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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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3, 2014 15:57에 작성됨.

 

 

 

 

P「그랬군, 야요이를 이렇게 만든 건 너였나」

 

머리가 지끈 쑤실 정도로 아찔한 광경이다. 미나세는 짐짓 날 노려보고만 있다. 그렇군,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아직도 멀쩡한 사무소를 아작낸 몹쓸 놈일 것이다.
나는 가만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주위를 둘러본다. 미나세가 들어와서 환해진 다락은 별반 특이할 게 없다. 도끼나 공구, 그리고 쓰지 않는 잡다한 물건들이 상자에 차곡 정리되어 아무 구석에나 있다. 그리고 의외로 넓다. 내가 거실 바로 밑에서 올라왔으니, 야요이가 있는 곳 밑층은 거실을 넘어 침실쯤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쓸모없는 생각을 하자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나는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나지막히 입을 연다.

 

 

P「내가 결백하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겠지? 그 미나세 가문의 재력으로」
이오리「다물어」
P「아니야, 너야말로! 너야말로 야요이에게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그러나 결국 화를 내고 만다. 지금 야요이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구속된 상태다. 눈도, 귀도, 손도, 발도 모두 구속되어 있다. 어떻게,

 

P「어떻게 저런 짓을 해놓을 수가 있어! 대체 어떤 정신으로 저런 짓을 해 놓은거야!」
야요이「프, 프로듀서, 프로듀서인거죠? 프, 프로듀서」

 

야요이는 아직도 자신이 헛것을 들은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내 울먹이며 애타게 나를 찾는다. 여태껏 쭉 이런 상태였던건가. 맙소사, 대체 어떻게 저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지? ...하지만 과연 나도 근 1년간 멀쩡하게 살아왔을까?

 

 

「프로듀서 씨는, 멀쩡한 음식은 아까우니 이렇게 한번 거친」

 

눈앞이 컴컴해지며 의식을 잃을 것만 같은 무서운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휘젓는다. 지금은 나보단 야요이가 우선이다. 나는 미나세를 죽일듯 노려본다.

 

P「이런 일을 해놓고 용서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이오리「정말 아무것도 모르지 않고서야, 그게 네가 할 말이라고 생각해?」
P「나야말로 묻고싶어, 왜 아무도 없는지, 낮이 왜 이렇게 긴지! 그리고 하루카는 어떻게 되었고, 야요이는 또 왜 이렇게 가둬놓은거야!」
이오리「전부 너 때문이잖아!!」

 

이오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야요이의 집을 무너뜨릴 생각이라도 한 것인지, 울화통이 치민 목소리로 고함을 친다. 야요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귀를 막아놓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흠칫 놀라 가엾게도 몸을 떤다. 나는 씩씩거리며 죽일듯이 노려보는 미나세를 뒤로하고 야요이에게 다가간다.

 

이오리「죽여버리기 전에 멈춰」

 

사무소에서 보던 귀여운 목소리는 어딜가고, 정말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다. 등 뒤의 미나세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곧 야요이에게 다가가 눈을 가린 안대와 귀를 막은 구속구를 모두 풀어낸다.

 

야요이「프, 프로듀서」

 

야요이는 날 보자 반가웠던건지, 누군가가 구해줬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한건지 울음을 토해낸다. 보는 사람이 애처로울 정도로 몸을 떨면서까지 힘겹게 통곡하는 야요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다 미나세를 쳐다본다. 미나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오리「됐어, 이제 끝이야」
P「설명해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미나세는 내 간절한 부탁을 무시하고 그저 문을 닫아버린다. 다시 어두컴컴해진다. 야요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지자 나를 꼭 껴안는다. 그렇군,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지. 트라우마가 되버린 걸까. 대체 얼만큼 보이지 않게 가둬진 상태였는지. 야요이의 걱정을 하던 도중, 문 밖에서 둔탁한 무언가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린다.
위험하다.

 

미나세는 정말로 날 없애버릴 생각이다. 내가 어떤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시간은 많이 지났고, 미나세는 야요이에게 얼굴을 들켜버렸다. 즉,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지울 수 없는 일임을 그녀는 분명히 알고, 또 이제 그녀말대로 모두 끝나버렸음을 직감한 것이다. 여기서 탈출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나는 아까 보아둔 낡은 도끼를 들고 야요이의 팔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을 힘차게 자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 밖의 둔탁한 소리는 잠시 멈췄고, 벽에 박힌 도끼를 빼내느라 잠시 힘든 찰나 문 밖의 발소리는 점점 문과 가까워지고 있다. 마지막 남은 왼다리를 구속하는 사슬을 끊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갑자기 환해져 잘 보이진 않지만 미나세가 두꺼운 쇠로 만든 무언가를 들고 다가오는게 보인다.

 

P「가까이 오지마!」

 

나는 들고 있는 도끼를 위협적으로 치켜들며 말한다. 미나세는 한숨을 쉬며 무언가 중얼거린다. 잘 들리진 않지만, 예상 외의 상황에 어느정도 당황한 것 같다.

 

이오리「포기해, 여기서 더 어떻게 하고 싶은거야? 날 죽이기라도 할 셈?」
P「나는 네 프로듀서야. 널 다치게 하는 일은 없어」
이오리「웃기지도 않는 소리에 니힛 웃을 생각은 없어」
P「마음대로 생각해」

 

미나세가 가까이 오려고 하자 나는 곧 도끼를 힘차게 바닥으로 내리찍는다. 목재로 만들어진 이 허름한 집은 사람의 관리를 받지 못한지 아주 오래되었으므로, 간단하게 바닥이 무너진다. 미나세는 당황하며 문 난간으로 움직여 몸을 기댄다. 좋아, 원래 지진이 일어나면 문이나 기둥, 책상 밑으로 숨어야지. 잘하고 있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야요이를 꽉 끌어안고 아래로 떨어진다.

