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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무라 우즈키는 자신의 성벽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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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3, 2017 23:37에 작성됨.

신데렐라 프로젝트 룸의 소파에서는 전에 없이 기묘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소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시선을 집중했다.

 

 안즈나 할 법한 일이다. 하지만 키라리만큼 크다. 하지만 키라리보다 훨씬 선이 굵고, 무엇보다 남자다. 이 남자를 안다. 요 며칠 못 봤지만 날 맡아 돌보아 주고 계신 프로듀서님이다. 우즈키가 이런 새삼스러운 생각까지 한 것은 그만큼 눈앞에 있는 프로듀서의 행동이 생경했기 때문이다.

 

 CP의 프로듀서가 룸의 소파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우즈키가 놀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제나 단정한 수트 차림으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동시에 기획과 사무까지 수행하면서 피곤한 기색 한 번 내지 않는, 마치 청동으로 만든 무사상 같은 사람이다. 표정의 이완이 어색한 것은 그 부작용일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무리 격무에 시달린다 해도 이 사람이 곯아떨어져 있는 모습은 어쩐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동상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실례되는 발상이라고 우즈키는 속으로 자신을 혼냈다.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보이긴 해도 구석구석에 인간미가 배여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모습도 드물긴 하지만.

 

 프로듀서는 이불 대신 정장 외투를 덮고(정확히는 ‘얹어놓고’) 꿈나라로 출장을 간 상황이다. 자연히 그의 와이셔츠가 눈에 들어왔는데, 역시 숙면에는 불편했는지 넥타이는 풀려서 소파 아래에 흘러내렸고, 평소라면 목까지 꽉꽉 눌러채울 단추도 세 개나 풀어져 있었다. 해이해진 옷깃 틈으로는 살이 비치지 않도록 속에 입은 무늬없는 흰색 면 셔츠가 보였다. 코 고는 소리는 크진 않았으나 조용한 프로젝트 룸 안에서는 충분히 선명한 음량이었다. 우즈키는 그 코골이 소리가 귀여워서 살짝 웃었다.

 

 우즈키는 잠이 든 프로듀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엔 다시 못 볼 진귀한 경치를 보는 기분에 가까웠지만 보고 있을수록 잠든 프로듀서의 모습 자체가 어쩐지 시선을 붙잡았다. 이 상황의 유일한 목격자가 그녀 혼자 뿐이라는데 우즈키는 상반된 두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린이나 미오와 함께 왔다면, 이 광경을 보고 조용히 빠져 나와서 우리끼리 담소를 했을지도 몰라. 프로듀서님도 역시 사람이었네요! 그치만 참 신기한 일도 다 있죠? 아, 코 고시는 게 살짝 귀여웠어요! 하면서.

 

 그런 한편으로 또 하나, 우즈키는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가 외투를 덮고 누운 모습, 그의 와이셔츠 속 흰 티, 그의 귀여운 코골이 소리를 보고 들은 사람은 동료들 중에서도 그녀 뿐일 것이다. 그러니 린이나 미오나 다른 동료들이 프로듀서가 안에 받혀 입은 티가 브이넥이라든가, 코를 고는 주기가 2초마다 한 번 씩이라든가 하는 점을 어떻게 알겠는가. 심지어 프로듀서 자신도 그의 자는 모습은 보지 못한다. 세상에서 이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아는 사람은 시마무라 우즈키 말고는 없다.

 

 나 말곤 없어, 라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중얼거리면서 우즈키는 살짝 입가가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내가 잠든 프로듀서님을 목격한 걸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부러워할까? 아니면?

 

  사진을 찍어서 LINE에 올려 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을 켰다. 액정에 맺힌 프로듀서의 잠든 모습을 응시하던 우즈키는 30초 정도의 망설임 끝에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잠든 얼굴을 찍다니, 나라면 불쾌할 거야. 혹시 이것도 성추행일지 모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온전히 혼자 독점하는 것이 더 즐거운 비밀도 있는 법이니.

 

 결국 우즈키는 카메라 대신 눈으로 지금의 장면을 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우즈키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프로듀서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이렇게 오랫동안 (장장 30분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철이 든 후로는 없었다. 버릇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우즈키는 프로듀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작지만 분명하게 그의 강인한 성격을 표현해주는 눈매, 미간부터 뻗어나와 그의 수수하면서도 독특한 이미지의 포인트가 되어주는 팔자주름, 어지간해서는 곡선을 그릴 일이 없는 단단한 입가도 모두 응시하는 순간마다 새롭게…

 

 “어머….?”

