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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리의 라스베가스 동화 #11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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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4, 2017 18:26에 작성됨.

둘은 노아를 따라 복도 안쪽 깊이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듣기론, 당신이 일행과 떨어졌다던데요. 여기 라스베가스에서 금요일 밤에 공연을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장소는 모르고 있구요. 제 말이 맞나요?”

그들은 노아의 이름이 명패에 새겨져 있는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노아가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네, 그런 사정이에요.”

모두가 들어오자 노아가 말했다. “와, 그것 참 진퇴양난인데요.”

사무실 안쪽에서 노아는 둘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자기 책상 뒤에 앉았다.

“연락이 가능한 사람이 있나요? 사무원 분이나, 부모님처럼?”

 

있기야 있었지만 아버지께 연락을 하는 건 최후의 보루였다. “아니요. 연락처는 모두 핸드폰에 저장해 놓았는데, 그건 제 짐 안에 있고 친구들이 갖고 있어요. 제가 가진 건 지금 입은 옷하고 우사뿐이에요.” 이오리 입장에서는 이상하게도, 누구도 오늘 내내 그녀의 토끼 봉제인형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보통은 촬영이나 프로그램 진행하는 스태프들 한두 명이 그 인형이 뭐냐고 물어보곤 했었다. 아마도 라스베가스에서는 그런 질문까지는 안 하는 모양이었다.

 

“흠, 알겠어요. 그거 정말 문제네요. 여긴 사람들과 연락이 안 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곳이거든요. 연락이 안 된다는 건 손발이 묶인 것과 다를 게 없어요. 사람의 능력 중에 제일 중요한 게 의사소통이니까. 알고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요. 아는 사람 누구와도 얘기할 수 없다면, 아마 좀 힘들어질 거에요. 친구들을 찾는 걸 제가 도우려면 당신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이오리는 뭔가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종잡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노란색 주의 깃발을 들고 있는 것처럼, 어디선가 위험이 닥쳐올 것 같아서 긴장을 떨칠 수 없었다. 조던 쪽을 보니, 그는 그저 “얘기해 줘” 라는 듯 턱짓을 할 뿐이었다.

 

“음, 뭘 알고 싶으신데요?”

“일단 당신 그룹부터 시작해 보죠.”

“네. 그룹 이름은 류구코마치고, 멤버는…” 이오리는 동료 아이돌들과 리츠코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희는 765 프로덕션 소속이고-”“비행편은-”“라스베가스에 내렸을 때는요-”

“잠깐.” 조던이 말을 끊었다. “통역사 고용도 했어?”

“으, 응. 되게 꺼림칙한 사람이고,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야기 안 했었어?”

 

해병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본 이후로 쭉 무표정이던 조던은 마침내 생기를 찾은 듯했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턱을 괴고 있는 품이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오리는 점점 더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조던에 신경을 더 쓰기 전에 노아가 끼어들었다.

 

“계속해 주시겠어요?”

“아, 네. 그래서, 공항을 떠났을 때 저희가-”“그때 조던이-”“아침에 바네사를 만나서-”“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시작부터 끝까지 이오리의 이야기는 10분 좀 넘게 걸렸다. 그 동안 노아는 쭉 주의깊게 듣고 있었다. 말하면서도 이오리는 조던 쪽을 계속해서 힐끔힐끔 보았다. 조던은 생각을 끝마치고 다시 이오리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오리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노아 쪽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를 유심히 분석하는 모습이 마치 카드 게임에서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블러핑을 간파할 만한 단서를 끝없이 찾는 것처럼.

 

“대강 무슨 일인지 알 것 같네요.” 노아가 설명했다. “그러니 당신 회사 입장이 되어 보기 위해서 좀 더 설명을 듣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요. 아버지께서 당신 프로덕션 타카기 사장님께 제안을 하셨다고 말했었죠. 두 분 사이의 관계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말해 줘요.”

 

질문이 아닌 것 같았지만, 이오리는 단지 상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웬만하면 가족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면 아버지께서 하신 일들이 친구들을 찾는 실마리가 되어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류구코마치가 이 기회를 잡은 건 다른 쇼가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쪽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아버지께선-“

 

조던이 갑자가 기침을 했다. 소리가 닫힌 사무소에 크게 울려퍼지자 모두가 놀랐다. 그러고는 또 한 번 기침을 했다. 이제는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사실 기침보다는 질식하는 소리에 가까워 보였다. 이오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조던이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괜찮으세요?” 노아가 처음으로 조던을 신경쓰며 말했다.

“예, 미안합니다. 심장 문제에요, 부정맥. 갑자기 이러면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몇 분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에요. 그래도,” 그는 약간 부끄러운 듯 말을 이었다. “화장실까지 좀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혼자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이오리가 조던 옆으로 뛰어갔지만 그는 그저 손을 저었다.

“넌 그대로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내 몸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걱정 마요.” 노아가 말했다. “제가 같이 가죠.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보기보단 힘이 세답니다.”

