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분 심야연성] 목줄과 말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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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2, 2014 22:05에 작성됨.

 키사라기 치하야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아이돌의 레슨에 프로듀서가 참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 프로듀서가 하는 짓이 미심쩍다면,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 무슨 생각 하고 계시는 거예요? 혹시 제게 용무가 있으시다면, 깔끔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갑자기 뭐라는 거야.”
 플라스틱 물병을 입가에 갖다 대던 프로듀서의 손이 허공에 머물렀다. 그는 치하야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치하야는 고양이가 작은 물건에 흥미를 보이듯이 프로듀서를 탐색하지는 않았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자신을 돌아보는 데 쓰기도 모자랄 것이다. 다만 오늘은 프로듀서의 하는 행동거지를 보아 넘기는 것에 거리낌이 있었을 뿐이다.
 “갑자기라고 말씀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레슨을 시작할 때부터 방금까지 계속 불편하게 쳐다보고 계셨어요. 내막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아. 그랬냐.”
 그는 싱겁다는 듯이 옆의 탁자 위에 물병을 내려놓았다. 표정은 여유만만이었지만 치하야는 속지 않았다. 물을 마시려던 것조차도 잊어버릴 만큼, 그는 무언가에 생각을 빼앗기고 있었다.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일을 빠릿빠릿하게 처리해내는 이 유능한 민완 프로듀서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돌인 호시이 미키. 정확히는 그녀의 밑도 끝도 없는 자유분방함일 것이다. 프로듀서는 미키가 옆에 없을 때 항상 불안에 떨고 있었다. 곰인형을 빼앗긴 아기처럼 미키가 옆에 없는 것에 못견뎌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려운 것은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그녀를 만날 때, 레슨을 마친 그녀를 밴에 태우면서,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녀를 귀가시키다가, 듣게 될지도 모르는 어떤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언제 또 말할지 모르잖아? 미키, 그만둘거야, 라고 말이지……. 한 달 째 그 소릴 안 하니까 좋으면서 막 무섭다?”
 치하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프로듀서가 절망하고 있는 것에 확연히 대비되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키사라기 치하야는 겉보기만큼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미키를 묶어두는 목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라고 프로듀서는 단정했다. 혼자서만 알고 알려주지 않는 치하야가 약간 치사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저를 그렇게 비난하는 눈길로 쳐다보지 않으시면 좋을텐데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어. 그냥 답답해서 그래! 미키는 대체 왜 그만두겠다고 그러는 걸까. 아냐,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왜 안 그만두고 있는 건가 그걸 모르겠어. 와서 보면 뭐가 잡히지 않을까 해서 와본 건데…….”
 치하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납득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평소와 다르게 트레이닝 중에 그가 난입해온 이유를. 호시이 미키에게 있어서 키사라기 치하야는 존경하는 사람, 이라는 말은 흔히 알려져 있는 이야기였다. 그는 간이 작아지다 못해 치하야라는 모델을 미키 대신 눈앞에서 이리저리 굴려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레슨하는 내내 음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을 꼼꼼히 뜯어보고 있던 프로듀서의 시선에 대한 불쾌함을 그제야 치하야는 한 꺼풀 벗길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말씨가 부드러워지지는 않았다.
 “오늘, 상당히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미키에 대해서 걱정하시는 건 알고 있지만 계속 이렇게 하시면……”
 “미안해. 앞으로 방해 안 할란다. 어차피 봐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프로듀서는 기분이 상한 것과는 별개로 완전히 체념한 목소리였다. 이제 치하야는 한숨을 쉬었다.
 “왜, 바보 같아? 그래 난 바보니까.”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그것보다 그런 걸 고민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미키가 일을 계속하는 이유…저에게는 명백하게 보입니다만,”
 치하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간결하게 말을 끝맺었다.
 “알려드리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뭐?”
 기막혀하는 프로듀서에게 상관도 않고, 치하야는 느긋한 동작으로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얌마, 말하고 가. 지금 미키 올 거란 말이야. 또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해?”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모르시는 게 오히려 낫겠다니까요.”
 “내가 바보인 줄 알지, 너? 그러니까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지?”
 탈의실로 향하다 말고 치하야는 프로듀서를 한 번 돌아보았다. 그것으로 그는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고.”
 “누가 누구를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알았다고!”
 낭패감에 빠져 축 처진 채 전전긍긍하는 그를 뒤에 남겨두고, 치하야는 두꺼운 스튜디오 문을 닫았다. 돌아보기 전에, 누군가 밝게 탄성을 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주위가 환해지는 것 같은 금발로 머리를 물들인 미키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안녕, 미키.”
 탄성과 그것을 내지른 본인은 상당한 온도차를 느끼게 했다. 미키는 바닥에 녹은 치즈같이 눌러붙기라도 할 것처럼 더웠는지 금세 치하야의 물병에 관심을 보였다. 망설이지 않고 치하야가 물병을 건네자 미키는 굉장히 좋아했다.
 “안 그래도 프로듀서가 미키가 온다고 말했었어.”
 “음, 치하야 씬 방금 레슨 끝난 거야?”
 “응. 옷 갈아입으러 가려고 했어. 가방 가지러 갈 때 잠깐 방해할지도 모르겠네.”
 미키는 오히려 그 말에 신나서 방방 뛰었다.
 “치하야 씨라면 반가운거야! 요즘 프로듀서, 레슨할 때 무섭게 쳐다본단 말이야…….”
 그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치하야는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시무룩해진 미키를 스튜디오로 밀어넣었다. 프로듀서가 안에 있다고 말했을 때의 반짝이는 눈빛을 생각하고 치하야는 문 앞에서 잠깐 웃었다. 왜 아이돌을 계속하고 있는가, 라고?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후훗, 정말이지 두 사람…….”
 그 아이돌에 그 프로듀서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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