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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후지 카코「불행 중 다행」

댓글: 7 / 조회: 4326 / 추천: 1



본문 - 01-01, 2015 23:44에 작성됨.

【※알림※】

시부야 린 「유리구두」

후지와라 하지메 「견우성에 소원을」

호죠 카렌「정좌」

타카가키 카에데 「때로는 근사한 이야기를」

위 글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즉, CG프로덕션 안에 각 아이돌을 담당하는 여러 명의 프로듀서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전작들을 읽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읽을 분들은 제목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_____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진다.
매미 소리 때문은 아니지만, 내 몸은 완전히 땀범벅이다.
걸음걸이가 비틀비틀 위태롭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다.

 "왜지"

무심코 불평을 입밖으로 내뱉는다.
불행에 사랑받는 운명이다.
조금 불평하는 정도는 용서해주겠지.
그래도 대체 어째서일까.
나는 그저...


 "아이돌을 프로듀스하고 싶을 뿐인데."


스카우트와 레슨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어떻게든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후가 잘 되지 않았다.
작은 실수나 사소한 착각으로, 항상 담당 아이돌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줄 수 없었다.
그걸 참을 수가 없어 동료 프로듀서에게 담당 아이돌을 맡겼다.
...말을 돌려봐야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담당 아이돌의 프로듀스를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빛나고 있구나."

아이리도, 란코도, 미카도, 아나스타샤도...
지금은 각자의 프로듀서와 함께 웃는 얼굴로 노래하고 춤춘다.
이런 나한테 아직도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주는걸 보면 모두 너무나 착한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제대로 프로듀스하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

벤치에 앉으려고 짚은 손이 힘없이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진다.
다시 일어날 기력이 없어서 그대로 땅바닥에 드러눕는다.
방금 전까지 햇빛에 노출된 지면은 적당히 따뜻해서 기분이 좋다.

 "물."

지금 필요한 것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안타깝게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그것을 사러갈 힘도 없다.

 "음..."

흐려진 시야의 한구석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비친다.
가까이 다가온 사람이 다리가 긴 여성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저기~ 괜찮으신가요?"

주저앉아서 친절하게 질문하는 그녀에게 미안하게도, 치마 안쪽이 보인다.
부끄러움인지 뭔지 모를 감정이 뒤섞여 머리속에 소용돌이친다.
뭐든, 뭐든지 좋아.
일단 말을 해야.

 "물..."

 "네?"


 "물색..."

아마도 딱밤으로 추정되는 충격에 의해 내 의식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타카후지 카코 (20)


_____

 "...?"

이마에 느껴지는 서늘함과, 바닥의 딱딱한 감촉에 눈을 떳다.
손을 뻗어 만져보니 이마에 젖은 수건이 올려져 있다.
아무래도 벤치에 눕혀져 있던 모양인지, 몸을 일으키자 뼈마디가 삐걱거린다.

 "아, 정신이 드시나요?"

바로 옆 벤치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가 들린다.

 "네...콜록! 콜록!"

대답하는와중 격렬한 기침이 나왔다.
머리가 띵하게 울리고, 시야도 흐릿하다.

 "가벼운 일사병이니, 무리하게 일어나면 안돼요."

 "일사병..."

 "물 사왔으니 드세요."

듣고보니 일사병 때문에 쓰러진 것 같다.
예의를 따질 겨를도 없이 누워서 물을 들이키자, 몸 속에 상쾌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그...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로요. 처음 만난 여성한테 그런 말을 하면 인기 없다고요?"

아픈 곳을 찔렸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어도, 갑자기 여성의 속옷 색깔을 언급한건 경찰한테 신고당해도 할 말이 없는 행위다.
수상한 사람을 경찰에 넘기기는커녕, 오히려 돌봐주다니... 여신같은 사람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여기 그늘이니까 좀 더 쉬세요. 그럼 저는 이만..."

 "아, 적어도 이름만이라도..."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 순간 번개에 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저기...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녀의 등 뒤에 후광이 비친다.

눈을 비비고, 다시 그녀를 바라본다.
물론 거기에 후광같은 건 없고, 여름햇살이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좀 더 쉬시는게..."

