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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 White, Black, Color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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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0, 2017 01:42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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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검은색, 그리고 무색.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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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열심히, 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생색내려고 착하게 사는 것도 아니니까요.”
“뭐? 아 씨, 갑자기 그런 소리를 들어도...”
“아, 그렇지. 세상은 쓰레기야. 존나 더러운 새끼들이 우글대는 곳이라고.”
“그런데 이딴 곳에서 살아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선빵이야, 선빵. 더러운 진창에서 구르면서 착하게 살다간 훅 간다고.”
“하, 참 나. 진담이야? 다른 새끼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건,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난 그냥 날 위해서 살 뿐이야. 다른 놈들한테는 관심 없어.”
“뭐라고 하셨죠?”
“그럴 시간에 일이나 하시죠, 오토나시 씨.”
답하는 사람은 프로듀서들이고요. 각자의 성격을 보여주기만 하는 대화이니, 별로 신경 안 쓰셔도 된답니다.
'검은색'은 765의 프로듀서이다.
'하얀색' 또한 765의 프로듀서이다.
그리고 '무색' 또한 마찬가지다.
"야. 왜 그렇게 실실 쳐웃고 있냐?"
"아, 누님 오셨어요?"
프로덕션으로 돌아온 '검은색'은 웃는 얼굴의 '하얀색'을 보자 괜시리 부아가 치밀어올라 반쯤은 습관이 된 험한 말을 써가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이미 '검은색'을 많이 겪어보기도 하고, 천성이 착하기도 한 '하얀색'은 아무렇지도 않게 '검은색'을 짜증나게 한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인사했을 뿐, 조금도 화내지 않았다.
"오냐. 죄다 허탕치고 왔다."
"저런. 그래서 짜증이 나신 건가요?"
"아니. 일거리를 하나도 못 건져서 기분 나쁜데 네 웃는 낯짝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짜증이 확 치밀어오르더라."
"저한테 화풀이하시는 건 괜찮지만, 다른 분들한테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너같은 착해빠진 머저리한테 하는 화풀이는 재미없어. 저 일벌레라면 모를까."
'검은색'에게 일벌레라고 지칭된 '무색'은 잠깐 '검은색'을 힐끗 쳐다보기만 했을 뿐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 '무색'의 반응에 김이 빠진 '검은색'이 궁시렁댄다.
"저 새끼도 재미없기는 매한가지지만."
+3 다음 상황.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놨네요.
그래도 쓰긴 썼으니 이제 다시 오랫동안 방치할 수 있겠어요.
흥이 깨진 '검은색'은, 그 궁시렁거림을 마지막으로 별 말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고, 이내 사무소에는 컴퓨터 자판의 타각거리는 소리와 서류를 넘기며 나는 종이의 마찰음만이 조용히 들려왔다.
끼익.
그런 평안한 소음의 틈 사이에, 문이 열리는 이질적인 소리가 살며시 끼어들었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사람은 연보랏빛 머리를 가진 무표정한 소녀. 그 소녀는 프로듀서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용히 문을 닫으며 사무소의 안으로 들어왔다.
소녀의 이름은 마카베 미즈키. '검은색'이 말한 일거리의 대상이 되는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이자, '검은색'의 몇 안 되는 담당 아이돌이기도 했다.
"왜 극장으로 안 가고 일로 왔냐?"
"프로듀서."
'검은색'이 자신의 담당 아이돌이 원래 가야 할 곳이 아닌 이곳으로 왔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자, 미즈키는 무언가 말할 것이 있는 것처럼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3 마카베 양이 할 말.
잠깐 하고 다시 묻어두고... 가끔씩 하고 다시 묻어두고...
"일이 취소됐다고 합니다."
'검은색'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저 무심하게 서류를 쳐다보며 자신과는 관계없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야 할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일이 취소됐다니 어쩔 수 없지. 어떻게 된 건지는 내가 알아볼게. 일단 오늘 다른 일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당분간 쉴 수 있어서 좋겠다, 야."
"듣기로는, 프로듀서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표정과 목소리에서 이렇다 할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 추궁하는 것인지 탓하는 것인지 모를 그녀의 말에, '검은색'이 잠깐 멈칫했다. 일이 취소된 것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자신과 상관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모른 척하며 어물쩡 넘어가려던 일이 더 이상 쉽게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해서인지 '검은색'은 의자를 돌려 미즈키가 있는 쪽으로 몸이 향하게 하고 자신이 보던 서류를 내려놓은 다음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뒤늦게 자신이 신경써야 할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눈을 마주치고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검은색'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
"거 참 별 거 다 알려주네, 그 망할 새끼들은."
자신이 일을 망쳤다는 것에 대한 짜증 섞인 수긍.
"어떻게 된 겁니까?"
