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765프로로 돌아오는 길 (2)

댓글: 6 / 조회: 1214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3-01, 2013 21:42에 작성됨.

-?월 ?일, 시내 어딘가-

“자네! 그래! 거기 자네! 잠깐만 나 좀 보세”

“네? 저 말입니까?”

“그래! 헉...... 헉......”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나를 잡아세운다. 무슨 일일까? 내가 전화기라도 놓고 갔나?

“일단 진정하시구요...... 무슨 일이시죠? 제가 무엇을 놓고 갔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혹시 자네 지금 무슨 직업이 따로 있나?”

"아니오, 지금은 직장 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먼! 그렇다면, 자네 혹시 나와 함께 아이돌들을 키워볼 생각은 없나?”

중년의 남자는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뜬금없이 나에게 아이돌을 키워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다. 설마 야쿠자라던가 인신매매단이라던가 다단계 판매상이라던가......? 이런건가?

“하하......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이런 식으로 물어보시면 곤란합니다.”

“잠깐! 나는 자네에게 일자리를 제의하는......"

갑자기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나는 경계하는 자세와 목소리로 그 남자를 향해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강경한 태도에 주변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당황한 그 남자는 잠깐 물러서는 듯 하더니 다시 나에게 부탁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자네의 행동과 눈빛을 볼 때 분명 아이돌들을 키우는데 제격이었다고 생각해서 부탁했던 거라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제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관찰했단 말입니까......?"

나의 질문이 날카로웠던지 그 남자는 부끄러운 듯 한 표정을 지은 채로 웃는다.

"흐, 흐흠...... 어쨋든, 내가 일하는 곳의 주소를 줄 테니 꼭 한번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네. 그러면 자네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 자, 여기 명함일세!"

나는 살짝 풀린 눈으로 명함을 쳐다봤다. 하얀 색 바탕의 검은 글씨라는 매우 표준적인 디자인으로 구성된 명함이었다. 그리고 그 명함엔 회사 이름과 직책, 성함과 주소 기타등등......이 적혀있었다. 이 명함으로 추측해보건데 아마 이 분은 사장으로 추정된다.

"꼭 연락 부탁하네!"

.....라는 말을 남긴채 사장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남자는 많은 인파들을 사이로 사라졌다.

-3월 17일, 06:30AM, 자택 내의 안방-

"아으으으으......"

격렬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머리맡에 놓아둔 두통약을 한 개 꺼내어 삼킨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30분이다.

두통약의 약효가 점점 퍼지기 시작하면서 두통은 가라앉음과 동시에 무언가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 여유를 놓치지 않고 어젯밤에 꿨던 새로운 꿈에 나왔던 중년 남성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아아...... 아무리 봐도 그 사람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1시간 쯤 지났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그 중년 남성에 대한 기억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다음 일정을 위해 탐정놀이를 포기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내 얼굴을 다시한 번 들여다봤다.

내가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다니게 되려니 두려움과 후회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후회감이 더 밀려온다. 특송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

-3월 8일, XX특수운송 도쿄 차고지 운전수 대기실-

"뭐라고? 자네가 사직서를?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기대가 많으셨을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지금까지 훌륭한 성과를 내면서 불만없이 회사를 다니던 네가 왜 사직을......"

동료 운전기사들에게 둘러싸인 내 앞에 서서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은 XX특수운송의 차량관리팀 팀장이신 다카하시 신조 씨와 배차팀장이신 구로다 테츠야씨.

"뭐가 불만이기에 나가는 건가? 휴가? 돈? 그런거라면 내가 사장에게 부탁할께! 그딴것 쯤은 내가 책임지고 팍팍 줄 수 있어! 인간관계? 이미 자네는 회사에서 본보기가 되는 인물일 뿐더러 다른 직원들하고 잘 어울렸잖아! 게다가 어떤 상황속에서도 거의 정시에 물건을 배송하는 너같은 사람은 우리 회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란 말이다!"

"구.....구로다씨 그게 아니라......"

"아아, 자네같이 트럭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 나가면 앞으로 난 어떻게 기사들과 정비사들을 관리해야한단 말이냐...... 장시간 운전때문에 몸이 불편해져서 그런거라면 정비직으로 전환, 아니 내 직위를 자네에게 넘겨줄 수도 있네!"

"차량팀장님! 그런 게 아니라구요! 잠시만 있다가 오는거니까...... 쓰! 쓰러지면 안되요! 정신차려요!"

"웅성웅성......."

내가 나간다는 말에 XX특수운송의 스태프들과 운전수들은 셀 수없이 다양한 이유로 메가톤급의 멘탈붕괴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나는 그 분들을 달래기 위해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

"뭐,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하기로 타카기 사장님과 약속했으니, 약속은 지켜야지."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운 후회와 잡념을 없애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틀어놓은 도킹스피커에 나오는 신나는 팝송을 따라부르며 입을만한 옷을 찾기 위해 옷장으로 걸어갔다.

