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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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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0, 2017 08:33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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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8)에서 이어집니다.



 ○ ○ ○

가을도 완전히 깊어졌어.

요즘은 하루하루 갈 때마다 추워지고 있고.

적적한 바람이 마른 소리를 내며 내 발끝에 흩어 가.
그런 기분 좋을 정도로 서글픈 계절의 공기를 맛보며, 요시노와 둘이서 하굣길을 걷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어제 녹화해 뒀던 애니 다음 얘기를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시노가 「기말고사 공부가 우선이기에ー」 같은 인정미 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조금 욱해서 「알고 있다니까」 라고 답했고.

나오 「그래도 휴식시간에 잠깐 보는 거니까. 자, 괜찮지?」

요시노 「…… 잠깐만이라면ー」


 「벌써 겨울이네」 라 그랬더니 「데시테ー」 라는 말이 되돌아와.
대화가 통하질 않는 것 같지만, 왠지 안심돼.

문득 생각나 애니 얘기를 꺼냈더니 정색한 표정으로 지론(持論)을 꺼내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고 애니 얘기가 점점 에도 시대의 닌교조루리(人形浄瑠璃) 인형극 얘기가 되더니만, 헤이안 시대의 와카(和歌)랑 노(能) 얘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도 이젠 약속된 전개야.
평소대로라면 가볍게 넘기고 적당히 주제를 바꾸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얘기도 별로 안 하고 있으니까.

뭐, 가끔씩은 요시노의 긴 얘기도 들어 줄까나.

의외로, 지루하진 않고.



나오 「다녀왔어요」

요시노 「다녀왔기에ー」

 「오, 둘 다 어서 오렴」

나오 「어라? 오랫만이네, 나보다 먼저 오다니」

 「오늘은 빨리 왔어」

아빠는 반가운 듯 싱긋 웃었어.
 「이제 곧 저녁 먹을 때 됐네. 아, 그리고 요시노 짱한테 재밌는 선물도 있으니까 나중에 보여 줄게」

요시노 「호ー 그건 그건ー…… 마음 깊이 감사드리기에ー」

나오 「혹시 또 이상한 데다 돈 쓴 거 아니지?」

내가 움찔해서 째려보니까 아빠는 헤엄치는 동공으로 부엌으로 도망가 버렸어.

정말이지, 우리 집 가난하단 거 알고 있기는 한 건지.
원래 우리 부모님이 어린애들한테 사족을 못 쓰긴 했지만, 요시노를 귀여워하는 건 그 이상이야.


아빠한테 요시노의 정체를 밝힌 게 저번 주였던가.
라곤 해도 요시노는 요즘 자신의 영체를 제대로 콘트롤할 수 없게 됐어.
그리고 영체로 있는 거보다 실체화하고 있는 게 편하단 걸 깨닫고 나선, 되도록이면 집 안에서도 실체화된 상태로 있으려고 그러더라.

처음 아빠한테 요시노를 소개했을 때만 해도 근처 소학생이 놀러왔나 생각하셨던 모양이야.
그건 그것대로 이야기가 복잡해질 테니까, 나는 과감하게 신이랑 너구리족 이야기같은 걸 전부 털어놓았어.

아빠는 내 얘기를 금세 믿어버렸어.
오히려 혼자 엄청 들뜨더라고.
오컬트라던가 비현실적인 얘기 정말 좋아하니까, 이 사람은.

그렇게 더부살이하는 것 같은 게 됐는데, 아빠는 마치 가족이 늘어난 것처럼 신나하셨어.
세세한 부분을 전혀 신경 안 쓰는 아빠 성격이 이럴 땐 도움이 되네.



저녁을 먹고 나서 요시노에게 아빠가 어떤 물건을 선물했어.

요시노 「이것은ー……?」

 「저번에 출장 갔을 때, 괜찮은 골동품 가게를 찾아서. 그래서 이거, 요시노 짱한테 딱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건 큰 소라고둥이었어.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내 생각보다 자릿수가 두 자리 크더라고.
일단 앞으로 3개월 간 집안일을 전부 아빠가 부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어.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는 점에서는 나도 남말할 처지는 못 되지.

