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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하지메 「견우성에 소원을

댓글: 11 / 조회: 3249 / 추천: 0



본문 - 11-09, 2014 23:58에 작성됨.

【※주의※】

전편 "시부야 린 「유리구두」" 를 먼저 읽지 않으면 내용 이해에 지장이 있습니다.

링크: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trans&wr_id=57200

 

- 이 작가의 세계관에는 같은 CG 프로덕션에 소속된 트라이어드 프리머스 담당 P, 후지와라 하지메 담당 P, 타카가키 카에데 담당 P가 있습니다. 이후 트라프리P, 하지메P, 카에데P로 줄여서 부르겠습니다. (트라이어드 프리머스는 린, 카렌, 나오의 3인 유닛 입니다)

- 이번 단편은 후지와라 하지메와 하지메P가 메인 입니다.

- 전편에서 3주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 일본에는 칠석에 대나무에 소원을 쓴 탄자쿠를 매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_____

바람에 흔들리는 조릿대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도록 확실하게 탄자쿠를 붙였다.
여러 가지 색깔의 소원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얼른, 하지메. 가자."

 "네. 바로 갈게요."

옥상의 문 앞에서 린이 재촉한다.
재빨리 얽힌 가지를 정리하고 내려섰다.
문을 닫기 전에 하늘을 올려다 보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견우에게 물었다.
'오늘 밤에도 날씨가 맑도록... 이라고 비는 것도 소원으로 치는 걸까요?'

 

후지와라 하지메 (16) - 도자기 장인 가문 출신 아이돌

 

_____

 "밀크레이프요."

 "음... 저는 아이스 밀크티로."

이제 막 7월에 접어들었는데, 도쿄는 아지랑이가 생길 정도로 덥다.
고향의 온화한 여름에 익숙한 몸이 끊임없이 차가운 음식을 요구한다.

 "좋은 가게네. 조용하고, 사무소랑도 떨어져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에 안성맞춤이죠?"

작은 찻집 안에서도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 맞은 편 자리에 앉은 린이 기분 좋은 듯이 빙글빙글 웃는다.
아마도 내 쪽은 정반대의 표정을 짓고 있겠지.

 "나를 버리고 간 일. 잊어버렸다곤 못하겠지? 오늘을 기다렸다고."

 "아, 알았다니까요... 린한테는 제대로 설명할게요."

 "응. 좋아좋아."

 "하아... 정말이지. 그런데..."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나오와 카렌이 린과 마찬가지로 빙글빙글 웃고 있다.
아니... 히죽히죽인가. 미묘하네.

 "왜 두 분이 여기 같이 있는건지..."

 "에~ 안 될 건 없잖아."

 "우리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 둘은 뭐라고 해야하나... 덤? 길동무? 같은 걸로."

 "...타인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거네요."

무심코 한숨이 나온다.
확실히 저번에 린을 조금 괴롭히긴 했지만, 그 대가로 상당히 비싼 값을 치를 것 같다.
뭐어... 그 때 얼굴이 빨개져서 부끄러워하는 린이 귀여웠으니, 보기 드문 구경을 한 값을 지불하는 셈 치자.


_____

 "솔직히 말하면, 요즘 나오가 빈틈이 없어서 놀릴 수가 없다니까. 재미없어."

블루베리 파르페를 먹으며 카렌이 매우 유감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후훙, 나라고 언제까지나 당하기만 할 것 같아?"

 "그러고보니 나오 씨. 지난 주 주말에 트라프리P 씨와 단 둘이서..."

 "우오오오오! 하지메, 그만! 거기까지!"

린과 카렌의 눈이 반짝인다.
왠지 모르게 알고는 있었지만... 나오... 정말 고생이 많네.
꺄아꺄아 거리며 장난치고 있는 세 명을 바라보다, 린한테 질문을 던진다.

 "제 이야기를 하는건 괜찮지만, 그 때 린은 어떻게 됐나요?"

'제가 나갈 때까지는 아주 좋은 분위기 였는데...' 라는 말을 입 속으로 삼킨다.
질문을 한 순간 린이 뺨을 부풀리고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스럽네.

 "...바보. 바보 멍청이 프로듀서!"

 "어...어라... 설마 잘 안 됐던 거에요?"

 "아니얏! 차인거 아니니까!"

당황해서 딴청 부리는 린을 대신해 나오가 보충 설명을 한다.

 "대답은 보류래. 뭐어...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지만."


 『네 마음은 굉장히 기쁘지만, 너는 아이돌이고 나는 프로듀서야.』

 『그러니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

 『린이 톱 아이돌이 되고나서 은퇴하면...』

 『그 때는 내 쪽에서 데리러 가게 해 줘.』


 "요리조리 말을 돌리긴 했지만 결론은 도망쳤다는 거지."

린이 얼굴을 붉히고 필사적으로 ‘내 쪽에서 데리러 가게 해 줘.’ 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나오는 달아서 못 봐주겠다며 에스프레소를 들이킨다.
나도 동감이다.

 "후흥~ 린한테는 안 됐지만 이젠 나한테 찬스가 온거야. 결국 린은 연인이 아니라 톱 아이돌을 노리라는 말을 들은 거잖아?"

 "...내, 내 쪽이 리드하고 있다고."

 "아니~ 아직 모른다고? 모티베이션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한 립서비스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카렌과 린 사이에 불꽃이 튄다.
우정과 사랑은 별개라는 걸까.

 "그보다앗! 중요한건 하지메의 이야기야! 전에 말했던 '대답' 이라는거 뭔지 꼭 들을테니까."

린이 노골적으로 화제를 돌린다.

"아아, 그러고보니 그랬다. 린한테 들키다니 운이 나빳네, 하지메."

