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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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3, 2014 02:17에 작성됨.

P(後路頭士)는 765(南無五)에 살았다. 아래층으로 곧장 가면 타루키정이 있고, 그 사이로 망가진 엘리베이터가 가만히 서있다. P의 사무소 창문은 바깥을 향해 언제나 열려 있었다. 사무소라야 십여 평 되는 건물으로 창문도 닫히지 않는 오막살이였다. P는 사무소에 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플래그 꽂기만을 좋아했으므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사무원이 잡일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어느 날, 사무원인 코토리는 배고픈 것을 참다못해 눈물을 흘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한평생 영업도 하러 가지 않으면서 어쩌자고 아이돌과 놀기만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P는 태연자약, 껄걸 웃었다.

“내 아직 말이 서툴러서 그렇다네.”

“그렇다면 사무 일도 못 한단 말입니까.?”

“워드 엑셀을 평소에 배우지 못했으니 어쩌오?”

“그렇다면 하다못해 상술이라도 해야지요.”

“상술을 하려 해도 CD이 없으니 어쩌오?”

코토리는 드디어 역정을 냈다.

“당신은 밤낮없이 커뮤를 쌓더니, 그래 ‘어쩌오’ 하는 것만 배웠수? 사무일도 못 한다, 상술도 못한다, 그럼 도둑질은 어떻수?”

P는 이 말에 듀얼쇼크를 내려 놓고는 벌떡 일어섰다.

“애석한 일이로다. 내 추억 100개를 작정하고 커뮤를 하려 했더니 이제 겨우 70개로구나.”

그 길로 P는 문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방송국 복도에 아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방송국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면서 길가는 사람은 붙들고 물었다.

“업계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누구요?”

그 사람은 이쪽 바닥에서 제일가는 갑부라면 쿠로이씨(黑氏)라고 일러주었다. P는 그 사무소를 찾아갔다. 주인을 만나 길게 읍한 후에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내 사무소가 가난하여 영업 밑천이 없소 그려. 무엇을 좀 해보고 싶으니 돈 1억 엔만 빌려주시오.”

“그렇게 합시다.”

쿠 로이 씨는 대뜸 승낙하고는 1억 엔을 내주었다. P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지고 가 버렸다. 쿠로이 씨 사무소에는 그 아이돌들과 기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문밖을 나서는 P의 몰골을 보아하니, 이건 영락없는 거지가 아닌가. 프로듀서랍시고 양복을 입기는 했지만 먼지 투성이고, 구두라고는 하지만 뒤꿈치가 한쪽으로 다 닳아빠졌다. 다 낡아빠진 넥타이며, 땟국이 줄줄 흐르는 셔츠, 거기다가 기침까지 콜록대는 품이 거지 중에도 상거지였다. 이런 자에게 1억을 선뜻 내주다니.

“사장님께서 아시는 분입니까?”

“모르는 사람일세.”

놀라 묻는 말에 대답도 태연했다.

“하루아침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1억 엔을 내버리시다니, 더구나 그 이름도 묻지 않으시고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쿠로이 씨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 건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닐세. 무릇 영업을 하러 오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생각을 이것저것 길게 늘어놓게 마련이야. 약속은 꼭 지킨다느니, 염려 마라느니 하고 말일세. 그러면서도 얼굴빛은 어딘가 구겨져 보이고 한말을 되뇌곤 하지. 그런데 이 사람은 옷이며 신발이 모두 떨어지긴 했지만, 우선 말이 짤막하고 사람을 대하는 눈이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하며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네. 방송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벌써 전부터 제 아이돌들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어. 그러니 그가 한번 해보고 싶은 영업이라는 것도 적은 일이 아닐 게고, 나 또한 그 사람을 한번 시험해보려는 거야. 게다가 주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1억 엔을 내주었으니 구태여 그의 이름을 물어서 무엇하겠나.”

큰 프로덕션의 사장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1억을 손쉽게 얻은 P는 사무소에도 가지 않고 약국으로 갔다.

 그 는 약국에 가서 스테드리, 에나드리, 마이스테, 마이에나 따위 드링크란 드링크를 모두 거두어 샀다. 파는 사람이 부르는 대로 값을 다 주고, 팔지 않는 사람에게는 시세의 배를 주고 샀다. 그리고 사는 대로 한정 없이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이렇게 되자 오래지 않아서 드링크란 드링크는 모두 바닥이 났다. 큰손들의 사무소에서 이벤트나 영업을 하려고 해도 드링크를 구경하지 못해 순위에도 들지 못할 형편이었다. 프로듀서들은 이변에 P에게 달려와서 드링크를 얻을 형편이 되었고, 저장했던 드링크들은 10배 이상으로 호가하였다.