-3월 17일, 08:25AM, 765프로덕션 3층 전략회의실-

"그건 안 돼요!"

아침부터 날카로운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비서로 추정되는 녹색 사무원 복장을 입은 여성은 쟁반으로 얼굴을 1/3쯤 가린 채 회의장을 보고 있었고, 남색 정장을 입은 롤빵머리의 여성은 두려운 눈빛과 함께 신중한 표정을 지은 채 벌떡 일어나서 날카로운 눈으로 테이블 가운데에 있는 사장을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새우와 비슷한 모양으로 머리를 묶은 검은 색 정장의 안경쓴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정말로 그 프로듀서인지 확신할만한 증거라도 있나요? 만약 그 사람이 그 프로듀서가 아니라면요, 흑심을 품고 접근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사장님은 지나치게 직감을 믿으시는거 같아서 걱정이에요! 지난번에도 그것때문에 사기도 당할 뻔 하셨......"

"그만하게 리츠코 군. 내가 몇 개월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관찰해본 뒤 확신이 섰기 때문에 그 사람을 설득했던 것일세. 거기다가 그 사람은 자신이 내가 생각하는 그 프로듀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스스로 6개월이라는 시한까지 그었어. 그러니 흑심을 품었다라는 주장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네."

자신의 말이 끝나서 조용해진 틈을 이용해 타카기 사장은 자신의 옆에 있는 차를 한잔 들이킨 뒤,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리츠코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한 번 자신의 주장을 거센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장님, 아직 신분확인도 제대로 안......"

"거기다가, 그 사람은 내가 가져온 사진과 이력서를 봤을 때의 표정과 어투로 추측해보건데, 어느 정도 자신이 그 프로듀서였다는 사실을 최소한이라도 자각하고 있는 것 같아. 그가 여기로 돌아와서 자네와 내 모습을 본다면 뭔가 더 기억해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일단 나를 믿고 그 사람을 만나보게.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겠네. 제군들, 오늘도 각자 주어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이상! ...... 아, 그리고 그 사람과의 대면식은 10시에 있을 것이고, 아이돌 및 후보들과의 대면식은 1시에 있을 예정이니 스케줄에 참고하도록!"

......라는 타카기 사장의 말과 함께 회의는 끝났다. 리츠코는 뭔가 굉장히 불만인 듯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갔다. 얼마나 강력한 다크포스를 내뿜는지 옆에 있던 오토나시 코토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무원은 겁에 질려 '히익!' 말고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리츠코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시무라 치카코라고 불리는 롤빵머리를 한 키 작은 여성 프로듀서가 리츠코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리츠코씨!"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리츠코는 몇 계단 위에서 걱정스러운 듯한 눈빛을 한 치카코를 올려다봤다.

"오늘의 리츠코씨, 평소같지 않게 어두워보였어요."

"......"

리츠코는 그 자리에서 멈춘 채 치카코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치카코는 리츠코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며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정말로 그 사람, 만나기 싫은거에요? 그래도 그 분은 당신을 키워주신......"

"치카코씨, 저 혼자 있게 해 주시겠어요?"

"......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치카코는 고개를 돌린 채 돌부처처럼 서 있는 리츠코를 바라보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3월 17일, 09:28AM, 765프로덕션 빌딩 앞 주차장-

"하아, 여기인가......"

나는 나의 유일한 애마인 낡아빠진 2009년형 흰색 미츠비시 트라이톤 트럭의 문에 몸을 기댄 채로 765프로덕션이 통째로 구입해 입주해 있는 약간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에 유행한 디자인을 한 5층짜리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이 765프로덕션이 있는 건물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건물 입구로 걸어가 '765 프로덕션' 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명패를 확인했다.

"오오! 여기가 765 프로덕션이군 맞구나 맞아......"

약속한 대로 타카기 사장님을 만나기 위해 765프로의 첫번째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넌 내가 찾던 그 사람이 아니었군! 얼른 꺼져!'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쁘고 잘생긴 아이돌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순식간에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벽에 붙어있는 전신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며 탄식한다. 너무 초라해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에 전기수리를 하러 온 건지, 프로듀서 생활을 시작하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의 옷차림이구만. 이럴 줄 알앗으면 어젯밤에라도 롯본기에 가서 양복을 하나 맞춰오는 건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식은땀을 흘리며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글쓴이의 한 마디 -

다카하시씨와 구로다씨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
[이 게시물은 에아노르님에 의해 2013-06-07 00:07:14 창작글판에서 이동 됨]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