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매거진

  3. 자유

  4. 게임

  5. 그림

  6. 미디어

  7. 이벤트

  8. 성우



키타자와, 아니 시호

댓글: 14 / 조회: 1172 / 추천: 6


관련링크


본문 - 07-02, 2017 23:35에 작성됨.

입사 3년차부터 고민이 생겼다. 밤바람을 쐬면서 다시 고민을 정리해본다. 보름달이 뜨는 밤, 어딘가 시골의 밤바다, 밤에 식은 바닷냄새. 출장을 나와서 머물던 여관에서 잠시 나와서는, 괜히 담배를 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사람이 없는 바닷가를 걸어본다. 언제나 반복하던 고민이 오늘이라고 해결될 리는 없지만, 지금의 내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다시 생각을 정리해본다.
 
 
 
  발단은 단순했다. 예능 사무소에 입사한 이후, 3년차가 되니 프로듀서 후보에서 프로듀서로 승진하면서 담당 아이돌을 맡게 되었을 때였다. 승진과 함께 새로운 일을 맡긴다는 소식을 부장님에게 직접 듣게 되고는, 그 날 바로 담당 아이돌을 만나게 되었다. 키타자와 시호라는 이름만 확인하고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최악이었다. 좁은 응접실에서 혼자 핸드폰이나 들여보고 있던 그 아이는, 승진 소식을 듣자마자 급하게 담당 아이돌을 맡게 되어 허겁지겁 들어오는 나를 전혀 반기는 눈치가 없었다. 서둘러 이력서를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에게도 건성건성 대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무얼 그리 신경쓰는 것인지 어떻게든 이어가는 대화 중에도 간간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태도는 역시 짜증났다. 처음 맡게 된 제대로 된 일이 이런 식인가, 하는 생각에 답답해진 나는 그 때 그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잠시 밖으로 나가버렸었다(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조금 좋지 못한 태도였던 거 같긴 하다).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고 싶어 자판기 앞에 가서 커피를 뽑을 때였다. 그래도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야지. 지금 사춘기인 아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건 또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도 같이 일할 아이인데, 친절하게 대해야지. 그래, 지금 그럴 수도 있는 아이인데, 내가 이해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아마 그래서 자판기에서 또 다른 음료수를 하나 뽑아서는, 응접실로 돌아가서 그 아이에게 건내주었던 거 같다. 저에게 주시는 건가요? 라고 묻는 아이에게 응, 마셔, 라고 대답하고는 다시 이력서를 읽으며 이것저것 물어봤었다. 내 착각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는 그 이전보다 좀 더 매끄럽게 대답이 돌아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덕분에 키타자와 시호에 대한 내 첫인상도 조금 바뀌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보다는 귀여운 아이일지도, 로.
