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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전철 승강장에서

댓글: 10 / 조회: 1397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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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3, 2016 23:42에 작성됨.

 
 
 
 
※아이돌 마스터 본가 캐릭터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의 커플링 성향이 있는 글입니다.
※약간 시리어스하고, 약간 우울합니다. 세 줄 띄기는 시점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소제목의 시간 표시는 실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루.
 
 
 
아마미 하루카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환승역이 하나 있다. 시내 노선과 시외 노선이 지선으로 분리되는 환승역이었는데 개찰구를 지나자마자 바로 보이는 일번 승강장에는 시외 노선이,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오면 나오는 이번 승강장에는 시내 노선이 서고 있었다.
둘의 사이에는 칠 미터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카는 언제나 농담 식으로 "칠 미터밖에 안 되는 안쪽에 들어가려면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하는 거네." 라고, 애매한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요는 하루카는 일번 승강장이라는 건데, 그녀는 상냥하니까 계단은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철길 두 개, 밑에는 돌밭.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하루카. 아이돌 프로덕선 765 프로덕션에 들어온 지 두 달째인 그녀의 승강장 맞은편에는 똑같이 두 달째를 맞은 동료가 한 명 서 있었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집으로 가는 길에도 환승역이 하나 있다. 시내 노선의 승강장에는 파란색 자판기가 하나 서 있었는데, 거기서 치하야는 캔커피를 뽑아 마시곤 했다. 둘째 줄의 넷째 칸, 짙은 노란색에 검은 글씨. 캔 뚜껑으로 집중한 시선 너머로 양쪽에 붉은 리본을 맨 소녀가 보였다. 칠 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 그 소녀를 보고는 치하야는 괜시리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한테 왜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는지, 왜 그렇게 가까이 오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치하야는 지금의 간격이 좋았다. 더욱 더 가까이 오는 상황은 치하야에게 상상이 어려웠다.
그렇기에 열심히 손을 흔드는 하루카에게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치하야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냥 가만히 있는 것뿐. 캔 뚜껑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하루카는 흔드는 손을 거두었다. 역시나 차갑네, 멋대로 생각한다. 아니 사실 하루카는 무리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친해지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그저 칠 미터를 사이에 두고 이 정도로만 애타는 거리로만 있으면 끝인데. 난 그저 치하야 쨩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하면 돼.
 
 
 
멋쩍게 어깨를 으쓱이는 하루카의 모습을 보고 치하야는 커피 캔이 내용물이 다 없어진 지 오래임을 깨달았다. 입을 댄 채로 얼마나 하루카를 보고 있었던 걸까.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승강장의 의자에 앉는다. 맞은편을 보아야 할지 보지 말아야 할지. 치하야는 몇 초 지나지 않아 MP3 플레이어를 꺼내들고 하루카도 승강장도 돌밭도 아닌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이틀.
 
 
 
치하야는 승강장 반대편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당연히 뒤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하루카는 방금까지 하지 못한 이야기가 못내 거슬렸다.
"좋아하는 것? 딱히 없지만..."
"그럼 자주 하는 거라도!"
"자주 하는 거라면... 노래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음악 감상이 있겠네요."
"음악?"
"네. 노래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종류의 음악을 접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요."
나도 음악 듣는 거 좋아해, 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치하야의 뒤를 따라서 계단을 오를 수는 없었다.
 
 
 
치하야는 그녀에게 오는 길을 칠 미터짜리 돌밭으로 비유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루카와 두고 있는 거리감을 비유하기에 이만큼 적절한 것은 없었다. 아니, 아니다. 언제부터 치하야와 다른 사람의 거리는 칠 미터밖에 되지 않았을까. 그보다는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날카로운 것들이 깔려 있는 길이 치하야가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 그녀의 위치였다. 오르기 편한 계단도 없고, 움푹 파인 간단한 돌밭도 없으며, 칠 미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이 닿자 치하야는 자판기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머리 양쪽에 리본을 매고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는 어떤 소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기획사에 들어가서 우연히 집에 가는 방향이 맞았을 뿐인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볼 만한 곳은 반대편밖에 없었다. 서로를 마주볼 수밖에 없고, 서로의 거리를 인지할 수밖에 없다. 이 승강장은 그러한 곳이었다.
 