 「모처럼이니 요시노 짱, 한 번 불어 볼래, 응?」

전혀 반성 안 했잖아 이 인간.
내가 선빵을 날려야 하는 건가 생각하고 있던 참에, 요시노가 「스읍ー……」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게 보였어.。

요시노 「부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나오 「뭐 저리 소리가 커!?」

나는 황급히 요시노 소라고둥을 뺏었어.た。
한밤중에 무슨 짓이야ー!

 한편, 아빠는 폭소하고 있었어.……



나오 「………… 저기, 요시노」

요시노 「안 되기에ー」

나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요시노 「오늘 내로 영어 시험 범위를 끝내지 않으면 늦어버리기에ー」

나오 「으윽…… 하지만 말야, 솔직히 애니 다음 부분이 신경쓰여서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구. 30분만! 괜찮지?」

요시노 「흐음ー. 뭐, 때로는 휴식 또한 필요할지도 모르겠는지라ー」

나오 「!그럼……」

요시노 「그럼ー, 이 문제까지만 하고 휴식하도록 하지요ー」

요시노의 당근과 채찍에 홀린 듯 조련당한 나는 평소의 1.5배 스피드로 문제집을 풀어나갔어.
그리고, 앞으로 조금만 더 하고 쉬려던 참에, 뒤에서 통, 하고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어.

뒤돌아보니, 아까까지 요시노가 갖고 놀던 소라고둥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요시노 「…………」

요시노는 조금 놀란 듯, 자기 손바닥을 처다보고 있었어.

그리고, 나랑 눈이 마주쳤어.

요시노는 훗, 하고 힘 빠진 듯 미소지었어.
그 자애로운 표정이, 조금씩 방 풍경이랑 동화되어 가.


기한이 온 거야.


요시노 「나나가 마침내 달을 떠난 것 같사오니ー」

나오 「요시, 노……」  



요시노 「각오늘 하고 있었으나ー, 유감스럽게도 갑작스러운 것이기에ー」

나오 「………………」

요시노 「……어째서 그리 슬픈 얼굴을 하시는지ー」

나오 「따, 딱히 슬픈 표정같은 거…… 아, 안 지었어」

요시노 「제가 사라진 뒤에도ー, 꼭 시험범위를 마지막까지 끝내도록 하시길ー」

나오 「이 바보야! 마지막으로 하는 소리가 그거냐!?」

요시노 「하지만 제가 없으면 나오는 언제나ー……」

나오 「야! 이런 때까지 잔소리 안 해도 돼잖아!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요시노 「…………나오ー, 부디 울지 마시길ー, 환하게 웃어 주기를 원하는지라ー」

나오 「…… 안……훌쩍……울어……! 사, 사실 마침내 저주가 풀려서, 좋으니까……!」

요시노 「여전히ー, 솔직하지 못하기에ー」


요시노의 모습은 이제 거의 없어졌고,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있어.

하지만, 눈물 때문에 눈 앞이 뿌옇지만, 요시노가 따뜻한 미소를 내게 짓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어.



요시노 「나오에겐 이런저런 수고를 끼쳐드렸는지라ー. 이래봬도 저 또한 반성하고 있기에ー」

나오 「…………」

요시노 「먼 혈연관계가 있다고는 하나ー, 그대에겐 수많은 무리 난제를 떠맡기게 되었으니ー」

나오 「…………」

요시노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알고 있었음에도ー, 결국 간섭하고야 마는 일도 많았는지라ー. 훌륭한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ー, 제멋대로인 소망 때문에ー……」

나오 「…………」

요시노 「…… 대단히 면목없다고 생각하는지라ー」

나오 「그런, 거…… 아냐」

요시노 「…… 단 몇 개월간의 짧은 기간이었으나ー, 소란스레 즐거웠던 매일이었기에ー. 마치 가족처럼ー…… 나오와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ー, 진심으로 생각합니다ー」

