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죠 카렌 「그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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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6, 2014 22:18에 작성됨.

“…문을 여는 순간, 전신이 피투성이인 여자가 식칼을 들고 콰악-!!”

 

““꺄아앗-!!””

 

P씨의 고함소리에 뒤질세라 나오와 우즈키의 비명소리가 사무소 안을 쩌렁쩌렁하게 만들었다.

 

“하하핫. 어떠냐, 내 비장의 한 수가.”

 

“저, 정말… 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걸.”

 

“저기, 린. 허세를 부릴 거면 일단 꼭 잡고 있는 내 손부터 놓지 그래.”

 

“나, 난 그저 카렌이 무서워할까봐 잡고 있는 것뿐이야.”

 

“난 괜찮은데. 그럼 내쪽에서 먼저 놓는다?”

 

“자, 잠깐만!”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척하는) 린의 손은 이미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P씨가 해준 이야기가 그렇게 무서웠던 건가? 뭐, 날 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나오와 우즈키를 보면 짐작이 가지만.

 

“카렌 넌 무섭지도 않아?”

 

“글쎄…? 이 정도는 그럭저럭.”

 

내 반응에 P씨는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무소 불도 다 끄고 밖은 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캄캄하지, 무서운 이야기를 할 만한 배경으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달까.

 

“어떻게 그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거야?”

 

마치 치히로 씨와 자매라도 되는 양 둘이 꼭 붙어있던 미오가 내게 물었다. 이거… 대답을 해줘야 할까?

 

“음…. 나야 뭐 어릴 때부터 병원에 오래 있었으니까. 밤에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린다거나,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휠체어가 복도를 질주한다거나 하는 걸 본 적이 많았거든. 처음엔 나도 정말 놀랐는데 말야, 아무래도 자주 보니까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까? 내가 손도 대지 않은 너스콜 때문에 간호사 언니에게 혼나게 됐을 때는 ‘아, 얘들도 꽤나 짓궂은 애들이구나.’하고….”

 

“어이, 카렌.”

 

“응?”

 

“그만 해둬, 얘들 다 리타이어다.”

 

“그래서 말해줄까 말까 망설인 건데.”

 

어느새 사무소에서의 일과가 끝을 맺는 시간. 린과 카렌을 기다릴까 생각하다가 둘 다 쉽사리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먼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간만에 그 시절 얘기를 했더니 그때의 추억이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다지 추억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던 그 시절 나의 유일한 낙은 바로 병실에 있는 TV였다. 병실 창문을 제외하고는 그 작은 상자가 비추는 풍경이 내가 볼 수 있었던 풍경의 전부였다. 그리고 내가 아직 어린 아이였던 어느 날, 그 상자가 스테이지에서 노래하는 아이돌의 모습을 비추면서 내 꿈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호전되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면서 그런 내 꿈은 점점 옅어져 갔었다. 길었던 병원생활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서, 그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생활 속에 던져져 역시 꿈은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그 때,

 

‘아이돌이 되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학교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자신을 아이돌 사무소의 프로듀서라고 밝힌 사람이.

순간 가슴 속에서 사라져가던 무언가가 꿈틀하고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내가?

그 꿈, 이룰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뒤이어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온통 휘저어놓기 시작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프로듀서, 지금의 P씨에게 최대한 냉정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를 아이돌로 만들어 줄 수 있어? 하지만 나 특훈이라든가 연습이라든가 노력이라든가 근성이라든가, 뭔가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서. 체력도 별로고. 그래도 괜찮아? 안 돼?”

 

P씨는 종종 ‘아직도 그때 네가 한 말이 기억난다. 말해보라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어.’라고 말해 날 부끄럽게 만들지만…. 어쩌면 그때의 이 말은 내 나름대로의 어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말만 잔뜩 늘어놨지만.

P씨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느꼈지.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뭔가 필사적으로 아이돌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애초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줄줄이 늘어놓으면서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뭐, 정답이었다. 역시 나의 P씨라니까.

어쨌든,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다. 이젠 체력도 늘었다고 자부할 수 있고, 아이돌 활동도 꽤 순조롭게 하고 있다. 아, 얼마 전엔 첫 앨범도 나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오늘은 집으로 바로 가면 안 됐었지. ‘그 아이’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아까보다는 빗줄기가 잦아든 덕분에 멀리서도 그 아이의 모습이 보였기에, 나는 조금 걸음을 빨리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옆까지 다가갔다.

 

“오래 기다렸니?”

 

“아, 카, 카렌… 언니….”

 

손을 완전히 덮고도 남을 만큼 길게 늘어뜨린 소매, 귀여운 얼굴이지만 눈 밑에는 항상 다크서클을 달고 사는 여자아이. 

시라사카 코우메가 바로 이 아이의 이름이다.

 

“미안, 조금 늦었지?”

 

“나, 나는… 괘, 괘, 괜찮아….”

 

코우메와의 인연은 병원에서부터 시작됐다. 내가 아직 병원에 있었을 무렵, 지금보다 더 작았던 그때의 코우메는 몸이 많이 약해져서 병원에 들어왔다. 물론 나보다는 상태가 좋았지만, 일주일정도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3살 차이인 코우메와 난 금방 친해졌고, 그때의 나는 한창 아이돌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내 옆 침대를 쓰던 코우메도 나와 함께 음악방송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코우메가 아이돌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나 때문에 같이 봐주는 건 줄 알고 있었는데….

 

“정말 괜찮겠어?”

 

“으, 응…. 해, 해볼게…….”