 "신경쓰인단 말이지이~ 난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지메는 담당 P 한테 제대로 '대답' 을한거지?"

 "어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 지 기억을 더듬는다.

 "그게 그..."

 "저기, 하지메. 얼굴이 엄청 빨간데."

그날 밤을 생각하자 얼굴이 점점 뜨거워 진다.
우우... 다시 생각해보니 굉장히 부끄럽네...
이미 세 명의 눈은 배고픈 맹수마냥 빛나고 있다.

 "저, 저기... 진짜로 말해야 하나요..."

 "아, 갑자기 말하라고 독촉하면 오히려 말이 안 나오는 법이지~ 그러면 아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나오는 어떻게 생각해?"

 "좋은 생각이야. 그게 우리가 이해하기도 쉬울거고. 그치, 린?"

 "응. 무리하지말고 천천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얘기하면 되는거야. 알았지, 하지메?"

 "우우..."

완전히 맹수 앞에 놓인 초식동물과도 같은 상황.

 "자자, 그러면 첫만남부터 시작을!"

 "처, 처음은 스카우트 였어요... 오카야마에서 라이브가 열렸을 때..."

그렇게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좋은 소식이야. 하지메한테도 드디어 담당 프로듀서가 생겼어! 자세한 사항은 내일 사무소에 오면 알려줄게.』

그 메일을 받고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전까진 나를 스카우트 해준 카에데P 씨한테 견습 같은 느낌으로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들뜬 발걸음으로 사무소에 가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하지메~ 축하해!"

소파에 앉은 카에데 씨가 맞이했다.
카에데 씨가 손짓으로 부르길래 나도 소파에 가서 앉았다.

 "네. 감사합니다."

 "후후, 하지메는 정말 열심히 하는 아이니까.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이구나."【※역주: 시작(始め)의 발음이 하지메임을 이용한 말장난】

 "앗!"

카에데 씨가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는다.
처음엔 놀랐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카에데 씨는 아름답고, 키가 크고, 상냥하고...
나한테 카에데 씨 같은 언니가 있었다면 정말 자랑스러웠겠지.

 "하지메는 착한 아이네... 착한 아이... 날아가라~"

쓰담쓰담

 "날아가는 건가요..."

 "하지메는 분명 톱 아이돌이 될테니까, 그 때에는 높이높이 날아가겠지?"

한동안 카에데 씨가 쓰다듬는걸 방치하고 있자니, 안쪽에서 카에데P 씨가 나왔다.

 "오, 하지메. 일찍 왔네. 축하해.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는거야."

 "프로듀서. 그거 아까 제가 말했어요."

 "이런, 실수했네."

 "하지메도 너무 해요. 딴지도 안 걸어주고..."

 "아... 저기, 죄송합니다?"

 "아니 하지메. 사과할 필요 없으니까."

그 날 아침에도 둘은 활기차게 만담을 주고 받았다.
항상 사이가 좋고, 서로 신뢰하고 있는게 느껴져서, 보고 있는 내가 행복해질 정도로...

 "그건 그렇고, 하지메는 빨리 응접실로 가보렴. 앞으로 네 담당을 맡게 될 프로듀서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앗, 벌써 와 계신가요."

 "그래. 오늘은 대면식이다. 인수인계는 이미 해뒀으니 걱정하지 말고."

 "나도 본 적 없는 분이에요. 두근두근 거리네. 그치, 하지메?"

마음을 가다듬고, 응접실 앞으로 갔다.
내 담당 프로듀서는 어떤 분일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끌어안고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안에 들어가니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이 있다.
내가 들어가자 소파에서 일어나서... 일어...나서...

 "와아..."

놀라서 무심코 감탄사가 나왔다.
카에데 씨는 여성 치고는 굉장히 키가 큰 편이고, 카에데P 씨도 그보다 약간 큰 정도였는데, 내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체격도 우람하다.

 "반갑습니다. 후지와라 하지메 씨. 오늘부터 당신을 담당할 프로듀서 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민 오른손은 내 손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실례를 저지를 순 없기에 나도 얼른 손을 내밀었다.

 "후지와라 하지메 입니다."

왜일까.
갑자기 아까 카에데 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목표는 톱 아이돌 입니다."

무심코 그렇게 말하자 프로듀서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프로듀서가 미소를 짓는 게 정말 드문 일이라는걸 깨닫는 건 좀 더 나중이다.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이군요."

 "그... 저기. 그 말 아까 카에데 씨랑 카에데P 씨도 하셨어요."

 "미안."

========================

 

 "아~ 확실히 처음에 보고 진짜 놀랐어."

 "하지메는 선이 가는 편이라서 둘이 같이 서있으면 더 커보인단 말이지."

 "얼굴은 다 괜찮은데 눈매가 날카로워서, 조금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인상이었지."

세 명이 각자가 받은 인상을 털어놓는다.
P 씨는 요즘 어린 아이돌들과도 잘 지내고 있지만,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바람에 곤란한 점이 많았지.
직접 말을 걸면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라는걸 금방 알 수 있을텐데...

 "그런데 카에데 씨랑 굉장히 사이가 좋다 싶더니, 직속 선배였구나."

 "네. 지금도 자주 같이 놀러 나가거나 식사를 하거나 해요."

 "선배인가. 부럽네. 나는 초기 멤버라서 선배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좋겠네~ 카에데 씨 엄청난 미인이고. 아저씨 개그도 카에데 씨가 하니까 귀엽지 않아?"

 "후후 그럼 나중에 소개해 드릴게요. 같이 식사라도 한 번 하죠."

 "정말? 고마워~"

자랑스러운 언니에 자랑스러운 선배. 개인적으로 아저씨 개그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고보니 카에데P 씨 말이야아~"

어느샌가 새 에스프레소를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 나오가 말을 꺼낸다.