 

 우즈키의 시선이 프로듀서의 입가에 고정되었다. 그 입가에는 정말로 새로운 무언가가 있었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못할, 물론 지금의 상황 자체가 상상도 못한 일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그의 인상 전체에 새로운 매력을 주고 있었다. 사내의 화룡점정. 홀린 듯 뚫어져라 바라보던 우즈키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그것을 만지려 새하얀 손가락을 뻗었다…



 프로듀서는 진심으로 자기 몸이 쇳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무렵은 언제나 바쁜 시기였지만 올해는 특히 그랬다. 보고서와 사무처리만으로도 정신없을 시기인데 이때와 겹쳐서 CP 전원이 참석하는 대형 이벤트 오퍼까지 들어와 스케줄 조정에만도 진땀을 빼야 했다. 도저히 현장업무까지 병행하지 못하는 사정 탓에 결국 아이돌들의 현장에는 치히로가 대리 프로듀서로 나서 주어야 했다. 언제나 그녀들을 마주하며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할 본인이 자신의 사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 역할을 떠넘기다니, 프로듀서로서의 능력 미달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화를 내는 것이 프로듀서라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일은 길었다. 정말로 길었다. 이틀만 세면 될 거라 생각했던 보고서 작성이 사흘째 새벽을 맞고서도 완료되지 않았다. 수북이 쌓여 있는 드링크 병으로 피로를 유예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솔직히 말해서 그 사흘 동안 수십 번은 미쳐버릴 것 같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내분기 전망이니 장기적인 프로젝트 운용전략이니 하는 것은 뇌에서 싸그리 지워버리고 대자로 뻗어 누워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집무실은, 당연하게도 업무는 몰라도 숙면에 편한 환경은 아니다. 일에 지친 프로듀서의 뇌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집무실 한쪽에다 간이용 침대라도 마련하면 어떨까. 야근한 다음 바로 그곳에 누워서…’

 

 안즈가 들었다면 대단히 현명한 결정이라고 치하할 아이디어였지만,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평소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점이다. 하지만 스스로 안건을 기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가 ‘누군가 침대의 용도를 물어봤을 때 “일하다 졸리면 자려고요" 라고 대답하기 민망하니까’ 가 아니라 ‘침대가 있으면 눕고 싶어지고 결국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테니' 였다는 점에서 평소의 그다운 성실성이 격무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잡다한 생각을 떨쳐내면서 업무를 끝마쳤을 때는 새벽 3시 반이었다.

 

 끝마친 직후의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평소 상태가 아니었다. 지내는 아파트로 가는 것이 죽도록 귀찮았다.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이나 간 다음에, 다시 걸어서 10분, 또 버스를 타고 30분. 그런 머나먼 여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귀찮아. 난 자고 싶어.

 

 그 순간 떠오른 것은 그 두 가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소녀였다. 정확하게는 그 소녀가 프로젝트 룸의 기다란 소파에 누워 태평무사하게 잠을 자던 모습. 어째서일까, 그 광경이 지금 무척 매혹적으로 프로듀서를 충동질했다. 소녀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그래서 누웠다. 좁지만 그런대로 잘 만은 했다. 솔직히 말하면 누울 자리만 있으면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구석에 있는 미오의 햄버거 쿠션을 베개로 삼았다. 머릿가에서 풍기는, 아이돌 소녀들이 껴안고 몸을 묻으며 남겨놓은 생기어린 잔향을… 채 맡기도 전에 그는 졸도하듯이 잠들었다.

 

 물론 그가 잠에서 깬 뒤를 생각하지 않고 소파에 드러누운 건 아니었다. 만일 CP의 누군가가 프로젝트 룸에 찾아온다면 무척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정확히는 어제)의 이벤트 이후 하루동안 CP에는 아무런 스케줄도 잡혀 있지 않았다. 이마니시 부장이 발휘해준 배려와 수완의 덕택이었다.  그러니 하룻동안은 이 방에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오후에는 눈을 뜰 테니 그때 아래 사원용 샤워실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번만은 아무 걱정 없이 푹 자자. 모레부터는 다시 프로듀서 본연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잠들기 전 그의 마지막 생각은 영락없이 그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차분히 생각했다면 일이 없어도 언제나 찾아와 자율 레슨을 하고 가는, 성실성이 자랑인 소녀의 존재를 잊을 리가 없었을 테니.




