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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사쿠마 마유 「모조품」 (2/2)

댓글: 12 / 조회: 2123 / 추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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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9, 2015 00:46에 작성됨.

 

  「도착했어」

 

 프로듀서 씨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샌가, 사무소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가 멈춰져 있었다.
 안전벨트를 풀고 조수석에서 내리자, 차가운 공기에 꽉 껴안겼다.
 프로듀서 씨는 못 참겠다, 하는 상태로 목에 머플러를 감았다.

 

  「우우, 미안. 같이 오도록 해서」

 

  「아뇨. 그것보다도, 빨리 안으로 들어가죠?」

 

  「그렇네. 춥다추워……」

 

 밤의 그림자가 근처를 적셔, 가로등의 빛과 눈이 하얗게 떠올라 있다.
 흑백의 경치 속에서, 프로듀서 씨의 머플러만이 붉었다.

 

 나는 프로듀서 씨와 함께, 잡거빌딩의 계단을 올랐다.
 시노부짱의 생일 선물은 뭐로 하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발을 헛디뎠다.
 앗, 하고 낮게 목소리를 낸 것과 프로듀서 씨가 나를 지지해 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조심해. 지친걸까나」

 

  「죄, 죄송합니다……고맙, 습니다……」

 

 두근두근같이 온화한 게 아니라, 나의 가슴은 격렬하게 고동쳤다.
 위험하게 구르는 상황은 댄스 레슨에서 가끔 조우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정말로 오래간만이었다.

 

 식은 땀과 한숨,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답답함은 사무소에 들어가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곧 끝낼테니까, 내 데스크에라도 앉아 있어」

 

 그가 말하는 대로 앉아서, 나는 꽤나 초조하게 가슴팍을 문질렀다.
 서류를 복사하는 프로듀서 씨에게, 저쪽 데스크의 남성이 이야기했다.

 

  「마도기와 씨, 그 머플러 따뜻하고 좋아 보이네요」

 

  「좋겠죠. 사쿠마 씨가 만들어 줬습니다」

 

  「그건, 부럽네요」

 

 

 

 프로듀서 씨는 서류의 복사본을 데스크에 두고, 옆에 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다음 달, 기말 테스트가 끝나고 나서 봄방학에 들어가잖아.
  봄방학 기간에 레슨 스튜디오를 빌려놔서 말이지……이게 스케줄인데 말이야」

 

 그의 한숨이 희미하게 나의 머리카락을 흔들어서, 침착해지고 있던 가슴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싱글 CD용의 곡, 우리들이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살짝 귓속말했다.
 되돌아 보자 그의 얼굴이 바로 옆에 있어서, 화악, 하고 뺨이 뜨거워진다.

 

 노력하자, 라고 어깨를 두드려졌을 때, 나의 몸은 팟하고 튀어올랐다.
 옆에서는 대단한 반응을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심장이 멈추는걸까 생각했다.

 

 

 

 그가 말한 것을 제대로 의식한 것은, 사무소를 나와서, 밤에 몸이 차갑게 되고 나서였다.
 노래하는 것은 좋아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들려주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 그가 나의 노래를 최초로 들어주겠지.

 어깨에, 지지해주었던 감촉이, 톡하고 두드렸던 감촉이,
 그의 손의 감촉이 기분 좋게 연기처럼 남아 있었다.

 

 

 

 ────

 사각사각, 빙그르르── 침대 옆의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리듬에 맞춰,
 시노부짱의 손은 재주 좋게 사과껍질을 깠다.

 

 여러가지로 생각한 끝에, 시노부짱의 생일 선물로는 퀸의 CD 앨범을 샀다.
 선물하자마자, 같이 듣지 않을래라고 권유받은 대로 시노부짱의 방에 실례해서,
 이제 앨범은 3바퀴째에 들어서고 있다. 시노부짱의 16살의 생일파티는 두 사람이서다.

 

 친가로부터 보내왔다고 하는 사과의 달짝지근한 향기가 방에 자욱하다.
 시노부짱은 사과를 균등하게 잘라서, 자, 하고 접시에 올렸다.
 내 몫의 접시에는, 토끼귀 모양의 사과가 하나 얹혀져 있었다.

 

  「의외로 손재주가 있지」

 

 시노부짱은 생글생글 웃었다. 토끼 이외의 한조각을 들어, 살짝 갉아 먹는다.
 입에 과즙이 흘러넘쳐, 새콤달콤함이 확하고 퍼졌다.
 슈퍼에서 파는 사과보다 몇단계는 맛이 진하고 맛있다.

 

 

 

  「생일선물이 사과라는 것도 엄마답지만, 이만큼이나 혼자서 먹을 수는 없다니까」

 

  「응, 그렇네」

 

 옆에 열려 있는 골판지 속에는, 한가득 붉은 사과가 차있다.

 

  「마유짱, 몇개 가져갈래?」

 

  「그건……괜찮아?」

 

  「괜찮아! 우리 집에 있는 냉장고도 작고」

 

 그렇게 말하면서, 시노부짱은 부엌에서 비닐 봉투를 가져와,
 아무렇게나 사과를 넣어 건네주었다. 사과 세개 치고는, 꽤나 무겁다.