 "아~ 그 사람 카에데 씨한테 홀딱 반했지~"

 "맞아. 그거 어떻게든 진전시킬 수 없는거야, 하지메? 그 둘 빼고 모두가 알고 있을걸, 이제."

 "그, 그게..."

연애에 둔한 나도 눈치 챌 정도니, 그야 사무소의 모든 사람이 알만도 하다.
왠지 조금 슬프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한 기분...

 "사무소 입장에서 보면 절대 진행시키면 안되는거잖아..."

 "호오... 저게 P 씨한테 고백한 린이 할 말이라고 생각하오? 카렌 공~"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려~ 나오 공. 린이 『난... 분명 프로듀서의 신데렐』읍읍..."

 "그만해애앳! 하지메도 듣지마앗!"

린이 놀라운 기세로 튀어나가 카렌의 입을 틀어 막는다.
카렌도 질 수 없다는듯이 린을 피해 못다한 말을 마저 하려 몸부림 친다.
서로를 막아내느라 정신 없는 둘을 카운터에서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는 마스터에게 나오가 살짝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하지메는 어떻게 됐어?"

나오가 화제를 원래대로 되돌린다.

 "처음에는 조금 고생했어요. 일도 별로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부담됐다.
나도 P 씨도 그 때에는 여러가지로 서툴렀기 때문이다.

 

========================

 "수고했어, 하지메."

 "하아...핫... 감사합니다."

연습으로 열이 오른 몸을 프로듀서가 건네준 스포츠 드링크로 식혔다.

 "미안해. 레슨만 계속 시켜서."

 "아뇨.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워요."

 "맞아요! 하지메는 배우는 것도 빠르고, 굉장히 열심히 노력합니다!"

트레이너 씨가 기쁜듯이 프로듀서에게 보고했다.
나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착실히 실력이 늘어가는걸 느낄 때마다 뿌듯하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인지, 조금 초조해 보였다.

 "스텝이 정확하네요. 오늘 레슨은 여기까지."

 "이제 레슨 끝났구나, 하지메. 난 차에서 기다릴 테니 스트레칭 확실하게 하고 와."

 "네."

스트레칭과 샤워를 마친 후 주차장에 갔다.
살짝 차 안을 들여다보니 프로듀서가 서류와 눈싸움을 하고 있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구나... 그럼 출발하자."

프로듀서는 서류를 재빨리 정리하고, 시동을 걸었다.
한동안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프로듀서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이주일 후에 라이브 개막 출연 일이 들어왔다."

 "네? 아... 알겠습니다."

 "연습할 시간은 부족하겠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무대를 만들자."

 "네. 라이브는 처음이라서 조금 두근거려요."

 "그런가."

짧은 이야기 후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들었는지, 사무소에 도착해서 프로듀서가 깨워주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사무소에 올라가니 카에데 씨가 있다.

 "수고했어, 하지메."

 "아... 카에데 씨."

당황해서 잠에 취한 눈을 마구 비볐다.

 "수면실 쓸래?"

 "아뇨. 괜찮아요."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마."

먹으라며 카에데 씨가 내미는 만쥬를 감사히 받았다.
입 안에 넣자, 레슨으로 지친 몸에 당분이 스며 드는 게 느껴진다.

 "카에데 씨.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뭐든지 물어 봐. 참고로 요즘 즐기는건 텡구마이." 【※역주: 텡구마이(天狗舞) - 이시카와 현에서 생산되는 술】

 "텡구...? 아뇨 그게 아니라..."

사무소 안쪽 방에 사람이 없는걸 확인한 후,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카에데 씨는 담당 P 씨랑 아주 사이가 좋잖아요."

 "응. 이른바 같은 항아리의 술을 마신 사이 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말도 있었나요. 처음 들어요. 음... 그러니까..."

말문이 막힌 나를 보며 카에데 씨가 가늘게 웃었다.

 "다 알고있어~ 어떻게 해야 하지메P 씨랑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지 궁금한거지?"

 "우우..."

카에데 씨가 단번에 내 속마음을 간파했다.
솔직히 조금 부끄럽지만, 지금 해결책을 들어야만 한다는 자각이 있었기에, 카에데 씨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 프로듀서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고... 저도 거기에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어색해졌어?"

 "네. 안그래도 바쁜 프로듀서한테 시간을 쪼개서 친목을 도모하자는 얘기를 꺼내기도 곤란하고..."

"음..."

카에데 씨가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서는, 몸을 좌우로 왕복시킨다.
잠시 후 눈을 뜨고는, 자신이 꺼낸 만쥬에 시선을 향했다.

 "하지메는 만쥬 좋아해?"

 "넷? 네에. 좋아해요."

 "하지메P 씨는 만쥬 좋아하시려나?"

 "으음..."

프로듀서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가끔 양갱을 드시고 계셨어요. 만쥬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그럼, 넥타이는 몇 개를 돌려쓰고 있는지 알아?"

 "네, 넥타이요? 으음...

 "아니면 이상형이라든가?"

 "에엣!? 자, 잘 모르겠어요..."

이 때의 제 얼굴은 분명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붉었겠죠.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요.
아뇨, 정확히 말하면 '별로'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하지메. 사이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거에요. 나도 아직 풋내기일 뿐이지만..." 【※역주: '알기 위한(知ろうと)' 와 '풋내기(素人)' 의 발음이 같음을 이용한 말장난】

 "...후후. 카에데 씨도 카에데P 씨도 농담을 좋아하시네요."

 "하지메랑 하지메P 씨는 아직 서로를 잘 모르고 있는 것뿐이야."

