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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가키 카에데 「때로는 근사한 이야기를」

댓글: 6 / 조회: 5310 / 추천: 0



본문 - 11-18, 2014 02:01에 작성됨.

【※주의※】

시부야 린 「유리구두」

후지와라 하지메 「견우성에 소원을」

호죠 카렌「정좌」

를 먼저 읽지 않으면 내용 이해에 지장이 있습니다. 

 

 

========================= 

   "지잇"

 "..."

 "지이이잇"

 "...저기, 카에데 씨. 입으로 직접 소리를 내는 거였나요 그거."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카에데 씨가 나를 10분 동안이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마지막에는 의태어를 직접 소리내기까지 한다.
딱히 이상한 짓을 하는건 아닌데...

 "프로듀서. 지루해요."

 "아아... 딱히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던게 아니었군요..."

레슨 시작 3 시간 전에 사무소에 오면 지루할만도 하지.
그래도 바로 옆자리에서 계속 시선이 느껴지는건 좀 곤란한데.

 "왜 또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하지메나 란코를 쓰다듬으면서 치유 받으려고요..."

 "3 시간이나 일찍 올 필요는 전혀 없었잖아요."

얼마나 쓰다듬으려는거야. 아이돌은 고양이가 아닌데.
아니 확실히 우리 사무소에는 그런 아이돌도 있긴 하다.

 "언제 오려나... 아 그러고보니 프로듀서한테 궁금한게 있었던 것 같기도."

 "뭡니까."

 "어 그러니까... 뭐였지..."

사무용 의자에 역방향으로 앉아 팔꿈치를 등받이에 올려놓고 빙글빙글 돈다.
잠시 기다려 봤지만, 도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일을 재개했다.

 "생각났어요."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잠깐 쉬기 위해 일어나서 차를 타왔더니, 카에데 씨가 도는걸 멈춘다.
나도 의자에 앉아서, 머그컵에 타온 녹차를 마신다.

 "그래서 뭔가요."

 "프로듀서는 이상형이 뭐에요?"

툭 쨍그랑

 "죄송합니다. 차가 너무 뜨거워서. 튀진 않았습니까?"

 "아, 네. 괜찮아요."

아아, 다행이다. 어쨋든 이쪽은 별로 괜찮지 않으니까.
'당신 같은 여자를 좋아합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뭐였죠. 이상형에 대해서 였나요."

엎지른 차와 머그컵을 정리하고 다시 의자에 허리를 걸친다.
'농담을 좋아하고, 신비하고, 장난스러운 사람.'
진심을 속으로 삼킨다.
사실대로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일까요."

 "같은 곳을..."

완전히 거짓말을 한건 아니니까.
진심으로 이런 근본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과하게 보살피지도 않고, 과하게 응석부리지도 않는... 그 뭐라고 해야하죠."

 "대등한 관계를 말씀하시는거죠?"

 "아 대충 그런 느낌입니다."

임기응변으로 한 거 치곤 제법 괜찮은 대답이었다고 안심한다.
백전연마의 플레이보이라면, 이럴 때 달콤한 말로 상대의 마음을 흔들겠지.
뭐어, 나는 그냥 프로듀서일 뿐이니까

 "...아... 그런데 카에데 씨는."

 "네?"

 "그, 좋아하는 타입이라든가."

하지만 단순히 프로듀서로서 끝내기엔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홧김에 나도 같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목소리가 떨리진 않았을까.

 "농담을 알아주는 사람이요"

 "과연"

 "그리고... 아까 프로듀서가 하신 말씀이랑 비슷한데요, 너무 무리하지 않는 사람 일까요."

'마음이 맞네요.'
거의 없다시피한 용기를 쥐어짜서 힘들게 질문한 뒤에, 이런 말을 내뱉을 기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프로듀서의 이상형에 대해 듣기로 하지메랑 약속 했었거든요. 꽤 오래전이지만요. 아마... 재작년이었던가?"

 "...하지메?"