 

  「고마워요」

 

  「내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맛있지?」

 

  「여기서도, 센다이에서도 먹어본 적 없을 정도로 맛있어요」

 

 

 

 토끼귀를 단 사과까지 먹어 두 사람 몫의 접시가 비워지자, 시노부짱은 기지개를 켰다.

 

  「으응- 테스트 뒤에는 해방감이 있네」

 

  「우리들, 지금부터 바빠지겠지만」

 

  「바빠지기는 해도, 아이돌은 엄청 즐거우니까!」

 

  「그래, 이번에 텔레비전 봤었어. 댄스, 능숙했어」

 

  「에헤헤. 그치만, 아직 백댄서로서도 보통 이하니까……지금은 연습만이 있을 뿐이야!」

 

 요새, 시노부짱과 같이 레슨을 하는 경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의 경향이 이것저것 정해진 채로 와서, 시노부짱은 댄스 레슨,
 나는 보컬이나 비주얼 레슨을 받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였다.

 

  「마유짱은……최근 어때?」

 

  「변함없이 모델이라든지, 사진의 일 뿐이야」

 

  「슬슬, 아이돌 같은 일이 있어도 좋을텐데」

 

  「그렇지만, 봄방학 들어가고 나서 보컬 레슨, 확실하게 하는 것 같아」

 

 문득, 한숨에 머리카락이 흔들렸던 감촉이 떠올라 흠칫 놀란다.

 

 

 

  「그거, 설마」

 

  「싱글 CD 곡을 부를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프로듀서 씨가……」

 

 시노부짱은 잠깐 어안이 벙벙해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가…… CD 데뷔하는거구나! 언제 발매야?」

 

  「고마워요. 아직, 언제인지는 몰라」

 

  「그럼, 언제인지 정해지면 가르쳐줘. 절대, 절대로 살테니까……」

 

 그 때 정확하게, 앨범의 마지막 곡이 끝났다.
 시노부짱은 몸을 내밀어서, 한번 더 처음부터 앨범을 다시 재생했다.
 테이프를 역회전시킨 듯한 기묘한 인트로 뒤에, 피아노의 연주와 노래가 시작된다.

 

  「그런가아, CD인가아……」

 

 불쑥 중얼거린 뒤, 시노부짱은 자그맣게 콧노래를 불렀다.
 플레이, 더, 게임, 에브리바디, 플레이, 더, 게임……(Queen, Play The Game)

 

 

 

 ────

 화이트 데이인 오늘을 시작으로 3주 정도 봄방학이 시작된다.
 나는 어째서인지 기분이 들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이런 날이 있었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옷장을 열고 옷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모델을 했었던 무렵은 그야말로 살기를 띠고 있었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옷을 고르는 것이 즐거웠다.

 

 오늘은 점심 식사 겸, 봄방학 기간의 레슨에 대해 다시 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의식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프로듀서 씨의 아이돌이고, 그는 나의 프로듀서다.

 

 마음에 드는 구두를 신고, 뚜벅뚜벅 발끝으로 아스팔트를 두드린다.
 단 몇주 전만 해도 면도날처럼 날카롭던 바람도, 칼날이 둥글어져 점점 부드러워졌다.
 곧 있으면, 나는 겨울을 잊어 버릴 것이다.

 

 에브리·브레스·유·테이크의 선율을 혀로 그리면서,
 눈의 그림자조차 없는 길을 걸어갔다. 도쿄의 봄은 조금 빠른 것 같다.

 

 

 

 사무소의 문을 열자, 프로듀서 씨와 시노부짱의 말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마도기와 씨한테는 어른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말했던 것처럼……」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내가 뒷손으로 문을 닫으니, 두 사람은 이쪽을 되돌아 보았다.

 

  「……미안해, 바쁠텐데」

 

 시노부짱은 프로듀서 씨에게 그렇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가 있는 문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툭 나의 어깨를 치며 싱긋 웃었다.

 

  「마유짱, 레슨 노력해!」

 

  「아, 에에, 응……」

 

 내가 애매한 대답을 할 동안, 시노부짱 옆으로 빠져나와 밖으로 나갔다.

 

 

 

  「여어, 사쿠마 씨」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 씨의 데스크 위는 평소보다 어질러져 있었다.
 그는 서류를 모아, 가방에 넣었다.

 

  「뭐 먹을래?」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든지」

 

  「또 햄버거?」

 

 프로듀서 씨와 눈을 마주쳐 웃는다.
 시노부짱과의 대화에 대해 묻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할까」

 

 

 

 프로듀서 씨는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나를 재촉했다.
 사무소를 나오고 나서, 그가 머플러를 두르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머플러, 하지 않으셨네요」

 

  「아─ 꽤나 따뜻해졌으니까」

 

  나는 티나게 시무룩 했던 것 같다.

 프로듀서 씨는 툭하고 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위로해 주었다.

 

  「내년까지 소중히 보관해둘테니까」

 

  「앗, 아, 아뇨, 그런……」

 

  「대활약이었으니까 말이야. 머플러, 정말로 고마워」

 

 

 

 다시 방문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혼잡했다. 몇달 전의 정오, 이곳에 왔을 때와 똑같이.
 바뀐 점이 없는 점내의 풍경. 바뀐 것은 우리들 두 사람과 에어컨의 설정 온도 정도일 것이다.