어느새 카에데 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제는 이것도 일상이 돼서 익숙하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 잘 모르겠으면 먼저 이번 라이브에 대해 하지메P 씨와 이야기를 해 봐."

 "정말 감사합니다. 카에데 씨. 노력할게요!"

의지가 되는 든든한 선배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스케줄 표를 확인한 후 돌아가려고 일어서자마자 어떤 의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것도 물어볼까...

 "카에데 씨. 궁금한게 하나 더 있는데요..."

 "응. 좋아하는 안주는 닭껍질이랑 치즈야~"

 "아뇨 그게 아니라... 카에데 씨는 카에데P 씨의 이상형이 어떤지 알고 계세요?"

카에데 씨는 볼에 손을 얹고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고보니 잘 모르네."

 "앗... 그렇군요."

 "다음에 물어봐야지."

 

타카가키 카에데 (25)

 

_____

 "라이브도 얼마 안남았는데, 연습은 어때? 잘 돼가?"

레슨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 언제나처럼 조수석에 앉은 나에게 프로듀서가 물었다.

 "대강 완성은 됐어요. 남은건 세세한 부분을 개선해나가는 정도에요."

 "빠르구나. 역시 하지메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마. 컨디션 관리는 프로의 기본이다."

 "네."

원래는 항상 이쯤에서 대화가 끊겼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아니, 다르게 만든다.
톱 아이돌을 노리는 내가 이 정도 벽도 넘지 못해서야...

 "프로듀서."

 "응?"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본 것 같다.
굉장히 두근거린다.
라이브를 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두근거리는걸까.

 "사무소에 가기 전에 프로듀서랑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_____

딸랑 딸랑

문을 열자 종이 울리고, 왠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의 점내가 보인다. 고목 특유의 냄새가 옅게 나는 테이블은 조명 때문에 황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너는... 오랜만이군."

 "그래. 안쪽 자리 비어있나?"

마스터로 보이는 분이 내 쪽을 흘끔 쳐다본다.
얼핏 봐도 잘 단련된 신체와 엄해 보이는 눈초리가 프로듀서랑 비슷하다.

 "과연... 그런가. 자리는 비어 있으니 아무 데나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

프로듀서에 이끌려, 안 쪽 테이블에 앉았다.
그렇게 넓지 않은 점내에 손님도 거의 없어서 굉장히 조용했다.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가게네요."

 "이런 가게가 있다는건 비밀이다.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한텐 알려주지 마."

 "비밀인가요. 그... 그런데 괜찮아요? 저를 데리고 와도..."

 "하지메는 괜찮다. 사무소에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있으면 데리고 와도 돼. 친구는 좀 사겼나?"

 "아뇨. 그... 아직..."

레슨 때문에 바빠서... 라는건 변명이려나.
어렸을 때부터 내향적인 성격은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이런 내가 잘도 아이돌을 하고 있구나...

 "그런가. 금방 생길 거다. 자, 메뉴."

 "감사합니다."

 "하지메가 여태까지 열심히 노력한 상이니까, 뭐든지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도 된다."

 "음..."

메뉴를 보니, 굉장히 많은 종류의 음료와 케이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제 케이크가 주력 메뉴인 가게 같다.
프로듀서도 메뉴판을 펄럭펄럭 넘기며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 물어볼까...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비웃진 않으시겠지...

 "프로듀서."

 "뭐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프로듀서는 잠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안 웃을거지?"

 "안 웃어요. 절대로 안 웃을 테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단 걸 굉장히 좋아했다."

탁 소리를 내며 프로듀서가 메뉴판을 닫았다.

 "특히 여기에서 파는 밀크레이프를 정말 좋아하지."

 "후후... 그럼 저도 같은걸로 주문할래요."

 "그래? 그럼 결정이군. 여기, 밀크레이프와 홍차 두 개씩."

주문을 받으러 온 마스터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프로듀서를 바라본다.
그 후 한숨을 내쉬며 전표에 펜을 놀린다.

 "오랜만에 왔나 했더니, 또 이거냐. 너는 몰라도 그 쪽의 아가씨까지 같은걸 주문하게 하다니."

 "뭘 주문해도 상관없잖아. 그리고 같은걸 주문한 건 그 아가씨의 선택이다."

 "알았다. 금방 갖다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잠시 잡담을 나눈 후 마스터는 카운터에 돌아갔다.
마스터와 얘기할 때의 프로듀서가 여태까지의 이미지와 전혀 달라서 놀랐다.

 "아는 분이세요?"

 "옛동료 같은 녀석이지. 참고로 케이크는 전부 저 녀석이 만든다. 안 어울리지?"

 "음... 확실히 그렇긴 한데요..."

 "아가씨. 그런 소리 하면 케이크 안줄거야."

어느새 마스터가 주문한 메뉴를 가지고 왔다.
뭘 주문할지 미리 알고 있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스피드.
눈 앞에 있는 밀크레이프는 굉장히 달콤한 냄새가 나고 메뉴판에서 보던 것보다 더 맛있어 보여서, 무심코 마스터의 얼굴과 밀크레이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건가. 케이크는 내 얼굴이 아니라 아가씨의 입으로 직접 맛을 확인하도록."

 "죄, 죄송합니다."

당황해서 허둥지둥 포크를 들어올렸다. 밀크레이프의 꼭지점 부분을 살짝 떠서 입으로 옮긴다.

 "맛있어..."

 "그렇지? 오랜만에 왔는데 맛은 여전하군."

"저... 프로듀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지 잘 몰라서, 갑작스럽게 본제를 꺼내들었다.

 "뭐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프로듀서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요?"

 "프로필 정도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프로듀서가 앞에 있는 컵을 들어올렸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드릴게요. 그러니까 프로듀서도 프로듀서가 어떤 사람인지 저에게 알려주세요."

