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하루카] 한밤중 공원에서 단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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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1, 2012 01:52에 작성됨.

   어둑한 한밤중, 소녀처럼 보이는 인영은 발이 꼬이며 비틀거리더니 옆의 말쑥한 남자에게 매달렸다.
   “에헤헤, 프로~듀서~씨! 우햐.”
   소녀의 입에서 새어나온 알콜향이 프로듀서의 코를 찔렀다. 고약한 냄새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들이데니 프로듀서는 더 심하게 느끼곤 표정을 찡그렸다.
   “윽, 술 냄새…. 하루카 괜찮아?”
   “괘앤찮아요~! 딱, 딱 한 잔인걸요! 에헤헤.”
   하루카는 휙하고 프로듀서 옆에서 떠나더니 손을 팔락팔락 흔들며 빙글빙글 돌았다. 하루카 꺅꺅 큰 웃음소리를 내자 주위의 사람들도 이상한 눈으로 둘을 바라봤다.
   프로듀서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하루카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하루카는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샥 피해버리더니, 몸을 돌려 프로듀서를 보며 베, 하고 혀를 내밀었다.
   “그렇게 쉽게는 안 잡혀요! 프로듀서 씨, 술래잡기에요, 술래잡기! 대시에요!”
   대시란 외침과 함께 하루카는 부스터를 쓴 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프로듀서만 멍하니 제 자리에 남겨졌다.
   “하, 하루카!”
   결국 프로듀서도 전속력으로 달렸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으니, 금방 잡을 거라 프로듀서는 생각했지만 매일매일 트레이닝하는 아이돌은 장난이 아니었다.
   조용한 밤거리에 둘의 뜀박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루카는 나 잡아보라며, 꺄륵꺄륵 웃어댔다. 반면 이를 악물고 하루카를 뒤쫓는 프로듀서는 주위 사람들의 따갑다 못해 아픈 시선에 눈물이 났다.
   겨우겨우 쫓아가 프로듀서가 하루카를 잡은 곳은 한적한 공원이었다.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공원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흐엑, 자, 잡았다.”
   프로듀서는 하루카의 소매를 잡고 헐떡였다. 소량이지만 술 먹고 난 뒤에 바로 뛴 거라 술기운이 슬금슬금 치밀었다.
   하루카는 새빨개진 얼굴로, 피식피식 웃어댔다. 그렇게 달렸음에도 별 탈이 없어 보였다. 하루카는 애교를 부리려는지 손으로 자신의 볼을 감싸더니 코맹맹이 목소리를 냈다.
   “힝, 잡혀버렸네요. 그럼 이제 전――우욱.”
   그걸로 애교는 박살났다. 하루카는 입을 틀어막으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술 먹고 나서 바로 뛰니까 그렇지. 술도 잘 못 먹으면서.”
   “아, 아니에요! 술이래 봤자 딱 한 잔이었는걸요. 그런 걸론 안 취해요――욱.”
   “에휴, 그래그래.”
   다시 헛구역질하는 하루카의 등을 프로듀서는 토닥였다. 방송국 관계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흥이 오른 상대방이 술을 권하는 바람에 프로듀서도, 하루카도 술을 마셨다. 물론 하루카는 맛만 보라며 한잔만 마셨다.
   그런데 그게 이 꼴이다. 프로듀서는 하루카에게 술을 먹이면 자신의 손에 장을 지지겠다며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했다.
   “많이 힘들면 여기서 잠깐 앉았다 갈까?”
   “예…….”
   프로듀서의 제안에 두 사람은 근처 벤치에 앉았다. 하루카는 벤치에 앉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귓불까지 새빨개진 하루카를 보며, 프로듀서는 그저 옆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물이라도 사올까?”
   “괘, 괜찮아요. 그냥 제 옆에 있어주세요….”
   “응, 알았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바로 구해올게.”
   “…고마워요, 프로듀서 씨.”
   힘겨운 표정 속에서 피어난 하루카의 작은 미소에, 프로듀서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술기운 탓인지 볼엔 연한 홍조가 감돌고, 맑게 반짝였던 동그란 눈은 살짝 감겨 그 매력을 드러낼 듯 말 듯 애를 태웠다. 이제 막 소녀티를 벗어나 어른으로 향하는 듯한 하루카의 표정에서 프로듀서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다른 벤치에서 키득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 안된다니까.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뭐 어때. 흥분되고 좋지. 딱 키스만, 키스만 하자. 응?”
   “싫다니깐. 어휴, 자기도 참.”
   쭙, 쪼옥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프로듀서의 귀에 슬금슬금 기어들어왔다.
   ‘으아, 이, 이 소리는!’
   적나라한 사운드가 스피커에서 서라운드로 튼 것처럼 사방에서 울려댔다. 다른 사람이라곤 프로듀서와 하루카뿐이니, 듣기 싫어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프로듀서는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하루카를 보지 못했다. 민망했다. 밤의 공원이 그렇고 그런 데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하, 하루카. 이제 그만 갈까?”
   차마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어 프로듀서는 하루카에게 말했다. 프로듀서와 아이돌 관계라고 해도, 어엿한 여자아이―그것도 꽤 귀여운 소녀와 함께 저런 걸 듣는 상황은 참기 힘들었다.