나오 「읏…………」

요시노 「울지 마시길ー…… 이것은 이별이 아닌 것이니ー. 나나 또한 말했듯ー, 저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ー, 그저 왜곡되었던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뿐이오니ー」

나오 「응…… 」

요시노 「설사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ー, 저는 언제든지 그대의 곁에 있을 것인지라ー……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ー, 앞으로도 계속ー……」

나오 「…… 나도……! 나도, 요시노랑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요시노 「…………」  



나오 「……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고, 왜 내가 이런 꼴이 됐을까 생각했었어…… 그치만」

요시노 「…………」

나오 「영문을 모를 일만 잔뜩 일어났어도, 즐거웠어. 요시노 덕분에 여러 사람이랑 만났었고, 몰랐던 것도 잔뜩 알게 됐어. 아빠도, 카렌도,……」

요시노 「…………」

나오 「나, 힘낼게. 요시노가 없어도 훌륭한 인간이 될 거야. 그리고 좀 더 자신한테 정직하게 살 거야. 이제 내 마음을 속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요시노 「…………」

나오 「요시노. 고마워」



그걸 들은 요시노는, 마지막으로,

 「…… 마침내, 솔직해지셨는지라ー」

기쁘게 웃어 주었어.





 「――……저ー기,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ー?커피 타 왔어…… 응? 나오 혼자야? 요시노 짱은?」

나오 「요시노는……요시노는, 가 버렸어」

아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왜 그래 나오, 눈이 새빨개」

나오 「아, 아무것도 아냐」

 「……? 왜 저런대. 뭐 알겠어, 나중에 과자도 갖고 올 테니까 그 때까지 요시노 짱한테 제대로 공부 봐 달라 그래」

나오 「…………응」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어.
그리고 느닷없이, 어떤 결심을 세웠어.
두 사람 몫의 커피를 책상에 두고, 방을 나서려는 아빠를 불러세워서,

나오 「아빠, 할 얘기가 있어. 이번 방학에……」


――――――

――――

――





 ○ ○ ○

카렌 「…… 헤, 나오 어머니한테 말이지. 그래서, 잘 될 것 같아?」

나오 「음~, 어쩌려나. 전화로 듣는 한으로는 "만나는 것 정도라면" 정도 느낌이었어」

카렌 「우와, 힘들 것 같네」

나오 「차라리 내가 대신 전화할까 생각했었는데, 아빠도 고집이 워낙 세야 말이지」

카렌 「그랬구나…… 나, 나오 어머니는 잘 기억이 안 나」

나오 「별거 시작했던 것도 꽤 오래 전이니까 말야」

카렌 「……나오 부모님이 그렇게 된 거, 내 탓도 있으려나」

나오 「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카렌은 관계 없어」

카렌 「관계가 없진 않을 것 같은데. 나나 씨도 그랬잖아,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고. 게다가 조상으로부터의 인연이 원인이라면 가족도 관계가 없진……」

나오 「저기 말야. 설사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그런 옛날 일을 지금 와서 생각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잖아. 그거야말로 운명의 함정이라고」

카렌 「후후, 뭘 폼잡고 말하는 거야」

나오 「진지한 이야기야」


나랑 카렌은 학교에서 같이 돌아오고 있었어.

바람이 차가운 날이였어.

내가 코트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있으니 거기에 카렌 손이 스르르 들어와서 차가운 손가락을 슬쩍 잡았어.
 「나오 손, 따뜻해」 라고 신난 듯 말했고.
나는 일부로 시선을 피하면서 「카렌 손이 차가운 거겠지」 라 그랬어.

어느 새 카렌은 내 어깨에 딱 붙어서 걷고 있어.
그리고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둘만의 겨울길을 걸었어.