 깨어난 프로듀서와 눈과 눈을 마주쳤을 때 우즈키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잠깐의 공백이 있은 다음, 우즈키는 자신이 지금 고양이의 턱을 간질이는 듯한 모양새로 프로듀서의 아래턱을 만져대고 있으며, 그것은 상대에게 차고 넘치게 실례가 되는 짓임을 자각했다. 우즈키는 빨개진 얼굴로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자신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는 걸 망각한 대가로 귀엽게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잠에서 깨자마자 눈앞에 시연된 슬랩스틱에 순수하게 웃을 경황이 없었다.

 

 “시, 시마무라 씨? 어째서 여기에?”

 

 “프, 프, 프로듀서님! 에, 그게 저기, 그,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야지. 바보야! 무례한 짓을 해놓고 얼버무리려는 거야? 그치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화, 화나셨으면 어떡하지? 그보다 삼십 분이나 그러고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당연히 깨실 거라는 생각도 못했어? 나 정말 바보바보바보!

 

 ‘뭐부터 사과해야 하지? 잠을 깨운 거, 아니면 주무시는 얼굴을 계속 지켜본 거, 아니면 그…’

 

 우즈키가 당황했을 때 그녀 특유의 반응 ―눈이 빙글빙글 돌면서 ‘에에'하는 울먹임을 반복하는―을 보이던 와중, 프로듀서의 날카로운 추궁이 들어왔다.

 

 “시마무라 씨!"

 

 “예에!”

 

 “오늘이 며칠입니까?”

 

 “예에?”

 

 어, 그러니까 말일인데요. 우즈키의 대답을 듣고 프로듀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들리지 않게. 맨 처음 우즈키의 얼굴을 보고 그의 등골을 뚫고 뇌리를 찌른 무서운 생각은 너무 피곤했던 자신이 아예 하루를 그대로 자면서 보내고 다음날을 맞이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당일 오후 2시였다.

 

 “그런데 시마무라 씨는 왜 여기에….? 오늘은 스케줄이 없지 않습니까?”

 

 “네. 그런데 역시 레슨을 하려면 트레이닝 룸이 좋겠다 싶어서…”

 

 기특한 대답에 프로듀서의 입가가 살짝 느슨해졌다. 바로 어제 이벤트를 치르고 고단할 텐데도 빠짐없이 자율 레슨을 하러 나오는 아이돌은 그의 프로듀서 인생을 모두 뒤져보아도 희귀했다. 그런데 시마무라 씨가 왜 저렇게 얼굴을 붉히는 거지? 그걸 물어보려던 프로듀서는 이내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다. 부스스하게 떡진 머리, 넥타이도 풀어젖히고 흐트러진 와이셔츠, 그리고 무엇보다 해이해진 모습을 자신이 돌봐주어야 할 아이돌에게 보여주었다는 사실 그 자체.

 

 “며,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못난 모습을…”

 

 “예? 아,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그…”

 

 “아무리 피로했다지만 직장에서 골아떯어진 모습을 보여드릴 줄이야… 민망한 꼴을 보였군요…”

 

 “아니, 그러니까, ...저기! 왜 저도 예전에 프로듀서님께 비슷한 모습을 보였었고, 그러니까 전 괜찮은….아.”

 

 두 사람 모두 지난 초여름의 일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혔다. 우즈키가 몸살로 레슨을 쉬었을 때 프로듀서는 병문안을 왔고, 예상치 못한 손님 앞에서 우즈키는 부스스한 머리와 꾀죄죄한 잠옷 차림으로 프로듀서를 맞이했었다.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떠올려 보니 새삼 엄청나게 부끄럽다.

 

 그러고 보니 그때 나 브래지어도 제대로 안 입었었지. 설마 그런 것까지 눈치 챘을 리는 없지만 프로듀서 역시 그때의 우즈키를 떠올렸는지 살짝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피차 부끄럼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어찌어찌 분위기가 수습된 후 우즈키는 회사에 온 본래 목적을 수행했다. 그러나 레슨에 집중한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으니 휴일에 굳이 출근까지 한 수고에 비하면 별로 영양가는 없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레슨을 마치고 샤워룸에서 몸을 씻고 나온 우즈키는 다시 프로듀서의 얼굴을 상상했다. 생전 처음 보는 자고 있는 프로듀서. 다크서클 탓인지 더 깊어진 듯한 팔자주름. 살짝 벌어진 입가 주위에 있던…. 우즈키는 다시 콩닥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마무라 우즈키는 2차 성징을 끝낸 수컷 호모 사피엔스의 얼굴 하관에 자라는 독특한 체모에 유별나게 성적 흥미를 자극 받는 편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남성의 수염에 페티시를 가졌다. 며칠을 철야하던 프로듀서에게 거울을 볼 시간이 있을 리 없었고, 슬슬 눈에 띄게 자라난 수염에 쏟을 신경은 더더욱 없었을 테니. 그 결과 프로듀서의 얼굴에는 우즈키를 저항할 수 없이 설레게 하는 남성적인 매력이 여물었던 것이다.

