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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결정적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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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9, 2017 12:02에 작성됨.

https://www.fanfiction.net/s/11348220/1/That-Defining-Moment - 원본 링크입니다

 

 

키사라기 치하야는 다른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노래를 불렀고, 하루하루가 보람찼다. 비록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요즘 치하야의 발걸음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 때마다 자기는 그러는 타입이 아니라고 되뇌이곤 했다. 치하야는 계속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밤이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하루하루 갈수록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왜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밤마다 마음 속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구멍 같은 게 느껴졌다. 날이 갈수록 빈틈은 점점 커졌고 그만큼 더 견딜 수 없었다. 보통 치하야는 피곤해서 그러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했다. 어쨌든 목표는 이루었으니까.

 

한 달에 한두 번 765 프로덕션의 다른 아이돌들을 보고 나면 마음 속 그 아픔도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하지만 치하야는 둘을 연결할 수 없었다. 아마미 하루카와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지 세 달이 지나기 전까지는. 성공가도를 달리며 바쁜 일에 시달리면서도 둘은 가끔씩 만나곤 했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스캔들과 이리저리 퍼져나가는 소문들 때문에 프로듀서가 적어도 밖에서 서로 만나는 것은 자제하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둘은 메일을 주고받거나, 밤에 전화를 하며 지냈다. 하지만 둘 모두 일에 지쳐가고 그런 연락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전화도 메일도 시들해져 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둘은 흔해빠진 약속을 했고 그건 지켜지지 않았다. 이제 시간이 지나 모두 18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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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솔로 라이브를 끝내고 돌아온 키사라기 치하야는 침실로 갈 힘도 없을 만큼 피곤했고, 집의 넓은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들 중 하나에 쓰러지듯 누웠다. 프로덕션에서는 모든 아이돌들보고 더 좋은 집에서 살라고 고집했다. 가족이 있는 아이돌들도 공인이 된 이상 이사를 가야 했다. 몇몇은 그래도 가족과 지냈지만 대부분은 혼자 살았다.

 

집의 시설과 가구는 치하야에게도 만족스러웠지만, 밤마다 느껴지는 아픔은 뭔가가 빠져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치하야는 자기 마음을 이해했고, 요 전날 밤에 잠들기 위해 몸을 뒤척이면서 문자를 한 통 보냈었다. 이성보다는 충동에 이끌려서. 그 이후로 개인용 휴대전화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무모한 행동이 그녀가 원하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게 두려웠다. 문자를 받은 사람은 틀림없이 바빠서 눈치채지도 못할 것이다. 답장은 당연히 못 보낼 것이다.

 

내용은 간단했다. '정말 보고 싶어.' 수신인은 갈색 머리와 초록색 눈, 그리고 가장 깊은 어둠도 몰아낼 미소를 가진 소녀였다. 그 미소는 외로운 치하야를 몇 번씩이나 구해 줬었다.

 

갑자기 들린 초인종 소리가 치하야를 놀래켰다. 하지만 마음 속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치하야는 천천히 일어서서 현관으로 향했다. 나가는 길에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렸다. 치하야는 현관문 렌즈구멍을 통해 문 밖을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누구길래 경비실에서 말도 없이 들여보내 준 거지?

 

문구멍 밖으로 보이는 것은 빨간 리본을 두른 갈색 머리의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었다. 왼팔에는 큼지막한 코트를 접어 걸치고 있었고, 오른팔은 초인종을 누르고 있어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 작은 틈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치하야는 소녀의 눈이 초록색인 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보아 온 눈이었으니까.

 

이제 치하야와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나무 문 하나와 갑자기 터져나온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치하야 자신뿐이었다.

 

초인종이 다시 울렸고, 문 밖의 소녀는 조바심을 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치하야는 빠르게, 기계적으로 빗장과 데드락과 문고리를 열었다. 그러고는 문을 밀어 열었고, 아마미 하루카가 실제로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로 하루카는 조금 자라 있었다. 키도 조금 컸고 몸매도 좋아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지금은 달라진 게 없었다. 치하야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먼 지난날의 기억 속 모습과 달라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소는, 그 미소만큼은 그대로였다. 치하야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어도 그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퍼져나오는 에너지도 마찬가지였다. 치하야가 애써 간직하고 있는 옛날 모습과 판박이였다.

