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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0, 2013 21:49에 작성됨.


 "후… 지쳤다."
 
 널찍한 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프로듀서였다. 정장의 재킷도 벗어버려 손에 든 채고 넥타이도 풀고서 셔츠의 단추를 두 개나 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오는 그의 표정은 엄청나게 지친 모양이었다.

 "어서오세요, 프로듀서. 뭔가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사무원인 치히로가 그를 맞이하며 물었다.

 "그럼 감사… 아, 아니…"
 "프로듀서?"

 무심결에 대답을 하던 프로듀서는 무언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급히 말을 멈췄다.

 "그래도 뭐라도 마셔야겠는데…"
 "…프로듀서? 그 반응은 뭔가요?"
 "아닙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네."

 프로듀서는 치히로가 내뿜기 시작한 검은 오오라 때문에 억지로 치히로가 내미는 병을 받아들 수 밖에 없었다. 병 자체는 평범한 스태미나 드링크의 병이었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뭐, 뭔가… 스태미나 드링크 같은데… 고기 맛이…"
 "네! 단백질 가득! 치히로 특제 초 스태미나 드링크에요!"

 풋 하고 프로듀서는 반쯤 마시던 것을 뿜어내고 말았다.

 "켁, 콜록콜록"
 "정말이지, 치히로 씨도 프로듀서한테 이상한 걸 먹이지 마세요."
 "리, 린?"

 프로듀서의 자리 쪽에서 나타난 것은 신데렐라 프로덕션의 아이돌인 시부야 린이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프로듀서가 들어오기 전부터. 오늘은 스케줄이 일찍 끝나서 말이야."

 프로듀서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짐들을 놓고 컴퓨터를 켰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린은 열심히 하네."
 "요즘이라니. 나는 언제나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런가? 하하하, 나도 지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는걸."
 "그럼 방해가 되지 않도록 먼저 돌아갈게.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린을 보내고 나서 켜진 컴퓨터로 서류를 불러오려던 프로듀서는 낯선 것이 자신의 책상 위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꽃…?"

 프로듀서의 책상 위쪽에는 노란 꽃잎의 꽃이 한 송이 놓여있었다.

 "치히로 씨."
 "네? 무슨 일이신가요?"
 
 프로듀서의 부름에 저 편에서 치히로의 얼굴이 나타났다.

 "혹시 꽃병이라던가 있으신가요? 굳이 꽃병이 아니라도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라던가."
 "음… 이런 거요?"

 치히로가 꺼내 보인 것은 커다란 플라스크였다. 그 쓰임새가 굉장히 수상해 보이는 것이 플라스크 안쪽에 갈색이나 초록색의 무언가의 얼룩마저 묻어있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에이, 농담이에요. 꽃병…은 아니고 이게 뭐였더라, 어쨌던 좀 크긴 한데 비슷한 게 있는데 드릴까요?"
 "그거라면 괜찮겠네요. 감사합니다."

 치히로에게 받은 꽃병같은 것은 너무 커서 프로듀서가 노란 꽃을 한 송이 꽂아 놓아보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와아, 예쁜 달맞이꽃이네요. 여자친구라도 생기신 건가요?"
 "그럴리가요. 여자친구라도 사귈 수 있게 새 프로듀서라도 데려와달라고 사장님한테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럼 같이 일하는 저라던가?"

 두 사람은 그렇게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 때문에 프로듀서는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걸 까맣게 잊어버린 나머지 철야를 하고 말았다.



 "달맞이꽃이네."
 "응? 아아, 언제부터인지 누군가 한 송이씩 놓고 가서 말이야."

 그 날 이후로 매일 프로듀서의 책상 위에는 달맞이꽃이 한 송이씩 놓여져있었다. 누가 놓고 가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아이돌을 노리는 어떤 스토커가 놓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지만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꽃을 버리기에도 뭐했기에 한 송이 한 송이씩 꽃병에 놓아둔 것이 이제는 거의 한 다발이 되어있었다.

 "린? 괜찮아? 이상한 표정을 하고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린은 기분 좋은 표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불만스럽다고 해야할까 초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로 공존하기 힘든 표정이었던 데다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평소에 시원시원한 린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린도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별로 나라고 해서 아무런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이 아니야?"