아까 전, '검은색' 때문에 일이 취소됐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놀란 표정으로 '검은색'을 쳐다보고 있던 '하얀색'과는 달리 시종일관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던 미즈키가 자신 때문에 일이 취소되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대신 오히려 짜증을 내고 있는 '검은색'에게 침착한 어조로 설명을 요구했다.
+3 '검은색'의 대답.
역시 정신상태가 영 안 좋을 때는 이게...
라고 말하면 너무 정석일테니 그래서 내가 네 담당이라 짜증나냐고 맞받아치는 '검은색'
"내가 여자라서 만만하게 보였는지, 네 매력에 반했는지 일을 받으러 갈 때마다 높고 한심하신 분들께서 고맙게도 뒤를 봐주신다면서 '영업'을 말이랑 행동으로 은근히 요구해오는데, 그게 진절머리나서 일 좀 쳤다."
그녀의 충격적인 발언에 미즈키와 '하얀색'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자, 그녀가 둘을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이딴 정석적인 대답은 집어치우고, 그래서 짜증나냐? 엉? 네 담당이란 게 기껏 들어온 일자리를 파토내서 짜증나냐고."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갑자기 크게 떠진 눈을 통해 자신의 찡그린 얼굴에 놀랐다는 것을 드러낸 '검은색'에게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프로듀서는 나쁜 사람이지만, 저는 그런 프로듀서를 믿고 있으니까요. ......정말로."
'검은색'은 의자를 돌려 담당 아이돌의 호의가 담긴 따뜻한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놀라 크게 뜨였던 눈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는 짜증스럽게 눈을 찡그린 채로 그녀가 충고하듯 말을 꺼낸다.
"저 머... 아니, 저 후배 녀석처럼 날 너무 믿지는 마. 난 믿을 게 못 되니까."
+3 다시, 마카베 양이 할 말.
와아 앵커 안 달린다. 발판도 안 달린다.
만세.
"프로듀서는..."
그녀는 말을 흐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검은색'이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런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꽤나 많았다. 그녀는 '검은색'과 얼굴을 마주하고 아이돌과 프로듀서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 자신이 신뢰하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당신이 이유없이 깽판쳤을 리가 없다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녀가 일을 망친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유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순히 '검은색'을 믿고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본 '검은색'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쁜 짓도 서슴치않고 저지르며 자신의 감정과 모습을 숨기고 보이지 않는 가면을 얼굴에 쓴 채로 기분 나쁜 상대에게 곧잘 아부를 떨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아왔었기에, 그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단기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어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아이돌을 성장시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제 손으로 망쳐버릴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는 '검은색'이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는 자기 감정쯤이야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순간의 짜증, 혹은 분노 때문에 일을 망쳐버린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가 그저 선행에 익숙치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검은색'은 자신의 아이돌들에게 꾸며낸 모습을 보이며 위선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냈으니까. 적어도 그녀들에게는 가면을 쓰고 거짓말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미즈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검은색'에게는 이 상황이 그저 짜증날 뿐이었다. 좋은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거기에 관련된 꼰대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고, 엮이면 좋을 게 없는 사람들이라서 일부러 일을 망쳐버린 다음 그 일은 입에 꺼내기도 싫어져서 다른 녀석들에게는 별 말 없이 둘러댔었는데, 자신의 첫 번째 아이돌이 갑자기 일터에 쳐들어와서는 그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흐려버리고 입을 닫아버리기까지 했기에 그녀는 그 말이 궁금해서 짜증나 죽을 지경이었다.
사실 가장 신경쓰이는 말은 미즈키가 그녀를 믿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하는 사람이었고, 이곳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달리 웃는 낯으로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기준으로 그런 사람은 기피 대상이지, 전혀 신뢰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돌들에게 그 점을 잘 인지시켰다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나쁜 모습을 보임으로써 사무적인 관계 이상으로 발전할 거리를 주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첫 번째 아이돌은 그녀를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2 다음으로 말을 꺼낼 사람.
+3 그 사람이 할 말.
서술 방식이 달라진 것 같다면 기분 탓일지도? のヮの
그나저나 앵커 안 달리니 좋네요... 후후...
음 이게 아닌가
"저기, 미즈키."
갑자기, '하얀색'이 미즈키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시나요?"
'하얀색'이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작게 말한다.
"뭔가 누님이 평소보다 심하게 반응하는 것 같지 않아?"
'하얀색'은 자신이 느꼈던 미묘한 차이를 그녀 또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얀색'이야 예전부터 '검은색'에게서 막말을 들어오며 심하다 싶은 대우를 받아왔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이돌을 대할 때는 짜증을 잘 내긴 했어도 막말을 한다거나 일부러 상대 속을 긁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농담치고는 심각한 말을 별 거 아닌 것처럼 던지고, 일을 파토내서 짜증나냐는 등 약간 험한 말을 하지 않았는가.