 

 2인석으로 안내받아 프로듀서 씨는 명란젓 스파게티를, 나도 같은 명란젓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잠시 후에, 테이블에 명란젓 스파게티가 두접시 옮겨져 온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햄버거 아냐?」

 

  「제가 할 대사에요」

 

 서로 쿡하고 웃고, 일단은 먹기 위해 명란젓 스파게티를 포크에 말았다.

 

  「그렇지. 화이트 데이의 답례, 제대로 준비했어」

 

  「아……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씨는 포크를 놓고, 종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꼼꼼하게 포장된 손바닥 크기의 상자를 테이블에 두었다.

 

 

 

  「잊기 전에」

 

  「다, 다 먹고 나서, 열어보게 해 주세요」

 

 내가 서둘러 포크를 움직이자, 프로듀서 씨는 웃었다. 초조해하지 않아도 도망치지 않는다고, 라며.

 

 접시를 비우고, 나는 종이 냅킨으로 꼼꼼하게 손가락을 닦았다.
 선물 상자를 손에 들고, 포장을 풀었다.

 

 정육면체 하드 케이스의 뚜껑을 들어올리자, 안에서 시계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케이스에서 꺼내, 양손 위에 올렸다.
 둥글고 흰 문자판의 가장자리를 은이 장식하고, 붉은 가죽 밴드가 꾸며주고 있다.

 

  「와아…… 차 봐도 괜찮습니까?」

 

  「부디」

 

 왼쪽의 손목에 감아 밴드를 쇠장식에 넣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잘 되지 않았다.
 고전하는 나를 보기 힘들었는지, 프로듀서 씨는 살짝 나의 손을 잡았다.

 

  「앗……」

 

  「자. 어때, 불편하지 않아?」

 

 

 

  「네, 네……딱 맞습니다」

 

 그의 양손이 떨어진 나의 왼쪽 손목에는, 시계의 붉은 밴드가 감겨 있었다.
 왼손을 살그머니 귓가에 갖다대자, 심장의 고동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가 났다.

 

  「감사합니다. 정말……정말로 기쁩니다」

 

  「다행이다. ……응, 어울려. 분명 어울릴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때때로 나는 손목을 돌려 시계를 보았다.
 레슨이나 노래할 곡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분침이 한바퀴 돌아가 있었다.
 보고 있을 때에는 초침만이 째깍째깍하고 가고 있었는데도,
 한눈팔고 있는 사이에 분침은 5분, 10분씩 앞으로 가고 있었다.

 

 

 

 ────

 봄방학 기간의 레슨은 트레이너 씨와 나와 프로듀서 씨 세 사람이서 하게 되었다.
 처음의 2, 3일은 프로듀서 씨를 의식해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옆에 있어주는 것이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기뻤다.

 

 프로듀서 씨는 내가 노래하는 것을 구석에서 가만히 응시하면서,
 때때로 수첩에 뭔가를 쓰거나 휴식 시간에는 트레이너 씨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메트로놈의 바늘이 찰칵찰칵하고 흔들리고 있다.
 트레이너 씨가 연주하는 피아노에 맞춰서, 소리를 쫓아, 악보를 넘긴다.
 악보면에는 인쇄되어 있지 않지만, 곡의 가사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 같다.
 부탁해서 보게 되니, 너무 직접적일 정도의 러브송이었다.

 

 

 

  「사쿠마 씨에게 딱 맞다고 생각해」

 

  「그런가요……?」

 

  「딱 맞고 말고요」

 

 프로듀서 씨가 말하자, 트레이너 씨는 딱 맞다, 라고 수긍했다.

 

  「마유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어?」

 

  「엣, 아니……그……」

 

 얼굴이 붉어져서 말문이 막힌 나를 보고, 트레이너 씨는 쾌활하게 웃었다.

 

  「그럼, 그 기분을 담아서 노래해 볼까!」

 

 원, 투, 쓰리, 포하고 마음대로 카운트를 세고, 그녀는 건반을 쳤다.
 힐끗 프로듀서 씨 쪽을 보자, 조금 곤란한 것처럼 나에게 웃어 주었다.

 

 

 

 레슨이 끝나면 프로듀서 씨는 나의 집까지 데려다 주신다.
 차내에는 그가 좋아한다고 하는 음악이 언제나 틀어져 있었다.
 피로에 반쯤 눈꺼풀을 감고, 이름도 모르고 있던 락 뮤직에 귀를 기울였다.

 

 귀가하는 차내에서 프로듀서 씨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일은 적었다.
 나는 때때로 잠깐 졸기까지 하면서, 그가 얘기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왼손의 시계를 살짝 볼 때마다, 더 멀리 살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달짝지근하게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프로듀서 씨와 헤어져 자신의 방에 돌아오면, 언제나 깊은 숨이 나온다.
 외로운 듯한, 따뜻한 듯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해서, 잘 됐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를 부를 때, 하나의 실과 같은 운명에 오싹했다.

 

 만약, 그 날 커피숍에서 합석이 되지 않았으면?