 
 
"키사라기 씨!"
결국 해 버렸다.
"저기..."
칠 미터. 또는 안전 라인 바깥이니까 좀 더 멀리.
"나도, 음악 듣는 거 좋아해!"
승강장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하루카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달았다. 삽시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치하야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지만 이윽고 그것이 방금까지 둘이 했던 대화의 연장선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서 일어난 반응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풉."
자기가 웃고 자기가 놀라다니 이상한 일이었지만 치하야는 지금 나온 웃음이 너무나도 어색해서 참을 수 없었다. 왜 웃음이 나온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어 치하야는 자신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치하야는 칠 미터 앞의 소녀, 하루카에게 말했다.
"치하야."
"응?"
"치하야라고 불러 줘 하루카."
 
 
 
사흘.
 
 
 
두 사람이 돌아오는 길은 유례 없이 즐거웠다. 하루카는 쿠키와 빵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였다. 사무실 탁자에 놓여 있던 쿠키가 하루카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낸 치하야는 어제 웃음을 배운 사람처럼 자꾸만 웃었다. 그리고 치하야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았던가? 내가 쿠키를 이렇게 좋아했나?
하루카는,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이 와 있지?
역에 다다르자 치하야는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은 더뎠다. 계속해서 뒤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올라가라는 재촉을 들은 다음에야 치하야는 반대편 승강장으로 갈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자판기가 가장 먼저 보였지만 치하야가 돌아본 쪽은 하루카였다. 언제나처럼 하루카는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는 티 없이 맑았으며 때묻지 않은 미소는 아름다웠다.
하루카는 반대편에 서 있었다.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이야기해 보지 않았다면 반대편에 있는지도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카와 그녀는 단지 칠 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 같은 회사 동료였을 뿐이었을 것이다. 하루카는 정확히 그녀와 반대편에 서 있었다. 승강장의 방향도, 시선의 방향도,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들도.
 
 
 
하루카는 치하야가 아까부터 자신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뭔가 말을 잘못한 게 있나? 혹시 옷매무새가 이상한가? 계속해서 자신을 살펴보아도 답이 나오는 것은 없었다. 허둥대는 자신의 마음이 이상했다.
하루카는 상냥하니까 일번 승강장에 치하야와 같이 서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것이 다른 어떤 아이돌이 되었든 그 마음은 동일해. 하루카는 억지로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아니야. 누군가 조금 더 친해진다면, 아주 조금만 더 친해진다면 좋지 않을까?
예컨대 치하야 쨩이라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혐오감 한 줄기가 하루카를 스쳐 지나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설령 누군가가 더 좋더라도 그렇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모두를 똑같이 대해야 했다. 그래야 모두를 같은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765 프로덕션이니까.
치하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면 치하야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음악을 같이 듣고 음악 이야기를 할 뿐 치하야가 사는 곳도 치하야의 가족이 누구인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루카가 억지로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아서 그녀의 승강장으로 다가가려 한 것 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칠 미터의 거리였다.
하지만 화가 치솟기는커녕 하루카는 그저 치하야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내일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역까지 같이 걸어가며 보는 풍경은 어떨지, 승강장 반대편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어떤 시선을 나눌지.
다른 동료들한테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루카는 정말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치하야는 범위 밖이었다. 치하야와 더욱 이야기하고 싶다. 치하야와 더욱 마주보고 싶다.
마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시외 방향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이어 열차가 승강장으로 진입했다. 열차에 올라탄 하루카가 가장 먼저 본 사람은, 아니 가장 먼저 보려고 했던 사람은 열차에서 느린 걸음으로 내리는 할머니였다. 하지만 밀려나오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창문 너머의 치하야였다.
왜인지는 이제 신경쓰지 않고 싶었다. 그녀는 그저 반대편의 사람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을 뿐이었다. 칠 미터, 육 미터, 오 미터... 창문. 하루카는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치하야의 손이 들렸다. 입꼬리도 올라갔다. 하루카는 조금씩 멀어지는 치하야의 모습을 열심히 쫓았다. 마침내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하루카는 손을 거두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치하야는 창문 너머로 자신의 말이 들렸는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분명히 입모양을 크게 해서 말했으니 아마 들렸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이렇게 말했다. 잘 가 아마미 씨. 아니...
"하루카."
 
 
 
나흘.
 