  그 이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사무일을 마치고 연습장에 키타자와의 상태를 살펴보려고 갔을 때였다. 레슨실의 선생과 키타자와가 싸우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얼른 사이에 끼어 중재를 시작했다. 우선 선생의 말을 듣게 되었는데, 대충 정리해보면 레슨실에서 분실사건이 발생했는데 키타자와만이 그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었기에 의심스럽다는 말이었다. 키타자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저 선생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은 결백하다고 어필하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선생의 말만 들어보면 키타자와가 조금 의심스럽긴 했다. 뭐라고 말이라도 설명해주었으면 했지만 말을 잇지 않는 키타자와가 조금 미덥기도 했었다. 키타자와, 너가 안 했지? 선생의 말을 다 듣고 일단 진정하라고 말해서 말을 멈추게 한 다음에, 내가 물어본 한 마디는 이거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상당히 분해하면서 선생을 노려보던 키타자와가 아주 약간이나마 눈에서 힘을 풀고는 나를 향해 살짝 끄덕였던 건 볼 수 있었다. 안 했다는 거군, 하고 대답하고는 일단 키타자와가 했다는 증거도 없고 아닐 겁니다, 일이 있다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그 자리에서 키타자와를 데리고 나왔었다. 키타자와랑 같이 일한 뒤 조금 시간이 지난 덕분에, 이 아이를 조금 파악하고 있었기에 취한 행동이었다. 어쨌든 그런 짓을 할 아이도 아니었고, 키타자와는 정말 화나거나 그러면 말을 극도로 안 하는 아이기도 했으니깐. 도둑으로 몰린게 화났다면 결백해서 그런 거겠지. 그대로 휴게실까지 데려가서 키타자와가 잠시 감정을 가라앉힐 시간을 준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겸 추궁하려고 했었다. 그 때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봤다. 우는 것도 처음 보고 격한 감정을 보이는 것도 처음 보는 거라 당황스러웠다. 아, 잠시만, 이러지 마, 나 아이 달래는 건 귀찮다고. 그래서 아무말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일단 우는 게 보기 싫어 말했다. 너가 안 했고, 내가 뭘 도와주었으면 하는 게 있니.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나를 보는 시호의 얼굴에, 나는 오래 참지 못하고 말을 이어버렸었다. 너를 오해하는 선생은 교체는 가능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지금 경비가 퇴근했을 시간이라 체크하기 힘들지만 내일부터 감시카메라 데이터 살펴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거고, 진범은 아마 미친 놈인 외부자일 거니깐 (실제로 정신나간 놈들이 팬이라고 하면서 연습실에서 뭘 훔치거나 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거 찾아내서 처벌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얼른 상황을 정리해버리고 싶어서 쓸데없이 말을 늘여놓았다. 키타자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때 울음은 멈추었기에, 아 이걸로 해결했나 하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키타자와를 집에 데려다주었었다(정확히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 차로 데려다 준 거였지만). 차에서 내리고 마지막에 키타자와가 나에게, 울음을 참느라 조금 쉬어버린 목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P씨. 이름으로 불린 것도 처음이었고 키타자와의 쉰 목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고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도 처음이었고 키타자와의 감정이 담긴 표정을 보는 것도 처음이어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대답은 듣지않고 그대로 키타자와는 돌아갔다. 이 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던 거 같긴 하다. 키타자와에 대해서.
 
