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켜면, 쌉싸름한 향과 함께 어딘지 모를 달콤함이 느껴진다.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어디선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온다. 가만히 서 있노라면, 부드러우면서도 끊이지 않는 산들바람이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뜨고 한동안 바라보면, 조금씩 숲이 숨을 쉬는 것이 보인다.
시간이 흐르는 매 순간마다 같은 풍경이 두 번 반복되지 않는 곳. 완벽히 정지되어 보이나 실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곳. 한번 지나간 길을 다시 되짚어 오지 못하는 곳.
이곳은 영원한 끝의 숲- 나는 숲지기다.
아이돌의 시점에서, 고민거리를 제시해주시면 그걸로 진행해볼까요. 신비스럽고 때론 괴기하기도 하고, 혹은 두근거리기도 하는 그런 분위기로 진행하고 싶어요. 분위기에 맞는 고민거리라면 어떤 배경의 어떤 아이돌이든 괜찮을 것 같아요. 가령 예를 들면 판타지 세계의 연금술사 시키가 획기적인 연금술 공식을 알고 싶어 한다던가, SF세계의 현상금 사냥꾼 린이 절친이자 페어인 우즈키와 다퉈서 화해 방법을 찾고 싶다던가? 다섯 번째 댓글까지 중 골라서 진행할게요.
'운명' 이란 평소에는 잘 떠올릴 일이 없는 단어였다. 쓸데없이 무겁고, 지나치게 진지하며 혹은 부담스럽기도 한 것. 어떤 쪽으로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단어였고, 그것은 니노미야 아스카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아니, 거리가 멀다기보단 운명과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해야 할까.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 억압되지 않는 순수함과 숭고함을 제일의 미덕으로 삼는 그녀에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 이란, 싸워 무너뜨려야 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자아를 갖게 된 이후로 아스카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굽혀지거나 좌절당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최근. 그랬다. 최근에 그녀에게는 꽤나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불가항력적이고,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없으며,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심지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그런 고민.
"하-"
벤치에 앉아 있던 그녀는 왼쪽 손을 들어 노려보았다. 아스카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예쁜 나비 모양의 매듭으로 묶여진 붉은 실이 새끼손가락에 매여 있었다. 매듭은 한쪽 끝은 보기 좋은 비율로 늘어뜨려져 나풀거리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 끝은 기이하게도 허공으로 뻗어 있었다. 길게 늘어뜨려져 하늘을 향해 끝없이 이어져,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내 모퉁이를 돌아가거나, 건물 옥상을 넘어가거나, 혹은 눈부신 태양빛 속으로 숨어버려 도무지 그 끝을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언제, 누가 묶어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붉은 실은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태양은 이렇듯 따스한데, 너에겐 닿지 않는구나... 예의 그 '속박' 때문?"
"아, 타카미네 씨."
아스카의 볼에 홍조가 조금 올랐다. 완연한 봄이 되어 점점 더 옷 색깔이 화려해지는 인파들 속에서도 그녀, 타카미네 노아는 검은색 일색의 블라우스와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밋밋하게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감을 더욱 강렬하게 하고 있었다. 청은발의 머릿결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걸어오는 그녀의 시선은 아스카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머물러 있었다.
"그 '굴레'는 여전하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에요. 불편하거나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스르며 투쟁하고 맞서 싸우는 이에겐 그 자체로 고통이며 굴욕이지."
아스카의 얼굴에 그늘이 서렸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이 붉은 실은 어딘가에 걸린다거나, 혹은 길이가 정해져 있어서 그녀의 행동반경을 물리적으로 제약한다거나 하는 일 따윈 없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약했다. 하지만 눈에 보일 때마다 느껴지는 무력감과 굴욕감은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스카를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며칠 전 그녀의 정신적 우상인 타카미네 노아에게 고민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노아 또한 그 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아스카 이상으로 그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었다. 그러던 그녀가 '방법을 찾아 보겠다'고 한 것이 이틀 전. 그 동안 무엇인가 방법을 찾은 것인지, 노아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혹시, 뭔가 알아내신 거라도..."
1. 영혼의 갈증은 중요하지만, 때론 육체의 갈증을 채움으로써 해소되는 것도 있지. 차가운 것을 좀 마시면서 이야길 나누도록 할까.
2. 많이 다급했구나. 바로 이야길 하도록 할까.
노아가 아스카를 이끈 곳은 꽤나 특이한 카페였다. 도심 속에 정원이 딸린 카페는 굳이 찾자면 드물지 않게 찾을 순 있었지만, 건물 안에 정원이 있는 구조는 아스카에게 있어서 꽤나 특이한 체험이었다. 우물 정자로 지어진 건물 중앙에 나무를 심어두었다고 하면 표현이 맞을까. 그중에서도 그녀들은 나뭇가지가 길게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부드러운 눈매에 안경을 낀 웨이터가 말쑥한 차림으로 메뉴판을 들고 왔다. 하지만 노아는 그가 메뉴판을 내밀기도 전에 무심하게 아이스 티 두잔. 하고는 아스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엇을 마시고 싶은 지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요. 아이스 티로 충분해요."
싱긋- 하고 쿨한 미소를 지어보인 노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에 따라 아스카도 정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꽤나 특이한 정원이었다. 정원-이라기보단 작은 숲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였다. 꽃들과 나무들이 사람의 손에 의해 계획적으로 정돈되어 자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 마냥 무질서하면서도 그 모두가 절제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이 카페는, 원래부터 있던 저 작은 숲을 끼고 지었다고 해. 재미있지?.... 보통 인간은 자신의 터를 만들고 그 위에 인위적으로 자연을 입히길 좋아하는데 말이야."
"거스르지 않고 따라간다- 라. 저와는 조금 반대일지도요."
"....너는 흘러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이니까."
약간의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음료가 나왔다. 얼음이 달칵- 하고 소리를 냈다. 복숭아 맛이 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노아가 본론을 꺼냈다.
".....붉은 실에 대한 전승은 많고도 많아.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것이 눈에 보인다거나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데다, 현대에 와선 거의 전설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렇다면 역시 이건 제 환각일까요."
".....너는 투사. 싸우고 쟁취하는 자. 환각 따위가 너를 어찌할 순 없을 거라 난 확신해."
확고한 신념이 담긴 노아의 말에 아스카의 볼이 빨개졌다. 그녀의 우상은, 이렇게나 그녀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에 대한 만족감과 안도감이, 지난 몇달간 피곤해져 있던 그녀의 정신의 긴장을 조금 느슨하게 해 주었다.
".....네가 존재한다면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끊어낼 수 없고, 타인의 눈에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괴이, 혹은 불가사의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어. .....그러나 아쉽게도 내 지식의 영역은 거기까지 미치진 못해. 다만 그 부분에 있어서 도움을 줄 만한 존재를 소개해 줄 생각이야."
"도움을 줄 만한 존재- 라구요.?"
아스카의 반문에 노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스카의 얼굴에 약간의 호기심과, 불안감이 서렸다. '도움을 줄 만한 존재' 라는 말에서 어딘가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런 그녀의 내심을 읽은 듯 노아의 입가가 둥글게 휘어졌다.
"만나보면 알 거야. 너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런가요..."
아직 덜 마신 아이스 티가 남아있었지만, 타카미네 노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그녀를 따라 아스카도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노아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서 끝이 났다. 카페 내에서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다. 노아는 그 문을 열고 아스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타카미네 씨. 여기는..."
"네 마음 속 나침반을 보고 걸어가.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런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을거야."
반문을 달거나 거부할 수 없는 기이한 분위기에 이끌려 정원으로 한 걸음 내딛었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정원은 아무래도 사방 이십 미터가 조금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숲일 뿐이었다.
[타카미네 씨는, 요정을 소개시켜주려는 것일까?]
현실에 요정이 존재한다면, 이런 정원에도 있지 않을까. 의외로 조용하니 요정이 살기에도 좋은 것 같고. 끝도 없는 붉은 실이 손가락을 감고 있는 마당에, 요정이라고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스카의 발걸음에서 머뭇거림이 사라졌다. 거침없이 정원의 중앙,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간 그녀는 잠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봤을 땐 나무 몇 그루가 뭉쳐 있는 정도로 보였지만, 들어와서 보니 의외로 숲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컸다. 나무 사이로 보이던 카페 건물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깐.]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나무들 사이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아스카의 눈엔 분명히 정원 반대편의 건물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들 사이로 들어온 지금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건물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방금 그녀가 들어온 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보이는 수해 뿐. 지금 그녀는 완벽히 숲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지금 꿈 속의 길을 걷고 있나?]
