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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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7, 2014 02:53에 작성됨.

하루카 말고 다른 아이돌은 안 나오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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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의 이름

 

 

- 이제 이런 거 그만 하면 안 될까요……?

 

 따지고 보면 모든 건 결국 그 말을 결국 입 밖에 내지 못한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경사진 도로를 자전거로 빠르게 달려 내려가는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열기가 피어 오르는 건 여름날의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늦을까 봐 바닥까지 졸아드는 것 같기만 한 마음 때문일까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쓸데없는 고민에 마음이 간 탓인지, 경사가 멈추고 평탄한 도로로 접어드는 구간에서 그녀는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굴렀다.

 

 “아야야…… 아, 체인 빠졌다!!”

 

 숨이 차 기침을 뱉으면서, 시계를 보면서, 프로듀서가 말한 장소까지는 무슨 수를 써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돌 지망생 아마미 하루카는 어느새 인정하고 말았다. 바닥에 구르면서 떨어뜨린 전화기에서는 상대편의 말이 아직 끊어지지 않고 있어서, 콘크리트 벽돌과 부딪히는 충격에도 살아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액정이 나가버린 전화기를 귀에 대는 하루카의 손은 체인을 거느라 기름때 범벅이었다.

 

 프로듀서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야 인마, 듣고 있어? 너 지금 어디야? 택시 잡았어? 허튼 짓 하지 말고 자전거 같은 건 내버려!’

 

 함부로 말하는 덴 따라갈 사람이 없지, 아무렴…… 하루카는 부아가 치밀어도 한껏 화를 참았다. 급하니까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겠지.

 

 “후우……. 헉…… 그러니까 근처에 택시 한 대도 없다구요. 헉…… 프로듀서 씨, 아무래도 저 늦을 것……”

 

 스피커를 통해 미쳤냐는 프로듀서의 고성이 쩌렁쩌렁 울린 것은 하루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이었다. 하루카는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방향을 가늠하고 바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으니 기분이 약간 가라앉았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내키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얼굴을 확실하게 알릴 수 있을 거라며 장담을 하는 프로듀서에게 끌려 들어간 유명한 작곡가의 사무실에서 정말 끝도 없이 굴욕적인 태도로 부탁을 하고, 단박에 거절당해서 쫓겨났던 것이 일주일 전인데, 딱 두 시간 전에 예고도 없이 연락이 왔다. 내가 출장만 안 갔어도, 라고 프로듀서가 온갖 악의와 분노에 차서 중얼거리는 걸 하루카는 지난 한 시간 새에 스무 번도 넘게 들은 것 같았다.

 


 가는 길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지만, 땀 범벅인 채로 자전거에서 내린 하루카를 반기는 건 닫힘 팻말이 걸린 유리문뿐이었다.

 

 “하하……”

 

 땀을 닦으려던 하루카는 손에 묻은 시커먼 얼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씻어야지, 라고 생각했었지만, 어차피 소용없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싼 화려한 건물들을 올려다보며 빙글빙글 돌던 하루카는 한숨을 쉬었다. 세련된 간판의 숲 어딘가에는 아무나 쓸 수 있는 화장실이 붙은 곳도 있을 테지만, 이 이질적인 화려함 속에 별로 발을 들이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대충 닦을까?”

 

 어차피 금방 누구에게 잘 보일 일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하루카는 바지에 손을 문질렀지만 한참 전에 묻어 그런지 손의 끈적이는 기름때는 빠지지도 않았다. 텅 빈 경비센터 옆의 그늘에 자전거를 옮기고 앉아 있으면, 볕을 피해서 쉬고 있음에 틀림없는데도 몸은 거꾸로 처졌다. 완전히 지쳐 버린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밝힌다면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에, 가 아니고, 틀릴 리도 없고 이번으로 꼭 다섯 번째가 되는 신인 데뷔에 지쳐버린 것이다.

 

 “아, 전화 왔다……”

 

 망연히 있노라니, 주머니 속이 부들부들 떨었다. 요동을 치고 있는 그것의 하는 양이 하루카에게는 격렬함으로 다가와 한 순간이나마 프로듀서가 얼마나 상심하고 화가 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일 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교섭에 성공한 것일지도 몰랐다. 듣고 있으면, 짐작대로였다.

 

 ‘다행히 설명하니까 이해해 주더라고…… 내일 낮에 다시 오면 제대로 봐주겠다고 했다니까? 진짜, 그러니까 내가 택시 타라고 했잖아.’

 

 하루카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무엇을 설명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상상하려면 그전의 일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다시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해서 하루카는 고개를 흔들어 불유쾌한 회상을 쫓아냈다.

 

 ‘그리고 말이야, 그쪽 회사에서 ‘퐁퐁 리본’은 좀 이상하다고 바꾸지 않겠냐고 하더라.’

 

 “네, 그럼 바꾸시면 되겠네요.”