 
 
  고민을 확실히 인지한 때는 그 때였다. 키타자와가 오해를 받았던 일도 해결하고 - 청소부로 변장한 왠 미친놈이 물건을 훔친 것이었고, 선생은 키타자와에게 사과했고, 키타자와도 사과를 받아들여서 일은 잘 끝났었다 - 첫 공연을 마쳤을 때였다. 주말의 백화점 옥상에서 연 이벤트에서, 잠시 대기시간동안 한 곡 정도만 안무를 선보이는 아주 간단한 공연이었다. 언제나 덤덤하게 준비했지만 열심히인 아이이기도 했고 공연의 규모가 워낙 작았던 지라 공연을 마쳤을 때는 키타자와를 위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알아, 볼품없고 사람들이 제대로 봐주지도 않고 보는 사람이라고는 해봤자 코찔찔이 얘들 정도밖에 없지만, 원래 첫공연이라는 건 그런 거야, 이건 준비나 연습 같은 거니깐, 조금만 더 있으면 제대로 된 일을 하게 해줄테니 너무 공연에 불만 같지 말고 응? 이런 말을 연습하면서 준비하던 차에, 키타자와가 무대에서 내려와 나에게 보여준 것은, 얼굴에 만연한 미소였다. 가쁘게 쉬는 숨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 더운 여름날 땡볕을 받으며 춤을 추느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흐르는 땀, 그 모든 모습을 반짝이게 만드는 얼굴의 미소. 아이돌 지망을 했고 면접에서 뽑힐 정도의 자질이 있으니깐, 그 정도의 소질이 있으니깐 표정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많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일까? 그 때 나는 그 미소에서 공연을 해냈다는 성취감, 관객들이 나를 봐주고 있었다는 고양감, 드디어 자신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어떤 행복, 그리고 모든 걸 다 하고는 저 잘했나요 라고 묻는 그, 마땅한 칭찬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그래 그, 그러니깐, 표현이 웃기지만 이 표정만이 정확한 대답인데, 그,
 나를 사랑해주세요라고 하는 듯한, 표정.
  이렇게 멋진 공연을 나를 봐주는 사람앞에서 멋지게 선보였으니 나를 칭찬하고 사랑해주세요, 라고 하는 듯한 그 눈빛을 읽어버렸다.
  그 표정과 그 눈빛 때문에 몸 전체가 너무 활짝 핀 듯이 보인 것도 잠시, 일단 나는 수건을 주고는 잘했어, 정말 잘했어, 짧았지만 멋졌어, 라고 격려해주고는 휴게실에 키타자와를 데려다주고 휴게실에서 얼른 나왔던 것 같다. 그 과정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사실. 하지만 아마 그랬던 거 같다. 일할 때는 일에만 신경쓰는 타입의 인간이니깐, 아마 그랬을 거다. 그렇게 키타자와에게 쉴 시간을 주고 옷을 갈아입길 기다린 다음에, 그 날은 그대로 키타자와를 퇴근시켰던 것 같다. 그 날 따라 키타자와가 수다스러워졌던 거 같다. 아마 그 날을 기준으로 키타자와가 나랑 있을 때 조금씩 잡담을 하게 된 거 같긴 하다. 내릴 때도 밝게 인사하고는 집에 돌아가던 것 같다. 그 날의 일은 너무 선명하게 내 머리에 새겨진 주제에, 열의만 있는 중학생이 형편없이 새긴 판화숙제처럼 뚜렷한 내용이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는 그 사실 하나에 고민을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키타자와 시호를 좋아하게 되었다. 팬으로서도 당연하고 담당하는 책임자로서도 당연하고, 남자로서도 당연하게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덕분에 14살짜리를 좋아하다니 그럴 순 없다는 고민이 그 때부터 내 어깨에 얹어지긴 했지만.
  그 이후로 온갖 상상을 다 한 것 같다. 스스로가 발정기인가, 싶은 생각도 조금 해봤다.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좀 갉아먹어보기도 했고, 그냥 감정만 받아들여보지 생각하고 참아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스스로의 감정은 언제나 조금씩 새어나간 덕분에, 키타자와랑 잡담을 할 때는 최대한 웃기려고 노력해본다거나(의외로 내 개그가 통하는 아이라는 게 기분이 좋기도 했고 왜 이런 아저씨의 유머에 웃는 거지 하는 의심도 들기도 했고), 좋아할 만한 과자 같은 게 보이면 종종 사준다거나(사줄 때마다 대부분은 아이돌한테 이런 거 사주는 프로듀서가 어딨어요 하고 구박을 받았지만), 일 외에 학교 일도 물어보고 신경쓰고 챙겨준다거나(역시 아이돌 일과 학교 일을 같이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던지라, 내가 도와줄 구석은 많이 있었다), 종종 잘했다고 쓰다듬어준다거나, 밥을 먹을 때 같이 먹는다거나, 뭐 그런 것들을 하면서 새어나가는 감정을 조금씩 만족시켰던 거 같다. 스스로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그러고 싶었고 죄책감과 거리감을 스스로 억지로 만들면서도 그저 기쁘고 좋았던 거 같다. 11살 차이는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서 20대면 아직 젊으니깐 하는 생각도 했다. 점점 웃어주는 시호를 속이고 있는 듯한 기분을 시호의 미소가 가져오는 그 행복만으로 짓눌러버렸었다.
 
 
 
