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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죽어 있는 것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댓글: 10 / 조회: 1708 /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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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6, 2014 15:32에 작성됨.

아무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제 삶에, 재밌는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매일매일, 깜깜한 물 속에 잠겨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숨이 막혀서 물거품을 토해내며 헤엄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사라지지 않는 가난.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모님. 언제나, 언제나 저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 동생들. 이렇다 할 재주도 없고, 학교도 아직 졸업하지 못한 제게 몇 없는 선택지 중 하나였던 아이돌이라는 일. 굉장히 많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제게 원하고 있는 저로서의 저. 
모든 것들이 제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돌덩이가 되어, 발목에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이래서야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뜬 것과 아무 차이가 없을 정도로, 새까맣고 새까매서 무엇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숨이 막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에게 지워진 것이니까. 제가 바라지 않았더라도,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더라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포기하고 있었어요. 
스스로를 잘라내어 버리는 것은,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
빛이, 보였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제 앞에, 확실하게 한 줄기의 빛이.
비록 손으로 움켜쥐려고 해도 잡히지는 않지만, 제 것은 아니지만.
저것만 있으면.
저 빛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이런 삶이라고 해도 괴롭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러니까, 저는 딱 한 번만 억지를 부리기로 했습니다.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아무에게도 놓아주지 않아.

 

나의 빛.

 

 

 

 

 

 

 

「프로듀서, 누군가와 가족이 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 가족?」

 

갑작스러운 질문에 슬쩍 옆을 보자, 야요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한 채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기 좋게 말려 있는 주황빛 머리카락이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찰랑인다. 만져 보고 싶은데. 노트북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가져가 야요이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 보았다.

 

「하왓! 저기, 왜 갑자기 머리를 만지시는 건가요?」

「아, 그게… 그냥 그래 보고 싶어져서. 싫었어?」

「아뇨, 싫지는 않았지만… 조금 놀랐어요. 그리고,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오히려 기쁠까나─ 하고」

「하하, 그건 영광인데. 야요이의 머리카락은 부드럽구나」

「에헤헤, 마음껏 만지셔도 괜찮아요~」

 

햇살 아래에서 가르릉대는 고양이처럼 야요이는 기분 좋게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작은 동물을 다루는 것 같은 기분이다. 조금 묘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야요이의 머리카락을 연신 만지작댔다.

 

「그러고 보니 방금 뭐라고 물어봤었지? 가족이 되는 방법… 이었던가?」

「네! 프로듀서는 알고 계신 거죠?」

「그, 그야 뭐… 그런데 그런 게 왜 궁금한 거야?」

「으~음… 지금은 비밀이예요」

「비밀이라, 그렇담 어쩔 수 없지. 흐음… 가족 말이지」

 

가족, 이라고 해도 생각해 보면 기준이 꽤나 애매한 개념이 아닐까.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말해 보기로 했다.

 

「… 일단 함께 살기만 해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함께 산다… 그것뿐인가요?」

「아니, 그렇지만 부부가 서로 떨어져서 사는 경우도 많고… 자녀가 따로 사는 건 흔한 일이고… 음, 역시 입양하는 경우도 있으려나…」

「우? 입양…?」

「… 음, 역시 가장 간단한 건 결혼이려나. 남녀 사이에 나이 차이가 적다면 말이야」

「결혼…」

 

야요이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되물어 왔다.

