 되고 싶어할 거고, 교수가 되었는데도 나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면 아인슈타인이 되고 싶어할 거고, 아인슈타인이 된다면? 그 위를 갈구할 겁니다. 네. 끝이 없어요.
이제는 알겠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만 할 수 있다는 걸요. 그래서 노력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겁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언제나 유동적이거든요. 좋은 의미건 부정적 의미건 말이에요. '할 수 있는 만큼'이 좋은 의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나의 결과가 운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스스로를 한번 행운아라고 칭찬해보자고요. 그게 좋은 의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것보단 나은 것 같아서요.
영웅에 관한 문답이라면 말씀하신 것과 영웅은 다른 영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웅이란 정말 거창하고 현실에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은 사람입니다. 영웅은 난관에 맞닥뜨려도 무너지지 않고, 얼마나 부정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거기서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고, 그 순간을 즐기고, 그 모든 것을 해내면서 말씀하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해내는 사람입니다.
나는 스스로가 영웅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비단 여기 뿐만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댓글을 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잖아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힘이 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힘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긴 참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전 후자를 기반으로 전자를 해내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가 없이 후자만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 그냥 자기에 취해서 살고 세상에 자기만 제대로 된 인간인줄 알면서 지 잘난맛에 살아가는 인면수심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냥 여길 떠나신줄 알았는데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