 

“그럼 내일 아침에 나랑 같이 사무소로 가자. 괜찮겠니?”

 

“응….”

 

바로 이틀 전이었다. 코우메가 나를 만나러 내가 사는 동네를 찾아왔고, 그때 이후로 전화나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었던 나는 기쁜 마음에 코우메를 만나러 달려갔었다.

 

‘카, 카렌… 언니는… 아, 아이돌 하고 있지? 저, 저번에 TV에서 보, 보, 본 적이 있어….’

 

‘그래? 후훗, 조금 부끄럽네.’

 

‘저, 저기 있지…. 부, 부탁이….’

 

‘코우메의 부탁이라면 들어줄게. 무슨 부탁인데?’

 

‘나, 나…. 아, 아이돌이 되고 싶어….’

 

물론 코우메는 상당히 귀여운 외모를 지닌 아이다. 항상 밤늦게까지 호러영화를 보는 취미 때문에 나이에 비해 피부가 약간 거칠긴 하지만, 메이크를 하면 커버될 테고. 노래도 상당히 잘 하는 편이긴 한데….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코우메는 우물쭈물하더니 ‘카렌언니니까…’라며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호러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코우메는 영감(靈感)이 매우 뛰어난 아이다. 문제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영감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어떤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찌저찌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소녀의 죽기 전 소원이 바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이 아이의 소원…. 이, 이루어주고 싶어…. 나라도, 하, 할 수 있다면….’

 

‘정말 괜찮겠어, 코우메? 그건 그 아이의 소원이지 너의 소원이 아니잖아.’

 

‘하, 하지만, 나, 나도…. 카, 카렌 언니를 보고 가, 같은 무대에서, 노, 노래, 하고 싶다고…….’

 

‘정말이니?’

 

‘응….’

 

코우메의 눈은 단호했다. 항상 수줍음을 잘 타서 친한 내 눈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던 아이가.  

그걸 보고 나도 결심했다. P씨에게 이야기하면 분명 ‘먹힐지도 몰라!’라며 코우메를 받아주지 않을까.

 

 

 

“호오…. 좋은데? 이런 컨셉, 먹힐지도 몰라!”

 

…너무 예상대로라 맥이 빠지는걸.

코우메를 만나 마지막으로 의향을 확인한 다음날인 오늘, 코우메와 함께 사무소에 도착해 P씨에게 코우메에 대해 설명해주자, P씨는 대번에 좋은 반응을 보였다.

 

“나이 어린 스플래터 아이돌! 이거 잘하면 큰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코우메를 오래 알고 지냈던 나조차 반신반의인데 이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까. 

하긴 그게 P씨의 매력이지만.

 

“볼 것도 없이 합격이다! 사장님도 좋아하실 거야. 자, 오늘부터 네 프로듀서가 될 P라고 한다. 잘 부탁해!”

 

“아, 네, 네…. 자, 잘 부탁….”

 

“목소리도 귀엽구나.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

 

“그, 그런… 가요…. 조, 조금… 부끄….”

 

코우메가 사무소에 다른 아이돌들에게 인사하러 간 동안, 나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으려는 P씨를 불러 세웠다.

 

“코우메, 당분간 내가 옆에서 보조해줄게.”

 

“음?”

 

“이렇게 된 이상 P씨가 나를 이끌어줬던 것처럼 나도 코우메를 이끌어주고 싶어.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행복한 직업인지 가르쳐주고 싶어.”

 

“허어….”

 

“왜 그래?”

 

“아니, 카렌도 다 컸구나 싶어서.”

 

“…무슨 뜻이야.”

 

“그거야 뭐…. 잘 알잖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당신이 나를…’”

 

“알겠으니까 그 얘기는 그만!”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프로듀서도 약속이라도 한 듯 피식 웃는다.

 

“알겠다. 코우메로서도 아는 사람과 함께인 편이 적응도 쉬울 테니까, 당분간 코우메는 너에게 맡기지.”

 

“고마워.”

 

“별 말씀을.”

 

 

 

“기, 기, 긴장된다….”

 

“괜찮아. 내가 같이 있잖니.”

 

“카, 카렌 언니…. 응…. 그, 그래….”

 

드디어 때가 왔다.

앞으로 5분 후면 시라사카 코우메라는 이름이 TV 전파를 타게 된다.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물론 오늘은 내가 옆에서 같이 노래하게 되겠지만, 언젠가는 홀로 무대에 서서 멋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는다.

 

“호죠 씨, 시라사카 씨, 스탠바이!”

 

“갈까, 코우메?”

 

“으, 응!”

 

코우메의 떨고 있는 작은 손이 땀으로 촉촉하다. 한 번 더 괜찮다고 말해주며 손을 꼭 잡아주었더니, 떨림은 금세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 자. 긴장하지 말고 보여주라고. 언젠가 네 이름을 외쳐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아, 알겠어요…. 히, 히, 힘낼게요.”

 

“그럼 다녀와라.”

 

“응.”

 

“네.”

 

코우메의 손을 잡고 스테이지 위로 향한다. 어릴 적의 내가 그렇게 꿈꿔왔던, ‘그 아이’와 코우메가 꿈꿔왔던 그 빛나는 장소다.

달려가도 좋고 걸어가도 좋다. 우리가 아이돌인 한 그 장소는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절대로, 꿈은 꿈인 채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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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너무 짧아...

뭔가 쓰면 쓸수록 살이 붙는데 그걸 감당할 수가 없는 시간이네요.

카렌이랑 코우메는 한 번 엮어보고 싶은 조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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