 

「그러면, 결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겨, 결혼 말이지… 우선은 어른이 되어야 하겠지. 지금의 야요이에겐 무리지만」

「저한테는… 무리인가요?」

「야요이는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말이야. 좀 더 나이를 먹을 때까지 기다리면 할 수 있어」

 

내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였다. 무표정, 이라고 불러야 할까.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 된 야요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 기다리는 건, 싫을지도」

「응? 야요이, 방금 뭐라고…」

「프로듀서, 그러면 결혼하는 수밖엔 없는 건가요?」

「글쎄… 어려운 질문이구나. 단순히 동거하는 것만으로 가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다른 문제고… 어쨌든 제일 기본적인 가족이라면 서로 피가 이어져 있는 관계를 말하는 거니까」

「… 피」

 

야요이는 다시 생각에 잠겼는지 조용해졌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너무 복잡한 말을 늘어놓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좀 더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애초에 야요이가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혹시, 야요이에게는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프로듀서로서 알아 둬야만 할 사항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야요이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로 한 순간, 야요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두 사람에게서 같은 피가 흐른다면 그 두 사람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 같은 피, 말이지…」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애초에 가족 사이라고 해도 혈액형이라던가는 충분히 다를 수 있는 일이다. 말 그대로의 뜻으로 받아들이기에도, 다소 추상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도 미묘한 문장이다. 애초에 야요이가 말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약한 위화감이, 사고의 한 켠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석연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단정하고서 야요이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마… 그렇다고 해도 될 거야」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뭐가 기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야요이는 밝은 표정을 하고서 몸을 꾸벅 숙여 인사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이런 애매모호한 대답으로도 만족해 준 것일까.

 

「… 그러고 보니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구나」

 

어차피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설마하니 야요이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어서 그런 말을 꺼냈을 리도 없을 터였다. 지나치게 엉뚱한 상상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핫… 그 야요이가, 남자라」

 

그러고 보면 한창 스케줄 편성 작업을 하던 도중이었다. 실없는 망상은 이 정도로 해 두는 편이 좋겠지. 뺨을 가볍게 때려 스스로에게 기합을 넣은 후, 다시 노트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작업을 재개했다.

 

 

 

 

 

그런,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로 인해 무언가가 변했는지 어떤지를 살펴볼 필요조차도 없을 정도의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 실제로 눈에 띄게 바뀐 일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다만 마찬가지로 특별히 언급할 정도의 일이 아닌 사소한 변화가 생겼다면,

 

「프로듀서, 이거 드셔 주세요!」

 

야요이가 컵을 내밀었다. 안에 담긴 것은 불그죽죽한 색을 한, 다소 걸쭉한 액체다. 더군다나 그것이 마실수 있는 음료라고 한다면 그 대상은 아주 좁은 범위로 한정되는 것이다.

 

「또 토마토 주스야? 괜찮다고 말했는데…」

「하지만 저도 프로듀서에게 뭔가 드리고 싶어서… 저, 하루카 씨처럼 과자를 만들지도 못하고, 유키호 씨처럼 차를 잘 타지도 못하니까… 폐가 되었나요?」

「그럴 리가 없잖아. 난 그냥 야요이에게 미안해서…」

「에헤헤, 그렇다면 부디 마셔주세요! 전 괜찮으니까요!」

 

컵을 든 손을 거두지 않은 채로 배시시 웃어 보이는 야요이. 이래서야 거절할 수도 없다. 애초에 미안함 외에는 거절할 만한 이유가 없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토마토 주스가 든 컵을 받아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입 안에 달콤짭짤한 맛이 퍼진다. 무언가 걸리는 느낌은 아마 토마토의 씨앗과 과육 건더기 떄문일 것이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야요이가 더욱 기특해졌다.
컵에서 입을 떼고, 입 안의 주스를 그대로 삼켰다.

 

「……?」

 

목 너머로 넘어가는 액체 안에서.
과일 주스라면 보통 섞일 일이 없는, 기묘한 무언가의 풍미가 느껴진 것 같았다.

 

뭐였을까.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 굉장히 생소한 느낌의 맛. 아니, 향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렇지만 어디에선가 경험해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생소하지만, 그럼에도 알지 못하는 맛은 아니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지?
한 손에 멍하니 컵을 든 채로, 그저 아무래도 좋은 것일지도 모르는 희미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되새겼다.

 

 


쇠.

이건, 확실히…

… 쇠?