카렌 「그러고 보니까 아버지한테 요시노 님이 사라졌다고 말 했어?」

나오 「응. 엄청 쇼크받았었어」

카렌 「역시 나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웃길 정도로」

여전히 카렌은 우리 아빠 얘기만 나오면 저래.
좋은 웃음거리야.

나오 「아버지는 솔직히 상관 없는데, 사에가……」

카렌 「아직 질질 끌고 있는 거야?」

나오 「아마. 처음 울고불고 했을 때보단 나아졌지만……」


그건 요시노가 사라진 다음 날의 이야기야.

학교에서 사에가 통곡을 했어.
게다가 쉬는 시간 복도, 다른 학생들로 가득 찬 장소에서.
마치 내가 울린 것 같은 구도가 돼 버려서 무진장 초조했어.

역시 각오를 했어도 슬픈 건 슬픈 거라고.
슈코는 일단 자신의 정체에 대해 사에한테 다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 사에가 얼마나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어.
그러니까 슈코가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는 말을 들었어도 분명 반신반의했겠지.
……아니, 오히려 믿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을 거야.

슈코는 사라지기 직전, 사에한테 전화를 걸었대.
언제나 그렇듯 쾌활하게 인사한 뒤에, 사에가 무슨 농담인가 생각했더니 통화가 끊겨 버렸다고.

사에는 복잡한 장난이겠거니 하면서도 나한테 상담하러 왔었어.
그래도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을 거야.
믿고 싶지 않다는 자그마한 희망에 매달려,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새파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에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건 힘든 일이었어.

그리고 슈코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된 사에는 다른 사람 시선 같은 건 안중도 없이 펑펑 울고, 내가 열심히 위로해 줬었다는 거지.



나오 「그 후로도 가끔 사에네 집에 상태 보러 가는데 말야, 너무 기운이 없어 보여서…」

카렌 「나오는 착하네」

나오 「뜨,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카렌 「참견쟁이라고 할까. 뭐, 옛날부터 그런 구석 있었지」

나오 「……사에 건은 나도 책임감이 조금 있어서 그런 거야. 그것뿐야」

카렌 「나, 나오의 그런 점 좋아해」

그렇게 의미 있는 듯한 시선을 던지며 고백하는 카렌의, 새하얀 피부가 살풋이 붉게 달아오른 표정이 너무 예뻐서,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서 처다봤어.
그랬더니 카렌이 「얼굴 새빨개」 하고 쿡쿡 웃기 시작했어.
나는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움에 카렌이랑 잡고 있던 손을 꽉 잡았어.
그랬더니 카렌도 꽉 잡아서, 코트 주머니 안에서 꼼지락꼼지락 뜻 모를 공방이 시작돼 버렸고.

정말로 어린애같달까, 뭐랄까.
요시노가 있다면 어이없어 할 참이었어.


그런 주머니 속 전쟁은, 카렌의 「앗」 한 마디에 멈춰 버렸어.

카렌 「봐봐, 고양이 있어. 귀여워~」

길 끝에 얼룩고양이가 폴짝 뛰어나왔어.
우리 쪽을 돌아보고 잠깐 가만히 있다 싶었더니, 그대로 모르는 집 담장으로 달아나 버렸지 뭐야.

카렌이 「아~아, 도망가 버렸다」 하고 아쉽지도 않다는 듯 중얼거렸어.
그리고 약간 거리를 두고,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어.

카렌 「저기, 나오. 생일을 먹는 고양이 이야기, 기억나?」

나오 「기억 나」

카렌 「무슨 얘긴지 알아?」

나오 「글쎄,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랬더니 카렌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길가에 멈춰섰어.
주머니 속에서 잡고 있던 손가락을 풀었어.

카렌 「그 도시전설은, 사실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가 아냐. 옛날 어딘가에 두 소녀가 있었대……」  




…… 두 소녀는 매우 사이가 좋았고, 언제라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로 우정을 넘어서 점차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소녀는 비밀로 하고 있던 게 있었어요.

세상에나, 그 소녀의 정체는 「생일을 먹는 고양이」 였던 거에요.