놀라움을 속으로 삼킨다.
지금은 다른 프로듀서와 함께 활약하고 있지만, 하지메는 내가 스카우트한 아이돌이다.
두달 정도 담당을 맡았을 때 받은 느낌으로는 좋게 말하면 정숙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뭐어, 나이에 걸맞는 행동을 하게 됐다니 전담당으로써 기쁠 따름이다.

 "그리고 찐빵 이야기나 넥타이 이야기를... 앗!"

갑자기 말을 멈춘 카에데 씨가 내 목 부근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번엔 적당히 넘어갈 수 없겠군.

 "프로듀서. 아직도 정장이랑 넥타이 두 쌍을 돌려 입고 계시죠."

 "아... 뭐어 이걸로도 어떻게든 돼서..."

 "전에도 말했잖아요. 슬슬 영업처 담당분도 눈치챘을 거에요."

카에데 씨가 말한 것처럼, 나는 정장과 넥타이를 각각 두 종류만 가지고 있다.
삼십줄을 바라보는 사회인으로써 바람직하지 않다는걸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여성이 많은 직장인만큼 항상 관리에 신경 쓰기 때문에 딱히 문제는 없겠지만...

 "프로듀서는 예능계에 종사하고 계시니까, 패션에도 신경쓰셔야죠."

 "사러 갈 시간이 잘 안나서요..."

 "그럼 내일 저랑 같이 사러 가요. 프로듀서 내일 오후는 일정 없잖아요?"

 "네? 아아... 네."

 "저도 내일은 비어 있으니까 같이 신주쿠에 쇼핑하러 가는거에요. 나중에 문자할게요."

"전 자율 연습하러 빨리 가볼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카에데 씨는 폴짝거리며 사무소를 나갔다.

 "...그러니까."

데이트, 인가?

 "무슨 바보같은 생각을."

보다 못한 카에데 씨가 적당한 옷을 골라주려는 것 뿐이다.
틀림 없이 나보다 훨씬 나은 코디 센스를 가지고 있을테니까.
... 그런데.

 "옷이라..."

내가 옷을 마지막으로 산게 대체 언제였지.
정장을 새로 산게 확실히 2년 전이었으니까

 "위험한데."

이러니저리니 3년 이상 사복을 산 적이 없다.
옷장에 쳐박혀 있는 옷들의 상태가 어떨지 알만하군.
"넥타이를 사러 가는거니까 양복을 입고 왔습니다." 같은건 카에데 씨한테 전혀 통하지 않을거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 새 옷을 사러 달려가봐야, 맵시 있는 옷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니, 구세주가 나타났다.

 "...마스터 트레이너 씨가 올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다녀왔습니다... 집에 가도 되죠?"

 "정말. 둘 다 너무 풀어졌잖아."

트라이어드 프리머스의 세 명이 맥 빠진 모습으로 사무소로 걸어 들어왔다.
이럴 때 말을 거는건 좀 미안하지만, 한 시가 급하니까.

 "호죠 씨. 바쁜 와중에 미안한데,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에, 나?"

 "응. 잠깐 날 좀 따라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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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찾았다.

 "기다리셨군요."

 "후후. 이제 막 도착한 참이에요. 3분 정도 전에."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카에데 씨가 이미 기다리고 있다.
변장용 안경과 모자를 착용하라고 미리 문자를 보내두었고, 실제로 착용했는데...

 "...눈에 띄네요"

 "그런가요?"

안경도 모자도, 카에데 씨의 패션감각을 증명하듯이 완벽하게 어울린다.
옷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원래 몸매가 좋은 것도 포함하여 어딘가의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눈에 띈다.
아니, 진짜 모델이었지 원래는.

 "우~응..."

한편, 카에데 씨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있다.
뭐라고 해야할지... 긴장된다.

 "65점 정도."

 "음."

패션에 관해서는 자비가 없다.

 "프로듀서는 신장에 비해 어깨가 넓으니까, 밝은 계열의 윗도리를 입으면 밸런스가 안좋아요."

 "그, 그렇군요."

 "옷 맵시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배색에만 신경쓰면 괜찮아질 거에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에데 씨한테 대답을 하려고 해도, 침울한 나머지 기력이 부족하다.
내 평소의 센스보다 훨씬 낫다고 오히려 칭찬하고 싶을 정도인데.