 

 운명이 있다고 한다면, 분명 운명의 만남이었던 거겠지.
 나는 왼손의 시계를 귓가에 갖다댔다.
 지금까지의 거짓도 운명과 하나가 되서, 정몽(正夢 *8)처럼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시간은 영원히 계속 되는 걸까.

 

 

 

 ────

 하얗게 개인 오전, 나는 레슨 스튜디오에 혼자서 있었다.
 프로듀서 씨는 회의가 있으니까 하고, 나에게 기다리고 있도록 지시를 했다.
 스튜디오의 바닥에는 겨울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공기가 감돌고 있다.

 

 벽 한면의 거울에 업라이트 피아노와 내가 어색한 것처럼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살짝 건반의 뚜껑을 들어 올려, 건반 하나에 손가락을 올렸다. 발밑에 소리가 떨어진다.

 

 스튜디오의 문에 시선을 돌려 아무도 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는 의자에 앉았다.

 

 피아노를 배운 것은 1년 정도였나, 반년 정도였나, 그렇지 않으면 더 짧았었나.
 왼손으로 건반의 소리를 몇 번이나 확인한다. 오른손도 똑같이.
 이전에도 결코 능숙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양손의 움직임은 녹슨 것처럼 어색하다.

 

 

 

 천천히, 천천히, 기억을 더듬듯이 건반을 두드린다.
 어째서 그만뒀더라. 그렇지 참, 이 곡 외에는 아무것도 연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무곡집 제2번, 오리엔탈
 이 구슬픈 멜로디를, 나는 보물처럼 소중히 하고 있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만은 행복했었는데. 실패하고, 같은 소절로부터 다시 시작해서, 또 실패했다.
 처음부터, 더 느긋하게 연주하려고 양손을 떼어 놓았더니,
 문 옆에 프로듀서 씨가 서있는 것을 깨달았다.

 

  「피아노, 칠 수 있었구나」

 

  「……이 곡 뿐입니다. 게다가, 서투르고」

 

 나는 건반의 뚜껑을 닫고, 의자에서 일어났따. 희미하게 얼굴이 뜨겁다.

 

 

 

  「저기, 마음대로 피아노를 연주한 거, 트레이너 씨에게는 비밀로……」

 

  「아하하. 그녀, 화낼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비밀로 해둘게」

 

 트레이너 씨가 스튜디오에 도착하는 건, 좀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나는 구석에 나란히 줄서있는 파이프 의자에 걸터앉아, 프로듀서 씨가 사 와 주신 코코아 캔을 천천히 마셨다.
 프로듀서 씨는 스튜디오 안을 돌아다니면서, 수첩을 넘기곤 가늘게 웃음을 띄웠다.

 

  「저기, 프로듀서 씨」

 

  「응……왜?」

 

  「프로듀서 씨는, 사무소를 그만두지 않으시는거죠」

 

  「그거야 물론. 무슨 일이야?」

 

  「시노부짱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만둘 생각이었다고」

 

  「아아, 그런가. 쿠도 씨인가」

 

 그는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고민하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지금 정도의 시기에 그만둘 생각이었어」

 

  「……제가 무리한 소리를 해서, 남은 건가요」

 

 그렇게 말하자, 그는 예상과는 달리 껄껄하고 웃었다.
 그리고 옆으로 와서, 나의 오른쪽 어깨을 팡하고 두드렸다.

 

  「내가 너를 스카우트했던 거잖아」

 

  「그건 제가 부탁했기 때문에가 아닙니까」

 

  「결정한 건 나인걸」

 

 프로듀서 씨는 근처의 파이프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는, 사쿠마 씨를 스카우트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정말로……?」

 

  「네가 와줬기 때문에, 지금 사무소에서 계속해나갈 결심이 섰어」

 

 그의 미소에, 뺨이 조금 뜨거워진다.

 

 

 

  「동료와도 다소 옥신각신 했지만 지금은 사이좋고」

 

  「옥신각신 했었나요」

 

  「뭐, 편리한 역할이었으니까」

 

 프로듀서 씨는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불만을 담아둔 채로 그만두는 것보다,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좋은 선택이었다고」

 

 왼손을 돌려, 시계에 눈을 떨어뜨린다.
 시간은 같은 간격으로 지나가고 있을텐데도, 모르는 사이에 생략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저, 프로듀서 씨의 기대에 응할 수 있었습니까?」

 

  「조금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스카우트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너는, 이라고 그는 계속했다.

 

  「너는 어때. 스카우트 되어서 좋았어?」

 

  「그건 물론, 이에요. 저, 당신과 만나고 나서……매일, 즐겁습니다」

 

 혹시, 한 눈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잘 모르는 채로, 지금까지 지내왔지만, 오늘을 위해서 살아있었던 걸까.
 등불을 향해 날아가는 벌레와 같이,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과거에 이끌린 하나의 선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운명과 같은 만남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운명이군요……」

 

 나는 왼손의 시계를 오른손으로 살그머니 가렸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짓의 말도, 무언가를 무서워했던 것도, 그가 의미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거 싫지 않아」

 

 프로듀서 씨는 살짝 웃었다.