  밤 바람을 쐬면서 고민을 다시 펼쳐보았지만, 역시 딱히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다. 시호의 마음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뭘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더 해야 하는 것도 없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는 것... 같다. 모래를 밟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고민과 생각은 끝났다. 생각보다 멀리까지 와버린 덕분에, 머물던 여관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호텔의 빛이 주위를 비추어주는 덕분에 돌아가는 건 문제없지만. 발을 돌려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면서 조금 더 고민을 해보았지만, 그저 자신의 감정을 다시 확인하며 여관에 도착한다.
  여관으로 돌아와 2층으로 올라와 복도를 지나가며, 시호가 머무는 안 쪽 방의 문을 잠깐 보았다. 지금쯤 쉬고 있겠지. 지방로케 방송이랍시고 먼 거리를 차로 이동해서는 아침부터 낮까지 돌아다니고 열심히 떠들고 그랬으니깐 몹시 지쳤을 거다. 이제서야 이런 방송에 출현해본 거니깐 더더욱. 잠깐 지켜보던 걸 그만두고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는다. 베란다에 잠시 가서 앉았다. 어떤 의미로 운이 좀 없는 하루였다. 로케 방송을 마친 건 좋은데 예상보다 30분 늦게 끝나서는, 열심히 돌아가던 길에 키타자와에게 음료수를 사준답시고 휴게실에 들려서는, 그대로 조금씩 늦은 시간들 덕분에 곶을 건너는 배를 놓치고, 거기에 열심히 굴리기만 한 회사 차는 타이어 한 쪽이 이상해져서는 이대로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기에는 좀 위험해지고, 그런 하루였다. 그래서 근처에 호텔을 찾아봤지만 비싼 건 둘째치고 방도 별로 없어서 이런 허름한 여관에서 머물게 되었고, 키타자와는 덕분에 생에 첫 외박을 이런 허름한 여관에서 하게 되고, 역시 운이 없는 하루였다. 내일은 아침에 돌아가면서 맛있는 거라도 사주고 그래야지, 그렇게 기분도 풀어주고 그래야지.
  그나저나, 솔직히 말하면 조금 망상도 하긴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룻밤 묶고 돌아가야겠다 하고 판단하고 결정했을 때는, 근처의 방들이 모두 꽉 차서 겨우 방 하나에 둘이 들어가는 상황을 상상하기도 했다. 방을 바로 두 개 찾고 바로 두 개 빌리고 바로 방 하나를 주고 쉬라고 들여보낼 수 있었던 자신은 조금 칭찬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관주인이 주는 밥을 같이 1층에서 먹을 때도 조용히 먹고는 마치 부녀관계처럼 얌전한 대화나 했던 것도 다행이었고, 여관주인이 딱히 키타자와를 못 알아본 것도 다행이었다. 아, 아니 이건 좀 당연한가, 아직 무명 아이돌이니깐.
  망상 덕분인지 잠이 조금 깨어버렸다. 그런데 어차피 이런 생각을 해봤자 밤에 괜히 뒤척일 뿐이라는 건, 최근 계속 경험하고 있으니 잘 안다. 잠이나 자자. 아마 그게 제일 낫다. 내일은 아침 일찍 키타자와를 데리고 돌아가야 할 테니깐. 그러자고 결심하고 베란다에서 일어났을 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누구시죠?"
 
  키타자와인가? 아니 그럴 리가.
 
  "저에요, P씨"
 
  이 아이는 종종 너무 놀래키는 때가 있단 말이지. 스스로의 옷차림을 잠깐 돌아본다. 유카타는, 응 제대로 입고 있다. 바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니?"
  "......"
 
  문을 열었을 때, 시호는 베개를 껴앉고 있었다. 인형 대용인가? 소중히 하고 있는 고양이 인형, 집에 있다고 했으니깐 그거 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나보다.
 
  "......"
  "...응?"
 
  이렇게 조용한 아이가 아닌데, 왠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쭈뼛거리고 있다.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말을 안 하거나, 아님 말을 해버리는 아이다. 쭈뼛거린다는 키타자와 시호 답지 않은 태도인데. 종종 보이는 태도... 이긴 하지만.
 
  "그, 저기, 그게"
  "응"
 
  이럴 땐 좀 가만히 기다려줘야 한다.
 
  "그러니깐, 그.... 으으... 음..."
  "응"
 
  가만히 기다려주기만 하면
 
  "잠시... 그, 들어가도 될까요? P씨 방..."
  "응... 응?"
 
  말을 한다. 물론 폭탄발언을 할 줄은 몰랐지만. 어? 왜? 내 방? 어째서? 응? 아저씨의 망상? 어? 안 되는데? 안 돼? 왜? 아니, 괜찮지? 괜찮아? 좋아? 어? 아닌데? 잠깐만? 이래도 되나? 어이 브레이크, 브레이크 어디 갔냐? 일단 멈춰? 잠깐만 이거 가동하나? 브레이크님? 아닌가? 브레이크 필요없나? 아니 잠깐만? 물음표 너무 많지 않아?
 
  "......"
 