   하루카도 저 소리를 들었을 거라 생각하자 프로듀서가 다 부끄러웠다. 한시라도 빨리 여길 떠야한다.
   “…프로듀서 씨.”
   후우, 하고 하루카는 짙은 숨결을 토했다. 끈적하고 뜨거운 숨결에   프로듀서는 움찔 몸을 떨었다.
   “하, 하루카?”
   “……저랑 좋은 거 해요.”
   “뭐――웁.”
   딱, 하고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둘의 입안에서 울렸다.
   입술을 포갠 상태로 하루카는 입술을 살짝 벌려, 자신의 입술보다 큰 프로듀서의 입술 전체를 감쌌다. 대꾸도, 반박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추웁, 침이 엉겨 붙는다.
   ‘?!?!?!?’
   정작 상대인 프로듀서는 패닉 상태다.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로 프로듀서는 코앞에서 보이는 하루카를 보곤, 놀라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하루카는 이를 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달라붙어 프로듀서의 입술을 탐했다.
   쩝, 쭈웁.
   어린아이가 사탕을 빨듯이, 하루카의 입술은 프로듀서의 입술을 놓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도망칠 데도 없어서 프로듀서는 그저 하루카에게 몸을 맡겼다.
   서로의 입술을 비비다가, 하루카 쪽이 먼저 몸을 뗐다. 그제야 숨이 트여 프로듀서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푸하.”
   “하아…하아….”
   달뜬 숨을 내쉬며, 하루카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인다.
   폐가 산소를 머금자 프로듀서는 굳어버렸던 머리가 돌아갔다. 프로듀서는 몽롱한 표정인 하루카를 보며 충격에 더듬더듬 거리면서 말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하루카, 나는 프로듀서라―.”
   따지듯이 말하는 프로듀서의 입술을 하루카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지그시 눌렀다.
   “쉬잇. 프로듀서 씨도 좋으시잖아요. 인기 아이돌과 이런 일 하는 거, 남자라면 꿈꾸지 않나요?”
   프로듀서는 아니라고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프로듀서에겐 하루카는 담당 아이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자 하루카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미소 짓는 하루카 너머로 동그랗게 뜬 보름달이 보였다.
   “후후. 아직 벌이 더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다시, 하루카는 입술을 맞췄다.
   아찔한 체향과 알콜 냄새가 프로듀서의 코를 괴롭혔다. 달콤한 체향은 프로듀서의 정신을 서서히 무너뜨렸고, 알콜 냄새는 몸 안에 잠잠하게 앉아있던 술기운을 다시 일으켰다.
   프로듀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동안, 강제로 벌려진 입술 사이로 부드러운 침략자가 들어왔다.
   하루카의 따뜻하고 물컹한 혀는 자연스럽게 입 안으로 들어오더니 프로듀서의 이빨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더니 잇몸을 슬그머니 건들었다. 짜릿한 감촉이 프로듀서의 머리를 뒤덮는다.
   정작 입 안의 주인인 프로듀서의 혀는 꼼짝도 못하고 침략자의 행위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프로듀서의 잇몸을 희롱하던 하루카의 혀는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내듯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목표는 쥐죽은 듯 있는 프로듀서의 혀. 하루카는 혀를 세워 프로듀서의 혀를 살짝, 살짝 건드렸다.
   푸딩 같은 물컹한 감촉이 혓바닥에서 느껴지자 프로듀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이건 안 돼! 정말로 안 돼!’
   정신의 끈을 놓기 일보 직전이다. 하루카의 혀는 호응해달라며 프로듀서의 혀를 졸라댔다. 같이 놀아달라는 장난기 어린 아이처럼.
   여기서 혀를 움직였다간 그대로 끝이다. 팔에 힘을 세게 줘서 하루카를 떨쳐내야 했다.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관계를, 무너뜨릴 순 없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엔 입 안에서 느껴지는 하루카의 존재가 너무나도 달콤하고, 씁쓸하고, 중독적이다. 어떻게 해야 되나 머릿속으로 고민하는 동안에도 하루카의 혀는 꼬물꼬물 움직였다.
   미친 듯이 치솟아 오르는 본능과, 이제 마지막 방어선만 남긴 이성. 프로듀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프로듀서가 하나의 결정을 내린 순간, 하루카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러더니 하루카의 몸이 스르륵 하고 무너져 내렸다.
   깜짝 놀라 프로듀서가 하루카의 상태를 확인하자, 하루카는 눈을 살포시 감은 채 새액, 새액 소리를 냈다.
   “……자버렸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프로듀서는 하루카를 내려다 봤다. 방금 전의 그런 행동을 한 소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정말 천사 같은 모습이다.
   잠들어버린 하루카를 보며, 프로듀서는 낮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한밤중의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하루카 글이에요. 작정하고 쓴 거라 묘사가 좀 있긴 해도 내용이 짤막하니 뭐..이제 다음은 약간 수위 높은 마코토리 글입니다.

[이 게시물은 시압님에 의해 2013-06-06 23:57:35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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