“허어, 겨우 1억엔으로 이 업계를 기울게 할 수 있다니 이 바닥을 알만하구나!”

P는 이렇게 탄식했다. 드링크를 다 처분한 다음 그는 CD, 형광봉, 부채, 티셔츠 등을 모조리 사 가지고 한국으로 건너가서 그것을 팔아 이번에는 옷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모조리 사들였다.

“몇 해가 못 가서 아이돌들은 의상도 맞추지 싸매지 못하게 될 게다.”

과연 P가 장담해 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의상 값이 10배나 뛰어올랐다. 옷들을 내다 파니 수십억이 되었다.

어느 날 P는 늙은 복덕방 주인 한 사람에게 물었다.

“도쿄밖에 혹시 사무소를 차릴만한 빈 건물이 있지 않던가?”

“있습지요. 옛날에 방랑을 떠나 곧장 서쪽으로 한나절을 가다가 한 건물에 들어갔는데 건물이 높고 넓고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잘 들어왔습죠. 그뿐입니까. 미녀와 소녀들이 떼를 지어 다녀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더이다.”

P는 주인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선생이 만일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준다면 평생 동안 함께 부귀를 누리도록 해주겠네.”

복덕방 주인은 P의 말을 따랐다. 이리하여 차가 별로 지나지 않는 날을 기다려 서쪽으로 곧장 차를 몰아 주인이 말한 건물에 이르렀다. P는 건물에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고 나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 이렇게 말했다.

“건물이 200평이 채 못 되니 무엇에 쓴단 말이냐. 다만 교통이 좋고 주변 환경이 좋으니 한갓 바지사장 노릇이나 할 수 있겠다.”

주인이 말했다.

“건물이 텅텅 비고 사람 하나 없는데 누구와 일을 한단 말입니까?”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게 마련이지. 덕이 없는 것이 걱정이지, 어찌 사람이 없는 것을 근심하겠는가.”

이 때 수백 명의 아이돌 지망생들이 나타나 공연을 하고 있었다. 여러 사무소에서는 사무원까지 풀어서 스카우트를 하려 하였으나 재목을 쉽사리 찾지 못했다. 그러나 지망생의 무리 역시 각 사무소에서 대대적으로 거절하고 나서니 쉽게 나아가 공연하기가 어려워져 마침내 깊은 곳에 몸을 숨기고, 급기야는 포기하는 판국에 이르렀다. P는 이 소문을 듣고 아이돌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리더를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100명이 공연을 해서 이익을 나누어 가진다면 한 사람 앞에 얼마씩 돌아가느냐?”

“그야 한 사람에 드링크 하나 값도 안되는 돈이지.”

“그럼 너희들에게 프로듀서는 있는가?“

“없소.”

“그럼 사무소는?”

“흥, 소속사가 있고 프로듀서가 있으면 왜 거리공연을 해?”

“정 말 그렇다면 왜 연습생으로 들어가 레슨을 받고 라이브를 해서 농사를 짓지 않나? 그렇게 하면 지망생이란 불쌍한 이름도 듣지 않을 테고, 정점을 노리는 도전의 재미도 있을 것이고, 아무리 밖으로 나가서 쏘다닌다고 해도 아이돌이라고 인정해 줄테니 얼마나 좋은가? 길이길이 의식이 풍족할 것이다.”

“허허,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스카웃이 안돼니까 그렇지.”

P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공연을 하면서 어찌 스카웃이 안되는 것을 근심한단 말이냐? 정 그렇다면 내가 마련해주지. 내일 역에 나가면 붉은 리본를 단 차들이 보일 게다. 그것은 다 돈과 의상을 가득 실은 배야. 갖고 싶은 대로 가져가거라.”

이 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지망생들은 하도 말 같지 않아서 모두 미친놈이라고 웃어댔다. 그러나 다음날 혹시나 해서 역으로 나가 보니, 허생은 이미 10억엔이나 되는 돈을 차에 싣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지망생은 크게 놀라, 이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두 줄을 지어 절했다.

“그저 프로듀서님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너희들이 질 수 있는 대로 가지고 가 보아라!”

P의 말이 떨어지자 지망생은 앞을 다투어 돈자루와 의상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욕심뿐이지 제아무리 옷 좀 입는다던 자도 10벌을 짊어지지 못했다.