 "라고 전해둘게요."

 "...겍. 들켰나요."

 "들켰다기보다 카렌이 문자를 보냈어요.『힘 좀 썻어요.』라고."

어제 저녁, 맘에 드는 옷을 한 벌 사주는 조건으로, 왠지 모르게 화난듯한 모습의 카렌이 내 옷을 골라 주었다.
가장 옷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카렌만 있어도 괜찮았는데, 어쩌다보니 나오랑 린도 따라와서...
세 명이 모이면 시끄럽다고 듣긴 했지만, 내 의향과 관계 없이 수다를 떨며 옷을 고르는데 바빳다.
갈아입히기 인형, 아니지. 놀기 적당한 장난감 정도로 취급 당한 것 같다.

 "그래도, 멋있네요."

 "...감사합니다."

카에데 씨의 한 마디에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나도 참 싱거운 남자다.

 "갈까요."

 "안내할게요."

어차피, 여기에 계속 있으면 쉴 새 없이 헌팅에 시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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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바로 옆에서 옷을 갈아입는건 처음이라 상당히 긴장 된다.
가게에서 빌린 와이셔츠를 입을 뿐이지만.

 "갈아 입었습니다."

 "그럼 한번 볼까요."

처음으로 들린 곳은 신사복 매장이다.
카에데 씨를 따라가니, 평소에는 절대 가지 않을만큼 세련된 가게가 눈 앞에 있었다.
막상 들어갔더니 가격이 별달리 비싸지 않아서 안심했지만.

...그건 그런데.

 "..."

 "므으, 생각보다 어렵네요."

내가 직접 맨다고 말을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카에데 씨가 넥타이를 매어 주고 있다.
미인이 바로 앞에서 넥타이를 매어 주는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살아 있길 잘했다. 라고 하는게 가장 가까우려나.

 "한색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난색계열도 어울리네요."

 "그런가요? 그럼 몇 개 더 매보죠."

되도록 많이.
평소에 성실하게 살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용서해 달라고, 어디 있는지 모를 신님께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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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병이 많이 진열되어 있네요. 낮에도 팔면 좋을텐데."

 "기회가 생기면 밤에 다시 옵시다."

 "약속이에요."

결국 내가 고른 넥타이 하나와 카에데 씨가 골라준 넥타이 두 개를 샀다.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추천 받은 까르보나라를 점심으로 먹고, 오후에는 내 사복을 고르러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 하지메다."

 "네? 어디요?"

카에데 씨가 말을 걸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카에데 씨의 시선을 따라가니 전기점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보인다.
하지메가 출연한 영화의 블루레이 판촉용으로, 포스터 면적의 사 분의 일 정도를 하지메의 가슴 부분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벌써 팔고 있었구나."

 "화려하네요."

 "네. 하지메는 아름다우니까요."

 "솔직하게 칭찬하시네요."

 "하하 스카우트 한다는건 한 눈에 반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어라. 방금 실수한건가?
잘 생각해보니 카에데 씨도 내가 스카우트 했고.
조심스럽게 카에데 씨한테 시선을 돌렸더니,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부우~"

라기보다 입으로 직접 말하고 있다. 볼을 부풀린 상태로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거지.

 "저도 프로듀서가 스카우트 했는데, 그런 칭찬 받아본적 없어요."

 "아, 역시... 가 아니고. 아..."

입은 재앙의 근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카에데 씨의 뺨 언저리가.
어쩔 수 없나.

 "...카에데 씨도 굉장히 아름다워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부끄럽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마치자마자, 카에데 씨가 예쁘게 웃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 짓고 있는 카에데 씨를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몰라서, 무심코 화제를 돌린다.

 "...저거 사러 가죠. 카에데 씨 몫도 사올까요?"

 "아, 제건 제가 살거에요. 하지메의 제2호 팬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왠지 이런건 직접 사고 싶어지죠."

우리 사무소의 경우, 아이돌에 관계된 물건은 자료실이나 창고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뭐랄까.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아이들이 사무소 안에도 많다.
참고로 나는 하지메의 제1호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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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여기요."

 "죄송해요. 이런 것 까지..."