입밖으로 내는 것도 조금 부끄럽지만 저건 확실히 아우라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어쨋든 그 비슷한 무언가가 그녀를 빛내고 있었다.
전에 스카우트했던 아나스타샤도 굉장한 미인이었지만, 그에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아나스타샤가 달이라면, 저 사람은 태양이라고나 할까.

 "...아이돌."

 "?"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는게 슬프지만, 스카우트는 몇 번이고 성공시킨 경력이 있다.
그리고 그 감이 고한다.

 "아이돌에... 흥미 없으십니까?"

그녀라면, 분명.


_____

 "아, 다녀오셨..."

사무소에 있던 치히로 씨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처음보는 여성과 함께 흙투성이로 들어온 나를 보면 그야 그럴만도 하다.

 "치히로 씨. 이쪽은 신세를 진 타카후지 카코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하, 하아...?"

 "죄송하지만... 저는 옷을 갈아입어야할 것 같아서... 차를 좀 내주실 수 있나요?"

 "...네, 네... 알겠습니다."

타카후지 씨를 소파로 안내하고, 무언가 말하고 싶은게 있는 표정의 치히로 씨가 급탕실로 향한다.
그 사이에 사물함을 열어 예비용 정장을 한 벌 꺼내 갈아 입는다.
머리도 슬슬 자를 때가 됐나.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요. 정말로... 프로듀서셨군요."

 "이제 믿어 주시는 겁니까."

 "네. 저기 있는건 칸자키 란코 씨죠?"

뒤를 돌아보니, 돌돌 말린 은발이 책상 위로 살짝 튀어나와 흔들리는게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브레멘 음악대도 아니고...

 "네. 이야기 해보실래요?"

 "그렇네요~ 조금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그러시단다. 란코, 아나스탸샤, 여기로 나와주세요."

 "엣..."

아나스타샤가 등을 밀자 그제서야 란코가 소파 뒤에서 주춤주춤 나온다.
타카후지 씨는 한동한 와아~ 라거나 호오~ 라고 중얼거리며 란코를 바라보다, 갑자기 란코를 무릎에 앉혔다.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란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타카후지 씨가 뒤에서 란코를 끌어안았다.

 "와아~ 진짜 란코네요~ 조그맣고 귀여워요~♪"

 "...무, 무례하다!"
 (조, 조그맣지 않아요!)

 "란코. 아마 키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조그맣지 않은걸..."

 "그쪽분도 아이돌인가요?"

 "네. 저쪽은 신인 아이돌 아나스타샤 입니다. 요즘 잘 나가죠."

 "Да. 응원 부탁드릴게요."

 "네~♪ 그렇구나. 아이돌...인가요."

란코와 아나스타샤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 혼자였으면 인상이 최악이었겠지.
처음엔 속는다는 느낌으로 따라왔지만, 지금은 제법 흥미가 생긴 것 같다.

 "카코도 아이돌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쓰러져있던 저를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데리고 왔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감사드릴게요."

차를 가져온 치히로 씨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나를 흘긋보며 다음에 설명해달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아이돌도 만날 수 있었고..."

 "아아... 그거 말인데요.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만, 타카후지 씨. 아이돌에 흥미는 없으신가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타카후지 씨가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여기까지 끌고온 캐리어가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냥 여행차 왔을 뿐이고, 갑자기는..."

 "집이 지방에 있어도 문제 없습니다. 이 사무소에는 기숙사도 있고 비용 역시 사무소측에서 부담합니다."

 "거의 다 채우긴 했지만 아직 대학의 학점도 좀 남아있고..."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란코의 머리에 턱을 괴고 타카후지 씨가 고민을 시작한다.
그녀가 말한대로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일 것이다.
당연하다.
이렇게 갑자기 결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타카후지 씨라면, 분명 아이돌로써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아름답고... 신비한 매력이 느껴지고요."

치히로 씨가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스태드리를 또 사야 하나...

 "우음... 저기~ 란코, 아나스타샤. 아이돌 일은 어때? 즐거워?"

 "말해 무엇하리!"
 (아주 즐거워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즐거워요."

 "그렇구나..."

타카후지 씨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정말 실례했습니다. 여러가지로 폐를 끼쳤지만... 아이돌 제의는 진심입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생각해 주세요."

 "후훗~ 속옷을 들여다 보는 분의 제안인만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그럼, 다음에 또."