그가 떠올린 가장 합당한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일을 허탕치고 와서 짜증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미즈키의 의견을 들어봐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았기에 그는 그녀에게 의견을 구했다.
"야, 지금 내 앞에서 내 담당한테 수작질이냐?"
그런 생각과 대화 내용을 알 턱이 없는 '검은색'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일 뿐이었지만.
"확실히, 그렇게 보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걸까요?"
미즈키 또한 그에게 귓속말로 대답했다.
"아니 진짜 뭐... 하, 됐다. 말을 말자. 어차피 나랑 상관도 없는 일일텐데 내가 신경 써서 뭐하냐. 난 신경쓰지 말고 어여어여 너네 할 일이나 해라."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됐어. 일해야 되니까 말 시키지 마."
말로는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로 미즈키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하얀색'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명의 머저리와 자신의 아이돌이 자기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귓속말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귓속말이라는 행위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기적인 사람이지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이성적 사고를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위해 잠깐 귓속말을 하는 것은 긴 이야기가 아니라면 효율적인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기에 미즈키는 그녀의 머릿속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하얀색'이었다. 그는 당연히 유죄였다.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내 눈 앞에서 하지 말고 데리고 나가서 하라고. 넌 정말 잠시라도 내 앞에서 꺼져준다는 기특한 생각을 할 뇌가 없는 거냐, 이 머저리같은 놈아?
물론 그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미즈키를 데리고 나갔다고 해도 그녀는 왜 자신의 눈 앞에서 자기가 그나마 마음에 들어하는 몇 안되는 사람을 제 맘대로 치워버리냐면서 짜증냈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잘 보여야 하는 상대만 없었다면 그녀는 지금쯤 그를 신나게 갈구고 있었을 것이다.
+3 다음 상황.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건, 둘의 비밀스런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은 그 둘을 지켜보며 뻗쳐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고자 책상을 두드리거나 의자를 한 바퀴 돌리는 등의 행동을 했지만 그러한 행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임계점에 도달하고 만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둘을 남겨둔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미즈키와 '하얀색'은 그녀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 둘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검은색'이 오늘 기분이 나빠보인다는 주제 안에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따져보자면 유익하지 않은 대화를 혹시나 진전이 있을까 기대하며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은 결국 그녀의 화를 더 키워버리고야 말았다.
"역시 우리가 나가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겠네."
"프로듀서가 저렇게 화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곤란해."
미즈키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를 쫒아갈 것인지, 이곳에 남아 프로듀서가 들을 걱정 없이 '하얀색'과 이야기를 할 것인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사무실을 나서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나 때문에 미안하게 됐어."
"괜찮습니다. 프로듀서는... 제가 잘 달래보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지금 내가 가서 달래봐야 역효과만 날 테니까, 너한테 맡길게."
+3 다음 상황.
카페인 섭취는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일 수도 있었다. 이 광경을 누군가에게 들키지만 않았다면.
덜커덩.
짜증나는 곳을 뛰쳐나온 '검은색'은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속, 심장 다음으로 마음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을 장기인 폐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담배연기를 간절하게 원하며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대신 카페인을 섭취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금연 중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그렇듯이 말만 금연이었고, 진짜 이유는 직장에서 담배를 피운 걸 들켰다가는 리츠코가 이쿠나 타마키같은 애들이 와서 간접흡연을 하게 되면 어쩔 거냐고 들들 볶으며 귀찮게 할 것이 뻔했고 그녀 자신도 담배 냄새를 풍기면서 다른 아이돌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검은색'의 행동은 도덕관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돌들한테서 점수를 따기 힘든 입장이라 거리낌없이 피워도 될 법 했지만, 그녀의 인생론에 따르면 자신이 바닥에 있다고 해서 내려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딴 생각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녀 자신은 아이돌들의 호감이나 신뢰에 관해서 바닥에 있다고 할 수 있기에 그녀답지 않게 남들의 눈치를 최대한 신경쓰기로 한 것이다.
"그 새끼도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호감에 관해서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겠지."
그녀는 중얼거렸다.
덜커덩.
캔커피가 하나 더 뽑혀나왔다.
그녀가 자판기에서 뽑아낸 캔커피는 총합 일곱 캔. 꽤나 많은 양이었지만, 그 커피들은 모두 그녀가 마실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눠준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녀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시려는 것인데 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단 말인가? 담배를 안 피웠으니 그에 대한 사례금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검은색'은 일곱 캔으로 충분할 것으로 생각하고 자판기의 반환 버튼을 눌러 잔돈을 받아낸 다음 바닥의 청결 상태나 자신의 양복 바지에 대해 걱정해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아 첫 번째 캔커피의 뚜껑을 열고 카페인이 오늘 받은 스트레스를 달래주길 바라며 그것을 홀짝였다.
물론, 그것은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찾... 찾았습니다..."