그러던 그녀의 시야에 익숙한 것이 잡혔다. 붉은 실. 그 실의 끝은 숲 속 깊은 곳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늘상 하늘 높은 곳이나 산등성이 너머로 이어져 끝을 알 수 없었던 실이, 숲 속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자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는 가슴 속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불안감을 내리누르고 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신비한 느낌을 주는 숲이었다. 도시 한가운데, 카페 건물 중앙에 있는 사방 이십 미터짜리 정원 안에 이토록 커다란 숲이 있다는 것 부터가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미 상식을 벗어난 일을 경험한 아스카에겐 차라리 대수롭잖게 느껴졌다. 한참을 걷다 잠시 걸음을 멈춘 그녀는 숲을 느껴보려는 듯, 두 눈을 감은 채로 입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에서 침엽수 종류의 쌉싸름한 향과 함께 어딘지 모를 달콤함이 느껴졌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나뭇잎이 흔들리며 사각대는 소리가 마치 노래처럼 들려왔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자 어디선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 바람은 부드러우면서도 끊이지 않는 흐름으로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청량함에 눈을 뜨고 숲을 바라보자, 조금씩 숲이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아-"
연유를 알 수 없는 감동에 탄성을 내자,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매여진 붉은 실이 출렁 하고 흔들렸다. 마치 이쪽이야- 라고 하는 듯한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떠올린 그녀는 실을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오분, 십분? 숲 저편에 통나무로 지은 집이 한 채 있는 것이 아스카의 눈에 보였다. 덩쿨과 이끼로 뒤덮인 지붕 위로 솟은 굴뚝으로 조금씩 연기가 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연초록빛을 띄는 연기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이구나.]
목적지가 눈에 보이자 그녀의 발걸음이 좀더 빨라졌다. 보이는 것보다 집은 더 가까웠다. 붉은 실의 끝을 드디어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는 것을 느꼈지만, 그 긴장감은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어이없게 식어버렸다.
"하-?"
집을 향해 있다고 생각했던 붉은 실은, 그 집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앞을 지나 또다시 어딘가 허공으로 뻗어 있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걸 느낀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노아의 말이 떠올랐다.
'도움을 줄 만한 존재를 소개해 줄 생각이야'
그랬다. 분명히 노아는 붉은 실의 끝을 찾게 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도움을 줄 존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러면, 어쩌면 붉은 실이 이곳을 지나가는 것은 우연이 아닐 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의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 삐걱- 하고 나무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근원모를 쿨내음에 아스카의 숨이 턱 막혔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냐, 던가 하다못해 무슨 일이시냐고 묻는 게 보통 아니던가?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집 앞으로 다가가 문에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었다.
"들어와라."
노크를 하려던 손을 내린 아스카는 문에 달린 손잡이를 쳐다보았다. 문에다 손잡이를 달아놓았다, 는 느낌이 아니라 문에서 손잡이가 자라났다, 는 느낌이었다.
[나도 좀 아픈 편이긴 하지만, 이쪽은 정말 제대로(?) 아픈 느낌인데......]
문을 열자 길다란 복도가 보였다. 이 숲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집이었다. 밖에서 봤을 땐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긴 복도가 그녀 앞에 놓여있었다. 그 끝에는 방금 열고 들어온 문과 비슷하게 생긴 문이 있었다.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가니 나무 속을 걷는 듯한 냄새가 났다. 풀 냄새와 함께 나무의 속살에서 나는 듯한 향이 코 끝을 맴돌았다. 복도 끝에 다다라 문을 열자, 응접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왔다. 한쪽 구석에 있는 돌을 쌓아 만든 벽난로 안에서는 나뭇가지들이 조금씩 타고 있었고,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에는 서로 마주보도록 두개의 의자가, 그리고 그에 맞추어 두 개의 찻잔이 놓여져 있었다. 아스카가 열고 들어온 문이 아닌 다른 문이 열리며 방금 전의 남자가 들어왔다.
"앉아."
"아, 네."
일반적으로 자신이 깊이 인정하고 동경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경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문 데다, 상대가 먼저 하대를 하고 나오는 상황에서 아스카의 경어가 나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상대에게선 알 수 없는 기이한 위압감이 흘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추스르게 만들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그가 아스카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궁금한게 있나?"
"아, 저기, 당신은..."
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재미있지. 여기에 있던 것은 난데, 찾아오는 너희들은 항상 내게 누구냐고 묻는군. 보통 그건 내 쪽에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 죄송합니다. 저는..."
"그렇다고 굳이 소개가 필요하단 것은 아니다. 니노미야 아스카."
면전에서 문이 닫히는 것을 본 첫 대면부터 느낄 수 있었지만, 이 남자는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아스카는 잠깐 노아를 향해 전해지지 않을 푸념을 했다.
[타카미네 씨. 이 사람, 괜찮은 것 맞나요?]
"스스로는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넌 표정이 읽히는 편이라서. 일단 차나 들지? '저쪽'에 몇 모금도 마시지 못한 아이스 티를 그대로 두고 왔으니 목이 마를텐데."
그의 말에 아스카는 얌전히 찻잔을 들었다. 방금 말에서 확실히 느꼈다.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할 지는 몰라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차에서는 청량한 향과 함께 숲의 냄새가 났다. 영혼을 맑게 해주는 듯한 그런 향기. 그 시원함에 저절로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모금을 음미한 후 잔을 내려놓자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머릿결 밑으로 황금색의 눈동자가 번쩍이고 있었다. 컬러 렌즈라도 끼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정말로 희귀한 색이었다.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아침 여명의 햇살과도 같은 광채, 확실히 보고 있자니 눈 앞의 이 남자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저, 여쭤보고 싶은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곳에 오는 자들은 모두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오게 된다. 와야 할 이유가 없다면 아무리 헤메도 올 수 없지."
전혀 개연성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스카는 왠지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알 듯도 했다. 잠깐 고민하고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 곳은 영원한 끝의 숲. 이름의 의미에 대해선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숲에 살고 있는 숲지기이고. 나를 부를 명칭이 필요하다면 숲지기라 부르면 되겠군."
여유롭게 찻잔을 든 그가 가만히 잔을 흔들었다.
"말했듯이 이곳에 오는 자들은 모두 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오게 된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너 또한 그렇고. 그 왼손 새끼 손가락에 있는 붉은 실 때문에 온 것이지?"
"네, 맞아요. 저를 속박하고 있는 이 붉은 실을 끊어내고 싶어요. 하지만 이 실은 도무지 어떻게 해도 끊어낼 방법이 없어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아스카의 말에 숲지기는 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에게서 볼 수 있을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표정이었기에, 아스카 또한 덩달아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의 표정이 이내 풀리더니 조금 재미있다는 듯 숫제 입가에 미소까지 떠올랐다.
"끊어내고 싶다. 그러니 없애고 싶다- 는 이야기겠지."
"네."
"붉은 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운명을 상징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운명, 혹은 운명의 상대. 하지만, 전 운명 같은건 믿지 않아요."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신 거죠?"
"너는 카페의 한 가운데 있는 정원을 통해 이 곳으로 들어왔지. 나무 몇 그루가 다인 '그 곳' 말이야. 이미 시작부터 평범함을 좀 벗어났다고 생각되지 않나? 이제 와서 내가 어떻게 너의 이름을 아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잖아?"
하긴 그랬다. 이미 아스카의 머릿속에선 상대가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있었다. 요정, 정령, 혹은 신? 어쩌면 그는 이미 아스카가 안고있는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두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다급해졌다.
"겨우 붉은 실 따위로 운명이 왔다갔다 하겠냐고 하셨죠. 무슨 의미인가요?"
"너는 개척자.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고자 하지. 하지만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네가 이해하는 범주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운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진 않겠다. 그보단 너의 그 '실'이 의미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좀더 도움이 되겠지."
잠깐 말을 끊은 그는 다시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그를 따라 아스카도 찻잔을 들었다. 차는 조금 식어 있었지만, 따뜻할 때 보다도 오히려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이 강해지고 있었다.
"네가 속해 있는 세상에선 '붉은 실'을 흔히 운명이라고들 해석하더군. 아주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결과만을 본거야.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붉은 실은 '이정표'다. 보통 일반적이라면 그런 것이 매어질 일은 없지만, 드물게 그것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지. 그래, 너처럼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이들에게 종종 보이는 거다. 그 실은 네가 삶을 살면서 선택할 수 있는 어떠한 운명으로 인도하는 실이다. 그 것을 따라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너의 몫. 따라간 후에도 그 운명을 선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또한 너의 몫. 그리고 선택되지 않고 버려지는 운명에 대한 책임도 너희 몫이지. 이봐, 네 나이는 얼마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열네 살이고... 글세, 일단은 중학생- 이랄까요. 학교, 잘 안나가지만."
"어린 나이이고 한참 여기저기 들쑤셔볼 시기인데 이 '개척자'라는 녀석들은 쓸데없는 오기만 다분한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이봐, 난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붉은 실을 없애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없앤다면, 너는 절대 다시는 그 운명을 선택할 수 없어. 이 실을 끊음으로써 너는 그 운명을 '버린다'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니까. 근데 지금 너는 그 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나?"
숲지기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사로잡힌 것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였기에 그 실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까진 고민해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숲지기 씨는, 알고 있나요?"
"알고 있지만 여기서 가르쳐주면 네 쪽에서 재미가 없을걸."
어느 새 다 비운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그 실을 끊고 싶다는 너의 말에 대한 대답은 이렇게 되겠군.
네 쪽에서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다면 일단은 실을 따라가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아......."
끼익- 하고 처음 그녀가 들어왔던 문이 저절로 열렸다. 숲지기는 손을 들어 그 쪽을 가리켰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숲지기에게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나무들 뿐이었다.