타카후지 씨가 사무소를 나선다.
문이 닫히자마자, 사무소에 귀가 먹먹할 정도의 정적이 찾아왔다.

뒤를 돌아보자니, 무섭다.
돌아보지 않는 것도 무섭다.

 "세계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는가."
 (프로듀서는 변태)

 "성희롱은... 떽! 이에요?"

 "프로듀서. 조금 이야기를."

그게 아니에요. 아니지 않지만... 아닙니다!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소리가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친다.
그녀들이 눈치채 달라고, 신님에게 빌었다.


_____

 "피곤하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잠깐 잘 생각이었는데, 무심코 푹 자버렸어요."

 "아직 처음이니까 레슨이 익숙치 않아서 그런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이 잘 잡혀 있다고 트레이너가 칭찬 하셨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타카후지 씨는 아이돌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2주에 한 번, 현지의 전문대학에 출석할 때 이외에는 이쪽에서 지내고 있다.
아직 이쪽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표정에 피로가 남아 있다.

 "춤은 그렇지만, 그... 노래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알고 있으니까."

 "아, 차 꺼내올게요. 음정이 잘 안 맞는 정도는 금방 고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춤에는 재능이 있고, 생각보다 기초도 튼튼하다.
노래는 아직 멀었지만, 음색은 좋다.
외모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황금알을 낳을 거위.

 "그래도 벌써 일이라니... 괜찮을까요? 처음에는 레슨만 받는 줄 알았거든요."

 "저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전략을 바꿨습니다."

 "흠흠..."

황금알을 낳을 거위라도 키우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여태까지 하던 방식만 고집해선 알을 낳을 수도 없겠지.

 "타카후지 씨. 먼저 말해두겠습니다."

 "뭐죠?"

 "저는 빈말로라도 실력있는 프로듀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

 "지금까지 스카우트만 계속 했을 뿐이고, 담당해서 제대로 프로듀스한 아이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주변 동료들한테서도 조금 머리를 식히는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을 정도다.
새 아이돌을 데려오면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눈길을 받는 것도 익숙해졌다.
사장도 "이제 너는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해라." 라며 질렸다는듯이 말했다.

 "타카후지 씨가 불만이 있으면, 담당 변경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저기..."

 "객관적으로 제 평판이 좋지 않은건 사실이므로."

 "그래도 란코는 프로듀서를 굉장히 따르던데..."

 "모두 착한 아이들이라, 저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좋은 아이들이 프로듀서를 따른다는건, 인망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

 "타카후지 씨도 상냥하시네요."

이야기를 하며 지방 방송국의 주차장에 들어선다.
오늘은 관광지 리포트 프로그램의 협의가 있다.
타카후지 씨는 머리도 좋고 교양도 있다.
리포터로써 적합하겠지.

 "여깁니다. 디렉터는 면식이 있는 분이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헤에~ 방송국에 들어가는건 처음이에요."

얼마 안되는 내 연줄 중 하나다.

 "예정까지 1시간 반 정도 남았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네?"

시간을 확인하니, 타카후지 씨가 말한 그대로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도착한거지.
평상시에는 신호나 공사에 의한 정체 때문에, 아무리 서둘러도 15분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오늘 신호에 걸리긴 했던가.
...뭐지?

 "아... 일단 담당분들께 인사라도 해둡시다. 따라오세요."

 "네~에♪"

뭐어,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법이지.
항상 이 정도로 일이 잘 풀리면 좋을텐데.


_____

 "이렇게 느긋하게 있어도 괜찮을까요."

 "네. 연말의 예정은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원래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었던 시각에 협의를 끝내버렸다.
한 시간이나 일찍 온 것을 기합이 들어가 있다며 좋게 평가해준 것 같다.
타카후지 씨를 소개했더니 완전히 마음에 들었는지, 놀라운 기세로 협의가 진척돼 끝이 났다.
덕분에 근처의 카페에서 차 마실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일단 첫 아이돌 일인데,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조금 불안했는데, 순조롭게 진행돼서 다행이에요."

 "타카후지 씨 덕분이죠. 남자는 모두 미인에 약하니까요."

 "어머나. 프로듀서도 그런가요?"

 "...강하다고는 못하겠군요."