 

하루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서 있었다. 치하야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도록. 마침내 치하야는 정신을 차리고 가장 친한 친구를 끌어안았다. 팔을 통해 느껴지는 몸의 감촉은 달랐지만, 그렇게 끌어안은 동안 나눠진 감정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아주 살짝 필사적인 느낌이 있었고, 치하야는 그게 자기 마음과 똑같음을 깨달았다.

치하야는 가득 치밀어오르는 눈물과 불안함을 애써 웃으며 떨쳐내고는 하루카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둘은 이내 떨어져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여태 네 집에 와 본 적이 없었네." 하루카가 말했다. 단순하지만 잘 만든 집안의 장식들을 괜찮다는 듯이 둘러보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자 치하야는 다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모순되지만 조화로운 감정이 그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순간이 지나가자 치하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흠... 그런 것 같네." 치하야는그렇게 대답하는 하루카를 거실에 있는 큰 소파로 안내했다. 치하야가 갑자기 쿡쿡 웃자 수많은 감정들이 하루카를 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하루카는 힘이 빠진 느낌을 받았다. "항상 널 찾아와서 영원히 같이 있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변명거리가 계속 생기더라구." 치하야를 바라보는 하루카의 미소가 깊어졌다.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려고 했는데 때마침 문자가 왔네."

 

그렇게 말하면서 하루카는 소파에 앉았고, 치하야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주저앉아서 하루카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고, 뺨에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느껴졌을 때에야 하루카가 짧은 치마에 롱삭스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처렸다. 치하야가 얼굴을 묻자 하루카는 약간 놀란 소리를 냈다. 곧 푸른 머리를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치하야의 마음 속 아픔은 그 손짓 한 번 한 번마다 적잖이 사라져 갔다.

 

놀랍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치하야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 않았다. 이렇게 감정이 충만한 적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묻고 있으면서 이 재회에 슬픔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숨쉬는 공기보다, 부르는 노래보다 치하야에게 더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오고 가는 와중에도 마음 속에 두려움이 아주 살짝 손을 뻗치는 게 느껴졌다.

 

하루카의 가벼운 손짓을 느끼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치하야는 이 친구를 아주 깊이, 강하게,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사랑했다. 두려움이 느껴진 건 하루카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이나마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랑이 일방적이라 해도, 고백 한 번에 그녀들의 우정이 깨지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좋은 답을 듣지 못한다 해도.

 

이런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 갔고, 치하야는 더 깊이 생각하기 전에,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기도 전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하루카, 사랑해." 그녀는 머리를 하루카의 무릎에서 뗐지만, 눈을 들어 그 숨막히는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마주보지는 않았다.

 

대답 대신 치하야의 머리카락에 묻혀 있던 하루카의 손이 귀를 따라 광대뼈를 내려와서, 잎술 옆을 살짝 어루만지고는 이내 턱을 받쳤다. 그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손이 치하야의 머리를 살짝 들어올렸고, 갈색과 초록색 눈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에메랄드빛 눈 아래에는 치하야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미소가 있었다. 그 미소짓는 입술에는 치하야의 얼굴을 빨갛게 하고 살갗을 얼얼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바보." 하루카의 대답이었다. "그 말 해 주기를, 참 오래 기다렸어." 마치 세이렌의 노래 같았다. 치하야는 그 노래를 향해 헤엄쳐 갔다. 구원이 있던 파멸이 있던 상관하지 않았다. 하루카의 미소와도 견줄 수 있을 만한 미소를 짓자, 치하야는 마음이 다시 새롭게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둘은 함께 소리내어 웃고는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서로 나눈 감정 때문에 아찔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둘이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치하야가 하루카 옆에 붙어 앉았을 때 둘 모두 손을 뻗어 웃다가 맺힌 눈물을 서로 닦아 주었을 정도였다. 둘은 그런 순진한 의도로 뻗었던 손들로,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의 얼굴을 잡고는 끌어당겨 깊이 입을 맞추었다.