 "하하 사양하지 마세요. 오늘 제 옷을 골라주신 답례입니다."

백화점으로 이동해서, 카에데 씨의 옷을 고른다.
이런 상황에서의 일반적인 매너라는 이유도 있고, 돈을 내 식비로 쓰는 것보다 카에데 씨의 옷을 사는데 쓰는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두빛 원피스를 입고 빙글 도는 카에데 씨는 뭐랄까, 정말 여신이구나.

 "뭘 보고 계시나요?"

 "구두를 조금..."

 "이거군요."

쇼윈도에 진열 된 구두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신발이었다.
샌들이라고 해야할지, 하이힐이라고 해야할지, 그도 아니면 부츠인지.
왠지 모르게 검투사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맘에 드시면 선물해 드릴게요."

 "아, 아뇨, 그... 너무 비싸서요."

 "카에데 씨한테는 항상 신세를 지고 있... 응?"

가격표를 확인하니, 그렇게까지 비싼 것도 아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데요."

 "저기, 그럼... 일단 다른 가게도 돌아봐요."

 "그것도 그렇군요."

왠지 조금 초초한 기색의 카에데 씨가 내 등을 민다.
카에데 씨 나름대로 사양하는 방편일까.
사려깊은 사람이다.
술이 없을 때 한정이지만.

 "오. 시부야 씨다."

 "넷?"

 "봐요. 저기!"

 "포스터네요."

나는 CD 판매점 앞에 붙어 있는 시부야 린의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3대 신데렐라 걸』이라는 문구와 함께 드레스를 입은 린이 이쪽을 향해 미소짓고 있다.

 "린, 굉장하네요."

 "네. 박력... 관록... 전부 대단해서 무심코 동경하게 됩니다."

동년배의 아이돌들에 비해, 린의 종합적인 실력은 몇 단계 위다.
우즈키, 미오와 함께 최고참... 이라고 하면 실례인가.
여하튼, 사무소의 얼굴 마담으로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린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한 것 같다.

 "프로듀서."

 "네?"

 "아까 구두 이야기를 하셨죠."

 "네. 그랬습니다. 지금이라도 사러 갈까요?"

 "저, 유리구두를 신고 싶어요."

여태까지와 달리 진지한 목소리.
놀라서 카에데 씨를 바라보니, 카에데 씨 특유의 신비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나와 눈을 맞추던 카에데 씨가 시선을 돌린 곳은 포스터에 그려진 린의 발치.

 "멋진 드레스도 입고 싶어요."

 "카에데 씨."

어영부영 넘어가는건 카에데 씨한테 실례겠지.
머리 속에서 신중하게 말을 골라, 진지하게 대답하자.

 "CG프로덕션에서 신데렐라와 유리구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건 잘 아시겠죠."

 "회사 이름부터 신데렐라니까요."

 "아마 카에데 씨가 생각하는 그대로일 겁니다. 평소엔 신데렐라나 그와 관련된 이미지의 사용을 금지하는게 사무소의 방침입니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아이돌만이 사용할 수 있다.
아이리도, 란코도, 린도, 뼈를 깎는듯한 노력을 해서 얻은 성과를 인정 받은 것이다.

 "언젠가. 아니,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분하지만 아직 나와 카에데 씨의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카에데 씨를 위해 유리구두와 마법의 드레스를 꼭 준비하겠습니다."

지금은 이 말밖에 할 수 없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카에데 씨의 답변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빠져 신발이 벗겨질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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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 걸 세명도 확인 완료. 뒷 일은 사업부 재량에 맡길까?"

잡다한 자료를 책상 이곳저곳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들기거나 펜을 움직인다.
처음엔 근무 시간 안에 일을 전부 끝낼 수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야근이 잦아진다.

 "공연 장소도... 곤란하네. 위약금 물어낼 각오를 하고 중복 예약을 하는 수 밖에 없나."

연말 라이브를 실패할 수는 없으니, 강행군이 필수불가결.
뭐어 예산의 계상이나 기재의 준비를 먼저 처리해두면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무엇보다, 수십 명의 예정을 한 번에 고려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화낼지도 모르겠네."

