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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7)

댓글: 7 / 조회: 1223 / 추천: 0



본문 - 01-10, 2017 07:57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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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6)에서 이어집니다.





8월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어.

나는 지금, 도서관에 틀이박혀서 필사적으로 방학숙제 중이야.

요시노 「평소부터 차근차근 해 두면 어려움 없이 끝낼 수 있을 것을ー」

나오 「너 말이지~……잇, 지금 이게 누구 탓인데……!」

푸념을 해도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아.
어쨌든 너무나 다망했던 내 여름방학은, 마지막으로 숙제라는 이름의 최대 시련을 남긴 채로 끝나가고 있었어.


요 몇 주 동안, 생각하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지.

그 사에랑 슈코의 첫 데이트도 큰일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힘들었던 건 오봉[お盆] 때의 마을 일제 제령 미션이었어.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오봉마이리[お盆参り] 때문에 주변 묘지에 무카에비[迎え火]를 지피자마자 선조들의 영들이 줄줄히 저세상에서 온다구.
귀성길 같은 건 잽도 안 될 정도로 유령 폭탄이야.

처음 봤을 땐 정말로 허리 나가는 줄 알았다구. 태어난 걸 후회할 레벨로.
하지만 인간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요시노가 아무렇지도 않게 유령들과 대화하는 걸 보며 조금씩 공포심도 줄어들었어.
선조령이나 수호령은 내가 제대로 경의를 표하기만 하면 아무 짓도 안 하는데다, 이야기 나눠 보니까 또 괜찮거나, 재밌거나 다양했어.

나랑 요시노가 제령한 건 그런 타입의 영혼이 아니라구.
무주고혼이라던가, 이상하게 제사를 지낸 탓에 생긴 원령이라던가, 오봉을 틈타 저승에서 기어들어온 동물령같은 게 대상이었지.
제령 자체는 요시노의 슈퍼 카미 파워로 순식간에 끝나 버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엄청 수가 많아서, 나는 오봉 기간 동안 내내 마을 거리를 헤집고 다녔단 소리지.

참고로 나는 요 몇 년간 우리 성묘를 안 가고 있어.
아빠네 친가에는 애초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엄마가 나가고 나서부턴 외가와도 소원하니까.
그걸 요시노한테 말했더니 엄청 잔소리 들었어.

「조상의 영혼을 소홀히 하는 건 언어도단이기에ー」 라던가

그걸 조상님이 직접 말하면야 반박할 수가 없는데, 확 울컥해서 「난 아무것도 못하는데 어쩔 수 없잖아!」 라고 반발했더니 약간 싸웠다던지.

뭐, 그 뒤에 같이 신곡 CD 사러 가면서 화해했어.



오봉 제령의 공적은 뜻밖에 반향이 커서, 그 이후 마을의 정령이나 신령에게서 묘하게 부탁을 받기도 했어.
인간이나 동물이 나쁜 짓을 하니까 막아달라던가, 요런저런 자박령을 성불시켜 주라던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요시노가 강력한 신이라서 다행이였어.
하지만 덕분에 고생하는 내 몸도 좀 해 줬으면 해.
덕분에 카렌이랑 만날 때마다 「또 다 탔어?」 라면서 놀리더라.


그 외에는, 사에한테 연애상담 들어주는 일도 많았어.
뭐 연애상담이라곤 해도 반절 정도는 자랑이었던 같은 느낌이 들지만서도.
둘이서 여름축제 갔을 때의 사진을 본다던가, 슈코가 수제요리를 맛있게 먹어 줬다고 보고해도 말이지 뭐라고 답하기 곤란하다고.

슈코가 핸드폰이 없으니까 둘이서 같이 사러 갔다는 말도 들었지.
사에도 사에대로 문자같은 거 익숙하질 않아서 「Emoji같은 건 어떻게 입력하는 것인가요?」 라고 막 물어보고.

그리고, 어째 이야기를 듣자하니 슈코 얘, 자기가 신이라는 걸 숨길 생각도 없던 모양이라, 사에도 점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어.

「가끔 사라라져 버린다던가 어느 새 제 등 뒤에 있다던가, 길고양이랑 얘기하더니 바로 말 듣게 되고……」


나랑 요시노가 날 잡아서 슈코를 찾아가 따지니까, 이러는 거야.