  그 때, 시호의 표정을 본다. 그저 기다리고 있는 표정,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뭐가 어쨌든, 도망칠 수는 없고 선택을 할 때가 왔다. 최근에 계속 고민해왔고 오늘 밤도 잠시 고민을 정리하고 온 건 지금 이 때를 위한 것이었나. 종교인들은 이런 걸 느낄 때가 있어서 신을 그리도 믿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이 그 때인가, 라는 느낌.
 
  "...그래, 들어오렴"
 
  시호를 내 방에 들이고 문을 닫았다.
 
 
 
  뭘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는 시호. 꼭 끌어안은 베게가 괜시리 인형처럼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둘 다 서있기가 조금 그래서, 일단 내면의 브레이크를 따라 베란다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시호에게 권했다.
 
  "...일단 앉을래?"
  "아, 네"
 
  그 말에 시호는 바닥에 앉았다. 이미 깔아놓은 이불의 한 가운데에 시호는 조용히, 여전히 베개를 끌어안은 채로 얌전히 앉았다.
  
  "......"
  "......"
 
  한동안 침묵. 견디기 힘들다. 기다려줘야 한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다. 지금은 기다릴 때다. 알지만, 알기에, 더 견디기 힘들다.
 
  "저기, 그, P씨"
  "응"
 
  지금 서로 앉아있는 거리만큼만 거리를 두고 담백하게 하는 대답.
 
  "오늘 그... 같이, 그..."
  "응?"
  "그러니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어, 으응"
  "......"
  "......"
 
  키타자와가 몹시 긴장하고 있던 덕분에 이 쪽의 긴장이 조금 가라앉았다. 잠깐 차분해진 덕분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왜 그러니? 무슨... 하고 싶은 말 있니?"
  "...그게"
 
  그리고 다시 침묵. 이번에는 방금 전보단 좀 기다리기 수월했다.
 
  "...그러니깐, 그, 좀 이상한 부탁일지도 모르지만"
  "응"
  "같이 자도... 될까요? 오늘 밤"
 
  말하고는 부끄러운 듯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히는 키타자와.
 
  "...무슨 일 있니, 혹시?"
 
  뭔가 이상하다 싶다. 왜, 왜 냅다 같이 자자고 하는 걸까. 아저씨의 망상이 아닌 이상 이건 뭔가 다른 의미같다. 긴장이 가라앉았던 덕분에 머리가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
  "......"
 
  이번에도 침묵. 하지만 이번엔 좀 금방 입을 연다.
 
  "...예전에 아빠랑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요. 어딘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바닷가였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고 첫 여름방학이었을 거에요"
  "......"
  "동생은 아파서 집에서 엄마랑 같이 쉬게 되었지만, 바닷가에 가자는 약속을 지켜주겠다고 아빠가 저만이라도 데리고 놀러간 곳이었어요"
 
  동생, 가끔 들었던 남동생이구나.
 
  "아마 제가 떼를 썼던 거 같아요... 바다를 그렇게나 가고 싶었는데 동생때문에 못 간다거나 그러는 건 싫다고 했던 거 같은데 사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요"
 
  거기까지 얘기하고 스스로가 부끄러운 듯이 잠시 말을 멈추는 키타자와. 아이일 땐 그렇지, 노는 거 못 놀게 되는게 가장 싫긴 하지. 그 심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타자와는 그게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성실한 아이니깐. 조용히 키타자와에게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옆에 앉았다.
 
  "... 어쨌든 그렇게 바닷가에 가서는 즐겁게 놀았던 거 같아요. 바다에서 물장난도 치고 뭔가 이상한 것도 많이 먹고, 잘 기억은 안 나지만요"
  "아아"
  "그리고 그 날 밤에, 아빠랑 같이 이런 다다미 방에서 잤어요. 풍랑만이 흔들리고, 바다냄새가 방 안에 스며들어 있었고, 제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책을 아빠가 읽어주고... 아빠, 항상 바빴던 덕분에 아빠가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은 별로 없어서, 그게 그렇게... 그.... 너무 좋았어요"
 
  다시 쓰다듬어주었다.
 
  "그래서 그 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달라고 조르고, 아빠는 그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주시고, 그러면서 쓰다듬어주고, 그러다가 아빠 품에서 그대로 잠들었고... 그런 적이 었었어요"
 
  새삼스럽지만 이 아이의 나이를 깨닫는다. 14살. 중학생이라는 나이는 어린 나이다.
 