 "좋은 정보를 얻었어요~♪"

타고난 용모의 빼어남, 사람은 편안하게 하는 기술, 분명히 예능계에서도 잘 나갈 재목이다.
너무 뛰어나서 오히려 걱정일 정도로.

 "그건 그렇고, 프로듀서는 참 별난 사람이에요."

 "그런가요?"

 "연하의 아이들한테 존댓말을 쓰고, 아무리 더워도 정장을 입고 다니고..."

 "존댓말을 쓰는건 모두 존경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이니까요. 그리고 정장은..."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정장 이외의 옷차림으로 밖에 나서면 왠지 모르게 자주 심한 꼴을 당한다.
단추를 헐겁게 푼다든가, 상의에 코트를 걸친다든가, 머플러를 두르는 정도의 자유도 용납되지 않는다.
회사의 개로 살라는 하늘의 뜻인건지...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도 믿어줄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결국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제 취향입니다."

 "역시 별난 사람이에요."

불행한 사람보다는, 별난 사람 취급받는게 나은 것 같다.


_____
어른이 된다는 것은, 넘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뼈에 사무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한 달에 두세번은 꼬박꼬박 넘어지는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넘어진 기억이 없는걸로 봐서, 이제야 나도 간신히 어른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별 쓸모도 없는 생각을 하며 사무소에 들어서니, 치히로 씨가 찌푸린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연말결산 때문에 고생하고 계신가.

 "뭐 도와드릴 일 있나요?"

 "아뇨, 도와주실 필요는 없고... 보여드리는게 빠르겠네요."

치히로 씨가 보고 있던 화면을 나도 들여다 본다.
모니터에 있는 것은 뭔지 알 수 없는 꺾은선 그래프.
수치를 보아하니 영업매출의 추이같은걸까.
숫자에 약해서 잘 모르겠다.

 "작년에 우리 프로덕션이 상장한 것은 기억하고 계신가요?"

 "아아, 그러고보니 그랬었죠. 우리들도 주식을 좀 받았고요. 스톡옵션이었나요."

 "이거 우리 프로덕션의 주가에요."

 "많이 올랐네요."

 "상당한 호조죠. 원래 소폭으로 오르내리길 반복했었는데, 근 4개월간 8% 상승했어요."

 "음... 굉장한 건가요, 그거?"

 "수치만 볼 때는 그렇게 드문건 아니지만, 하락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죠. 어떻게 된 거지...?"

 "모두의 노력이 통한거죠."

신용조사가 어쩌니 하면서 치히리 씨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얼굴을 살펴보니 당황스러움이 2할, 기쁨이 3할, 나머지는...
아니, 그만두자.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다고 신님이 내게 경고한다.


_____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트라이어드 프리머스의 세 명이 사무소에 모였다.
나도 빨리 그녀들에게 지지않을만큼 좋은 무대를 카코 씨에게 마련해줘야 할텐데.

 "잠깐 괜찮아?"

 "무슨 일이죠? 시부야 씨."

시부야 씨가 나를 불러세운다.
무슨 용건이 있나 싶어서 기다렸지만, 시부야 씨는 말 없이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시부야 씨의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왠지 사과해야할 것만 같다.

 "드디어 진심이라는 건가."

 "?"

진심?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일에 대한 이야기라면 지금까지도 대충대충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상대는 그 시부야 씨다.
그녀는 조금씩 노력을 쌓아올려 지금의 위치에 오른 아이돌.
시부야 씨가 보기에는 내가 대충 일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할 말이 없다.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습니까... 아, 저도 여러분들께 묻고 싶은게 있는데."

 "응. 뭔데~?"

호죠 씨가 잡지를 향상 시선을 들어 올려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라 미안하군.

 "요즘 아무래도 동료 프로듀서들이 저를 피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뭔가 알고 있나요?"

세 명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확실히 프로듀서가 아이돌한테 할만한 질문은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주변 사람들이 미묘한 표정을 짓게 하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기쁘진 않군.

 "아~ 말해도 되는건가, 이거."

 "말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고, 괜찮을걸?"

 "카코 씨에대한 일이라면... P 씨가 '위험해' 라고 중얼거리는걸 들었어요."

 "위, 위험?"

위험하다니... 뭐지?
뭔가 만회할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라도 한건가, 나는.

 "그, 그런가... 고마워."