슈코 「걔 말야, 뭘 하든 재밌는 반응이니까 나도 즐거워져 버려서 말야」

요시노 「놀리는 것도 과하면 언젠가 그 소녀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되오니ー」

슈코 「아니~, 그게 말야. 솔직히 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놀이상대로는 완전 재밌긴 한데, 애초에 인간이 나를 좋아한다는 게 묘하게 근질근질해서……」

그러는 슈코의 표정은 싫지는 않아 보였어.
사에한테 짜증낼까 봐 걱정했었는데, 뭔 생각인진 몰라도 슈코가 재밌다면야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겠어.

요시노 「인간스럽게 행동해 주면 좋을 터이니ー」

슈코 「에, 요시노가 그런 말을? 평소엔 신답게 굴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잖ー」

요시노 「이거랑 저건 다른 이야기이기에ー」

슈코 「……요시노, 왠지 성격 변하지 않았어?」

요시노 「어쨌든ー, 별로 반성하지 않는다면야ー, 호타루 님께 데려가는 일도 불사하겠으니ー」

슈코 「네이네이, 알겠슴다ー」

이쪽의 세력관계는 아무래도 요시노 쪽이 한 수 위인 듯 해.



그 외엔…… 그래, 요시노의 지인을 만나러 갔던 일도 몇 번 있었어.

가장 강렬했던 건 유사(遊佐) 신사에 모셔져 있는 신을 만나러 갔을 때려나.
수백 년 만에 현현했다고 영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모양이었는데다가, 요시노랑 오랜 아는 사이라고 해서 인사하러 갔었어.

코즈에 님이라고 불리는 그 신은, 요시노처럼 작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

코즈에 「후아…… 요시노ー…… 와 줬구나ー.……당신ー…… 인간……? 누구우……?」

요시노 「오랫만이신지라ー.이쪽은 카미야 나오라고 하기에ー, 연이 있어 저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사오니ー」

나오 「아, 저, 잘 부탁드려……」

코즈에 「…… 맛있어 보여ー…… 요시노랑 같은 냄새ー…… 뭐야 이거……?」

요시노가 나랑 요시노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동안, 코즈에 님은 여전히 졸려 보이는 공허한 눈으로 계속 나를 바라보고 계셨어.
난 왠지 오한이 멈추질 않았어.

요시노 「나오ー, 대단히 면목없으나ー, 잠시 동안 저 쪽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겠사오니ー」

나오 「뭐? 아, 응」

그 때 나는, 요시노가 단순히 코즈에 님이랑 둘이서 얘기하고 싶어서 나를 보내려는 줄 알았어.
하지만 실제론 그랬던 게 아니라, 요시노는 날 보호했던 거야.

요시노 「……그럼 코즈에 님ー, 저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ー」

코즈에 「벌써 가는 거야ー……? 코즈에… 외로워ー…」

요시노 「후에 다시 찾아뵙겠사오니ー」

코즈에 「응…… 기다릴게ー…… 후아……」

요시노가 꾸벅 인사하고 발길을 돌리자 코즈에 님도 환상처럼 사라져 버렸어.
귀여운 열굴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점에선 요시노랑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네.
느긋한 레벨로 말하자면 저쪽이 몇 배는 더 맥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말이지.

나오 「보기만 했는데 잠이 온다구…… 하암」

요시노 「말하는 것을 잊었습니다만ー, 코즈에 님을 뵐 때는ー, 그 후의 행동에 따라서는 최악의 경우 저주를 받을 수도 있사오니ー」

나오 「뭐?」

요시노 「혹시 모르오니 접신하고ー, 오늘 밤은 자시[子時]가 지난 뒤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ー」

이 유사 신사가 모시고 있는 건 유메미코타마(夢御魂神)라고 해서, 꿈과 잠을 주관하는 신이라고 요시노가 설명해 줬어.
하지만 성질적으로는 타타리가미[祟り神]에 가까워, 모시고 있다기보단 봉인되어 있다고 하는 게 옳다고 해.
기본적으로는 강력한 수호신으로서 신앙받고 있긴 하지만, 취급을 잘못했다간 혼을 빨아먹혀 버린다고 해.