그 후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도자기를 만드는 새로운 기법을 배우기 위해 드레스덴에 가 계신 일.
대학시절, 강의를 빼먹고 후지산에 등산하러 갔던 일.
아냐한테 별자리 강의를 받았지만, 잘 기억할 수 없었던 일.
케이크를 만드는 취미를 바보 취급 했다가, 이 가게의 마스터랑 싸웠던 일.
고향에서 뉴제네레이션의 공연을 보고 아이돌이 되기로 결심했던 일.
니나를 만나자마자, 목말을 태워줬던 일.
강 낚시에서 물이 깊은 곳 근처에 가려고 하다가 할아버지한테 혼났던 일.
처음 나랑 만날 때 사실은 조금 긴장했다는 프로듀서의 고백.

창 밖을 보니 이미 붉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시간을 확인한다.

 "슬슬 돌아가야겠다. 이 이상 늦어지면 치히로 씨한테 혼날테니... 치히로 씨 정말 무서우니까."

방금 한 말도 약간 신경 쓰이지만, 나중에 물어보자.
프로듀서가 전표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향한다.

 "하지메."

 "네."

 "미안해. 그리고 고맙다."

프로듀서가 갑자기 나한테 머리를 숙인다.

 "엣, 그... 갑자기 왜..."

 "하지메 나름대로 나하고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지? 아이디어를 낸 건 카에데 씨겠지만."

아무래도 프로듀서는 전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원래는 프로듀서인 내 쪽에서 어떻게든 했어야 하는데, 나이 차이가 나는 여자 아이랑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잘 몰라서..."

 "아뇨 저는 그냥... 프로듀서가 조금 피곤해 보이셔서 잠깐 쉬는 게 어떨까 하고..."

 "그렇게 피곤해 보이나."

부끄러운 나머지 말을 돌렸지만, 완전히 거짓말도 아니다.
프로듀서는 항상 바삐 영업을 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하다고 해도, 그 정도 페이스로 일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
어떻게 하지... 한번 말해볼까.

 "낚시의 좋은 점은, 낚시 할 때의 손맛뿐만이 아니에요."

 "응?"

 "작은 시냇물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으면 심신이 치유 돼요."

갑자기 낚시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프로듀서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제 친가 근처에 좋은 낚시터가 있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장소에요."

프로듀서가 비밀로 하고 있던 가게를 알려 주셨으니, 나도 비밀 낚시터 정도는 공개하는 게 도리에 맞으리라.

 "가...같이 가실래요?"

가만히 프로듀서의 얼굴을 바라본다.
프로듀서도 눈을 돌리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뭐어... 친가에 인사를 해놓으면, 아이돌 활동이 쉬워질지도 모르지."

 "그건 그러니까..."

 "일단 라이브를 성공시킨다. 낚시는 그 다음."

========================

 

 "엣... 친가에 부른거야? 오카야마였던가?"

 "네. 부모님은 해외에 나가서, 조부님만 계시지만요."

린과 카렌이 밀크티로 목을 축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렇구나... 집에 부르는 방법이 있었나.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집 앞까지 왔었는데."

 "확실히 우리 집이 가까우니까... 아니지. 이유는 뭐든 상관 없나..."

라이브 직전에 하는 연습마냥 둘의 표정이 매우 진지하다.
그 둘을 응시하는 나오는 귀찮아서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여기 밀크레이프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마스터가 나오와 내 앞에 밀크레이프를 하나씩 놓는다.
카렌이 신기하다는 듯이 묻는다.

 "어라... 너네 언제 주문했어?"

 "너희가 바보짓하고 있는 동안 주문했어. 이거 정말 맛있단 말이야."

카렌의 시선이 행복한 얼굴로 밀크레이프를 툭툭 건드리고 있는 나오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블루베리 파르페 사이를 오간다.
한참을 그러다가 결국 린 앞에 있는 절반 정도 남은 밀크레이프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있잖아 린..."

 "하아... 알았어. 바꾸자."

 "역시 린이야! 뭘 좀 아는데!"

결국 여자 아이는 단 음식에 이길 수 없다.
아이돌이라도, 아니... 신데렐라걸이라도 피할 수 없는 유혹.

 "그런데 말이야. 하지메P 씨가 알려준 비밀장소에 우리를 데려와도 괜찮은거야?"

나오가 물었다.

 "네. 모두들 너무나 멋진 제 친구들 이니까요."

 "..."

 "아! 린 얼굴 빨개졌다."

 "아... 아니거든!"

 "부끄러워하기는... 우읍."

린이 파르페를 들고서는 카렌의 입을 향해 돌진 시킨다.
린처럼 알기 쉬운... 아니. 솔직한 사람은 요즘 보기 힘들다.

 "그래서 하지메가 그 레스토랑에 간 건 언젠데?"

파르페로 카렌의 입을 막은 채로 린이 말을 꺼낸다.
카렌은 괜찮은건지...

 "작년 칠석 즈음이었어요."

 

========================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즈키』

『열심히 할게요! 치에』

『P 씨   카렌』

『봄버!!!! 아카네!!』

칠석을 맞이하여, 사무소의 아이돌들은 각자 탄자쿠에 소원을 적기에 여념이 없었다.

쾅!!!

갑자기 사무소의 문이 힘차게 열렸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돌아보니 프로듀서가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저, 저기...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내 앞에 서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 보았다.

 "저...저기..."

 "합격이다."

차라도 내올까요 라고 물으려 하자, 프로듀서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엣? 뭐가요...?"

 "저번에 봤던 오디션. 히로인 역할."

부웅

갑자기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안 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프로듀서가 양 손을 내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들어올리고 있었다.
거기서 약간 시선을 올리니, 오랜만에 보는 프로듀서의 미소.