아무래도 나는 타인의 생각을 읽어내는데 약한 것 같다.
좋지 않군.
이건 어떻게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서 주변 사람에게 인정 받지 않으면 안되겠어.
결의를 새롭게 다지고 있자,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타카후지 씨."

 "정말! 카코라고 불러달라고 말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습관이 습관인지라..."

'가지가 아니고 카코에요.' 는 그녀의 말버릇이다.
나는 한번도 가지라고 부른 적 없지만.
최근엔 타카후지 씨라고 부르면 볼을 부풀리고 삐진 척을 해서(미인은 어떤 표정을 지어도 미인이었다) 카코 씨라고 부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 예정은 뭐였죠?"

 "오전에는 베테랑 트레이너와 레슨. 오후에는 라디오 기지국에 영업, 그 후에는 신년 특별 방송에 나오는 신사의 사전 답사 입니다."

 "점점 바빠지네요~"

 "아뇨. 제가 좀 더 괜찮은 일을 가져오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요~♪"

그말 그대로다.
카코 씨의 재능을 썩힐 수는 없다.
정성스레 넥타이를 다시 매고, 주머니에서 차 키를 힘차게 꺼낸다.


 "...봐봐, 저거."

 "위험하지."

 "아직까지도 진심이 아니었던건가."


_____

 "좋아, 거기까지."

 "하앗... 감사합니다."

카코 씨의 레슨을 직접 확인하는건 오랜만이다.
별로 보러 오고 싶지 않았지만, 카코 씨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어때? 프로듀서가 보기에는."

 "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보다 약동감이 늘어났습니다."

 "그렇지.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붙였더니 전체적으로 운동량이 증가했어."

카코 씨가 스트레칭을 하는동안 나는 트레이너한테 카코 씨의 상태에 대해 들었다.
체력단련을 좀 더 시킬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라이브는 조금 나중으로 미루는 방향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건 그렇고, 좀 더 자주 상태를 보러 와야 하는거 아니야? 사이는 좋아 보이던데."

 "그건 뭐어... 그렇습니다만..."

살짝 옆을 보니 카코 씨가 한창 윗몸 앞으로 숙이기를 하고 있다.
내가 저 자세를 취했다가는 바로 허리가 나가겠지.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다.

 "..."

 "응...읏..."

얇은 트레이닝복에 격렬한 운동으로 인한 땀.

 "..."

 "으응..."

매우 좋지 않다. 여러가지로.

 "아무튼 오늘은 상태를 확인했으니 괜찮겠지. 그럼 나는 가보겠어."

 "아, 네. 감사합니다."

베테랑 트레이너 씨가 나가자 카코 씨와 단둘만 남았다.

 "..."

 "흐믓...!"

역시 좋지 않아.


_____

 "후아아암..."

 "수고 하셨습니다. 내일은 휴일이니 푹 쉬세요."

연속으로 일정을 소화해서 그런지, 카코 씨도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건강이 망가지면 될 일도 안 된다.
휴식도 아이돌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가능한 부드럽게 차를 몰아, 카코 씨가 편히 잘 수 있도록 한다.

 "카코...인가."

빨간불에 걸려 차를 세우고 카코 씨를 보니, 이미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다.
깨우지 않도록 숨소리도 죽이고, 핸들을 다시 잡는다.

 "빨간불이라."

최근 빨간불에 걸리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요즘은 넘어지는 일도 없어졌다. (발이 걸려 넘어질뻔한 적은 많다)
토스트를 떨어뜨려도, 잼을 바른 면이 위쪽을 향한다. (자주 떨어뜨리긴 한다)
자판기가 지폐를 먹는 일도 없어졌다. (동전은 가끔 먹는다)

 "운이 좋아진건가."

이유는 대충 감이 온다.
그녀와 같이 다니면,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없다.
아마 나와는 반대로 행운을 타고난 거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질투의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이것도 그녀의 인망인가.

 "..."

그 행운이 어느정도인지 조금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카코 씨. 기숙사 도착했습니다."

 "으응...? 아, 깜빡 잠들었군요."

 "깨우기도 좀 그래서... 카코 씨."

 "네?"

 "손, 잡아주시겠습니까."

스스로도 당돌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일단 양손을 내밀었다.
일어난 직후라 머리 회전이 잘 안되는지 카코 씨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 내 손을 잡았다.