영원한 삶을 사는 고양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나이를 먹어 가는 게 두려워졌지요.

이윽고 그걸 견디지 못한 고양이는, 어느 날 몰래 다른 소녀의 생일을 먹어 버렸어요.

생일을 잃어버린다는 건,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지요.

결국, 생일을 먹혀 버린 소녀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는 좀비가 되어 버렸어요.

고양이는 절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입혔다는 죄악감에 시달리며,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걸 후회했지요.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던 고양이는 어느 날, 소녀 좀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생일을 먹어 버렸습니다. 내겐 이제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습니다. 부디 이대로, 저를 죽여주세요」

고양이는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죽음을 빌었습니다.……


카렌 「…… 그 뒤에, 고양이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나오 「…………」  



카렌 「소녀 좀비는, 고양이의 정체를 알고도 따지거나 혼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이 나이를 먹지 않게 된 걸 기뻐했지요」

―― 이렇게 생일을 먹는 고양이와 소녀 좀비는 행복한 일생을 보냈다고.

카렌 「…… 저기, 나오」

카렌은 먼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불쑥 말했어.

카렌 「내가 나오를 불행하게 해도, 나오는 나를 용서해 줄 거야?」

나오 「…… 용서할 거야. 당연하잖아」

이건 내 본심이었어.
카렌은 힘 빠진 것처럼 웃으면서,

카렌 「정말, 우리들은 바보구나」


겨울 하늘 아래, 거센 바람 부는 길을 나란히 걸었어.
둘을 이어 주는 손바닥의 따뜻한 온도에, 마음이 녹아가는 듯이.



그 날, 나나 씨한테 진실을 들었던 때가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

우리는 달라졌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카렌은 이제 예전처럼 다른 사람 상관 안 하고 고립될 만한 일은 하지 않게 됐어.
반 애들이랑은 약간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불쾌하단 태도를 보이거나 하지도 않고, 표정도 훨씬 밝아졌어.

사치코나 사에랑도 친해졌고.
뭐 말하자면 카렌도 지금까지 계속 혼자였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같은 고독감을 맛보고 있었던 사치코나 사에랑 친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을까 싶어.
특히 사치코가 마음에 든 모양이라, 학교에서 만나면 즐겁게 대화하곤 하더라고.
카렌 왈 「놀리는 재미가 있잖아, 저런 애는」 이라던가.
원래부터 무서워하는 거 없던 카렌 입장에서는, 설사 상대가 이사장 외동딸이라고 해도 상관 없겠지.

덕분에 내 주변도 꽤 떠들썩해졌어.
카렌도 겨우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고 하니, 나도 기뻤어.
분명 나나 씨가 그랬던 「불행한 운명」 을 극복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왠지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이 있단 걸 깨달았어.
카렌이 나 이외의 누군가랑 즐겁게 대화하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꽉 조이는 것 같았어.

요시노는 그 감정이야말로 「질투」 라고 나한테 알려 줬었지.
그리고, 카렌이 지금까지 계속 그 질투에 시달려 왔단 것도.

그 때 처음으로 나는 나나 씨의 말뜻을 알게 됐어.
서로를 바라는 숙명이, 점차 서로를 상처입히게 된다…….

 나는 내 속에 싹트기 시작한 질투나 선망(羨望), 열등감이 조금씩 표면으로 나오는 걸 느꼈어.
그 정체 모를 체험은 내게 있어 공포였어.
카렌이 행복해지는 대신 내가 불행해질 것 같아 두려웠어.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런 갈 곳 없는 불안감을 없애 준 것도 카렌이었어.
예전에 내가 카렌을 도와줬던 것처럼, 이번에는 카렌이 나를 도와줄 차례였던 거야.



마치 악령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밝게 행동하게 된 카렌은, 그 적극적인 감정을 내게도 향하게 됐지.
그것도 거의 공공연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툭 하면 안아 주고, 손이 비었다 하면 연인 손잡기 한다 그러고, 그…… 키, 키스하려고 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

간단히 말하면 카렌은 「운명」 이라는 단어를 방패로 치고 들어온 거야.