요시노 「우리 또한 목숨 걸린 것이니ー」


…… 같은 느낌으로, 간 떨어지는 듯한 날도 있었어.



카렌이 퇴원해서 같이 놀 때도 늘어나서, 그런 읳미로도 바쁜 나날이었지.
같이 영화보러 가거나, 쇼핑하러 가거나, 게임하면서 놀거나…… 카렌이 졸라서 같이 바다에 놀러 간 적도 있었어.
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걔 고집 세니까 말 죽어도 안 듣고.

게다가 카렌 얘 말이지, 내가 혼자서 여름을 만끽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묘하게 대항심을 불태우는 거 있지.
나는 신들 뒤치닥거리 한 것 뿐인데, 카렌은 뭘 어떻게 해서든 나보다 여름방학을 질기겠다고 열심이였어.
덕분에 요시노 이상으로 카렌 뒤치닥거리 하는 나날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입원 중에 진작 숙제 끝내 놨으면 카렌한테 내 숙제 도와달라고 할 걸 그랬어.
이미 늦었지만.


요시노 「나오ー, 손이 멈췄기에ー」

나오 「알고 있어……」

현대 문학이랑 고전 한문, 그리고 일본사 숙제는 요시노가 도와줘서 간신히 끝냈어.
요시노는 이래뵈도 머리 좀 쓰니까.
사실, 꽤 똑똑해.

지금 나 수학 문제집 풀고 있는데, 어려운 문제 끙끙대고 있으니까 요시노가 옆에서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데, 그게 전부 정답이여서 놀랐다니까.

「어떻게 아는 거야?」 라고 물어보니까 「지금까지의 푸는 방법을 보면 알 수 있사오니ー」 래.

천재냐.

하지만 역시 영어랑 물리 화학은 요시노도 손을 못 썼어.
그건 내가 자력으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그런 느낌으로 낮에는 도서관 책상에 딱 달라붙고, 저녁엔 집 책상에 딱 달라붙은 끝에, 개학식 전날에야 숙제를 전부 끝냈어.

끝낸 순간엔 안도감보다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졌어.
눈 밑에 반달이 생길 정도로 기진맥진해서 축 뻗어 있자니, 요시노가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요시노 「요리타테노요시노카미의 어수(御手)로서 치하의 축복을 내리오니ー」 퐁퐁

나오 「……고마워」

나는 왠지, 언니가 있었으면 이런 느낌이려나 생각했어.
겉보기에는 나보다 어린데, 이상한 느낌.


결국, 요시노랑 결연의 저주는 풀리지 않은 채 순식간에 여름은 끝이 났어.

눈치채고 나니 벌써 가을 초입이였고.


――내일부터 2학기.

학교가 시작돼.





 ○ ○ ○

처음 시작하기 전엔 엄청 불안했던 요시노랑 하는 학교생활도, 익숙해지니 아무것도 아니였어.

이번 여름방학에 나도 요시노도 완전 서로의 세계에 익숙해져 버린 거려나.
완전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에야 요시노도 얌전히 수업을 들었고(뭐 처음엔 이것저것 막 물어보고 그랬었는데), 나도 사람들 앞에서 요시노한테 말을 건다던가 하진 않았어.
다른 학생들에 섞여서 요시노가 둥실둥실 이동한다던가, 갑자기 벽을 뚫고 나간다던가 하는 건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럽게 다시 놀라진 않았고.

예상 외의 메리트도 있었다니까.
수업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요시노한테 물어볼 수도 있고.
고전 한문이라면 무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선생님이 발표 시켜도 바로 대답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고마웠어.

나머지는 수수하지만, 분실물 찾기나 사람 찾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
봐봐, 선생님을 찾는데 교무실에 없을 때 말야?
그런 땐 요시노한테 물어보면 한방이야.

친구가 어디다 뭘 두고 오거나 하면 요시노가 바로 찾아 주고 하다 보니까, 점점 주위에서 나를 의존하게 되더라.
이런 때나 의존받는다는 것도 잘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이지만.
반에서는 당하는 캐릭터가 정착된 것 같아. 난 인정 못 하는데!

