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레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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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8, 2014 22:27에 작성됨.

와, 엄청나게 늦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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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레슨이야.

 

 

 

 아직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아버지는 직장에 충실하셨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전담하셨다. 두 분 다 조용하고 온화한 분이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되는 늦은 저녁은 으레 지리멸렬한 말다툼의 연속이 되기 마련이었다. 나라고 어머니, 아버지와 부딪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해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방 안에 틀어박히는 나와는 달리 두 분은 어쩔 수 없이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고 서로 마주해야만 하는 관계였다.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 어쩐지 무거운 공기가 덜 느껴지기라도 하는 날은 백이면 백으로 아버지가 지방으로 출장을 가신 날이었다. 어머니와 내가 단둘이 있는 집은 그럴 때마다 편안한 침묵에 빠졌다. 나도 어머니도 무언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 편안한 침묵을 깨는 일은 하지 않았다.

 

 속으로, 이건 가족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그래도 차라리 침묵이 나에게는 편했다. 항상 부딪히기만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건 어렵기도 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은 단순히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 분이 이혼하고 나도 나가서 혼자 살게 되고 나서도 또 몇 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얼핏얼핏 들었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이 붙임성이라곤 전혀 없는 성격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지. 가족과 가깝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족 아닌 남들과는 좋은 관계를 쌓아올릴 수 있었느냐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아니었다. 방음도 되지 않는 문을 통해서 시끄럽게 울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다툼을 듣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는 해도 나에게 가장 편한 곳은 결국 문을 잠가 놓은 내 살풍경한 방이었다. 전화기도 컴퓨터도 없는 내 방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끙끙댈 필요가 없었다. 또래의 아이들은 나의 가정환경을 알기 전에는 무언가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선을 그었고, 어쩌다 알게 되면 그 환경 때문에 나와 그들이 다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역시 선을 그었다. 가끔 그것을 넘어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다. 애를 써서 좋은 말과 좋은 얼굴을 겉에 두르는 것으로 보답하려 했지만, 곧 그런 것들은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원래 그랬던 건지, 가족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나는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치하야 쨩, 이번에도 또 여행 안 가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 또 선을 넘어오려는 사람이 하나 있다. 같은 고등학생으로 비슷한 시기에 같은 프로덕션에 입사해 비슷하게 안 되는 아이돌의 길을 걷고 있는 직장동료 아마미 하루카는 이상할 정도로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다. 지금은 나와 그 자신을 제하고도 열 명이 넘는 사무소의 직원들과 하나도 빠짐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그 심적인 의미로 큰 보폭일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장점이라고 다들 말했지만, 나에게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레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 하지만, 프로듀서 씨도 힘들게 허락해 주셨고, 치하야 쨩도 바다가 보고 싶지 않아?”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하루카가 말을 걸어오면, 내가 냉정하게 자르고, 그에 질리지도 않은 하루카의 리트라이로 계속 이어지는 끝나지 않는 연쇄의 고리.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생산성 없는 대화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레슨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여름이니까 바다로 놀러 가자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길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렵고 불편한 일임을 설명하면,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한 번 가봐도 괜찮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말을 하면 그렇지 않아도 눈을 반짝이면서 이쪽의 심중을 읽으려고 하는 하루카를 기대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그럴 때의 하루카의 표정을 보면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나는 두려울 정도로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하루카가 싫을 리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정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오히려 이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관계가 좀 길게 이어지길 바라고 있는 처음 경험해보는 안절부절함에 어떻게 될까 무섭다.

 

 하지만 그렇기에 무언가 시도하기가 두려웠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가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뭔가를 나누는 것의 기쁨을. 하지만 그러고 나면? 너와 나의 관계는 계속되는 걸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시도하면서, 나는 무언가 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이 관계가 깨질지도 몰라.

 

 요컨대, 처음으로 나는 누군가가 선을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넘어가버리는 것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겁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주 많이.

 

 그래서 읽고 있던 가사지를 탁 소리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약하게 신경질을 내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랑 같이 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같이 가서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되는 건 정말 싫어. 그런 걸 굳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할 필요는 없잖아……? 알았으면, 이제 집중하게 해 줘.”

 

 그렇게 말하자. 하루카의 표정이 약간 무너졌다. 그 작은 변화는 돌풍 같은 것이었지만, 나는 애써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 미안해.”

 

 하루카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묘하게 가라앉아서 프로듀서에게로 가버리고,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신경을 테이블 위의 작은 얼룩에 모아, 5분 정도가 지나서야 나는 가사지의 글자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나를 뺀 모두가 합숙을 하러 떠난 날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때 쉬어두지 않으면 정말로 큰일이 날 거라며 레슨을 허락해주지 않는 프로듀서의 탓이 크지만, 무엇을 하려고 해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합숙의 즐거움에 화가 났다. 아니 합숙의 즐거움을 모르는 나한테 화가 났다. 아니……그런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자신이 화가 났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나 혼자만의 집에서, 나의 침대에 누운 채로 거의 자리를 뜨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그 하루가 저물 무렵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벨 소리가 방 전체를 울리는데도 자리를 나서기가 내키지 않았다. 원래가 그런 성격이지만, 그것 말고도 혼자 사는 사람 입장에서 방문은 달갑지 않다, 고 생각했지만, 찾아온 사람은 내키지 않을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지금 여기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니, 하루카야? ……헤?”

 

 멍청하게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하루카는 히힛 하고 간사한 웃음을 흘리고는 들어와 문을 닫는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쯤 실컷 놀고 땀범벅이 되선 온천을 들어갔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 가다가 무슨 일이 있었어?”

 

 먼저 말을 건네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말이 나오고 만다.

 

 “아무 일도 없네요~ 사실은 나도 합숙 안 갔어.”

 

 왜? 라고 물어보려는데, 하루카가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그보다, 오늘 하루카 여기서 자고 갈 거에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당황하고 있으려니 이유를 묻기도 전에 말이 쑥쑥 튀어나왔다. 침착해야겠지만, 막상 하루카가 눈앞에 있으니 그 침착이 영 되지 않는다.

 

 “너무 갑작스럽잖아. 막차 시간에 늦어서 한두 번 방을 빌리는 건 동료한테 호의로 해줄 수 있는 선이지만, 전화도 안 하고 불쑥 찾아와서 재워달라는 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나는 이렇게 누구랑 같이 있는 거 익숙하지 않다니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러면서, 하루카가 현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건 레슨하는 거야.”

 

 너는 정말, 보폭이 너무 크다니까. 발걸음이든 마음으로든 그렇게 성큼성큼 오지 마. 내가 더 이상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생각을 녹이듯이, 하루카가 내 손을 붙들고 상냥하게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거, 이제부터 내가 전부 다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 도망치지 않아도 돼.”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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