 
 
"요즘 꽤나 따뜻해졌네."
"봄이니까."
치하야 쨩, 그러고 보니 나도 하루(春)카야. 그러니까 자신은 봄의 소녀라는 것이었다. 치하야는 하루카와 봄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벚꽃이 만개한 어느 작은 개울가에서 하루카가 가져온 도시락을 같이 먹으며 시시한 농담에 웃고 같이 음악을 들으며... 완전히 봄이구나. 마치 하루카가 있어야 봄이 완성되는 것처럼.
"우리 언젠가 소풍 갈래?"
"응?"
마치 치하야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이.
"아하하... 골든 위크에도 일해야 하니까... 무리겠구나 역시."
"스케쥴, 꽤나 차 있었지."
그리고 그 빡빡한 스케쥴을 마치면 하루카와 걸을 수 있었다. 시간이 늦으면 가는 길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러 하루카와 좀 더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역에 가면 계단을 오르기 전까지 하루카를 보며 이야기하고, 하루카를 칠 미터 너머에서 바라보고.
 
 
 
오른손을 갑자기 꽉 쥐는 감촉에 놀라서 하루카는 감촉이 발생한 곳을 바라보았다.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 하루카의 손등을 감싸고 있었다. 삽시간에 귀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치하야 쨩?!"
그러자 곧바로 손가락은 하루카를 떠났다. 그리고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똑같이 빨개진 치하야의 얼굴이 있었다.
"미, 미안해... 갑자기... 그러고 싶어져서..."
그러고 싶어졌다니 무슨 의미일까. 손을 잡고 싶어졌다는 건 혹시 하루카가 손이 시릴까봐 그랬던 걸까. 하지만 지금은 봄인걸. 따뜻한걸. 생각해 보면 손등에 뭐가 묻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 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손가락이 자꾸 닿았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사실 하루카가 얻고 싶은 답은 단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어제의 그 기분을 용서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다른 답을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 손등에 뭔가가 묻어서일거야. 치하야 쨩은 그걸 닦아 주려고 한 거지. 절대로 내가...
 
 
 
"아,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하루카가 사과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치하야 자신이 왜 사과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나의 충동이었을 뿐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치하야로서는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충동적 행동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싫었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혐오감 한 줄기가 치하야를 스쳐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하루카 앞에서 했던 행동들은 전부 충동 본위의 일이 아니었던가. 혹시 하루카는 멋대로 행동하는 자신한테 배려를 해 준 게 아닐까. 그녀의 말처럼 하루카는 상냥한 아이니까 일번 승강장에 억지로 같이 서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치하야와는 반대편에 서서.
 
 
 
느닷없는 사과 뒤로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천천히 승강장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이어지던 발걸음은 승강장에서 갈라졌고, 계단을 오르며 치하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치하야는 그 뒤에 일어날 일이 어떤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절대로 반대쪽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충동이 일더라도 절대로. 충동이 내는 매서운 명령들이 치하야를 찔러 대었다. 달콤한 명령들이었다. 탁 터뜨리면 너무나도 달아서 입 안이 녹을 것 같은. 자신에게 달더라도 결국에는 새까맣게 타 버려서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뿐인 그런 설탕 같은.
둘의 사이에는 칠 미터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손을 뻗어도 잡힐 리가 없고, 목소리만이 겨우 닿는 곳. 너무나도 넓었다. 아니, 넓다고 생각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녀와 하루카의 사이에는 딱 칠 미터 뿐이다. 그래야 한다.
 
 
 
"치하야 쨩...?"
하루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다면 치하야의 얼굴에 흐르고 있는 것은 눈물이었다. 무엇이 슬픈 걸까. 하루카는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서 그 답을 틀린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다른 답을 찾자. 눈에 뭔가가 들어갔을 거야. 바람이 오늘 꽤 많이 부니까. 먼지가 들어갈 만도 하지. 이어 치하야의 눈에서 계속해서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치하야 쨩!"
부를 뿐이었다. 동료가 울고 있잖아. 왜인지는 '모르겠어도' 울고 있잖아.
"내가, 내가 미안하니까..."
뭔가 치하야 쨩한테 미안한 짓을 했을 거야.
"미안하니까... 울지 말아 줘..."
이어 하루카의 시선도 흐려진다. 마치 치하야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지 않으려는 것처럼. 볼에는 똑같은 눈물이 흘렀다.
 