 

 

 

 ────

 아침, 제복을 입고, 가죽 구두를 신고, 그리고나서 겨우 봄방학이 끝났었던 것을 깨달았다.

 

 꿈 속에서도 시간은 존재할까.
 만약 소매로부터 살짝 보이는 손목시계가 멈춰져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일들을 혹시 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초침의 소리는, 꿈이 아니었다.

 

 학교의 문을 빠져 나가자, 승강구의 앞에 인산인해가 펼쳐져 있었다.
 게시판의 벽보를 먼 눈으로 보자, 클래스의 명부인 것 같았다.
 꽤 자신의 이름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자, 때마침 인산인해로부터 나온 시노부짱과 눈이 마주쳤다.

 

 

 

  「앗, 안녕─ 마유짱!」

 

  「안녕, 시노부짱」

 

  「클래스 편성, 봤어?」

 

  「보려고 생각해서 까치발하고는 있었는데……」

 

  「아하핫, 여기에서는 전혀 안보이니까. 마유짱, 나랑 같은 클래스야!」

 

  「진짜?」

 

  「진짜, 진짜로! 지금부터는 도시락 먹을 때 교실에서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

 

 

 

 체육관에서 간단하게 시업식을 한 뒤, 평상시 대로 수업을 했다.

 

 4교시 째의 수업이 끝나자, 시노부짱은 허겁지겁 내 책상의 정면에 의자를 가져왔다.

 

  「수업 날짜의 확보라고는 말하지만, 뭔가 분위기를 모른다니까」

 

  「분위기?」

 

  「시업식이 끝나면, 돌아가는 거잖아?」

 

  「모르지는 않지만……」

 

 중대한 사태구나, 하고 시노부짱은 중얼거리고, 도시락의 계란부침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생각난 듯이 말했다.

 

  「봄방학의 레슨, 어땠어?」

 

  「응─ 음, 즐거웠어」

 

  「진짜?」

 

  「진짜로. 시노부짱은 어땠어?」

 

  「나도 즐거웠지만……아침부터 저녁까지 쭉 댄스 뿐이라」

 

  「그건 지칠 것 같네」

 

  「엄청 피곤했어! 하지만, 착실하게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좀 더 노력할거라고오, 라고 시노부는 도시락의 나머지를 삼켰다.

 

 

 

  「마유짱은 오늘, 방과후 레슨 있어?」

 

  「오늘은 없음. 프로듀서 씨, 이사가 있다고 해서……」

 

  「이사? 그런가, 이사하는구나」

 

  「그러니까, 오늘이랑 내일만 레슨은 휴일」

 

  「……저기, 마유짱」

 

 시노부는 도시락 상자를 치우면서, 망설이듯이 웃음을 띄웠다.

 

  「마도기와 씨, 좋아해?」

 

 그 질문은 너무나 갑자기 튀어나왔다.
 목의 안쪽이 얼어붙은 것 같은 감각과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해서,
 그것들이 간신히 추슬러진 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겨우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두라구」

 

  「……어째서?」

 

  「어쨌든 간에」

 

 시노부짱은 무뚝뚝하게 말하고, 의자를 자신의 자리로 되돌렸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차임벨이 울리자, 교실의 이곳저곳에서 덜컹덜컹 의자를 끄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역사 수업은 오늘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지루했다.
 노트의 구석에 나비의 그림을 그리면서, 때때로, 시노부짱 쪽을 훔쳐보았다.

 

 어째서, 좋아하면 안 되는 것일까.
 3마리째의 나비를 노트의 줄 위에서 날도록 하자, 줄어든 그림자에 눈을 빼앗겼다.

 

 

 

 분명, 시노부짱은 프로듀서 씨를 좋아하는 거다.

 

 또각하고 샤프 펜의 심이 부러져, 노트에 검은 물보라를 흩뿌렸다.
 입으로 불자, 하늘하늘하게 형태를 바꾸면서, 검은 연기는 사라져 갔다.

 

 나에게 질투하고 있는걸까.

 

 샤프 펜을 눌러, 또 한마리의 나비를 만들고, 문득 손을 멈췄다.

 

 이전──그래, 봄방학이 시작된 날.
 화이트 데이에, 시노부짱과 프로듀서 씨가 둘이서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났다.

 

 어째서, 시노부짱과 프로듀서 씨는 많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거야.
 어째서, 나에게는 비밀로 하는 거야, 거짓말을 하는거야.

 

 또, 심이 부러졌다.

 

 

 

 등에 차가운 감각이 달린다. 두 사람에게 앞질러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서, 나를 비웃고 있는걸까. 얼굴이 확하고 뜨거워진다.

 

 시노부짱 쪽에 눈을 향하자, 우연히인지, 그녀도 내 쪽을 보고 있었다.
 핫하고, 눈을 돌린다. 눈을 돌린 왼손의 시계가 조용히 초침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빨려들어갔다.
 나와 그의 사이에는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고, 붉은 실이 걸려 있다.
 그것 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휴일이었던 그날의 다음 날부터, 시노부짱과는 삐걱거리게 되어버렸다.
 표면상으로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테지만, 서로 조금 예민해져 있고, 학교에 있는 동안은 어딘가 우울하다.

