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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사와 후미카는, 암적색으로 물든다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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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7, 2017 02:55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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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회상에 잠겨 있었지만, 그 날을 떠올릴 때면, 심장이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두근거리며 잠기운을 날려 버린다.

그 날 이후, 난 완전히 아카네 씨를 의식하게 되어 버렸다.

이 마음은, 친구로서의 우정인가, 아니면――.

아니면, 이라니.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건 『올바르지 않은 일』 이라고, 몇 번이고 타이르고 있는데.

아아, 그래도.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프로듀서 씨는 말했다.

그러니까, 행복해져야 한다고, 도 프로듀서 씨가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올바르지 못한 일을 저질러야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책 속을 아무리 찾아다녀도, 답이 적혀 있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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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전날, 협의했던 라이브를 끝내고 나서,
프로듀서 씨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날 사무소로 호출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사무소 문을 열었다.


아카네 「후미카 쨩!!! 아안녕하세요오ーー옷!!」

후미카 「아카네, 씨……! 안녕하세요」


예상 외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어서, 무심코 뒷걸음질쳐 버렸다.


후미카 「아카네 씨도, 프로듀서 씨의 호출인가요?」

아카네 「네!!!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하셔서,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후미카 쨩도 프로듀서 씨가 부르셨나요?」

후미카 「네」


우리 두 사람을 모아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추측해 볼 틈도 없이, 프로듀서 씨가 들어왔다.


P   「이거 참. 역시 너희라면 30분 전엔 모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빠르게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바로 주제로 들어간다며 프로듀서 씨는 우릴 나란히 앉혔다.

그러고, 프로듀서 씨는 가방에서 종이 다발을 꺼냈다.

책상 위에 올려진 건, 연극의 기획서였다.


P   「두 사람이, 주연으로 무대에 서 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부른 거야」

아카네 「무대인가요!? 연기인가요!? 제제, 제가 연극을 하는 건가요ーーー!!?」

P   「아아, 그래. 뭐 그래도, 정식으로 정해진 건 아니긴 한데……. 우선, 두 사람의 의지를 확인해 두려고」

아카네 「하겠습니다!!!」

P   「기획서란 말이 무슨 뜻인지, 잠깐 생각이라도 해 보자?」


프로듀서 씨가 가져온 기획서를 훑어본다.

아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다.
어느 나라의 공주님이, 이웃 나라의 기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을 갈라 놓는 전쟁이 시작되고 만다.

용감한 기사와, 정숙한 공주가 그려내는, 비련의 이야기.

연극에 참가하는 것 자체엔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배역에 있었다.


후미카 「…… 제가, 기사 역인 건가요?」

P   「그렇다니까」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프로듀서 씨가 대답했다.


후미카 「저, 이 배역엔 어떤 의도가……」

P   「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후미카가 공주 역, 아카네가 기사 역이어야 하겠지」

P   「그렇게 해도, 두 사람이라면 훌륭하게 연기해 낼 수 있었을 거야. 그래서 더욱더, 너희들이 한 걸음 더 내디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P   「톱 아이돌이 됐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두 사람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 주고, 팬 여러분을 한층 더 매료시킬 수 있었으면 해」

아카네 「톱 아이돌……!」

후미카 「새로운 일면을……」

P   「정직히 말하자면, 간단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니까, 차근차근 고민해 보도록 해」

아카네 「하겠습니다!!!」

P   「아카네, 고민하라니까?」


아카네 씨는, 좋은 의미로 고민이 없다.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할 수 있게 만든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히노 아카네라는 사람이다.

나는,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능성을 제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확률이 낮은 도박은 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이돌에 뜻을 두기 전까진 그랬다.

나쁜 버릇이었다.
자신의 손이 닿는 범위의 사물만을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는 일은 일절 포기하고 있었단 뜻이니까.

하지만, 눈 앞에 내던져진 이 과제가,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리라.
이 무대를 성공시킬 자신이, 지금의 나에겐 없다.


후미카 「…… 하나만, 물어도 좋을까요」

P   「뭔데, 후미카」

후미카 「왜, 저희들인가요?」


프로듀서 씨.
당신은, 제 마음을 눈치채신 건가요.


P   「…… 너희 두 사람을 처음 본 순간, 팅 하고 왔어」


프로듀서 씨는,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P   「처음 후미카가 사무소에 와서, 아카네랑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순간에―― 너희 두 사람이 나란히 스테이지나 무대에 오르는 광경이 보였단 말이지」

P   「성격도, 외모도, 거의 정반대라서 서로 반발할 것 같은데도, 왜였을까, 같은 곳을 향해 나가는 불꽃이 보인 것 같았어」


그 말에, 근거라곤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의 말엔 언제나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이돌이 되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그 날, 프로듀서 씨가 말을 걸어 준 그 순간부터, 난 지금까지 아이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순간에도, 그랬다.