[방금,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잠깐 어리둥절해진 그녀는 실이 있는 방향을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도 방금 전까지 있던 복도과, 그 끝에 있던 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녀 혼자만이 숲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어다. 꿈이었나 싶었지만, 숲지기가 해준 말은 너무나 선명하게 그녀의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이 쪽에서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다면 일단은 실을 따라가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마음 속의 결심이 선 듯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인 그녀는 붉은 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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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어떤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시장에 나갔다가 사신을 마주쳤다. 사신을 보고 새파랗게 질린 남자에게 사신이 말했다. '지금은 자네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사신의 말에 남자는 그 자리에서 부리나케 도망쳤다. 사신을 만났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남자는 짐을 싸들고 먼 길을 떠났다. 사신에게서 최대한 멀어질 작정이었다. 몇날 몇일을 걸어 도착한 먼 도시의 입구에서, 남자는 다시 한번 사신과 마주쳤다. 사신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여기서 자네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정확히 딱 맞춰 왔군. 이제 가세나'."
달칵- 하고 찻잔을 내려놓은 숲지기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운명을 믿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 이들. 개척자. 하지만 니노미야 아스카. 너는 '개척자의 운명' 인 것이다. 운명을 따르는 것은 운명. 운명에 거스르는 것 또한 운명. '운명'과 '인과'를 벗어날 순 없어. 다만 너를 위해 준비된 수많은 운명 중 네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지켜보도록 할까."
조금 걸어나오자, 숲이 끝나는 곳이 보였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녁 햇살을 받은 나무들 사이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카페 건물이었다. 맨 처음 정원으로 나올 때 열었던 문가에, 노아가 기대어 서 있었다. 그 옆 테이블엔 새로운 얼굴이 앉아 있었다. 아니, 새로운 얼굴이 아니라...
"생각보다, 일찍 나왔구나."
"여-! 아스카!"
"아, 리이나 씨."
"귀염성 없는 호칭은 여전한걸-"
하며, 아이스 티를 마시는 리이나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보인 아스카가 그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노아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선 채로였다.
"...마음 속에 던져진 혼돈에 대한 답은, 찾았니?"
"조금, 걸어가야 할 길이 생겼어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른다면 방황이지만,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그건 모험이니까. 잘 됐구나."
그런 말과 함께 노아의 얼굴이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것을 넘어 신비롭다는 느낌이었다.
요 근래 절친인 란코를 통해서 알게 된 타다 리이나는, 첫 만남부터 아스카에게 [로꾸한 필이 풍기는걸!] 하면서 음악을 해보라고 두어 번 제의를 해 오던 터였다. 아마 첫 만남 때 란코의 노래 연습을 도와주며 같이 노래부르던 것을 듣고 난 후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듯 했다. 그녀가 마음 속으로 흠모하는 타카미네 노아 또한 아이돌로써 대중 앞에 나서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니 아이돌 이라는 직업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하겠냐고 제의를 받고보니 그건 또 글세- 하고 있던 차였다.
"아아, 내가 프로듀서인 것은 아니지만, 너 같이 feel이 팍 꽂히는 애를 그냥 두기도 아깝고 말이야."
지금껏 '생각해볼게' 라거나, '아직, 너무 갑작스러워서 잘 모르겠네' 등의 대답만을 해 오던 아스카에게서 처음으로 긍정의 뜻이 나오자 물론 바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뜻밖인 듯 리이나의 눈이 커졌다. 그런 아스카의 태도 변화에 노아의 입가에 예의 미소가 떠올랐다.
"확실히, 길을 본 거구나. 저녁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건 이 일을 축하하기 위함인가."
"축복 속에서 첫 걸음을 뗀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죠.."
"나 또한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 전사를 축복하도록 하지."
"그건, 제게는 무엇보다 큰 영광이에요."
"아- 그러니까, 나는 프로듀서한테 연락하면 되는 거지?"
노아와 아스카가 둘만의 세계를 만들자 순식간에 소외되어 버린 리이나가 뒤통수에 식은땀을 매달고 말했다. 아스카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리이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리이나와 만나기로 한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왠지모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한 가슴 때문인지 새벽부터 일어나버린 아스카는 해가 하늘 한가운데 걸렸을 때 집을 나섰다. 만나기로 한 곳은 리이나가 일을 하고 있다는 프로덕션 건물 내에 있는 카페였다. 이미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타카미네 노아와 칸자키 란코에게서 몇 번 이야기를 들어 막연히 '큰 기획사' 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건물 앞에 와서 보니 회사의 규모가 아스카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아,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보통은 이런 부담감을 느끼게 되면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346 프로덕션의 정문 안쪽으로 이어진 붉은 실에 머물러 있었다. 어쩔 수 없나, 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쉰 아스카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때, 프로덕션 안에서 나오던 누군가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자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긴장이라고? 이 내가? 훗.]
"확실히, 이런 유리의 성채와도 같은 곳이라면 타카미네 씨 같은 분이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네."
"음, 나름 일류 프로덕션이라구? 이쪽이야. 가자."
리이나가 그녀를 이끈 곳은 본관 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였다. 자리에 앉자 분홍색 리본을 토끼 귀처럼 묶고 귀여운 메이드 차림을 한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다.
"좋은 날씨에요 리이나 씨! 같이 오신 분은 친구?"
"아아, 나나. 이쪽은 얼마 전 알게 된 니노미야 아스카야. 오늘 프로듀서를 만나러 왔어."
"반가워요, 니노미야 씨! 저는 우사밍 별에서 온 우사밍성인 아베 나나입니다 뿅⭐️"
"반가워. 난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다. 그런데 우사밍 별에서 왔다니.... 너도 좀 아파오는 쪽인가?"
"에? 나나는 아픈 곳이 딱히 없는걸요? 아, 굳이 말하자면 허리 쪽이 조금.....?"
"그거, 나이 든걸지도."
"네에-! 아닙니다아-!"
리이나가 옆에서 짓궃게 농을 걸자 단호하게 태클을 건 그녀는 이내 주문을 받고는 다시 종종걸음으로 카페 안쪽으로 사라졌다.
"귀여운 아이네."
"푸핫- 아스카, 나나가 몇살로 보여?"
"나와 비슷한 듯 한데."
리이나는 숫제 앉은 자리에서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가버렸다. 물론 나이에 비해 아스카가 조금 성숙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아베 나나는...
"사실 말이야, 나나의 나이는 스..."
"유언비어는 거기까지. 나나는 영원한 열여섯이랍니다 뿅⭐️"
"컥-"
어느 새 음료를 들고 소리없이 다가온 나나가 천기를 누설하려던 리이나에게 촙을 먹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리이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지만, 나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어온 음료를 아스카 앞에 놓았다.
아스카의 잔이 반쯤 비어지고, 불시의 습격에 당한 리이니가 슬슬 정신을 차릴 무렵, 아스카의 등 뒤쪽에서부터 테이블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시커먼 정장을 입은 험상궃은 인상의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적인가."
아스카는 자세를 고치며 공격에 대비했지만, 리이나의 반가운 인사에 금세 당황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아, 프로듀서! 온 거야?"
"네, 타다 씨."
리이나와 인사를 나눈 그-타케우치 프로듀서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두 손으로 아스카에게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아이돌 프로듀서를 하고 있는 타케우치입니다."
"아, 어... 반가워. 나는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다."
"니노미야 씨였군요. 반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프로듀서, 그만 서 있고 얼른 와서 앉아. 프로듀서 생각보다 키 커서 올려다보면 목 아프다구?"
자리를 안쪽으로 옮기며 손짓하는 리이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그는 아스카의 맞은편- 방금 리이나가 있던 자리에 앉았다.
"아이돌에 흥미를 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리이나의 머리 부근을 맴돌던 붉은 실이, 지금은 말을 꺼내는 프로듀서의 어깨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스카는 어쩐지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혼돈 속에서, 이정표를 따라왔다고 할까."
그녀의 얼굴을 보던 프로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옆에서 보고 있던 리이나가 조바심이 나는 듯 그의 소매를 붙잡으며 물었다.
"어때?"
"확실히, 좋은 미소입니다."
"역시! 그렇다면 바로 프로젝트에 들어오는 걸까?"
"글세요. 니노미야 씨의 확답이 듣고 싶습니다."
"확실히, 이정표는 이쪽이다만..."
붉은 실을 따라 무작정 오긴 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선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아이돌, 이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일이었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닌 노아 라던가, 음악을 좋아하는 리이나, 자기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실은 무대 체질인 란코가 아이돌 이라는 것엔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대상이 자신이 되면 이야기는 좀 달랐다.
막상 확답- 이라는 단어를 듣자 조금 망설이는 아스카의 기색을 눈치챈 프로듀서가 말을 꺼냈다.
"사실 누구나 진심으로 아이돌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데에는 어떤 계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이돌의 공연을 본 적은 있습니까?"
"음, 란코나 타카미네 씨가 연습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공연이라면 아직은."
"그렇다면, 제대로 된 콘서트를 한번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이돌의 콘서트?"
"예. 마침,
@여기서 조금, 고민이 되네요.... 이대로 무난하게 346 내의 멤버들을 등장시킬지, 창작글판에 연재중인 신데 애쉬와 교차를 시켜볼지...... 보아주시는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예 마침 신데렐라 프로젝트 2팀 유닛의 공연이 내일 예정되어 있습니다."
"내일 공연하는 미드나잇 랩은 말이야, 데뷔 때부터 굉장히 핫한 유닛이라구? 관람해 두면 후회하진 않을 거야."