 

 


「… 프로듀서? 맛이 없으셨나요?」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야요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가, 확실히 자신이 준 주스를 마시고서 한참 동안이나 멍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례되는 일을 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 아니… 미안해, 야요이. 굉장히 맛있는 걸. 직접 만든 거야?」

「네! 프로듀서가 맛있다고 해 주시니 다행이예요!」

「… 그런데 야요이, 혹시 뭔가 특별한 거라도 넣었어?」

「특별한 거요?」

 

야요이는 의아한 표정을 띄운 채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나와 같은 주황빛 머리칼이 그 움직임에 맞춰 함께 흔들렸다.

 

「으음… 그다지 특별한 건 넣지 않았는데요? 토마토랑, 설탕이랑, 요구르트랑…」

「그러니… 그렇다면 됐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주스 고마워, 야요이」

「네, 프로듀서! 앞으로도 만들어 와 드릴 테니까, 그 때마다 마셔 주세요!」

「아니, 만들어 올 필요까지는…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구?」

「프로듀서야말로 부담 갖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제가 프로듀서에게 드리고 싶을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사양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야요이가 오른손을 위쪽으로 들었다.

 

「프로듀서가 정 미안하시다면, 저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니까요! 에헤헤」

「… 아아, 그거 하자는 거지? 알겠어!」

 

이 정도로 보답이 되는 것일까. 어떻든 간에 야요이가 바라고 있다면 못 해 줄 이유는 없다. 야요이의 움직임에 맞춰 나도 오른손을 들고, 뒤로 약간 당겼다가 앞쪽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하이, 터…」

「… 치!」

 

짝, 하는 소리가 울렸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부딪히는 소리.

 

「… 어?」

 

그 때 처음으로 눈치챘다.
옷 소매로 가려진 야요이의 오른쪽 팔목 안.
그곳에, 자그마한 무언가가 붙어 있다.

 

「야요이, 그 팔목… 뭘 붙여 놓은 거야?」

「엣? …… 아」

 

야요이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자신의 팔목을 내려다보더니,

 

 

「……!!」

무서운 속도로 오른팔을 등 뒤로 돌려 감췄다.

 

 

「아, 이건, 저기… 아, 아무 것도 아니예요! … 그게, 댄스 레슨을 하다가 넘어져 버려서, 밴드를 붙였어요!」

「… 그, 그래.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는데」

「프로듀서한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

 

수상하다, 고 한다면 수상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레슨 도중에 다친 것일까. 어째서 저렇게 숨기려고 하는 걸까.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종류의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뭔가, 밝히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 아니, 역시 지나친 생각이다.
다른 아이도 아닌 야요이다. 정말로 나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애초에 야요이는 나를 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를 내 쪽에서 의심하다니, 심한 짓에도 정도가 있다.

 

「많이 다치지는 않은 거야? 일은 할 수 있겠어?」

「네, 네… 정말로, 정말 아주 조금 다친 것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조심해서 하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어쩐지 말수가 적어진 야요이를 곁눈질하며 컵을 다시 입에 대고 기울였다. 아주 조금 풍기는 쇠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갑자기 허리춤에 자그마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야요이가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나를 껴안고 있었다.

 

「야, 야요이? 갑자기 왜…」

「… 이걸로, 프로듀서는…」

「…?」

「… 에헤헤, 아무 것도 아니예요」

 

오늘따라, 평소의 야요이와는 조금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어쩐지 멋쩍은 기분인 채로 야요이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허리에 둘러진 가느다란 두 팔에, 꼬옥 하고, 조금 더 힘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있잖아, 오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로부터 일 주일 정도가 지난 후.
어김없이 그 날도 야요이가 만들어 온 토마토 주스를 마시고 있자. 마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응? 마미인가…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라구? 오빠한테만… 오빠한테만 상담하려고 해서. 비밀… 지켜줄 수 있어?」

「… 마미가 원한다면야 어렵지 않지만…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데?」

 

주위에서 엿들을 것을 신경쓰는 것인지 마미가 바짝 다가섰다. 함께 있던 사람이라고 해 봐야 소파에서 잡지를 읽고 있는 아즈사 씨와 사무를 보는 오토나시 씨 정도였지만, 그만큼 누구에게도 듣게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자세를 낮추고 귀를 기울여 주자, 잔뜩 숨죽인 목소리로 마미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야요잇치에 대한 거야」

「야요이? 야요이가 왜?」

「요즘 야요잇치… 어쩐지 기운이 없지 않아?」

「야요이가? 글쎄…」

 

마미의 말에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최근의 야요이는, 기운이 없었던가.