 

조던은 그녀에게 예의바르게 감사를 표하고, 노아가 다가오자 그녀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이오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둘이 방을 나설 때 문을 열어 주는 것뿐이었다. 조던 정도로 덩치 큰 남자가 작은 노아의 어깨에 기댄다는 게 엄청나게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조던을 잘 지탱해 주었다. 하지만 둘의 속도는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고, 아마 화장실까지는 영겁의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이오리는 둘이 뭐라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조던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조던은 완벽한 건강의 표상이었는데, 이렇게 기운 없는 모습을 보니 그의 심장보다 자기 심장이 더 아파 오는 느낌이었다. 이오리는 사무실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왔다.

 

뭔가가 곧바로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조던이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그녀 옆의 의자 정중앙에 놓여 있는 물건이었다. 그건 조던의 핸드폰이었다. 방금 주머니에서 떨어진 것이었을까? 하지만 이오리는 조던이 핸드폰을 벨트에 달린 가죽 케이스에 넣고 다닌다는 것을 떠올렸다. 쉽게 떨어질 만한 건 아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오리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핸드폰에 버튼은 없었다. 큼지막한 유리 터치스크린이 기능을 대신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오리가 핸드폰을 만지자마자 빈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조던이 쓰고 있었던 문자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노아가 너 가지고 놀고 있음

 

이오리는 놀라 숨을 들이키고,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지 재빨리 주위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녀는 혼자였다. 방금 그 부정맥이 조던의 연기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녀를 위해 남긴 이 메시지는 분명 중요한 것이었다. 이걸 혼자 있을 때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했다.

 

이오리는 계속 글을 읽었다.

노아가 너 가지고 놀고 있음. 콘서트 위치도 알아. 원하는 게 있으니 말 안 해. 지금 설명 못함. 견적은 다 나왔어. 믿는다면, 조용히 빠져나와서, 내려와서 출납원 따라가. 아니면, 노아의 도움 받아, 값을 치르고.

 

두 여자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어떻게 이런 장문을 입력했을까? 하지만 조던이 충분히 했을 만한 일이었다. 문법과 단어는 엉망일 수도 있지만 메시지는 명백했다. 노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조던은 콘서트장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노아는 대가를 받고 정보를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 대가란 건 무엇일까? 조던은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런 문자메시지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꾸물거릴 시간은 없었다. 조던이 가 있는 사이에 노아가 돌아오면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무슨 위험에 맞닥트리게 될지, 이오리는 몰랐지만, 조던의 판단을 믿었고 그의 말대로 할 생각이었다.

 

방을 나서기 전에 보니 조던이 배낭을 두고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의심받지 않고 가지고 나올 좋은 구실을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찌됐던 간에 이오리는 그걸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문제는 배낭이 무겁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뭘 여기 넣고 다니는 거야! 이오리는 그게 얼마나 무거운지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 내밀었을 때 이오리의 눈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빨리 사무실 밖으로 나와 등 뒤로 문을 살며시 닫았다. 작은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바닥엔 카펫이 깔려 있었으니 발소리가 크게 울릴 일은 없었다. 이오리는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후타미 자매에게서 한두 가지는 배워 뒀었다. 장난을 정말 좋아하는 쌍둥이들이었고,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그 중 핵심이었다. 물론 몸짓은 과장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765 프로덕션 사람들 몇몇은 그들의 장난에 놀라 펄쩍 뛰곤 했다. 이오리는 그들의 장난이 먹혔을 때를 따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노아의 사무실은 작은 회의실들이 있는 긴 복도 끝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조용했지만 호텔에 예약이 많을 때도 조용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지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오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오리는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아의 사무실을 나가는 길은 외길이었다. 그건 둘이 곧 서로 마주칠 거란 뜻이었다. 이오리는 조던이 노아보고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 달라고 할 만큼 뻔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녀가 빠져나가는 동안 노아의 주의를 완전히 돌려 놓지는 못할 것이었다. 노아가 지나갈 동안 숨어 있을 만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러다 이오리에게 생각이 떠올랐다. 코끼리도 숨길 수 있을 만한 넓은 방, 무도회장이었다.

 

무도회장으로 가려면 한 번 방향을 틀어서 복도 하나만 따라가면 되었다. 이오리는 걸음을 빨리 했다. 노아가 곧 돌아올 게 뻔했다. 천천히 꾸준하게 가는 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 같아서, 이제는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하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있었고, 조금이지만 패닉에 빠져 있을지도 몰랐다. 이오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더 빨리 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무도회장까지는 별 일 없이 도착했지만, 곧바로 위기가 닥쳐왔다. 내일의 행사를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 명은 거대한 사다리를 들고 천장에 매달린 프로젝터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다른 두 명은 흰색 유니폼을 입고 방 왼편 멀리 있는 문가에 서 있었다. 아마 주방인 것 같았다. 이 방이 무지막지하게 크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오리가 들어서는 순간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오리는 이 사람들로부터 숨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 여자아이가 돌아다니는 걸 신경쓰기에는 너무 바쁜 것 같았지만, 어쨌든 주의를 덜 끄는 편이 좋았다.