 
 
시내 방향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멀리에서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고개를 돌리라는 명령일 뿐인데 치하야는 고개를 돌리는 것이 방금 배운 것처럼 어색했다. 부자연스럽게 돌아간 시선의 칠 미터 앞에는 머리 양쪽에 리본을 맨 소녀가 울고 있었다.
그 뒤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치하야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충동일 뿐이라고 다그치기도 전에 다리는 두 칸씩 계단을 뛰어올랐다. 단지 칠 미터를 다가갈 뿐인데 서른 개에 달하는 계단은 너무나도 길었다. 이어 통로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자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왜 손을 잡으려 했을까. 왜 치하야의 모든 생각은 하루카로 가득 차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그리고 충동은 너무나도 달콤해서, 하루카의 쿠키처럼 너무나도 달콤해서, 하루카의 미소처럼 너무나도 눈부셔서, 그래서...
좋아한다.
치하야는 바로 하루카에게 뛰어가 하루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미안... 해..."
 
 
 
시내 방향 열차가 들어오자 거센 바람에 옷이 펄럭였다. 울고 있는 자신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하기 싫었다. 눈물이 차올라 생각들이 잠겨들었다. 하루카는 치하야의 품에 안겨 소리내어 울었다. 전동차가 굉음을 냈지만 하루카의 말은 삼십 센티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치하야, 쨩, 내가, 내가 더 미안해..."
"나, 나 계속, 계속 치하야, 쨩한테, 거짓말했어."
자신한테 한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사실은 손, 잡고 싶은데."
누구보다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데.
"잡고 싶은데, 뭔가, 뭔가 무서워서,"
행복한 채로는 너무나도 부족했는데.
"그래서, 그래서..."
그리고 하루카는 다음 말을 할 수 없었다. 말을 하는 입술이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입술의 감촉은 달콤했다. 사실 맛도 달콤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루카는 과자를 많이 먹으니까. 모든 감각이 흔들어 대는 두뇌는 전례없이 맥동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이유 같은 것은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지금 치하야가 안고 있는 몸이, 맞대고 있는 입술이,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두 팔이 이유였다.
열차가 떠날 때까지 둘은 입을 맞춘 채로 있었다. 마침내 승강장에서 열차의 기척이 사라지자 두 사람은 서서히 입술을 떼었다.
"치하야 쨩..."
"이제는... 무섭지 않아?"
치하야의 목소리는 명백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도 무섭다는 듯이, 무섭지 않다고 말해 달라는 듯이. 하루카는 눈물을 훔쳤다.
"응. 하나도..."
"하루카..."
하루카의 답은 하나였다. 치하야에게 남은 명령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랑해. 치하야 쨩."
"나도 사랑해 하루카."
 
 
 
닷새.
 
 
 
치하야는 하루카의 집에 갔었다. 모두가 새로운 일이었다. 그녀의 부모가 따뜻하게 그녀를 맞이해 줬고, 같이 저녁을 먹었으며, 같이 목욕탕에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둘은 한 침대에 누웠다. 자정이 넘은 달빛이 꽤나 푸르렀다.
"나, 사실 외로웠어."
"응?"
"모두가 나와 똑같은 곳에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렇구나."
"그래서 치하야 쨩이 달려왔을 때, 무언가 무서우면서도 안심했어."
"그건 무슨 의미야?"
"모두가 멀어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처음으로 나한테 다가와 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하루카는 코를 맞대고 부벼댔다. 치하야는 하루카를 꼭 끌어안았다.
"모든 사람은 조금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구나..."
"......"
"왜 그래 치하야 쨩?"
"나도, 모두가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했어. 아니, 내가 모두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
"......"
"내 인생이 다할 때까지 노래하는 것...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거든."
"푸훗."
"...하루카?"
"그 대사 너무 딱딱해 치하야 쨩."
"...그렇게 딱딱했던 걸까."
"노래하는 치하야 쨩만이 치하야 쨩은 아니야."
"그러네."
"이렇게 내 옆에 누워 있는 치하야 쨩도 있는걸. "
하루카는 그 말을 꺼내자마자 얼굴이 있는 대로 빨개졌다. 치하야는 그런 하루카를 미친 듯이 끌어안고 싶어졌다. 이어 두 사람은 다시 입술을 맞대었다. 그리고 다시 물기가 어려 오는 눈가를 바라본 다음 또 다시...
치하야는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그녀가 살아 온 동안 이 정도로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머나먼 기억을 또 헤집어 보았다.
"치하야 쨩?"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 때를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때를 생각하면 그 다음의 일이 생각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름 축제의 음악, 멋대로 가사를 붙여 노래하던 치하야, 그리고 그 옆에서 손을 잡고 걷던, 차가운 도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치하야 쨩!"
왜 이럴 때 생각이 나야 하는지. 아니, 생각해 보면 이럴 때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치하야는 그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떻게 자신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날 이후 그녀는 그저...
"치하야 쨩..."
하루카의 목소리가 점점 젖어 가고 있었다. 눈을 뜨자 분명하지 않은 시야 앞에 하루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치하야 쨩......"
"...미안해."
 