  "그 때가 마지막이었어요. 아빠가 책을 읽어준 건"
  "......"
 
  갑작스런 고백에 생각이 멈추었다. 이런 고백은 망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 뒤로 아빠는 다시 바빴고... 그대로 아빠를 다시 못 보게 되었네요"
 
  물어야 하나?
 
  "그랬...구나"
 
  아니, 아무 것도 물을 수 없다. 나는 잠시 멈춘 말문을 그대로 멈추고, 키타자와를 쓰다듬어주었다. 씻은지 시간이 지났지만 긴 머릿결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가늘었다.
 
  "아빠가 보고 싶어지다니... 이제 얘도 아닌데..."
  "......"
 
  아니, 아니야, 그건 얘냐 아니냐랑은 상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무력하게 키타자와를 그저 쓰다듬었다.
 
  "오늘은... 정말 보고 싶어져서... 아빠랑 같이 왔던 바다같아서..."
  "......"
 
  그러고보면 요즘 집에 들여보내는 게, 늦었었지. 어차피 너무 늦었기에 밥을 먹이고 들여보낼 때도 있었고, 연습량은 점점 늘기도 했고.
 
  "요즘은 엄마도 집에 항상 늦게 오시니깐요"
  "무슨 일 있으시니...?"
  "아, 아니에요, 그냥 그, 요즘 갑자기 조금 바빠졌던 모양이라!"
  "...동생은 괜찮고?"
  "아, 네! 괜찮아요. 요즘은 저번에 들어간 축구부 얘들이랑 저녁까지 축구하고 들어오니깐, 제가 그렇게 안 돌봐줘도 돼요"
 
  항상 동생을 챙기는 아이. 처음 만났을 때도 사실은 휴대폰으로 동생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느라 내 얘기를 잘 듣지 못했던 것임을 알았을 때는, 상당히 미안해졌었지.
 
  "그랬구나..."
  "아, 네... 그, 어쨌든, 그, 뭐랄까, 그래서랄까, 갑자기 이상한 말이나 하게 되고, 으음"
  
  외로웠구나.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이랑도 멀어졌겠지. 항상 집에 가면 엄마랑 보내는 시간도 아이돌 활동 덕분에 없어졌겠지. 동생도 이제 슬슬 친구들이랑 어울리겠지. 아빠가 없었단 건 오늘 알았다고. 그건 얼마나 큰 상실감일지. 그건 얼마나 큰 외로움이었을지. 아이돌 활동 조차도 아직 친구 한 명 없었지. 언제나 성실히 연습을 하니깐, 놀 시간도 없었겠지.
 
  "그냥 그..."
  "응"
 
  그저 쓰다듬어준다. 우으, 대체 뭐에요, 하는 표정으로 시호가 올려다본다. 그래서 더 쓰다듬어주었다.
 
  "장해서"
  "네?"
  "정말 열심히 해왔구나, 시호는"
  "새, 새삼..."
  "응, 괜찮아"
 
  다시 쓰담쓰담.
 
  "새, 새삼..."
  "응, 응"
  "......"
 
  무슨 말을 하려다가, 키타자와는 말을 멈추고는, 그대로 내 손길을 받으면서 그대로 내 몸에 기댄다. 이 아이는 지금 나에게 온전히 기대어버렸다. 그래서 계속 쓰다듬었다. 이 아이의 숨소리가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꼭 껴앉은 베개에 힘이 풀릴 때까지, 조금씩 마음이 풀려서 그대로 잠들 때까지 그저 시호를 쓰다듬었다.
  응, 이 아이는 내 아이다. 시호는 내 아이다. 이 아이는 내가 지키고 키우고 언제나 웃게 만들어주고 싶다, 언제나 힘나는 그런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가 나 같은 거 필요없어질 때까지 내가 지키고 싶다. 정말 그런 생각만이 정말 그런 감정만이 머리에 가슴에 그저 꽉차서는 그 꽉찬 생각과 감정을 그저 쓰다듬는 것만으로 조금씩 표현할 수 밖에 없는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 아이는, 시호는, 나의 아이다.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그 뒤, '아 그림책 읽어줄까, 시호?' 하는 말을 했다가 시호한테 베개로 한 대 맞고 나서, 시호의 방에서 이불을 가져와 좁은 방에 깔고는 조용히 시호를 재웠다. 피곤했던 모양인지 시호는 자리를 깔고 눕는 것만으로 금방 잠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 옆에 누우니 순식간에 피곤해졌다. 최근엔 망상이나 여러가지 이유로 잠에 드는게 느렸는데, 눕자마자 이렇게 깊게 피로한 건 의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잘 모르겠지만... 편하달까... 누군가의 숨소리가... 마음이 너무 편하.......
 