사실, 아이돌 공연을 본다거나 하는 것은 아스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몇 안되는 친한 사람들 중 아이돌로써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 익숙하긴 했지만 단지 그뿐, 아이돌 문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그녀에게는 딱히 있지 않았다. 다만 그 타카미네 노아가 하는 일이라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정도. 그래서 그녀에겐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가자는 제의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 잠깐 망설이던 그녀의 머릿속에, 숲에서의 만남이 떠올랐다.
-이 쪽에서 끊을 수도, 자를 수도 없다면 일단은 그 실을 따라가라. 그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아, 그렇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그 여흥, 이 두 눈에 똑똑히 새길 수 있도록 하지."
"좋습니다. 내일 공연은 다섯 시에 시작하니, 세 시까지 프로덕션으로 와 주시면 거기서 공연장으로 단체로 이동하는 버스에 니노미야 씨의 자리를 마련해 두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를 표한다."
결국,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젠 무엇이 나올지 확인하는 것 뿐.
@신데 애쉬 쪽 글에 수정사항이 생겨 우선 이쪽을 챙기러 가봐야겠군요 ㅠ 아무래도 이쪽이 본업이라.... 오늘 밤늦게, 혹은 내일 다시 이어보겠습니다! 이제 얼마 안남았군요.
그렇게 또다시 하루가 지나갔다. 눈을 뜬 아침부터 묘한 예감이 가시질 않았다. 프로듀서를 만나기 전날 밤 두근거리던 것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근거림이었다면, 지금의 두근거림은 그것과는 또 달랐다.
[이건, 기대감.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지?]
아스카는 손가락에 매어진 붉은 실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여전히 프로덕션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다 시야에 손목에 매어진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집을 나선 그녀는 곧장 큰길로 나갔다. 토요일 낮의 도로는,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빈 택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빈 택시 하나를 잡아 탄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346 프로덕션으로 가 달라고 말했다.
차가 달리는 동안 아스카의 머리 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의문, 호기심, 불안감.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새끼손가락에 매어진 붉은 실 앞에선 단 하나의 감정으로 합쳐졌다. 그것은 바로 기대감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늘 자신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을 만날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던 사이, 택시는 어느 새 프로덕션의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요금을 지불하고 내리자, 마중을 나와있던 란코가 손을 흔들었다.
"내 영혼의 친우여! 오늘도 그대의 투지는 여전한가?!"
"안녕. 유리성의 공주.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해와 달이 완벽한 위치에 있는 바로 지금이도다! 나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가 보겠는가!"
"아, 부탁해."
란코를 따라 간 곳에는 대형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미 많은 인원들이 버스 안에 타고 있었고, 근처에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스카를 먼저 발견한 노아와 리이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란코와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자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멤버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오? 리이나! 그 애가 새 멤버인거냐?!"
"아, 이쪽은 미쿠. 종종 얘기했었지? 내가 속한 유닛 '아스테리스크'의 멤버야."
"반갑다냐! 나는 미쿠라고 한다냐! 미쿠냥이라고 불러주면 된다냐!"
"나는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 만나서 반가워."
멤버들이 눈에 익기 시작하자, 아스카는 내심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모두가 TV에서 한 번쯤 본 얼굴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버스에 탄 채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타카가키 카에데와 죠가사키 미카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아스카로써도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아이돌들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대형 기획사 안에 와 있다는 것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다들 모이셨군요. 이제 출발할까요."
어제 리이나와 함께 만났던 프로듀서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아스카는 고개를 슬쩍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프로듀서 쪽에서도 고개를 끄덕, 숙여 보였다. 버스에 올라 란코와 함께 좌석에 앉은 그녀의 눈에, 허공에 떠 있는 붉은 실이 보였다. 이제 그 실은 프로덕션 바깥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는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붉은 실이 향한 곳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스카에겐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이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공연장으로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단연 주변 제일의 관심사는 아스카였다. 새로운 멤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여자아이들에겐 가장 관심이 가고, 또 즐겁기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아스카를 놀라게 한 것은, 모두가 진심으로 아스카가 자신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때껏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녀에겐 생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느낌. 왠지 그녀는 아이돌이란 어떤 느낌인지 조금 이해할 것도 같았다.
여자아이들 특유의 끊이지 않는 수다가 이어지는 사이 버스가 공연장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큰 크기의 공연장이었다. 교외에 가설로 지어 놓은 스테이지는 백 명이 거뜬히 올라가도 될 만큼 넓었고, 야외에 준비된 좌석의 수는 얼추 보기에도 족히 수만 개는 되어 보였다. 공연 시간이 다 되어가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입장이 시작될 모양인지, 안내요원들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버스는 그 곳을 지나쳐 무대 뒤쪽으로 향했다. 이내 버스가 멈추고 프로듀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자는 사인을 보냈다. 버스에서 내리자, 거대한 스테이지의 뒷편이 보였다. 그 곳에는 수많은 스탭들이 각종 장비를 점검하며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스카의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얼굴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처럼 보이는 큼지막한 마스크-혹은 방독면을 쓰고 노이즈가 낀 기묘한 목소리로 이곳저곳을 날카롭게 체크하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가 이쪽을 돌아보다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치자 이쪽으로 다가왔다.
"방금 온 겁니까?."
"예. 다만, 인원에 변동이 조금."
"뭐, 1팀에서 몇명이 오든 내가 알 게 뭐랍니까. 굳이 말하는 이유는?"
타케우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아스카는 잠깐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강철 마스크의 인물이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다 아스카와 눈이 마주쳤다. 혼돈과 광기를 속에 감춘 늪지대 같은 초록색 눈과 마주한 순간, 아스카는 알 수 있었다.
[아,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니노미야 아스카 씨입니다. 아이돌로써 활동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견학 차 모셨습니다."
"어, 반갑습니다.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입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탐나는 인재를 꼬셔보기 위해 내 공연을 이용하시겠다? 이 선배, 갈수록 약았구만."
잔뜩 비꼬는 말투였지만, 어째선지 날이 선 적대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이 철가면의 남자와 타케우치 프로듀서가 대화하는 방식인 듯 했다. 그저 말없이 뒤통수를 긁던 타케우치 프로듀서가 아스카에게 그를 소개했다.
"소개드리지요, 이 쪽은..."
"만나서 반갑습니다. 니노미야 아스카 양.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2팀 프로듀서를 맡고 있습니다. 그냥 프로듀서라 불러주시면 되겠군요."
말을 잘라먹듯 치고 들어온 그는 소개를 마친 후 아스카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니, 쳐다보다 못해 숫제 허리를 숙이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채로 주변을 맴돌며 아래위로 훑어보기까지 했다. 대놓고 품평하는 듯한 모양새라, 난감한 기분이었다. 잠시간의 스캔(?)이 끝나자 2팀 프로듀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보쇼, 선배. 이 아가씨도 그놈의 '웃는 얼굴'을 보고 데려온 거요?"
"예. 훌륭한 미소였습니다."
"미치고 팔딱 뛰겠구만. 대체 그런 야리꾸리한 기준으로 어디서 인재를 이렇게도 긁어오시는지... 이쯤 되면 자석이라고 해도 믿겠어."
시간이 흐른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을 보는 아스카의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 '충격'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저렇게 노래할 수도 있고, 음악이라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멜로디와 박자가 흐름이 되어 아스카의 가슴 속에 밀려들어왔다. 무대 위에 선 자그마한 여자아이들의 노래와 몸짓 하나하나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아스카에게 있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원하는대로, 마음먹은 대로 흐름을 이끌어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겐 너무나 매력적인 일로 다가왔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건가?]
수많은 노래와 춤들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마녀 모자를 눌러 쓴 조그만 여자아이가 나와서 노래를 마쳤을 땐, 아스카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스스로도 모르고 있다가, 옆에 앉아있던 노아가 손수건을 내밀고서야 그녀는 자신의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건...."
"놀랍지? 천사가 노래를 부른다 해도 이만할 순 없을 거야."
"네, 정말로....."
조금씩, 가슴 속의 답답한 것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한 느낌 같기도, 오랜 시간을 방황하다 드디어 가야 할 길을 깨닫게 된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왔다.
"타카미네 씨."
"결심이 섰구나.."
"네. 저......"
공연의 마지막을 알리는 불꽃이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 위로 쏘아 올라져 찬란한 빛을 뿌렸다. 오늘 공연에 참가했던 모든 아이돌들이, 일제히 무대 위로 나와 다 함께 엔딩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스카는 단어 하나 하나에 진심을 담아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느 새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묶여 있던 붉은 실도 이미 사라져 있었다.
@처음 창댓이고, 주도적으로는 처음 써보는 글이라 우선 완결을 목표로 달리다 보니 사실 글이 좀 많이 어설프긴 하네요.... 올리고 나서야 여기저기 다듬을 내용들이 보이기 시작한데다가, 스토리를 처음부터 조금 탄탄하게 기획을 해서 보아주시는 분들께서 앵커링 하는 재미도 좀더 추가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거 다 쓰고보니 창작댓글 이라기보단 저혼자 마구 연재해버린 느낌........ 하지만 이미 'fin-' 을 찍은 글이므로,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걸로. 이 아쉬움을 잘 갈무리 해서, 혹시나 다음에 또 창댓을 하게 된다면 그땐 좀더 나은 기량을 발휘해 보도록 해야지요 ㅎㅎㅎㅎ 여담이지만, 신데 애쉬의 다음 에피소드인 캣시(Cait sith) 는 모레쯤 업로드 될듯 하네요 :) 신데 애쉬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매 순간마다 같은 풍경이 두 번 반복되지 않는 곳. 완벽히 정지되어 보이나 실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곳. 한번 지나간 길을 다시 되짚어 오지 못하는 곳.