 

야요이「프, 프로듀서~!!」

 

야요이는 나를 쳐다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 같지만 잘 들리지 않아. 야요이를 다치게 둘 순 없으므로 나는 야요이를 꼭 껴안아 보호한다. 그리고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아래 침실의 침대에 정말 아슬아슬하게 착지한다.

 

P「야요이, 괜찮아? 뛸 수 있겠어?」
야요이「자, 잘 모르겠어요.」

 

얼마나 감금된 상태였는지 알 길은 없지만 바로 뛸 수 있어보이진 않기에 나는 곧 야요이를 들쳐메고 집을 나와 한참을 달린다. 하늘은 겨우 어두컴컴해져 있는 상태다. 마치 내가 야요이를 구하자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한 것처럼.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은 역시 아무도 없고, 불이 들어온 빌딩도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조차 켜지지 않은 끔찍한 어둠. 등 뒤의 야요이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P「야요이, 괜찮아?」
야요이「무서워요, 저, 무서워요. 프로듀서, 어두운 건 싫어요...」

 

야요이의 상태가 상당히 심각하였기에, 전기가 들어오리라곤 생각되지 않고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빌딩에 들어가기보다는 야산에 올라가는 편이 현명해보인다. 내가 항상 주말 아침마다 등산했던 야산으로 훌쩍 올라가, 등산로에서 벗어나길 몇 분, 곧 장소를 자리잡고 야요이에게 내 자켓을 건네준다.

 

P「그 옷차림으론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추울거야」
야요이「고마워요...」

 

사무소에서 항상 보던 밝은 야요이가 아니야. 축 쳐진 어깨를 내 재킷으로 감싸며 부들부들 떠는 야요이를 보는 것은 정말 마음이 아프다. 나는 야요이의 집에 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슬쩍한 담배와 라이터를 주머니에서 뒤적거린다. 들킬 위험이 상당히 크지만, 지금 야요이에겐 어둠이 어떤 영향을 끼칠 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근처 땅에 떨어져 바싹 마른 잎과 나뭇가지를 긁어모은다. 야요이는 부들부들 떨며 내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 마른 잎사귀에 불을 붙이고, 나뭇가지를 위에 올린다. 땅을 대충 파내 공기가 통할 구멍을 만들어 두고, 쌓아놓은 나뭇가지에 불이 붙길 기다리자 곧 화르르 소리를 내며 불이 붙는다.

 

P「야산에서 이렇게 불을 붙이면 산불이 날지도 모르니까 떽, 혼내야 하는 거 아니니?」
야요이「헤헤...」

 

야요이는 힘없이 웃는다. 나는 억지로 지었던 미소를 거둔다. 가만히 재킷을 감싸며 불을 쬐는 야요이는 어딘가 슬퍼보인다.

 

 

P「괜찮아?」
야요이「프로듀서는, 예전과 정말 다를게 없네요... 제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하, 하고...읏..」

 

거기까지 말한 야요이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흐느낀다. 꿈, 이라. 그렇게 가둬진 상황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따뜻했던 예전 일을 생각하며 탈출하는 꿈을 계속 꾸었던 거겠지. 암것도 보이지 않으니 깨었는지, 계속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채. 겨겨우 탈출한 지금도 야요이는 눈을 감을 때마다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움직일 수 없는 때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그런 걸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말없이 야요이를 꼭 껴안는다.

 

P「꿈이 아니야. 나는 야요이를 이 손으로 꼭 붙잡았어. 절대 놓치지 않아」
야요이「따뜻해요, 프로듀서...」

 

야요이는 희미하지만, 예전에 자주 보여주었던 미소를 짓는다. 나도 곧 미소를 짓는다. 그 천사처럼 밝은 미소가 다시금 빛을 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프로듀서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 야요이에게 대체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묻는 것은 내일 해가 밝으면 하도록 해야겠다.

 

하지만... 도대체 용서할 수가 없다. 대체 누가? 하루카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행동한 걸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스케일의 거대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정신을 차리고,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훔치고, 야요이의 집까지 달려가서, 야요이를 구출하고 이 야산에 뛰어올때까지 본 사람이라곤 고작 야요이와 이오리 둘 뿐이다. 산에서 보이는 아래의 도시 풍경도 빛이 하나도 없어 마치 도시 전체가 죽어버린 것 같다. 이오리는 이제 무얼 하려고 할까? 계속 우릴 찾으려고 들까? 집이 무너져내리긴 했어도 다락의 아랫바닥만 무너져내렸기 때문에 분명 이오리는 무사할 것이다.

 

P「그러고보니, 미안해」

 

야요이가 흠칫 놀란다.

 

P「너네집, 내가 거의 부서버렸어」

 

야요이는 그제서야 경계를 푼다. 뭐지, 이 위화감은...

 

* * *

 

네, 주제에 맞지 않게 삽화를 넣어보겠답시고 기를 쓰다가 결국 글에 집중을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미안해욤...

그리고 먼저 느낌표 다는 사람이 이기는 거였기 때문에 제 승리.

다음 편은 아쥬님이 이어주십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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