 
 
"말해줄 수... 있어?"
"......"
사람이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보는 사람이 같이 울 만큼 슬픈 표정이 나오려면 어떤 일이 있어야 할까. 하루카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 친구들에게서도, 연예계 사람들에게서도 전혀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알 수 없는 만큼 더욱 슬퍼졌다.
"......"
치하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카가 그렇게 펑펑 울 줄은 치하야는 몰랐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어떻게 그런 일을 몇 년 동안이나 가슴에 품고서, 혼자서... 한 마디 한 마디에 죄책감마저 느껴지는 말이었다. 당연히 하루카는 그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루카는 그저 웃으면 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치하야가 바라는 하루카였다. 그렇기에 치하야는 또 다른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치하야 쨩."
하루카는 갑자기 표정을 고쳤다.
"...응?"
"혹시 내가 울어서 또 미안하다고 하는 건 아니지?"
완전히 정곡을 찔렸다.
"나, 치하야 쨩이 숨기고 있던 걸 말해 줘서, 그리고 같이 아파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해."
"고마...워?"
"응. 아마미 씨가 상냥해서가 아니라 하루카가 치하야 쨩을 사랑하니까."
"하루카..."
더 이상 반대편에 없는데 말이지. 이제는 그녀와 함께인데 말이지. 치하야는 계속해서 하루카를 밝은 편에 두려고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밝은 편 역시 건너편인걸, 치하야와 같은 곳일 수는 없었다. 그 곳은 손을 잡을 수도 없는 애타는 칠 미터의 거리였다.
 
 
 
하루카는 계속해서 치하야를 끌어안고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일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깊은 슬픔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심도 되었다. 이제는 그 슬픔을 이렇게 안고 있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칠 미터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혹시 그녀와 치하야 쨩은 지금의 이 침실에서 이렇게 입술을 겹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치하야는 하루카에게 달려오기 위해, 하루카는 치하야를 끌어안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돌이 된 것도 하루카의 집이 여기인 것도 이 날을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모든 사람은 조금씩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지도. 누군가가 정말로 좋다면 기꺼이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또 정말로 싫더라도 억지로 건너갈 필요는 없었다. 치하야는 이렇게 영거리에, 또 누군가는 칠 미터 정도에, 또 누군가는 같은 승강장에. 각자의 위치에.
"그래도 서로를 바라보면서."
"응?"
"치하야 쨩도, 765 프로덕션의 전부도, 서로 마주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건, 나도 마주보기만 한다는 얘기야?"
"치하야 쨩은 특별하니까!"
 
 
 
서로 까무룩이 잠이 든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이내 아침이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만진 얼굴엔 눈물이 마른 자국이 있었다. 이래서야 나도 눈이 부어서 일을 제대로 못 하겠구나, 제대로 리츠코 씨한테 설명해야지, 하면서 하루카는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목에 치하야의 팔이 얹혀 있었다. 반팔 소매에서 나온 가늘디 가는. 치하야를 처음 볼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치하야의 장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떻게 살아 왔기에 이렇게나 말라 있는 걸까...
울면 안 그래도 부은 눈이 더 부을 것 같은데 또 눈물이 나왔다. 왜인지도 말해 줬었는데. 언젠가는 치하야 쨩의 집에 가 봐야지. 매일 치하야 쨩한테 저녁을 해 줄 수는 없으려나? 그러면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지? 조심스럽게 팔을 걷어내고는 살금살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침대를 바라보았다.
자고 있는 연인의 얼굴은 사랑스럽고 애처로웠다. 눈물이 말라붙은 자국이 아직도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카는 조심스럽게 물티슈를 뽑고는, 치하야의 얼굴을 살살 문질렀다.
"이젠 웃어도 돼 치하야 쨩."
 