이곳은 영원한 끝의 숲- 나는 숲지기다.
아이돌의 시점에서, 고민거리를 제시해주시면 그걸로 진행해볼까요. 신비스럽고 때론 괴기하기도 하고, 혹은 두근거리기도 하는 그런 분위기로 진행하고 싶어요. 분위기에 맞는 고민거리라면 어떤 배경의 어떤 아이돌이든 괜찮을 것 같아요. 가령 예를 들면 판타지 세계의 연금술사 시키가 획기적인 연금술 공식을 알고 싶어 한다던가, SF세계의 현상금 사냥꾼 린이 절친이자 페어인 우즈키와 다퉈서 화해 방법을 찾고 싶다던가? 다섯 번째 댓글까지 중 골라서 진행할게요.
"자르려 해도, 잡아 뜯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 실은 '운명'에 저항하려는 내게 있어 최고의 치욕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줘"
"하-"
벤치에 앉아 있던 그녀는 왼쪽 손을 들어 노려보았다. 아스카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예쁜 나비 모양의 매듭으로 묶여진 붉은 실이 새끼손가락에 매여 있었다. 매듭은 한쪽 끝은 보기 좋은 비율로 늘어뜨려져 나풀거리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 끝은 기이하게도 허공으로 뻗어 있었다. 길게 늘어뜨려져 하늘을 향해 끝없이 이어져,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내 모퉁이를 돌아가거나, 건물 옥상을 넘어가거나, 혹은 눈부신 태양빛 속으로 숨어버려 도무지 그 끝을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언제, 누가 묶어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붉은 실은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 벤치에 앉아 있는 아스카에게
1. 칸자키 란코
2. 타카미네 노아
가 다가왔다.
+2에서 결정
"아, 타카미네 씨."
아스카의 볼에 홍조가 조금 올랐다. 완연한 봄이 되어 점점 더 옷 색깔이 화려해지는 인파들 속에서도 그녀, 타카미네 노아는 검은색 일색의 블라우스와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밋밋하게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감을 더욱 강렬하게 하고 있었다. 청은발의 머릿결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걸어오는 그녀의 시선은 아스카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머물러 있었다.
"그 '굴레'는 여전하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에요. 불편하거나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스르며 투쟁하고 맞서 싸우는 이에겐 그 자체로 고통이며 굴욕이지."
아스카의 얼굴에 그늘이 서렸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이 붉은 실은 어딘가에 걸린다거나, 혹은 길이가 정해져 있어서 그녀의 행동반경을 물리적으로 제약한다거나 하는 일 따윈 없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약했다. 하지만 눈에 보일 때마다 느껴지는 무력감과 굴욕감은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스카를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며칠 전 그녀의 정신적 우상인 타카미네 노아에게 고민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노아 또한 그 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아스카 이상으로 그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었다. 그러던 그녀가 '방법을 찾아 보겠다'고 한 것이 이틀 전. 그 동안 무엇인가 방법을 찾은 것인지, 노아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혹시, 뭔가 알아내신 거라도..."
1. 영혼의 갈증은 중요하지만, 때론 육체의 갈증을 채움으로써 해소되는 것도 있지. 차가운 것을 좀 마시면서 이야길 나누도록 할까.
2. 많이 다급했구나. 바로 이야길 하도록 할까.
+1에서 결정.
1- 약간의 배경설명 추가.
2- 빠른 전개
"....무엇을 마시고 싶은 지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요. 아이스 티로 충분해요."
싱긋- 하고 쿨한 미소를 지어보인 노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에 따라 아스카도 정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꽤나 특이한 정원이었다. 정원-이라기보단 작은 숲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였다. 꽃들과 나무들이 사람의 손에 의해 계획적으로 정돈되어 자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 마냥 무질서하면서도 그 모두가 절제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이 카페는, 원래부터 있던 저 작은 숲을 끼고 지었다고 해. 재미있지?.... 보통 인간은 자신의 터를 만들고 그 위에 인위적으로 자연을 입히길 좋아하는데 말이야."
"거스르지 않고 따라간다- 라. 저와는 조금 반대일지도요."
"....너는 흘러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이니까."
약간의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음료가 나왔다. 얼음이 달칵- 하고 소리를 냈다. 복숭아 맛이 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노아가 본론을 꺼냈다.
".....붉은 실에 대한 전승은 많고도 많아.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것이 눈에 보인다거나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데다, 현대에 와선 거의 전설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렇다면 역시 이건 제 환각일까요."
".....너는 투사. 싸우고 쟁취하는 자. 환각 따위가 너를 어찌할 순 없을 거라 난 확신해."
확고한 신념이 담긴 노아의 말에 아스카의 볼이 빨개졌다. 그녀의 우상은, 이렇게나 그녀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에 대한 만족감과 안도감이, 지난 몇달간 피곤해져 있던 그녀의 정신의 긴장을 조금 느슨하게 해 주었다.
".....네가 존재한다면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끊어낼 수 없고, 타인의 눈에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괴이, 혹은 불가사의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어. .....그러나 아쉽게도 내 지식의 영역은 거기까지 미치진 못해. 다만 그 부분에 있어서 도움을 줄 만한 존재를 소개해 줄 생각이야."
"도움을 줄 만한 존재- 라구요.?"
아스카의 반문에 노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스카의 얼굴에 약간의 호기심과, 불안감이 서렸다. '도움을 줄 만한 존재' 라는 말에서 어딘가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런 그녀의 내심을 읽은 듯 노아의 입가가 둥글게 휘어졌다.
"만나보면 알 거야. 너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런가요..."
아직 덜 마신 아이스 티가 남아있었지만, 타카미네 노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그녀를 따라 아스카도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노아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서 끝이 났다. 카페 내에서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다. 노아는 그 문을 열고 아스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타카미네 씨. 여기는..."
"네 마음 속 나침반을 보고 걸어가.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런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을거야."
@여기서 한번 끊고 마저 쓸게요
[타카미네 씨는, 요정을 소개시켜주려는 것일까?]
현실에 요정이 존재한다면, 이런 정원에도 있지 않을까. 의외로 조용하니 요정이 살기에도 좋은 것 같고. 끝도 없는 붉은 실이 손가락을 감고 있는 마당에, 요정이라고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스카의 발걸음에서 머뭇거림이 사라졌다. 거침없이 정원의 중앙,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간 그녀는 잠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봤을 땐 나무 몇 그루가 뭉쳐 있는 정도로 보였지만, 들어와서 보니 의외로 숲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컸다. 나무 사이로 보이던 카페 건물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깐.]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나무들 사이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아스카의 눈엔 분명히 정원 반대편의 건물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들 사이로 들어온 지금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건물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방금 그녀가 들어온 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보이는 수해 뿐. 지금 그녀는 완벽히 숲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지금 꿈 속의 길을 걷고 있나?]
그러던 그녀의 시야에 익숙한 것이 잡혔다. 붉은 실. 그 실의 끝은 숲 속 깊은 곳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늘상 하늘 높은 곳이나 산등성이 너머로 이어져 끝을 알 수 없었던 실이, 숲 속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자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는 가슴 속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불안감을 내리누르고 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번 더 컷
"아-"
연유를 알 수 없는 감동에 탄성을 내자,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매여진 붉은 실이 출렁 하고 흔들렸다. 마치 이쪽이야- 라고 하는 듯한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떠올린 그녀는 실을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오분, 십분? 숲 저편에 통나무로 지은 집이 한 채 있는 것이 아스카의 눈에 보였다. 덩쿨과 이끼로 뒤덮인 지붕 위로 솟은 굴뚝으로 조금씩 연기가 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연초록빛을 띄는 연기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이구나.]
목적지가 눈에 보이자 그녀의 발걸음이 좀더 빨라졌다. 보이는 것보다 집은 더 가까웠다. 붉은 실의 끝을 드디어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는 것을 느꼈지만, 그 긴장감은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어이없게 식어버렸다.
"하-?"
집을 향해 있다고 생각했던 붉은 실은, 그 집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앞을 지나 또다시 어딘가 허공으로 뻗어 있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걸 느낀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노아의 말이 떠올랐다.
'도움을 줄 만한 존재를 소개해 줄 생각이야'
그랬다. 분명히 노아는 붉은 실의 끝을 찾게 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도움을 줄 존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러면, 어쩌면 붉은 실이 이곳을 지나가는 것은 우연이 아닐 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의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 삐걱- 하고 나무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1~50 백발에 보라색 눈의 남자
51~100 흑발에 황금빛 눈의 남자
와 아스카의 눈이 마주쳤다.
+2
1~50 반말투
51~100 경어 사용
1. 친절하고 상냥함
2. 쿨하고 무뚝뚝
+1에서 주사위 굴리고 선택지 선택 같이 해주세요~
츤데레가 보고싶네여
20May 10, 2017 (수) 14:42_ 70 에서
맨 뒤에 70이 콤마입니다.
잠깐 가다듬고 이어보겠습니다~
"자, 잠깐!"
"들어와라."
노크를 하려던 손을 내린 아스카는 문에 달린 손잡이를 쳐다보았다. 문에다 손잡이를 달아놓았다, 는 느낌이 아니라 문에서 손잡이가 자라났다, 는 느낌이었다.