언젠가 사랑 고백…… 이랄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지만, 뭐 그거 비스무리한 걸 했었어.
나도 아무리 그래도 당황했지만, 별로 싫은 감정은 없었어.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품어 왔던 부의 감점이 슥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어.

딱히 연인 사이가 되자던가, 사귀자던가 얘기한 건 아냐.

그냥, 서로가 진심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걸 확인했을 뿐.
그것만으로 충분했어.


어떤 의미로, 우리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운명에 휩쓸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서로에게 솔직해진 만큼 변한 미래도 있을 테라고,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겠지.


―― 저기, 요시노.

우리, 잘 하고 있는 걸까.

요시노가 없으니까, 가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어.

내 마음에 솔직해지는 것도, 역시 나한텐 힘들고.

카렌, 아빠랑 엄마, 사에, 슈코, 그리고 요시노까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어져서, 정답이 뭔지 모르겠어.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복잡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것도 있고,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 안 그렇기도 해.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고, 블록쌓기 놀이처럼 형태를 바꾸는 이 세계에서, 나는 언제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돼 버려.

그럴 때마다, 내 진짜 속마음을 집어내서 알려 주신 자그마한 신님이 새삼 그리워져서, 가슴이 따끔따끔 아파.


…… 하지만, 난 기억하고 있어.

내 곁에 요시노가 계속 있어 준다고 했던 거.

그러니까 이제, 슬퍼하지 않기로 했어.……



카렌이랑 나란히 걸어 돌아가는 길, 나는 문득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어.

아무도 없었지.

카렌 「왜 그래?」

나오 「…… 아니, 기분 탓이야. 아무것도 아냐」

카렌은 이상하단 듯 내 얼굴을 들여다봤어.

카렌 「저기, 이번에 말야. 사에 짱 잘 꼬셔서 어디 놀러 갈까? 괜찮은 기분전환이 될지도 몰라」

나오 「그러려나, 그것도 괜찮겠네」

카렌 「그럼 결정♪」

그러곤 카렌이 「어디 갈까?」  「뭐 하고 놀까?」 라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어.
마음은 이미 떠났나.

나오 「카렌」

카렌 「응? 왜?」

나오 「고마워」

그러니까 카렌 한 순간 멍하더니,

카렌 「…………푸훗」

나오 「왜!? 왜 웃는 거야!」

카렌 「하지만 나오, 완전 진지하게 갑자기 무슨 소리 하나 했더니……」

나오 「사, 상관 없잖아 감사인사 하는 거야」

카렌 「후훗, 나오도 뭔가 변했네. 그런 식으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다니」

나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구. 냅둬」

나는 부끄러워져서 걸음이 빨라졌어.
카렌이 쿡쿡 웃으면서, 신나게 내 뒤를 쫓아와.
금세 부끄럼 타는 이 성격을 극복하려면 하직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지금은 좌절하지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자.


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




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







 

이하의 내용은 ムギ茶御殿의 《「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원 네타 소개》게시글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전체 게시글을 열람하려면 원문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이나다 공주님께 혼날 테니까 (稲田姫様に叱られるから)/ 동방풍신록


반 년 정도 전, 이 곡을 듣고 있던 차에「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 (芳乃様に叱られるから)」라는 프레이즈가 감자기 떠올라서, 이 SS를 쓰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토리나 등장인물은 전부 이 제목에서 시작한 겁니다.
동방에서도 특히나 토착신적이고, 자연 신앙적인 색채가 짙은 동방풍신록의 분위기를 베이스로, 모바마스의 아이돌들이나 공식 네타를 스까서 설정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참고로 저는 일본 신화도 일본사도 완전 까막눈이어서 열심히 wikipedia를 뒤졌습니다.