 

치하야는 첫 키스 장면이 나오는 책도, 만화도, TV 프로도, 영화도 많이 봤었다. 그 신성한 이벤트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몇몇 사람들에게 직접 얘기를 듣기도 했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첫 키스는 뭔가 부드럽고, 불안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이 키스는 전혀 아니었다.

 

입술을 맞대자 모든 예상과 이성을 거부하는 갈망이 둘을 지배했다. 억눌렸던 감정들이 터져나왔고 서로의 얼굴을 만지던 손은 이내 다른 곳들로 떠나갔다. 입술이 열리고 서로의 혀가 얽히며 지금껏 느껴 보지 못했던 기분을 만끽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중요하지도 않았다. 뜨거운 열기가 지옥불처럼 쌓여 갔고 둘은 이내 떨어졌다. 아직 이런 뜨거운 마음을 달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치하야는 지금쯤 자기 눈이 엄청 동그래졌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첫 키스를 나눈 소녀의 눈보다 더 커졌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보통 차분하게 빛으로 가득 차 있던 에메랄드빛 눈은 눈물 때문인지 아른아른 빛나고 있었고,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깊은 시선이 예상치 못하게 치하야의 마음 깊숙한 곳의 감정들을 끌어올리자 (그게 싫지는 않았지만) 치하야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루카는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치하야의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치하야는 갑자기 여러 가지가 걱정되었지만, 걱정이 떠오르는 순간 욕망이 그걸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하루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서워서 그랬다기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준비하는 듯했다. 치하야는 하루카의 손을 잡고 침실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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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일지도 모르지만) 둘은 함께 누워 있었다. 휴식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둘 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기력이 충만한 느낌이었다. 하루카는 침대 옆 시계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옆에 누워 있던 소녀가 팔로 허리를 꽉 감았고, 하루카는 자기도 모르게 깔깔 웃었다.

 

"무슨 일이야?" 치하야가 속삭였다. 그 말과 함께 하루카의 귀 주변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시간 맞춰 출근하려면 한 시간 후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하루카가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음... 나도 곧 준비해야겠네." 머리를 하루카의 등에 비비며 치하야가 중얼거렸다.

 

하루카는 다시 깔깔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틀어 치하야에게 가볍게 키스를 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동안 조용히 누워 있었다. "생각해 봤는데, 치하야 오늘 일하러 가지 마." 하루카가 갑자기 말했다.
"진심이야?" 치하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생각이 싫지는 않았자만, 어쨌든 둘은 직업상 공인이었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별의별 소문과 예상이 퍼져나갈 것이다.

 

"나도 안 나갈 거야." 하루카가 진지하게 답했다. "물론 둘 다 같은 날에 출근을 안 하면 소문이 당연히 퍼지겠지." 그러더니 치하야의 맨 어깨에 키스를 했다. "몇몇 소문은 맞는 내용일 거구." 그러고는 깔깔 웃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단둘이 며칠 동안 휴가를 즐기고 우리 관계를 밝히는 거야." 하루카가 밝게 웃었다. "두 아이돌이 사귀는 사이인 거 우리가 처음인 것도 아니잖아. 우리 같은 경우엔 내가 바라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생각을 곱씹어 보자 치하야는 하루카의 아이디어가 좋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둘이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장기적으로는 곧 퍼지게 될 안 좋은 소문이 좀 줄어든다면 둘이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치하야는 설득당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랑 리츠코한테는 네가 말해." 그녀가 하루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하루카는 한숨을 쉬었다. "내 아이디어니까 내가 책임져야겠지." 그러고는 삐져서 혀를 쭉 내밀었다.

 

치하야는 그걸 재빨리 기회로 잡았고, 하루카는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필요한 전화를 할 수 있었다.

 

 

HARUCHIA IS TRUTH   그리고 의역충이 되어가는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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