[나도 좀 아픈 편이긴 하지만, 이쪽은 정말 제대로(?) 아픈 느낌인데......]
문을 열자 길다란 복도가 보였다. 이 숲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집이었다. 밖에서 봤을 땐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긴 복도가 그녀 앞에 놓여있었다. 그 끝에는 방금 열고 들어온 문과 비슷하게 생긴 문이 있었다.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가니 나무 속을 걷는 듯한 냄새가 났다. 풀 냄새와 함께 나무의 속살에서 나는 듯한 향이 코 끝을 맴돌았다. 복도 끝에 다다라 문을 열자, 응접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왔다. 한쪽 구석에 있는 돌을 쌓아 만든 벽난로 안에서는 나뭇가지들이 조금씩 타고 있었고,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에는 서로 마주보도록 두개의 의자가, 그리고 그에 맞추어 두 개의 찻잔이 놓여져 있었다. 아스카가 열고 들어온 문이 아닌 다른 문이 열리며 방금 전의 남자가 들어왔다.
"앉아."
"아, 네."
일반적으로 자신이 깊이 인정하고 동경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경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문 데다, 상대가 먼저 하대를 하고 나오는 상황에서 아스카의 경어가 나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상대에게선 알 수 없는 기이한 위압감이 흘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추스르게 만들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그가 아스카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궁금한게 있나?"
"아, 저기, 당신은..."
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재미있지. 여기에 있던 것은 난데, 찾아오는 너희들은 항상 내게 누구냐고 묻는군. 보통 그건 내 쪽에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 죄송합니다. 저는..."
"그렇다고 굳이 소개가 필요하단 것은 아니다. 니노미야 아스카."
면전에서 문이 닫히는 것을 본 첫 대면부터 느낄 수 있었지만, 이 남자는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아스카는 잠깐 노아를 향해 전해지지 않을 푸념을 했다.
[타카미네 씨. 이 사람, 괜찮은 것 맞나요?]
"스스로는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넌 표정이 읽히는 편이라서. 일단 차나 들지? '저쪽'에 몇 모금도 마시지 못한 아이스 티를 그대로 두고 왔으니 목이 마를텐데."
그의 말에 아스카는 얌전히 찻잔을 들었다. 방금 말에서 확실히 느꼈다.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할 지는 몰라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저, 여쭤보고 싶은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곳에 오는 자들은 모두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오게 된다. 와야 할 이유가 없다면 아무리 헤메도 올 수 없지."
전혀 개연성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스카는 왠지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알 듯도 했다. 잠깐 고민하고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 곳은 영원한 끝의 숲. 이름의 의미에 대해선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숲에 살고 있는 숲지기이고. 나를 부를 명칭이 필요하다면 숲지기라 부르면 되겠군."
여유롭게 찻잔을 든 그가 가만히 잔을 흔들었다.
"말했듯이 이곳에 오는 자들은 모두 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오게 된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너 또한 그렇고. 그 왼손 새끼 손가락에 있는 붉은 실 때문에 온 것이지?"
"네, 맞아요. 저를 속박하고 있는 이 붉은 실을 끊어내고 싶어요. 하지만 이 실은 도무지 어떻게 해도 끊어낼 방법이 없어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아스카의 말에 숲지기는 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에게서 볼 수 있을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표정이었기에, 아스카 또한 덩달아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의 표정이 이내 풀리더니 조금 재미있다는 듯 숫제 입가에 미소까지 떠올랐다.
"끊어내고 싶다. 그러니 없애고 싶다- 는 이야기겠지."
"네."
"붉은 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운명을 상징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운명, 혹은 운명의 상대. 하지만, 전 운명 같은건 믿지 않아요."
"겨우 붉은 실 따위로 운명이 왔다갔다 하리라 생각하나?"
"에? 하지만 이거 제 눈에만 보이고, 끊어지지도 않고-"
말을 하던 그녀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 실 이야기를 먼저 했던가? 아스카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숲지기가 그녀가 또 한가지 간과하고 있던 것을 일깨워 주었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가르쳐줄까? 난 네게 자기 소개가 필요없다고 했다. 니노미야 아스카."
"아.....!"
"오랜만에 온 방문객은, 꽤나 재미있군."
오랜만에 재미난 여흥을 찾았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는 그에게 아스카가 다급히 물었다.
+1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신 거죠?
+2 제 손가락의 이 실이 보이는 건가요?
+1, +2 둘중 주사위가 높은 쪽으로 하겠습니다 :)
"너는 카페의 한 가운데 있는 정원을 통해 이 곳으로 들어왔지. 나무 몇 그루가 다인 '그 곳' 말이야. 이미 시작부터 평범함을 좀 벗어났다고 생각되지 않나? 이제 와서 내가 어떻게 너의 이름을 아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잖아?"
하긴 그랬다. 이미 아스카의 머릿속에선 상대가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있었다. 요정, 정령, 혹은 신? 어쩌면 그는 이미 아스카가 안고있는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두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다급해졌다.
"겨우 붉은 실 따위로 운명이 왔다갔다 하겠냐고 하셨죠. 무슨 의미인가요?"
"너는 개척자.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고자 하지. 하지만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네가 이해하는 범주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운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진 않겠다. 그보단 너의 그 '실'이 의미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좀더 도움이 되겠지."
잠깐 말을 끊은 그는 다시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그를 따라 아스카도 찻잔을 들었다. 차는 조금 식어 있었지만, 따뜻할 때 보다도 오히려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이 강해지고 있었다.
"네가 속해 있는 세상에선 '붉은 실'을 흔히 운명이라고들 해석하더군. 아주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결과만을 본거야.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붉은 실은 '이정표'다. 보통 일반적이라면 그런 것이 매어질 일은 없지만, 드물게 그것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지. 그래, 너처럼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이들에게 종종 보이는 거다. 그 실은 네가 삶을 살면서 선택할 수 있는 어떠한 운명으로 인도하는 실이다. 그 것을 따라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너의 몫. 따라간 후에도 그 운명을 선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또한 너의 몫. 그리고 선택되지 않고 버려지는 운명에 대한 책임도 너희 몫이지. 이봐, 네 나이는 얼마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열네 살이고... 글세, 일단은 중학생- 이랄까요. 학교, 잘 안나가지만."
"어린 나이이고 한참 여기저기 들쑤셔볼 시기인데 이 '개척자'라는 녀석들은 쓸데없는 오기만 다분한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이봐, 난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붉은 실을 없애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없앤다면, 너는 절대 다시는 그 운명을 선택할 수 없어. 이 실을 끊음으로써 너는 그 운명을 '버린다'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니까. 근데 지금 너는 그 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나?"
숲지기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사로잡힌 것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였기에 그 실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까진 고민해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숲지기 씨는, 알고 있나요?"
"알고 있지만 여기서 가르쳐주면 네 쪽에서 재미가 없을걸."
어느 새 다 비운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그 실을 끊고 싶다는 너의 말에 대한 대답은 이렇게 되겠군.
네 쪽에서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다면 일단은 실을 따라가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아......."
끼익- 하고 처음 그녀가 들어왔던 문이 저절로 열렸다. 숲지기는 손을 들어 그 쪽을 가리켰다.
"가라. 직접 확인해보도록."
그의 손 끝에는 복도를 지나 문 밖으로 이어진 붉은 실이 보였다.
+1에서 아스카가 숲지기에게 할 마지막 말을 생각해주세요
[방금,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잠깐 어리둥절해진 그녀는 실이 있는 방향을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도 방금 전까지 있던 복도과, 그 끝에 있던 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녀 혼자만이 숲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어다. 꿈이었나 싶었지만, 숲지기가 해준 말은 너무나 선명하게 그녀의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이 쪽에서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다면 일단은 실을 따라가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마음 속의 결심이 선 듯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인 그녀는 붉은 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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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어떤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시장에 나갔다가 사신을 마주쳤다. 사신을 보고 새파랗게 질린 남자에게 사신이 말했다. '지금은 자네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사신의 말에 남자는 그 자리에서 부리나케 도망쳤다. 사신을 만났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남자는 짐을 싸들고 먼 길을 떠났다. 사신에게서 최대한 멀어질 작정이었다. 몇날 몇일을 걸어 도착한 먼 도시의 입구에서, 남자는 다시 한번 사신과 마주쳤다. 사신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여기서 자네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정확히 딱 맞춰 왔군. 이제 가세나'."
달칵- 하고 찻잔을 내려놓은 숲지기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운명을 믿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 이들. 개척자. 하지만 니노미야 아스카. 너는 '개척자의 운명' 인 것이다. 운명을 따르는 것은 운명. 운명에 거스르는 것 또한 운명. '운명'과 '인과'를 벗어날 순 없어. 다만 너를 위해 준비된 수많은 운명 중 네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지켜보도록 할까."
목적지까지의 난이도
+1의 콤마 숫자에 따라 결정
만나게 되는 운명의 유형
1. 운명적인 사건
2. 운명적인 인물
+2에서 선택,
숲을 나선 후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
1~33 칸자키 란코
34~66 타다 리이나
67~99 타치바나 아리스
100 철면P
+3에서 주사위
"생각보다, 일찍 나왔구나."
"여-! 아스카!"
"아, 리이나 씨."