"...미즈키?"
그 광경을 누군가에게 들켜 캔커피를 빼앗길 걱정을 하게 되지만 않았다면.
"옥상... 담배... 있을 줄 알고... 프로듀서... 뛰어..."
"그만 헐떡이고 이거나 쳐마신 다음 천천히 말해봐."
그녀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캔커피를 하나 건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캔커피는 여섯. '검은색'은 캔커피를 하나 더 뽑아야 할 지와 미즈키에게서 커피값을 받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물었다.
"왜 왔냐?"
"저희 때문에 화가 나셨으니까요."
"참 나. 그래서, 위로라도 해 주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다거나 그런 거냐?"
"그렇습니다."
"거 대단한 성자 나셨네. 아예 담당 프로듀서도 그 자식으로 바꾸는 게 어때? 너네 둘이라면 죽이 서로 척척 잘 맞을 것 같은데, 나 같은 거랑 같이 일하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왜? 사실이잖아? 좀 전에도 둘이서 아주 달달하게 이야기하고 계시더만?"
"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지 말아달라고 한 말은 저와 프로듀서의 후배 분이 이야기를 나눈 것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듀서가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말이었습니다만."
그녀는 조롱하는 투로 틱틱거리는 '검은색'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젠장, 잘못 짚었나. 이거 좀 쪽팔리는데."
"저도 말에 담긴 뜻을 잘못 전달한 것 같아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습니다. 이것이... 운명?"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튼 위로 따위 필요없으니까 조용히 커피나 마시고 가 버려. 정신사나워."
+3 다음 상황 혹은 행동 혹은 대사
이렇게 작품을 연재해 주시는 작가분에게 감사하다는 말밖에 말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검은색'은 미즈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커피를 연거푸 마셔댔지만, 미즈키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지 '검은색'을 바라보며 입을 살짝 열었다가 고개를 떨구고 자신이 손에 들린 비어가는 커피캔을 바라보기를 반복하며 자꾸만 머뭇거리고 있었다.
"뭐야. 할 말 있으면 해." 그런 그녀가 신경에 거슬린 '검은색'이 그녀에게 말했다. "정신사납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어영부영해서는 죽도 밥도 되질 못하니, 부딪혀봐야겠죠."
그녀는 다시 '검은색'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돈벌이 수단."
'검은색'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갑게 대꾸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가요?"
하지만 그녀는 의문을 표했다.
"정말로 저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계셨다면 업무 때문에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시는 것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저와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겁니까?"
"너,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 줄 아냐? 내가 사무실에서까지 그래야겠어?"
"프로듀서라면 피곤과 이익 중에서 이익을 택하실 텐데요."
맞는 말이었다.
또한 자신이 거짓말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었다.
'검은색'이 아이돌들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정말로 그렇게만 생각했다면 나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평소에 취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알아차리게 할 이유가 있었을까? 만약 그녀가 평소에 '하얀색'처럼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다면 지금처럼 담배냄새가 몸에 배여 신뢰관계에 악영할을 끼칠 것을 염려하며 줄담배를 피우는 대신 캔커피를 줄줄이 마셔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들통난 '검은색'은 거짓말이 드러난 자리를 다른 거짓말로 덮어버리는 대신 그 거짓말도 논파당했을 때 생겨날 귀찮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미즈키에게 진심을 일부나마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착하고 귀찮은 녀석. 이제 됐냐?"
괜히 다 떠들어대서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일부만을.
+3 다음 앵커
앵커도, 발판도 없군요.
아주 좋아.
"응. 귀찮아. 꼬치꼬치 캐물지를 않나."
"...그건 죄송합니다."
"흥"
'그래. 귀찮은 녀석이야. 그리고...너무 착해서 나같은 놈도 허물없이 대해주어서 상대하기 귀찮은 녀석,'
"착하고 귀찮은 녀석... 프로듀서는 제가 귀찮았던 것이군요."
미즈키가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얼굴에 고뇌를 품은 자그마한 그늘이 생겨났다.
예상하지 못한 답은 아니었다. 꽤 전부터 '검은색'과 함께했던 선배들에게서 '검은색'은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자신에게 들러붙는 사람들도 그 귀찮은 것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들어왔기에, '검은색'이 내놓은 답을 납득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내심 다른 답변을 원하고 있었다.
지금은 소용없는 바람이 되어버렸지만.
"응. 귀찮아. 꼬치꼬치 캐묻지를 않나."
"그건... 죄송합니다."
"흥."
'검은색'은 마지막 남은 캔커피를 비우며 생각했다.
그래, 귀찮은 녀석이지. 그리고 너무 착해서 나같은 놈도 허물없이 대하는, 상대하기 귀찮은 녀석.