 

「… 기운이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는걸. 딱 한 번 레슨 도중에 쓰러진 적은 있었지만, 잠시 쉬니까 괜찮아졌다고 말해서 다시 계속했었고」

「… 분명 그거라고 생각해. 오빠가 못 볼 때의 이야기인데, 야요잇치 요즘 자주 어지러워하거나 넘어질 뻔하거나 하고 있어… 야요잇치가 오빠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야요이가… 그랬단 말야?」

「응, 혹시 어딘가 몸이 아픈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돼서…」

 

쉽사리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야요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니, 솔직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마미가 이런 거짓말을 할 리도 없을 테고, 단순히 내가 부주의했을 뿐이겠지. 이래서야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댈 수 없다.

 

「그랬던 건가… 알려줘서 고마워, 마미. 야요이에겐 내가 물어볼게. 물론 마미가 알려줬다는 건 말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저, 저기! … 아직 할 말이 남았어, 오빠…」

 

잠시 머뭇거리던 마미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랫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 사실은… 야요잇치, 얼마 전에 아미랑 마미한테 부탁을 하나 했어」

「부탁…? 어떤 부탁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 마미?」

「……」

 

 

 

 

 

「…… 주사기…」

「… 뭐라고?」

 

전혀 지금까지의 화제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실로 갑작스럽게 마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야요잇치가, 주사기를 구해줄 수 없겠냐고 했어. 아미랑 마미의 파파는 의사를 하고 있으니까… 구할 수 있지 않냐고 하면서」

 

어딘지 기분이 나빠졌다.
익숙하지 않은, 어딘가 위험하게까지 느껴지는 단어에 식은땀이 흘렀다.
야요이의 이름과 그런 단어가 같은 문장으로 엮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강한 위화감이 엄습했다.

 

「주사기라니… 야요이가 그런 걸 왜?」

「마미도 몰라. 어쨌든 그래서 아미가 파파 몰래 하나 슬쩍해서 야요잇치한테 줬어. 아미는 아마 음료수에 핫소스를 넣는 장난 같은 데 쓸 거라고 생각해서 준 모양인데…」

「… 그럼 실제로는?」

「모른다고 말했잖앙→… 야요잇치가 안 가르쳐 줘서 모르지만… 요즘 야요잇치가 어쩐지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 혹시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해서… 그래서, 오빠한테」

「주사기… 인가. 하지만 그걸로 대체 뭘…」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가는, 기분 나쁜 감각이 들어 머리에 손을 짚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규격 외의 이야기에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어쩐지 건강이 나빠진 것 같다는 야요이. 몰래 얻어 갔다는 주사기.
뭔가,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마미의 생각이 맞는 걸까.

 

「…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만 들어서는 나도 잘 모르겠어. 어쩌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응… 그래도, 오빠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래… 고마워, 마미. 많은 도움이 됐어. 야요이에게는 어떻게든 말을 붙여 볼 테니까… 안심하고 맡겨 줘」

「알았어, 오빠. … 절대로 비밀로 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하고서 마미는 아즈사의 곁으로 가 앉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붙이고는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내용까지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 야요이」

 

주사기, 인가.
그런 물건으로 뭘 하려고 했던 것일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로 아미나 마미처럼 가벼운 장난을 하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우유 팩 안에 주사기로 무언가를 넣는다던가. 우유라, 그러고 보면 그런 장난은 아마 마실 것에만 한정될 것이다. 주사기. 자그마한 구멍만을 내서 들키지 않도록 무언가를 몰래 넣을 수 있다. 마실 것. 몰래, 넣는다. 그러고 보니, 마실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옆에 있었다. 아직 조금 남아 있는 토마토 주스. 야요이가 만들어 온 토마토 주스.

