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구사 「딸아이의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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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6, 2014 22:07에 작성됨.

치구사 「딸아이의 데뷔」

혼자 산 지 몇 년이 지났을까.
남편과 이혼한 뒤, 살던 동네를 떠나 먼 곳에 집을 구했다. 원래 머물던 동네에서 떠나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살던 곳. 작은 골목 사이사이 마다 그 아이의 추억이 배어있어, 힘들었다.
홀로 먹는 식사도 익숙해졌다.
식기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끝마친다.
혼자 살기에 적당한 집을 구했는데도, 집은 여전히 넓게만 느껴졌다.
“후우….”
소파에 몸을 묻는다.
텔레비전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 저리 웃을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먼저 들고 만다.
내가 웃어본 적은, 언제였을까?
“…….”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리려 해봐도 되지 않는다.
꺼진 텔레비전 액정에 비추는 내 모습은, 그저 늙고 나약한 여자일 뿐.
눈을 감는다.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잠시, 아주 잠시 생각한다.
서로 밝게 뛰노는 딸아이와 아들. 멀리서 둘을 지켜보는 남편과 나.
……웃음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그때 어떻게 웃었지?
어떤 표정을 지었지?
무슨 대화를 나눴지…?

희미해진 감정은 저 아래로 흩어 사라진다.
그걸 붙잡으려는 노력은 이제 하지 않는다.
가족 모두가 함께했던 추억은, 영원한 과거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없어져 버린 사람, 남겨진 사람, 살아가야 하는 사람.
모두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다.
유우를 떠나보내고 나서…….
내가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남편이 바랐던 것, 딸아이가 바랐던 것.
지금 와서야 어렴풋이 잡히는 감정들.
사람의 마음은 잔혹해서,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필요했던 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고.
이미 모두 떠나가버린 지금에서야.
아픔을 이해한다.

천천히, 눈을 떴다.
해는 어느새 저문지 오래고, 조명을 켜지 않은 집은 어둡다.
꺼진 텔레비전 액정에선 이제 내 몰골이 보이지 않는다.
깊고 조용한 침묵과 어둠.
차라리 이게 나을지 모른다.
가늘게 뜬 눈동자는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진다.
가구의 실루엣이 보이고, 흐렸던 집의 풍경이 점점 선명해진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몸은 어둠에 익숙해진다.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제 깨달았을까.
눈을 감아도 그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위이잉, 위이잉.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전화기가 진동한다.
적막을 깨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천천히 손을 가져가 전화를 받는다. 누가 건 전화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
작은 탄성. 흠칫 놀란 듯한 목소리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간다.
「저……치하야예요.」
딸아이의 이름.
꾹, 감정을 담아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가 천천히 이어진다.
「이번에, CD 데뷔하게 되어서……. 하루카가 부모님한테도 연락하는 게 좋다고 말해서….」
“…….”
「저, 그게…….」
딸아이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딸아이가 직접 전화를 걸어온 건 얼마 만일까.
흐릿한 기억을 더듬으며 소파에 묻었던 몸을 일으킨다.
“…하루카란 아이는, 친구니?”
「아, 네…. 같은 사무소에 있는…친구예요.」
친구.
딸아이가 조심스럽게 담은 그 단어에 나는,
“그래….”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친절히, 엄마답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딸아이와 나누는 전화는 늘 이런 분위기였다.
아들의, 유우의 죽음으로 깨어진 가족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한다.
남편과의 이혼. 딸아이의 독립. 혼자 사는 삶.
「저……그러면 이만….」
거북한 분위기 속에서 딸아이가 그렇게 말한다.
서로 말이 오가지 않으니,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끝을 맞이했다.
서로의 일상에 간섭하지 않는다. 만나지도 않는다. 그저 가끔 전화를 하며 근황을 확인하는 사이. 그마저도 서먹서먹한데.
이런 우리를…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번에도 이렇게 전화가 끊어지고, 우리는…….
“치하야.”
문득 입이 움직인다.
「네…?」
“데뷔 축하해.”
그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
딸아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소리는 없다. 잔잔한 침묵이 오가고, 우리는 서로 말이 없다.
「…감사합니다. 또, 전화할게요.」
간신히 나온 딸아이의 말에, 그렇게 전화는 끝이 났다.

나는 한동안 전화기를 놓지 못했다.
익숙해져 버린 어둠 속에서 그저 전화기를 들고 멈춰 있었다.
문득, 창가 쪽을 바라봤다.
별과 달이 어두운 도시를 비춘다. 깜깜한 밤하늘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별과 달.
그 빛 속에서 구름이 흘러간다.
바람에 따라 천천히, 느릿하지만 앞으로.
그렇다면,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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