그에 대한 디메리트라고 하면, 가끔 내가 실수할 때 요시노가 시끄럽게 잔소리를 한다는 정도려나.
버릇이 나쁘다던가, 어른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던가, 수업을 제대로 들으라던가.
완전 교육 담당같은 말투라서 가끔 짜증날 때도 있지만, 무시하면 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들어.

그래도 솔직히, 요시노가 계속 옆에 있는 게 나쁜 것 같진 않았어.
기본적으로는 과묵하고(말이 길 때도 있긴 하지만), 상담도 해 주고, 의외로 걱정해 주기도 하고.
이야기 상대로도 괜찮고. 최소한 지루하진 않으니까.

카렌 「왠지 말야, 요즘 나오 즐거워 보이네」

나오 「그래?」

카렌 「다른 애들이랑도 친해진 것 같고. 그 전까지 그림자 캐릭터는 엊다 둔 거야」

나오 「그림자 캐릭터같은 거 아니거든ー. 예전에도 다른 애들이랑 친하게 지냈다고」

카렌 「나오 주제에」

나오 「너 말야, 그런 소리나 하니까 친구가 없는 거지」

카렌 「흥ー 이다」

퇴원하고 나서도 카렌은 여전히 반에서 고립되어 있었어.
쉬는 시간에는 언제나 음악 들으면서 만화 읽고 있는데다 태도도 별로 안 좋으니까 반쯤 불량 같은 취급이야.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텐 얘기도 안 하려고 하고.

요즘 내 고민거리는 요시노가 아니라 카렌이었어.
왠지 여름방학 끝나고부터 예전보다 더 타인을 거부하려는 느낌이 들어.

정말, 골치 아픈 애라니까.



그 외에 다른 점이라면, 어떤 인물이 내 얼굴을 기억했다는 것.

사치코 「아! 나오 씨ー!」

나오 「윽, 사치코」

사치코 「뭐에요 그 싫다는 것 같은 표정은. 변한 거 하나 없는 실례네요!」

나오 「아니, 고의는 아니고…… 나한테 무슨 일이야?」

사치코 「딱히 아무것도 없는데요?」

나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사치코 「후흥ー! 친구가 친구에게 인사한다는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만나면 언제나 대충 이런 느낌.
어느 새 친구라고 인정받아서, 사사건건 말 걸고 나서, 별 대화도 안 하고 멋대로 만족하고 가 버려.

사치코 왈, 「사에 씨의 친구라면 필연적으로 제 친구니까요! 영광이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라는 모양이야.
뭐라는 거야.

하지만 사에 말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바로 이해했어.
그냥 좀 자신 과잉인 것 뿐이지 악의같은 건 티끌만큼도 없다는 건 이야기해 보면 바로 아는 거고, 보통 저런 타입이랑은 달리 다른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도 아니고.
어쨌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비록 근거가 없더라도 자신만만하다는 느낌.
그런 점에선 우리 아빠랑 완전 똑같으니까, 순진무구한 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

사치코가 주위에서 어울리질 못하는 건 본인의 캐릭터라기보단 역시, 부모님의 입장이 큰 탓이겠지.

언젠가 사치코가 흔히 말하는 딸랑이들이랑 같이 다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어.
그 때 사치코의 재미없다는 듯한 표정은, 우리에 갇혀 몇 년을 보낸 동물 같은 눈을 하고 있었어.
그리고 멀리서 내 모습에 눈길이 멈추자 갑자기 기운차져서는, 내가 놀라니까 묘하게 기뻐 보이는 반응도 보였고.

그러니까, 사치코는 대등한 관계의 친구라는 존재에 목말라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나나 사에처럼 허물없이 접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설사 당하는 역을 맡는다 해도 그게 오히려 사치코에게 있어선 행복한 일이었던 거야.

뭐, 그 마음 때문에 만날 때마다 「제게 한 마디 안 하시나요?」 「자, 말해도 괜찮다구요」 「…… 아무 말도 안 하시려는 건가요?」 라고 계속 물어봐서 귀찮을 때도 많긴 한데 말야.
참고로 그럴 땐 「오늘도 사치코는 귀엽네」 라고 하면 「후흥ー, 당연하죠! 역시 나오 씨도 제가 세계에서 가장 귀엽다고 인정하는 거군요」 라는 대화로 흘러간다구.
농담이야 진담이야. 아마 진담이겠지.