 

 그 때 이후, 프로듀서 씨의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서로서로 견제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듀서 씨를 좋아하는지, 시노부짱에게 묻는 타이밍은, 시간의 하류로 흘러갔다.

 

 때때로, 문제의 핵심인 프로듀서 씨가 걱정해서, 슬며시 이야기를 걸어준 적이 있었다.
 분명 시노부짱에게 상담이라도 받은 거겠지.

 

  「다른 아이와의 이야기, 즐거우신가요」

 

 그렇게 말하자, 프로듀서 씨는 놀란 얼굴을 했으므로, 그 뒤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랑이 질척질척 곪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나만을 걱정해 주었다고 느꼈을 때는,
 나의 가슴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상냥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사랑은 이상하다. 희미한 일로 흔들리는데도, 무한을 꿈꾸고 있으니까.

 

 

 

  「저를, 『마유』라고 불러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다지 상관없지만……」

 

  「……마유를 두고 가지 말아 주세요」

 

 그때부터, 프로듀서 씨에게서 이름을 불릴 때마다,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모두 맡기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그가 이름을 불러 준다면 나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
 시노부짱이 그에게 있어서, 뭐라고 해도. 혹은, 그가 시노부짱에게 있어서, 뭐라고 해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

 그 날은 예보가 빗나가서,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예보를 배신한건지, 그렇지 않으면 반대인지.

 

 프린트는 습기로 젖어, 샤프 펜으로 문지르자 꾹꾹 소리를 낸다.

 

 직원실에 과제를 제출하러 간 뒤, 가방을 가지러 교실에 돌아왔다.
 왼손의 시계를 보자, 레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기도 하고, 서둘러도 분명 지각해 버릴 것이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초조해져 버리는 것은, 요사이 쌓여가는 숙제 때문일까.
 비도 그 한쪽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프로듀서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프로듀서 씨」

 

  「……마유, 무슨 일이야」

 

 그에게 이름을 불리자, 무심코 뺨이 늘어져버린다.

 

  「레슨, 지각합니다. 지금, 학교에서……20분이나, 혹은 30분 정도 늦을지도 모릅니다」

 

  「비가 오니까 말이지. 어떻게 할까, 중지하기로……」

 

  「아뇨. 늦어도,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려요」

 

  「응, 그건 상관없어. 트레이너 씨에게도 전달해 둘게」

 

  「감사합니다」

 

  「마유, 우산 가지고 있어?」

 

  「아뇨, 일기 예보에서는, 맑다고 해서……」

 

 불을 꺼버린 교실은 어슴푸레하다. 나는 창가에 서서, 비를 응시했다.

 

 

 

  「그럼, 마중 나갈게」

 

  「그런, 죄송하게」

 

 정말로 죄송하다는 목소리를 내지만, 기뻐서 어쩔 수 없었다.

 

  「10분 정도 뒤에 학교에 도착할테니까……또 연락할게」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들뜬 기분으로 창가로부터 떨어진다.

 

 문득 돌아보자, 문 옆에 시노부짱이 잠시 멈춰서 있었다.
 비의 소리에 가려져,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유짱은 누구를 위한 아이돌이야?」

 

 

 

 분명하게 나를 탓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가방을 끌어안고, 시노부짱의 옆을 통과했다.
 교실을 나오자 습기찬 공기가 약간 차가웠다.

 

 프로듀서 씨의 차는 곧바로 학교에 와 주었다.
 조수석에 타서, 비가 자욱한 도로의 모습을 응시한다.

 

  「……무슨 일 있었어?」

 

 프로듀서 씨는 걱정스러운 듯이,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유는, 누구를 위한 아이돌일까요」

 

  「……팬을 위한게 아닐까」

 

 주륵주륵하고 창 밖에서 비가 튀어오르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최초의 팬이라고, 자주 들었어요」

 

 나는 운전석 쪽에 눈을 향해, 그의 옆 얼굴을 보았다.

 

 

 

  「적어도, 나는 마유의 팬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싱긋 웃었다.
 나도 웃어주려고 한 순간, 그의 손에서 빛나는 은빛에 나는 얼어붙었다.
 그는 왼손의 약지에 반지를 하고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쏴아쏴아하는 빗소리가 시끄럽다.
 운명의 실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시간이 멈춘 겉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왼손의 시계는 움직이고 있었다.

 

 

 

 ────

 비몽사몽의 바닷가에서, 나는 물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색이 없는 하늘과 바다가 멀리서 태양을 연모하고 있다.

 

 모래로 만든 작은 목소리를, 나는 양손에 푹 숨겨버렸지만,
 붙잡은 목소리를 귓가에 갖다대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손을 펴자, 손 안에서부터 낙서로 그린 나비가 날개를 펼쳐 날아가버렸다.
 나는 모래언덕에 올라, 나비가 날아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

 눈을 떴을 때, 방은 어두웠다.
 비가 내리고 있는건지, 희미하게 테이프의 잡음 같은 소리가 들린다.
 커튼을 열 생각도 못한 채로, 나는 이불에 둘러쌓여, 얕은 잠의 잔향을 들이마셨다.