The Sirens of Titan (정발명 "타이탄의 미녀") / 커트 보거네트 著(읽어보신 적 없는 분들께는 아래 스포일러 주의)

미국 소설가 터트 보거네트의 SF소설입니다.
마지막 부분, 나나 씨의 이야기부터 우사밍 별과 달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이 소설의 기믹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소설에서는 달이 아니라 타이탄이었지만…).
게다가 결말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트레이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참고로 SS 내의 나오는 SF 용어들에서,「시간 등곡률時間等曲率」「중력 나선重力螺旋」「파동현상으로서의 시공에 편재한다波動現象として時空間に遍在する」라는 아이디어는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설명된 단어입니다.


또, 그 이외의 나나 씨의 긴 대사에 있는 SF워드의 태반은 그레그 이건(Greg Egan)의 "祈りの海"에 실린 단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가장 많이 참고한 건 "백 광년 다이어리(The Hundred-Light-Year Diary, 한국 미출간)"였으려나.
아, 그리고 우사밍 별이 있는 은하 "M780은하"는 그거에요, 울트라맨의 M78성운을 적당히 꼰 겁니다.

(* 祈りの海 : 일본 하야카와 문고 SF에서 출간된 그레그 이건 단편집)


・이 우주가 가상 현실인 10가지 근거(この宇宙が仮想現実である10の根拠, 일본어)

이건 작품은 아니고 인터넷 포스트이지만, 마지막 부분에 나나 씨가 설명하는 "물리적 실재 세계"와 "양자적 실재 세계" 이야기는 여기서 착안했습니다.
사실 저가 이번 SS를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 중 하나가 "사람의 영혼의 실재성에 관해"였는데, 에피소드로 삽입할 여유가 없어서 단어만 뿅 하고 집어넣고 끝나 버렸습니다.
요약하자면 요시노 같은 신들의 세계야말로 세상의 진짜 모습이며, 나오 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상위 세계가 투영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걸 SS 내에서는 편의적으로 "양자적 실재 세계"와 "물리적 실재 세계"라고 구분지어 호칭했지만 (실재 세계가 2개 있다는 모순이 생기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한 건, 우리들 인간의 물리적 육체는 허구이지만, 그 의식하는 마음이나 영혼 같은 건 사실 양자적 실재 세계에 존재하며, 육체라는 창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SS 내 라스트 씬은 원래, 예를 들어 요시노를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나오의 혼은 여전히 양자적 실재 세계에 있기에 진정한 의미로 헤어진 것이 아니며, 요시노는 언제라도 나오를 보고 있다, 라는 결말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에「색즉시공」이라는 것이 있다는 모양이라, 그것도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를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해 봐야 가뜩이나 지저분한 이야기가 더 정리 불가능하게 되어 버릴 테니,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지금은 그래 놓고 이게 괜찮았던 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취비상~Lunatic / 동방영야초

 


SS 내의「영야전설」은 동방project08「동방영야초」에서 온 것입니다.
원래 게임에서는 카구야 공주가 달에서 돌아오는 느낌의 이야기고 별로 영원한 밤이 계속되는 건 아니지만요.
그 밖에도 마지막에 나나 씨가 달로 돌아가는 씬은 같은 게임의「달까지 닿아라, 불사의 연기(月まで届け、不死の煙)」라는 곡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마법소녀들의 백년제(魔法少女達の百年祭) / 동방홍마향

 


한편, SS에 아주 조금 언급됐던 백년제라는 단어는 여기서 가져왔으며, 그 이외에도 동방홍마향에서 "붉은 안개(홍무)"라는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종반의 나나 씨가 달로 돌아가는 씬의 그겁니다.


・유아하게 피어라 묵염의 벚꽃(幽雅に咲かせ墨染の桜) ~ Border of Life / 동방요요몽

 


SS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스미조메자쿠라(墨染桜)의 원 네타입니다.
솔직히 홍무도 그랬지만, 굳이 패러디할 필요도 없었죠. 뭐 모처럼 영야초까지 끌고 온 건 동방 3부작(홍마향, 요요몽, 영야초) 정도는 갖추고 싶다 생각해서였습니다.
원래 예정으론 스미조메자쿠라 밑에 나오코의 시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집어넣을 여유가 없어서 좌절.