그녀는 미즈키가 싫지만은 않았다. 미즈키뿐만이 아니라 다른 착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속이 검은 사람이라고 해서 착한 사람들을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착한 사람들은 그녀에게 착한 일을 해 주는 것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데, 그런 사람들을 어째서 싫어하겠는가.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나쁜 사람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겪어온 바로는 남을 이용하고 배신하는 뒤틀린 사람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악의로 가득찬 진창에서 굴러다니는 속이 검은 사람들은 엮여봐야 좋을 게 없었다. 어찌 보면 자기 혐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자기 혐오가 아니라 그녀의 몫을 빼앗아가는 기생충같은 존재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와 비슷한 것이었다.
'하얀색'은 이에 있어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그는 매우 착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에게 이익이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도 그를 한동안은 마음에 들어했었다.
그러나, 그는 뒤틀려있었다.
"너 여기 계속 있을 거냐?"
'검은색'이 말했다.
"제가 가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정신 사나워지니까 빨랑 가라고 아까부터 말했잖아."
"...알겠습니다."
미즈키는 감정이 엷게 깔린 그녀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하며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서는 그녀의 온전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검은색'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지만, 그녀를 붙잡지는 않았다.
+3 다음 앵커
P.S. 시점을 바꾸는 것도 가능합니다.
추가 앵커: 사건 +1
P.S. 이 창댓의 현재 상태: 휴식중.
절대로 귀찮아서 쉬는 거 아닙니다.
'검은색'이 커피를 연달아 마셔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동안, 사무실에 남은 '하얀색'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색'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하아, 또 저 때문에 일이 터져버렸네요. 이 일로 누님과 미즈키의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____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에 지장이 없다면 상관없지 않습니까."
'하얀색'이 질문하자, '무색'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손으로는 여전히 자판을 두드려 문서를 작성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일밖에 없었다. 직장 선배와 아이돌이 사적으로 가까워지건 멀어지건간에 업무에 차질만 없다면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론 둘의 사이가 마카베 미즈키라는 아이돌이 일을 해내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므로 염려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얀색'은 '무색'이 담담한 반응을 보이자 살짝 당황했다. 그는 이 상황을 전혀 염려하고 있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가 자신이 맡은 일과 다른 사람들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째서 '검은색'이 그를 기계 취급하며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그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다를 뿐이었다.
'하얀색'은 잠깐 일손을 놓고 두 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가 손을 멈춘 것을 인지한 '무색'이 무엄의 압박을 보내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그는 자신의 업무로 돌아가 그곳에만 신경 쓰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렴풋한 기억 속의 그녀는 친구를 한 명 사귀고 있었고, 그 친구를 꽤나 좋아했으니까.
그는 '검은색'이 어째서 미즈키를 밀어내려고 애쓰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가 얻어낸 것은 흐릿한 추측들이 전부였을 뿐, 전혀 알아낼 수 없었다.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3 다음 사건/상황.
"뭐하고 있어? 프로듀서,"
"핫?!"
'하얀색'은 깜짝 놀랐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
"...왜그래?"
"아...줄리아구나. 미안, 생각좀 하느라..."
'하얀색'에 다가온 소녀는 그의 담당 아이돌인 줄리아였다.
'하얀색'이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다시 열리고 한 여성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앞서 나간 두 명은 아니었다.
그녀 주위를 잠깐 두리번거리다 '하얀색'을 보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춘 뒤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얀색'은 생각에 빠져 그녀가 아주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프로듀서."
"으핫?!" 깜짝 놀랐는지, '하얀색'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옆을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는데?"
"아, 줄리아였구나. 미안. 생각할 게 좀 있었어."
'하얀색'에게 다가온 소녀는 줄리아. 765 프로덕션이 극장을 신설하면서 영입한 아이돌 중 하나이자 '하얀색'이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 중 한 명이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그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검은색'의 담당 아이돌인 미즈키가, 그 다음에는 자신의 담당 아이돌인 줄리아가 차례대로 찾아오다니. 줄리아가 나가고 나면 다음에는 '무색'의 담당 아이돌인 아카네가 찾아오는 걸까?
"프로듀서? 내 말 듣고 있어?" 다시 잡생각에 빠져드는 '하얀색'을 줄리아가 건져올렸다.
"미안. 다시 말해주지 않을래?"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바보P랑 엮이게 된 건지. 그러니까-"
+3 줄리아 양이 사무실로 찾아온 이유.
음, 창댓에서 들여쓰기를 하려면 영 불편하단 말이죠. 첫 줄에는 띄어쓰는 걸로 들여쓰기를 할 수 없어 #로 땜빵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나저나 댓글은 64개인데 진행글은 12개밖에 안 되는구나...
"츠바사가 안 보여서. 오늘은 같이 보컬레슨도 하고 안무도 맞춰봐야 되니까 꼭 늦지 말고 오라고 어제 확실하게 말해뒀는데, 아직까지 안 보여서."