 "하하하! 됐다고! 대단해, 하지메! 장하다!"

 "햐아아아앗!?"

나를 들어올린 채로 프로듀서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머리는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고,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강한 원심력을 느꼈다.
회전목마와 관람차와 롤러코스터를 합쳐서 3배를 하면 비슷한 느낌일까.
그렇게 한참을 돌고 나서야 내려올 수 있었다.
간신히 소파에 앉자,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아... 미안해. 갑자기 들어올려서."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는 줄 알았어요."

소파에 누워 있던 카에데 씨가 방실방실 웃으며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다.
아뇨... 저 안 날아간다니까요...

 "그래도 정말 대단하다. 하지메. 1년 만에 영화의 히로인 역으로 발탁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그런가요... 정말... 합격한 거네요..."

 "아아, 물론이다. 네 실력으로 당당히 합격한거야."

"아뇨, 저 뿐만이 아니라... 프로듀서도..."

프로듀서가 보지 못하게 슬쩍 내가 쓴 탄자쿠를 주머니 속에 숨겼다.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기를...' 라고 적힌 탄자쿠가 들키면 부끄러우니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프로듀서는 무심하게 이야기를 계속 했다.

 "응. 오늘은 칠석인가. 딱 좋군. 하지메."

 "네."

 "상이다. 먹고 싶은 거라든가 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뭐든지 말해 봐. 가능한 선에서 들어줄테니."

 "가고싶은 곳..."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칠석... 회전목마... 관람차... 롤러코스터... 아.

 "저... 높은 곳에 가고 싶어요."

 "응?"

저번에 도쿄타워에 갔을 때 프로듀서와 좀 더 사이가 좋아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관람차에 탄다거나...

 "알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일정을 잡아볼게."

 "감사합니다."

 "나도 탄자쿠나 쓸까."

그렇게 말하곤, 프로듀서가 무언가를 탄자쿠에 적었다.
등 뒤에서 살짝 엿보다가 무심코 웃고 말았다.

 "하지메? 무슨 일 있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하지메의 영화를 보길.』


주머니 속에 숨긴 내 탄자쿠가 피식 하고 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_____

 "저..."

 "응? 아... 오리는 싫어하나?"

 "아뇨. 맛있어요."

홀의 중심에 있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오리구이를 서툴게 포크로 집어 올렸다.
멋진 야경. 맛있는 식사. 어느 하나 불만족스러운 게 없는데...
분명히 없는데...

프로듀서! 그 '높다(高い)'가 아니에요!!【※역주: 하지메가 말한 '높다(高い)'를 '비싸다'로 해석】

...라고 이제 와서 말 할 수도 없고. 뭐라고 해야 하나...
카에데 씨 주변에 있으면 카에데 씨의 영향으로 사람이 바뀌는게 아닌가 하는...

 "제 옷... 이상하지 않나요?"

 "전혀. 부모님이 좋은 옷을 보내주셨군."

 "그럼 다행이네요."

 "무엇보다 일단 옷걸이가 좋으니까 말이지."

 "엣? 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만 우물거렸다.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오라고 해서 열심히 옷을 골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레스토랑에는 어울리지 않는듯한 느낌이 든다.
스카이트리나 선샤인시티 근처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격식 있는 가게에 올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원래는."

 "네?"

 "좀 더 빨리 너를 유명하게 만들 수 있었다."

글래스를 집어 들며 프로듀서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1년이면 아주 빠르다고 말했지만, 너의 재능이라면, 수 개월로 충분했다."

 "그, 그렇지는..."

 "사실이다. 네가 자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에게는 그만한 재능이 있어. 단지 찬스가 없었을 뿐이다."

프로듀서가 강한 어조로 내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메는 아이돌이 뭐라고 생각하나?"

 "아이돌이요...?"

이상하다.
지금까지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했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아무런 생각도 안난다.
내 안에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돌의 이미지가 거품처럼 흩어진다.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은 오직 선배나 친구...
열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뉴제네레이션의 라이브.
관객석 전체가 숨을 죽이고 듣는 카에데 씨의 맑은 노랫소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대를 누비는 아나스타샤.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물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프로듀서가 창 밖을 가리킨다.

 "아이돌은 별이다. 우연히 지상으로 내려와 눈부시게 빛나는 별."

 "프로듀서... 조금 취하셨죠?"

 "취하지 않고서야, 네 앞에서 이런 이야길 하진 않아."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프로듀서의 볼이 희미하게 붉어 보이는건 취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일까.

 "별이 푸른 빛이나 흰 빛을 내는 것처럼 아이돌도 다양한 방식으로 빛을 낸다. 노래나 춤, 아니면 다른 무언가로."

 "..."

 "네가 빛날 때는...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때만이 아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

 "하, 하지만 프로듀서는 제 장점을 눈치채고, 금방 일거리를 늘려 주셨어요."

 "그걸 가능케 한 것도 너다. 하지메."

 "제가...요?"

전혀 기억에 없다.

 "비밀장소라고 했던... 낚시터에 날 데려갔었지."


_____

 『낚시 명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결코 한가롭게 가만히 서서 낚시 하지 않아요』

 『그래? 낚시의 묘미는 기다림 아니었던가』

 『그것도 틀리진 않지만, 정말 낚시에 능숙한 사람은 다양한 장소를 찾아다닙니다』

 『잘 낚이는 지점을 찾는건가』

 『그렇죠. 그런 시도들이 쌓여서 최종적으로 낚시 명인이 되는거에요』

 『.....』

 『프로듀서?』

 『하지메, 찌 내려갔다』

 『에, 우왓』
_____


 "솔직히 말하면, 그 때 너에게 설교를 듣는 느낌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과해야 하는건 내 쪽이다."

