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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추하네, 하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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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0, 2014 14:55에 작성됨.

「사랑에 진 여자는, 정말로 추한 걸」

금발의 소녀가 이 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 눈에는 노골적인 웃음기가 걸려 있다. 가엾고 가엾어서, 정말로 어쩔 수가 없다는, 그럼에도 도움의 손길 같은 것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처럼 소녀는 웃는다.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입꼬리만을 길게 올리며. 그것은 소녀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비웃음일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표정은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든지 그건 소녀에게 있어서 단순한 흥미거리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으려고 시도했다.
그것이 어떻게 보인 것인지, 소녀는 순간 따분한 표정을 짓고서는 그대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우두커니 서 있던 남성에게 소녀가 뛰어들듯 안겼다.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성이다.

 

순간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어째서?
왜, 난 당신을 '남성' 같은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 거죠?
누군가 대답해 주세요.
부탁이, 니까.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당연하게도 닿지 않는다. 소녀와 남성은 팔짱을 낀 채로 어디론가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저렇게나 서로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는 두 사람에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무엇도 쥐지 못한 채로, 허공에 머물러 있을 뿐인 내 손.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자 갑자기 시점이 덜컥 낮아졌다. 무슨 일일까, 잠시 의아해했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 되지. 이런 곳에 주저앉아 있으면.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지탱하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이고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안 돼.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시선을 들자 두 사람의 모습은 진작에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면 괜찮은 걸까. 아니, 역시 안 된다. 이렇게 한심한 꼴이어서는 언제까지고 돌아와 주지 않을 테니까.

돌아와?
누가 돌아온다는 걸까.
영영 돌아오지 읺을 사람에게 멋대로 기대를 품다니, 바보 같아.
정말로 바보 같다.
이런 바보 같은 인간이 나라니, 믿고 싶지도 않다.

호되게 바닥에 부딪혀 욱신욱신 아파 오는 무릎 위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액체는 어쩐지 기분 나쁘게 따스하다.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올려다본 하늘은 새하얀 타일의 색이다. 건물 안이니까 당연한가. 스스로의 멍청함에 웃고 싶어져, 입을 벌려 소리를 냈다.

「…… 아아아아아……」

이상하다. 어째서?
웃으려고 했는데.
왜, 마음대로 웃을 수도 없는 건가.

「아아아아아아아……!!」

듣기 흉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신을 차리자 난 얼굴을 감싼 채로 절규하고 있었다.

 

 

 

***

 

 

 

「컷!」

우렁찬 목소리로 컷을 외친 감독이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세트 위로 달려나왔다.

「대단한걸, 아마미 씨! 역시 765프로덕션의 아이돌 답달까, 이미 여배우 수준이잖아!? 자네한테 맡기길 잘 했어!」

「아… 아하하, 가, 감사합니다…」

「… 어? 아마미 씨, 정말로 울고 있는 거야?」

「… 네? … 아뇨, 딱히… 어라… 저, 울고 있나요…?」

「가, 감정을 이입하게 된 걸려나… 그만큼 연기에 열중했다는 뜻이겠지. 정말 잘 해줬어, 아마미 씨. 그럼 이만 대기실에 가서 쉬어 줘.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니까」

「네… 수고하셨습니다」

꾸벅하고 머리를 숙인 후, 등을 돌리고서 대기실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잔뜩 흥분한 감독이 스탭들에게 떠들고 있는 소리가 뒤쪽에서 어렴풋이 들려온다. 스스로가 구상했던 장면이 완벽하게 구현된 기쁨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미키는 어디 있는 걸까. 퇴장하는 장면을 찍은 이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그대로 대기실로 돌아갔을 터다. 대기실에 가면 만나게 될 것이다.

 

어서, 미키를 만나고 싶다.
연기로 가라앉았던 마음이 순식간에 들떠 부풀었다.


갑작스레 눈앞에 손이 불쑥 내밀어졌다. 손에 들린 것은, 손수건이다. 받아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 손의 주인을 확인했다.

「… 프로듀서 씨?」

「이걸로 눈물 좀 닦아, 하루카. 아직 맺힌 채라고」

「저, 정말인가요? … 아, 정말이네… 죄송해요, 좀 빌릴게요」

프로듀서 씨의 손수건을 받아들어 눈가를 닦아냈다.