・잊지 못할, 인연의 푸름(忘れがたき、よすがの緑) / 동방감주전

 

SS 내에서 요시노가 짧은 시를 읇는 씬이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의 문구는 여기서 따 온 것입니다.
「夏の夜に なほ偲ぶれば 面影の 忘れがたきは よすがの名月(여름 밤에 하릴없이 그리워하거든, 떠오르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인연의 명월)」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꽤 잘 쓰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설하자면「여름 밤, 오래 전 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그것은 밤 하늘에 뜬 밝은 달과도 같이 깃들어 잊지 못할 것이다」같은 느낌입니다.
즉「나호なほ=나오奈緒=나오코菜穂子」이며,「여름밤(요스가)よすが=미요리身寄り=요리타 요시노依田芳乃」같은 식으로 이어서…… 뭐 말 안 하면 모를 일이지만요.


・영원한 춘몽(永遠の春夢) / 동방감주전

 


이는 나나 씨가 달로 돌아가는 씬에서 꿈의 세계를 입구 삼아 달까지 돌아간다는 부분의 아이디어 모티브입니다.
이 부분은 거의 감주전의 메인 스토리랑 동일합니다.


・하트 캐치 프리큐어
작중에서 나오와 요시노가 같이 보는 여야용 애니는 하트프리다 생각하며 썼습니다.
원래 이 SS의 주제 중 하나가 "변하는 것"이어서, 테마가 "체인지하는 거에요"인 하트프리랑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뭐 별로 관련짓지는 못했네요.


・히라사와 유이「생일을 먹는 고양이 이야기라던가!」

ミカンヅ 씨가 과거에 작성하셨던 케이온 SS 중에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번 SS에 등장했던 밤고양이랑 낮고양이는 제 오리지널이지만, 고양이라는 모티브를 조금 원래 줄거리에 엮고 싶다 생각하던 차에 ミカンヅ 씨의 저 SS작품이 떠올라 좋은 기회니까 리스펙트 인용하자! 라고 엉뚱한 데서 번뜩 생각했습니다. "생일을 먹는 고양이 이야기"의 좋은 점은, 생일을 먹는, 생일을 사고 판다는 발상의 대단함과, 나이를 먹지 않는 2차원 캐릭터의 생일에 대한 메타포 표현의 유니크함, 그리고 유이아즈(히라사와 유이x나카노 아즈사)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금 애절한 듯한 스토리입니다.





역자 후기

마침내 이 작품의 번역도 끝이 났습니다. 전체 분량은 UTF-8 기준으로 대략 260KiB 정도네요.

단편치고는 분량이 상당했고, 설정이나 필력도 좋았던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솔직히 2016년에 번역한(물론 지금은 2016년이 아니지만) 작품 중에 제일 애착이 가는 SS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감히 평가하자면, 후반부의 전개가 확실히 조금 아쉬웠습니다. 배캅배캅한 마무리는 좋지만, 너무 많은 걸 한 작품에 집어넣으려고 한 느낌이랄까...
원작자분의 후기를 보면 내용 분량 문제로 상당수가 잘려나간 것 같은데, 분량을 한 1.6배 정도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야기를 모두 풀어놓았다면 아이마스 SS에 길이 남을 띵작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물론 그랬다면 제가 죽어나겠지만...

.... 그나저나 이거 작가님 번역허가 못 받았는데(SS속보에 올라온 판본을 기준으로 했는데, 아시다시피 SS속보는 익명제라서 원작자와 소통할 방법이 없습니다)... 알고보니 pixiv에도 올라가 있고 블로그에도 후기가 멀쩡하게 남아 있더라고요. 팔자에도 없는 사후 허가를 받으러 가야 하는 거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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