“의 상 10벌도 입지 못하는 주제에 너희들이 무슨 아이돌을 한단 말이냐? 그렇다고 이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너희들의 얼굴이 다 팔렸으니 그것도 안 되고, 그렇다면 갈 곳도 없겠구나. 그럼 잘 되었다. 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이제부터 너희들은 한 사람이 10만엔씩 가지고 가서 사람 하나와 노래 한 곡을 구해 오너라. 너희들의 실력을 한번 보겠다.”

지망생들은 대답하고는 저마다 돈자루를 걸머지고 뿔뿔이 흩어졌다. P는은 300명의 아이돌을 관리할만한 준비를 하고 지망생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지망생은 기일이 되자 모두 모여들었다. P는 그들과 사람들은 모두 차에 태웠다. 허생이 지망생들을 사무소로 데려갔으므로 이때부터 거리도 잠잠해졌다. 건물에 자리를 잡자, 곧 댄스 레슨을 해서 안무를 배우고 보컬 레슨을 받아 노래를 부르니 순식간에 큰 프로덕션이 생겼다. 그런 다음 다시 영업을 했다. 실력이 뛰어나 팔러 다니지 않아도 섭외가 절로 들어왔다.

이렇게 되자 인기가 많아져 3개월 동안 신곡을 내지 않고 라디오만 하며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는 해외 진출을 하게 했다. 때마침 아이돌 붐이 일어나 팬 수를 세 배로 늘리고 돌아왔다.

“이제야 뭘 좀 해본 것 같구나.”

P는 탄식하고 나서 소속 아이돌 300명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내 처음 너희들과 여기로 올 때에는 먼저 부자가 되게 한 다음에, 따로 곡도 만들고 옷이며 악세사리 같은 것도 만들어 입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업계는 좁고 내 덕도 부족하니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날까 한다. 너희들은 고마웨를 부르거든 미테레우로 부르도록 가르치고, 또 하루라도 먼저 들어온 사람이면 드링크를 양보하는 따위의 덕을 길러야 한다.”

그러고는 바다로 가서 계약서를 모조리 불을 질러 없애버렸다.

“가지 않으면 오는 사람도 없을 게다.”

또 남은 돈과 의상도 물속에 던져버렸다.

“바다가 마르면 얻는 자가 있을 게다. 이것들이면 써먹을 데가 없다.”

마지막으로 아이돌 중에서 조련을 하는 자는 모두 불러내어 차에 태웠다.

“이 사무소에서 화근을 뽑아버려야 한다.”

이로부터 P는 온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러 아이돌을 데뷔시켰다. 그러고도 10억 엔이나 남았다.

“이것은 쿠로이 씨에게 빌린 것을 갚아야겠군.”

P는 실로 오랜만에 쿠로이 씨를 찾아갔다.

“그대는 나를 기억하겠소?”

쿠로이 씨는 놀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대는 얼굴빛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군. 1억을 몽땅 털린 모양이구려.”

P는 웃으며 말했다.

“재물로 인해서 얼굴이 좋아지는 것은 그대들에게나 있는 일이요. 돈이 어찌 도(道)를 살지게 한단 말이오.”

그러고는 10억엔의 어음을 쿠로이 씨에게 주었다.

“내 하루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커뮤를 끝내지 못했소. 그대의 만금을 부끄러워할 따름이오.”

쿠로이 씨는 크게 놀라 일어나서 절했다. 그리고 10억 엔을 사양하고 옛날 빌려준 돈에다 이자만을 계산해서 받으려 했다. 그러자 P는 화를 벌컥 내며,

“그대가 어찌 나를 장사꾼 취급을 한단 말이오.”

하 고는 소매를 홱 뿌리치고 일어나 가버렸다. 쿠로이 씨는 더 말해야 소용이 없을 줄 알고 가만히 그 뒤를 밟아보았다. 그는 곧장 타루키정 윗층으로 들어가더니, 거기 다 쓰러져가는 어느 사무소로 들어가 버렸다. 마침 오가와 씨가 가게 앞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저 사무소가 누구 사무소요?”

“P씨네 사무소라우. 늘 가난하면서도 커뮤 쌓기를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사무소를 나선 후로 소식이 끊긴 지 5년이오. 사무원이 혼자 있으면서 프로듀서가 나간 날로 제사를 지낸다우.”

쿠로이 씨는 비로소 손님의 프로덕션이 765라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다음날 쿠로이 씨는 P에게서 받았던 돈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사무소를 찾았다. 그러나 P는 여전히 사양했다.