「그나저나 정말로 굉장했어, 하루카. 설마하니 그 정도까지 해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에헤헤, 감사해요. 저도 그만 열중해 버려서」

「미키도 지금쯤 대기실에서 쉬고 있을 거야. 미키 녀석, 하루카에 비해 그다지 칭찬받지 못해서 풀죽어 있을지도 모르겠네… 나도 나중에 위로해 줄 테니까 잘 좀 달래 줬으면 좋겠어, 하루카」

「네, 프로듀서 씨! 애초에 저보다도 미키가 훨씬 잘 연기했는걸요」

생글생글 웃으며 예의치레를 태연하게 내뱉었다. 솔직해지자면, 방금 세트 위에서 했던 연기보다도 지금 하고 있는 연기 쪽이 훨씬 소화하기 힘들다.
이런 본심을 아신다면 프로듀서 씨는 뭐라고 하실까?

「아, 저기…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문득 생각났다는 것처럼, 순수하게 말을 꺼내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연기'했다.

「말할 거? 뭔데 그래?」

「그게… 그러니까, 이번 주 주말엔 한가하신가요?」

머뭇거림을 일부러 의식하고 있는 건, 부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는 걸까.

「주말…? 이렇다 할 일정은 없는데」

「다행이다! 그럼 저랑 어울려 주시지 않겠어요? 저 굉장히 힘냈으니까, 포상을 받고 싶구나~ 하고 생각해서!」

「하핫, 포상이라… 하루카도 의외로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구나. 나 같은 사람으로 괜찮은 거야?」

「프로듀서 씨니까 하는 부탁인걸요!」

「그, 그래…? 뭐, 하루카가 하는 부탁이라면야… 알겠어. 그럼 그 일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지금은 일단 쉬어 둬」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프로듀서 씨!」

프로듀서 씨는 손을 흔들며 어디론가 걸어가셨다. 스탭 측과 뭔가 면담이라도 하시려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말했으니 아무래도 좋겠지.
잠시 걷다가 나와 미키의 이름이 인쇄된 종이가 붙어 있는 문 앞에 멈춰섰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의 대기실이다. 들어가기 전에 한 차례 숨을 가다듬고,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조용하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가운데의 테이블 위에 엎드리고 있는 것은, 금발의 소녀.
그것을 보고, 오늘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웃었다.


미키에게 다가간다.
미키는 웅크려 엎드린 채로 얼굴도 들지 않는다.
아마, 스스로도 느꼈던 것이겠지. 미키는 감이 좋으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야 이런 반응이더라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지 입다물고 있을 뿐이어서는 재미가 없겠네.
곁으로 느릿느릿 다가가서, 머리맡에 선 채로 입을 열었다.

「미키, 나 매일같이 연습했어」

대답은 없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나 역시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한다.

「기억하지? 미키가 나한테 말했던 것. 이번에 있을 드라마에서 두 명 다 주연으로 발탁됐으니까, 마침 좋은 기회라면서 말이야」

「'평소부터 하루카가 허니한테 친한 척 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이번 일에서 누가 더 빛나는가를 겨뤄서, 하루카가 진다면 허니한테서 떨어져 줬으면 하는데'」

「… 라고 했던가? 쿡쿡」

여전히, 대답은 없다.
하지만 여기저기 삐쳐나온 그 금발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아챘으면서도 '혼잣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을 들었던 날부터 죽을 각오로 연습했어. 미키를 이기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억지로 웃고, 울고, 화내고」

「… 나, 미키의 생각도 이해해. 미키는 연습 같은 거 하지 않고서도 무엇이든지 잘 해내 왔던 아이니까. 빛나는 천재, 가능성이 잠재된 원석. 각종 화려한 수식어는 다 달고 있는 아이니까」

「그런 미키가, 나 따위한테 질 리가 없어… 평범하고, 매력 없고, 언제나 수수할 뿐인 나한테 질 리가 없어. 그런 생각에 꺼냈던 말이지? 응, 나도 잘 알고 있어, 미키」