"또?"
"그래. 또."
"어디서 미키랑 같이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거 아냐?"
'하얀색'은 츠바사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아냐." 줄리아가 말했다. "그 쪽은 제일 먼저 확인했다고. 나 참, 하여간 얘는 맨날 이런다니까."
"트레이너 분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까?"
츠바사는 예전부터 지각하는 일이 잦았고 뒷처리는 프로듀서들의 몫이었기 때문에―그리고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검은색'이 귀찮다며 자신의 몫을 대부분 '하얀색'에게 떠넘겼기 때문에―그에 대한 통보와 사과는 익숙했다. 사실, 츠바사가 지각한다고 해서 별로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츠바사는 이번 레슨을 걸러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동경하는 선배, 호시이 미키만큼이나 재능있는 아이돌이었고 댄스도, 노래도 언제나 잘 소화해냈으니까.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하아, 저번에도 그렇고 츠바사 얘는 진짜..."
줄리아 또한 문제가 생길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츠바사의 이런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 거야.
+3 다음 상황.
문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이부키 씨는 5분 후 사무소 앞 카페에 나타날 거라고 줄리아에게 알려주는 '무색'
"아무튼, 츠바사한테는 제대로 일러둬야겠어. 나 원, 한두 번이어야 그냥 넘어가지."
그렇게 줄리아가 투덜거리고 있는 동안, 이야기를 듣고있던 '무색'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하얀색' 쪽으로 몸이 향해있던 줄리아는 '무색'이 워낙 조용히 일어난 탓에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하얀색'은 그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얀색'은 '무색'이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따로 물어보진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이 알아야 할 일이었다면 '무색'이 먼저 자신에게 이야기해줬을 테고, '하얀색'이 알아야 할 일이 아니라면 답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무색'이 나갈 때 그가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을 보면 사소한 트러블이 생겨서 그걸 처리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고, 사무실을 나간 건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것이 '하얀색'이 짐작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잠시 후, '무색'이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무색'은 하얀색의 생각대로 사소한 트러블을 처리하고 온 상태였다. 정확히는, 처리중인 상태였지만.
"이부키 씨는 5분 후에 사무소 앞의 카페에 나타날 테니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줄리아 씨."
'무색'은 담담한 얼굴로 츠바사가 언제, 어디에 나타날지 알려주며 츠바사와 줄리아 사이의 트러블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수행했다.
"오, 그래? 빨리 가봐야겠네. 쌩큐."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줄리아는 '무색'이 잠깐 나갔다 오면서 츠바사가 나타날 곳을 알아냈다는 사실에 놀라 있었다. 잠깐 동안은 허풍이 아닐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무색'은 절대로 허풍을 떨어댈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나중에 보자고, 프로듀서."
프로듀서에게 인사를 남기고 난 뒤, 줄리아는 츠바사가 나타난다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3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줄리아가 츠바사를 찾아 떠나자 '무색'과 '하얀색',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상적인 소음이 빈 자리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사무실을 뛰쳐나갔던 '검은색'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은 그녀가 언젠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얀색'만이 문자를 보냈을 뿐, 별로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또 다시 사무소의 문이 열렸다.
"오늘도 Nice한 one day네요, 여러분들!"
그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긴 머리에 리본을 달고 목에 헤드폰을 건 소녀였다. 소녀는 희한하게도 영어를 섞어 사무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활발하게 인사했다.
"어라? today는 people이 조금 few하네요?"
소녀는 사무실 안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로코 씨."
그런 소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무색'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예명을 불렀다.
"어제도 그 같잖은 작품을 만들다가 늦게 자신 겁니까."
"같잖은 작품... 이요?"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느라 밤을 샌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프로듀서, '무색'은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을 추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티스틱한 소녀, 로코는 자신을 추궁하는 말보다 자신의 작품이 '같잖다'는 소리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 말을 그저 흘려넘길 수가 없었다.
"로, 로코아트는 같잖은 작품이 아니라고요!"
"재료비가 아깝습니다. 로코 씨는 아이돌이지, 아티스트가 아니잖습니까."
"로코는 아이돌이면서 또한 아티스트라고요!"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로코 씨가 무대의 디자인이나 의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쪽으로 고려해 볼 만한 사항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멋대로 뜯어고치는 등의 행위는..."
"그만, 그만." '무색'의 말을 듣다 못한 '하얀색'이 '무색'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하고 싶으면 하게 해 주라고."
"선배."
'무색'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얀색'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하얀색'이 한 말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색'은 자기 자신의 말도 틀릴 건 없다고 생각했다. 로코는 확실히 손재주가 있는 아이돌이었고, 그것을 살리기 위해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작품을 만드느라 아이돌로서의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것은 주객전도였다. 765 프로덕션은 아이돌을 키우는 곳이지, 미술가나 조각가처럼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고파는 부류의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이돌이 아이돌로서 일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이 '같잖은' 작품이지 뭐겠는가.