 

갑자기 이오리의 귀에 하이힐의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노아에게 생각이 미친 이오리는 숨을 곳을 찾아 무도회장 안으로 뛰어갔다. 무도회장은 큰 방이었지만, 크고 빈 방이었다. 숨을 곳은 마땅히 없었다. 다만 벽에 기대 줄줄이 세워져 있는 접이식 의자들이 있었다. 한 2미터쯤 되는 의자들의 줄 사이에는 부자연스러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무도회장 조명 때문에 그렇게 된 게 분명했고, 숨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녀와 가방을 숨길 만큼 넓은 줄을 찾자마자 이오리는 몸을 낮추고 숨었다.

 

마침내 이오리는 다시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발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지만, 하이힐이 아니라 군화를 신고 복도를 가로질러도 무도회장까지는 소리가 닿지 않을 것이었다. 움직여도 좋을 때라는 걸 알기까지 얼마나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문제가 있나요?” 콧소리가 섞인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의심할 여지 없이 노아였다.

이오리는 입을 막고 나오는 비명을 삼켰다. 어둠 속에 숨어 있어도 보이는 것은 많았다. 시선 구석에서 노아가 사다리를 들고 있는 두 남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아, 예, 프로젝터 말인데, 좀 어두워 보이지 않습니까?”

이오리가 빛을 따라가자 붉은 바탕 위에 지구본, 닻, 그리고 새를 닮은 금색 엠블렘이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방 조명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칙칙해 보였다.

 

“그런 것 같네요.” 노아가 답했다. “이참에 다른 것도 확인해 봐요. 갈아 끼울 전구는 있지요?”

사다리를 막 놓으려던 남자들이 말했다. “네, 2개 있습니다.”

“그냥 둘 다 확인해 보는 편도 좋겠네요. 짐이 위에 있죠? 다른 그림 띄워 달라고 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남자가 허리춤에서 무전기를 꺼내 말했다. “짐, 선생님이 로고를 스크린에 띄워 달라고 하셔.”

잡음이 들리더니 알겠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오리는 그녀 정면의 벽에 다른 이미지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그녀는 이제 아예 바닥에 바짝 붙었다. 아까 전 이미지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있었을 때는 저편의 벽이어서 이오리가 완전히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젠 사람들이 주시하는 곳이 더 가까워졌고 누군가 뒤를 돌아보기라도 한다면 이오리가 곧장 보일 위치였다.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긴 했지만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으니까.

 

이오리는 노아가 자신의 앞 25미터 정도에서 걸어다니는 것을 놀 수 있었다. 이 나이 어린 전문가는 프로젝터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금방이라도 조던이 속여 온 것을 간파할 것 같았다. 긴장한 탓에 가슴에서 오한이 느껴졌고 이빨이 딱딱 부딪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이오리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좋아 보이네요.” 노아가 선언했다. “내일 쓰고 나서는 당분간 쓸 일이 없으니, 다음에 체크만 확실히 합시다!”

“알겠습니다. 짐, 프로젝터 꺼.”

 

노아는 이미지가 어두워지다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사다리 근처의 두 남자에게 눈길을 한 번 주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출구 쪽으로 향했다.

 

이제 이오리는 노아의 갈색 눈을 곧장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말은 노아의 시야에 그녀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다. 이오리는 마치 죽은 듯 움직이지 않으면서 노아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 노력했다. 노아의 시점에서 바닥에 널브러진 이상한 물체는 직접적으로 시선을 끌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구석에 있지도 않았다. 조던처럼 주의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곧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남자들이 노아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만큼 이오리는 노아도 그 정도 주의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아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기색이 전혀 없이 걷기만 했다. 이내 그녀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곧 방을 나갔다.

 

이오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림자 가장자리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좌우를 빼꼼히 살펴보았다. 주방에서 나온 듯한, 흰 유니폼을 입은 두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고, 나머지 둘은 사다리와 프로젝터 때문에 바빴다. 이오리는 일어나서 최대한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알아차리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노아는 이미 모퉁이를 돌아 자기 사무실 복도 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1~2분 정도면 손님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제 이오리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들어왔던 길을 따라 에스켈레이터로 향했다. 나가면서 비서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지만, 이오리가 워낙 빠르게 나가서 비서가 모를 것도 같았다.

 

카지노의 시끄러운 소음은 마치 찬바람이 휙 분 것처럼 느껴졌다. 이오리는 적지에서 벗어나서 쫓아올 수 없는 중립지에 다시 한 번 도착한 셈이었다. 잠깐 동안 벽에 기대서서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가 이 정도로 겁먹어서 떨렸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마주하는 것도 이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다 이 모든 노력이 정말 필요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사과하고 떠날 수도 있는 일 아니었나? 목숨이 당장 위험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오리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아주 과장되고 의미없었다. 하지만 스릴 있고 재미있기도 했다. 조던이 했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재미가 없으면 뭔가 잘못 하고 있는 거야. 이내 이오리는 허리가 아플 때까지 더 크게 웃었다.

 

 

읽으시는 분들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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