잠시 말을 멈추고 미키를 관찰했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돌아오고 있지 않다.
말없이 들을 셈인 걸까. 패배자에겐 확실히 잘 어울리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미키답지 않게도 조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겨 버렸어, 미키. 어떻게 하지? 드라마의 감독님이 말야, 나를 대단하다며 칭찬하셨어. 미키보다도 내 연기가 훨씬 눈에 들었다는 거야」

「정말로 노력이란 건 대단하네, 미키! 미키도 옛날 이야기 알지? 토끼와 거북이라는 거. 거북이의 기분이란 건 이런 걸려나? 의외로 굉장히 기분 좋단 말이지~! 미키는 이런 성취감을 맛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야!」

「…… 미안해…」

「응? 뭐라고 했어, 미키? 잘 안 들렸는데」

「… 미안… 한 거야」

아주 조금 진이 빠졌다. 한창 즐거운 참이었는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가장 재미없는 반응이 돌아와 버렸으니 무리도 아닌 것이다.

「미안하다니? 뭐가? 미키는 나한테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

「그러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미키. 이유 없는 사과를 받는다고 해도 오히려 이 쪽이 부담스럽고」

「… 없던… 걸로」

「응?」

「… 미키가, 하루카에게 했던 이야기… 없는 걸로, 해 줬으면… 하는 거야」

「…… 농담하는 거야?」

「농담 같은 게… 아니야」

「그래그래, 재미있는 농담이었어, 미키. 그럼 이제 슬슬 본론을 말해 버려도 괜찮을까? 뭐, 말한다고 해도 딱 한 마디지만」

「… 하루카…」

「앞으로, 프로듀서한테 달라붙지─」

「하루카!!」

그제서야 미키가 얼굴을 들었다.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네. 그 정도의 감상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과할게… 미키가 사과할 테니까, 그건 없던 걸로…!」

「…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미키? 혹시 진검승부라는 말 알고 있어?」

「… 그런 어려운 말 모르는 거야」

「서로 간의 모든 걸 건 진짜 승부라는 뜻이야. 그런 걸 사과한다고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애초에 먼저 제안해온 건 미키잖아?」

「읏……!」

「난 미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이겼을 뿐. 이제 비로소 내가 가져야 마땅할 권리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데, 그걸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니…」

「… 하루카… 그래도… 미키… 는」

「미안, 더 들어줄 생각 없어서. 그럼 부탁할게, 미키. 앞으로 프로듀서 씨한테 필요 이상으로 친하게 굴지 말아 줘」

동공이 수축한다. 낯빛이 희게 변색한다. 작게 벌린 입은 다물어지지 않고,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다.
사람이라는 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필사적인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아아, 정말로…
추해.

 

「하, 하루…!! 앗, 꺄…!?」

미키가 허겁지겁 일어나려다가 중심을 잃고 휘청했다. 철제 의자가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대기실 안에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제대로 일어나지조차 못하는 것을 보아 다리를 호되게 부딪힌 것인지, 절뚝이는 몸짓으로 미키가 이 쪽으로 기었다. 발목에 뭔가가 들러붙었는가 싶어 확인해 보니 미키의 손이었다. 보기 흉하게 바닥에 널린 금발이 마치 걸레 조각 같다.

「부탁하는 거야, 하루카!! 미키, 미키는! 허니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 역시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응? 그 이야기는, 어, 없었던 걸로…!!」

처절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서 빌던 미키가 고개를 들고,
그대로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눈가에 가득하게 맺혀 있던 눈물이, 소리없이 뺨 위로 흘러내린다. 정신없이 호소하던 입은 그대로 얼음장처럼 차게 굳었다. 내 발목을 움켜쥔 손이 가늘게 경련한다.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비춰진 내 얼굴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분명히, 굉장한 얼굴이겠지. 스스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러고 보면, 반드시 돌려 주겠다고 생각했던 대사가 있었다. 미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추하네, 미키」


방금 보았던 미키의 표정과 비슷하게 되었을까.
꼭, 그랬으면 좋겠는데.


「사랑에 진 여자는, 정말로 추한 걸…」

 

END

 

---

 

이후의 일은 상상으로.

노력으로 천재를 이기는 좋은 이야기네요

[이 게시물은 Plutone님에 의해 2014-12-11 13:18:55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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