 "굉장하군요."

 "음... 잘 모르겠지만 파워를 불어넣어 드릴게요~♪"

붙잡은 손은 나와는 다른 생물체인 것처럼 매끄럽다.
체온과는 또 다른 종류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감사합니다."

 "어머, 이젠 괜찮나요?"

 "네. 충분합니다."

 "손 정도는 언제든지 잡아도 돼요♪"

 "하하, 손이 차가워지면 또 부탁드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카코 씨."

 "네~에♪"

평소보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카코 씨가 기숙사를 향한다.
기숙사 안으로 카코 씨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보고 나서,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찾았다. 여기였군."

나한테는 인연이 없는 곳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연말 분위기를 느끼겠다고 애용한다.
설마 여기에 내 스스로 들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서오슈, 형씨. 몇 장 줄까?"

지갑을 열고 마음을 다잡은 뒤 말한다.

 "열 장."


_____

이게 벌써 일 년 전 일이었나.

 "..."

란코, 아냐와 같이 천문대에 간 다음날, 코트 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다 우연히 발견했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올해도 곧 연말 복권이 흥행할 시기다.

 "곤란한데."

아직 유효기간이었기 때문에 재미삼아 당선 번호를 조사했다.
하지만...

 "1000만엔은... 농담이 아닌데."

복권을 앞에 두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쟈켓 주머니에 적당히 복권을 쑤셔 넣었다.
카코 씨한테 받은 머플러를 두르고 사무소로 향한다.


_____

 "카코 씨. 정말 죄송합니다."

 "저기...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들어주세요."

머리를 숙인 채로, 카코 씨에게 복권을 건넨다.
물건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어야하는 법이다.

 "복권이... 당첨됐습니다."

 "어머, 잘됐네요♪"

 "좋지 않습니다. 저는 카코 씨를 바보취급 했어요."

뉴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어시스턴트.
라디오 진행.
잡지의 연재 칼럼 2개.
내년 봄에는 CD 발매.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는 일 없이, 카코 씨는 성실하게 레슨을 받았다.
결과가 따라오는건 그야말로 당연한 일.
과거의 나는 카코 씨의 훌륭한 점을 보려고 하지 않고, 행운이니 어쩌니 하는 시시한 기준으로 그녀를 재단하려 들었던 것이다.

 "이건 제 어리석음의 증명과도 같은 물건 입니다. 카코 씨가 마음대로 처분해 주세요."

 "그러니까... 이거 언제 사셨나요?"

 "작년입니다. 카코 씨가 손을 잡아 준 직후에."

한동안 기억을 더듬던 카코 씨가 드디어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친다.

 "아아! 맨 처음 그 때군요! 요즘은 자주 손 잡으니까 생각해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네. 저는 카코 씨를 운으로 시험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그럼 문제 없네요♪"

 "네?"

카코 씨가 복권을 다시 나에게 돌려준다.
곤란해하는 나를 보며 카코 씨가 빙글빙글 웃는다.

 "조금 운이 안 좋은 프로듀서에게 조금 운이 좋은 제가 기운을 나눠준거에요."

 "그러니까...뭐어, 그렇군요."

 "그러니까 결국 평범한 운으로 평범하게 복권에 당첨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프로듀서 거에요.
복권을 쥐어주는 카코 씨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따스함은 작년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아무래도 제 스스로 사용할 방법을 못찾겠습니다."

 "므으... 또 거절하시기는. 그러면 사무소의 모두를 위해 쓰는게 어떨까요?"

과연...
확실히 나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사용법이다.
어디선가 보고 계신 신님에게도 변명할 거리가 생기겠지.

 "시오미 씨, 니노미야 씨,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습니까?"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

 "으음... 복권에 당첨됐습니다."

아까 전부터 소파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두명에게 원하는 게 있는지 묻는다.

시오미 슈코 (18)

 "나는 그 뭐냐... 튜브 수영장이라든가?"

 "알겠습니다."

 "아니 농담이야. 지금 겨울이라고."

 "니노미야 씨는 어떻습니까?"

 "나도? 그러면..."

니노미야 씨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 컵을 가볍게 흔든다.

니노미야 아스카 (14)

 "큰 바램은 없어. 언제라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을까."

