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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린 「러브레터」

댓글: 5 / 조회: 1885 / 추천: 4



본문 - 02-13, 2017 14:52에 작성됨.

시부야 린 「러브레터」

 

 

 아이돌이 되기 전, 나는 러브레터를 받은 적이 있다.

 

『갑자기 이런 편지를 써서 죄송합니다. 이기적인 행동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것만은 전하고 싶었기에 쓰게 됐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귀어 달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그렇게만 쓰여져 있었다. 파란 줄무늬 봉투에 가로줄만 그어진 편지지.

 

 그것이 내가 처음 받은 러브레터.

 

 그것을 받았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어째서 이런 편지를 보낸 걸까.

 

 누구에게라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의 편지. 장난인가?

 

 하지만 어째서 이런 장난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만약 진심이라면'이라고 생각하니 버릴 수가 없어서 지금도 책상 서랍에 들어 있다.

 

 그 편지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이 쓰여져 있지 않았다.

 

 결국 그건 누가 보낸 거였을까.

 

 그건 지금도 모른다.

 

 그저 그 편지를 받았던 날.

 

 그날 하늘이 몹시 아름다웠던 것을 기억한다.

 


* * *

 


 아이돌이 되고 나는 팬레터를 받게 됐다.

 

 팬레터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벤트에서 있었던 일, 그 추억,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가 쓰여진 것도 있어서 그럴 때는 무심코 웃음이 나와 버렸다.

 

 아이돌 활동이 계속하는 동안 팬레터의 수도 늘었다.

 

 팬레터를 읽으면 힘이 났다. 기뻤다. 가슴이 벅찰 때도 있었다. 다양한 팬레터가 있었다.

 

 그 중에는 그저 『응원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을 뿐인 것도 있었다.

 

 그런 팬레터를 읽으면 나는─실례되는 생각이지만─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걸까. 다른 아이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덤으로 쓴 편지가 아닐까.

 

"그건 정말로 실례네."

 

 프로듀서가 웃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반론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팬레터랑 비교하면 분명 대충이니까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잖아.

 

 누구한테라도 쓸 수 있을 법한 정형구.

 

 그러니 어쩌면 정말로⋅⋅⋅⋅⋅⋅

 

"으음⋅⋅⋅⋅⋅⋅ 그럴지도 모르지만⋅⋅⋅⋅⋅⋅ 저기, 린은 러브레터 받아 본 적 있어?"

 

 러브레터?

 

"응. 요즘 시대에 러브레터를 받을 일을 거의 없겠지만."

 

 확실히 드문 일이겠지. 나도 그런 경험은 거의 없으니 그렇게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 때, 옛날에 받았던 편지가 생각났다.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편지. 그것을 러브레터라고 치면⋅⋅⋅⋅⋅⋅.

 

"장난? 기분 나쁜 걸 넣어 뒀다거나 보기로 했던 장소에 갔더니 아무도 없다거나 그런 건가?"

 

 그게 아니야. 그런데 프로듀서, 그랬던 경험 있어?

 

"⋅⋅⋅⋅⋅⋅노 코멘트."

 

 있구나⋅⋅⋅⋅⋅⋅. 프로듀서가 먼산을 바라본다.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ㄴ, 내 경험은 아무래도 좋아. 그래서, 그 편지를 어째서 장난이라고 생각했어?"

 

 보낸 사람 이름도 없었고 그저 『좋아해』라고밖에 쓰여져 있지 않았으니까. 상대가 내가 아니어도 똑같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이었고, 결국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채야.

 

 그렇게 대답하니 프로듀서는 "아ㅡ⋅⋅⋅."하고 기가 막힌 듯한 소리를 냈다. ⋅⋅⋅⋅⋅⋅그거, 무슨 의미야?

 

"아니, 뭐라고 해야 되나⋅⋅⋅⋅⋅⋅ 린, 러브레터 써 본 적, 없지?"

 

 나는 끄덕였다.

 

"그러면 만약 러브레터를 쓴다고 하면 어떻게 쓸래? 잠깐 생각해봐."

