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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하라 니나의 총애법 - 0. 외로운 토끼와 비뚤어진 토끼

댓글: 5 / 조회: 1540 / 추천: 2



본문 - 04-16, 2017 02:34에 작성됨.

사랑받고 싶었던 토끼의 이야기.

전작 「시라기쿠 호타루의 행복이론」의 설정을 공유합니다.

 

0. 외로운 토끼와 비뚤어진 토끼

부모란, 신이다.

과장이 심하다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비아냥거리는 거냐 말하는 사람도 있을 터다.
허나, 이 소녀에게.
이 말은, 과장도 비아냥거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진실일 뿐.

당연히, 부모는 신이 아니다.
그러니, 설사 방치당하더라도 죽지 않는다.
세계가 멸망한다거나 할 리 없는 것이다.

그런 걸, 소녀는 알지 못한다.

신은 자신보다 상위에 위치한 존재이며, 기분 변화 하나로 자신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녀는 생각했다.
신에게 미움받지 않을 방법을.
그래서 소녀는 간절히 바란다.
신의 총애를 받기 위해.
그래서 소녀는 왜곡되어 간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깨우치지 못한 채.

그것은 신이 바라던 모습이 아닐 터인데.

아직 소녀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도, 신의 말씀에 따른다.
한여름의 찌는 날씨 아래, 어떤 빌딩의 입구에서.
동물옷을 입은 채로.
이치하라 니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더위 먹어서 머리가 맛이 갔나.
그런 걸로 치기로 했어.
왜 그러냐고? 생각해 보길 바라.
놓고 간 걸 가지러 가려고 여름 방학 중에 사무소에 왔더니, 나랑 똑같은 사이즈의 토끼가 있었다고.
이런 상황이 있을 리가 없잖아.
예상을 너무 뛰어넘어서 뒤돌아 버렸다구.

역시 니트에게 이런 날은 너무 과했던 거야.
손에 움켜쥔 인형으로 난잡히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심호흡을 한 번.
침착하게, 천천히 뒤를 돌아봤어.
그러니까 자, 그 이상한 환각도 사라졌ㅈ……

「…….」

「…….」

아니잖아. 위험하네. 눈이 맞았어.
엑, 왜 이쪽 보는 거야.
아니, 왜 사무소 앞에 혼자 서 있는 건데. 안 들어가는 거야?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무섭긴 할 텐데.

「토끼…….」

토끼가 갑자기 그렇게 말했어.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토끼에요. 틀림없답니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토끼는 내가 아니라 내가 들고 있던 걸 보고 있던 모양이야.

「……이거?」

시험 삼아 내밀어 보니, 토끼는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어.
인형 옷 입을 정도면, 좋아하는 거겠지, 토끼.

『…… 토끼 씨 토끼 씨, 당신은 왜 여기 있는 건가요?』

나보다 살짝 작은 키.
나는 소학교 4학년 평균 키 정도니까, 그 밑이겠지.
그리고, 인형옷을 입고 외출할 정도의 연령.
소학교 1~2학년이나, 어쩌면 유치원 다닐 나이…… 까진 너무 나갔나?
여튼간 그 정도로 어릴 거라고 판단하고, 인형을 내 머리맡으로
쫑긋쫑긋 귀를 흔들고, 말투를 바꿔서 물었어.
이러면 경계심은 다소 약해지겠지.

「엄마가 여기서 아이돌을 시켜달라고 하라고, 하셔서…….
그래서, 왔어요.」

아이돌을, 시켜 달라고?
그건 면접 보러 왔단 소린가.
하지만 그랬다면 진작에 실내로 들어왔겠지.
아니, 애초에.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이 정도로 어린 여자애가. 혼자서 사무소까지 왔을 리는 없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바빠서, 진작 일하러 간거에요…….
 니나밖에 안왔어요ー…….」

……이건. 설마.
불길한 예감 하나가 뇌리를 스쳐.
그건 내 경험과도 깊게 관련 있기 때문이기도 했어.
어쩌면, 이 아이는.

토끼 옆에 서서, 사무실 문고리에 손을 댔어.
……철컥, 하고 거절의 소리가 났어.
프로듀서가, 없다. 는 건.
사무소에 연락을 안 했다는 것.
이 쪽에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여기에 아이를 방치한 것 뿐이란 것.
한여름 땡볕 아래, 인형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거야?」

인형을 쓰는 것조차 잊은 채, 나는 토끼에게 물었어.
토끼는 살짝 놀라면서,「계속」이라고 대답했지.