 
 
엿새.
 
 
 
느닷없는 봄비가 꽤나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젖은 우산을 털면 도리어 주변이 흠뻑 젖어 버릴 정도로. 사무소에서 떠나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도 비가 행인들의 신발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네, 하루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약간은 비현실적이었던 그 밤은 하루카의 머리에 아주 생생하다. 연인끼리라면 같이 웃기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계속 울기만 했구나. 그래도 치하야 쨩, 아침에는 정말로 환하게 웃었지. 눈부시게.
고마워, 라고 해 줬다. 아마 아침밥상을 보고 고마워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착각일지도. 하지만 아닌걸. 치하야 쨩은...
치하야 쨩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휴일이라고 했으니까 분명히 집에서 음악을 듣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좋아한다고 했던 앨범, 잘 듣고 있으려나. 선물해 준 인형은 침대에 잘 놓여 있으려나. 히비키 쨩한테 바느질 제대로 배워 놓을걸. 그러면 직접 만든 인형을 선물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 어쩌면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예지를 받아본다고 했었나? 유키호가 추천해 준 문예지였었는데. 치하야 쨩은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지?
바보 같네.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을 뿐이잖아. 또다시 자신에게 좋은 답만 끼워맞추고 있었다. 분명히 치하야 쨩은 방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침대 위에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비가 오는 바깥 창문을 바라보며. 분명 날씨와 기분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했나. 또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겠네.
아니 사실은 그런 복잡한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좋은 답도, 옳은 답도 아니었다. 치하야 쨩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넘겨짚어 봤자였다. 아무리 치하야 쨩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직접 만나러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걸.
풉. 멈춰서 웃었다. 이어 하루카는 배꼽을 잡고 킥킥 웃어댔다.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였다. 진짜로 바보 같네. 결국은 보고 싶다는 해답에 도달하기 위해서 빙빙 돌아다닌 꼴이었으니까. 웃느라고 우산이 뒤로 넘어가서 제법 옷이 젖고 있었지만 하루카는 신경쓰지 않았다.
보고 싶은걸. 보고 치하야 쨩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걸. 아니, 그것도 변명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답도 없었다. 보고 싶었다. 왜냐 하면 역으로 가는 길에 치하야 쨩이 없었거든.
그 뒤로는 계속해서 달렸다. 시내 방향 플랫폼으로 오르는 계단을 두 칸씩 올랐고 순식간에 이번 승강장에 있는 자판기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치하야 쨩은 여기서 커피를 마셨던 거네. 분명히 둘째 줄 넷째 칸. 짙은 노란색에 검은 글씨. 맞구나.
사실 다른 승강장에서 자신이 서 있는 반대편 승강장을 바라본다고 해서 별다른 생각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괜시리 무슨 생각이라도 나야 할 것 같았기에 하루카는 치하야가 앉아 있던 벤치에 다시 앉아본다던가, 굳이 캔커피를 마셔 본다던가 하면서 열차를 기다렸다. 별 생각은 나지 않았다. 치하야 쨩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같은 생각을 해 버렸다. 괜시리 얼굴이 빨개졌다.
열차에 오르자 하루카는 중요한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치하야 쨩, 어디 살더라?
 
 
 