학교에선 사에랑 대화하기도 했어.
지금에 와선 그냥 평범하게 친구로서 친해져서, 슈코 얘기 말고도 다른 얘기나 사치고 얘기에 열 오르기도 했어.
예의 사에 일진설은 여전한 것 같지만, 사에는 더 이상 그런 데 고민 안 하는 모양이야.
아마 슈코랑 잘 되서 그런 거겠지.
어쩌면 나라는 이름의 대화상대가 늘어난 것도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몰라.

사에는 바뀔 수 있었어.
더 이상 내가 뒤를 밀어 줄 필요조차 없이, 사에는 혼자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어.
그리고 아마 사치코나 슈코도 비슷하게 변해 갈 거야.
모두, 새로운 만남을 계기로 다른 자신을 자각하는 거지.


그럼, 나 자신은 어떤 느낌으로 변한 걸까?

요시노랑 처음 만난 그 날부터, 내 세계는 마치 풍선을 불듯 점점 커져가고 있었어.

영문도 모른 채 휩쓸려서 정신 차려 보니 친구가 늘었고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됐어.

거기에 사소한 데 겁먹는 것도 극복했고, 공부나 생활 태도도 조금씩 향상됐으니까…… 그런 차원에선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거 가지고 내가 한 걸음 내딛었다고 하기엔,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분명, 솔직해질 수 없는 것 뿐.

사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편단심인 걸 보고 부럽다고 생각했어.

요시노와 다양한 곳에 가서 신기한 체험을 하고, 그런 매일이 정말로 즐거웠어.

내 마음이 들키는 게 무서워서 본심을 숨기는 이 성격은 하나도 안 바뀌었어.


정신 차리고 보니, 요시노라면 분명 내 본심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

입에 담지 않는 생각이라도, 이 신이라면 모두 알아 주지 않을까.

나 요시노한테 엄청 의존하고 있었구나.

마치 엄마한테 어리광부리고 보호받는 어린 애들처럼.


나는 요시노가 넓혀 준 세계에 얹혀 있을 뿐, 나 자신의 성장을 바라지도 않는 그냥 애였던 거야.

그러니까, 그 풍선도 언젠가 터져 버릴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




 ○ ○ ○

요시노 「나오ー, 슬슬 시작할 시간인지라ー」

나오 「앗!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어느 일요일 아침.
밥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황급히 거실 TV를 켰어.
다행이다, 시작한 지 별로 안 됐어.

요시노 「아버지를 부르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ー?」

나오 「아ー…… 아빠는 녹화한 거 보면 되니까 상관없어」

요시노 「전에도 그랬다가 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나ー」

나오 「아니, 그래도 부모님이랑 같이 어린이 프로 보면 부끄럽잖아」

그러니까 본방사수를 원하면 빨리빨리 좀 일어나란 소리야.
그야 옛날엔 아빠랑 같이 아침 어린이 프로 보는 게 좋았던 때도 있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등학생씩 돼서 부모님이랑 같이 보기엔…… 아니, 고등학생씩 돼서 어린이 프로를 보는 게 부끄럽단 건 제쳐 두고.

나오 「이 오프닝 곡이 말야~, 의외로 가사가 멋져」

요시노 「호ー」

나오 「역시 베테랑 배우는 클라스가 다르다니까」

요시노 「그런지라ー」

나오 「……으아~! 여기서 끊다니…… 」

요시노는 내 감상에 응, 응, 하고 대답하면서 TV를 보고 있어.
그리고 엔딩, 화면 저편에서 히어로들이 춤추기 시작하니까, 요시노가 기다렸다는 듯이 거기 맞춰 춤추기 시작했다구.
겉보기에 맞는 천진난만함에 흐뭇해져.


이런 느낌으로 요시노랑은 꽤 오래 전부터 애니나 특촬 보면서, 솔직히 대화 상대로 애용 중이야.
지금까진 오타쿠 토크 할 만한 친구가 없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어쩌다 기뻐져서 이것저것 막 이야기해도 요시노는 싫은 표정 한 번 안 하고 진지하게 들어 준다구.

어떤 의미로 이상적인 오덕친구야.