「일단, 들어가자.」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어.
바로 에어컨을 켜고 토끼를 앉혔어.
후드 부분을 벗기고, 수건으로 땀을 닦았고.

「잠깐 기다려.」

컵에 보리차를 담아 얼음을 띄워 건네 줬어.
똑같은 걸 하나 더 만들어, 단번에 들이켰어.
그럼 이제, 어떡할까.
몇 초 동안 생각한 끝에, 일단 프로듀서에게 확인해 보기로 했어.




『…… 아니, 그런 연락은 없었는데.』

역시, 란 소리가 나오려는 걸 보리차와 함께 삼켰어.

「저기, 프로듀서. 그건…….」

『신분증. 은행 계좌. 그런 걸 갖고 있으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그런 말을 듣고, 다시 토끼에게 시선을 돌렸어.
낯선 장소가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클리어파일을 소중하게 양손으로 꼭 쥐고 있었어.

「그거, 잠깐 볼 수 있을까?」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토끼에게 물었어.
하지만.

「……건물 안에 있는 어른 외에는 보여주면 안 된다고 그런 거에요.」

라며, 다시 품 안에 꼭 안아 버렸어.
…… 이딴 짓을 하는 주제에 그런 건 제대로 교육했단 게 짜증나.

어른이라.
그 밝은 친구 정도로 크면 어른으로 보이려나.
아마 이 아이는 나를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 어른 아니면 못 보여준다는데.」

다시 수화기에 대고 한숨 섞인 보고를 했어.
직접 확인은 못 해봤지만, 저런 반응이면 100%지.

『그럼, 후타바의 생각대로겠지.』

긴 한숨을 쉬고, 그는 그렇게 대답했어.

「지금 올 수 있어? 어른.」

「그럴 수밖에 없겠네」라고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찾아왔어.
그가 토끼에게 말을 걸자, 토끼는 순순히 파일을 건넸지.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안에 든 종이 묶음을 꺼내 한 장씩 훑어봤어.
읽으면 읽을수록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물었고.

「우리 애를 써서 돈을 벌고 싶으니까 뒷일은 잘 부탁, 이라네.」

그 요약에는 그의 감정이 그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꽉 눌러 담겨 있었어.

「……집 주소는?」

「있을 것 같아?」

짜증을 숨기지 않는 차가운 대답.

「…… 저기,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니?」

사무소와 계약을 할 때 보통 기재하지 주소.
그게 적혀 있지 않단 건.

「모르겠슴다ー……
집에서 택시 타고 와서 쭉 뛰어왔으니까…….」

그녀가 돌아갈 따뜻한 집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의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게 패이고.
사무적인 부분이 많다곤 해도, 결코 짧지 않게 만난 사이니까.
무슨 기분인진 잘 알아.
어째서 이런 작은 애를.
어째서 이런 꼴로.
게다가, 하필이면.

어째서, 후타바 안즈가 이런 꼴을 봐야 하는 것인가.

그는 내 과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이 작은 토끼의 모습에 무얼 겹쳐보는지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그렇게 초조한 생각을 떠올려 버릴 정도로 저 사람이 착하다는 건, 이젠 잘 아니까.

「얘가 지낼 곳 말야, 당장 준비는 못 하겠지?」

그리고, 그러니까 더더욱.

「응. 그러니까 일단……」

내버려 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괜찮아. 우리 집에서.」

이대로 두고만 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괜찮겠어? 얘는, 」

어떻게 하든 겹쳐 보고 말아.
외롭고, 쓸쓸해서,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웃고.
누구라도 좋으니까 곁에 있어 주길 바랐어.

「응. 그러니까, 한번 겪어 본 안즈가 낫겠지.…… 왠지, 말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정신없이 대화하고.
그 얼마만큼 바랐는가.
그 얼마나 기쁠 것인가.

「……알겠어.」

분명 이 아이도, 그걸 바라고 있을 테니까.

「…… 토끼 씨네 집으로 가는 건가요?」

우리들의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불안한 듯 눈썹을 여덟팔 자(八)로 모은 토끼가, 내 옷자락을 살짝 붙잡았어.