느닷없이 울리는 휴대전화에 치하야는 깜짝 놀랐다. 분명 하루카는 저녁때쯤 지나야 집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발신자표시도 보지 않고 무조건 하루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조금은 한심했지만, 화면을 보니 역시 발신자는 하루카였다.
"하루카?"
- 응, 치하야 쨩. 뭐 해?
"음... 하루카랑 전화하고 있는데?"
- 전화하기 전에는 뭐 하고 있었냐고.
"아, 잡지를 보고 있었어."
- 다행이다...
"다행?"
- 나, 치하야 쨩이 또 그냥 앉아 있을까봐 걱정했거든.
"그러진 않아."
- 그렇네... 원래 뭐 때문에 전화했더라... 아! 치하야 쨩!
"왜?"
- 치하야 쨩, 어느 역이었더라?
"응?"
- 사실 치하야 쨩의 집으로 가고 있거든.
"...뭐?"
- 아, 혹시 민폐라고 생각된다면 거절해도...
"아, 아니, 아니야!"
혀까지 꼬이고. 생각해 보니까 하루카가 집으로 오는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를 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집을 좀 산뜻하게 바꿔보라는 충고는 고맙게 받아들여서 어느 정도 이삿짐 상자는 치워 놓은 상태지만... 여전히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들은 산더미고, 쓰레기 봉투에는 편의점 도시락의 포장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 치하야 쨩?
"그, 금방 치울 테니까! 빨리 와 줘!"
- 응!
삼십 분 전만 해도 멍하니 앉아 있었던 자신을 용서해 주었으면. 오랜만에 얻는 휴가였지만 치하야에게는 예전에 765 프로덕션에 스카우트 되기 전의 기억만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그저 앉아서 하염없이 음악을 듣고 노래하고, 꺼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을 꺼내들며 자신을 깎아내고. 비슷한 상황이 연속되자 결국 비슷한 감정으로까지 주저앉았었다.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또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카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리고 거기에 젖어서 결국은 완전히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목적도 기억도 전부 잊은 채로, 전부 하루카에게만. 지향성이 지나친 생각은 이어 치하야를 좀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꺼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던 참이었다.
이젠 웃어도 돼.
정말로 웃어도 될까. 사랑받은 만큼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은 하루카의 앞에서 웃어도 되는 걸까. 자신이 없었다. 똑같은 생각의 반복이었지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하루카가 없다는 것.
그리고 느닷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치하야의 집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비가 왔다. 하지만 젖는다고 하더라도 하루카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하루카는 마음껏 기뻐하기로 했다. 연인을 보러 가는 거니까.
분명히 207호였던가. 치하야가 알려 준 바에 따르면 그러했는데. 초인종을 눌렀더니 안쪽에서 성대하게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하루...카?"
"치하야 쨩!"
여러가지로 헝클어진 치하야의 모습을 보자마자 하루카는 연인의 품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걸. 그저 이렇게 껴안고 얼굴을 보고 싶은걸. 치하야가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에 하루카는 바로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치하야의 목 뒤로 두 팔이 감기고 그대로 두 사람은 입을 맞추...지 못했다. 그대로 치하야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치하야는 전부 기억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선명한 것은 아니었다. 둘이 침대로 가서 늘상 하던 것처럼 맹렬하게 입을 맞춘 다음에는 치하야가 행동한 것이 아니라 치하야의 몸이 멋대로 움직인 기분이었다. 흐드러지게 몸을 서로 맞대었고, 그래서 마지막 순간은 치하야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혼이 날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둘 다 놀라울 정도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무엇이 필요한지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절대적으로 서로에게는 서로가 필요했다. 서로가 이유였고 목적이었다. 단지 깨닫는 과정이 필요했다. 말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편에서 서로를 마주보기만 한다면, 더더욱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레.
 
 
 
아마미 하루카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환승역이 하나 있었다. 시내 노선과 시외 노선이 지선으로 분리되는 환승역이었는데 하루카는 시외 노선이 출발하는 일번 승강장에서 전철을 탔다. 그리고 그 승강장에서 칠 미터 정도 앞에는 시내 노선이 출발하는 이번 승강장이 있었다. 이번 승강장에는 오늘따라 사람이 없었다. 파란색 자판기도 오늘은 영 벌이가 시원찮았다.
"하루카."
"응 치하야 쨩."
이름만을 부르고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눈짓만으로 모든 대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만난 지 며칠 지났더라?"
"글쎄."
잘은 몰랐다. 둘 다 날짜를 자주 세는 타입이었던가.
"생각해 보니까 상관없을지도."
"그렇네."
약속된 듯이 마주보는 거리는 약 이십 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은 다시 칠 미터가 되더라도 둘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카."
"어디에 있더라도, 어느 시간에 있더라도 함께니까."
그리고 다시, 영 센티미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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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ALCHEMY로 쓰려고 했었는데 점점 살이 붙어서 하루카 생일이 되어서야 겨우 올리네요. 금사빠인 하루치하를 나타내려고 했는데 잘 됐으려나...
무언가 복잡한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6-04-05 12:13:48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57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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