아직도 자신은 없지만, 아카네 씨와 함께 무대에 서는 그 광경이, 현실처럼 내 눈 앞에 펼쳐져 나간다.

공포와 기대를 마구 섞은 것 같은 기묘한 기분.

이 기분을, 난 이미 알고 있다.


후미카 「…… 알겠습니다. 이 제안, 받아들일게요」


아아, 나는, 두근두근 설레고 있었던 거다.





16

한 달 후, 기획서가 정식으로 통과된 것 같아서, 연습 스케줄이나 대본이 내려왔다. 개막까진 반 년의 시간이 있고, 주연인 나와 아카네 씨는,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게 된다.

무대로 향해서, 바로 모임을 가졌다.

346 주도의 프로젝트인 것 같아서, 무대에 함께 서게 될 분들은 시키 씨나 카나데 씨를 비롯해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한 번 인사를 끝내고 나니, 아카네 씨가 달려들어왔다.


아카네 「후미카 쨩, 노력하죠!!!」

후미카 「…… 네. 함께 노력해요」


하지만, 이 연극은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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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습이, 시작된다.

대사를 읊는다. 용감한 기사가 되어.

하지만, 감독은 틀렸다고 말한다.

사기사와 후미카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 말한다.

아카네 씨에게도, 같은 말이 떨어진다.

우리는, 사기사와 후미카와 히노 아카네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난, 자연스레 다시 생각해내 버렸다.

처음, 아카네 씨의 댄스를 봤던, 그 날을.

그저, 계속 발버둥쳐 나간다.

그 때의 아카네 씨도, 이런 기분이었던 걸까.





18

휴게실에서 쉬고 있었더니, 아카네 씨가 들어왔다.


아카네 「후미카 쨩도, 남아서 연습하다 가실 건가요!?」

후미카 「네. 아카네 씨도, 인가요?」

아카네 「물론입니다!」


튕겨나갈 것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카네 씨는, 언제든지 건강하다.
실제로, 그녀가 낙담하거나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후미카 「아카네 씨, 괜찮으세요?」

아카네 「괜찮고말고요!」


하지만, 그녀도 인간이다.


후미카 「…… 어떻게, 아카네 씨는 그렇게 기운차 보이시는 건가요」

아카네 「후미카 쨩에겐, 그래 보이는 건가요?」

후미카 「그래, 보인다니……?」


불안감이 험악하게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난 지금, 말해선 안 되는 걸 입에 담아 버린 건 아닐까.


카나데 「당신이 슬퍼할 수는 있는 거냐, 고 후미카는 묻고 있는 거에요」


그 때, 카나데 씨가 휴게실에 들어온다.
신랄한 말을, 지니고서.


아카네 「카나데 씨……!」

후미카 「ㅈ, 전, 그런 말을……」

카나데 「후미카」


말이 끊긴다.


카나데 「상냥하게 놀아 주기만 하는 걸, 상냥함이라고 부르진 않아」


그건 단순한 어리광에 불과하다고, 카나데 씨는 말한다.


카나데 「건강하고 밝은 점이, 당신의 장점이란 건 인정하지만」

카나데 「지금의 당신에게 요구되고 있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카나데 「무대 뒤에서도, 침울해 보이지 않는 건 훌륭하지만」

카나데 「그런 다부진 태도가, 지금의 당신에게, 우리에게도 장애물이 되고 있는 거야」

카나데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이돌인걸?」

카나데 「진심으로 톱 아이돌을 노리고 있는, 아이돌」

카나데 「그 마음을 짓밟는 것 같은 행동만은, 하지 말아 줘」


지금. 이 무대에, 히노 아카네는 필요하지 않다.
청순하고 은밀한 공주님이 요구되고 있다.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면, 마음 속에서부터, 무대 뒷편에서조차도.

그런 말을, 카나데 씨는 하고 싶었던 거겠지.


아카네 「…… 죄, 죄송합니다. 전, 집에 돌아가서 연습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아카네 씨는 달려나간다.

난 반사적으로, 아카네 씨를 뒤쫓으려 했지만,
카나데 씨가 날 불러세웠다.


카나데 「후미카」


혼자 둬야 한다고, 카나데 씨는 말했다.