 
 
  이른 아침에 도심은 제법 한산하다. 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가면서, 이 도시에 이리 차가 없는 건 오랜만에 본다고 생각했다. 옆 자리의 시호를 힐끗 본다. 핸드폰을 열심히 치고 있는 걸 보면, 동생이나 엄마랑 얘기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시호의 엄마는, 이런 주말에도 일하는 걸까. 아니, 딸이 걱정되니 아침 일찍 일어난 거겠지. 조용히 차를 운전한다. 곧 시호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에 맞추어 말을 건다.
 
  "시호"
  "아, 네?"
  "그... 나중에 같이 동물원이라도 갈래?"
  "동...물원이요?"
  "동물원이라기엔 애매하지만, 어딘가 고양이만 잔뜩 모아놓은 동물원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거 캣카페 아닌가요?"
  "으응.. 조금 달랐던 거 같기도 하고"
  "뭐죠...?"
  "뭔가, 되게 동화풍인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추어 고양이들이랑 같이 즐기는 동화책같은 공간을 목표로 했습니다! 라더라고"
  "흐응..."
  "나중에, 쉬는 날 얘기지만 말이지... 동생도 같이 말이야"
  "동생도요...?"
  "응, 남자아이니깐 고양이같은 건 별로 관심이 없을려나?"
  "아, 아마 좋아할 거에요, 동생도 고양이는 좋아하니깐"
  "그렇군, 아주 좋군"
 
  그리고 잠시 침묵. 벌써 목적했던 곳에는 도착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차를 멈추고, 시호를 차에서 내린다.
 
  "아니면... 시호가 좋아하는 곳이 있다면 거기도 좋겠지, 동생도 같이 말이야"
  "어째서 그렇게 동생을?"
  "응, 그냥 시호에게 얘기 많이 들었으니깐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서 말이야"
  "동생은 아이돌 안 시킬 거에요"
  "일 얘기 아니야!"
 
  워커홀릭으로 보인 기억은 없는데, 일이랑 연관짓지 말라고.
 
  "농담이에요"
 
  농담이 서툴잖아...
 
  "그러네요, 동생도 P씨, 궁금해하긴 할 거 같아요. 한 번 얘기해볼게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네, P씨, 감사했습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아, 잠깐만"
 
  시호를 불러세웠다. 불러세우고 가만히 있으니 시호가 궁금해하며 차로 고개를 숙였다. 그걸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그대로 시호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뭐에요"
  "응, 수고했다고"
  "에, 에?"
  "응, 그런 거야"
  "......"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저기, 그 P씨..."
  "응?"
 
  시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몹시 부끄러운 듯이 잠시 얼굴을 붉히고는, 하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다음엔 좋아하는 그림책, 가져올테니... 그 때는, 읽.. 이, 그러니깐"
  "응, 읽어줄게"
  "...에헷..."
 
  시호에게서 처음으로 아이다운 반응을 본 거 같다. 아이는 그 반응만 남기고는 가버렸지만, 내 머리 한 켠과 심장 한 켠에 시호, 라는 아이를 새기기에는 충분했다.
 
  그 날 이후로, 나에게는 시호라는 의무가 생기었다. 조금 크지만 그저 조금씩 더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기쁜 의무였다.
 
 


 

 

어... 뭘 쓰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나와버렸습니다.
최근 밀리시타를 하다가 시호의 설정을 좀 보고, 뭔가 시호한테 확 치이는 느낌이군요.
귀엽고 좋은 아이에요! 시호는!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7-07-08 22:48:57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08067
6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