"귀염성 없는 호칭은 여전한걸-"
하며, 아이스 티를 마시는 리이나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보인 아스카가 그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노아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선 채로였다.
"...마음 속에 던져진 혼돈에 대한 답은, 찾았니?"
"조금, 걸어가야 할 길이 생겼어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른다면 방황이지만,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그건 모험이니까. 잘 됐구나."
그런 말과 함께 노아의 얼굴이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것을 넘어 신비롭다는 느낌이었다.
"리이나 씨, 오늘은 무슨 일?"
"아아, 또 제의하러 왔지!"
"아이돌?"
요 근래 절친인 란코를 통해서 알게 된 타다 리이나는, 첫 만남부터 아스카에게 [로꾸한 필이 풍기는걸!] 하면서 음악을 해보라고 두어 번 제의를 해 오던 터였다. 아마 첫 만남 때 란코의 노래 연습을 도와주며 같이 노래부르던 것을 듣고 난 후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듯 했다. 그녀가 마음 속으로 흠모하는 타카미네 노아 또한 아이돌로써 대중 앞에 나서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니 아이돌 이라는 직업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하겠냐고 제의를 받고보니 그건 또 글세- 하고 있던 차였다.
"아아, 내가 프로듀서인 것은 아니지만, 너 같이 feel이 팍 꽂히는 애를 그냥 두기도 아깝고 말이야."
"오? 받아들이는 거야?"
지금껏 '생각해볼게' 라거나, '아직, 너무 갑작스러워서 잘 모르겠네' 등의 대답만을 해 오던 아스카에게서 처음으로 긍정의 뜻이 나오자 물론 바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뜻밖인 듯 리이나의 눈이 커졌다. 그런 아스카의 태도 변화에 노아의 입가에 예의 미소가 떠올랐다.
"확실히, 길을 본 거구나. 저녁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건 이 일을 축하하기 위함인가."
"축복 속에서 첫 걸음을 뗀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죠.."
"나 또한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 전사를 축복하도록 하지."
"그건, 제게는 무엇보다 큰 영광이에요."
"아- 그러니까, 나는 프로듀서한테 연락하면 되는 거지?"
노아와 아스카가 둘만의 세계를 만들자 순식간에 소외되어 버린 리이나가 뒤통수에 식은땀을 매달고 말했다. 아스카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리이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조금 쉬다가 이어가겠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적극적인데?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거야?"
"리이나 씨. 운명의 붉은 실 알아?"
"어, 마유한테서 들어본 적 있어."
아스카의 시선이 리이나의 어깨 부근에 멈췄다.
"붉은 실은 말이야, 운명 그 자체가 아니라 운명을 향한 이정표- 라더군."
"하아?"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리이나의 어깨 부근으로, 아스카의 손가락에 매어진 붉은 실이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보통은 이런 부담감을 느끼게 되면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346 프로덕션의 정문 안쪽으로 이어진 붉은 실에 머물러 있었다. 어쩔 수 없나, 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쉰 아스카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때, 프로덕션 안에서 나오던 누군가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1. 타카미네 노아
2. 칸자키 란코
3. 타다 리이나
+2에서 선택해주세요!
"아, 리이나 씨."
낯선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자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긴장이라고? 이 내가? 훗.]
"확실히, 이런 유리의 성채와도 같은 곳이라면 타카미네 씨 같은 분이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네."
"음, 나름 일류 프로덕션이라구? 이쪽이야. 가자."
리이나가 그녀를 이끈 곳은 본관 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였다. 자리에 앉자 분홍색 리본을 토끼 귀처럼 묶고 귀여운 메이드 차림을 한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다.
"좋은 날씨에요 리이나 씨! 같이 오신 분은 친구?"
"아아, 나나. 이쪽은 얼마 전 알게 된 니노미야 아스카야. 오늘 프로듀서를 만나러 왔어."
"반가워요, 니노미야 씨! 저는 우사밍 별에서 온 우사밍성인 아베 나나입니다 뿅⭐️"
"반가워. 난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다. 그런데 우사밍 별에서 왔다니.... 너도 좀 아파오는 쪽인가?"
"에? 나나는 아픈 곳이 딱히 없는걸요? 아, 굳이 말하자면 허리 쪽이 조금.....?"
"그거, 나이 든걸지도."
"네에-! 아닙니다아-!"
리이나가 옆에서 짓궃게 농을 걸자 단호하게 태클을 건 그녀는 이내 주문을 받고는 다시 종종걸음으로 카페 안쪽으로 사라졌다.
"귀여운 아이네."
"푸핫- 아스카, 나나가 몇살로 보여?"
"나와 비슷한 듯 한데."
리이나는 숫제 앉은 자리에서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가버렸다. 물론 나이에 비해 아스카가 조금 성숙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아베 나나는...
"사실 말이야, 나나의 나이는 스..."
"유언비어는 거기까지. 나나는 영원한 열여섯이랍니다 뿅⭐️"
"컥-"
어느 새 음료를 들고 소리없이 다가온 나나가 천기를 누설하려던 리이나에게 촙을 먹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리이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지만, 나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어온 음료를 아스카 앞에 놓았다.
"필요한 것 있으면 또 말씀해주세요⭐️"
"아, 고마워."
[아, 카페가 마음에 들어서 입사해버릴지도.]
아스카의 잔이 반쯤 비어지고, 불시의 습격에 당한 리이니가 슬슬 정신을 차릴 무렵, 아스카의 등 뒤쪽에서부터 테이블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시커먼 정장을 입은 험상궃은 인상의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적인가."
아스카는 자세를 고치며 공격에 대비했지만, 리이나의 반가운 인사에 금세 당황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아, 프로듀서! 온 거야?"
"네, 타다 씨."
리이나와 인사를 나눈 그-타케우치 프로듀서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두 손으로 아스카에게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아이돌 프로듀서를 하고 있는 타케우치입니다."
"아, 어... 반가워. 나는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다."
"니노미야 씨였군요. 반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프로듀서, 그만 서 있고 얼른 와서 앉아. 프로듀서 생각보다 키 커서 올려다보면 목 아프다구?"
자리를 안쪽으로 옮기며 손짓하는 리이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그는 아스카의 맞은편- 방금 리이나가 있던 자리에 앉았다.
"아이돌에 흥미를 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리이나의 머리 부근을 맴돌던 붉은 실이, 지금은 말을 꺼내는 프로듀서의 어깨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스카는 어쩐지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혼돈 속에서, 이정표를 따라왔다고 할까."
그녀의 얼굴을 보던 프로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옆에서 보고 있던 리이나가 조바심이 나는 듯 그의 소매를 붙잡으며 물었다.
"어때?"
"확실히, 좋은 미소입니다."
"역시! 그렇다면 바로 프로젝트에 들어오는 걸까?"
"글세요. 니노미야 씨의 확답이 듣고 싶습니다."
"확실히, 이정표는 이쪽이다만..."
붉은 실을 따라 무작정 오긴 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선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아이돌, 이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일이었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닌 노아 라던가, 음악을 좋아하는 리이나, 자기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실은 무대 체질인 란코가 아이돌 이라는 것엔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대상이 자신이 되면 이야기는 좀 달랐다.
막상 확답- 이라는 단어를 듣자 조금 망설이는 아스카의 기색을 눈치챈 프로듀서가 말을 꺼냈다.
"사실 누구나 진심으로 아이돌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데에는 어떤 계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이돌의 공연을 본 적은 있습니까?"
"음, 란코나 타카미네 씨가 연습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공연이라면 아직은."
"그렇다면, 제대로 된 콘서트를 한번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이돌의 콘서트?"
"예. 마침,
@여기서 조금, 고민이 되네요.... 이대로 무난하게 346 내의 멤버들을 등장시킬지, 창작글판에 연재중인 신데 애쉬와 교차를 시켜볼지...... 보아주시는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내일 공연하는 미드나잇 랩은 말이야, 데뷔 때부터 굉장히 핫한 유닛이라구? 관람해 두면 후회하진 않을 거야."
사실, 아이돌 공연을 본다거나 하는 것은 아스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몇 안되는 친한 사람들 중 아이돌로써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 익숙하긴 했지만 단지 그뿐, 아이돌 문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그녀에게는 딱히 있지 않았다. 다만 그 타카미네 노아가 하는 일이라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정도. 그래서 그녀에겐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가자는 제의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 잠깐 망설이던 그녀의 머릿속에, 숲에서의 만남이 떠올랐다.
-이 쪽에서 끊을 수도, 자를 수도 없다면 일단은 그 실을 따라가라. 그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아, 그렇지.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그 여흥, 이 두 눈에 똑똑히 새길 수 있도록 하지."
"좋습니다. 내일 공연은 다섯 시에 시작하니, 세 시까지 프로덕션으로 와 주시면 거기서 공연장으로 단체로 이동하는 버스에 니노미야 씨의 자리를 마련해 두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를 표한다."
결국,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젠 무엇이 나올지 확인하는 것 뿐.
@신데 애쉬 쪽 글에 수정사항이 생겨 우선 이쪽을 챙기러 가봐야겠군요 ㅠ 아무래도 이쪽이 본업이라.... 오늘 밤늦게, 혹은 내일 다시 이어보겠습니다! 이제 얼마 안남았군요.
[이건, 기대감.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지?]