"네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알겠는데, 말은 좀 가려서 해 줘."
"알겠습니다."
타당한 말이었다. 이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무색'이 자신의 말을 정정하기 위해서 로코를 돌아보자, 로코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무색'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무색'은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로코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같잖다는 말은 작품의 질이 낮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무색'은 일을 위해서 한 조언이 아이돌의 컨디션에 영향을 끼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저 로코 씨가 아이돌로서의 일에 조금 더 신경써주었으면 해서 한 말이었습니다만, 표현 방식이 잘못되었군요. 제 실책이었습니다."
+3 '무색'의 사과에 대한 로코 양의 반응.
로코 양을 아껴주세요. 착하고 귀여운 아이돌입니다.
"다음엔 careful하면서 말해주세요!"
@밀리마스중에 로코를 제일 좋아해요!
"흥. 다음엔 careful하면서 말해주세요!"
다행히도 로코는 '무색'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자, '하얀색'은 로코에게 어째서 사무소에 온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여기 온 이유? 아! 그걸 forget하고 있었군요!" 그녀가 활발하게 말했다. "Roco가 여기 온 이유는 말이죠...!"
+3 로코 양이 사무소에 온 이유.
"mizuki를 찾고 있었답니다!"
"미즈키는 왜?"
'하얀색'은 로코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프로듀서로서 아이돌들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로코가 미즈키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얀색'이 알기로 로코의 스케줄과 미즈키의 스케줄은 서로 연관이 없었기에 일 때문에 찾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로코가 여유롭게 말하는 것을 보면 딱히 급한 일도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일이라는 뜻이었고 그는 그 개인적인 일이 몹시 궁금했다.
"roco의 art를 mizuki의 magic과 collaborate한다면 더욱 perfect한 masterpiece가 탄생할 것 같아서요!"
"마카베 씨라면 조금 전에 사무소를 나갔습니다." 로코가 말을 끝내자마자 '무색'이 말했다.
"오? office에 come했었던 건가요?"
그녀가 대답하자, '무색'이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네. 나간지 조금 되긴 했지만, 멀리 나가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어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얼핏 들으면 축객령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목표를 위해 빠르게 행동하라는, '무색' 나름대로의 살가운 말이었다.
"그럼, roco는 이만 가보겠어요!"
"응."
"문 닫는 것, 잊지 말아주십시오."
사무소를 나서는 로코를 보며, '하얀색'은 '검은색'과 같이 있을 미즈키를 떠올리고 그녀를 걱정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뛰쳐나간 '검은색'을 따라나갔으니 좋은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텐데, 혹시라도 미즈키가 '검은색'의 말에 기분이 상해 있다면 로코가 도움이 될 것이었다.
+2 시점 이동, 마카베 양/로코 양/'검은색'
+3 현재 상황.
역시 꽤나 된 창댓은 관심 대상이 아니로군요.
좀 씁쓸하지만, 잘 됐죠...
같은 시각, 미즈키가 떠나고 나서 기분 전환을 겸해 거리에 나가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운 후 다시 사무소로 돌아가던 '검은색'은 자신의 운세를 욕하고 있었다.
"쯥, 왜 오늘은 되는 일이 왜 하나도 없냐. 에잉, 거지같은 인생 같으니."
일을 따오려고 나가서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죄다 허탕. 나간 김에 겸사겸사 원래 잡혀있던 스케줄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러 갔더니 웬 시답잖은 놈과 둘만 남으니까 그놈이 미친 소리를 하질 않나. 덕분에 평소에 쓰던 가면은 내팽개치고 정말로 속 시원하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그 시답잖은 놈은 꼴에 높으신 분이라 일개 프로듀서가 대들면 안 되는 존재였기에 결국 원래 잡혀 있던 일도 말아먹어 버렸으니 그녀가 오늘을 기념일로 선정하여 매년 이맘때마다 그 사람을 한없이 씹어대도 별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높으신 분'이 오늘 그녀에게 저지른 최악의 일은 개소리를 늘어놓은 것도,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돼지 목에 걸린 진주마냥 꿰차고 있던 자신의 직책을 사용해서 그녀와 미즈키에게 불합리한 처사―물론 '검은색'이 그다지 좋지 않은 말을 한 것이 기폭제였지만 그녀가 '하얀색'이나 '무색'에게 하는 것처럼 막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 논리적으로 대들었을 뿐이었다―를 아주 멋들어지게 선사해준 것도 아니었다. 그가 저지른 최악의 일이란 바로 미즈키가 오늘 사무소에 오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미즈키가 오늘 사무소에 찾아와서 결과적으로 자신의 기분이 나빠졌고 덕분에 담당 아이돌의 기분이 상해버렸으니, 이만한 엿먹이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근본적으로 이 상황은 '검은색'이 조금만 참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지만 '검은색'에게는 자신 대신 욕먹을 존재가 필요했고, 애초에 그 사람이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지만 않았어도 '검은색'이 미즈키에게 짜증낼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나중에 뭐라도 좀 사줘야겠네."
