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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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3, 2014 04:43에 작성됨.

그러나 야요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부엌의 찬장들도 열어보았지만, 먼지가 수북이 쌓인 살림만이 가득했다. 이상한 일이다.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야요이네 형편에 집을 떠나면서 이런 걸 두고 떠날 리가 있겠는가. 이 공간에 생물체라고는 찻잔 속에 갇힌 채로 굶어 죽은 듯한 바퀴벌레 한 마리와 나 뿐이었다.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뒤뜰에서, 가지런히 쌓인 채로 노끈에 묶여 있는 신문지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마도 폐지로 내다 팔기 위해서 모아둔 것이었겠지.

 

이 급박한 상항에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찾아보고 있을 겨를은 아니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지면 상단에 위치한 날짜였다. 경악스럽게도,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날과 비교하니 해가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겠지. 먼지는 수북하게 쌓여 있지만, 살림살이들 자체는 전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 전화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대로였다. 수화기를 귀에 가져가자 전자식 교환기 특유의 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기억하고 있는 사무소 번호로 다이얼을 돌렸다.

 

P 「크…. 제발, 받아 줘….」

 

아무도 받지 않는다. 뒤이어서 아이돌들의 번호를 하나씩 돌려 보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 하루카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손을 쓴 걸까? 어떻게? 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니 하루카의 얼음처럼 차가운 미소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어머나, 프로듀서 씨. 제 교육이 그렇게 기분좋으셨나요?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후훗, 보람이 있네요-」

 

P 「큭, 생각해도 소용없어…」

 

그렇다고 해서 일 년이 넘도록 감금이라니, 말도 안 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하루카, 대체 너의 정체는 뭐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하루카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가두어 두고 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어째서 그 동안의 내 기억은 말끔히 사라져 있는 것일까?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머리만 지끈거릴 뿐이었다. 하루카 본인에게 물어보기라도 하지 않고서야,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도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 들려오는 하루카의 환청을 애써 떨쳐버리며 몇 번이고 다이얼을 돌렸다.

 

딸깍.

 

「누구세요?」

 

전화를 받은 것은 이오리였다. 과연, 그게 누구이건간에 이오리에게는 이상한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 포기하려다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선택한 것이 정답이었던 것 같다.

 

P 「이오리? 이오리 맞지?」

이오리 「… 응? 낯이 익은 목소리인데… 누구시죠?」

 

P 「나, 나야! 모르겠어?」

이오리 「누구인지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구?」

이오리 「흐응, 혹시 이거, '나야 나' 사기일까나.」

이오리 「그럼 끊-」

P 「네 프로듀서! 이오리!」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이오리의 숨소리를 보니 끊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이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거의 소리를 치다시피 외쳤다.

 

P 「이오리, 듣고 있지!? 대답해!」

이오리 「윽, 귀 아프잖아! 듣고 있으니까 조용히 말해, 바보야!」

P 「아, 미안…」

이오리 「정말이지… 네가 먼저 전화를 걸 줄이야. 무슨 염치야 대체」

P 「뭐?」

 

이오리 「765프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사무소의 공금을 들고 사라진 너 때문에! 거기에 아이돌들 신상 정보는 대체 왜 뿌린 거야!?」

 

나는 수화기를 든 채로 망연자실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나를 감금했던 것이 하루카라면, 아마도 이것도 역시 그녀의 짓이겠지. 하지만 대체 어째서? 하루카는 나를 사회적으로 파멸시키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역시 돈이 목적인가?

 

이오리 「키이잇-! 믿을 수가 없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하루카는!」

…뭐?


P 「자, 잠깐.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없어. 난 공금 따위…」

이오리 「하아!? 부정할 셈이야? 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 순간, 머리 위 천정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도와주세요…」

틀림없는 야요이의 목소리였다.

 

 

P 「야요이?」

이오리 「뭐? 너, 야요이네 집이야?」

P 「아, 뭐…. 맞아.」

이오리 「금방 갈 테니까, 꼼짝 말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이야기는 나중에 들을 테니까」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이오리가 말하지 않아도 여기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지금 나는 세간에는 범죄자로 알려져 있다. 어차피 여기를 떠나더라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이오리를 기다렸다가, 사정을 잘 설명하고 미나세 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보다 전에 할 일이 있다.

 


한 번은 환청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두 번이나 잘못 듣을 가능성은 낮다. 야요이는 이 집 어딘가에, 그것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로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들려온 천정 방향을 자세히 살펴 보니 아까는 찾을 수 없었던 뚜껑이 하나 있다. 아마도 저기를 통해 다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 같다.

 

… 그냥은 올라갈 수 없을 높이다. 아까 창고에 사다리를 하나 봐 두었다. 사다리를 벽에 걸치고 올라가 뚜껑을 힘껏 밀어올렸다. 뚜껑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위로 넘어갔다.

 

칠흑같은 어둠이 눈을 가린다. 창문도 하나 없는 공간이라, 빛이라고는 방금 내가 들어온 곳에서 들어오는 정도밖에 없다.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들어온 내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P 「야요이? 거기 있니?」

야요이 「…우-」

P 「야요이, 나야, 프로듀서! 어느 쪽이니, 대답해 줘!」

야요이 「누군가, 도와주세요… 제발…」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듯하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높였다.

P 「야요이!!!!!!」


야요이 「…우? 푸로듀서, 프로듀서에요?」

 

P 「그래, 네 프로듀서야. 여기 있어」

야요이 「프로듀서- 대답해 주세요-」

P 「야요이?」

야요이 「훌쩍… 잘못 들었나 봐…」

 

불길한 예감이 뒤통수를 찌릿하고 쓰다듬는다.

 

이오리 「찾아 버린 거네…」

그 순간 등 뒤에서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눈을 찡그리며 소매로 눈앞을 가렸다.

 

이오리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말야, 말을 안 듣는 하인이야.」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야요이를 불렀는데, 이오리가 '야요이와 함께 있냐' 가 아니라 '야요이네 집에 있냐'고 물었을 때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리가 후들거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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