요시노 「흐음ー…… 곤란한 사람을 발견한다면 도움을 준다는 소녀의 신조ー, 매우 훌륭한지라ー」

요시노 말은, 지금 보고 있는 여아용 애니 보고 하는 소리야.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요정을 도와준 걸 계기로 마법소녀가 된 소녀의 이야기.
마을 사람 모두를,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지키기 위해 악의 조직과 싸워, 때때로 괴로워하고 동료를 의지하며 성장해 나가는 왕도적인 스토리야.

요시노 「사람의 괴로움을 괴물로 바꾼다니ー, 적의 요술은 상당히 공포스러우니ー」

나오 「배틀 떠서 이긴 뒤에 해결 끗,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고민에 주인공이 제대로 맞부딪히는 게 이렇게, 꾹 하고 와닫지」

요시노 「그것이 결과이오니ー,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는 것ー, 그런 것인지라ー」

나오 「요, 요시노…… 뭘 좀 아네!」

이거야 이거.
이런 삘ー 나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구우.

사실 아빠도 이 애니 엄청 좋아해서 열심히 말해보거나 하는데, 결국 「이 캐릭터 졸귀야!」 소리밖에 안 하니까 재미 없어.

나오 「캐릭터가 귀여운 건 당연하지. 뭐니뭐니해도 여아용 애니의 대표작이니까. 하지만 이 작품엔 사실 더 깊은 테마가 있으니까……」

요시노 「호ー 호ー」

내 이 오타쿠 취미를 알고 있는 건 요시노를 빼면 아빠랑 카렌밖에 없어.
카렌은 가끔 이야기를 들어 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흥미 없어 하고, 아빠는 애니 얘기만 하면 다른 사람 얘기를 듣질 않아서 논외.

그렇다고 다른 친구한테 덕밍아웃할 정도의 용기가 없었으니까, 이제까지 외롭다 하면서도 혼자 봤어.
그러니까 요시노가 취미를 이해해 준 게 너무 기뻤고, 덕분에 요즘엔 그 전보다 애니에 취미를 붙이게 된 것 같아.



요시노 「~♪」

나오 「벌써 엔딩 댄스도 외웠구나. 꽤 어려운데」

요시노 「나오도 같이 하는 게 어떠한지ー♪」

나오 「나, 나는 괜찮아…… 그런 의미에서 요시노, 오늘은 나갈 곳이 있는데 말야」

요시노 「데시테ー?」

나오 「어제 봤던 심야 애니 있지? 그거 블루레이 발매 기념 이벤트가 오늘이거든」

그 장소가, 여기서 전철로 20분 정도 가면 있는 곳이였어
애니 모델이 된 무대라는 이유로 이런 지방 소도시에서 개최하게 됐다고 해.
촌동네 사람한텐 더 바랄 나위 없는 얘기지.

솔직히 BD 살 생각은 없지만, 그냥 보러 가는 정도라면 OK겠지.
성우도 온다고 했고.
하는 김에 애니숍에서 사고 싶었던 것도 사서 돌아갈까.



…… 그런 이유로 오후, 난 요시노를 데리고 대형 쇼핑몰까지 오게 된 거야.

나오 「우와, 사람 엄청 많네」

광장 특설 스테이지를 감싸듯 사람이 모여 있어.
천지사방에 오타쿠밖에 없…… 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커플도 드문드문 있고.
가족끼리 온 사람도 왔는데, 이럼 이벤트 참가자인 건지, 방해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가.

뭐, 시골 휴일이니까.
놀러 올 때는 거의 다 여기 오겠지.

그런 팬들의 열기에 압도되면서, 나는 인파에 묻혀 거의 보이질 않는 특설 스테이지를 멀리서 멍ー하니 바라봤어.
성우 얼굴 좀 보고 싶다ー, 정도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이벤트가 시작된 직후, 의외의 인물이 스테이지 위에 서 있는 걸 발견하고 무심코 「엑!?」 하고 소리질러 버렸어.

「네엣ー 모두들ー! 오늘 애니메이션『무진합체 치히로 ~드림 스테어웨이~』 이벤트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ー!」


토끼 귀를 쓴 사회자 언니가 밝은 목소리로 참가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어.

저 얼굴, 저 목소리, 저 토끼 귀…… 멀리서도 알 수 있었어.
마지막으로 봤던 건 꽤 오래 전이지만, 특징이 뚜렷해서 잘 기억났고.