지금 준비하고 있는건 전에 말했던 마법의 모조품이다.
아직 닿지 않는 곳에 억지로 손을 뻗어 조금씩 이쪽으로 끌어당기는 속임수.

 "그래도 뭐 어차피 나는."

평범한 프로듀서일 뿐이니까.
아이돌을 위해서라면 마법사, 아니 마차의 말이라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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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인조잔디를 보고 있노라면, 바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가까이서 보면 분명히 평면에 그려진 궁전도, 여기서 보면 웅장해 보인다.

 "정말 넓네."

관동에서 가장 큰 촬영 스튜디오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가.
합계 30명 이상의 아이돌들이 한번에 춤출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었다.
각자의 담당 프로듀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돌들은 즐거운듯이 스튜디오 안을 돌아다닌다.

 "고생 많으셨어요. 프로듀서."

 "카에데 씨."

돌아보니 연푸른빛의 드레스를 입은 카에데 씨가 서있다.

 "요즘 녹화에 따라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프로듀서 덕분에 이렇게 멋진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걸요."

10월이 다 끝나가는 오늘에서야 드디어 마법사의 등장이다.
CG프로덕션의 프로모션 비디오.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내가 모든 힘을 짜낸 결과다.

 "드레스뿐만이 아닙니다. 카에데 씨. 그럼 모두 준비한 물건을 나눠주세요."

헤드셋을 통해 스튜디오 안의 인원에게 지령을 전달한다.
이제 마지막 주문이다.
과장된 몸짓으로 카에데 씨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은 상자를 정중하게 내민다.

 "죄송합니다. 카에데 씨. 아직 저에게는 진짜 유리구두를 준비할만한 힘이 없습니다."

 "..."

 "이게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카에데 씨가 상자를 연다.
상자 안에는 아크릴로 만들어진 유리구두가 한 켤레 들어있다.

 "...앗"

 "네?"

큰일이다.
안을 본 카에데 씨의 표정이 순간 굳은 것 같다.
당황해서 나도 내용물을 확인한다.
딱히 바뀐건 없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 와서 뭔가 실수를 한건가...!?

 "죄, 죄송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군요."

 "아뇨 그... 말로 할 수 없을만큼 기뻐요. 정말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그렇게 말하며 웃는 카에데 씨는 언제나처럼 여신이었다.
아까는 분명 내가 잘못본거겠지.
최근엔 계속 야근이었으니 피로가 쌓였음에 틀림 없다.

 "신겨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카에데 씨를 의자에 앉히고 구두를 신는걸 도왔다.
늘씬하게 뻗은 카에데 씨의 다리를 만질 때는 정말 긴장했지만.
그냥도 신기 힘든게 구두인데, 아크릴로 만들어져 있다보니 신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너무 끼지는 않나요?"

 "후후. 딱 맞아요."

양 다리를 번갈아 흔들며 카에데 씨가 즐거운듯이 웃는다.
그래 이 표정이다.
기뻐하는 카에데 씨를 보고 있자니, 수 개월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각자의 담당 프로듀서에게 구두를 받고 기뻐하는 아이돌들이 보인다.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유리구두를 신고,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빛나는 표정을 짓는 아이돌들.
린만 빼고.

 "...응?"

다른 아이들처럼 신데렐라의 의상을 입고 있는 린은 왠지 토라진 것처럼 보인다.
쓴웃음을 지고 있는 카렌과 나오에 둘러쌓인 트라이어드 프리머스 담당 프로듀서가 린을 달래고 있다.
지켜보고 있는 나를 눈치챈건지, 린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

 "아, 시부야 씨. 무슨 일로...?"

 "...당신이 잘못한게 아닌건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데도."

가슴을 얻어 맞았다. 전혀 아프진 않았지만.

 "?"

 "바보."

툭 툭

토라진 표정의 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계속 때린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귀엽긴 하지만.

 "어이, 린! 뭐하는거야."

트라프리 담당 프로듀서가 놀라서 달려온다.

 "죄송합니다! 자, 린도 제대로 사과해야지."

 "...죄송합니다."

 "아아, 괜찮아. 딱히 화나지 않았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린. 평소에 안 그러던 애가."