카나데 「저 아이는, 지나치게 좋은 환경에서 자란 거야」


부러울 정도로, 라고 말하며 카나데 씨는 눈을 가늘게 뜬다.


카나데 「나도 저 정도로, 순진무구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순진무구?
그건, 어떨지.


후미카 「아카네 씨는…… 아카네 씨도, 분명, 이런저런 고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훗, 하고 카나데 씨는 웃었다.


카나데 「여전히, 후미카는 아카네에겐 관대하네」

후미카 「여전, 한가요?」

카나데 「…… 저 아이는, 정말, 누구에게서나 사랑받는구나」


카나데 씨는, 부러워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후미카 「드무네요」

카나데 「뭐가, 말일까?」

후미카 「아뇨, 그…… 정말 부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카나데 씨답지 않다고 할까……」


카나데 씨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카나데 「나도, 그렇게 요령 좋은 것만은 아닌걸? 어딘가에 응석부리고 싶어질 때도 있고,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도 있어. 그리고, 뭔가를 동경할 때도, 있어」

카나데 「너무 실망시키진 말아 줘, 후미카. 나보다 연상이잖아요?」


그랬네요, 라고 말해 버리면, 상처가 되려나, 하고 생각했다.
설령 농담처럼 말하고, 수습해 버릴 수 있다고 해도.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거다.


카나데 「저기, 알고 있어? 아카네랑 나, 동갑이야」

후미카 「알고 있어요」

카나데 「어머, 의외. 많이들 OL이라고 착각하는걸」

후미카 「방금 전에, 카나데 씨도 그 나잇대 고등학생이란 걸, 깨달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카나데 「그 말은 무슨 의미려나」

후미카 「죄송합니다. 깊은 의미는 없었어요」


뭐야 그거, 하며 카나데 씨는 웃었다.
후미카답지 않네, 하고도 말했다.


카나데 「후미카는, 의미 없는 말은 절대 안 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어요」

후미카 「옛날에는, 그랬었을지도 몰라요」

자신이 하는 말들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
네거티브한 말은 배제하고, 상대가 상처입지 않게, 상대 중심으로 대화를 주고받아 왔다.
그건 나쁘게 말하자면, 지나치게 과묵했던 것이리라.


후미카 「……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카나데 「그런 거야 아닌 거야」


아카네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대화 방식은 분명, 그녀와는 정반대일 거다.
이런 건, 아카네 씨에게 무례한 말인 걸까.


카나데 「지금, 또 아카네를 생각하고 있었죠」

후미카 「그렇지는……」

카나데 「내가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하고 있으려나. 거리감 이야기」

후미카 「…… 네」


우리 아이돌들은, 거리감이 가깝다고 좋기만 한 게 아니다.
우리는 같은 사무소 동료들이지만, 동시에 라이벌이기도 하단 걸…… 잊어선 안 된다.


카나데 「화제를 다시 되돌리자면, 상냥하게 같이 놀고 있어도, 그게 서로를 위한 건 아니라는 거야」

후미카 「카나데 씨는, 강하시네요」

카나데 「갑자기 왜?」

후미카 「전, 악역이 될 순 없어요. 설령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해도요……」

카나데 「적재적소야, 분명. 왜냐면, 당신에게 악역이 어울리진 않는걸」


카나데 씨는, 쿡쿡 웃는다.


카나데 「전하는 방법의 문제지. 별로 악역이 될 필요는 없고, 표현 방법도 얼마든지 있어요」

카나데 「그래도, 필요악이란 건 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후미카 「필요악, 인가요」

카나데 「네. 좋든 나쁘든 인간은, 악에 맞서면서 강해지는 거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라고 카나데 씨는 속삭였다.

그녀는, 많이 말하지는 않는다.
나보다 연하란 게 거짓말처럼, 어른스럽다.
그야말로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악에 맞서 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맞서야만 했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카나데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많이 돼요. 너무 상냥하니까」

카나데 「언젠간, 누군가의 악의에 삼켜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카나데 「우리 사무소는 몰라도, 아이돌의 세계는, 그렇게 반짝반짝 깨끗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여자아이는 무서운 거에요―― 카나데 씨는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카나데 「미안해요. 우리도 해야 할 일을 해야겠죠」


카나데 씨는 대본을 펼쳤다.


카나데 「당신도, 훌륭한 기사가 되어 줘야 하니까」

후미카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 날은 폐관 시간까지, 카나데 씨와 함께 연습했다.
용감한 기사가 되어, 그녀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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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는 늦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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