 

 러브레터를 쓴다면⋅⋅⋅⋅⋅⋅? 나는 생각했다.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지? 그런 거야."

 

 ⋅⋅⋅⋅⋅⋅무슨 말이야?

 

"러브레터를 쓰는 건 어렵단 말이지. 『좋아한다』는 감정을 전해본 적이 없으면 그 방법도 몰라. 어떤 단어를 써야 자신의 감정이 전해지는지 모르지. ⋅⋅⋅⋅⋅⋅어쩌면 그 편지를 쓴 애는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처음 쓴 러브레터일 수도. 아예 편지 자체를 처음 써본 걸지도 몰라. ⋅⋅⋅⋅⋅⋅그런 사람이 멋들어진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쓸 수 없다.

 

"그래서 그런 편지가 됐을 거야. 뭐, 나도 린의 학교 생활까지는 모르니까 정말로 장난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나는 러브레터라고 생각해. 서툴렀을지도 모르지만, 그 애 나름대로 진심을 담은 편지였을 거야."

 

 그런 걸까.

 

"아마도 말이지. 아무튼 팬레터의 이야기로 돌아가는데⋅⋅⋅⋅⋅⋅ 여기까지 말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지?"

 

 ⋅⋅⋅⋅⋅⋅대충 쓴 것 같아 보였던 팬레터도, 그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 나도 처음 팬레터를 썼을 땐 완전 엉망이었어. 나름 고민해서 쓴 편지였는데도 말야. 나도 편지 같은 걸 써 본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어떻게 써야 내 기분이 전해질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쓴 편지의 결과물이, 누구라도 쓸 수 있을 법한 흔한 내용의 팬레터가 돼버렸어."

 

 ⋅⋅⋅⋅⋅⋅.

 

"린, 너는 아까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건지 믿을 수 없다』고 했지."

 

 ⋅⋅⋅⋅⋅⋅응.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처음 써본 팬레터 따위, 원래 그런 거야. 스스로의 기분조차 정리하지 못해서 네게 그런 인상을 줘버린 거지. 하지만, 그 팬레터를 쓴 시점에서 린을 향한 마음은 진짜야. 일부러 팬레터를 써서 보내는 행위는,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 린. 팬레터는 팬의 마음 그 자체야. 어설픈 내용이어도, 그건 알아줘."

 

 ⋅⋅⋅⋅⋅⋅알았어.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니, 팬레터가 엄청 무겁게 느껴지네.

 

"실제로 무거우니까. ⋅⋅⋅⋅⋅⋅린이 그렇게 생각하고 소중히 다룬다면, 분명 그걸 보낸 사람도 보람이 있겠지."

 

 ⋅⋅⋅⋅⋅⋅프로듀서.

 

"왜? 린."

 

 고마워.

 

"별 말씀을."

 


* * *

 


 그날 밤.

 

 나는 팬레터를 읽고 있었다. 지금까지 받았던 팬레터. 그 전부를 다시 읽고 있었다.

 

 그 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서, 다 읽었을 쯤에는 창문에 새벽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팬레터를 이전보다 조심스레 상자에 넣고, 나는 커튼을 열어 창문 밖의 하늘을 봤다.

 

 그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워서──어떤 편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책상 서랍을 열고 바닥에 있는 편지를 꺼내어,

 

"⋅⋅⋅⋅⋅⋅아."

 

 읽고 있자니, 어째선지 눈물이 흘렀다.

 

 어째설까.

 

 어째서 눈물이 났을까.

 

 어째서, 나는 이 편지를 장난이라고 생각했을까.

 

 ⋅⋅⋅⋅⋅⋅어째서, 믿지 못했을까.

 

 편지지 위에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정중히 봉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서랍에 넣으려다, 문득 시야 한 구석의 팬레터를 넣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고민하고, 편지는 그대로 서랍에 넣었다.

 


* * *

 

 

 아이돌이 되기 전, 나는 러브레터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편지는, 지금도 서랍에 보관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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