물론 그녀도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다만 자신이 잘못했으니 달래줘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문제가 되기 전에 해결해야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점이 문제였을 뿐.
"빨리 가서 일이나 해야지. 아으, 귀찮아."
+3 다음 상황!
그리고 정말로 앵커가 없으니 쉴 수 있고 말이죠.
아, 물론 본심은 아니니까요.
"...안녕, 배드한 하루야."
"?...무슨 안좋은 일 있었나요?"
"아무것도 아니야."
"흠...것보다 미즈키를 보신적이 없으신가요?"
'미즈키..? 미즈키는 왜 찾는데,"
로코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까전에 만나긴 했는데...사무소에 없었어?"
로코는 고개를 저었다.
'사무소에 없다니....그럼 어디로 간거지?"
별일 아니겠지하고 생각하지만 조금은 걱정된듯 하였다.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가던 '검은색'이 마주한 것은, 때마침 사무소 건물에서 나오고 있던 로코였다.
"안녕하세요! 나이스한 one day네요!"
"...안녕, bad한 하루야."
'검은색'은 로코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한 점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로 로코를 흉내내며 말했다.
"왜 그러시나요?" 로코가 말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꺼."
'검은색'은 손을 내저으며 귀찮은 일을 늘리지 않기 위해서 로코의 질문을 흐지부지 넘겼다. 그런 그녀의 말을 들은
로코 또한 계속 캐물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녀의 일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흐음... 그것보다, mizuki를 보신 적 없으신가요?"
'검은색'의 'bad한 하루'와는 별개로, 그녀는 '검은색'에게 물어볼 것이 아직 남아있었다. 자신의 앞에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삐딱하게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의 담당 프로듀서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방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미즈키? 걔는 왜 찾는데?"
로코는 이미 '하얀색'과 '무색'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했다. '검은색'은 그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대충 흘려들었지만, 요점 자체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심이 생겼다. 로코가 미즈키를 만나려는 이유 자체는 자신과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로코의 이야기에는 그녀를 신경쓰이게 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전에 만나긴 했는데, 사무소에 없었어?"
그것은 조금 전에 사무소에서 나왔을 로코가 자신에게 미즈키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에 왔다는 것은 분명 사무실에 들러서 미즈키를 찾았다는 말일 테고, 그렇다면 머저리나 일벌레 자식한테서 미즈키가 방금 사무실에 왔다가 나갔으며 아직 건물 안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로코는 분명 건물 안을 찾아보았을 텐데, 그런 로코가 자신에게 미즈키의 행방을 묻는다는 것은 미즈키가 건물 안에 없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로코는 고개를 저었다.
'검은색'은 팔짱을 끼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줄곧 미즈키가 자신과 이야기하다 기분이 상해 자리를 잠깐 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 미즈키가 건물 밖으로 나갔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밖에 나간 사이 그녀와 미즈키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던 미즈키가 자신이 없는 것을 보고 나간 걸지도 몰랐다.
별 일 아니겠지. 이걸로 귀찮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야.
'검은색'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미즈키가 걱정되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왼손 검지를 움직여 자신의 팔을 계속 두드리며 고작 이런 일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3 다음 상황.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그녀는 미즈키를 지금 찾아서 사과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질질 끌면서 서로 답답하게 하는 것보다 지금 승부를 보는 것이 그녀와 미즈키의 관계에 좋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 해결하는 것이 나중에 해결하는 것보다 덜 귀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검은색'은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인력'에게 제안했다.
"야, 로코. 나랑 같이 미즈키 찾으러 가자. 어차피 볼 일 있다며."
"me, me랑 같이 find하시겠다고요?"
그런 그녀의 제안을 받은 로코는 약간 당황스러운 상태였다.
'검은색'의 속을 알 턱이 없는 로코를 비롯한 극장의 다른 아이돌들은 '검은색'을 말과 행동이 험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지만 할 건 다 해주는, 나쁘지만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로코를 비롯한 몇몇 아이돌들은 그녀를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싫으면 말고."
그리고 그것은 '검은색'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아, 아뇨! roco는 딱히 dislike한다는 게 아니라!" 로코가 말했다. "잠깐 different things를 think했을 뿐이니까요!"
"그럼 됐어. 가자."
나 참, 당황하지 않는 거랑 둘러대는 것 정도는 제대로 할 수 있어야지.
'검은색'은 그렇게 생각하며 로코와 함께 미즈키가 어디로 갔을지 토의하기 시작했다.
+3 마카베 양을 찾으러 두 사람이 갈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