요시노 「월견정의 점원이오니」

나오 「그치…… 뭐 하고 있는 걸까, 이런 데서」

그야 일하고 있는 거겠지, 하고 자기 자신한테 츳코미 걸어 버렸어.
내가 놀라고 있는 와중에도 토끼 귀 아가씨는 능숙하게 사회를 진행해 가며, 게스트 성우가 등장하고 나서도 토크며 진행이며 완벽하게 해냈고.

나오 「저 사람, 이런 일도 하고 있었구나…… 성우랑 같이 일한다니 부럽네에」

완전히 감탄하면서 지켜보고 있는 새 이벤트는 끝 부분에 접어들었고, 선물 추첨식이 시작됐어.
나는 상품 산 적 없으니까 추첨회 같은 건 볼 필요가 없지.
주위 사람들이 슬슬 빠지기 시작해서 나도 움직이려고 발길을 돌렸어.

그 때.

「그럼 마지막으로, 특별 참가상입니다ー앗! 음ー 그러니까, 성함이…… 카미야 나오! 카미야 나오 씨이ー! 축하드립니다아ー!」


나오 「네, 네엣!?」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길래 반사적으로 멋대로 답해 버렸어.
다른 손님들이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고.

놀라움과 부끄러움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어.



나는 처음엔 잘못 들었거나 그런 거겠지 싶었다?
아니면 동명이인이 우연히 뽑혔다던가.

그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에도 추첨식에서 계속 내 이름을 부르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일단 부른 곳으로 갔지.

「카미야 씨! 축하드려요오!」


나오 「저기, 저 대상 상품 산 적 없는데요……」

「괜찮아ー요오, 특별 참가상이니까요! 자, 받으세요!」


나오 「……저기, 잘 모르겠지만…… 그 뭐냐, 월견정에서 일하시던 분이시죠?」

「아ー앗, 눈치채셨네요! 나나라고 합니다, 꺄핫☆」


나나 씨였구나.
그나저나 기운 넘치네.

나나 「특별 참가상은 영상 특전 DVD니까, 돌아가시면 친구분들이랑 같이 봐 주세요♪」

나오 「가, 감사합니다」

나나 「맞아맞아, 소꿉친구랑 같이 보는 게 좋을 거에요. 꼭이에요!」

나오 「뭐어……?」

나나 「물론 요시노 짱도 같이……」

나오 「네?」

나나 「아ー 그게, 아, 아아아아아무것도ㅇ, 아무것도아니에욧! 여튼간 오늘 안에 DVD 보는 거에요, 나나랑 약속이에요! 브이」

엄청난 속사포로 이야기를 마치곤 「그럼 나나 뒷정리하러 가야 돼서 이만!」 하고 당황한 것처럼 안쪽으로 가 버렸어.
난 특전 DVD를 손에 든 채 그 자리에 멍하니 남겨졌어.
이벤트가 끝나고 사람들 모두 뿔뿔히 흩어졌어.

나오 「무슨 일이었던 거야 도대체……」

요시노 「저의 이름을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드오니ー」

나오 「…… 설마, 나나 씨도 요시노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려나」

요시노 「흠ー…… 그러한 기색은ー, 느끼지 못하였사오나ー……」

나는 석연찮은 기분으로 손에 든『드림 스테어웨이』 패키지를 바라봤어.
…… 뭐, 모처럼이니까 카렌도 불러서 같이 볼까.
찻집 점원이 이벤트 사회를 봤다는 것만 해도 이야깃감으론 충분하고.

 

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8)으로 이어집니다.

 



 

[お盆] 일본의 전통 명절. 음력 7월 15일 또는 양력 8월 15일에 지내는 것이 보통.[お盆参り] 오봉 날 조상에게 하는 제사의식.[迎え火] “맞이하는 불”이라는 뜻으로, 손님이나 영혼, 신 등을 맞이하는 것을 목적으로 피우는 불을 뜻함.[子時] 23시~1시까지의 시간.[祟り神] 아라미타마(荒御魂 - 신토의 신령의 난폭한 측면 또는 혼을 말함)로서 공포의 존재로 기피되나, 극진히 모실 경우 강력한 수호신으로 신앙될 수 있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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