 린이 끓여온 차를 마시며 프로듀서는 기획서를 쓰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혼자서 여러 명의 프로듀스를 맡다 보니 린이 보는 프로듀서는 항상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프로듀서, 아직이야?"
 "아, 카에데 씨. 잠시만요. 거의 다 끝났으니까…"
 "카에데 씨도 계셨나요?"

 뒤편에서 나타난 것은 같은 신데마스 프로덕션의 타카가키 카에데였다. 25살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동안을 자랑하는 아이돌이었다.

 "응. 프로듀서랑 일 끝나면 마시러 가기로 해서. 린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카에데 씨, 린은 아직 15살이라구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런 이유로 안되겠네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린은 가방을 챙기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들어가볼게요.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밤에 무서운 사람을 만나면 한방에 날려버리렴."
 "카에데 씨, 그건 억지라니까요… 린은 조심해서 들어가고."

 
 
 "프, 프로듀서."
 "아, 린이구나. 마침 잘 왔어.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다음 날 린이 프로듀서의 자리로 찾아오자 프로듀서는 반갑게 맞이했다.

 "물어보고 싶은 거라니?"
 "그게 말이야."

 프로듀서가 가리킨 것은 보라색 꽃 한 송이였다.

 "혹시 이 꽃이 뭔지 아나 해서 말이야. 린네는 꽃집 하고 있기도 하고."

 프로듀서의 자리에 매일 누군가 달맞이꽃을 가져다 놓고 있었는데 그것이 오늘은 보라색 꽃으로 바뀌어 놓여 있던 것이었다.

 "이건 아네모네네."
 "아네모네?"
 "프로듀서는 그리스 신화 본 적 있어?"
 "어릴 적에 본 정도인데."

 린은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엄마 같은 표정으로 프로듀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도니스라는 한 소년이 있었는데 이 아도니스라는 소년은 신도 반할 정도의 미소년이었다고 해. 그래서 미의 여신이 그 소년을 총애했었지."
 "신에게 사랑받다니, 터무니 없을 정도네."
 "그래. 신화에서 신에게 엮여서 좋을 것 하나 없듯이 아도니스도 결국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한테 죽게 되는데 그가 흘린 피에서 피어난 꽃이 아네모네라고 해."

 짧은 이야기가 끝나자 프로듀서는 린을 감탄의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린은 꽃에 대해 잘 아네."
 "집이 꽃집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 뿐이야. 그런 것 보다 프로듀서."
 "아, 미안. 린도 뭔가 말하려고 했었지. 무슨 일이야?"

 린은 평소와 다르게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까지 더듬었다.

 "가, 같이 산책하지 않을래?"
 "…산책?"
 "프로듀서 오늘 하루 종일 사무소에서 일만 했으니까.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말하는 린은 프로듀서와 눈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역시 싫어?"
 "아니, 그런게 아니라. 린이 먼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라서."
 
 프로듀서의 말에 린이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럼 나가자. 어디로 갈까? 아직 저녁도 안 먹었지?"


 

 시간이 흘러 아네모네로 채워진 두 번째 꽃병도 가득 차게 되었다.
 
 "프로듀서."

 프로듀서가 사무소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자 그곳에는 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린? 잠깐만 기다려 줘. 오늘은 서류 하나만 완성하면 되니까 그 다음에 밥 먹으러 가자."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라."

 린은 등 뒤에서 꽃 한 송이를 꺼냈다.

 "받아주지 않겠어?"

 린이 건넨 꽃은 검붉은 색의 장미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무것도… 혹시 지금까지 린이 지금까지 계속?"
 "…응. 그동안 말하지 않아서 미안."
 
 프로듀서는 잠시 말없이 고민하더니 린이 건넨 장미를 받았다.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그 때도 그렇고 린한테는 심한 짓을 한 셈이 된 거네."
 "…그건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런데 정말로 받아주는 거야?"
 "응. 물론이지."

 프로듀서의 대답에 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흑장미의 꽃말,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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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게 짧게 써 봤습니다. 오늘 안에 쓰자는 생각 때문에 너무 날림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절망.

 린은 네타가 없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역시 쓰기에는 조금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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