 

「… 제정신이 아니야…」

 

미간을 꼬집다시피 짚었다. 어떻게 된 게 틀림없다. 망상도 정도가 있다. 대체 어디까지 뻗어가려고 하는 거냐. 애초에 그렇다고 해도 야요이의 건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은가.
야요이의, 건강에는.
야요이의 몸에는.

 

「……」

 

별 것 아닌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토마토 주스를 가져오던 날, 야요이가 보였던 아주 약간 이상한 행동.
야요이의 오른팔.
그 위에 붙어 있던, 무언가.
야요이는 밴드라고 말했다.

 

「…… 모르겠어」

 

단서가 없다. 사고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그 이상 사고하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부정할 자신이 없었다.

 

「야요이에게… 야요이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

 

황급히 스케줄을 확인해 야요이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를 알아보았다.
반드시 그 일에 대해 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만약 마미의 말이 정말이라면, 야요이의 컨디션이 정말로 안 좋은 것이라면 일을 시키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하다.

 

「오늘 날짜가… 그래, 지금 이 시간이라면…!」

 

틀림없다. 작은 홀에서의 단독 미니 라이브다. 라이브 같은 걸 했다간 체력의 소모가 상당히 클 것이다. 야요이는 지금 괜찮을까.

 

「… 뭔가 일이 생겼다면 전화가 왔겠지. 아직 그런 연락은…」

 

그렇게 스스로를 애써 안심시키고 있자,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곧바로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뭐…」

 

─기가 막힐 정도의 타이밍이 아닌가.
할 말조차 잊어버리고서.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 예. 765 프로덕션의 P입니다」

 

 

 

 

 

 

 

「… 야요이」

 

뺨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히 이름을 부르자 야요이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 프로듀서… 저, 어떻게…? 기억이 안, 나요…」

「괜찮아… 누워 있어. 야요이는 지금 쉬어야만 해」

「하지만… 저, 라이브…?」

「… 라이브는 취소됐어. 야요이의 몸이 우선이니까」

 

미친듯이 뛰어나가 택시를 잡아 타고, 홀 앞에 내려 폐가 터질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며 달려가자 야요이는 의무실의 침대 위에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라이브에서 첫 곡을 시작하기 무섭게 쓰러져서는 의식을 잃었다는 말만을 전해 들었다. 막대한 손실이다. 아이돌로서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지도 모른다. 잡지에는 아이돌 타카츠키 야요이의 건강에 대한 기사가 난무하겠지.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지금은 야요이에 대한 걱정밖에 할 수 없었다.

 

「… 죄송해요… 프로듀서, 저… 라이브… 해내야 하는데」

「됐어, 야요이… 몸이 좀 나아지면 같이 병원에 가자. 어디가 안 좋은 건지 알아봐야 하니까…」

「저, 저는 괜찮아요… 하나도 아프지, 아…」

 

야요이가 몸을 일으키려다가 휘청하고 중심을 잃었다. 황급히 팔을 뻗어 쓰러지려는 야요이의 몸을 지탱하려다가 멈칫했다. 
야요이의 몸이 이 정도로 무거웠던가.
그렇게나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뜻일까.

 

「야요이…! 괜찮으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우선은 쉬어」

「… 괜찮, 아요… 괜찮으니까, 프로듀서…」

「그러니까 괜찮지 않다고 했잖…!」

 

아이돌을 무리하게 만들 수는 없다. 제대로 타일러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훈계의 말을 하기 위해 움직이던 입술이 한 순간 멈췄다.
야요이의, 새하얗다 못해 창백하게까지 보이는 몸. 셔츠 밖으로 드러난 가느다란 팔.
그 위에, 붕대가 묶여져 있다.