 

 지금, 몇 시일까. 오른손을 펴서, 머리맡에 치워둔 손목시계에 닿자, 의식이 얼어붙었다.
 오른손을 끌어당겨, 이불 안에 몸을 웅크렸다.
 이 신체도, 기분도 모두 녹아서 없어지면 좋을텐데. 더이상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졸다가 깨어나는 것을 몇번이고 반복하는 사이, 나는 시간을 잊었다.
 살그머니 얼굴을 내밀어 보자, 커튼의 틈새로부터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비는 그친걸까나.

 

 다시 눈을 감으려 했을 때, 방의 인터폰이 울렸다.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눈을 돌렸다. 누구일까.

 

 한번 더, 인터폰이 울린다. 나는 스멀스멀 이불로부터 나와서, 현관으로 향했다.

 

  「아……그게, 안녕?」

 

 문을 열자, 시노부짱이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잠옷인 채니까 그렇겠지.

 

  「어제랑 오늘, 학교도 쉬고……레슨도 오지 않는다고 들어서, 걱정이 되서」

 

 감기 걸린 거야?, 라고 묻는 시노부짱에게, 애매하게 대답을 하고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잠깐, 들어가도 괜찮을까」

 

  「엣, 어……응」

 

 

 

 어슴푸레한 방에 들어가자, 시노부짱은 나의 바로 옆에 앉았다.
 제복과 잠옷이 서로 어울리는 건 어째서일까, 이상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시노부짱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망설이는 듯한 같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나는 비몽사몽 간에 중얼거렸다.

 

  「이제, 아이돌 그만둘래」

 

 시노부짱은 둥근 눈을 한층 더 둥글게 떠, 나를 보았다.

 

  「그만둘래」

 

 확인하듯이, 나는 반복했다.

 

 

 

  「……마도기와 씨가 불쌍해」

 

 피부 아래에서 검고 차가운 후회에 혈관이 위축됐다.
 어째서. 나는 그를 연모하고 있었지만, 그는 나따위에 대해서 생각해 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째서 나에게 입다물고 다른 누군가와──

 

 격렬한 감정에 압도되어,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강하게 자신을 부정했다.
 달라, 그건 독선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는.

 

  「이제, 됐어」

 

  「어째서……?」

 

  「이제 됐습니다. 마유는, 아이돌도, 학교도……」

 

 

 

 나는 이제, 됐다. 현실은 나 자신의 거짓말로, 더이상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망가질 리 없는 꿈을 꾸고 싶다.

 

  「마도기와 씨가 결혼했으니까? 한때의 감정으로 무책임하게 되지 마」

 

  「사진도, 피아노도, 시계도……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

 

 일어서서, 길을 잃은 것처럼 방을 헤매다가, 갈 곳도 없이 침대에 앉았다.
 시노부짱은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돌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혼잣말처럼 계속 말했다.

 

  「거짓말 했습니다. 미안해요」

 

 알고 있을 터였는데, 자신이 중얼거린 거짓말을 믿어 버렸다.

 

 

 

  「마도기와 씨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아아,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마유는 아이돌이 되서는 안됐었다」

 

  「하지만, 지금, 마유짱은 아이돌이야」

 

 시노부짱이 침대 옆에 앉자, 스프링이 삐걱 소리를 냈다.

 

  「원래, 내 곡이었어」

 

 뭐가, 라고 되물으려고 했지만, 곧 깨닫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사쿠마 씨가 노래해주길 원하니까, 라고, 마도기와 씨가」

 

  「……내가 그만두면, 부를 수 있겠네」

 

 빈정대는 듯이 말해도, 시노부짱은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가 염려해 주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머리 안쪽이 차가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유짱이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에도 그래서 납득했어」

 

  「어째서?」

 

  「저건 마유짱을 위한 곡이고, 나는 대신할 수 없으니까」

 

 나를 위한 노래라고 해도, 지금은 무거운 짐에 지나지 않는다.
 시노부짱을 위해서도 아니고, 프로듀서 씨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를 위한 노래라고 해도, 나는 나를 위해서 노래할 수 없다.

 

 나의 시계는 멈춰 버렸다. 분명 멈추었다.
 그로부터 받은 시간은, 내 거짓말 탓으로 무게를 잃고, 곧 떨어져 버리겠지.

 

  「이제, 그 노래는 부를 수 없어」

 

 

 

  「응석부리지 마」

 

 시노부짱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부르지 않는다니……마유짱이 도망치는 거, 나, 싫다고」

 

 커튼의 틈새로부터 흰색 등의 빛이 흘러나와, 방으로 들어오자 푸르게 변했다.
 갑자기 졸음이 덮쳐 온 것처럼, 나는 웃음을 띄웠다.

 

 ──아아, 이제, 죽어버리고 싶어.

 

 그렇게 중얼거리자, 시노부짱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부들부들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고 일어서서,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녀의 뒤를 쫓았다. 잠옷인 채였지만, 상관하지 않고 현관의 문을 열었다.

 

 

 

 하늘에는 선명한 파랑과 밀감색이 꿈처럼 칠해져 있었다.
 바람은 시원하고, 길가에 꽃이 펴서, 나는 5월을 마음껏 호흡했다.