“내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100억 엔을 버리고 10억 엔을 취하겠소? 내 이제부터는 그대의 빽으로 살 것이니, 그대는 수시로 영업을 돌아주오. 한달에 한 번씩 방송 하나만 따다 준다면 한평생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오. 무슨 까닭으로 재물을 가지고 나를 고단하게 만든단 말이오.”

쿠로이 씨는 여러 가지 말로 P를 달래보았지만 P는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이로부터 쿠로이 씨는 P의 사무소에 일거리가 없어질 것을 계산하고 때를 맞추어 방송을 잡아다 주었다. 그러면 P도 흔연히 반가워하였지만 혹시 분수에 넘치면 곧 좋아하지 않았다.

“어째서 내게 어그로를 몰아주려 한단 말인가?”

그러나 술을 가지고 찾아가면, 평소보다 더욱 반가워하면서 서로 권커니 잣거니 취하도록 마셨다. 두어 해가 지나니 두 사람의 정은 날로 두터워져서 백년지기처럼 다정해졌다. 언젠가 쿠로이 씨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다섯 해 사이에 어떻게 해서 그 돈을 벌었는가?”

“그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일세. 이 바닥은 자기들끼리만 해먹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그 안에서 생겨나고 그 안에서 소비되지 않는가. 1억이란 적은 금액으로 톱 아이돌을 다 키울 수는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열 명을 고루 키울 수 있는 것이 우리 업계야. 그리고 아이돌이 신인이면 다루기도 쉬워서 한 명이 시원치 않더라도 나머지 아홉 명은 인기가 좋아질 것이니, 이건 보통 작은 프로덕션들이 하는 문어발의 방법이지. 게다가 10억이면 대개 한 명의 대 스타를 키워낼 수 있으니, 노래건 춤이건 전부 다 먹어버릴 수 있지 않은가?”

쿠로이 씨는 듣고 나서 다시 물었다.

“그럼 처음에 내가 10억을 내어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를 찾아왔던가?”

P는 말했다.

“자 네가 꼭 내게 줄 것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만금을 가지고 있는 사장이라면 내주지 않을 수 없을 거야. 나 스스로 재주를 헤아려보면 넉넉한 10억을 벌 수가 있을 것 같지만, 운명은 저 하늘에 달려 있는 만큼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거든. 그러므로 나를 알아보고 써먹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일세. 반드시 부자가 된 위에 성공한 프로듀서가 되라고 하늘이 명한 거야. 그러니 돈을 내주지 않을 까닭이 있나. 이미 10억 엔을 얻었으니, 그로부터는 그 복을 빌려서 행한 것뿐일세. 그리고 행하면 성공하였지. 만일 내가 내 재산으로 혼자서 일을 시작했다면 그 성패 또한 알 수 없는 일이야.”

쿠로이 씨는 P의 그 재주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자기와 같은 사장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배포요. 기국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큰그릇을 어찌 썩힐 수 있단 말인가?

“바 야흐로 지금 사무소들은 신데렐라 걸을 키워내려고 하고 있네. 지략과 재주를 갖춘 프로듀서로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한번 일어나서 슬기를 펼쳐볼 만한 때가 아닌가. 자네와 같은 재주를 가지고 어째서 묻혀 살며 그대로 썩힐 수가 있단 말인가.”

쿠로이 씨는 후하고 긴 한숨을 쉬고는 돌아갔다. 쿠로이 씨는 전부터 리츠코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요즘 항간에 기이한 재주를 숨기고 있는 사람으로 함께 큰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이 있으면 말해보게나.”

쿠로이 씨는 그제야 생각이 나서 P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리츠코은 그런 인물이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소리에 크게 놀랐다.

“기이한 일이로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래 그 사람의 이름은 무어라고 하던가?”

“소인이 3년을 그와 가까이 지냈지만 아직 그 이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인임에 틀림없네. 자네와 한번 같이 가세.”

이 윽고 밤이 되자 리츠코는 류구코마치를 다 물리치고 홑몸으로 쿠로이 씨와 같이 P의 집을 찾아갔다. 택시를 타고 가기가 송구스러워 걸어서 갔다. 쿠로이 씨는 리츠코를 잠시 문 밖에 세워두고는 혼자 안으로 들어가 P를 만나보고 리츠코가 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P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말했다.

“그대가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풀게.”

그래서 두 사람은 술을 내어 즐겁게 마셨다. 쿠로이 씨는 술을 마시면서도 문밖에 세워 둔 리츠코가 민망스러워 거듭 리츠코의 일을 이야기하였지만 P는 좀처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졌다. 그제야 P는 말했다.