 "과연...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들고 있던 복권을 가방 안에 넣었다.
물건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어야하는 법이다.

 "치히로 씨와 얘기하고 오겠습니다. 카코 씨도 잠시 기다려주세요."

 "네."

한 달 정도면 대강의 형태는 완성이 될 것이다.
연말과 신년 라이브로, 사무소에 남아있는 사람도 적을 터.

 "이름은 뭘로 할까."

길해보이는 이름이 좋겠지.


_____

하야미 카나데 (17)

 

 "추워..."

신년을 맞이하여, 코트 없이는 돌아다닐 수 없는 날씨가 찾아왔다.
연말 라이브와 연습 때문에, 사무소에 오는 건 거의 한 달 만이다.

 "재미있는 일...인가."

뭔가 사무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고~
먼저 사무소에 갔던 슈코가 어제 보낸 문자다.
가면 바로 알 거라고 했지만,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후우"

계단을 올라 평소처럼 4층에 도착했다.
사무소의 문에는 아직도 정월 장식이 매달려 있다.

 "이건?"

계단의 바로 옆을 보자 슈코가 말한게 뭔지 알 수 있었다.


[ ↑ 5F 카페・마법의 호박 사전 개업 ]


귀여운 글씨로 쓰여있었다.
일단은 들어가 볼까요.

계단을 올라가서 도착한 곳은 원래 창고로 쓰이던 곳이다.
딱딱한 철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문에『OPEN』표시가 걸려있다.

끼익

 "..."

 "어서오세요."

창고의 일부를 개장했을 뿐이라, 그렇게까지 넓지는 않다.
카운터에 밝은 미소를 띤 아저씨가 서 있는 거 외에, 손님은 두 명 밖에 없다.

 "신기한 조합인데."

 "어머, 카나데 씨. 어서오세요~♪"

 "아아, 카나데 언니, 안녕..."

파이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카코 씨와, 왠지 모르겠지만 머리를 감싸안고 있는 아스카.
카코 씨는 어찌됐든, 아스카의 기분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기, 핫블랜드 한 잔."

 "네."

그러니까 여기... 괜찮은거지?

먼저 와있던 두 명과 같은 테이블에 앉으니, 옆에 있는 창밖으로 테라스가 보인다.
한구석에 파라솔과 테이블이 쌓여있는 걸 보니 겨울이 지나면 카페 테라스로 쓸 생각인가.

 "그래서, 여긴 대체 뭐에요?"

 "응. 대체 뭘까... 정말로..."

 "프로듀서가 복권에 당첨돼서, 여러분을 위해 카페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카코 씨가 차를 마시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설명한다.
이 사람이 말하는 방식은 요상해서, 아무 생각없이 듣다가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도 납득해 버린다.
그래도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상하다.

 "패션 속성 아이들을 위해 3층에는 황토한증막도 만들 예정..."

 "응, 역시 잘 모르겠네. 아스카 너는 또 왜 그러고 있는거니?"

조금 전부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아스카가, 고개를 든다.
언제나 침착하고 조금 붕 뜬 표정이던 그녀가 지금은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면 좋다고 말하면... 보통 커피포트같은 걸 떠올리잖아..."

 "?"

 "뭐냐고... 카페 신장 개업은... 1000만엔이나 당첨됐다고 상상이냐 했겠냐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이블에 푹 엎어진다.
...그런가. 알 것 같다. 아스카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실제로 이루어진 거였구나.
모두들 좋아할 것 같고,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후~응... 카코 씨, 그거 무슨 파이야?"

 "가지가 아니라 호박이에요~♪ 호박이 듬뿍 들어있어요."

 "맛있을 것 같아. 나도 뭐 좀 주문할까."

아스카의 머리를 피해, 벽에 기대진 메뉴판을 손에 들었다.

 "...?"

표지에 이 카페의 마크로 추정되는 약간 특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산처럼 쌓인 호박더미 위에 쉬고 있는 조금 귀엽게 생긴 매가 한 마리.
붓으로 그린듯한 연보랏빛 원에 둘러쌓여, 둥글둥글한 글씨체로 문장이 쓰여있다.


『손님은 신입니다』라고...

 

 

_____

오늘은 2015년 첫날이자 타카후지 카코의 생일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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