「……응. 집으로 못 돌아가는 건 싫겠지만, 잠깐뿐이니까……,」

이 나잇대의 아이가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속에 혼자 남겨진 거야. 그건 분명, 엄청 무섭겠지.
그러니까 나는, 그 공포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밝은 말투로 말했어.
하지만 토끼는, 힘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

「집에 돌아가도, 암것도 없어요ー…….
 엄마는 바쁘고, 아빠도 해외에 일하러…….」

너무 만만하게 봤어.
이 아이에 대한 인식이, 너무 만만하게 봤어.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이 있어.
……어떤 일을 당할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있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부모님이니까.
그래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런 상태조차도 아니었던 거야.

「……그렇, 구나.」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집.
계속 혼자서.
혼자만이.
그렇다면, 집에 있고 싶지 않겠지.
돌아가고 싶을 리 없겠지.

집에 돌아갈 의미가 없겠지.

설사 낯선 곳이라 하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 있다면.
누군가가 있어 준다면.
그 편이, 훨씬 나아.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이 아이는.

「…… 토끼 씨.」

후드를 푹 눌러쓰고선, 토끼는 불쑥 말했어.

「토끼 씨네 집에 가면, 니나는 외롭지 않게 되는 검까?」

그것은, 저 나이의 소녀가 품기엔 너무나도 맞지 않는 불안.
자신의 집에선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으니.
우리 집에 가면, 그게 이루어질지도 몰라.

「…… 괜찮아.」

그래도, 기대하기 무서운거야.
왜냐면, 어머니조차 주지 않았는걸.
자신을 제일 사랑해야 할 어머니조차.

「바빠도 제대로 니나 곁에 있어주기로ー…… 꼭 약속하는 검다.」

그러니까.
기대하고, 그럼에도 얻지 못했을 때.
그 때 덮쳐오는 상실감.
그것을 맛보는 게, 무서운 거야.

「응.」

그것을 소녀는 알고 있다.
기대를 저버리는 아픔을.
이 어린 나이에, 알고 있는 거야.
기대하는 걸 두려워할 정도로.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해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한 발짝 남기고, 멈춰 버릴 정도로.

「약속…… 손가락 걸고 약속, 인 검다.」

얼마나 반복해 왔을까.
기대하고. 배신당하고. 상처받고. 그럼에도 다시 기대하고 만다.
그 순환을, 얼마만큼 경험해 온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분명 아주 조금밖에 없으리라.
그렇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면.
혼자가 아닌 것만으로 이 아이가 기뻐할 수 있다면.

「응, 약속.」

결코 떼어버리지 않도록.
내민 새끼손까락에, 손가락을 꼭 댔어.



「그럼 난, 이 구멍 숭숭 난 서류를 어떻게 해 볼 테니까.」

이야기가 통한 걸 감지한 프로듀서가, 분위기를 바꾸듯 그렇게 말했어.
이 계좌로 생활비가 입금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곤, 클리어파일을 팔랑팔랑 흔들며 컴퓨터를 향했지

「그럼, 돌아갔까.」

놓고 왔던 것도 찾았고.
한 손으로 종이봉투를 쥐고, 인형을 안아.
그리고 반대편 손으로 니나의 손을 잡고, 웃어 주자.

「…… 알겠단 겁니다.」

니나는 아직 불안한 표정.
그래도, 손을 꼭 잡았어.




「여보세요, 키라리? 지금 돌아갈게. 그리고, 식사 준비 부탁할게.……3인분.」
 

 

 

 

 

 

 

 



 

역자 후기 

 

작중 안즈의 독백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이 작품은 작가님의 전작 《후타바 안즈의 전일담 双葉杏の前日譚》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여기에서, 안즈는 어려서부터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천재였습니다.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열심히 하는 "착한 아이"였죠. 가사부터 시작해 모친이 하던 일을 하나둘씩 도맡아 하기 시작했는데,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안즈의 모친은 우울증을 앓게 됩니다. 결국 모친은 안즈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하나, 무위로 돌아가 모친만이 사망하고 안즈는 생존합니다. 그 충격으로 안즈는 자취를 시작하고, 아무것도 열심히 하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지요. 안즈의 키가 이상할 정도로 작은 이유도 모성박탈증후군Maternal deprivation 에 따른 성장장애로 설명.

 

그런 안즈가 옆집에 이사 온 키라링을 만나 치유된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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