“손님을 불러볼까.”

리츠코가 들어왔다. 그러나 P는 일어나 맞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리츠코는 몸둘 바를 몰라 하다가 마침내 같이 일할 프로듀서를 구하고 있다는 자기의 뜻을 말했다. P는 손을 휘저었다.

“밤은 짧고 말은 기니 듣기에 지루하군. 지금 자네는 무얼 하고 있나?”

“류구코마치의 프로듀서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사무소에서는 믿을 만한 자겠군. 내 푸치P를 천거할 테니 자네가 사장에게 청하여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는가?”

리츠코는 머리를 떨구고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어려운가 합니다. 그 다음의 일을 듣고자 하옵니다.”

“나는 둘째 번이라는 것은 배우지 못했네.”

눌러 붙어서 재삼 묻자. P는 다시 입을 열었다.

“876이 옛날 그들에게 입은 은혜가 있다고 해서, 관심이 끊긴 후에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네. 자네가 회사에 청하여  그들을 프로덕션에 넣고, 그들에게 아이돌 자리를 줄 수 있겠는가?”

이것도 정말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리츠코는 한참이나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어렵겠습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럼 아주 쉬운 일이 있으니 자네가 할 수 있겠는가?”

“원컨대 듣고자 합니다.”

P는 말했다.

“대 체로 톱 아이돌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다른 아이돌들과 교분을 맺지 않으면 안 되네. 또 앨범을 내고자 한다면 먼저 언플을 하지 않고는 여태껏 성공한 예가 없었네. 지금 업계에는 천하의 가희가 들어앉아서 스스로 춤은 못춘다고 여기는 터일세. 이에 솔선해서 다른 나라보다 먼저 노래에 치중을 하였으니, 저들은 우리를 가장 미더워할 것일세. 이제 우리가 우리 아이돌들을 파견하여 노래도 배우게 하고 라이브도도 하게 하는 등 옛날의 고사를 따르고 콜라보도  자유로이 하도록 해달라고 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청을 기뻐하며 허락할 것일세. 그렇게 되거든 사무소 안에서 아이돌들을 뽑아서 코러스를 넣게 하고, 레슨은 보컬 레슨을 받도록 하게. 그리고 사무원들은 영업원으로 멀리까지 들어가 곡을 받아오고 작곡가들과 친분을 맺어둔다면, 그때야말로 새 앨범을 내고 천하대사를 꾀하여 톱 아이돌을 노릴 수가 있을 것이네. 그런 다음 한 명을 신데렐라 걸로 만들고, 만약 신데렐라 걸이 되지 못하면 IU에라도 나갈 만한 아이돌을 키워낸다면, 우리 사무소는 잘되면 초대형 기획사가 될 것이요, 못 되더라도 중견 프로덕션은 될 것일세.”

리츠코는 얼빠진 듯 멍하니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이돌들이 노래 연습은 하지 않고 꾸미기 바쁘니, 누가 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겠습니까?”

이 말에 P는 버럭 화를 냈다.

“소 위 아이돌이란 어떤 자들이냐? 음악계에 나타나서 제멋대로 뮤지션이라 하니 얌통머리가 없지 않느냐? 여기저기 까진 옷들만 입으니 이건 춤이나 추는 사람의 옷차림이요, 얼굴에 온갖 분칠을 하니 이건 사기 수준이 아니냐. 그러면서 어찌 노래를 하네 주둥이를 놀리는 거냐? 옛날 풀문은 죽었다 살아나서까지 노래를 하고, 72는 빨래판인걸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지금 톱 아이돌을 노린다고 하면서 그래 그까짓 레슨을 힘들다고 한단 말이냐? 뿐만 아니다. 장차 댄스ㆍ보컬ㆍ퍼포먼스ㆍ방송을 익혀야 하거늘, 그 많은 레슨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네타만 만들어? 내 비로소 세 가지를 말했으나 너는 그 중 한 가지도 못 한다 하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프로듀서 노릇을 한단 말이냐? 이런 놈은 참수하는 것이 옳다.”

P는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 찔러 죽일 듯한 기세다. 리츠코는 크게 놀라 엉겁결에 뒤창을 차고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그는 다시 P의 집을 찾았으나, 이미 집은 텅 비고 찬바람만 쓸쓸할 뿐, 주인의 종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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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빤 글이 쓰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이 P는 신데마스인가 본편인가 어디인가 잡탕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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