 

 우즈키로서도 이상한 경험이었다. 물론 그녀는 좋아하는 영화배우도 몇몇 있었지만 수염이 그들의 매력을 북돋아준다고 의식한 적은 없었다. 일전에 린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멋진 수염이 인상에 남긴 했지만 페티시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수염난 프로듀서의 얼굴을 본 순간―정말 그랬다. 그녀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의 혈관이 확 뜨거워지면서 관절이 바싹 당겨지는 기분은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손가락으로 프로듀서의 ‘까실까실'한 턱수염을 매만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쓸을 때와 왼쪽으로 쓸을 때의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고양이 털을 쓰다듬는 것처럼. 그 감촉은 우즈키를 기묘한 황홀경에 빠트렸다.

 

 결정적인 것은 프로듀서가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수염을 기른 채, 흐트러진 와이셔츠의 매무새를 고치는 프로듀서의 모습은 완벽하게…. 로망의 성인 남성 그 자체였다. 영화 속의 와일드한 주인공처럼, 아니 영화배우보다 더 멋지게, 정말로…

 

 “시마무라 씨.”

 

 부르는 소리는 프로듀서였다. 제멋대로 뻗쳐 있던 머리가 가라앉고 옷매무새가 말끔해진 걸 봐서는 그도 샤워를 하고 온 모양이다. 새삼 눈앞의 남자가 바로 조금 전까지 샤워를 하고 있었다는 걸 의식하자 다시 얼굴에 피가 몰렸다. ‘프로듀서님이 샤워를 하셨어. 나도 방금 샤워를 했고. 이건 마치….’ 우즈키는 고개를 휘휘 저어서 불순한 생각을 몰아냈다. 그 이상 상상이 진행이 되었다면 아마 한동안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듀서는 남자다. 오늘따라 더더욱 그 점이 뚜렷하게 우즈키의 심장을 건드렸다.

 

 “레슨, 수고하셨습니다. 기왕에 나오셨으니 사내 카페에서 얘기라도 나누죠.”

 

 우즈키의 고개가 이번엔 세로로 격동했다. 한편 그 와중에도 우즈키는, 샤워하고 나왔는데도 면도는 하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안도하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카페의 점원은 나나가 아니었다. ‘하긴 나나는 이제 일이 많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즈키는 미소지었다. 타인이 잘 된 일을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다는 건 우즈키라는 소녀의 큰 미덕이다. 그것이 강박이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커피가 나왔다. 프로듀서는 아메리카노, 우즈키는 카라멜 마키아토였다. 카라멜 시럽을 잔뜩 올린 잔이 나온 뒤에야 우즈키는 퍼뜩 생각이 났는지 ‘그, 트레이닝을 했으니까 이 정도 칼로리는 괜찮을 거예요!’ 라며 자신이 몸 관리를 태만히 하는 것이 아님을 필사적으로 어필했다. 프로듀서는 눈치채기 어렵게 쿡 웃더니, 열심히 하셨으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그녀를 달랬다.

 

 어제 있었던 이벤트 이야기가 화제의 시작이었다. 프로듀서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사죄하고, 우즈키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린이나 미오나 다른 동료들이 무슨 말을 했고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같은 이야기를 들뜬 목소리로 풀어내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대화는 이어서 우즈키 본인의 감상, 앞으로 뉴제네나 핑크 체크 스쿨로서 하고 싶은 일, 두 번째 솔로곡 계획 등등으로 시간의 고개를 넘으며 계속되었다. "사무실에서 주무시다니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아! 룸 한 쪽에 침대를 두거나 하는 건 어떨까요?" 라고, 딴에는 걱정하는 말을 꺼냈을 때 왜 프로듀서가 '푸훗'하고 웃음을 터뜨렸는지는 미스테리지만.