아스카는 손가락에 매어진 붉은 실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여전히 프로덕션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다 시야에 손목에 매어진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집을 나선 그녀는 곧장 큰길로 나갔다. 토요일 낮의 도로는,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빈 택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빈 택시 하나를 잡아 탄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346 프로덕션으로 가 달라고 말했다.
차가 달리는 동안 아스카의 머리 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의문, 호기심, 불안감.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새끼손가락에 매어진 붉은 실 앞에선 단 하나의 감정으로 합쳐졌다. 그것은 바로 기대감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늘 자신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을 만날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던 사이, 택시는 어느 새 프로덕션의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요금을 지불하고 내리자, 마중을 나와있던 란코가 손을 흔들었다.
"내 영혼의 친우여! 오늘도 그대의 투지는 여전한가?!"
"안녕. 유리성의 공주.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해와 달이 완벽한 위치에 있는 바로 지금이도다! 나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가 보겠는가!"
"아, 부탁해."
란코를 따라 간 곳에는 대형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미 많은 인원들이 버스 안에 타고 있었고, 근처에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 시간 잘 맞춰서 왔네? 곧 출발할거야!"
아스카를 먼저 발견한 노아와 리이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란코와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자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멤버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오? 리이나! 그 애가 새 멤버인거냐?!"
"아, 이쪽은 미쿠. 종종 얘기했었지? 내가 속한 유닛 '아스테리스크'의 멤버야."
"반갑다냐! 나는 미쿠라고 한다냐! 미쿠냥이라고 불러주면 된다냐!"
"나는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 만나서 반가워."
멤버들이 눈에 익기 시작하자, 아스카는 내심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모두가 TV에서 한 번쯤 본 얼굴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버스에 탄 채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타카가키 카에데와 죠가사키 미카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아스카로써도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아이돌들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대형 기획사 안에 와 있다는 것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다들 모이셨군요. 이제 출발할까요."
어제 리이나와 함께 만났던 프로듀서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아스카는 고개를 슬쩍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프로듀서 쪽에서도 고개를 끄덕, 숙여 보였다. 버스에 올라 란코와 함께 좌석에 앉은 그녀의 눈에, 허공에 떠 있는 붉은 실이 보였다. 이제 그 실은 프로덕션 바깥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는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붉은 실이 향한 곳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스카에겐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이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공연장으로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단연 주변 제일의 관심사는 아스카였다. 새로운 멤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여자아이들에겐 가장 관심이 가고, 또 즐겁기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아스카를 놀라게 한 것은, 모두가 진심으로 아스카가 자신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때껏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녀에겐 생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느낌. 왠지 그녀는 아이돌이란 어떤 느낌인지 조금 이해할 것도 같았다.
여자아이들 특유의 끊이지 않는 수다가 이어지는 사이 버스가 공연장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큰 크기의 공연장이었다. 교외에 가설로 지어 놓은 스테이지는 백 명이 거뜬히 올라가도 될 만큼 넓었고, 야외에 준비된 좌석의 수는 얼추 보기에도 족히 수만 개는 되어 보였다. 공연 시간이 다 되어가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입장이 시작될 모양인지, 안내요원들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버스는 그 곳을 지나쳐 무대 뒤쪽으로 향했다. 이내 버스가 멈추고 프로듀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자는 사인을 보냈다. 버스에서 내리자, 거대한 스테이지의 뒷편이 보였다. 그 곳에는 수많은 스탭들이 각종 장비를 점검하며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스카의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얼굴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처럼 보이는 큼지막한 마스크-혹은 방독면을 쓰고 노이즈가 낀 기묘한 목소리로 이곳저곳을 날카롭게 체크하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가 이쪽을 돌아보다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치자 이쪽으로 다가왔다.
"방금 온 겁니까?."
"예. 다만, 인원에 변동이 조금."
"뭐, 1팀에서 몇명이 오든 내가 알 게 뭐랍니까. 굳이 말하는 이유는?"
타케우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아스카는 잠깐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강철 마스크의 인물이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다 아스카와 눈이 마주쳤다. 혼돈과 광기를 속에 감춘 늪지대 같은 초록색 눈과 마주한 순간, 아스카는 알 수 있었다.
[아,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니노미야 아스카 씨입니다. 아이돌로써 활동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견학 차 모셨습니다."
"어, 반갑습니다.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입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탐나는 인재를 꼬셔보기 위해 내 공연을 이용하시겠다? 이 선배, 갈수록 약았구만."
잔뜩 비꼬는 말투였지만, 어째선지 날이 선 적대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이 철가면의 남자와 타케우치 프로듀서가 대화하는 방식인 듯 했다. 그저 말없이 뒤통수를 긁던 타케우치 프로듀서가 아스카에게 그를 소개했다.
"소개드리지요, 이 쪽은..."
"만나서 반갑습니다. 니노미야 아스카 양.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2팀 프로듀서를 맡고 있습니다. 그냥 프로듀서라 불러주시면 되겠군요."
말을 잘라먹듯 치고 들어온 그는 소개를 마친 후 아스카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니, 쳐다보다 못해 숫제 허리를 숙이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채로 주변을 맴돌며 아래위로 훑어보기까지 했다. 대놓고 품평하는 듯한 모양새라, 난감한 기분이었다. 잠시간의 스캔(?)이 끝나자 2팀 프로듀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보쇼, 선배. 이 아가씨도 그놈의 '웃는 얼굴'을 보고 데려온 거요?"
"예. 훌륭한 미소였습니다."
"미치고 팔딱 뛰겠구만. 대체 그런 야리꾸리한 기준으로 어디서 인재를 이렇게도 긁어오시는지... 이쯤 되면 자석이라고 해도 믿겠어."
[나, 인정받은 건가? 대체 뭘로?]
2팀 프로듀서는 1팀 프로듀서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일이 바쁜 듯 다시 어딘가로 걸어가려고 했다. 대체 무슨 용기였을까. 아스카는 그 만만찮아 보이는 인물에게 결국 질문을 해버렸다.
"저,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요."
몇 걸음 옮기다 뒤를 돌아보곤 '지금 나한테 질문한거냐' 는 제스처를 취한 2팀 프로듀서는,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똑바로 꽂혀오는 아스카의 시선에 인상을 찌푸렸다.
"거, 선배. 애를 여기까지 데려오면서 저런 확신 하나 못 준겁니까? 저 질문이 왜 나한테 오는 겁니까? 애들 관리 자꾸 그렇게 하면 곤란해요. 이건 좀 화나네. 확 뺏어가버리는 수가 있어."
이번에는 조금이지만 진짜 짜증이 실려 있었다. 1팀 프로듀서 또한 그것을 느낀. 듯 말없이 뒤통수를 긁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2팀 프로듀서는 아스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타케우치를 향한 것과는 천지차이로 부드러운 어조였다.
"어느 정도냐면 말이죠. 내가 조금만 더 염치없고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면 저 어설픈 선배에게서 당신을 뺏아왔을 겁니다. 나 또한 당신을 프로듀스 해보고 싶으니까."
그리곤 한번 더 1팀 프로듀서를 쏘아본 그가 말을 덧붙였다.
"니노미야 양. 지금 당신은 모르겠지만, 내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당신의 재능에 있어선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언젠가 이 말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오겠죠."
[어, 이사람.... 자신감이 엄청난걸. 이쪽도 '아픈' 쪽인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그는 바쁘다며 투덜거리곤 시커면 유광 워커를 뚜벅이며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1팀 프로듀서가 멋적게 웃으며 말했다.
"보는 눈은 확실한 사람입니다. 그가 데려온 연습생들과, 데뷔시킨 유닛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그의 말을 믿어도 괜찮을 겁니다."
"그런가...."
"우리도 움직이도록 하죠. 다들 준비된 자리로 출발했습니다."
"아, 응."
시간이 흐른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을 보는 아스카의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 '충격'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저렇게 노래할 수도 있고, 음악이라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멜로디와 박자가 흐름이 되어 아스카의 가슴 속에 밀려들어왔다. 무대 위에 선 자그마한 여자아이들의 노래와 몸짓 하나하나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아스카에게 있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원하는대로, 마음먹은 대로 흐름을 이끌어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겐 너무나 매력적인 일로 다가왔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건가?]
수많은 노래와 춤들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마녀 모자를 눌러 쓴 조그만 여자아이가 나와서 노래를 마쳤을 땐, 아스카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스스로도 모르고 있다가, 옆에 앉아있던 노아가 손수건을 내밀고서야 그녀는 자신의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건...."
"놀랍지? 천사가 노래를 부른다 해도 이만할 순 없을 거야."
"네, 정말로....."
조금씩, 가슴 속의 답답한 것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한 느낌 같기도, 오랜 시간을 방황하다 드디어 가야 할 길을 깨닫게 된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왔다.
"타카미네 씨."
"결심이 섰구나.."
"네. 저......"
공연의 마지막을 알리는 불꽃이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 위로 쏘아 올라져 찬란한 빛을 뿌렸다. 오늘 공연에 참가했던 모든 아이돌들이, 일제히 무대 위로 나와 다 함께 엔딩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스카는 단어 하나 하나에 진심을 담아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느 새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묶여 있던 붉은 실도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아이돌이, 되겠습니다." - Fin
흠, 일단 작중 시열대상으론 상당히 나중 일...그나마 여기서 첫 데뷔라면..
본편에서 아이돌 니노미야 아스카를 보려면 엄청나게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나오기는 하겠군!
뭐 그건 또 어쩔 수 없지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