 

「… 야요이, 그 팔… 어떻게 된 거야」

「엣… 아, 저기, 이건…! 바, 방금 무대에서 쓰러졌을 때 부딪혀서, 다쳐 버려서!」

「… 거짓말은 그만둬, 야요이. 방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었잖아」

「앗… 그, 그치만… 저기… 스탭, 스탭 분에게…」

「……」

 

야요이는 괴로운 듯한 얼굴로 변명하고 있다.
무엇일까.
야요이는, 무엇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인가.

 

「… 미안, 야요이. 잠깐 볼게」

「프, 프로듀서… 안 돼, 요…!」

 

저항하려는 야요이의 미약한 몸짓을 무시하고서 오른팔을 틀어잡았다. 특별히 아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다쳤다는 건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붕대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프로듀… 윽, 서!! 저, 안… 으읏…!」

 

야요이가 몸을 비틀며 팔을 빼려고 했지만 가뜩이나 몸이 약해졌기 때문인지 별다른 방해가 되지 않았다. 야요이의 호소에 가까운 외침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그저 붕대를 풀었다.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어쪄면 굉장히 심한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붕대가 풀려나간다.
그 밑에 숨겨져 있던 야요이의 맨팔이 드러난다.
그것은, 언제나 보던 것처럼 새하얗고 단정한, 부드러울 것 같은,

 

 

 

 

 


「…… 뭐… 야」

 

「이게…」

 

 

 


검붉은 색. 검푸른 색. 물방울 무늬? 아니, 단추인가. 물감으로 찍은 문신인가.
그런 것보다도, 사람의 피부에 생겨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것을,
나는 알고 있지 않았던가.

 

 

멍이.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의 피멍이, 야요이의 팔 위를 처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야요이」

「……」

「단순히 부딪힌 걸로는 이렇게 될 리가 없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야요이…」

「……」

「… 무슨 짓을 했어」

 


야요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숙인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야요이의 팔을 잡은 내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멋대로 연결되어 간다.
지금까지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가 원하는지 아닌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하나의 끔찍한 악몽이 되어.

 

야요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이, 틀림없이 야요이의 것일 터인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토마토 주스. 새빨간. 토마토 주스. 주사기. 아미와 마미에게서. 몰래. 넣다. 토마토, 새빨간. 직접 만들었어요. 토마토. 설탕. 요구르트. 특별히. 프로듀서. 주사기. 피멍. 이렇다 할 재주도 없고. 프로듀서. 가족이. 되려면. 프로듀서. 프로듀서. 쇠. 쇠. 쇠. 쇠의 맛. 쇠의 향기. 토마토. 새빨간. 주스.

 

 

가족이 되려면.

 


이걸로 프로듀서는.

 

 

저의,

 

 

 

 

가족.

 

 

 

 

 

 

 

 


「욱… 웁…!!」

 

뱃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욱, 커헉… 우웩, 쿨럭쿨럭, 욱… 웨엑…!!」

 

새하얀 침대가 놓여진 새하얀 의무실의 새하얀 바닥에, 불그죽죽한 기분나쁜 시큼한 냄새가 나는 토사물이 철퍽철퍽 하는 지저분한 소리를 내며 널부러진다. 내용물은 토마토 주스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마시고 있던 것은 토마토 주스다. 야요이가 만들어 준 토마토 주스. 아주 조금, 쇠 맛이 나던, 토마토 주스.

 

 

「콜록, 허억…!! 크아, 하악, 학…!」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구토감에 괴로워하며 고개를 들자,
야요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서 웅크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그마한 입술이다. 조금 핏기를 잃은, 자그마한 야요이의 입술.
그것이 들썩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 안 돼요, 프로듀서…」

「토해 버리면… 안 되는걸요」

「저희들…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니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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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주제에 걸맞는 글로 써 봤습니다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4-12-18 20:44:49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3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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