담당 프로듀서의 질문에도 린은 부루퉁한 얼굴을 풀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보이는 카렌이 웃으며 걸어와 린의 어깨를 툭툭 친다.

 "미안해요. 지금 린 기분이 별로라서. 자, 린! 일모드로 돌아와야지!"

 "...알고 있어. 구두 신고 올테니까."

언제나대로의 표정으로 돌아온 린이 담당 프로듀서와 함께 돌아간다.

 "오늘 일은 좀 봐줘. 린의 기분도 어느정도 이해는 되니까."

 "프로듀서 씨. 이번 기획, 정말 고마워. 린은 좀 그렇겠지만, 난 정말 기뻐."

나오는 한숨을, 카렌은 윙크를 남기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카에데 씨와 단둘이 남겨졌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음... 제 입으로 자세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프로듀서는 좀 더 여심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겠네요."

저번엔 카렌이 화내고, 린이 나를 장난감처럼 다루더니.
이번엔 린이 화내고, 카렌은 감사를 표한다라...
최근에 트라이어드 프리머스와의 관계가 까다로워진 것 같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나오가 화내는건 아니겠지.

 "여심인가."

나는 이 나이를 먹고도, 여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
촬영을 시작한건 오전이었는데, 끝날 때 즈음에는 해가 지고 있다.

 "아, 찾았다!"

촬영용 연못 근처에 카에씨가 무릎을 감싸 쥐고 앉아 있었다.
얕은 경사로를 내려가며 풀을 밟는 소리가 나자, 카에데 씨가 나를 돌아본다.
카에데 씨 옆에 살짝 다가가서 앉는다.
천장의 조명이 연못에 반사 돼서 제법 볼만하다.

 "긴 시간동안 촬영 수고 하셨습니다. 스태프 분들도 잘 찍혔다고 하더군요."

 "네... 확실히 촬영이 길어지니 조금 피곤하네요."

 "오래 걸린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사무소의 연줄로 실력 있는 스튜디오에 맡겼기 때문에, 나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 지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기대할게요. 후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촬영을 활 수 있었던 건 카에데 씨 덕분이기도 해요."

 "제 덕분이요?"

 "네. 카에데 씨가 매번 총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제 발언권이 제법 되거든요."

총선거의 결과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담당 아이돌의 순위가 높은건 프로듀서로서 기쁜 일이지.

 "사실 카에데 씨가 눈에 확 띄는 장면에 나오도록 손을 좀 썻습니다."

 "그래요? 수완이 좋으시네요~"

 "진정한 신데렐라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니까요. 이번 PV는."

여자아이의 꿈도 중요하지만, 목적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까보냐.

 "우리도 슬슬 돌아가죠."

 "그렇네요."

카에데 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멈춰선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뭘 하려는 건지 몰라서 쳐다보니, 날 향해 손을 내민다.

 "피곤해서 일어날 수가 없어요."

 "방금, 혼자서 일어났잖아요."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이라...
그럼 어쩔 수 없군.

 "얍."

카에데 씨의 손을 붙잡고 일으킨다.

 "..."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눈 앞에 카에데 씨의 얼굴이 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는 안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카에데 씨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후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카에데 씨가 대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카에데 씨."

잊어버린 말이 있어서 황급히 말을 걸었다.
카에데 씨가 천천히 뒤돌아본다.
이런 중요한 말을 잊어버리니까, 여심을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구나 싶어서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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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지고온 유리구두를 한동안 고민하다 결국 선반에 올려둔다.
문득 생각이 나서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장을 연다.
크고 작은 상자가 닫힌 채로 놓여 있다.
내용물은 전부 구두.

 "미안해."

이제는 신을 일이 없어진 구두를 향해 사과하고 신발장 문을 닫는다.

둔감하지만 굉장히 멋있는 프로듀서.

언젠가 프로듀서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어서 제 마음을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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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언급된 PV는 2주년 기념  "お願い! シンデレラ" PV 같네요.

린의 유리구두부터 시작된 장편은 일단 이걸로 끝입니다.

작가가 이후에 추가로 쓴 작품이 있긴 합니다만 세계관이 이어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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