프로듀서의 표정이 잠시 누그러졌다가, 곧바로 다시 굳었다.

 "하지메. 나는 네 시간을 헛되이 사용했어.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다. 미안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할게. 너를 반드시 톱 아이돌로 만든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가장 밝은 별로."

 "....."

 "그러니까... 이런 부족한 나라도, 앞으로 계속 하지메의 옆에 있게 해 줘."

아아... 역시. 프로듀서... 많이 취하셨어요.

 "네. 저야말로... 앞으로도 프로듀서의 곁에 있어도 될까요?"

어쩌면... 저도 취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

 


 "잠깐만... 그거 그냥 고백이잖아."

나오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생각해도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어서 곤란하다.

 "그렇구나... 실수했네. 역시 그 때 잔을 바꿧어야..."

 "취하게 하려면 일단 연장자들과 결탁해서... 아니, 이건 너무 리스크가 커..."

아까보다도 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카렌과 린이 보인다.
나오는 자신과는 상관 없다는듯이 다 쓴 빨대로 뱀 모양을 만들고 있다.

 "그건 그렇고 너나 하지메P 씨나 정말 성실하구나. 이쪽의 P 씨한테 본받으라고 하고 싶을 정도야."

 "후후. 여러분들보다 먼저 톱 아이돌이 돼야 하니까요."

삐걱

세 명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별이 될 거에요. 트라이어드 프리머스에 지지 않습니다."

 "헤에..."

 "신기한걸. 하지메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

 " '여자의 고집'은 린만의 특권이 아니니까요."

서로가 서로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빙글빙글 웃는다.
슬슬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바깥 기온도 내려간 듯한 느낌이 든다.

 "자! 그만그만. 이제 그만 일어나자."

 "뭐어~ 그럴까. 나도 다음에는 밀크레이프 시켜야지."

나오와 카렌이 말을 꺼내자마자 무겁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나와 린도 긴장을 풀고 미소 짓는다.

'여러분들은 라이벌이기에 앞서, 매우 소중한 제 친구들이에요.'


_____

 "그런데 말야 하지메P 씨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니야? 항상 바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좋은 일을 가져오는 거잖아. 하지메가 나온 영화, DVD도 잘 팔린다는데."

 "혹시 연중무휴로 일하고 있는 거 아냐?"

확실히... 작년 칠석 이후로 프로듀서는 한층 더 필사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연중무휴로 일하시는건 아니겠지...

딸랑 딸랑

 "어라... 아냐잖아."

 "Да. 린도 있었군요."

문을 열고 아냐가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슬슬 출발해요. 모두 같이 가는거죠?"

 "엣! 잠깐 기다려. 어딜 가는 거야?"

 "어라... 말하지 않았던가요?"

아냐가 도리도리 머리를 흔든다.
바빠서 말하는 걸 잊어버린 모양이다.

 "오늘은 백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칠석이에요."

 

아나스타샤 (15) 

 

_____

찌는 듯한 더위도 밤이 되자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낮보다 훨씬 쾌적하다.

 "이 근처인가?"

 "좀 더 오른쪽으로~"

 "알았어."

조릿대는 이미 탄자쿠로 가득해서, 얼마 남지 않은 위쪽 자리에 어떻게든 탄자쿠를 매달려고 하는 아이들을 프로듀서가 일일이 들어올려주고 있다.

 "후후"

 "하지메P 씨, 인기 많은데."

린이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한 마디 한다.

 "이건 이미 칠석이 아니고 평범한 달구경이지?"

우리 사무소 분들은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니까요.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거나, 월병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_____

 "칠석에 사무소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정말 복 받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니?"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내 쪽으로 온다.
요즘 카에데 씨한테는 핸드백보다 술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으음... 그런가요?"

 "어머머~ 하지메는 참 나쁜 아이네~ 오늘 이렇게 즐거운 이벤트가 있으면 이 언니한테 먼저 말을 했어야지~"

카에데 씨가 토라진 척을 하며 나에게 다가와 뺨을 비빈다.
입으로는 카에데 씨 자작곡이 틀림 없는 곡을 흥얼거리고 있다.
상당히 취기가 오른 것 같다.

 "아까 탄자쿠를 탐색했는데." 【※역주: '탄자쿠(短冊)' 와 '탐색(探索)' 의 발음이 비슷함을 이용한 말장난.】

 "..."

 "리인~ 웃어도 되는데에~"

 "아하하..."

 "므으"

카에데 씨가 뺨을 부풀리고 린을 놀리다가, 갑자기 생글생글 웃는다.

 "하지메라면 될 수 있어."

 "엣?"

 "내가 보증할게."

그 말만을 남기고 카에데 씨가 원래 있던 돗자리 위로 돌아간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될 수 있다니, 뭐를?"

 "음... 그게..."

 "뭐어... 탄자쿠를 찾아보면 알겠지."

린이 성큼성큼 걸어가 조릿대에 걸린 탄자쿠를 하나하나 확인한다.


 『사이킥』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돈』

 『프로듀서』


 "아, 맞다. 무기명이었지."

 "네. 전에 탄자쿠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으니까요."

탄자쿠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구석진 곳에 위치한 돗자리 위에서 카렌이 트라프리P 씨 한테 술을 따라주고 있다.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술병들이 둘 주변에 나란히 놓여있고, 트라프리P 씨는 곤란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린. 여기 『프로듀서』 라고 적힌 탄자쿠는 린의 글씨체가..."

 "앗! 아냐잖아! 뭐 하고 있는거지?"

린이 내 말을 끊고 아냐가 있는 쪽으로 도망친다.
그렇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듣도록 하죠.