 

  「시노부짱!」

 

 조금 떨어진 보도에, 시노부짱은 멈춰서 있었다.
 그쪽으로 달려가자, 그녀는 갑자기 나의 뺨을 손바닥으로 쳤다. 둥근 눈에 눈물이 떠올라 있었다.

 

  「바보!」

 

 시노부짱은, 나를 껴안고 몇번이나 바보라고 말했다.
 나를 강하게 꼭 껴안고, 목덜미에 눈물을 흘렸다.

 

  「마유짱, 바보……」

 

  「미안, 미안해. 시노부짱……」

 

 나는 그렇게만 말하면서, 소리를 높여 울어버렸다.
 꿈에서 깬 아이처럼, 확인하듯이 그녀와 얼싸안았다.
 시노부짱의 신체는 따뜻하고, 호흡하고 있고, 맥박이 있었다.

 

 

 

 거짓말이라도 괜찮잖아. 시노부짱은 오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 마유짱이 그만두지 않았으면 해」

 

  「어째서……나……」
  「제멋대로일지도 모르지만……나, 마유짱, 좋아하니까」

 

 시노부는 눈물을 닦고, 친구인걸, 이라고 덧붙였다.
 서로의 붉어진 눈에, 쑥스럽게 웃었다.

 

 

 

 ────

 오랜만의 촬영 일이었다.
 목적지인 예배당으로 향하는 동안, 프로듀서 씨가 운전하는 차에는 폴리스가 틀어져 있었다.

 

 그의 왼손의 반지를 보고 나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결혼, 축하드려요」

 

 목소리가 약간이지만 떨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핸들로부터 왼손을 조금 떼어 놓고, 행복하다는 듯이 웃었다.

 

  「고마워. 마유한테 말했었던가」

 

  「아, 아뇨……저기, 반지를 하고 계셔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에, 혼인신고를 하자는 걸로 되서」

 

 

 

  「……상대는, 어떤 분입니까」

 

  「밝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말괄량이라는 느낌일까」

 

  「헤에……」

 

  「그러고보니, 마유의 이야기를 하니까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어」

 

  「저, 정말입니까?」

 

  「폴리스를 좋아한다면 분명 취미가 맞는 아이다, 고 나이값도 못하게 들떠서는……」

 

 프로듀서는 웃으면서, 소 론리하고 흥얼거렸다.
 그의 행복한 표정에 상처입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있으려면 ,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간신히 옷 매무새를 다듬고, 나는 옷자락을 신경쓰면서 예배당을 걸었다.
 창으로부터 찌르듯이 들어온 빛이, 그림자와 서로 섞여 바닥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의상의 일부라고 건네받은 흰 장미를, 몇번이나 손가락끝으로 건드린다.

 

 내 소원은 이루어지는 걸까.
 만약, 내 소원이 그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히 실현되지 않는다.

 

 분명,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한 것을 운명이라고 느낀 것처럼,
 지금을 사랑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소원은 무엇일까. 흰 꽃잎이 떨어져 갔다.

 

 

 

 복도에서, 뚜벅뚜벅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마유, 좀 더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는 예배당에 들어오자 아니나 다를까, 대단히 미안한 듯한 표정을 띄웠다.

 

 이 드레스는 결코 착용감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입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기뻤다.
 물론 외롭기도 하지만, 지금, 왼손에 시계는 없다.
 그러니까, 이 옅은 꿈에 빠지는 것도, 용서된다면──

 

  「저기, 프로듀서 씨」
 나는 창 쪽으로 눈을 돌리고, 누구한테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중얼거렸다.

 

 

 

  「맹세해 주시겠나요」

 

 푸른 바닥에, 뜬구름 같이 꽃잎이 길게 눕혀져 있었다.

 

  「쭉, 사쿠마 마유의 프로듀서로 있어주시겠습니까」

 

 거짓말 투성이가 된 나를, 받아들여 주시겠습니까.
 지금도 당신에게 상처입고 있는 나에게, 바람(願)을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뒤돌아 보자, 어째서인지 그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다.

 

 

 

  「영원히……」

 

 영원. 이 얼마나 덧없는 말일까.

 

 당신이 맹세해 준다면, 나는 사쿠마 마유로 계속 존재한다.
 모조품이라고 해도, 비몽사몽의 기도라고 해도. 상관없이──

 

 

 

  「……나는, 먼저 가 있을게」

 

 그는 뒤꿈치를 돌려 예배당을 나가버렸다.
 희미하게 불어온 바람이 바닥의 꽃잎을 휩쓸고, 순백의 드레스를 흔들고, 사라졌다.

 

 나는 거절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그에게 사랑받고 있었던 것을 느꼈다.

 

 울고 싶어졌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꽃은, 팔랑팔랑 떨어져 갔다.
 연모했던 시간이 흩어져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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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정몽. 사실과 일치하는 꿈

굉장히 문학적인 표현이 많고, 옛스러운 어휘를 많이 사용한 SS이기 때문에 오역과 의역이 잦습니다. 특히나 마유의 꿈 부분은 굉장히 난해하므로, 일본어가 가능하신 분은 차라리 원문을 읽어보시는 쪽이 더 빠를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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