 

 흐뭇한 미소(로 해석할 수 있는 입가의 옅은 이완)를 지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고 우즈키는 또 아까와 같은 황홀한 긴장을 경험했다.

 

 ‘프로듀서님이랑 나, 꼭 데이트 하는 것 같네.’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얼굴을 붉히는 것은 우즈키에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빈도가 심했다. 오늘따라 나 정말 왜 이럴까. 아까부터 주책 없는 생각만 하고. 이것도 다 저 수염 때문인 건가? 수염 때문에 이상한 기분이 되는 걸까? 프로듀서님의 수염난 얼굴, 본 적이 없으니까. 그치만 며칠 못 봤을 뿐인데 저렇게… “수염이란 건 정말 빨리 자라는군요.”

 

 “예?’

 

 말을 뱉은 후에야 우즈키는 당황했다. 사실 아까부터 시종일관 당황해하고 있는 상태라 별로 눈에 띄지는 않았겠지만. 프로듀서는 아래턱을 만지며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예. 여성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수염은 자주 밀지 않으면 금방 이렇게 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좀 빠른 편이긴 하지만요. 사실 면도를 해야 하는데 개인 면도기는 가지고 다니지 않고, 다른 분의 면도기를 쓰는 건 위생상 좋지 않으니까 퇴근 후에 할 생각입니다.”

 

 헤에, 면도기도 위생이 중요한 거군요. 그녀로서는 알아봤자 별로 쓸 데도 없는 정보였음에도 우즈키는 신기해했다. “하지만 꼭 면도를 해야 하나요? 수염. 잘 어울리시는데.”

 

 “감사합니다. 하지만 수염은 길어지면 불편한 점이 많아서요. 그리고 영업직은 얼굴이 깔끔할 필요가 있는데, 수염을 기르면 인상이 좀 너저분해집니다.”

 

 너저분? 멋지기만 한데요. 우즈키는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속으로만. 아까처럼 무심결에 내뱉지 않으려고 의식을 집중한 보람이 있었다. 그나저나 그럼 내일이면 다시 면도를 하시는 거구나. 그럼 정말로 이 얼굴은 나밖에 못 보는 거네. 기뻐해야 하나 아쉬워 해야 하나? 어라, 근데 내가 왜 기쁜 거지? 아쉬울 건 또 뭐고?

 

 우즈키는 잠깐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프로듀서님! 그럼 기념으로 사진 한 번 찍어요.” 찍어봤자 쓸 데도 없지 않느냐며 민망해하는 프로듀서에게 우즈키는 해낙낙한 미소로 대꾸했다. “희귀한 걸요. 다른 사람한테는 안 보여줄게요. 자, 스마일!”

 

 반쯤 기세로 얻어낸 그 사진을 우즈키는 그날 밤까지 계속해서 응시했다. 사진은 아무리 오랫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더라도 무례한 일은 아니니까. 그 특유의 약간 어색한 스마일도 우즈키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여러분. 그저께의 이벤트는 다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의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것은 제 불찰입니다. 면목 없습니다.”

 

 이미 들었던 사과. 대상이 단수에서 복수가 되었을 뿐인. 다음날 프로듀서는 다시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로 모두 앞에 나타났다. 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즈키의 두근거림은 어제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하기는 그러했다. 아무리 취향이라도 수염 하나 가지고 뿅 하고 누군가에게 반하게 되지는 않는 법이다. 우즈키의 생각에 그것은 단지 계기였을 뿐이다. 차곡차곡 쌓여 있던 애정을 나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계기. 가득한 컵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 물이 끓어서 기체가 되게 만드는 마지막 1도.  이미 예전부터 나는. 프로듀서님을. 그랬던 거야.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은 우즈키의 버릇이었다. 이번에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설렘으로 몸이 경쾌한 긴장을 품었다.

 

 일을 하러 나서는 길에 우즈키는 슬쩍 사진을 보고 운전석에 타는 프로듀서를 쳐다보았다. 지금 우즈키는 그에게 자신의 취향을 권유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일단 나중으로 미루자. 프로듀서님과 내가 더 가까워지면, 그래서 프로듀서님을 프로듀서님이 아니라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날이 오면, 그때 가서야 조심스럽게 얘기해 보자.

 

 “달링, 수염 길러 볼 생각 없어요?”

 

 

 

 

한-참 전에 루리웹 게시판에 썼던 글인데....

일단 올려 봅니다.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7-01-26 09:01:22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90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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