 

 애당초 레코드 회사 사원이 남의 회사 아이돌의 이름에 상관하는 건 소위 오지랖이라고 불리는 지나친 간섭이 아닌가. 당사자는 악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넙죽 받아들여버리는 프로듀서의 줏대 없음에 하루카는 신물이 났다. 자신이 생각하더라도 쌀쌀맞음이 느껴지도록 대답해버린 것은 그가 정해준 다섯 번째 데뷔용 아마미 하루카의 새 이름에다가 하루카가 똑같은 지적을 했을 때의 이 남자의 건방지다는 듯한 얼굴이 무의식 중에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그 목소리에 서린 무미건조함을 알아채기에는 무신경한 사람이었는지, 그는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새로운 일회용 이름 후보를 죽 읊었다. 그것을 들어주기에는, 하루카는 너무 지쳐 있었다.

 

 “아, 배터리가!”

 

 지나치게 친절하다고 생각되는 짧은 설명만을 남기고, 하루카는 전화기를 아예 꺼버렸다.

 

 스토퍼를 내려 세워 놓은 자전거 안장에 지친 몸을 털썩 기댔다.

 

 “으아아……!”

 

 그리고 넘어졌다. 자전거를 쿠션 삼아 멍청히 목을 뒤로 빼고 앉아 있는 하루카를 지나가는 사람 몇몇이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고서는 이내 제 갈 길을 부지런히 가버렸다.

 

 "으휴, 아파라……. 아앗, 자전거!"

 

 콰직 하고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심한 마찰음에 자전거가 망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만, 막상 살펴보니 제조사 로고가 약간 벗겨졌을 뿐 멀쩡한 채였다. 그리고 그 안도감에 젖어서 역으로 쓴웃음이 나는 것을 하루카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핫하, 아이돌이 되니 어쩌니 그런 것보다 자전거가 더 걱정되는 건 대체 어째서인 걸까?”

 

 입에 담은 아이돌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은 그다지 최근의 것도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닐 것이었다. 적어도 [아마미 하루카]라는 이름으로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 때는, 이루지 못할 꿈일지언정 그것을 종착지로 하자는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너무 큰 꿈을 지고 간다는 것은 어른이 될 때 그만두기로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노라면 이미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신에게 정말로 있기나 한 건지 의문스러워져 오는 것을 하루카는 어쩌지도 못했다.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을 풀어두고 숨을 돌리는 사이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곧 어둠이 깔렸다. 몇 가게 건너마다 술집 같은 곳의 네온사인이 켜진다. 색채가 넘치는 거리 속에서 딱 한 명, 아마미 하루카는 자신의 색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채로 밤이 되면 난처해진다. 전조등조차 달려 있지 않은 자전거를 달려서 역까지 가서 또 그걸 전철에 실어서 교외의 어두컴컴한 길을 달리는 것은 고등학생씩이나 되어서 패기를 부리며 할 일은 아닐 터. 도로변의 추락방지 야광 패널의 반사광만을 의지해 자전거를 타야 하는 상황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는 채로 다음에 어디로 갈지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루카는 생각한 것이다.

 

 마음 속으로, 수만 명의 하루카가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 아이돌을 하고 싶다기보단, 그냥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지도록 무언가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라고 말한 것은, 아이돌을 동경한다고 말하는 것만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버리곤 했던 [파도]였다.

 

 -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 아이돌이 되고 싶어했던 거잖아? 이제 와서 꿈을 부정할 수는 없어, 라고 말한 것은, 처음으로 꿈을 지원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에 들떠서 프로듀서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스프링 걸]이었다.

 

 - 그래. 내가 재능이 없을 뿐인데 한때의 꿈을 깎아 내리는 건 비겁하지 않을까……? 라고 말한 것은, 개성적이지 못하기에 성공하기 어려울 거라는 농담조의 말을 흘려 듣지 못하고서 어설프게도 스포츠 소녀라는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배팅 센터에 다니던 [건강소녀].

 

 - 에헤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만두지 못한 건 그 동안의 노력이 아까워서일 뿐 아니야? 라고 말한 것은, 수십 번을 재도전하는데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감독들에게 ‘냥냥, 나는, 네코티라고 한다냥~’이라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할 수 있었던 [네코티]

 

 - 처음의 그 바람이 아직도 있긴 한 걸까? 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프로듀서가 ‘무슨 소리야,이번엔 확실히 될 거라니까?’라고 말했을 때에 아무렇지도 않게 여섯 번째 데뷔 때 쓸 이름은 내가 생각해 두는 게 낫겠어, 라는 생각을 해 버렸었던 [퐁퐁 리본].

 

 

 “모르겠으니까, 그만하자, 이제.”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린 것은, 이번에는 아마미 하루카였다. 하지만, 너무 지쳐 있는 하루카였다. 자전거 페달에 발을 얹는 하루카의 붉은색 리본 머리 장식이 밤이 되어 휘황찬란한 번화가 네온사인의 불빛에 색색이 물들고 있는 듯했다. 색채가 가득한 거리에서 자취를 거두기 전에 하루카가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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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의 심야연성 주제 보고 팅! 하고 와서(...) 원래 쓰던 다른 분한테 부탁받은 걸 제껴놓고 먼저 썼는데, 중간에 집안일이 생겨버려서 놓아버렸던 글입니다. 잠이 안 와서 좀 고쳐놓고 보니 아깝기도 하고 그냥 올리렵니다. 엄청 졸린 상태로 쓴 글은 다시 보기 싫어하는 습관이 있는지라 아마 퇴고는 안 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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