_____

 "명왕의 빛!"

 "란코. 그건 Марс, 화성입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훌륭한 천체 망원경이 옥상의 구석에 설치되어 있다.
미카와 란코가 번갈아서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아냐한테 질문을 퍼붓고 있다.
나도 밤하늘을 올려보니... 음... 아냐한테 배운 별자리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진짜로 천체관측 하고 있었네. "

 "Да. 여름에는 하늘이 잘 보이니까요."

 "토성의 고리 같은 것도 보여?"

 "한 번 볼래요, 린?"

린도 천체관측 소모임에 참여한다.
달의 모양을 보고, "저건 토끼다." "아니다. 나나 씨다." 라고 떠들며 즐겁게 웃는다.
나는 몰래 빠져나가 프로듀서를 찾는다.
체격이 워낙 두드러지는 지라 금방 찾을 수 있다.

 "수고하셨어요."

 "저 녀석들은 가벼우니까 별 거 아니야. 아... 카에데 씨도 가볍...지."

P 씨의 어깨를 두들겨 준다.
카에데 씨도 참... 나이가 있는데.

 "그런데 하지메. 오늘 모임은 네가 계획한건가?"

 "네. 저랑 아냐랑요."

1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놀라려나.
계획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건 아니지만...
카코 씨에게 오늘 날씨가 맑도록 기원한 게 전부다.

 "저 근처에 있는게 은하수지?"

 "네... 역시 오카야마만큼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네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여긴 도시니까. 아나스타샤 씨와 시부야 씨를 데리고 여행이라도 가는 게 어때?"

 "P 씨도 함께 가실래요? 강 낚시 재미있었죠?"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이번엔 강 보다는 은하수로 낚시를 하러 가고 싶다."

 "그... 그건 힘들겠네요."

 "그래? 하지메가 직녀가 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핫?!"

순간 몸이 굳었다.

 "어, 어떻게 그걸..."

 "응? 네가 쓴 거 맞지? '직녀가 되고 싶다'라고 적은 거."

 "와앗! 우와앗! 어떻게 안 거에요?"

 "너는 글씨를 잘쓰니까. 척보면 척이라고."

방심 했다.
필적으로 알아낼 수도 있는 건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직녀가 될 수 있다고. 코바야카와 씨에게 부탁해서 의상 빌릴래?"

 "사양할게욧!"

 "어울릴 것 같은데."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P 씨를 보니 무심코 한숨이 나온다.
성실한 건지 나사가 하나 풀려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

 "그런데 왜 칠석에 모임을 열자고 한거야?"

 "P 씨... 요즘 뉴스 안보시죠?"

 "어... 요즘은 바빠서 잘."

 "백문이 불여일견 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응?"

대답하려고 한 순간, 옥상 곳곳에서 탄성이 흐른다.

 "빛났다! 지금 빛났다고!"

 "엣!? 어디서? 좀 알려줘, 미오!"

 "어디긴 어디야, 시마무. 저기잖아! 봐!" 

밤하늘에 별이 내린다.

 "음... 카렌. 별똥별이 사라지기 전까지 3번 외치면 되는거야?"

 "응. 저렇게."

 "돈벼락돈벼락돈벼락돈벼락돈벼락..."

 "치히로 씨..."

옥상 여기저기서 소원을 비는 소리가 들린다.
톱 아이돌이 되고 싶다거나, 배가 터지도록 맛있는 걸 먹고 싶다거나...
소원은 제각각이지만 모두의 눈동자가 별똥별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다.

 "유성인가."

 "네. 이 정도로 유성이 많이 내리는 칠석은 앞으로 72년 후에나 온대요."

 "나는 장수나 기원할까."

P 씨는 전보다 농담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만, 언제나 진지한 얼굴로 툭툭 던지므로, 농담인지 아니면 진담인지 알기 힘들다.

 "넌 소원 빌지 않을 건가?"

 "네. 탄자쿠로 충분해요."

 "그래? 이런 기회는 72년 뒤에나 온다면서. 난 그 때까지 살아있을지 어떨지 모르겠군."

소원은 빌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하늘을 본 것만으로 만족해요.
게다가 제가 노리는건 유성이 아니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양손을 벌려 하늘을 바라봅니다.

 "『 아이돌은 별이다』"

 "어이, 하지메..."

 "『 우연히 지상으로 내려와 눈부시게 빛나는 별』"

 "알았다. 그만해. 내 얼굴에서 불나겠다."

P 씨가 질렸다는듯이 손을 내젓는다.
싱거운 농담을 한 벌이에요.

 "저는 소원을 비는 쪽보다, 이루어주는 쪽이 되고 싶어요. 유성보다는 직녀가 되고 싶어요."

 "하아... 너도 성격이 많이 변했구만."

 "훌륭한 선배와 친구들이 있어서 말이죠."

그리고 물론 최고의 프로듀서도...
시간이 지나면 이 말도 직접 전할 수 있겠죠.

 "그리고 다른 소원 하나는 벌써 이루어졌는걸요."

 "다른 소원?"

P 씨의 키로도 닿지 않는 조릿대의 꼭대기.
밤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에, 초록색 탄자쿠가 매달려 있다.
작년엔 소원을 빌기도 전에 이루어졌으니, 올해 두 개를 빌어도 용서해주시겠죠.

 "비밀이에요."

내년 칠석에는 알려줘도 괜찮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P 씨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베가, 알타이르, 별똥별, 그리고 떠들썩하게 웃고 있는 별의 씨앗들을 둘이서 조용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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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견우님께

 

항상 열심히 일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그렇지만 휴식도 일 못지 않게 중요해요.

그러니까 가끔씩은 저희들과 즐겁게 놀아요.

 

직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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